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 2017) 발췌, 요약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 박래선, 김태훈 옮김. 2017. 동아시아.

이 글은 『인포메이션』(제임스 글릭, 2017)의 내용 중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녹색아카데미의 온라인 책읽기모임 가운데 하나인 ‘책새벽’에서 2022년 8월 하순부터 올 1월초까지 19주에 걸쳐 이 책을 읽었고 드디어 이번 2월 녹색문명공부모임에서 책 읽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포메이션』에서 제임스 글릭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말하는 북’을 말하면서 코드와 통신으로부터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적 접근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문자와 사전, 수와 수학, 전신 등 별로 관련이 없던 것으로 생각하던 것들을 차례차례 다루면서 이것들을 정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보고 그 뒤 정보이론이 출현하고 이 정보이론이 세상만물을 정보로 환원하여 이해해 온 흐름을 보여줍니다. 사뭇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전개 속에서 ‘결국 모든 것은 정보였다’라는 발상을 여러 각도에서 소개하고 설득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생각할 점들이 많아져 의아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던 기억입니다.

이 책에서는 존 아치볼드 휠러가 말한 “비트에서 존재로 It from Bit”라는 꽤나 의미심장하게 소개하면서 정보의 역할을 매우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견지하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점들에 대해 생명, 앎, 존재 등과 관련하여 의문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책새벽에서 이 책을 함께 읽어온 분들은 그 사이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 질문, 견해 등이 많았을테고, 이 책을 다른 기회에 접한 분이나 그렇지 않았던 분이나 ‘정보’와 ‘정보이론’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궁금한 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달 녹색문명공부모임에서는 『인포메이션』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정보이론’이 말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미리 주제를 좁혀서 고민을 하고 모이면 더 좋겠는데요, 모임 전에 이야기 주제를 제안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렇게까지는 어렵더라도 ‘정보이론’를 둘러싼 질문이나 이야기거리를 들고 모임에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 말하는 북 ―코드가 아닌 코드 
제2장 말의 지속성 ―마음에는 사전이 없다 
제3장 두 개의 단어집 ―글의 불확실성, 철자의 비일관성 
제4장 생각의 힘을 기어 장치에 ―보라, 황홀경에 빠진 산술가를! 
제5장 지구의 신경계 ―몇 가닥 초라한 전선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6장 새로운 전선, 새로운 논리 ―다른 어떤 것도 이보다 미지에 싸인 것은 없다 
제7장 정보이론 ―내가 추구하는 것은 평범한 두뇌일 뿐입니다 
제8장 정보로의 전환 ―지성을 구축하는 기본 요소 
제9장 엔트로피와 그 도깨비들 ―섞인 것을 휘저어 나눌 수 없어요 
제10장 생명의 고유 코드 ―유기체의 완전한 설명서는 이미 알에 적혀 있습니다
제11장 밈 풀 속으로 ―당신은 나의 두뇌를 감염시킨다
제12장 무작위성의 감각 ―죄악의 상태에 빠져
제13장 정보는 물리적이다 ―비트에서 존재로
제14장 홍수 이후 ―바벨의 거대한 앨범 
제15장 매일 새로운 뉴스 ―그리고 비슷한 뉴스 
에필로그 ―의미의 귀환


문자는 정보의 기초 기술이었다.
정보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정보는 화강암 묘비부터 전령의 귓속말까지 유무형의 형태로 선조들의 세계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모든 새로운 매체는 사고의 속성을 변화시킨다.

– 『인포메이션』 프롤로그 중에서.

제1장. 말하는 북 : 코드가 아닌 코드

1730년 영국 노예 상인들의 대리인이었던 (프랜시스) 무어Francis Moore는 “문딩고족, 졸로이프족, 폴레이족, 플룹족, 포르투갈인”처럼 자신이 생각하기에 검거나 황갈색 피부를 가진 다른 인종들이 사는 왕국을 정찰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북을 들고 다니는 원주민 남녀들을 만난 무어는 … 그 북이 “적의 접근을 알리는” 데 … 이웃 마을에 지원을 요청할 때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12세기에 벌어진 트로이 전쟁에서 봉화를 사용 … 독일의 역사학자인 리하르트 헤니히는 1908년 이 경로를 추적하고 측정해 이런 봉화 체계가 일리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메시지의 의미는 미리 조율을 거쳐 1비트로 효과적으로 축약되어야 했다. 이진법에서 선택은 ‘어떤 것’ 혹은 ‘아무것도 아님’으로 나타난다.

자력의 발견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더욱 흥미로운 점은 자력이 지구 전체에 걸쳐 아주 먼 거리까지 작용해 나침반의 바늘을 정렬시킨다는 점 … 이런 생각이 퍼져나가자, 1640년대 토머스 브라운(Thomas Browne)은 이 신비한 힘이 언젠가 통신에 활용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원거리 자기통신이 가능하다고 해도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시에 행동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장소에서 서로 시간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아는 것은 평범한 문제나 달력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며, 수학적인 문제이다. …”

– 토머스 브라운

17세기 천문학과 지리학의 새로운 지식에서 나온 이 지적은 … 그때까지 확고했던 동시성이라는 전제에 최초로 균열을 냈다. … 2세기가 지나서야 시간대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이동하거나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1841년 무렵, 새뮤얼 모스Samuel F. B. Morse는 자신만의 타악기적 코드, 다시 말해 전신선을 따라 고동 치는 전자기적 북소리를 연구하고 있었다. 모스가 쓸 수 있는 기술은 전기회로의 개폐 혹은 전류의 단속을 통해 단순한 펄스를 발생시키는 것뿐이었다. 모스는 어떻게 전자기를 조작해 언어를 전달할 수 있었을까? … 1840년에 낸 자신의 첫 특허에서 모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 사전 혹은 단어집은 알파벳순으로 정렬되고, 단어에 규칙적으로 번호가 매겨지며, 알파벳 첫 글자에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각 단어는 전신 번호를 가지며 숫자 부호를 통해 임의로 지정된다.” – 새뮤얼 모스

[그림 1] 알파벳과 숫자 0~9의 모스 코드. (출처 : wikipedia)

한편 모스의 조수였던 알프레드 베일은 전신 기사가 전기 회로를 빠르게 개폐할 수 있는 단순한 레버 키lever key를 개발하고 있었다. 북과 모스 원리가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유럽인들은 북소리의 코드를 해독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실 북의 언어에는 코드가 없기 때문이다.

모스는 말과 최종 코드를 이어주는 중간 부호층인 문자언어를 가지고 혼자 힘으로 모스 체계를 만들었다. 점과 선은 소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점과 선은 글자들을 나타냈다. …

(반면) 북 언어는 말을 바로 변형시켰던 것… 이에 대한 설명은 존 캐링턴John F. Carrington의 몫이었다. … 북꾼들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했던 것이다.

캐링턴은 아프리카에서 40년을 살면서 식물학, 인류학, 언어학에 식견을 쌓았다. 특히 수백 종의 개별 언어와 수천 종의 방언이 있는 아프리카 언어군의 구조 연구 … 1949년 자신이 북에 대해 발견한 내용들을 모아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Talking Drums of Africa)이라는 얇은 책으로 펴냈다(amazon.com).

[그림 2] 틈북. 아프리카 카메룬 서부. (출처 : wikipedia)

구어를 북 언어로 표현하면 정보가 소실되었다. … 그렇다면 풍부한 성조를 가진 구어를 최소한의 코드로 축약한 것들을 북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예외 없이 각 단어마다 “약간의 수식구”를 덧붙인다… 덧붙여진 북소리는 … 전후 사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 청자들은 띄엄띄엄 이어지는 높고 낮은 북소리만을 듣지만 사실상 빠진 자음과 모음도 ‘듣는다’.

대개 언어의 잉여성은 배경의 일부일 뿐 이다. 전신수에게 잉여성은 값비싼 낭비 … 그러나 아프리카의 북꾼에게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책을 낸 후 존 캐링턴은 우연히 이런 사실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벨연구소의 랠프 하틀리(Ralph Hartley. 1888-1970)가 쓴 논문은 H=n log s라는 상당히 연관성이 높은 공식을 담고 있었다. 여기서 H는 정보량, n은 메시지를 구성하는 기호의 수, s는 해당 언어가 가진 전체 기호의 수. …

하틀리의 젊은 동료였던 클로드 섀넌은 이후 이 선례를 따라 영어의 잉여성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작업을 주요 과제로 삼는다. … 하틀리의 공식은 대단히 단순한 현상을 정량화했다. 일정한 양의 정보를 전달할 때 기호의 종류가 적을수록 더 많이 전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말로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약 8배나 더 길어야 했던 이유 …

하틀리는 정보를 정성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 부호의 중간층에서 복잡성이 발생했다. … 측정하기 더 어려웠던 것은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음성과 이를 대리하는 부호들이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제2장. 말의 지속성

언어와 기호체계를 연관시키는 행위가 제2의 본능이 되려면 수천 년의 시간이 걸리며, 그런 다음에는 기록이 없었던 순진무구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 기록이 없으면, 말이 설령 시각적 대상을 표상한다고 해도 시각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말은 소리이다. 그래서 말을 다시 ‘불러서’ 상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말을 ‘바라볼’ 수는 없다.”

– 월터 J. 옹(Walter J. Ong. 1912-2003. 예수회 사제, 철학자, 문화역사학자)

1960~1970년대에 월터 옹은 전자시대가 새로운 구술성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공언했다. … 여기서 말하는 구술성은 ‘2차 구술성’ … 문해력 안에서만 존재하는 구술성 … 활자를 배경으로 음성이 들리는 것… 1차 구술성 시대는 거의 인류사 전체에 걸쳐 훨씬 더 오래 지속되었다. 기록은 뒤늦게 개발되었고, 문해력이 보편화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역사와 논리 자체가 문자적 사유의 산물이다. 하나의 기술로서 글쓰기는 사전 숙고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 언어는 기술이 아니다. … 언어는 지성의 작용 … 기록 역시 구체적인 실행이지만 말이 종이나 돌에 실체화되면 인공물로서 별개의 존재가 된다. 기록은 도구의 산물이며, 하나의 도구이다.

그리고 이후 나타난 많은 기술들처럼 기록은 즉각적인 반발은 불렀다. … 플라톤은 이 기술(기록)이 궁핍화를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 배운 사람들의 혼에 망각을 제공할 것이니, 글쓰기를 믿은 나머지 외부로부터 남의 것인 표시에 의해 기억을 떠올리지, 내부로부터 자신들에 의해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

기록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화자와 청자를 단절시켰다. … 한 사람이 다수에게,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산 자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 말한다. … 기록은 생각을 재구성하고 역사를 낳았다. …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는 말과 글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기록된 기호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무한히 확장한다. 다시 말해 글은 작가의 정신에 육신의 삶에 대비되는 생명, 즉 잉크와 종이 그리고 독자들에 의해 지속되는 생명을 부여한다.”

그러나 새로운 채널은 이전의 채널을 확장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 재사용과 ‘재-구성’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완전히 새로운 정보의 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 역사, 법률, 상업, 수학, 논리학… 기록의 힘은 … 방법론에도 있다. 코드화된 시각적인 말, 전달하는 행위, 대상을 기호로 대체하는 방법론… 그런 다음 나중에는 기호가 기호를 대체하게 된다.

구석기 인류는 적어도 3만 년 전부터 … 새기거나 그리기 시작했다. … 이 기호들은 예술적 혹은 주술적 목적이 있었다. … 머릿속의 상태를 외부 미디어에 저장하는 일의 시작이었다.

글이 되려면 사물을 표상하는 단계에서 구어를 표상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변환을 거쳐야 했다. 즉, 두 번의 표상 단계 … ‘그림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에서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를 거쳐 ‘말을 나타내는’ 표어문자로 나아가야 한다. … 한자는 4,500~8,000년 전에 이 변환 과정을 시작했다. 

