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5)누구의 책임인가: 화석연료 기업, 기후변화 범죄학, 신자유주의, 정치적 복합성, 기후부정과 외면


녹색아카데미 웹진의 기사를 녹색문명공부모임(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맞추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다룰 책이나 주제에 관한 내용을 미리 소개하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모임을 좀 더 알차고 풍성하게 운영해보려는 취지입니다.

지난 5월 모임부터 7월까지 조효제선생님의 <탄소 사회의 종말>을 읽을 동안에는 이 책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나 관련 기사, 연구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앞서 네 차례의 글을 통해 기후위기가 어떤 위기인지, 기후과학은 어떻게 탈인간화 되었는지, 사회학적으로 기후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기후위기의 식민 지배적 기원과 국익 경쟁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은 다섯 번째 글로 <탄소 사회의 종말> 2부, 누구의 책임인가 중 화석연료 기업과 신자유주의, 기후 부정 등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
<탄소 사회의 종말> 시리즈 모두 보기 링크
*대문 그림 출처: Climate Accountability Institute


1. 누구의 책임인가  : 화석연료 기업들과 기후위기 범죄학

(1)국가 단위의 접근방식으로는 화석연료 기업의 기후위기 책임을 물기 어렵다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법은 대체로 국가 중심, 국가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화석연료 기업들이 뒤에 숨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화석연료 기업들, 특히 탄소 메이저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익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만큼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있는지 정확하게 따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들 탄소 메이저는 자신들의 책임은 교묘하게 은폐하고, 개개인들에게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돌리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Monbiot, 2019).

[그림 1] 탄소 메이저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비교. 1810~2017.(출처: Heede, 2014 / Climate Accountability Institute / Press release)

이들 탄소 메이저 기업은 주로 화석연료 기업, 시멘트와 철강 기업 등입니다. 1751~2010년 260년 동안 배출된 전 세계 온실가스 중 63%를 90개의 ‘탄소 메이저’들이 배출했습니다. 또한 이 기간 중 산업 활동으로 배출된 온실가스 중 절반 이상이 1984년 이후에 나온 것입니다.

196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개 회사가 전체 온실가스의 3분의 1이상을 배출했습니다. 이들 20개 기업 중 12개가 국영기업이고, 나머지 8개는 민간기업입니다. 탄소 메이저들의 기후변화 책임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드러내야 하며, 개별 기업 주체들에게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물어야 투자자들이 정확한 타깃을 정해 사회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림 2]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2개 탄소 메이저 기업. 2017년. (출처: Climate Accountability Institute)

(2)기업들의 반기후 로비와 기후부정

엑손 모빌은 1982년 당시 사내 연구보고서 결과,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고온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하지 않고 비밀에 붙였습니다(Inside Climate News).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지구고온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호도하고, 기후대책을 방해하고 늦추기 위해 대중적인 홍보를 하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 화석연료 업계는 1989년 ‘전 지구적 기후동맹'(GCC)를 결성하고 기후대책 반대 운동을 시작했고, 여기에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BP, 코크 형제 기업 등도 가담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와 여론이 나빠지고 회원기업들이 줄어들자 2001년 이 단체는 해산되었습니다.

[그림 3] 기후변화에 대해 엑손이 알고 있었던 사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엑손의 과학자, 관리자, 이사들은 기후변화의 개념과 잠재적 영향들을 메모와 편지들을 통해 논의했음을 Inside Climate News의 8개월 동안의 취재로 2015년 밝혀졌다. (출처 : Inside Climate News)

반기후 로비에는 보수 싱크탱크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1972~2005년 사이 영어권에서 발간된 기후변화 회의론 관련 도서 142권 중 92%가 보수 싱크탱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화석연료 기업들의 방해를 ‘약탈적 지연’이라고 하는데, “지속가능하지 않고 불공정한 시스템으로부터 돈을 벌 목적으로, 꼭 필요한 변화를 가로막거나 늦추는 행위”를 말합니다(책p.114).

