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 지속가능발전목표 / 파리협정문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발간된 지 6년이 되었습니다. 회칙이 발간된 해에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의제2030)와 파리협정문도 발표되었습니다. 유엔의 일정을 겨냥해 교황청에서 메세지를 보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약 한 달 후에는 영국에서 제26차 UN 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26)가 열릴 예정입니다. 교황청은 이 행사에 맞춰 지난 10월 4일 “신앙과 과학: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을 향해” 모임을 종교지도자들, 과학자들과 함께 가지고 공동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교황청은 몇 달 동안 종교인사들,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이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다음 글은 『찬미받으소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회칙을 지속가능발전목표, 파리협정문과 비교한 글을 함께 정리한 것입니다. 회칙을 읽으실 때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1. 회칙의 뜻과 발간 배경

‘회칙'(encyclical)이란 교회의 가르침 등을 담아 주교 모두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교황의 편지를 말합니다.  고대 로마 교회에서 특정 지역의 교회 모두에게 보내는 회람 편지(a circular letter)를 부르던 말로 라틴어 ‘encyclios’에서 왔고, 원래는 ‘circular’라는 뜻의 그리스어 ‘enkyklios’가 라틴어화 된 것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2015년 5월 24일에 공식적으로 출판되었으며, 라틴어로 쓰여진 다음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아랍어로 번역되어 배포되었습니다.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1181 or 1182~1226)의 “피조물의 찬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림 1] 베바그나 교외에서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출처: wikipedia)

“프란치스코 성인은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 『찬미받으소서』 §1.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가 발간된 2015년에는 환경,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서 두 개가 더 발표되었습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9월에 발표)와 파리협정문(Paris Agreement, 12월 채택)입니다.

먼저 『찬미받으소서』가 발간된 시점이 2015년 5월인 것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이 그해 9월과 11월에 예정된 유엔총회와 당사국총회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종교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이 “신앙과 과학: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을 향해”(Faith and Science: Towards COP26) 모임을 가지고 공동호소문을 발표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COP26은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교황의 회칙은 내용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의도적으로 선택되어, 기후위기와 관련된 국제적인 노력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대중의 관심을 집중되게 했습니다. 전세계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80%가 종교적인 신념에 달하며 이러한 종교지도자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영상 1] “신앙과 과학: COP26을 향해” 2021년 10월 4일에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과 종교지도자들, 과학자들의 모임. (출처: Vatican news)

2. 『찬미받으소서』의 구성과 내용

『찬미받으소서』는 기후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겨냥하고 있지만 다루는 내용은 훨씬 더 넓습니다. 전면에 현재 가장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기후위기가 전면에 내세워지고, 더 근본적으로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의미와 생존과 함께 인류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회칙의 제1장에서 기후위기와 함께 물 문제, 생물 다양성, 인간의 삶과 사회 붕괴 현상, 불평등에 대해 서술하면서 ‘우리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제2장 창조의 복음에서는 신앙의 의미와 역할, 지구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합니다.

제3장에서는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 지배 패러다임, 이 패러다임의 세계화, 인간 중심주의 등을 지적합니다.

제4장에서는 “통합생태론의 다양한 요소들에 관한 성찰을 제안”합니다. 통합생태론은 공동선과 분리될 수 없으며, 공동선은 미래 세대까지 관련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세대간의 정의’를 설명하면서는 공리주의적 원칙이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받은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도 속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개인적 유익을 위한 효율과 생산성”만이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5장에서는 우리 인류가 “자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는 주요한 대화의 길들”에 대해 다룹니다. 국제 정치에서, 국가적 지역적 정책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치와 경제가, 과학과 종교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에서는 앞 장에서 언급했던 방향 재설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며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설명합니다.

3. 『찬미받으소서』와 지속가능발전목표

『찬미받으소서』를 읽다보면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말씀이 온화한 어조로 그러나 직설적으로 설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나 경제 영역이 아니라 종교 영역이므로 얼마든지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67년에 발표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Populorum progressio』(the development of peoples)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회칙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이 부자 나라들을 따라가야 하고, 진정한 인간 발전(혹은 개발; development)을 추구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황의 회칙에서 환경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가 처음입니다.