[그림 3] 상형문자에서 추상화된 글로 변환되어 가는 과정 비교. 쐐기문자, 이집트 문자, 한자. (출처 : wikipedia)

표기체계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기호도 더 적고, 각 기호가 갖는 정보도 더 적은 것이다. 중간 단계는 각 글자가 유의미하거나 그렇지 않은 음절을 표상하는 표음, 표기체계인 음절문자이다. 이 경우 수백 개의 글자로 전체 언어를 표기할 수 있다. 다른 극단에 있는 표기체계는 등장하는 데 가장 오래 걸렸다. 바로 각 기호가 음소를 나타내는 알파벳이다. … 가장 환원적이고 전복적…

[그림 4] 에드워드 버나드는 “Orbis eruditi”(1689)에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알파벳을 정리했고, 찰스 모튼이 1759년에 이를 갱신했다. (출처 : wikipedia)

알파벳은 … 모두 지중해 동부 연안에서 등장한 같은 조상에게서 나왔다. … 원형은 기원전 1500년경 팔레스타인, 페니키아, 아시리아를 잇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문화의 교차로에서 형성됐다. 이 지역의 동쪽으로는 …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 남서쪽으로는 이집트문명이 있었다. 기프로스와 크레타에서 온 상인들도 별개의 고유한 표기체계를 들여왔다. 여기에 미노스, 히타이트, 아나톨리아의 상형문자까지 더해져서 기호의 잡탕이 형성되었다.

지배계급이었던 사제들은 자신들만의 표기체계에 투자 … 법과 제의를 장악했다. 하지만 … 지배계급의 문자는 보수적이었고, 새로운 기술은 실용적이었다. 알파벳은 전염되듯 퍼져나갔다. … 아랍과 북아프리카로,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로 퍼져나갔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브라미Brahmi와 관련 인도문자로, 또 그리스로 퍼져나갔던 것. 그리스에서 발흥한 신문명은 알파벳을 높은 수준으로 완성했다. … 라틴 알파벳과 키릴 알파벳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림 5] 그리스 알파벳(왼쪽), 키릴 알파벳(아래쪽), 라틴 알파벳(오른쪽) 비교. 서로 발음은 다르지만 중복되는 알파벳을 많이 가지고 있다. (출처 : wikipedia)

그리스에서는 문학작품을 만드는 데 굳이 알파벳이 필요 없었다. … 밀먼 패리Milman Parry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기록 없이 지어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 없이 지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 이 서사시들은 기원전 6~7세기경에 ‘기록’됐다.)

기록은 신에 대한 기원, 법의 기술, 경제적인 합의 같은 보다 세속적인 담론의 형태에 도움 … 기록은 담론에 대한 담론을 낳았다. 그렇다면 기록된 텍스트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 이 담론의 요소들을 묘사하기 위한 단어들은 호메로스의 어휘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새로운 어휘가 출현 … ‘주제topics’ … ‘구조structure’ … ‘플롯plot’ … ‘화법diction’ …

…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록의 지속성은 우리가 아는 세계 그리고 앎에 대해 알려진 것들에 체계를 부여했다. 글을 쓰고, 검토하고, 다음 날 새롭게 바라보고, 그 의미를 살피자마자 우리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동물, 곤충, 어류의 종류를 분류하기 위해 ‘범주category'(이 단어는 원래 ‘고발’ 혹은 ‘예측’을 뜻했다)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관념을 범주화할 수 있었다. … 플라톤은 이런 사고방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플라톤은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적인 정신의 특질들을 파악하고 단일 유형으로 만족스럽게 명명할 수 있는 용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 Eric A. Havelock (책. p.64)

추상화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추론이라는 상징, 즉 논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엄격한 체계 안에 범주와 관계를 배치 … 논리는 ‘말’, ‘이유’, ‘이야기’ 혹은 근본적으론 그저 ‘단어’를 의미하는 등 딱히 번역하기 힘든 단어인 로고스logos에서 나온 말이다.

논리는 기록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논리는 그리스와 인도 그리고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글을 통해 전승됐다. 논리는 추상화라는 행위를 참과 거짓을 가리는 도구로 바꾼다.

반면 구전되는 이야기…에는 삼단논법이 없다. 경험은 범주가 아니라 사건을 기준으로 나열된다. 이야기 구조는 기록을 통해서만 일관되고 합리적 논증을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논증에 대한 연구를 하나의 도구로 여김으로써 또 다른 수준에 이르렀다.

월터 옹은 이렇게 말했다. “형식논리학은 그리스 문화가 알파벳으로 기록하는 기술을 체득한 후에 발명됐다….” **

정보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화자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되어버린다. 이제 정보는 … 말 속에서 살아간다. 말도 정보를 전달하지만 글처럼 자의식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문자를 해득(解得; 뜻을 깨쳐 앎)할 줄 아는 사람들은 분류, 참조, 정의 같은 문자와 관련된 지적 활동을 함으로써 글에 대한 인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문해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기술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모든 문화가 논리를 발명하자마자 역설이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거의 동시대 철학자인 공손룡이 ‘백마비마(白馬非馬)’로 알려진 대화 형식의 역설을 제시했다. … 공손룡은 오랜 세월 언어의 속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중국 역사가들이 ‘언어 위기’라고 부른 이런 역설에 대해 천착했다. 이름은 그것이 지칭하는 사물이 아니다. 범주는 하위 범주와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올바른 추론도 빗나갈 수 있다.

공손룡은 흰색, 말스러움 같은 속성에 따라 범주를 나누는 추상화 과정을 조명했다. 이 범주들은 실재의 일부일까, 아니면 언어로만 존재할까? 2,000년 후에도 철학자들은 여전히 이 텍스트들과 씨름한다. … 역설을 없애는 한 가지 방법은 매개체를 정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호한 단어와 헝클어진 구문을 없애고 엄밀하고 순수한 기호를 쓰면 된다. 즉, 수학에 기대는 것이다.

20세기 초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기호체계만이 오류나 역설 없이 논리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꿈은 착각으로 판명이 났다. 역설이 천천히 파고들었지만 논리학과 수학의 길이 만나기 전까지 누구도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학 역시 기록의 발명 … 그리스는 종종 … 현대 수학의 원류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한 칼데아 수비학이라는 다른 전통을 스스로 언급 … 이 전통은 … 19세기 말까지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기원전 3000년 경 유프라테스 강의 충적지로 길가메시 왕이 살던, 아마도 세계 최대의 요새 도시인 우루크Uruk에서는 700여 개의 기호로 구성된 문자체계가 꽃을 피웠다. 이 지역은 20세기 내내 독일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됐다.

해독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 몇몇 유럽인들은 먼저 화부터 냈다. 17세기 성직자인 토머스 스프랫Thomas Sprat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시리아인과 칼데아인 그리고 이집트인들에게 지식의 발명을 빚졌다.” 하지만 또한 이들은 이상한 문자로 지식을 감춤으로써 “부패”시키기도 했다.

최초로 기록된 언어인 수메르어는 문화나 말 속에 다른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 수메르어는 알려진 후계어가 없는 드물고 고립된 언어였다. 학자들이 판독한 우루크 점토판의 내용은 비망록, 계약과 법조문, 보리, 가축, 기름, … 거래를 위한 청구서와 영수증 등 … 평범한 것들이었다. 시나 문학작품 같은 것들은 그 후 수백 년 동안 설형문자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림 6] 우루크 점토판. 한 기관의 창고에 저장된 맥주 배분에 대한 기록. 기원전 3200~3000. (출처 : wikipedia)

당시에도 설형문자는 계산과 측량을 위한 기호들을 포함 … 기호들은 수와 무게를 나타냈다. 보다 체계적으로 수를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메소포타니마가 위대한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통일된 기원전 1750년 무렵의 함무라비 시대였다. 함무라비는 … 기록과 사회 통제를 연계하여 제국을 건설했다.

기록은 국가를 운영하는 새로운 수단 … 이 모델은 공문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우리의 정부까지 이어졌다. 수의 표기는 정교한 체계로 발전했다. … 바빌로니아 체계는 십진법이 아니라 육십진법을 따랐다. … 큰 수를 만들 때는 위치 기수법을 사용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피타고라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1차 방정식, 2차 방정식, 피타고라스 수를 계산해냈다. 그리스 수학과 비교할 때 바빌로니아 수학은 실용적인 문제 외에는 기하학을 강조하지 않았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수를 특정한 자리에 놓아서 수의 ‘사본’을 만들고, 수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방법을 기록했다. 추상적 자리를 차지하는 추상적 양이라는 개념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다시 등장했다. 기호symbol는 어디에 있을까? 기호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던지는 것조차 저절로는 생기지 않는 자기의식이 필요했다. 이 질문들은 한번 제기된 후에는 계속 남았다. … 기록은 그 자체로 인간의 의식을 바꿔놓아야 했다. 기록문화를 통해 얻은 많은 능력 중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능력이었다.

안타깝게도 글은 움직이지 않는다. 안정적이며 변하지 않는다. 이후 1,000년 동안 문자문화가 역사와 법, 과학과 철학, 예술과 문학 자체에 대한 사변적 해설과 같은 수많은 선물을 안겨주면서 … 이들 중 어느 것도 순수한 구술성에서 나올 수 없었다. … 시대와 장소를 넘어 유지하려면 상당한 문화적 에너지가 필요했다.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의 비판에 따르면 활자는 좁은 의사소통 채널 … 단선적이며 심지어 파편화되어 있다. 반면 말은 … 몸짓과 접촉을 수반하여 생생하게 이뤄지는 의사소통이다

300년 전 문자 해독 능력이 새롭게 대두하던 시기의 이점을 누렸던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 문자문화가 발달하기 전의 문화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조야한 경험을 하며 살았다. 아무 체계가 없었다. …”

매클루언이 옳았을까, 아니면 홉스가 옳았을까? 여기서 우리가 갖는 양가감정은 플라톤에서 시작 … 글쓰기의 부상을 목격한 플라톤은 글의 힘을 설파하면서도 글의 무생명성을 두려워했다. 플라톤이 우려했던 ‘망각’은 나타나지 않았다. 플라톤 자신이 스승인 소크라테스 그리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개념을 만들고 이것들을 범주로 나누고, 논리의 규칙을 정하면서 기록하는 기술의 잠재력을 살렸기 때문이다.

… 지식의 원자는 단어였다. … 어디에서 단어를 찾아야 할까? 물론 사전 속이다. … 옹(Walter J. Ong. 1912-2003)은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에는 사전이 없다는 것, 사전편찬은 언어가 만들어지고 한참 후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제3장. 두 개의 단어집 : 글의 불확실성, 철자의 비일관성

시골학교 교장이자 사제였던 로버트 코드리(Robert Cawdrey. 1583-1604)는 『어렵고 흔한 영어 단어들의 올바른 철자와 뜻을 담고 가르치는 알파벳순 표』라는 … 책을 만들(었다)… 표제지에는 … 출판사의 소재지가 최대한 정확하게 정식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 런던과 같은 혼잡한 거리에서도 주소 숫자로 상점이나 집을 찾는 일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알파벳은 명확한 순서가 있었고, 이 순서는 일찍이 페니키아시대부터 내내 차용과 진화를 거치면서 유지되어 왔다.

코드리가 살던 때는 정보 빈곤의 시대였다. 물론 코드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당시는 각각의 단어를 적을 때 미리 정해진 특정 글자를 취해 써야 한다는 ‘철자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다. … 단어는 일시적으로 그때그때 사용되고 다시 사라지는 것이었다. … 펜에 잉크를 묻힐 때마다 무엇이든 적당해 보이는 철자를 새로 골라 썼다. 하지만 … 인쇄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문자 언어는 특정한 방식으로 ‘적어야 한다’라는 인식이 생겼다.

거의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철자법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 사람은 런던의 학교장인 리처드 멀캐스터(Richard Mulcaster. 1531-1611) … 멀캐스트는 『우리 영어 바로 쓰기 입문 1부』(1582년 . 2부는 나오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입문서를 썼다. … 이 책은 약 8,000개의 단어의 목록과 사전을 만들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다른 동기부여(는) … 바로 상업과 운송의 빠른 발달로 외국어를 접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영어가 많은 언어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 “외국인과 이방인들은 우리의 글쓰기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글자가 비일관적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멀캐스터)

당시 영어 사용 인구는 5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개중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겨우 100만 명 정도였다. 세계의 모든 언어들 중에서도 영어는 이미 가장 변화가 많고, 많이 섞였으며, 가장 다원 발생적인 언어였다.

코드리가 단어집을 펴내고 400년이 지난 후 존 심프슨(John Simpson. 1953-)이 같은 길을 걸었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OED; Oxford English Dictionary)의 편집자였던 심프슨은 어떤 면에서 코드리의 후계자였다. … 심프슨이 본 코드리는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심지어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 코드리는 관습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말썽을 일으켰다. … 당시 코드리는 단어들을 수집했다. … 1604년 간략한 정의를 붙인 단어들 목록에 불과한 책(을 펴냈다) …

왜 이런 책을 냈을까? 심프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미 그가 언어를 평이하게 하기 위해 헌신했으며, 완고할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안다.” 코드리는 여전히 설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말에서 코드리는 분명하게 말한다. “… 절대 낯선 현학적인 말을 쓰지 마라. 흔하게 쓰이고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써라.” 코드리가 특히 강조한 것은 외국인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코드리는 ‘모든 ‘ 단어를 집대성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1604년 무렵은 셰익스피어가 3만 개에 달하는 어휘들을 동원하여 대부분의 희곡을 쓴 상태였지만, 코드리나 다른 사람들은 이 단어들을 접할 수 없었다.