화석연료 기업들은 가짜로 기후행동 조직들을 만들어 교묘하게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하는데, 이들은 ‘기후변화 대항 운동’이라는 캠페인도 만들었습니니다(Lawrence, Pegg & Evans. the Guardian. 2019). 엑손모빌, 로얄더치셸, 셰브론, BP, 토탈 등은 <파리 협정> 이후 3년 동안 기후행동을 왜곡하고 저지하는 로비와 홍보활동에 10억 달러 이상 썼습니다.

(3)화석연료 기업들에게 기후위기 책임을 물을 근거는?

화석연료 기업들에게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물어야 할 근거는 이렇습니다.

  • 이들은 인지하였으나 알리지 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 초기에(1990년대 초)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었으나 조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점 이후에 대해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음에도 행동하지 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 기후대책과 기후행동을 방해, 지연, 부인한 잘못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활동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에 대해 탄소 메이저들은 (1)탄소를 제거할 의무를 지니며, (2)기후문제에 대해 배상할 의무가 있습니다.

(4)기후변화 범죄학

화석연료 기업들의 사업활동과 기후정책 방해, 지연 등을 범죄로 보는 기후변화 범죄학 분야가 있습니다. 폴리 히긴스(Polly Higgins)은 2010에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이하 로마규정)의 부칙에 생태살해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키자고 유엔법률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롭 화이트(Rob White)는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 범죄학』라는 녹색 형사정책 책을 썼습니다. 여기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범죄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현재 세계의 지배 권력과 자본들의 활동을 ‘정상적’인 사업 활동으로 포장하는 것.
  • 국가-기업 범죄 연계. 거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원유, 천연가스, 석탄, 벌목 등 자연자원을 개발하면서 고의적, 조직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살해.
  •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범죄 행위들을 부인하고 기후행동을 방해하고 중화시키는 활동.

2. 누구의 책임인가 : 신자유주의의 증폭효과

(1)신자유주의는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킨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확산되어 왔으며, 기후위기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국제무역으로 교통과 운송이 대폭적으로 증가했는데, 특히 항공 분야의 증가폭이 큽니다. 산림 벌채와 전용이 증가했고 도시가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토양이 유실되고, 생물종 서식처 파괴되고, 생물종다양성이 감소하고, 신종감염병이 증가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극심한 탄소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옥스팜과 스톡홀름환경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소득 최상위 1퍼센트 인구의 탄소 배출량(1990~2015)은 소득 하위 50% 인구의 배출량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소득 상위 10퍼센트의 배출량은 전체 인구가 배출한 양의 52%였습니다.

[그림 4] 소득에 따른 탄소 불평등이 심각하다. 상위 10%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52%.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서도 불평등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출처 : Oxfam)

(2)신자유주의의 기회비용

신자유주의는 기후위기를 심화시켰고, 화석연료 사용과 신자유주의 경제 사조 등장 시기가 일치하면서 대응할 기회도 박탈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집단적인 대처나 정부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합리적인’ 소비자로 반응하도록 유도하고 널리 퍼뜨렸습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신자유주의 환경 거버넌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상품처럼 취급하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시장의 인센티브 매커니즘을 활용하여 감축하는 식으로 논의하는 것입니다. 반면 의무 규정을 두고 규제하려는 방식은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고 금기시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모순이 깔려 있습니다. ‘탄소 자본주의’가 불러온 위기를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만든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이미 모순적이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3. 누구의 책임인가 : 기후위기의 정치적 측면

(1)기후위기의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가 왜 그렇게 어렵고 복잡할까? 심각성에 비해 왜 그렇게 필요한 정책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까?  기후위기 문제는 왜 큰 문제이고 왜 복잡한 문제일까?

