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1-1. 왜 자연철학인가?


이 자료는 녹색아카데미 유튜브 ‘자연철학이야기’에서 나눈 대담 1-1을 정리한 것입니다. 자연철학세미나 2기 진도에 맞추어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전에 만들었던 대담 녹취록(링크 참조)은 내용 정리가 목적이기도 했고 급하게 작업하느라 읽기에 불편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대담의 특성도 더 살리고 삽화도 적절히 넣어서 이해와 재미를 높이려고 합니다.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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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1-1. 왜 자연철학인가?

목차

  1. ‘자연철학이야기’에 대하여
  2. 장회익, 나 자신에 대하여
  3.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은 물리학 강의인가, 철학 강의인가?
  4. 여기서 말하는 ‘철학자’란 어떤 사람인가?
  5. 왜 하필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인가?
  6. 물리학과 여타 다른 학문들 사이의 관계?
  7. 이 강의에서 말하는 ‘자연철학’이란?
  8. ‘통합적 심층적 앎’이란?
  9. 통합적이고 심층적인 앎을 추구하려면 박학다식 해야 하나?

1. ‘자연철학이야기’에 대하여

최우석 여기서 나누는 이 이야기는 2020년 경희대학교에서 장회익선생님께서 개설하고 강의하셨던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을 위해 진행한 대담을 옮긴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때문에 개강하기가 어려워져서, 공부에 도움도 되고 책을 읽어나가는 데 좀 더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보조자료를 마련하고자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장회익선생님과 대담을 같이 하는 우리는 장회익선생님과 오래 공부를 같이 해온 최우석(파시브기술연구소, 녹색아카데미)과 황승미(그림작가, 녹색아카데미)입니다.

아울러 장회익선생님과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같이 공부하는 몇몇 사람들의 모임인 ‘자연철학 세미나’가 있습니다. 코로나19때문에 못 모이고 있는데, ‘자연철학 세미나’ 분들에게도 이 대담이 도움되었으면 합니다.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은 어떤 강의인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어떤 책인지 장회익선생님의 소개 말씀과 배경 말씀을 듣고 1장의 내용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장회익 사실 대면해서 강의를 해야하는데, 다 알다시피 이런 사정이 생겨서 영상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오늘 두 분 선생님들이 함께 하셔서 이 강의에 도움을 주시게 돼서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금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지만 조금 더 부연해서 소개를 드리면, 최우석 선생은 환경교육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희귀한 존재로 파시브하우스 등의 특별한 기술을 연마해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또 황승미박사 역시 환경교육학 박사이고, 여러가지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이 책에 나오는 십우도 그림도 황승미박사가 그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많은 도움을 주실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강의는 직접 못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해서 두 분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좀 더 강의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대단히 유익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2. 장회익, 나 자신에 대하여

최우석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선생님께서는 어떤 공부를 해오셨는지, 앞으로 얘기를 나누겠지만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는 어떤 강의이고 이 강의를 하는 나는 누구다하는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장회익 물론 나는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리고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경력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한 30여 년 강의를 했고, 정년 퇴임을 한 후에 지금은(2020년) 경희대학교에 초빙교수, 공식적으로는 ES교수라고 하는데, 몇 년 째 일을 했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금년에도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이라고 하는 조금 희귀한 명칭의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그 명칭은 물론 내가 만들었고, 나도 작년에 처음 이 강의를 했어요. 작년에는 이 책이 나오기 전이라 초고를 가지고 강의를 했는데, 이번에는 책이 나왔기 때문에 훨씬 더 공부에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책 제목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이렇게 돼있는데요.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이제 우리가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궁금한 점을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최우석 선생님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있는 차원으로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모색하고 고민하시는 학자분들이 여러 분 계신데, 그 중의 한 분이 장회익선생님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강좌는 물리학이나 철학같이 어떤 한 꼭지를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큰 것들을 요구하는 강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 철학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근본적인 지적 세계를 펼쳐나가고, 조금 더 자기 삶의 근간이 될 만한 지혜를 찾고자 사람들에게,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발판이 될 만한 그런 강의를 열어주시는 선생님이다, 이렇게 저는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본 이야기에 앞선 사전적인 배경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책과 강좌 얘기를 좀 자유롭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은 물리학 강의인가, 철학 강의인가?

최우석 우선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 강의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이라고 강의 제목을 뽑으셨잖아요? 이 제목을 보면 철학도 나오고 물리학도 나오니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철학을 빙자한 물리학 강의인가? 물리학을 빙자한 철학 강의인가? 이렇게 좀 왔다갔다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리학 강의인가요? 철학 강의인가요?