코드리는 … “우리가 말하기에 적절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어렵고 흔한 단어”만을 목록에 담았다. … 코드리가 만든 책은 최초의 영어사전이었다. ‘사전’이라는 단어는 거기에 들어 있지 않았다.

『알파벳순 표』를 만들면서 단어를 알파벳 순서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았다. 글을 아는 사람도 알파벳 순서에 익숙하지 못(했다) … 코드리는 작은 지침서를 만들려고 했다. 알파벳 순서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제노바의 수사인 요하네스 발부스(Johannes Balbus. ?-1298)는 1286년에 쓴 『카톨리콘Catholicon』에서 이 일을 시도한 바 있었다.

알파벳순 목록은 기원전 250년 무렵 나온 알렉산드리아의 파피루스 문서들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책을 정리하면서 적어도 일부는 알파벳순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자료 큐모가 컸기에 …

알파벳순은 관습적으로 고유의 순서가 있는 소수의 분절적 기호 집합인 자모를 가진 언어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알파벳 순서 체계는 부자연스러웠다. 알파벳 순서는 사용자가 의미에서 정보를 분리하게 한다.** 단어를 문자열로만 보게 하고 …. 나아가 알파벳순은 역관계를 이루는 한 쌍의 절차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목록을 구성하는 분류 그리고 항목을 찾는 검색이다. 알파벳 순서를 아는 사람은 의미를 전혀 모르더라도 수천 혹은 수백만 개의 목록에서 어느 항목이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1613년에야 비로소 최초의 알파벳순 목록이 만들어졌다. 인쇄되지 않고 수기로 쓴 책으로, 옥스퍼드 보들리안 도서관을 위해 만들어진 두 권짜리 작은 편람(Annals of the Bodleian Library)이었다.

단어를 정리하는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맨 처음 등장해 오랫동안 활용된 것이 있다. 중국에서 사전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수 세기 동안 사용된 책은 기원전 3세기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이 『이아(爾雅, Erya)』였다. 이 책은 2,000개의 단어를 의미에 따라 혈연, 건물, 도구와 무기, 하늘, 땅, 식물과 동물 같은 항목으로 분류했다.

[그림 7] 『이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의어 사전이자 언어 해석 사전. (글,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이집트인들은 철학적이거나 교육적 원칙에 따라 정리한 단어목록을 만들었다. 아라비아인들도 마찬가지 … 대개 단어 자체가 아니라 단어가 의미하는 세계를 정리한 것 …

코드리의 시대로부터 1세기 후,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둘의 차이를 명쾌하게 지적했다. “… 모든 사물과 행동을 가리키는 단어 혹은 이름은 알파벳과 속성, 이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목록을 만들 수 있다. … 전자는 단어에서 사물로 가고, 후자는 사물에서 단어로 간다.”

코드리가 결정적 모델로 삼은 것은 번역용 사전, 특히 1587년 토머스 토머스(Thomas Thomas.)가 만든 라틴어-영어사전인 「사전Dictionarium』이었다. … 사람들이 어려운 단어들을 이해하고 쓰도록 돕는 것이 코드리가 밝힌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의가 핵심이었다. 코드리가 보기에 ‘정의하다(define, 어떤 사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라는 단어는 사물에 쓰는 것이지 단어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 코드리에게 사물과 단어의 관계는 사물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았다.

현대적 의미로 정의의 뜻이 명확해진 것은 코드리와 그 후계자들 이후로 거의 1세기가 지난 후 … 1690년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 이렇게 썼다. “정의는 바로 해당 용어가 나타내는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이해시키는 것이다.” 로크는 여전히 기능적 시각을 취했다.

코드리는 참고자료들에서 정의를 빌려오고, 합치고, 개정했다. 많은 경우 그냥 하나의 단어를 다른 단어와 연결시켰다. … 일부 단어들이 속한 범주를 가리키는 설명에는 ‘~의 일종’을 뜻하는 특별한 표시인 ‘k’를 붙였다. 하지만 동의어나 범주로 모든 단어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 그래서 코드리는 때로 하나 이상의 동의어를 추가하는 삼각측량식 정의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개념과 추상적 관념을 나타내면서 구체적인 감각의 영역과는 동떨어진 단어들의 경우 완전히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코드리는 … 이런 방식을 만들어나갔다.

가장 설명하기 까다로운 것들은 새로운 학문 분야에서 나온 전문 용어였다. … 단어들뿐만 아니라 지식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코드리가 설명한 어렵고 흔한 단어 중에 ‘science'(“지식 혹은 기술”)가 있었다. 당시 science는 아직 물리적 우주와 그 법칙들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었다. 박물학자들이 단어의 속성과 그 의미에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611년 … 태양 흑점을 발견한 갈릴레오는 즉시 논쟁이 일 것을 예상했고, 우선 언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과학이 진전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 태양을 “가장 순수하고 밝은 것”으로 부르는 한 태양에는 어떤 그늘이나 불순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태양은 부분적으로 불순하고 반점이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이름과 속성은 사물의 본질을 따라야 하며,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에 사물이 먼저이고 이름은 나중입니다.”

… 뉴턴은 가장 필요한 곳에 정의가 근본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 “나는 시간, 공간, 장소, 운동을 익히 알려진 대로 정의하지 않는다.” 이 단어들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그의 목적이었다.

코드리(는) … 1604년 펴낸 『알파벳순 표』와 함께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다. … 『알파벳순 표』의 존재는 포괄성 면에서 곱절이었던 새로운 사전, 『영어 해설집』(An English Expositor. 1616)에 의해 가려졌다.(편찬자 존 불로커John Bullokar. 1574-1627).

이후로는 1656년 런던의 변호사인 토머스 블런트(Thomas Blount. 1618-1679)가 펴낸 『용어사전Glossographia』이 있었다. 블런트의 사전은 1만 1,000개가 넘는 단어를 수록 … 많은 단어들이 무역과 상업으로 시끌벅적했던 런던으로 들어온 신조어였다.

블런트는 자신이 움직이는 목표물**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전편찬자의 “노고”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어는 매일매일 바뀌기 때문이다.” 머리말에 쓴 말이었다. 블런트는 코드리보다 훨씬 상세한 정의를 제시했으며 어원에 대한 정보까지 담으려 노력했다.

불로커와 블런트는 코드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잊힌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1933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초대 편집자들은 … 코드리가 만든 “얇고 작은 책”에 경의를 표했다. 사전과 사이버공간의 만남은 양쪽 모두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전통과 유산을 무척 사랑하기는 하지만, 심프슨은 좋든 싫든 혁신을 이끌고 있다. 코드리는 고립되어 있었지만 심프슨은 연결되어 있었다.

… 세계적으로 사용 인구가 10억을 넘어선 영어는 격변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 사전편찬자들이 귀 기울이는 언어는 자유분방하고 확실한 형태가 없어지고 있다. … 사전은 관찰하고자 하는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 사전은 마지못해 권위적인 역할을 맡는다.

1세기 전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 1842-1914)가 사전에 내린 냉소적인 정의 … “사전은 언어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며, 언어를 어렵고 융통성 없게 만드는 악의적인 문학적 도구이다.”

요즘 사전편찬자들은 어떤 특정한 용법이나 철자를 주제넘게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전은 단어의 지속성을 승인한다. … 또한 모든 단어가 총체적으로 서로 맞물린 구조를 형성 … 모든 단어가 다른 단어를 통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를 볼 수 없는 구술문화에서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인쇄술(그리고 사전)이 언어를 세밀하게 검토할 수 있는 독립적 대상으로 부각시켜야만 비로소 단어의 의미가 상호의존적이고 심지어 순환적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 논리학 기법들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순환성이 문제로 대두 …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이렇게 불평했다. “설명을 하려면, 나는 이미 언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1900년 제임스 머리(James Murray. 1837-1915)는 이렇게 말했다. “영어사전은 영국 헌법과 마찬가지로 어떤 한 사람의 그리고 어떤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자체적으로 만들어진다.”

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된 『역사적 원칙에 따른 새 영어사전A New Dictionary on Historical Principles』 … 41만 4,825개의 단어가 실린 이 10권짜리 사전은 … 편찬 작업에는 수십 년이 걸렸고, 그 사이 머리가 사망했으며, 심지어 제본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1989년 2판이 나올 때까지 몇 권의 부록들이 만들어졌다. 2판은 총 20권에 2만 2,000페이지 … 3판은 달랐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3판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 … 2000년부터는 전체 콘텐츠에 대한 개정판이 분기마다 온라인으로 게재되었다.

편찬자들은 한 글자씩 개정해나가면서, 어디서 나왔든 새로 등장한 신조어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알파벳순 차례를 기다렸다 넣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았다. 옥스퍼드 사전편찬자들은 유행의 노예가 아니었다. 원칙적으로 신조어가 등재되려면 5년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 …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 한 번 등재된 단어는 삭제될 수 없다.

코드리(Robert Cawdrey. 1583-1604. 『어렵고 흔한 영어 단어들의 올바른 철자와 뜻을 담고 가르치는 알파벳순 표』라는 … 책을 만들었다)가 모은 2,500개의 단어는 모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중 31개의 단어는 『알파벳순 표』에 처음 등장하는 용례였다. 또한 몇몇 단어들은 『알파벳순 표』에만 나오는 단어였다. 이 단어들을 처리하는 일은 골칫거리였다. 한번 등재되면 삭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라면 단일 출처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 몇몇 개인들은 자신이 만든 임시어nonce-word를 … 올리려고 애를 쓴다. 사실 ‘임시어’라는 단어는 제임스 머리(James Murray. 1837-1915. 제1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자)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언어의 유동성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사전이 결정화crystallization의 대리인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철자법 문제가 특히 그렇다. “역사를 통틀어 발견된 단어의 ‘모든’ 형태”를 담아야 한다. 이들은 근거를 조사해 “가장 흔한 현재 표기”를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도 자의적인 면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코드리는 자신의 시대 너머를 보지 못했다. 반면 새뮤얼 존슨은 사전의 역사적 차원을 보다 선명하게 인식했다. 존슨은 자신의 … 작업이 어떤 면에서는 언어라는 야생의 존재를 길들이는 수단이라고 해명했다. …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시대를 포괄해 언어의 모든 형태를 밝히려는 시도가 없었다.

제임스 머리가 새로운 사전을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은 단어들을 찾고, 이들 단어의 역사를 보여주는 표지를 함께 세우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까지 최고이자 가장 방대한 영어사전은 미국 사전 … 노어 웹스터사전으로, 7만 단어를 수록 … 이 수치는 기준선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단어들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초대 편집자들에게 … 출처나 원천은 당연히 문학작품, 특히 명저와 양서들이었다 … 밀턴과 셰익스피어, 필딩과 스위프트, 역사와 강론, 철학자들과 시인들을 샅샅이 훑었다. … 머리는 미지의 영역이 넓기는 해도 끝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전편찬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 모든 단어를 찾겠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유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전편찬자들은 언어에 경계가 없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 “영어의 영역을 보면 중심부는 명확하지만 가장자리는 흐릿하다”라는 머리의 유명한 말 … (그러나) 중심부에도 무한함과 모호함이 존재한다.

“우리가 쓰는 … 언어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변덕에 의해 … 이 단어들은 매 순간 관계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이런 단어들을 사전 안에 정확하게 담아내는 일은 폭풍우에 흔들리는 작은 숲이 물속에 비친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만큼 어렵다…”(새뮤얼 존슨)

영어에는 더 이상 과거에 존재했던 지리적 중심지 같은 것이 없다. 사람들의 담화라는 우주에는 항상 벽지가 있기 마련이다. … 물론 지금은 그렇게 따로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어느 때보다 골짜기들이 많…다.

전체 단어를 모아놓은 것(어휘)이 언어의 기호 집합을 이룬다. … 어휘는 근본적인 기호 집합 … 단어는 모든 언어가 인정하는 첫 번째 의미 단위 … 단어들은 보편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달리 보면 전혀 근본적이지 않다.

