기후극장 : 서막 – 이산화탄소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그림 1] 유토피아 극장. 미국 오하이오 페인즈빌. 1914-1939. (출처 : Cinema Treasures)

기후극장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후극장은 역사와 문학을 통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꾸려집니다. 매월 1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기후위기에 대한 더 깊고 폭넓은 고민과 공부, 기후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등장인물 : 역사인류학자인 파우스트 박사와 그의 제자인 기후극장 단장.
장소 : 파우스트 박사의 집 서재
때 : 현재

파우스트 박사의 집에 그의 제자가 방문한다. 제자는 운영하던 극장을 곧 닫을 계획을 하고 있다. 박사는 제자가 극장에 올려주기를 바라며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넘겨주는데…



파우스트 박사 : 그래, 극장을 닫기로 했다고? 그동안 운영하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만. 단원들과는 이야기가 잘 됐나?

단장 : 오늘 모두 만나서 마지막으로 의논을 해보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계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든 방식이든 새롭지 않으면 언론도 관객들도 관심을 보이질 않아요. 영화와 뮤지컬은 계속 규모가 커지고 있고, 한편에서는 OTT가 있어서 집에서도 손쉽게 이야기를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 오늘 꼭 보자고 하신 이유가…

파우스트 박사 : 이것 때문이네. 내가 쓴 ‘기후 시나리오’인데, 이걸 자네 극장에 좀 올려줬으면 해서 보자고 했어요. 극장 문 닫는 것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고. 시나리오는 극단의 작가 선생이 손을 좀 봐야 할 거예요.

단장 : 기후… 시나리오요? 기후 쪽에 여러 방면의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사인류학 분야도 같이 하시는군요.

파우스트 박사 :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나 기온 상승폭으로 미래 예측하는 그런 시나리오가 아니라 연극 ‘시나리오’네. 음… 자네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장 : 그야… 이산화탄소 아닌가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서 지구가 더워지고 그래서 이상기후가 더 많이 발생하고 생물종이 멸종하고…

파우스트 박사 :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야. 증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이산화탄소가 전부도 아니고 말이야. 메탄이나 오존, 이산화질소와 프레온가스 같은 다른 온실가스들도 있으니까. 기후변화의 원인은 자네가 극장 문을 닫으려고 하는 현재 상황의 원인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단장 : 네?

파우스트 박사 :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 지 얼마나 될 것 같나?

단장 : 반 세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 2] 제1회 세계기후회의. 1979년. (출처 : climatechronology.org)

파우스트 박사 : 과학적으로 합의를 본 때부터 따지면 그 정도 되겠구만. 세계기후회의가 처음으로 열린 게 197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였으니까. 저 사진이 그때 찍은 거야. 당시 내 선생님을 따라갔었지.

2024년이 되면 현재 우리가 ‘온실효과’라고 부르는 개념이 세상에 나온 지 200년이 돼요. 자네 푸리에 알지?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였던 조제프 푸리에(Joseph Fourier, 1768-1830)가 지구 온도가 몇 도일지 어느날 궁금했던 거야. 그래서 계산해보다가 지구의 대기를 이루고 있는 기체가 태양열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지구 온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지. 그게 1824년 일이야.

그 후 미국의 물리학자 유니스 뉴턴 푸트(Eunice Newton Foote)가 1856년에,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존 틴들(John Tyndall)이 1859년에,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가 1896년에 이산화탄소가 일으키는 온실효과를 확인했다네.

단장 : 그럼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원인이 맞네요?

파우스트 박사 :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니까. 왜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는지를 봐야지. 특정한 기체들이 대기 중에서 태양열을 붙잡아 지구 대기 기온을 높이는 것은 자연의 물리 법칙이에요.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지금과 같이 살기에 딱 맞는 환경을 만들어낸 거야. 온실효과가 없으면 인류 뿐만 아니라 현재 지구상의 생물들 대부분은 살아갈 수가 없어요. 굉장히 힘든 환경에 처하게 되거나.

중요한 건 우리가 온실가스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그것을 멈추지 못하는가야.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의 생존에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에 국제적으로 합의하고도 반 세기가 넘도록 말이지. 오히려 더 심각해졌지 않나? 그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봐야 하는 거야. 그런 것을 원인이라고 하는 거지.