기후위기는 개인, 모든 인구, 지구 전체와 관련되어 있고,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산업, 경제, 고용, 노동 등 다른 의제들에 비해 환경 문제는 언제나 순위에서 밀립니다. 당면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시급성도 떨어지고 가치관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환경문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인과 고리도 불명확하고, 시공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복잡해서 명확하게 문제를 인식하기도 쉽지 않아서 더욱 해결이 어렵습니다.

법적 관할권과 책임 소재의 문제도 있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체제는 근대 국가의 기본 원칙으로 작동해오고 있는데, 자국 영토 내 주권적 통치 원칙을 말하며, 자기 나라 일은 자국 정부가 최종적 권위를 행사하고 결정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기후위기와 사이버 보안 문제에 있어서는 이 체제로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2)무임승차의 문제와 정치적 병목 현상

현재 국제적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각 국가들이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국가에게만 책임을 돌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다(국가 귀책의 한계). 해당 국가가 책임을 지지않고 조약을 어긴다한들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집합적 행동의 문제도 있습니다. 기후위기처럼 한 개인이나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합의에 도달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해나가기가 어렵다는 문제입니다. 당위는 인정하지만 나, 우리나라 말고 다른 사람 다른 나라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무임승차의 문제입니다.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속성상 유권자들에게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민들의 기후 행동이 더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림 5] 한국사람들은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걱정하고는 있지만, 실제 대응에 있어서는 비교적 소극적이다. 설문 조사 ‘한반도 기온상승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방향’. 국회미래연구원, 2019, p.49. (출처: 대한민국국회)

에너지산업, 발전산업은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는 매우 중요한 정책 영역이고 영역내의 인사들에게는 안정적인 큰 이익 창구이며, 에너지와 정치 분야는 공고하고 큰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대중과 언론이 이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 영역의 영향력을 줄이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만큼 더 관심을 가져야하는 분야입니다.

기후위기 문제는 행동을 하는 시기와 그 행동에 대한 효과 혹은 보상이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행동에 대한 동기 부여가 적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 행동의 효과는 불확실한데 내가 양보하는 이익은 확실하다는 것이죠. 또한 기후위기 해결책들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부담이고 딜레마입니다.

(3)기후협상에서 일어나는 어려움과 갈등

기후변화 문제가 중요한 국제정치 이슈가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입니다. 『우리 공동의 미래』도 이때 나왔고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관점도 이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국제 기후변화 레짐’이라고 통칭되는 제도, 관행, 준칙 등이 만들어져 갔습니다. 기후변화 레짐은 처음부터 갈등과 협상의 장이었고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크고 팽팽했습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국제정치에서 핵심적인 두 가지 갈등이 있습니다.

  • 북반구 선진국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 : 미국 vs. 나머지 서구 국가들. 불화의 쟁점은 온실가스 감축 규모, 정책 수단.
  • 북반구 vs. 남반구 : 각 나라의 주권은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 선진국에게 역사적인 책임을 얼마나 물을 것인가.

기후협상 초기에는 기후변화 논의들이 북반구가 모의하는 ‘환경 식민주의’라는 음모론까지 있었습니다. 남반구의 ‘먹고살기 위한 배출'(survival emission)과 북반구의’흥청망청 쓰는 배출'(luxury emission)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992년 리우 회의 때, “공통의 그러나 차등화된 책임”(CBDR) 원칙이 나와, 남반구의 사정을 감안해야하는 것으로 정리되기는 했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더 먼저 더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킨 나라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인도, 중국 등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등 기후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4)「파리 협정」의 기대와 한계

유엔의 「기후변화협약」을 바탕으로 장기간 국제적인 협상을 해왔고 그 결과를 국제법의 형태로 공식화한 것이 「파리 협정」(2015)입니다. 그 내용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2도 이내로 억제시키고, 기후재난 피해국들의 적응을 돕고,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파리 협정」도 자국 중심의 논리라는 비판이 큽니다. 선지국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는 약화시키고, 당사국들의 공통 합의를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는 보편주의에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토의정서 체제와 비교해보면, 교토체제는 국제적 합의를 각 나라들이 이행하는 하향식이고, 파리 체제는 상향식 메커니즘으로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기한, 수단 등 모두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진행합니다. 이것이 ‘국가결정기여'(NDC)라고 하는데, 5년마다 NDC 이행을 국제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입니다.