독일의 ‘부퍼탈 기후, 환경, 에너지 연구소’의 볼프강 작스 박사는 『찬미받으소서』가 현재 인류에게 어떠한 가르침과 방향을 알려 주는지 왜 중요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문서와 같이 보아야 한다면서, 그해 나온 ‘지속가능발전목표’과 비교 분석합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2030년까지 15년 동안 세계의 정치적 의제를 이끌 유엔의 프로그램으로, 2015년 제 70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아래 표와 같이 17개 목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림 2] UN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가지. (그림 출처 : 기후변화행동연구소/UN General Assembly(2015), 자세한 설명을 참고할 수 있는 곳 : 지속가능발전포털)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빈곤 종식, 기아 종식에서부터 목표 달성을 위한 파트터쉽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이며 광범위합니다. 2030년까지 이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169개 세부목표가 더 있고, 이러한 목표를 포함하는 “의제2030″의 목적은 인류와 지구의 평화와 번영입니다.

회칙 발간 당시 가디언지는 지속가능발전목표가 너무 방만하고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면서 목표로서는 부적격이라는 비난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이 목표들과 “의제2030″이 소비로 만드는 경제 성장을 찬미하고, 빈곤과 불평등을 그저 존재하는 현상으로만 취급하면서 어떠한 원인도 없는 것처럼 다룬다고 비판했습니다.

작스 박사의 2017년 논문(이하 내용은 작스 박사의 논문을 주로 참고하여 요약한 것입니다)은 두 문서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점으로, 20세기를 채웠던 ‘발전'(혹은 개발; development)에 대한 열광이 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생물권은 위험에 처해 있고, 부자와 빈자의 격차는 더 커져가고, 세계는 위기 상태인 현 시점에, 기존의 지구경제 모델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두 문서 모두 인정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작스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의제2030″은 현재의 지구경제모델을 고쳐 쓰려고 하는 데 반해,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현재의 경제 헤게모니를 밀어내고 모든 수준에서 더 윤리적인 책임으로 채우기를 요청합니다. 또한 “의제2030″은 사회민주주의적 색채를 지닌 녹색경제를 그리는 데 반해, 교황의 회칙은 생태적인 연대를 지향하고 문화적인 변화에 기반을 둔 탈 자본주의 시대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이 논문에서는 ‘발전'(혹은 개발; development) 개념이 그 수명을 다했다고 말합니다. 발전은 20세기 국제 정치와 국가 경제, 환경 문제와 관련된 국제적 노력에서 언제나 중요한 목표였지만 지구를 위기로 몰아갔을뿐 덧없는 약속에 불과했다고 말합니다.

발전에 대한 시간정치학(chronopolitical; 정치적 결정과정에 대한 (미래)시간적인 시각과 관련된 것을 기술하는 용어), 지리정치학, 문명론적 정치학은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는 종국에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산업화된 문명이 열매를 모든 사회가 수확할 수 있다”는 약속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발전은 시간적인 개념이며 우리에게 미래로 약속의 실현을 미루려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교황의 환경 회칙은 이러한 발전 개념을 거부하고 탈-발전(Post-Development)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작스 박사는 발전 개념이 1990년대 이후로는 안보 개념과 결합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시기는 가난한 나라들을 구 산업화 국가들이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난 때입니다.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적 정치적 분쟁과 위기가 부자 나라들의 경제와 안보에 위험 요소(특히 난민 문제)로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작스 박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를 지속가능생존목표(Sustainable Survival Goals; SSGs)로 바꿔야 한다고까지 비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은 거의 모든 사안에서, 지금 현재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존재들, 빈곤과 불평등을 언급하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의 고통과 아픔을 드러내 확인시켜주고, 제1세계 국가의 역사적 책임과 현재의 생활방식에 원인이 있음을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회칙에는, 기존의 환경 관련 국제 협약이나 국제 정치에서 등장하는 “발전의 시간정치학”(the chronopolitics of Development)이 등장하지 않는다, “진보(progress)나 미래를 위한 약속들은 이 문서에 존재하지 않으며, 지난 2세기 동안 역사적 인식을 형성했던 시간의 화살은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작스 박사는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은 “시간의 화살”을 “공간 의식”(spatial consciousness)으로 바꿉니다. “현재의 지구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시간보다 공간이 더 중요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상공간과 지리적인 공간에서 사물들이 섞여있는 것이 이들이 시간적으로 늘어져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보이기 때문입니다.” 회칙의 부제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하여”(On care for our common home)에서 이러한 ‘공간 의식’은 더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회칙은 또한 자연에 대한 여러가지 위협과 인간의 생명에 대한 험한 말들이 넘쳐나는 것을 비판합니다. 또한 회칙은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 기울여야 하며 “관리보다는 치유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자연과 인간애가 파괴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공유하는 시스템적인 연결에 대한 불경이라고 봅니다”.