… 언어의 메시지는 알파벳, 점과 선, 높은 북소리와 낮은 북소리 등 훨씬 작은 기호 집합으로 분할, 구성, 전송될 수 있다. 이 기호집합들은 분절적이지만 어휘는 그렇지 않다. 더 너저분하고, 계속해서 증가 …

어휘는 상호연결성에서 나오는 공유된 경험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 … 4세기 만에 영어 인구가 500만 명에서 10억 명으로 늘어났지만 … 결정적인 요소는 이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형성된 연결망의 개수이다. 수학자들은 메시지 전송이 기하급수적이 아니라 조합적으로 훨씬 빠르게 증가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 정보 전달 방식을 바꿈으로써 언어를 변화시키고 있다. … 차별 없이 섞이고 수백만 명에게 퍼트리고, 소규모 집단에 내보내며, 일대일 채팅을 하게 만든다 … 이는 연산기계의 발명이 낳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처음에 연산기계는 수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제4장. 생각의 힘을 기어장치에

찰스 배비지는 … “사물의 원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다. …” 증기와 기계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몰두 … 암호해독, 자물쇠 따기, 등대, 나이테, 우편처럼 1세기 후에나 그 논리가 명확해진 다양한 분야 연구를 취미로 삼았다.

말하자면 직업 수학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는 최고의 기계 공구를 찾아서 전국의 공장과 제작소를 돌아다니고 있던 … “… 공장들을 탐방하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교육적인 일은 드물다. 거기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지식의 풍부한 광맥이 있다.”(찰스 배비지)

배비지는 자신만의 기계를 만들었다. … 배비지는 이 기계를 개선하는 데 오랜 세월을 보냈다. 물론 개선 작업은 모두 마음속에서 형태를 바꿔가며 이뤄졌다. 그 어느 곳에서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실패작인 동시에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였던 것이다.

“국가적 자산으로 삼기 위해 국가 예산을 들인” 이 산학프로젝트는 의회가 1,500파운드의 지출을 승인한 1823년부터 … 1842년까지 20년 가까이 재무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거대 규모로 진행되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 하지만 훨씬 이후에 재발견되었고 …

[그림 8] 차분기관 2호. 찰스 배비지의 설계를 바탕으로 일부 수정을 거쳐 19세기에 구현이 가능했던 기술 수준 내에서 1989~1991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런던 과학박물관 소재. 차분기관이란 다항함수를 계산하기 위한 기계식 디지털 계산기이다. (출처 : 위키백과)

배비지의 기계는 … 특정한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바로 숫자였다. 이로써 이 기관은 구체적 물질세계에서 순수한 추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를 열었다. 원자재도 들어가지 않았다. … 다만 기어를 돌리는 데 상당한 힘이 필요 … 모든 톱니바퀴 장치는 방 하나를 채울 만큼 컸으며, 무게가 수 톤 …

배비지는 세상이 이런 산술적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 사실을은 “자연과 예술의 상수”였다. 따라서 어딜 가나 이런 사실들을 모았다. … ‘포유동물의 상수표’를 만들고, … 기대수명표를 만드는 통계적 수단을 발명했다. 배비지에게 가장 중요한 표는 가장 순수한 표였다. 다시 말해 추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패턴, 우아하게 오와 열에 맞춰 가로세로로 깔끔하게 늘어서 있는 숫자들…만으로 이뤄진 표였다.

숫자책. … 1762년 엘리 드 용쿠르(Élie de Joncourt. 1697-1765)는 … 1만 9,999개의 첫 삼각수를 기록한 작은 4절판 책자를 만듦으로써 나름의 기여를 했다. 책은 정확성과 완벽성 그리고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보물 상자 …

숫자표는 인쇄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책 산업의 한 축 …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단어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아부 압둘라 모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는 9세기 바그다드에서 활동하면서 삼각함수표를 만들었다. 이 표는 수백 년 동안 필사와 수제작을 통해 서쪽으로는 유럽,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퍼져나갔다.

[그림 9] 아부 압둘라 모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Abu Abdulah Muhammad ibn Musa al-Khwarizmi. 780-847). 페르시아의 수학자.(출처 : wikipedia)

숫자책의 유용성을 발견한 이들은 상인들 … 1582년 시몬 스테빈은 은행가와 고리대금업자들이 쓸 수 있도록 이자표를 정리한 「이자 계산표」를 만들었다. … 인도로 항해를 나선 콜럼버스는 항해 보조 수단으로 레기오몬타누스가 만든 도표책을 들고 갔는데, … 

용쿠르의 삼각수표는 이런 표들부다 더 순수했다. 그런 면에서 또 쓸모없는 것이기도 했다. 모든 임의의 삼각수는 하나의 알고리즘, 즉 n에 n+1을 곱한 후 2로 나누면 쉽게 구할 수 있다. … 전체 명세표는 … 공식 한 줄로 금세 줄어든다. 이 공식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 누구나 필요에 다라 어떤 삼각수라도 만들 수 있었다. … 그럼에도 용쿠르와 헤이그의 출판업자…는 … 삼각수를 나열한 표를 금속활자로 인쇄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 숫자표가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 … 계산하는 데 들어가는 노고와 책에서 찾아보는 것을 비교해 값어치를 평가했다.

영국 경도심사국Board of Longitude은 1767년부터 해마다 해, 달, 항성, 행성, 목성의 위성들의 위치표를 담은 『항해력Nautical Almanac』을 펴냈다. 이때부터 50년 동안 항해력은 연산자들(모두 재택 근무하는 34명의 남자와 여성 한 명 메리 에드워즈로 이뤄진) 네트워크로 꾸려 만들었다. … 연산은 가내수공업으로 이뤄졌다.

17세기에 나온 발명품이 전체 사업을 촉발시켰다. 이 발명품 자체가 하나의 수였다. 바로 ‘로그’였다. “로그는 산술과 기하학에서 계산을 더 쉽게 만들기 위해 발명된 수이다. 로그라는 이름은 비율을 뜻하는 ‘로고스’와 수를 뜻하는 ‘아리스모스’를 합친 것에서 나왔다. 산술에서 로그를 활용하면 모든 까다로운 곱셈과 나눗셈을 피하고, 곱셈을 덧셈으로, 나눗셈을 뺄셈으로 대체할 수 있다.” (헨리 브리그스)

그 무렵 에든버러에서는 “지금까지 수학 계산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없애준다”라고 약속하는 책(J. Napier. 1614. 『The Description of the Wonderful Canon of Logarithms』(pdf). 라틴어를 에드워드 라이트가 1616년에 영어로 옮겼다)이 나왔다. … 이 새로운 책은 … 마치 암흑세계에 떨어진 전등과 같았다. 책을 쓴 사람은 머치스턴 성의 8대 영주 … 수학을 취미로 삼던 부유한 스코틀랜드인, 존 네이피어였다. … 브리그스는 스코틀랜드로 성지순례를 갔고 … 영주와 함께 공부하며 몇 주 동안 머물렀다.

로그를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멱지수라 할 수 있다. … 하지만 네이피어는 자신의 생각을 멱지수에 따라 표현하지 않았다.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네이피어는 차과 비율 사이의 관계를 생각했다. 

1 2 3  4  5 … (밑이 2인 로그)
1 4 8 16 32 … (정수)

이 로그표를 투박하다고 하는 이유는 정수로 된 멱지수는 쉽기 때문 … 로그표가 유용하려면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정확하게 표시되어 빈틈을 메워야 한다. 네이피어는 … 유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차와 비율의 관계는 덧셈과 곱셈의 관계 … 이 두 기수법을 나란히 배열함으로써… 곱셈을 덧셈으로 전환하는 실용적 수단을 준 것이다. 사실상 힘겨운 계산을 쉬운 일로 바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수단은 일종의 번역 내지 인코딩encoding이다. 정수는 로그로 인코딩된다. … 물론 네이피어는 인코딩 개념을 사고할 수 없었다.

브리그스는 『로그 산술Logarithmicall Arithmetike』을 쓰면서 필요한 수열을 개정, 확장하고 실용적 응용사례를 가득 넣었다. 로그 외에도 연도별 태양의 적위표, 경도와 위도를 활용한 거리 측정법, … 금융 문제와 관련해서 기간별 이자계산법을 넣기도 했다.

이 흥미로운 발견도 요하네스 케플러에 닿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케플러(는) 1627년 … 티코 브라헤의 자료를 가지고 로그를 활용하여 천문표를 완벽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케플러의 표는 중세시대 선배들이 만든 어떤 표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했다. 이런 정확도로 인해 행성들이 타원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도는 조화로운 태양계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가능했던 것이다.

찰스 배비지는 뉴턴과 함께 시작된 세기가 끝날 무렵인 1791년 12월 26일에 태어났다. … 배비지의 유년 시절 런던은 어딜 가나 기계시대의 꽃이 활짝 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부류의 기획자들이 등장해 전시회에서 기계들을 선보였다. 개중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끈 것은 … 정교하고 섬세한 자동인형 혹은 기계인형이었다.

한편 기계 계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수학을 좋아했던 소년 배비지는 닥치는 대로 수학책을 구해 혼자 조금씩 공부했다. 1810년 …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Trinity College에 입학… 하지만 곧 실망하고 말았다.

배비지는 외서를 구해 읽기 사작 … 프랑스의 책들이었다. … 배비지가 옳았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은 정체되어 있었다. 1세기 전 뉴턴은 케임브리지대학의 역대 두 번째 수학교수가 됐고, 수학의 모든 힘과 위신은 그가 남긴 유산 … 이제 뉴턴의 거대한 그림자는 영국 수학계의 저주로 남아 있었다.

현대 수학의 최신 흐름을 접하려면 … 다른 곳으로, 다른 대륙으로, 다른 ‘해석analysis’으로, 뉴턴의 경쟁자이자 숙적인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미분의 언어로 눈길을 돌려야 했다. 근본적으로 계산법은 오직 한 가지 …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자신들의 연구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알았다. 하지만 … 상반되는 표기체계, 즉 다른 언어를 고안했고, 현실적으로 이런 표면적 차이는 이면의 동일성보다 더 중요했다.

수학자는 결국 기호와 연산자를 가지고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 “새로운 언어로 사고하고 추론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사실 배비지는 언어 자체는 철학적 연구에 걸맞는 주제라고 보았다. … 배비지는 … 보편적인 언어를 발명 혹은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 배비지는 적절하게 선택된 기호들은 보편적이고 명징하며 불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던 배비지는 가까스로 문법을 만들어서 어휘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저장과 검색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배비지는 언어를 한 사람이 발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상적인 언어는 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기계적이어야 한다. 기어는 서로 맞물려야 한다.

아직 학부생에 불과했지만 배비지는 영국 수학을 새롭게 부활시킨다는 목표를 세운다. … 배비지는 … 존 허셜(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1st Baronet. 1792-1871. 영국의 천문학자, 수학자), 조지 피콕(George Peacock. 1791-1858. 잉글랜드의 수학자)과 함께 해석학회(Analytical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단체의 목표는 “점의 이단” 혹은 배비지의 표현대로 “대학의 점 시대(Dot-age)”에 맞서 “‘d’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노망난 영국에서 계산법을 해방시키기 위한 운동 … 해석학회는 진지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상을 더 지혜롭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라는 각오 … 이들은 방을 빌려 서로 돌려가며 논문을 읽었고 “회보”를 출판했다.

뛰어난 발명이라면 유레카 이야기가 있듯, 배비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당시 배비지는 허셜과 함께 케임브리지 천문학회에 제출할 로그표 원고를 쓰고 있엇다. … “하느님, 이 계산을 증기의 힘으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배비지가 소리치자 허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가능해.”

증기는 산업의 기반이었던 모든 엔진의 동력원이었다. … 그렇다고 해도 이 강력한 힘, 증기를 사고와 산술에 쓰겠다는 배비지의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배비지의 방앗간에서 찧을 곡물은 숫자였다. 배비지는 이런 작업이 자동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계가 ‘자동’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의미론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기계의 효용을 결정하는 원칙이었다.

