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예술 & 석유, 부, 역사, 기후 – 미네르바 쿠에바스

미네르바 쿠에바스(Minerva Cuevas. 1975-)는 사회적 문제,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 연구를 하고 직접 관여 하면서 특정 장소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멕시코의 ‘개념 예술가’입니다. 멕시코에 살며, 설치와 비디오 작업, 회화와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 4월 동안 쿠리만주토 미술관((Kurimanzutto. 미국, 뉴욕)에서 석유, 역사, 선주민 문화 등을 주제로 하는 “In Gods We Trust”*라는 제목으로 쿠에바스의 전시가 있었다는 가디언지의 기사를 접하고 소개합니다.

쿠리만주토 미술관은 현재 멕시코 시티와 뉴욕시 두 곳에 미술관을 두고 있지만 처음에는 특정한 공간이 없는 소위 ‘유목적’인 미술관이었습니다. 이 미술관은 1999년 모니카 만주토와 호세 쿠리 두 사람이 멕시코 곳곳에 예술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멕시코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2006년에야 창고를 하나 마련했으며, 2008년에 멕시코 시티에, 2018년에 뉴욕시에 상시 미술관을 열었다고 합니다.

*Trust : 여기서 ‘trust’는 ‘믿다’, ‘신뢰하다’의 뜻이라기보다는 경제 용어 ‘트러스트’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트러스트는(Trust)는 시장지배를 목적으로 동일한 생산단계에 속한 기업들이 하나의 자본에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기업합병이라 할 수 있다. 트러스트라는 용어의 유래는 1879년에 석유재벌 록펠러(Rockerfeller)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그는 트러스트 증권(신탁증권)을 교부해주는 조건으로 40여 개 석유회사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이 소수의 수탁자에게 위탁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수탁자는 이 석유회사들의 경영관리 등을 통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석유제품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독점의 피해로 미국에서 이후 독점금지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러한 법을 영문으로 Anti-Trust Law라고 쓴다.” (출처 : 기획재정부wikipedia)

[그림 1] 록펠러-모건 “패밀리 트리” (1904). 20세기 초반 당시 가장 큰 트러스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출처 : wikipedia)

아래 내용은 가디언지 기사의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일부는 요약하고 일부는 의역을 했으므로, 정확한 내용은 원문 기사를 꼭 참조해주세요.

“‘I tend to avoid moral statements’: the Mexican artist looking at oil, wealth and history.” Veronica Esposito. 2023. 3. 27. The Guardian.

Minerva Cuevas – “In Gods We Trust” Kurimanzutto.
(이 링크로 가시면 더 많은 전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미네르바 쿠에바스(Minerva Cuevas. 1975-)의 전시 “In Gods We Trust”*를 보다 보면 마치 멕시코 역사 수백 년을 되짚어주는 거대한 대항서사(counter-narrative*)의 단편들을 더듬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관람객에게 암시해주고 있는 내용이 너무나 많은데, 이런 내용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방식으로 아귀가 잘 맞아들어간다.
*대항서사 : 배제된 소수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혹은 주류 서사(dominant narrative)와 싸우기 위해 사용되는 서사. 

20세기 석유대기업 광고와 고대 선주민 문화가 병치되어 있고,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하고 제도화된 예술가(디에로 리베라)의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어내면서, 쿠에바스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표면 밑을 보도록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점들을 이어가도록 밀어붙인다.

이 전시가 시도하는 것은 야심차고 광범위하다. 지나치게 단순한 이야기에 복잡성을 추가하여, 공식적인 기록에서 제외된 많은 조각들을 되돌려놓기 위한 계획이다.

쿠에바스는 “모든 것이 아즈텍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복잡한 서사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 충분히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즈텍이나 마야 담론 그 너머로 가고 싶었다, 조금씩 (우리의) 경제적 과정과 사회적 역사 내러티브를 알아가고 있다”고 쿠에바스는 말한다.