회칙이 자연에 대한 관계, 서로에 대한 관계, 자기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신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다고 작스 박사는 말합니다.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원자나 아원자 입자조차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구성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듯이, 생물종들도 우리가 결코 그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없을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유전 정보를 여러 생명체들과 공유합니다. 따라서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지식은 현실에 대한 폭넓은 전망에 연결되지 않으면 일종의 무지가 될 수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138.

여기에 소개한 논문을 쓴 볼프강 작스 박사는 ‘부퍼탈 기후, 환경, 에너지 연구소’의 명예회원이며, 독일 그린피스 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IPCC와 로마클럽의 멤버입니다. 저널 Development의 공동편집자이며, 슈마허 칼리지에서 강의했습니다.

4. 찬미받으소서 vs 파리협정문

『찬미받으소서』는 같은 해에 발간된 파리협정문과도 종종 비교되고 있습니다.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는 그의 책 『대혼란의 시대』에서 파리협정문을 『찬미받으소서』와 비교하면서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문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구성과 표현 방식도 상세히 대조하면서 파리협정문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파리협정문은 유엔의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협정으로 국제법적인 효력을 가집니다. 주요한 내용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가능한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고, 각국은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해 국제사회와 약속을 하고 실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림 3] 기후변화 현황. 앞으로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미래를 기온상승폭으로 나타내고 있다. (출처: CarbonActionTracker

아미타브 고시(이하 내용은 아미타브 고시의 책 『대혼란의 시대』의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한 것입니다)는 먼저 두 문서의 구성과 형식을 이야기합니다. 두 문서 모두 비슷한 과학적 사실과 동일한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구성과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파리협정문은 간결하고 명확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교황의 회칙은 화려하고 수사가 많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파리협정문은 산문도 아니고 운문도 아닌, 둘의 중간 정도 되는 아주 이상한 문서라고 아미타브 고시는 지적합니다. 파리협정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업, ‘기후 기업가'(climate entrepreneur), 억만장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바로 이 문서에 사용된 용어와 형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소망적이고 추측이 담긴 표현이 등장하는 쪽도 회칙이 아니라 파리협정문입니다. 파리협정문은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술(탄소 포집 저장 기술 등)이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고 그 기술을 쓰더라도 엄청난 토지와 비용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1.5도 목표 달성 수단에 그러한 기술을 포함 시킵니다.

『찬미받으소서』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기적같은 해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곤경을 이해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에 교회가 취한 입장에 대해 단호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을 비난합니다.

‘제한 없는 성장 개념’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우리가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주의 패러다임”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파리협정문은 성장 패러다임, 기술주의 패러다임이 가지는 문제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인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후변화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에서 사용 되는 언어와 양식이 단순 명쾌한 것은 전문 용어를 배제하고 열린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며, 회칙에 계속 등장하는 “배제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미타브 고시는 말합니다.

파리협정문에서는 빈곤을 “그 자체로 재정적 메커니즘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상태”로 보며, 정의와 연결짓지 않습니다. 반면 빈곤과 정의는 『찬미받으소서』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언급되고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회칙에서는 자연과 가난한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아야 하며, 빈곤과 정의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회칙에서는 빈곤을 분리된 요소로 취급하거나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지만, 사회 불평등에 대한 고려없이 생태적 이슈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생태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어야 한다.”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대한 논쟁에 포함함으로써, 지구의 외침과 가난한 자들의 외침을 동시에 경청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노스(north)와 글로벌 사우스(south) 사이에는 진정한 ‘생태적 채무 관계’가 존재한다.”

회칙은 우리 시대를 “진보와 인간의 능력에 대해 비합리적 확신을 품은 시대”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찬미받으소서』는 “‘인간의 자유는 무한하다’는 생각에 대한 문제 제기”임을 밝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녹색아카데미 웹진의 기사 “아미타브 고시 『대혼란의 시대』 – 정치“를 참조)

참고자료

“Pope Francis, faith leaders call for action ahead of COP26 climate summit” 2021. 10. 4. Claire Giangravé. The Washington Post.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and Laudato si’: varieties of Post-Development?” Wolfgang Sachs. 2017. Third World Quarterly 38(12).
“The pope v the UN: who will save the world first?” Jason Hickel, Martin Kirk, Joe Brewer. 2015. 6. 23. The Guardian.

글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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