… 계산기는 두 가지 범주 … 첫째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 것… 둘째는 진정으로 자가 작동(self-acting)하는 것 … 기계가 자동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이런 질문이 필요했다. “숫자들이 장치에 들어갔을 때 그저 스프링의 동작이나 중량에 따른 하강 혹은 다른 일정한 힘만으로도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배비지는 숫자들 내의 기계적 법칙(원리)들을 찾아냄으로써 한 걸음 나아갔다. 하나의 수열과 다른 수열 차이의 차분을 계산하면 몇몇 구조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차분법’은 수학자들, 특히 프랑스 수학자들이 100여 년간 탐구하던 것 … 차분법의 힘은 고차원의 계산을 쉽게 규칙화할 수 있는 단순한 덧셈으로 바꾸는 것에 있었다. 배비지에게 차분법은 매우 중요 … 처음 구상할 때부터 자신의 기계에 차분기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다항함수라도 차분법으로 환원할 수 있으며, 로그를 포함해 모든 순응적(well-behaved) 함수를 효과적으로 근사할 수 있다. … 차분기관은 … 차분을 얻기 위해 뺄셈을 반복하는 대신 단계적 덧셈을 통해 수열을 생성한다. 배비지는 이를 위해 0부터 9까지 숫자가 새겨진 숫자 바퀴들을 축을 따라 배치하여 1자리, 10자리, 100자리 등 십진수를 나타내는 장치를 구상했다.

바퀴에는 기어들이 달린다. 각 축을 따라 배열된 기어들은 옆 축의 기어와 맞물려서 다음 자리를 더한다. 이 기계는 바퀴에서 바퀴로 동작을 전달하면서 정보, 즉 여러 축에 걸쳐서 더해지는 숫자들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전달한다. 물론 합이 9를 넘으면 … 1자리는 다음 자리로 올려져야 한다. 배비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바퀴의 9와 0 사이에 튀어나온 톱니를 달았다. 이 톱니가 레버를 밀면 레버는 위에 있는 다음 바퀴를 움직인다.(책 p.144의 그림) … 연산기계의 역사에서 새로운 주제(는) … 시간에 대한 집착 … 배비지는 자신의 기계가 가능한 한 사람의 머리보다 빨리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비지는 … “시간을 절약하려고 장치를 숱하게 설계하고 도면들을 끝도 없이 만들었다.” 이윽고 1820년 무렵 설계안을 확정 … 금속 세공사를 고용해 마침내 1822년 미래에나 볼 법한 혁신적인 모양의 반짝이는 자그마한 기계 모델을 왕립학회에 선보일 수 있었다.

그저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이었지만 차분기관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 하지만 차분기관은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배비지는 런던 집 뒤편의 마구간을 헐고 대장간, 주조소, 방화 처리된 작업장을 차렸다. … 제고공이자 발명가인 조셉 클레멘트(Joseph Clement. 1779-1844)를 고용했다. 10년 후 차분기관은 0.6미터 높이에 여섯 개의 수직축과 열두어 개의 바퀴를 가진 기계로, 여섯 자리까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에는 설계도상으로 그 규모가 4.5세제곱미터에 15톤, 2만 5,000개의 부품에 이르렀으며 …

복잡함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배비지는 여러 자릿수를 한번에 더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덧셈 동작”과 “자리올림 동작”을 분리하고 자리올림의 타이밍을 엇갈리게 배치했다. 이 기본적인 덧셈이 이뤄지는 과정을 일상 언어로 설명하려면 현란한 말들이 총출동해야 한다. 금속 부품들 명칭을 지정하고, 이 부품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인과관계의 사슬을 형성하기 위해 얼마나 상호의존성이 커졌는지를 정리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종이 위에 완벽하게 구현하는 일이 가능할까? … 배비지는 새로운 형식적 도구인 “기계적 표기법”(배비지의 표현이다)의 체계를 고안했다. 기계적 표기법은 기계의 물리적 형태 … 타이밍과 논리까지 나타내기 위한 기호 언어였다. 1826년 배비지는 왕립학회에 「기계의 동작을 기호로 표현하는 수단에 대해」(A Comparative View of the Various Institutions for the Assurance of Lives.)라는 논문을 보란 듯이 제출한다. 기계적 표기법은 … 분류하는 일이었다.

배비지는 마침내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수가 된다. 이전에 뉴턴이 맡았던 명망 높은 루카스 석좌 수학교수 자리였다. … 런던 사교계의 유명한 마당발이었던 배비지…는 토요일 밤마다 원 도싯(One Dorset) 거리에 있는 자택에서 정치인, 예술가, 공작과 공작부인, … 찰스 다윈, 마이클 패러데이, 찰스 라이엘 같은 당대 최고의 영국 과학자들이 모이는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명성을 얻게 했던 차분기관의 제작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1832년 배배지와 엔지니어인 클레민트는 시제품을 내놓는다. … 시제품을 본 손님들은 놀라워하거나 어리둥절해할 따름이었다. 차분기관은 정밀공학이 성취한 이정표를 보여주었다. … 그럼에도 차분기관은 특이한 물건 이상은 아니었다. 거기까지가 배비지의 한계였다.

배비지는 클레멘트와 갈등을 빚었다. … 10년 넘게 1만 7,000 파운드를 쏟아부은 정부는 배비지를 신뢰하지 않았고, 배비지도 마찬가지로 정부를 믿지 않았다. … 결국 정부는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하지만 배비지의 꿈은 계속되었다. 이미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 여기서 에이다 바이런(Ada Byron)이 등장한다. 에이다…의 아버지는 시인이었다. … 에이다가 태어나고 채 한 달이 안 되어 … 바이런 경과, 밝고 부유하고 수학적 소양이 높았던 스물 세 살의 앤 이사벨라 밀뱅크(Anne Isabella Milbanke)는 결혼 1년 만에 갈라섰다. 바이런은 영국을 떠났고, 이후 다시는 딸을 보지 못했다.

[그림 10] 에이다 바이런(1815-1852). 영국의 수학자, 작가. (출처 : wikipedia)

에이다는 수학을 아주 잘했고, 그림과 음악에 소질이 있었으며,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이고 대단히 사랑스러운 신동이었다. … 에이다는 어머니가 꾸미고 관리한 온실 안에서 성장했다. 오랫동안 병약하게 지냈고, 심한 홍역을 앓았으며, 신경쇠약 혹은 히스테리로 불리는 병에 시달렸다. 에이다가 배비지를 만난 것은 … 어머니 바이런 부인이 “생각하는 기계”라 부른 것(차분기관의 일부)을 보러 배비지의 저택 응접실에 함께 갔을 때였다. … 배비지는 그녀가 찾고 있던 혜안가로 보였다. 기계 역시 감탄할 만했다.

당시 상황을 본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다른 방문객들이 … 미개인들처럼 쳐다보았다면, 바이런 양은 어린 나이임에도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 발명품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 당시 영국에서 여성은 대학에도 들어갈 수 없었으며, 학회에도(식물학회와 원예학회는 예외) 가입할 수 없었다.

배비지는 응접실에 있는 기계를 넘어 훨씬 멀리 나아가 있었다. 연산기관이기는 하지만 종 자체가 다른 새로운 기계 … 배비지는 이를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이라 불렀다.

해석기관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차분기관의 한계… 때문… 국립실용과학전시관에 전시된 조셉 마리 자카드(Joseph -Marie Jacquard. 1752-1834)의 방직기도 영감을 주었다. 마리 자카드가 만든 이 방직기는 카드에 구멍을 뚫어 인코딩하고 저장한 지시문에 따라 움직였다. 배비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직조 공정이 아니라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패턴을 인코딩하는 방식이었다.

배비지는 이 추상적인 정보량들이 변수 카드와 연산 카드에 저장되는 것을 상상했다. 아울러 기계가 법칙들을 구현하고, 카드가 이 법칙들을 전달하는 것을 생각했다. 이를 설명할 기존 용어들이 없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작동 개념들을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 모든 일에 처음에는 조수였다가 나중에는 뮤즈가 된 지적 동료 에이다가 함께 했다. 에이다는 … 열 살 연상의 귀족 … 윌리엄 킹(William King)과 결혼했다. 몇 년 후 윌리엄이 러브레이스 백작의 지위에 오르면서 백작부인이 되었으며, 20대 초반 세 명의 자녀를 낳았다. 에이다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정신적 삶의 많은 부분은 배비지에게 있었다. … 에이다의 교사 노릇을 했던 사람은 배비지와 바이런 부인의 친구로,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어거스터스 드 모르간(Augustus De Morgan. 1806-1871)이었다. 모르간이 문제를 보내면 에이다가 답과 생각과 의문을 보냈다.

어느 해 겨울… 에이다는 루빅큐브와 비슷한 … 솔리테어(Solitaire)라는 퍼즐에 푹 빠져 있었다. … 에이다는 … 배비지에게 편지를 썼다. “… 이 문제를 수학공식으로 표현해서 풀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 분명히 해법을 도출할 수 있고, 기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아마도 수적, 기하학적 속성이 복합된 명확한 원칙이 있을 거예요.”(에이다)

게임을 공식으로 풀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독창적이었다. 해법을 인코딩할 수 있는 기호 언어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이런 사고방식은 에이다도 익히 알듯 배비지의 것이었다.

에이다는 자신이 수행해야 할 신성한 사명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 이런 믿음으로 힘이 생긴 그녀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제가 자연의 ‘숨겨진 진실들’을 발견하는 데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는 뛰어난 자질들이 뭉쳐 있다고 믿습니다. … 마침내 에너지를 쏟을 데를 찾았어요.” 에이다가 말한 것은 바로 해석기관이었다.

(찰스) 배비지는 또 다른 신기술 … 증기가 가진 힘을 가장 강력한 형태로 발현한 철도(에 힘을 쏟고 있었다). 갓 설립된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는 브리스틀에서 런던까지 철로를 놓고 시험 운행을 준비 … 감독한 사람은 …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이었다. 브루넬은 배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배비지는 기발하고 거창한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시작 … 객차 한 량을 통째로 준비했다. … 열차를 타고 돌아다니던 배비지는 증기기관차의 속도가 이전의 모든 통신수단의 속도를 앞지른 데서 특이한 위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차들이 서로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가장 규칙적이고 엄격한 운행 일정을 강제하지 않으면 매 순간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 이동 속도와 통신 속도가 차이나면서 … 런던의 한 유력 은행가는 배비지에게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 직원들이 공금을 횡령해서 미국으로 도망치기 위해 리버풀까지 시속 30킬로미터로 도망칠 수 있어요.”

배비지는 1840년 여름, 설계도를 들고 유럽 여행길에 오른다. .. 파리에 있는 … 직물제작소에서 위대한 자카드 방직기를 본 다음 리옹을 거쳐 … 토리노로 갔다. … 수학자인 루이지 메나브레아도 만났다.

메나브레아는 … 배비지의 기획을 유럽 연구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찰스 배비지가 발명한 해석기관의 개요(Notions sur la machine analytique de m. Charles Babbage」(1842)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 이 논문을 구한 에이다는 곧바로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 …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오류들을 수정 … 혼자서 진행했다.(영어로 번역된 논문 보기 링크) 결국 1943년 에이다가 원고 초안을 보여주자 배비지는 크게 반기면서 에이다에게 직접 논문을 써보라고 권했(다)….

(에이다는) 해석기관은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산’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 연산이 “둘 이상의 대상 사이에 성립된 상호 관계를 바꾸는 모든 절차”라고 정의 …

“연산학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과학이다. … 연산은 고유의 추상적 진리와 가치를 지닌다. … 연산학이 지닌 독립적 속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사용하는 많은 기호의 의미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해석기관은 “‘숫자’가 아닌 다른 대상들에도 활용할 수 있다.” … 해석기관은 모든 의미 있는 관계를 처리하고, 언어를 조작하며, 음악을 만들 수 있다. … 해석기관은 숫자를 처리하는 기계에서 이제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가 된 것이다. 에이다는 이 점을 배비지보다는 더 명확하고 창의적으로 인식했다.

에이다는 이 가상의 기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유명한 무한급수인 베르누이 수(Bernoulli number)를 계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이른다. … 베르누이 수를 직접 구하는 공식은 없었지만, 특정 공식을 거듭 확장하면서 매번 계수를 확인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이다는 좀 더 험난한 길을 택한다. “목표는 단순성이 아니라 … 해석기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다는 하나의 프로세스를, 규칙의 집합을, 연속적 연산을 고안 … 당시 이 개념은 설명하기 힘들었다. 가장 복잡한 것은 이 알고리즘이 귀납적이며, 루프 구조를 취한다는 점 …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에이다와 배비지가 “변수”라고 부른 것 … 하드웨어 측면에서 변수는 기계의 열에 있는 숫자판을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변수 카드”도 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변수는 많은 십진 숫자를 가진 수를 나타내거나, 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용기 혹은 봉투 … 

“변수라는 명칭은 열에 있는 값이 변할 수 밖에 없으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에이다) 요컨대 수는 변수 카드에서 변수로, (연산을 위해) 변수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창고로 ‘이동’했다.