단장 : 온실가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화석연료 아닙니까, 선생님? 그리고 대규모로 공장식 가축 사육을 하면서 메탄 발생량을 늘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과 토양을 파괴해서 흡수원을 없애고… 하지만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면 화석연료도 마찬가지로 근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파우스트 박사 : 이제 말을 알아듣는군. 일부 거대 기업들은 우리가 화석연료를 이렇게 태우면 기후가 붕괴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수십 년 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철저하게 감추었어. 오히려 기후부정론을 퍼뜨리고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고 기후대책 반대 운동을 노골적으로 했지.

단장 : 엑손 모빌 말씀이시군요, 선생님. 2015년에 그 사실이 폭로되면서 엄청난 파장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대단한 과학자들이에요. 2019년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415ppm이 될 것이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두 배로 증가하면 2050년 지구 대기 평균 기온이 1~3도 높아질 거라고 1982년에 이미 정확하게 예측했지 않았습니까?

[그림 3] 2019년 10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공개된 엑슨모빌 1982년 내부 문건. (출처 : 한국일보. 소스 : 미 정부감독개혁위원회 홈페이지)

파우스트 박사 : 그런데 말이야, 왜 막으려 하지 않았냐는 거야. 왜?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야.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봐야해. 문제는 이산화탄소가 아니라는 것이네. 화석연료도 아니야. 고갈되지도 않고 환경오염도 시키지 않는 ‘청정’ ‘재생가능’ 에너지를 사용해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한다면 문제가 없을까?

단장 : 저… 선생님. 이 기후 시나리오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는 건가요? 

파우스트 박사 : 아, 그렇지. 우리가 지금 기후 시나리오 얘기를 하고 있었지. 자, 좀 자세히 들여다 보자고. 우리가 현재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당장 10년 안에 전세계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2050년까지 0으로 만들어야 해. 그걸 탄소 순배출 제로, 넷-제로 이렇게 부르지.

우리는 지금 이 일에만 몰입하고 있어.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일군 거대 기업들, 도시 시스템 그리고 자본주의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은 뒤로 빼놓고 온실가스만 두들기고 있는 거야. 온실가스를 줄이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식이지.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성장에 의존한다는 걸 명심해야 해. 우리는 모두, 좌파든 우파든 동일한 성장 논리 위에 있어.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성장해야한다는 원칙 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도 그 테두리 안에서만 하고 있는 거야. 자네는 성장이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하나?

단장 : 성장…이 목표가 될 수는 없죠.

파우스트 박사 : 그러면 무엇이 목표가 되어야 하나?

단장 : 아무래도 삶과 관련이 있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삶’, ‘의미 있는 삶’, ‘보람된 삶’ 이런 거요.

파우스트 박사 : 성장이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야.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 성장이 필요하다는 논리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소득이 증가하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말은 절반만 맞아. 소득이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삶의 질, 삶에 대한 만족도와의 상관관계는 사라지네. 

[그림 4-1] 소득과 예상 수명 사이의 관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출처 : The Geological Society)
[그림 4-2] 소득과 삶의 만족도 사이의 관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출처 : The Geological Society)

단장 : 그러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선 성장이 복지나 교육같은 삶의 질과는 무관한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좋은 삶’에 필요한 부를 일구기 위해서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파우스트 박사 : 둘 다 맞는 얘기야. 애당초 우리가 잘 먹고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성장이라는 개념이 필요가 없어. 우리가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무한히 더 큰 극장, 더 화려한 무대, 더 큰 영화사나 OTT 회사가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유야. 결국 거대한 몇 개의 극장 소유주와 영화사, OTT 회사만 남을 뿐이지.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만 ‘소비’할 수 있게 되어가는 것이지.

단장 :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죠? 우린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선생님?

파우스트 박사 : 그래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봐야 하네.

단장 : 과거요?! 선생님께서도 과학기술을 부정하는 낭만적 생태주의자이신 건가요?

파우스트 박사 : 낭만적 생태주의에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네. 모두 각자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야. 역사적으로 보면 나올 만한 이유가 있었고 우리는 그 이유와 배경을 편견없이 이해한 다음 가야할 길을 바로 찾아가면 되는 거예요.