장회익 배우는 주체는 철학자라고 했죠. 학생이지만 마음의 자세는 ‘내가 철학자다’ 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 공부의 주체가 중요한데 주체가 바로 철학자의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은 아무래도 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죠.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했을 때 꼭 알아야할 중요한 물리학의 내용이 뭐냐. 그 공부를 이번 학기에 시작해보자.

‘시작해보자’라는 말을 내가 썼는데, 이번 학기에 공부를 마치자는 뜻이 아니에요. 한 학기에 마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죠. 그래서 시작이라도 제대로 하고, 이번에 공부가 시작이 되면 앞으로 혼자서도 공부를 진척시켜서 언젠가는 만족스러운 단계까지 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 이 정도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4.여기서 말하는 ‘철학자’란 어떤 사람인가?

장회익 지금 이 강의 듣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교 1-4학년까지 있을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을 읽을 텐데, 내가 어떻게 감히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생각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철학자의 본 뜻이 뭐냐? 여기 앉은 두 사람, 본인들이 철학자라고 생각하나? (웃음) 지금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박사를 영어로 뭐라고 불러요?

최우석 Ph.D라고 하죠. Doctor of Philosophy였나요? (웃음)

장회익 Philosophy! 그러니까 철학 박사야. 철학 박사인데 철학자가 뭔지 모르면 큰일이지. (웃음) 얘기해보세요.

최우석 맞습니다, 박사는 다 철학박사죠. 저는 박사학위를 학문 박사다, 이렇게 나름대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사람인데, 진중하게 할 만한 나름의 자격을 갖추고, 여러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았다, 그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보면 철학은 진지하게 공부하기, 진지하게 생각하기 그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회익 그렇죠. 그게 첫째이고. 그만큼 폭넓게 이해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을 또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박사는 무슨 박사든간에 일단 Ph.D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쓰고 있죠. 그런데 사실은 두 사람이 그 값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웃음) 어쨌든간에 그런 의미로 박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그러면 철학이 뭐냐? 앎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것. 원래 서구에서 쓰는 필로소피라는 말은 ‘앎을 사랑한다’는 희랍어에서 나왔죠. 그래서 그 뜻이 제일 중요하죠. 진지하게 앎을 정말 사랑해서 추구하는데, 그런데 그런 표피적인 앎이 아니라 가장 심층적인 아주 깊이 있는 본질적인 것을 폭넓게 알고 싶다, 그래서 그것을 알아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은 Ph.D가 있든 없든 간에 일단 철학자로 보는 거죠.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 2학년이 와서 앉아있어도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 그런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은 철학자다, 그런 사람이라고 할 때 물리학에 대해서 무엇을 알아야하겠나, 그렇게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그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어요.

최우석 폭넓게 진지하게 심층적으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물리학, 이것이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물리학 전공하는 사람을 위한 물리학이나 그냥 필요해서 하는 물리학과는 다르겠군요.

장회익 꼭 다르다는 것보다도, 일치하는 측면도 물론 있죠.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도 철학자적인 자세로 공부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차이도 있죠. 예를 들어서 공과대학 학생, 앞으로 공학을 할 사람들도 물리학이 필요해요. 이런 사람들은 정말 필요에 의해서 물리학을 하고 있고 해야할 사람들이죠. 물리학자는 전문 분야로서 앞으로 해야하는 사람들인데. 철학자는 그런 용도를 목표로 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내가 이해를 하겠다, 내 앎의 욕구를 물리학을 가지고 충족시켜 보겠다, 이러한 의도가 훨씬 중요하고, 또 그래야되는 거죠.

5. 왜 하필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인가?

장회익 겸해서 얘기하자면, 그러면 왜 하필 물리학이냐? 철학자를 위한 ‘화학’, 철학자를 위한 ‘광물학’ 이런 것도 있느냐? 철학자가 그런 걸 알아서 안 될 이유는 없죠. 그런데 왜 특히 물리학이냐 하면, 본래 철학과 물리학이 같이 출발한 거예요. 철학에서 출발한 것이 물리학이야.

원래 철학자들의 가장 큰 질문을 추구해서 얻게 된 가장 생산적인 내용을 담은, 또 성공적인 앎을 쟁취한 그 내용이 지금 현재는 물리학이라고 불리고 있는 분야다, 그래서 본래 역사적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물었던 물음에 대해서 의미있는 답을 제시한 것이 물리학이다.