쿠에바스는 작업 규모도 크고 표현해내는 내용도 웅장한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이 거대한 “The Trust”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이 작품은 높이 약 3미터 부조로, 25개 기업 로고와 고대 선주민 신들과 상징, 국가 상징들 등을 모아 놓은 것으로 열광적인 역사의 꿈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2] “The Trust” :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전시(쿠라만주토, 미국 뉴욕. 2023) “In Gods We Trust”에 설치된 작품. Photograph: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Photo: Genevieve Hanson (출처 : The Guardian)

마찬가지로 다른 작품들도 동일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내러티브를 탐색한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의 빈티지 광고를 재현한 십 여개 작품이 그렇다. 이들 작품은 한때 석유 기업들이 고객들로 하여금 화석연료의 가능성에 열망하도록 하기 위해 석유 기업 스스로를 어떻게 위치 지었는지 보여주는데, 지금 보면 민망하다.

[영상 1] “In Gods We Trust”. 작가와의 대화. 쿠라만주토, 미국 뉴욕. 2023.

기발한 “Petro” 시리즈(석유 통을 이용한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은 석유 통 위에 선주민 식의 동물 머리를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마을의 역사(Epopeya de un pueblo) 컬렉션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멕시코 역사”(Epopeya del pueblo mexicano)에서 요소들을 낚아와서, 장식 없는 하얀 부조들로 묘하게 모아 놓고 있다.

[그림 3]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전시(쿠라만주토, 미국 뉴욕. 2023) “In Gods We Trust”에 설치된 작품. Photograph: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Photo: Genevieve Hanson (출처 : The Guardian)
[그림 4] “멕시코 역사” (Epopeya del pueblo mexicano). 디에고 리베라. 1930. (출처 : wikipedia)

쿠에바스는 십대 때 독학으로 공부해 비디오 아트 작업을 했고, 1990년대 중반 예술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다. 당시 쿠에바스는 멕시코 현대 미술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꼈고, 이미 만들어진 기술이자 재료를 사용하기 보다는 직접 만들어 작업을 했다.

시장같은 곳에서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고, 다른 길거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쿠에바스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예술가들의 전시를 기록했다. 그러나 서로 도움은 되었지만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쿠에바스는 세계화 반대 운동에 빠졌고 사파티스타*에 매료되었는데, 이는 멕시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고 쿠에바스는 회상한다. 그래서 자신이 처음 작품에 넣은 상징이 기업이 아니라 정부였다고 말한다.(정부가 발행하는 복권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막대한 상금과 빈곤 통계를 연결시키는 작업이었다.)
*사파티스타(Zapatista) :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에 반대해 1994년 1월에 시작된 운동.

쿠에바스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왔다. 자신이 하는 일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 즉 예술이라고 쿠에바스는 본다. 사실 이번 전시도 식민주의나 환경파괴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기 보다는,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멕시코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어떤 하나의 주제로 수많은 이질적인 조각들을 끌어당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요소들을 모으는 것 뿐이다. 이것들을 모아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자는 것이다. 석유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윤리적인 표현은 피하고 싶다. – 윤리적인 표현을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것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 쿠에바스

쿠에바스는 자신이 “고고학”과 관련된 상징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상징이란 선주민의 신들, 국가 상징들, 증권 거래소의 그래프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21세기 기업 상표같은 것을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저장소에 접근하는 방법, 우리의 시각적 언어와 소통하는 한 방법으로서 상징을 이용하고 싶었다. 내가 상징을 더 들여다보니, 상징이 만들어지는 데에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나라의 자원, 동물들, 여러 가지 다른 색깔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 쿠에바스

이번 전시는 쿠에바스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멕시코 문화 권력의 중심과 연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디에고 리베라 같은 예술가를 피해왔는데, 이제 이런 예술을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스페인 정복 이전의 멕시코 문화에 중심을 두고 그 문화와 연결을 시키는 리베라의 방식이 어떤 기회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더 젊은 세대들은 리베라의 역사 운동에 관심을 잃었다. 왜냐하면 너무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멕시코의 문화적 역사와 연결시켜 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쿠에바스

이번 전시에서 쿠에바스는 리베라의 고압적인 벽화 “멕시코 역사”(Epopeya del pueblo mexicano)에서 일련의 모티프를 가져와 이들을 완전히 탈맥락화시키고 순백색으로 이루어진 ‘아상블라주'(assemblage. 여러 요소들을 모아 만든 예술작품)를 만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쿠에바스는, 멕시코 선주민들과 그 거대한 자연 자원을 둘러싼 내러티브가 여러 번에 걸쳐 어떻게 분리되고 어떻게 다시 재구성되는지 암시한다.