4. 누구의 책임인가 : 태도의 뿌리와 외면하는 심리

인간 태도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앞서 다룬 기후정치는 집합적 행동 영역의 문제였습니다. 개인들의 기후행동에는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줄까요? 기후위기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뿌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크게 이념적 분열, 한국의 경우 성장주의적 가치관, 심리적 장벽들, 기후위기 부인, 체념, 허무주의, 기후 현실주의 등이 있습니다.

(1)인간의 태도에는 뿌리가 있다

시민이든 정치인이든 문제를 알고도 기후행동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 기후변화에 대한 심리적 거리잠에는 ‘불확실성 거리감’과 ‘사회적 거리감’이 있다. 한국인들은 전자는 적게 후자는 많게 느껴서 기후행동에 덜 나선다. 사회적 거리감이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과 사회적으로 거리가 먼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 ‘편향된 동기의 추론’. 사실(팩트)과 견해를 구분하는 경계가 분명치 않다. 기후위기처럼 객관적인 사실의 경우에도 자신의 세계관으로 걸러져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중요도가 다르다.
  • ‘정보 결핍 모델’은 지식과 정보가 충분하면 행동에 나설 것이라 보지만, 지식의 인과적 모델에 따라 사람의 인식과 행동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외부로 드러내는 태도는 피상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그 내면에는 사람마다 ‘태도의 뿌리’가 있는데, 이는 세계관, 도덕적 잣대, 음모론적 시각, 이해관계, 정치 이념, 가치관, 개인과 집단 정체성, 두려움에의 민감성 등으로 이루어집니다(p.135). 이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져있는가에 따라 기후변화를 인식, 해석하는 방식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특히 개인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보존하려는 열망이 강해도 ‘객관성’이 손상됩니다. 자신의 집단, 그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경우, 사실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팩트의 양극화’라는 정치적 문제도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확증편향 문제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애초 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가”라고 물어야할 지도 모릅니다.

(2)이념적 분열과 한국인의 성장주의적 가치관

기후변화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 중에 정치적 우파, 보수주의자,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이념적인 신념으로 과학을 폄하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합니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은 2010년대 초반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그 증가 폭이 적었습니다.

옥스퍼드대학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40개국, 시민 8만 명 대상으로 기후변화를 얼마나 염려하는지 조사한 결과,(「디지털 뉴스 보고서 2020」 p.52) 전 세계 인구의 69%가 ‘극히 심각하다’ 혹은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고, 한국의 경우는 70%로 세계 평균과 비슷했습니다.

[그림 6] 퓨 리서치센터 조사. 2019. 민주당과 공화당 각 정당 지지자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 비교. (출처 : Pew Research)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이념 지지층 사이에 기후변화에 대한 시각 차이가 큽니다. 미국 민주당은 염려하는 사람들이 89%, 공화당은 18%였고, 스웨덴의 경우 진보 지지층은 75%, 보수 지지층은 26%로 의외의 큰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의 뿌리는 상당 부분 ‘경제 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 수준에 비해 가치관(자기표현, 행복 추구, 삶의 질 중시 등)이 따라 진화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국은 성장주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야하며, 함께 살아가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서는 탄소 의존형 경제성장 모델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3)기후행동에 대한 심리적 장벽들