에이다는 해석기관을 운용하는 프로그램을 (머릿속에서) 짜고 있었다. “이런 기관을 움직이려면 매우 다양하고 서로 복잡하게 읽힌 것들을 생각해야만 한다. … 모든 것들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어느 정도는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 … 각각을 다른 모든 것들에 맞추기 위해서는, 또 이들을 완벽한 정확성과 성공도로 인식하고 추적하려면 어려움이 따른다. 어떤 면에서는 조건도 무수히 많고 게다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든 질문을 포함하는 그런 어려움 … “

이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해석기관은 … 천문대나 계산가의 사무실, 혹은 쉽게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며 많은 계산이 필요한 곳에 쓰려고 만든 것이다.”

(모두) 해석기관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해석기관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석기관은 앞으로 등장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배비지의 진짜 화두는 바로 메시지 전달, 인코딩, 프로세싱과 관련된 정보였다. 배비지는 … 비철학적인 문제 두 가지에 매달렸다. … 두 문제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바로 자물쇠 따기와 암호해독이었다. 

암호해독을 위해 배비지는 영어를 “완전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한다. 그러고는 한 글자, 두 글자, 세 글자 등으로 구성된 단어들, 그리고 첫째 문자, 둘째 문자, 셋짜 문자 등 알파벳순으로 나열한 단어들을 모은 특수 사전을 만들었다. 머지않아 이 사전들을 가지고 애너그램 퍼즐과 워드 스퀘어(가로로 읽거나 세로로 읽어도 같은 단어가 되는 말의 정사각형 배열-옮긴이)를 푸는 방법론을 설계했다.

1851년 만국박람회 기간 동안 … 배비지는 도싯 거리에 있는 높은 건물 창문에 움직일 수 있는 셔터를 단 석유램프를 놓고 행인들에게 암호화된 신호를 깜박이는 ‘명멸등’을 선보였다. 또 숫자 기호를 전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등대용 표준체계를 만든 다음 12부를 “해양강대국의 관계 당국”에 보냈다. 또한 거울로 반사하는 태양광 신호와 “천정광 신호”, 선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그리니치 시간 신호를 연구했다. … 

한편 해석기관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그러고는 마치 묻혀 있던 보물처럼 다시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을 놀랍도록 당혹스럽게 했다. … 제니 유글로(Jenny Uglow. 1947-)는 해석기관에서 “다른 의미의 시대착오”를 느꼈다. … 이 실패한 발명품은 “어두운 벽장에 든 빛바랜 청사진처럼 후대에 새롭게 발견될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유글로)

애초 숫자표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해석기관은 현대에 와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면서 숫자표를 한물간 것으로 만들었다. 배비지는 이런 변화를 예상했을까? 배비지는 … 누군가 범용 연산기계를 만들려고 다시 시도하려면 반세기는 지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 거의 한 세기가 걸렸다.

“‘계산’ 과학은 우리가 진보하는 매 단계마다 거듭 필요성을 더할 것이며, 틀림없이 과학을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모든 일을 관장할 것이다.” – 배비지

“…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전제군주’가 되는 거예요. … 이 군대는 방대한 ‘숫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 그게 아니라면 아예 존재할 수도 없을 거예요. … 하지만 도대체 이 ‘숫자’들은 ‘무엇’일까요? 거기에 수수께끼가 있어요.” – 에이다 러브레이스

제5장. 지구의 신경계

“전기를 통해 물질세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진동하는 거대한 신경이 된 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나의 꿈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둥근 지구는 지성이 넘치는 거대한 머리 혹은 두뇌이다!
혹은 그 자체가 사고, 오직 사고이며,
더 이상 우리가 여기는 실체가 아니다!

너새니얼 호손, 1851. (Nathaniel Hawthorne. 1804-1864)

전신에서 쓰는 시간이 철도에서 쓰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전기시계 설치는 현대적이고 적절했다. 1849년 무렵 전신사무소는 밤낮으로 가동되는 여덟 대의 전신기를 자랑했다. 또한 400개의 배터리가 전력을 공급했다. 전신과 전화는 처음으로 사회를 긴밀한 유기체 같은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1852년 미국의 한 역사학자는 단언했다. “전기는 과학의 시이다.” … 하지만 전기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패러데이의 연구가 절정에 이른 1854년에도 배비지를 대단히 존경했던 과학저술가 라드너(Dionysus Lardner. 1793-1859)는 “과학계는 아직 전기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매우 정확하게 지적했다.

먼저 전선을 만들고, 절연재를 입히고, 전류를 저장하고 측정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 공학 분야 하나를 통째로 발명해야 했다. 공학과 별개로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바로 메시지 자체의 문제 … 이는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논리적 문제 … 동역학에서 의미로 가는 단계를 건너는 문제 … 메시지는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 전신은 어떻게 전기라는 유체를 단어로 바꿀 수 있을까?

전기전신(electric telegraphs)이 있기 전에는 그냥 전신(telegraphs)이 있었다. ‘전신(les télégraphes)’은 프랑스 혁명기 클로드 샤프가 발명 … 전신은 시각적 … 가시거리에 있는 다른 탑에 신호를 보내는 탑이었다. … 봉화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한 신호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림 11] 클로드 샤프의 전신. 1868. (출처 : wikipedia)

제어 문제가 복잡하기는 했지만 적절한 코드를 만드는 일보다는 덜했다. 순전히 기계적인 측면에서 보면 팔과 들보는 어떤 각도든 취할 수 있었다. … 하지만 효율적인 신호 전달을 위해서는 경우의 수를 제한 … 총 98가지 조합이 나올 수 있는 기호를 만들었다.

샤프는 이 기호들을 정교한 코드(로) 만들기에 이른다. … 신호들은 한 쌍을 이루어 전용 코드북의 쪽과 줄을 가리켰다. 코드북에는 단어와 음절, 사람과 장소의 이름 등 8,000개 항목 이상이 들어 있었다. 이 모든 내용은 신중하게 비밀로 지켜졌다. … 메시지는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된 상태로 보내졌다. 샤프는 .. 전신망은 … 권력의 도구라 보았…다.

제 아무리 빠른 전신수라도 분당 세 개 이상의 신호를 보낼 수 없었다. … 신호체계는 취약하고 까다로웠다. 비나 안개 혹은 전신수의 부주의로 메시지 전달이 중단될 수 있었…다. 코딩과 디코딩에도 시간이 걸렸으나 이 작업은 전신선의 처음과 끝에서만 이뤄졌다. 중간… 전신수들은 신호를 이해하지 못해도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전신수들(stationaires)’이 문맹이었다. 메시지를 받아도 무조건 신뢰할 수만은 없었다. 중개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오류가 많다는 것을 의미.

전신탑은 유럽과 유럽 너머로 퍼져나갔는데, 지금도 농촌에 가면 폐허가 된 전신탑을 볼 수 있다. …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는 일찍이 프랑스 모델을 토대로 시스템을 개발했다. 곧 독일이 … 1823년 캘커타와 추나르, 1824년에는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잇는 전신선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는 바르샤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220곳에 전신소를 세웠다. 세계의 통신을 장악해나갔던 전신은 성정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폐기되고 만다. … 1838년, 미국인 새뮤얼 모스는 프랑스 당국을 방문해 전선을 이용한 ‘전신’을 제안했다. 프랑스 당국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 전선이라는 것은 폭도들에게 절단될 수 있었다.

전기와 언어 사이의 교차점, 즉 기구와 인간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만들려면 새로운 창의성이 필요했다. 발명가들(의) …. 전략은 모두 어떻게든 표기문자에 바탕 … 중간 매개 단계로 글자를 이용 … ‘전신'(telegraph)이라는 단어 자체가 “원격 기록”(far writing)을 뜻했다.

1833년 괴팅겐에서는 수학자인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물리학자인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와 함께 바늘 한 개를 사용하는 비슷한 방식을 고안했다. 바늘이 한 번 방향을 전환하면 오른쪽과 왼쪽, 이 두 가지 신호가 가능 … 네 번의 방향 전환은 열여섯 가지 조합 … 이렇게 해서 나온 총 신호의 수는 30개 … 신호들을 구분하기 위해 휴지기를 사용 … 가우스와 베버는 모음부터 시작해 글자와 숫자들을 차례대로 나열함으로써 논리적으로 알파벳을 만들었다. 글자를 이렇게 인코딩하는 방식은 … 이진법 … 가우스와 베버는 괴팅겐 천문대와 물리학 연구소 사이의 주택과 첨탑들 위로 1.6킬로미터에 걸쳐 이중 전선을 설치했다.

발명가들의 작업실 밖에서 ‘전신’은 여전히 탑과 신호기, 셔터, 깃발을 의미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망은 커지기 시작했다. … 이후 거리를 건너뛰는 정보의 가치를 깨달은 세력은 부상하는 금융가와 상인 계급이었다. (당시) 런던 증권거래소와 … 파리 증권거래소 사이의 거리는 약 320킬로미터 … 오가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이 시간을 단축시킨다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투자자들에게 개인용 전선은 타임머신만큼이나 유용할 것이다. 

수많은 전기전신 발명가 지망생들은 모두 같은 도구를 사용했다. 전선, 자기 바늘, 배터리였다. 배터리는 산성액에 잠긴 금속 조각들의 반응을 통해 전기를 얻는 갈바니 전지를 연결한 것이었다. … 이들 모두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결국 … 알파벳의 글자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새뮤얼 모스와 알프레드 베일, 영국의 윌리엄 쿡(William Cooke)과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 전기전신을 실현하고 사업화했다. … 모두는 … 자기들이 전신을 ‘발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누구도 전신을 발명하지는 않았으며, 모스는 확실히 아니었다.

새뮤얼 모스는 과학자가 아니라 화가였다. 1820년대의 대부분을 회화 공부를 위해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 … 이때 처음으로 전기전신 이야기를 접했다. … 모스는 파리의 룸메이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우편은 너무 느려. … 번개처럼 빠른 수단이 필요해.” 모스가 번개를 말하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기호에 대한 통찰이었다.

모스는 … 회로의 개폐라는 더 단순하고, 근본적이며, 덜 물질적인 최소한의 동작으로 기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아이디어는 단순했지만 모스가 만든 첫 번째 전신기는 태엽장치, 나무 추, 연필, 종이띠, 롤러, 크랭크로 구성된 복잡한 기구였다.

노련한 기술자였던 알프레드 베일은 모든 것을 단순화… 발신부에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아이콘이 된 기구를 발명했다. 바로 손가락으로 회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간단한 스프링 작동식 레버였다. 베일은 처음에 이 레버를 “교신기”(correspondent)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키”(key)라고 불렀다. 키를 사용하면 … 신호를 분당 수백 개씩 보낼 수 있었다.

영국과 미국은 1844년에 모두 전환점을 맞았다. 모스와 베일은 워싱턴에서 볼티모어의 프랫 스트리트역까지 방적사와 타르로 감싼 전선을 6미터 높이의 나무 전신주로 연결했다. 처음부터 통신 내용은 … 군사 급보나 공무 급보와는 우스울 정도로 판이하게 달랐다. 영국의 경우 패딩턴 전신부에 기록된 최초의 메시지는 분실 수하물과 소매 거래에 대한 것이었다. 

전신의 유용성을 일찍 깨달은 사람들은 기자들이었다. 알렉산더 존스가 전신을 이용해 뉴욕시에서 워싱턴 유니언역으로 자신의 첫 기사를 송고한 것은 1864년 가을이었다. 전신의 흥분은 전염병처럼 널리 퍼졌다. 일각에서는 … 신문을 전신이 죽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 하지만 신문들은 전신기술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전신과 신문은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 전신은 정보기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성취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생각의 전달, 물질의 근본적인 비약”이었다. … 2년 전만 해도 목적지에 정보를 전달하려면 며칠씩 걸렸지만, 이제 몇 초면 어디든 보낼 수 있었다. … 사회적 파급효과는 예측할 수 없었지만 몇몇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고 … 우선 날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날씨를 일반화시키고 추상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상 통보가 전선을 타고 옥수수 투자자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기상 통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웠다. 전신으로 인해 사람들은 날씨를 … 광범위하고 상호 연관된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1854년 영국 정부는 상무부 산하에 기상청을 설립했다. HMS 비글(Beagle) 호의 선장을 지낸 로버트 피츠로이 청장은 … 장비를 갖춘 관측관들을 전국 항만에 파견했다. 관측관들은 … 하루 두 번 전신으로 보고했다. 피츠로이는 ‘예보’라고 부른 날씨 예측을 발표 … 1860년 『타임스』는 이를 매일 싣기 시작.