물론 지금도 철학자들이 많은 물음을 던지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의미있는 답이 손에 딱 잡히는 일은 드물죠. 그런데 역사적으로 그렇게 해서 얻은 보석과 같은 이런 중요한 것이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가 잡혀져서 알려져 있어요.

그러면 물리학이 철학이란 말이냐,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의외라고 생각을 하죠. 그게 물리학이지 왜 철학이냐. 사실 분가를 해 나간 셈이죠. 그러니까 초기의 물리학자들은 본인이 철학자라고 생각을 하고 연구를 했는데, 성공을 하고 보니까 그 자체에 대해서 독립적인 이름도 만들어지고, 그 이름이 ‘물리학’이라는 것으로 본래 철학이라는 바탕에서 조금 독립해서 나갔어요.

아주 분가해서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뿌리는 역시 철학에 있고, 그리고 아까 내가 얘기했듯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지향을 가지고 노력한 사람들이 얻어낸 가장 중요한 성취가 물리학이다, 이렇게 나는 보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물리학은 너무 어렵다해서 안 하기도 하고, 별로 안 중요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게 아니다. 본래 철학자들이 알고자 했던 그 물리학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이 뭐냐, 이것을 우리가 지금이라도 다시 모아서 알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 과목을 그러한 앎의 출발점으로 삼아보자, 하고 얘기를 했던 거죠.

6. 물리학과 여타 다른 학문들 사이의 관계?

최우석 만약에 질문과 답이 한참 시간 간격을 가져도 된다고 하면, 그리스 시대에 물었던 질문을 현대에 와서, 자,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하고 내놓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고대에 질문한 사람은 철학자이고 지금 답하는 사람들은 물리학자, 이렇게 이름은 달라졌지만 질문과 답의 맥락은 한 연장선상에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장회익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황승미 나중에 물리학 내의 한 분야가 굉장히 성공을 해서 물리학에서 철학이 분가한 것처럼 물리학에서도 어떤 분야가 분가해나가면, 물리학자를 위한 ‘무슨무슨 학’ 이렇게도 나올 수 있겠네요.

장회익 많죠. 물리학에서 분가해 나간 학문이 이미 많이 있어요. 중요한 공학 분야가 거의 물리학에서 나왔지. 물리학에서 분가해나가서 전자 현상을 가지고 만든 것이 전자공학이에요. 사실 전자공학이라는 말이 나온지 얼마 안돼요. 지금 많이 쓰이고 있지만,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에 전자공학과가 서울대학교에 없었어요.

내가 대학교 가서 2학년 때 처음 배운 과목 중에 하나가 전자공학이야. 내가 물리학과에 들어왔는데 왜 갑자기 공학을 배우나 했어요. 그런데 물리학 실험을 한다든가 할 때는 실험장치를 만들어야되는데, 그때 전자공학을 많이 써서 했죠. 20세기 중반 이후에 물리학에서 분가해나간 중요한 분야가 전자공학이고.

그 다음에 반도체. 물리학을 통해서 반도체 성격이 이해가 됐고, 그것이 전자공학의 기본 소자로 사용되면서 재료공학의 중요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고. 물리학에서 분가해나간 분야가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물리학은 중간쯤 되는 거지, 물리학이 철학에서 분가해 나왔지만 물리학에서 나온 학문이 또 많이 있으니까.

최우석 그러면 성공한 분야들은 분가한 집들이 많겠네요.

장회익 따지려 들면 많이 있죠. 레이저광학, 뭐 이런 것도 있고. X선도 있고. 요즘 의학에서 많이 쓰는 MRI, 이런 것들이 다 물리학에서 쓰던 것들이 나와서 여러가지 의학, 공학에 적용이 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천체물리학도 그렇죠. 초기의 천문학은 사실 지금 그렇게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고,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남아있고, 요즘 우주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물리학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 우주를 이해한 것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예 ‘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천체물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화학과 물리학은 굉장히 재미난 관계가 있어요. 본래 출발은 굉장히 달라요. 화학은 물질을 가지고 이렇게저렇게 해보는 것이고, 물리학은 운동이 어떻게 되느냐, 서로 다르게 쭉 해오다가 20세기에 오면서 하나가 됐죠. 화학에서 지금까지 연구해오고 있던 모든 것이 물리학적으로 이해가 돼 버린 거야, 그러니까 하나의 학문이 된 거야. 전통만 다르지, 본래 지금 화학에서 알고 있는 중요한 내용은 전부 물리학 이론이 돼 버렸어요.