기후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심리적인 반응을 보이는지가 기후행동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주요한 심리적 장벽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 정보 결여.
  • 너무 큰 문제, 불확실성. 과학자들의 퍼블릭 언더스탠딩 기술의 문제.
  • 심리적 반발. 자유를 제한할 것 같고, 익숙하지 않고,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것 같고, 기존의 신념을 바꿔야할 것 같다.
  • 냉담과 무관심(소극적 무관심, 공격적 무관심)
  • 행동 효과의 회의적 인식 : 문제를 알아도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왜소하게 느끼고 한계를 절감. 자신의 행동이 효능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 포기, 무기력, 동기 상실.
  • 동기화된 망각 : 행동이 효과 없을 것이라고 회의하면 문제 자체를 외면하려고 한다. 부인, 자기기만.
  • 저비용 변화 : 뭔가 해야될 것 같아서 하기는 하는데, 효과는 적고 겉으로는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된다.
  • 사회적 비교와 형평성 인지 : 왜 나만 언제나 손해를 보는가. 행동을 하고 싶어도 나의 희생이 더 크고 부담이 더 크다고 느끼면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심하다.
  • 단기적 인식, 현재 편향 : 생존을 위해 언제나 직접적이고 눈앞에 보이는 위험에 더 크게 반응하고 대응하려는 진화적 특성.
  • 공간적 할인 :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현상이라고 인식. 지구, 전 세계, 대기권… 이런 말들은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 무관여 태도 : 현재 자신의 삶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버린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쟁적 구도를 깨고, 사회적 보살핌이 제도화되고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
  • 기후변화를 ‘정상화’하는 태도. 심리적 정상화는 슬픔, 위험, 금기 등에서 심리적으로 빠져나오려는 시도로, 여기에 맞춰 살겠다는 대응 기제.
  • 녹색 죄책감, 기후 불안, 생태 불안, 생태 불안 장애. 기후변화를 너무 염려하는 사람들의 태도. 분노, 좌절, 죄책감, 무력감, 슬픔, 상실감, 트라우마.

(4)기후위기를 부인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가장 큰 장벽이다

기후변화 부인은 기후위기 논쟁에서 집합적, 개인적으로 가장 흔히 나타나는 반응 중의 하나이며, 방관 행위와 연결됩니다. 인권학자 스탠리 코언(Stanley Cohen)은 인권침해 사건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인 현상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 문자적 부인. 어떠한 사실 자체를 잡아떼는 부인. 지구고온화는 가짜다, 좌파와 과학자들과 선진국의 음모다.
  • 해석적 부인. 사실은 인정하면서 의미를 왜곡. 기온은 올랐지만 인류의 책임은 아니며 자연적인 현상일 뿐이다.
  • 함축적 부인. 사실도 인정하고 의미도 인정하지만, 책임을 지지않고 행동하지 않는다. 나더러 어쩌라고.

여기에 최근 악성 부인(Michael E. Mann)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는 최근에 등장한 더 교묘한 형태의 부인으로, 화석연료 기업들의 로비같은 것을 말합니다. 근본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보다 개인의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메시지를 만들어 유포시키는 방식입니다(육류 소비를 줄이자, 비행기를 덜 타자,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자, …).

기후위기 부인 현상과 과거 나치 홀로코스트 사건 때와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습니다. 차이라면 기후위기의 경우, 그 피해와 참상이 더 클 것이라는 점입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연합국 측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폴란드에서 확실한 정보가 도달하고 나치 통신을 감청해서 대량 학살을 확인한 후에도 연합국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기밀로 취급하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동유럽 주민들도 유대인 학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나치에 부역하거나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모른 척 했습니다.

홀로코스트가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암묵적인 인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제도화된 살상이었던 것처럼, 기후위기 역시 보통 시민들로부터 정치인, 기업가들까지 모든 사람들의 동의 하에 차근차근 진행되는 ‘제도화된 죽음의 행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탄소 사회의 종말>(조효제, 2020)의 2부 중 10~13장을 요약한 것입니다.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알림
댓글이나 의견은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그룹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연철학 세미나 게시판과 공부모임 게시판에서 댓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