널리 분포된 지역들 간에 즉각적인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들이 영향을 받았다. 문화 관찰자들은 전신이 시간과 공간을 “소멸”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모든 시간이 지역적이었다. … 이제 시간은 지역시간과 표준시간으로 나뉘었고, …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철도가 등장하면서 표준시간이 필요했는데, 전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표준시간이 널리 퍼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 천문학회가 전국의 시간을 통일하기 위해 그리니치 천문대와 로스버리에 있는 전기전신회사를 잇는 전선을 설치한 때인 184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됐다. 공시성은 시간을 소멸시키기는커녕 그 영역을 확장했다.

개념 자체가 변하는 시대였기에 전신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 메시지는 물리적 사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언제나 환상이었다. 이제는 메시지가 쓰인 종이에서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따로 떼어낼 필요가 있었다.

물리적인 환경도 변했다. … 어디에나 낯선 장식물처럼 전선이 걸려 있었다. …전신을 이용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코드를 작성하는 것을 뜻했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모스 체계는 처음에는 … (코드가 아니라) … “모스 전신 알파벳”…(으로 불렸다). 하지만 모스 체계는 알파벳은 아니었다. 기호로 소리를 나타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 말하자면 모스 체계는 알파벳을 한 번 거친 메타 알파벳이었다.

이런 절차는 어떤 의미에서 수학의 핵심이었다. … 하나의 기호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옮기는 일은 ‘인코딩’으로 부를 수 있었다. … 비밀 유지와 간결성 … 짧은 메시지는 돈을 절약했다. … 글을 쓰는 새로운 방식 … ‘전문체의’(telegraphic), ‘전문체’(telegraphese)라는 단어가 등장.

곧 기자들은 더 적은 단어로 더 많은 정보를 보내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 코드화된 메시지를 만드는 전형적인 방법 중 하나는 단어를 의미론적으로 그리고 알파벳순으로 전체 구절에 배정하는 것. 메시지를 전신으로 보낸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내용이 세상에 노출되는 것을 우려. 전신기는 도구인 동시에 … ‘매체’였다. 메시지는 이 매체를 통해 전달됐다. 메시지가 노출되더라도 내용은 숨길 수 있었다. 베일은 자신이 말한 ‘비밀 알파벳’은 글자를 “뒤바꾸고 교체한” 알파벳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발신자와 수신자 간에 사전 협의가 필요. … 이런 지식을 간편하게 담아놓은 것이 코드북이다. 첫 모스 선이 영업에 들어갔을 때 핵심 투자자이자 홍보인이었던 메인 주 하원의원 프랜시스 O. J. 스미스는 『비밀 교신용 어휘』라는 코드북을 만들었다. 암호사용자들의 역사는 베일에 싸여 있는데, 이들의 비밀은 연금술사들처럼 비서를 통해 전수됐다. 이제 코드 제작은 양지로 나와 …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고객들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단어를 번호로 대체하는 것이 전혀 혹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코드북은 구문을 담은 책이 되고 말았다. 1870~1880년대에 특히 인기를 끈 코드북은 윌리엄 클로슨-투에가 쓴 『AB 범용 상업 전기전신 코드』(The ABC Universal Commercial Electric Telegraphic Code)였다. 전신망이 지구를 가로질러 해저로 뻗어나가면서 국제 전신요금이 비싸지자 코드북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경제성은 기밀성보다 더 중요했다.

사람들은 두껍고 비싼 코드북을 자유롭게 서로 빌려봤다. … 세기의 전환기에 전 세계의 전신 기사들은 베른과 런던에서 국제전신회의를 열어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단어들로 된 코드를 체계화했다. 공식 코드북은 1900년대에 인기를 얻으며 널리 보급되다가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전신 코드 이용자들은 효율성과 간결성에 따른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을 서서히 알게 된다. 전신 코드는 아주 사소한 오류에도 엄청나게 취약했다. 전신 코드는 … 잉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교묘하게 인코딩된 메시지들은 한 글자만 잘못돼도 혼란을 초래했다.

비밀 기록은 기록만큼이나 오래됐다. 기록이 시작됐을 때는 문자 자체가 … 암호나 다름없었다. 문자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비밀스럽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단어를 애너그램으로 재배열했고, 거울을 보며 거꾸로 내용을 썼으며, 암호를 발명했다.

막 영국 내란이 발발한 1641년, … ‘암호제작술'(cryptographia)을 정리한 저자 미상의 작은 책이 나왔다. … 이 작은 책의 제목은 『머큐리: 혹은 은밀하고 신속한 전령』(Mercury: Or the Secret and Swift Messenger)이었다. 저자는 결국 나중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 학장이 되고 왕립학회를 설립한 교구 목사이자 수학자인 존 윌킨스(John Wilkins)로 밝혀졌다.

윌킨스는 암호가 의사소통의 근본적인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윌킨스에 따르면 기록과 비밀 기록은 본질적으로 같았다. … 윌킨스가 말한 “신속함”과 “빠름”은 1641년에는 다소 철학적인 것이었다. 수학자였던 윌킨스는 … 한정된(단 두 개나 세 개 혹은 다섯 개의) 기호로 전체 알파벳을 나타내는 방법을 찾으려 한 것. 이를 위해서는 기호를 조합해야 했다.

A – aa / B – ab / C – ac / D – ad / E – ae / F – ba / G – bb / …

(윌킨스는) 두 개의 기호를 다섯 자리로 배열해 “32개의 차이”를 만들”었다. … 윌킨스는 가장 순수하고 일반적인 형태의 정보라는 개념에 다가가고 있었다.** … 어떤 차이든 이항 선택을 의미 … 모든 이항 선택은 생각의 표현이었다. 이처럼 1641년 나온 … 정보이론의 근본적인 착상이 … 그 희미한 흔적을 보였으나 다시 300년 동안 모습을 감췄다.

전신이 등장하면서 … 암호를 지적으로 탐구하는 게 유행 … 대중들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 미국에서 암호에 대한 관심을 크게 고조시킨 사람은 애드거 앨런 포였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잡지 에세이에서 포는 오래된 암호 기법을 소개하고 자신의 암호제작기법을 자랑 …. 포는 말한다. “영혼은 암호이다. 암호가 짧을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 포는 “문자가 발명되자마자 비밀스러운 소통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불과 모르간) 두 사람은 수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언어 혹은 진리(참)을 대수적 기호로 전환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불은 자신의 체계를 수가 없는 수학으로 생각했다. … “궁극의 논리법칙들은 수량의 수학에 속하지는 않지만 형식과 표현에 있어서 수학적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불은 오직 0과 1만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0과 1은 무 혹은 전부를 뜻했다.

“논리학 체계에서 기호 0과 1에 대한 해석은 각각 ‘무’와 ‘우주’”였다. 그때까지 논리학은 철학에 속해 있었다. 불은 수학을 대표해 논리학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불은 새로은 형식의 인코딩을 고안했다. 한쪽에는 수학에서 끌어온 p와 q, +와 -, ( )와 { } 같은 기호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애매하고 가변적인 일상적인 말로 대개 표현되는 조작, 진술, 관계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참과 거짓, 범주 소속 여부, 전제와 결론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포함됐다. ‘if, either, or’는 “입자들”로서 불 논리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었다.

하나의 양상(modality)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환하는 인코딩이 도움이 되었다. 모스 코드의 목적은 일상 언어 수 킬로미터의 구리선을 통해 거의 순식간에 전달하는 데 적합한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기호 논리학의 경우 새로운 형식은 산술적 조작에 적합했다. 기호는 일상적 의사소통의 방해물에 취약한 내용물을 보호하는 작은 캡슐과 같았다.

단어에서 의미를 제거하면 안정성이 상당히 증가한다. 기호와 상징은 … 연산자로, 기계에서 기어와 레버와 같은 것 … 언어는 결국 하나의 도구이다. 이로써 언어는 이제 표현과 사고라는 두 가지 독립적 기능을 하는 도구로 인식된다. … 불에게 논리는 사고’였’다. 1854년에 쓴 역작의 제목으로 불이 정한 것은 『사고의 법칙』(The Laws of Thought)이었다.

제6장. 새로운 전선, 새로운 논리

클로드 섀넌(Claude Elwood Shannon. 1916-2001)은 … 일생을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고 궁리했으며, 기계 만지는 일을 좋아했다. … 또한 기계광의 창의성도 함께 있어서 철조망 전신기를 만들었(다). 전기통신의 세 가지 거대한 파도가 차례로 절정을 구가 (하던 시대) … 바로 전신, 전화, 라디오. 섀넌은 조립장난감과 책을 좋아했다. 혼자 있을 때는 책을 읽고 또 읽었는데, 에드거 앨런 포가 쓴 『황금 벌레』를 좋아했다. … 이 이야기의 주인공 … 윌리엄 르그랑(William Legrand)은 포의 분신이었(다).

시대가 이런 비상한 주인공을 바라고 있었고, 포와 아서 코넌 도일, H. G. 웰스처럼 선견지명을 가진 작가들에 의해 때맞춰 불려 나왔던 것이다. 『황금 벌레』의 주인공은 양피지에 적힌 암호를 해독해 묻혀 있던 보물을 찾아낸다. … 암호의 답은 황금으로 이어졌지만 … 사람들을 흥분시킨 것은 코드 안에, 즉 수수께끼와 변형 안에 있었다.

클로드 섀넌은 … 1932년 미시간대학교에 입학해 전기공학과 수학을 전공 … 1936년 졸업 후 MIT 공학과 학장이던 버니바 부시(Vnnevar Bush. 1890-1974)의 미분해석기(Differential Analyzer)를 운용하는 연구조교로 일 … 회전하는 축과 기어를 가진 100톤짜리 철제 플랫폼이었던 이 기계를 신문에서는 “기계 두뇌” 혹은 “생각하는 기계”라고 불렀다.

MIT는 벨 전화연구소, 제너럴 일렉트릭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성장한 응용 전기공학의 3대 중심지였다. 이곳에서는 … 2차 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 미분해석기는 … 제어용 전기기계식 스위치가 달리긴 했지만 배비지의 기관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기계적이었다. 다른 점도 있었다. 미분해석기는 배비지의 기관과 달리 (숫자가 아니라) 양을 다루며, … 동역학계의 미래를 나타내는 곡선을 만들어냈다.

전기제어 파트는 일반 스위치와 전신의 후손인 릴레이라는 특수 스위치 두 종류 … 릴레이는 전기로 제어되는 전기 스위치였다. … 릴레이 회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찾던 섀넌은 하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학부 4학년 때 기호논리학 강의를 들은 섀넌은 스위칭 회로를 배치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목록을 만들다가 … 회로를 서술하는 데는 기호논리학에서 사용되는 독특한 인위적 표기법인 불의 ‘대수’를 쓸 수 있었다.

섀넌이 깨달은 바 … 릴레이가 한 회로에서 다음 회로로 넘기는 것은 실제로 전기가 아니라 … 회로의 개폐 여부에 대한 사실. 섀넌은 불처럼 자신의 방정식에 0과 1, 단 두 개의 숫자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였다. 0은 닫힌회로, 1은 열린회로. 켜짐 혹은 꺼짐, 예 속은 아니요, 참 혹은 거짓. (섀넌은) 이진산술을 제안했다. “릴레이 회로를 통해 복잡한 수학 연산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if, or, and 등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모든 연산을 릴레이를 가지고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

섀넌은 부시의 제안에 따라 전공을 전기공학에서 수학으로 바꿨따. 아울러 부시는 기호의 대수학을 신생 학문인 유전학에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해볼 것을 권했다. … 섀넌은 「이론유전학을 위한 대수학」(An Algebra for Theoretical Genetics)이라는 야심 찬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섀넌에 따르면 유전자는 이론적 구조물이었다. … 섀넌은 숫자와 글자들을 배열해 개인의 “유전 공식”을 나타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1939년 늦겨울 섀넌은 부시에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디어를 장문의 편지에 담아 보냈다.

f1(t) —> [T] —> F(t) –> [R] —> f2(t)

T와 R은 송신기와 수신기였다. 이 둘은 세 개의 “시간 함수”를 중계했다. f(t)는 “전달되는 소식”, 신호, 최종 출력값. 당연히 출력값은 입력값과 가능한 한 거의 동일해야 했다. … 문제는 현실의 시스템이 언제나 ‘왜곡’에 시달린다는 점. 섀넌은 왜곡을 수학적 형식으로 엄밀하게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기록의 발명은 추론을 논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논리학을 촉발시켰다. … 이제 기호로 움직이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논리학이 다시 살아났다. 공리, 기호, 공식, 증명의 체계 안에 논리학과 수학을 결합함으로써 철학자들은 … 엄밀하고 형식적인 확실성에 손닿을 것처럼 보였다. 이는 영국 합리주의의 거두로, 1910~1913년에 걸쳐 세 권짜리 명저를 쓴 버트런드 러셀과 노스 화이트헤드(North Whitehead. 1861-1947)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몇 가지 장애물을 발견한다. … 머리말을 보자. “논리학을 감염시킨 모순과 역설을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Epimenides paradox)을 더 정식화하면 ‘이 진술은 거짓이다’라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된다. …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완벽을, 증명을 추구했다. … 하지만 엄밀하게 체계를 구축할수록 더 많은 역설이 발견됐다. … 러셀이 제시한 또 다른 역설은 이발사의 역설이다.