자, 잘 듣게. 내 말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 ‘성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왔는지 과거 역사 속에서 차근차근 찾아보면서 그 논리를 파헤쳐보자는 거야. 현대 문명과 현대 인류의 본질이 바로 그 안에 있기 때문이네. 무턱대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이 길로 가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우르르 몰려다녀서는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도 피폐해질 수 있어요. 죄없는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과학은 꼭 필요하네. 과학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겠나. 자네 2019년에 과학자 15,000명이 GDP 성장에서 벗어나라고 세계 정부에게 경고하는 논문이 발표된 사실 알고 있나? 그 논문에는 1979년부터 당시까지 인구, 출생률, 육류 소비량, GDP, 온실가스 배출량, 화석연료 보조금에서부터 온실가스별 배출량 증감 추세 등 29가지 부문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잘 제시되어 있다네. 과학이 아니라면 기후변화가 무엇때문에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밝히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야.

[그림 5-1] 인류 활동으로 인한 전지구적 변화 (1). 1979~2019. (출처 : BioScience, Vol 70, Issue 1. 2020)
[그림 5-2] 인류 활동으로 인한 전지구적 변화 (2). 1979~2019. (출처 : BioScience, Vol 70, Issue 1. 2020)

단장 : 그런데 연극으로 선생님의 역사 프로젝트를 하시려는 건가요? 지금 주신 시나리오를 보니 제1막이… 



“유토피아로 간 베니스의 상인”이라고요?

파우스트 박사 :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시작해봤어요. 우리는 자본주의에 아주 익숙해서 그 체제가 인류 사회의 초기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아. 그건 우리가 시장이나 교환같은 것과 자본주의를 혼동하면서 일으키는 잘못이야.

자본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진 체제야. 상당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많은 에너지를 들여 만들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농민들의 반란과 무장 투쟁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지.

하지만 유럽의 귀족들과 교회, 부르주아같은 지배층들은 멈추지 않고 농민과 노동자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던 공유물을 자신들 개인의 재산으로 바꾸는 작업(인클로저; enclosure)을 수백 년 동안 해왔어. 처음에는 유럽에서 나중에는 인도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까지 그리고 이제는 미래 세대의 몫까지 가로채 인클로저* 하고 있는 거야.

단장 : 선생님, 이제 단원들 만나러 갈 시간이 다 돼서요. 일어나봐야겠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단원들과 같이 읽고 얘기를 좀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파우스트 박사 : 어… 알겠네. 하여튼 토마스 모어는 인클로저 사업이 한창이던 영국 헨리 8세 시대에 자신의 책 <유토피아>에서 그 사업을 비판했는데 그 부분을 좀 잘 살펴봐주게. 게다가 그 책을 쓸 당시 모어가 플랑드르 지역으로 간 것도 영국의 양모사업 때문이야. 무역 분쟁을 해결하려고 파견된 사절단에 모어도 포함돼 있었던 거지. 농민들에게서 뺏은 농지에 지배층들이 양을 길렀거든.

<베니스의 상인>은 당시 사회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등 남쪽의 유럽과 북유럽 한자동맹 사이의 국제 무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메리카 대륙까지 뻗어간 제국주의가 어떻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이야기에 끼워넣었네.

작가선생과 의논해보고 내 연락처도 전달해주게. 같이 시나리오를 고치면 괜찮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거야. 요즘에는 기후 얘기를 넣으면 기본 장사는 되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걸세.

서막 끝.

글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기후극장”은 매월 1회 업로드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제 1막 “유토피아로 간 베니스의 상인”입니다.


참고문헌

  •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____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2021. 블랙피쉬.
  • <적을수록 풍요롭다> 제이슨 히켈. 2020. 김현우, 민정희 옮김. 2021. 창비.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I-1. 세계의 시간 上> 페르낭 브로델 지음. 1986. 주경철 옮김. 1997.(9쇄 2021). 까치.
  •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1516. 박문재 옮김. 2020. 현대지성.
  •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1596. 최종철 옮김. 2010. 민음사.
  • 본문에 인용된 논문과 기사는 웹사이트 링크로 연결해두었습니다.

*본문 중에 고유명사 ‘인클로저’를 보통명사 인클로저로 의미를 확대하여 미래세대의 몫까지 빼앗아간다는 뜻으로 표현한 구절은 제이슨 히켈의 책 <적을수록 풍요롭다>의 1장에 나온 내용을 고쳐쓴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