이번 전시에는 석유 회사의 빈티지 광고를 재현한 일련의 작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관람객들에게 이런 광고 문구들 중 다수는 극도로 냉소적인 패러디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한 광고에서 “험블(Humble Oil)은 매일 빙하 7백만 톤을 녹이기에 충분할 정도의 에너지를 공급합니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런 광고들은 70년이 지나면서 석유 추출이 가지는 이미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준다. 여전히 석유가 멕시코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더 큰 세계와 연결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림 5] “‘험블'(Humble oil)이 매분 공급하는 에너지는 산사태 5번에 해당하는 에너지입니다. – 미국의 화물을 움직입니다.”(each minute humble provides the energy of 5 avalanches – to move america’s freight). 2023. 빈티지 매거진 ‘Enco’ 광고.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전시(쿠라만주토, 미국 뉴욕. 2023) “In Gods We Trust”에 전시된 작품. Photograph: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Photo: Genevieve Hanson (출처 : The Guardian)

“관람객들은 빈티지 광고에 대해서 정말 의아해한다. 광고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유 기업의 관심사는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 40년대에는 전쟁이었고, 정치와 경제에서는 인종차별이 더 큰 역할을 했다. 50년대에는 자동차 문화가 주요 관심사였고, 60년대에는 자연적인 요소와 풍경에 더 연결되어 있다.”

– 쿠에바스

멕시코와 멕시코 역사에 관한 전시인 만큼 이번 전시는 뉴욕에 있는 갤러리에 잘 어울린다. 사실 쿠에바스는 이번 전시가 뉴욕의 역사와도 관련이 많다고 흥미롭게 지적했다. 록펠러는 디에고 리베라에게 록펠러 센터에 있는 RCA 빌딩(지금은 30 Rockefeller Plaza)에 벽화를 그려달라고 처음 부탁한 바 있는데, 나중에 리베라의 그림에 공산주의 선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의뢰를 철회했다.

– 번역, 요약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 댓글

  1. kyeongaelim

    감사합니다. 황승미쌤♥♥♥♥♥
    이렇게 세계와 예술의 새로운 면을 볼 기회를 주시네요.
    미네르바 쿠에바스, 아티스트 이름은 참 생소합니다. (원래 사람 이름 못 외우긴 합니다만 현대예술과는 워낙 멀어요. )
    이 작가가 ‘하는 예술’을 잠깐 보고? 느끼는 거지만 멕시코 근현대 역사의 아픈 노정을 떠올리게 하고 대기업의 광고를 경고로, ‘저항서사’로 주류미술을 박제화 시키는 느낌이 흥미롭네요. 현대인들은 지금 엄청난 풍요로운 문명을 누리고 살지만 곧 디스토피아적 (정치적ㆍ경제적ㆍ 환경적 )환난들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역시 떨치질 못하는데… 시대와 사회에 대한 패터디 같기도하구요…
    현대 미술은 자의적, 주관적 해석을 존중한다기에 느낌대로, 생각대로 감상 적어봤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글로 표현하는건 넘 어렵습니다;;

    • neomay33 글쓴이

      술술 잘 쓰시는데요?! ^^
      저도 아는 예술가 거의 없고요. 이 작가도 기사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세계는 넓고 유명한 사람은 많으니까요. ㅎㅎ;
      그래도 작업도 고민도 뜻 깊어서, 기사 뒤지다가 알게돼 반갑고 기뻤습니다. 이런 분들이 각지에 많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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