황승미 화학과에서는 아니라고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장회익 아니지, 인정하지. (웃음) 분자의 현상, 그러니까 원자의 결합을 통해서 분자가 이루어지고 변화하는 그런 것들에 대한 물리학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물리학이라는 이름을 갖다붙이면 싫어할 사람들이 있겠죠. 왜냐하면 학문 전통이 있거든. 학문 전통은 물리학과 화학이 따로 분리되어서 진행되어 왔는데, 이론적으로 물리학적인 이론으로 화학이 이해가 돼버린 거예요.

사실 이론적으로 보면 전혀 분리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화학은 물리학에서 분가해 나갔다기보다는 오히려 따로 있던 것이 합쳐져버린 면도 있어요. 요즘에는 생물 쪽도 그렇게 가려고 하죠. 생물 쪽도 물리화학적으로 이해가 돼 버리니까. 생명현상의 물리학, 그것이 생물학 아니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죠. 각각의 학문 입장에서 보면 독립성을 깨는 것 아니냐하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졌다, 그래서 다 연결됐다, 연결돼서 이해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요.

학문들간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말하자면, 물리학이 철학에서 나왔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분야들도 물리학과 이렇게 연관되어 있고,  철학과 물리학 등 다른 많은 학문들이 점점 하나의 학문으로 연결돼나가는 그런 추세에 있다고 보면 되죠.

7. 이 강의에서 말하는 ‘자연철학’이란?

최우석 어떤 학문을 지금 시점에 어떻게 부르고 나누는가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겠네요. 계속 바뀌나 봅니다.

장회익 그래서 나는 지금의 물리학에 ‘물리학’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내가 ‘자연철학’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과목 이름은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이지만 그 내용을 책으로 쓸 때에는 ‘물리학’이라는 말을 안 썼어요. ‘자연철학’이라고 했지.

왜냐하면 물리학이라고 하면 각자 나름대로 구획을 나눠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철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물리학, 그러니까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이라고 하는 그 내용을 통틀어서 부르면 뭐라고 부를 것이냐, 그것이 ‘자연철학’이다 이거지.

그러니까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의 내용은 바로 ‘자연철학’. 자연철학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에 관계되는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이해를 담은 체계, 그것이 자연철학이다. 아까 얘기했지만 화학도 들어가고 생명과학도 들어가는데, 그거 다 물리학이라고 이름 붙이면 사실 섭섭한 면이 있죠. 그래서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면 섭섭해할 것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이름 붙인 거예요.

‘물리학’이라는 말이 참 재밌고 좋은 말이죠. 물질의 기본적인 이치를 탐구한다, 굉장히 좋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철학자의 입장에서 정말 관심을 가질 것은, 물리학의 구획을 벗어나서 ‘자연철학’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좋겠다,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8. ‘통합적 심층적 앎’이란?

최우석 갖고 있었던 여러가지 의문들이 풀리네요. 한 가지만 더, ’통합적 심층적 앎’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강의계획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자’는 통합적 심층적 앎을 추구하는 지성인(‘philosophy’ 의 어원적 의미)을 말하며 여기서 소개하려는 ‘물리학’은 이러한 앎의 바탕을 이루는 물리학의 핵심적 내용들을 말한다.” 그리고 수강 대상을 ‘통합적 학문을 추구하고자 하는 대학 3, 4학년 우선’ 이렇게 써주셨습니다. 어떤 학생들을 염두에 두시고 ‘통합적 학문을 추구’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인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장회익 아까 내가 말한 철학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대학교에 가는 게 굉장히 좀 어정쩡해요. 물론 철학과를 갈 수는 있겠지만. 물리학, 수학, 화학 이런 식으로 분야가 나눠져 있죠. 그리고 사실은 거의 대부분은 점점 더 좁아지는 쪽으로 공부를 해나가게 되거든요. 그런데 철학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는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다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가야될 곳이 어디냐? 철학과가 있기는 한데, 철학과에서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없는 거야.

그런데 거기에 반론이 있죠. 그 모든 것을 다 합치면 어마어마하게 분량이 많은데 학생으로서 어떻게 다 공부하나. 일생을 공부해도 그걸 어떻게 통합적으로 다 이해를 할 수 있느냐, 그건 불가능하니 아예 한쪽이라도 제대로 해라, 이렇게 다 생각하고 대학교 갈 때 분야를 갈라주는 거죠.

뭐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은 있어요. 문제는 그 학문 분야가 다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그 학문을 실용적인 목적에서 쓴다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우주와 나 자신이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을 내가 보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문명의 방향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느냐 이런 비전을 가지고 싶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으로 연결을 해야 보이는데, 이런 것을 가르치는 대학이나 학과가 없어요.

내가 볼 때는, 20세기 학문이 전문화되면서 모든 학문을 아마 수백 개의 조각으로 나눠서 공부를 시키지만, 그러나 우리가 21세기라는 현 상황에서 우리 인류의 나아갈 길이 무엇이냐, 우리 문명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전체를 연결해서 보는 사람이 필요하죠.

그래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고 하니,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서 다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만이라도, 나는 어떤 한 분야를 하기는 하지만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하되 전체를 통괄해서 이해하는 그런 학자가 되고 싶다, 그런 학문을 하고 싶다,하는 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게 사실은 앞으로 꼭 필요한 분야에요. 그런데 현재는 그런 사람이 공부할 과목이나 학과가 마땅치 않아요.

그래서 이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 과목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것 참 잘 만났다, 여기서 출발해보자, 그걸 염두에 두고 이 과목을 만들었어요. 여기서 공부할 사람은 앞으로 자기 일생에서, 적어도 학문적으로 나아가겠다 한다면 어떤 조각이 난 단일 학문이 아니라 통합적인 것을 한번 해보겠다,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아요. 

학생 때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그런 내용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하는 거죠. 우선 가장 폭넓게 철학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인류가 그동안 이룩해 낸 지성사적인 업적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확고하고 확실한 내용이 물리학이라고 봐도 되죠. 그러니까 그것부터 출발해서 폭을 넓혀가는 것, 이것이 앞으로 21세기 또는 그 이후에 통합적인 학문을 개척할 사람이라면 시작해야할 출발점이다, 이런 사람이 나오기를 희망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이 과목에서 공부해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 과목을 개설했다고 할까.

사실 이 과목의 주제는 내가 정했어요.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세계 어디에 ‘철학자를 위한 물리학’이라는 과목이 있는지 들어본 일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한번 시작해보자. 외국사람들도 그렇게 잘 못해요. 외국에서도 다 조각조각 내서 하고 있고, 사실 그런 전통도 서구에서 왔지, 본래 우리나라 학문의 정신이 아니거든.

우리 전통 학문의 본래 정신은 통합적인 이해에 있었지.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통합적인 학문의 본고장이다 이거야. 우리 본고장에서 통합적인 학문으로 다시 연결해내자,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 과목에서 출발해보자 하는 취지라고 보면 돼요.

9. 통합적이고 심층적인 앎을 추구하려면 박학다식 해야 하나?

최우석 통합적 앎, 여러가지 것들을 연결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박학다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장회익 박학다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조각조각난 여러가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때는 그것조차도 힘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학문의 아주 높은 경지로 추앙한 일이 있죠. 가장 대단한 학자들을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이렇게 부르면서 높여 봤는데,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찾아보면 금방 다 나와요. 백과사전은 중요한 게 아니야.

연결해서 전체를 하나의 틀로 파악하는 것, 이건 AI한테도 맡길 수가 없는 거죠. 인공지능들은 박학다식할 수 있어. 그런데 정말 인공지능이 통합적 심층적 학문을 하느냐. 그건 당분간은 아마 어려울 거예요. 적어도 어떤 사람이 방법을 알아낸 후에 AI한테 시키기 전까지는 인공지능이 그건 못해요.

그래서 정말 사람이 해야할 진짜 학문은 통합적, 심층적 앎, 그리고 그걸 통해서 어떤 삶으로 우리가 가는 것이 옳으냐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학자가 필요하다, 미래형 학자라고 봐도 되죠.

최우석 그렇다면 중요한 소양 혹은 소질이라고 할 때, 여러가지 이야기와 지식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과 아닌 것들을 가려보고, 덜 중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좀 뒤로 미뤄두고, 중요한 것들을 쭉 앞으로 모아서 그것들로 뭔가 얘기를 만들어본다든가 이런 작업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회익 그게 말하자면 제일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이죠. 그러니까 제대로 굵은 줄기와 잔가지를 구분 해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요. 잔가지까지 다 모으려면 한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이 뭐다, 뿌리가 되는 게 뭐다 이런 것을 가려내는 안목이 필요한 거죠.

‘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1-1’ 끝.

녹취, 편집 : 황승미(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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