러셀에 따르면 우리는 “말의 전체적인 형식은 의미가 없는 잡음일 뿐”이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집합론을 연구하는 수학자라면 역설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집합은 사물, 가령 정수의 모임이다. 집합 0, 2, 4는 정수를 원소로 갖는다. 또한 집합은 다른 집합의 원소가 될 수 있다. 가령 집합 0, 2, 4는 ‘정수 집합’의 집합과 ‘세 원소 집합’의 집합에 속하지만 ‘소수 집합’의 집합에는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러셀은 특정한 집합을 이렇게 정의한다.

S는 그 자신이 그 집합의 원소가 아닌 모든 집합들의 집합이다.**

이것은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로 불린다. 여기서 역설은 잡음으로 무시할 수 없다.

[그림 12] 러셀의 역설. (출처. : 『로지코믹스』.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외. 2011. 알에이치코리아. p.172.)

러셀은 역설을 제거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역설을 일으키는 요인은 문제의 진술 안에 존재하는 특유의 재귀 때문. 다시 말해 집합에 속한 집합이라는 개념. … 문제는 층위를 섞는 것, … 유형을 혼합하는 데 있었다. 해결책은 이런 혼합을 규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치고, 터무시하고, 금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이 등장한다. 1906년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중심지인 브르노에서 태어난 괴델은 … 빈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스무 살에는 빈학파(Vienna Circle)의 일원이 된다. 괴델은 … 완벽한 논리체계라는 러셀(Bertrand Russell)의 꿈을 박살내려 했던 것 … 괴델은 역설이 기이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했다. 역설은 근본적인 것이었다.

1930년 빈 … 스물네 살의 괴델은 PM(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수학 원리』)이라는 그릇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수학을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졌다. … PM 안에(모든 일관된 논리체계 안에)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괴물이 반드시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 … 증명할 수 없는 ‘참’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 이것을 괴델은 증명했다.

괴델은 이것을 교묘한 속임수로 위장한 엄밀함으로 증명했다. 괴델은 PM의 형식 규칙들을 활용 … 메타수학적으로 접근했다. … PM의 모든 기호(숫자, 산술연산자, 논리연산자, 구두점)는 한정된 알파벳으로 이루어졌다. PM의 모든 진술 혹은 공식은 이 알파벳으로 쓰였다.

괴델은 모든 기호를 숫자로 바꿔 사용했다. 숫자가 그의 알파벳. … 괴델은 인코딩을 하는 엄밀한 방식, 즉 단지 따르기만 하면 되는(지성은 필요 없다) 기계적 규칙인 알고리즘을 제시했다. … 어떤 공식이 주어지든 규칙을 따르면 하나의 숫자가 생성되고, 어떤 숫자가 주어지든 규칙을 따르면 대응하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 다양한 진술을 하고 그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다.

괴델은 1931년 발표한 짤막한 논문에서 이 모든 내용을 제시했다. … 기본 주장은 단순 명료했다. 괴델은 ‘특정한 수, x는 증명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공식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줬다. … 이는 러셀이 PM의 규칙 안에서는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기참조였다.

‘이 진술’은 증명할 수 없다.

괴델은 일관된 형식 체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완전하고 일관된 체계는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오랫동안 추구했던 보편 언어,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것처럼 꾸몄던 ‘보편 문자'(characteristica universalis)는 내내 숫자들 안에 있었다. 수는 추론의 모든 것을 인코딩할 수 있었다. 수는 모든 형태의 지식을 나타낼 수 있었다.

1930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 괴델의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던 … 헝가리 사람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괴델의 발견이 갖는 의미를 곧 이해 … 충격을 받은 폰 노이만은 이에 대해 연구 … 괴델의 논문을 프린스턴대학교의 수학 세미나에서 소개했다. 불완전성은 사실이었다.

1930년 설립되어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이 초대 교수진으로 있던 고등연구소는 1933년 1년간 괴델을 초청했다. …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고 회원들이 살해당하거나 망명하면서 빈학회가 해체되던 1938년, 심지어 히틀러의 군대가 고국인 체코를 점령한 1939년에도 괴델은 빈에 머물렀다. 마침내 1940년 1월 괴델은 겨우 빈을 떠나 …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클로드 섀넌도 박사 후 과정을 밟기 위해 고등연구소에 와 있었다. … 명목상 지도교수는 역시 독일 망명자로 새로운 양자역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이론가인 헤르만 바일이었다. 바일은 섀넌의 유전학 논문에 그리 관심이 없었지만 … 폰 노이만과 공통점을 찾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 섀넌은 소식의 전달을 계속 연구하고 싶었다.

국방연구위원회 위원장이 된 버니바 부시는 섀넌에게 대공포 발사제어장치를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 7’을 맡겼다. … 섀넌은 연산의 문제 뿐만 아니라 물리적 문제까지 분석했다. … 대공포 자체가 예측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반동’과 진동을 일으키는 하나의 역학계처럼 움직였다.

섀넌 연구팀은 이렇게 보고했다. “추적 오차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줄이기 위해 데이터를 평활화(smoothing)하는 문제와 통신 시스템에서 신호와 간섭 잡음을 분리하는 문제는 상당히 유사하다.” 데이터는 신호를 구성 했다. 말하자면 모든 문제는 “소식의 전달, 조작, 활용의 특수한 사례”였다. 이는 벨 연구소 전문이었다. 

이제 전기통신 하면 전화를 뜻했다. …. ‘전기발화 원격음성장치'(electrical speaking telephone)가 미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70년대였다. … 전화의 장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보다 먼저 전화를 발명할 뻔했던 전신맨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는 1875년 특허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 이렇게 썼다. “… 이 기술은 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런 상업적 가치가 없습니다. …”

이렇게 잘못 생각한 데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접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상상력 부족이 있었다. … 전신은 문해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화는 말로 하는 것이었다. … 그냥 말만 하면 됐다. … 전화는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 전화는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전신은) 발신기와 수신기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전선이 있었고, 이 전선을 따라 ‘뭔가’가 전기의 형태로 전달된다. 전화에서는 대기 중의 압력파를 그냥 전류파로 전환한 소리였다. … 전화를 든 사람은 곧바로 해야 할 일 … 대화를 했던 것이다. 이렇듯 유례없는 네트워크의 급속한 확장이 가능하려면, 전화에 새로운 기술과 과학이 필요했다. … 하나는 전기 자체와 관련된 것, 즉 전기량을 측정하고, 전자기파를 제어하는 것으로, … 진폭과 주파수를 변조해야 했다.

소리를 전달하려면 훨씬 강한 전류를 훨씬 정교하게 제어해야 했다. 엔지니어들은 수화기 같은 증폭기의 출력과 입력을 연결하는 피드백을 이해해야 했다. 또한 먼거리에 전류를 전달하려면 진공관 리피터(repeater)를 설계해야 했다. 덕분에 1914년 약 5,500킬로미터 떨어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13만 개의 전신주를 세워 최초의 대륙 횡단 전화선을 개설했다. … 하지만 전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전류’가 아니었다. 엔지니어들은 이미 전부터 … 추상적 독립체인 ‘신호’의 전달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연결을 조직하는 스위칭, 넘버링, 로직처럼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기술들이었다. 이런 기술들은 … 18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전화기를 한 쌍씩 팔 필요가 없다는 것. 전선으로 바로 연결하지 않고 중앙 ‘교환소’를 거치면 전화기를 수많은 다른 전화기와 연결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장거리 전화를 하려면 두 번째 ‘요금’ 교환수에게 연결되어 응답 전화를 기다려야 했다. 머지않아 지역 교환소들의 상호연결은 자동 다이얼링으로 해야 했다. 복잡성이 배가 … 벨연구소는 수학자가 필요했다. 수학 자문부(Mathematics Consulting Department)로 시작한 조직은 이후 독보적인 실용 수학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 초대 부장인 손턴 프라이(THornton Fry)는 이론과 실제 사이의 긴장, 둘 간의 문화 충돌을 대놓고 좋아했다. 수학자와 엔지니어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

게다가 잡음 문제도 있었다. 처음에 잡음은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 엔지니어들은 이 잡음을 측정하고 싶어 했다. …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등장한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썼다. …입자의 요동은 개별적으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통계역학의 법칙들로 표현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은 무작위적 열교란(thermal agitation)이 모든 전기전도체의 자유전자(free electron)에 영향을 미쳐서 잡음을 만든다는 사실도 밝혔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에서 전기와 관련된 측면에 관심을 기울인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다. 1927년에야 비로소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 존 B. 존슨(John B. Johnson)은 잡음이 설계 결함이 아니라 회로에 고유한 것임을 깨닫고 이를 처음으로 측정했다. 뒤어이 해리 나이키스트(Harry Nyquist)는 이상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전류와 전압의 요동을 구하는 공식을 도출했다.

나이키스트는 항상 큰 그림을 보았다. 다시 말해 나이키스트의 관심사는 전화 자체는 아니었다. 일찍이 1918년부터 전선으로 그림을 전송하는 … ‘사진 전송술'(telephotography)을 연구했던 나이키스트는 … 1924년에 13×18센티미터 크기의 사진을 7분 안에 전송할 수 있는 시제품을 개발했다.

전신에서 메시지 전달의 근본 단위는 처음부터 이산적인 점과 선이었다. 반면 전화에서 유용한 정보는 주파수 스펙트럼을 따라 … 연속적 … 나이키스트같은 물리학자들은 이산적인 전신 신호를 전달할 때도 전파를 파형으로 취급 … 전류 대부분이 낭비되고 있었다. … 나이키스트는 연속적인 파동을 이산 데이터 혹은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기발한 방법을 찾아낸다. 파동을 일정한 간격으로 추출하여 사실상 셀 수 있는 조각으로 바꾼 것이다.

“소식의 전달 속도” 공식을 계산한 나이키스트는 소식을 특정한 속도로 전달하려면 특정한, 측정할 수 있는 대역폭을 지닌 채널이 필요함을 증명했다.

나이키스트의 동료 랠프 하틀리는 1927년 여름 이 연구 결과를 확장시킨 내용을 이탈리아의 코모(Como) 호숫가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발표(“Transmission of Information”(archive, pdf))했다. 하틀리는 ‘정보'(information)이라는 색다른 단어를 썼다. 하틀리가 제시한 정리는 … 특정 시간에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최대치는 가용한 주파수 범위에 비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틀리는 기호를 세는 일부터 시작했다. 기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능한 기호의 수가 많을수록 각각의 선택은 더 많은 정보를 지닌다. 얼마나 더 많을까? 하틀리가 만든 공식은 다음과 같다.

H = n logs   (H는 정보량, n은 전달되는 기호의 수, s는 알파벳의 갯수)

점-선 체계의 경우 s는 2에 불과하다. 한자(漢字) 1,000단어 사전에 들어가는 모든 단어를 구성할 수 있는 기호체계에서 s는 1,000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보량은 알파벳의 갯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로그함수적 … 즉, 정보량을 두 배로 늘리려면 알파벳의 갯수를 네 배로 늘려야 한다.

하틀리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쇄전신기를 끌어들였다. … 전신수가 키패드를 조작하면, 인쇄전신기는 전신수의 키 입력을 … 접점의 개폐로 변환했다. 보도 코드(책 p.277의 그림)는 각 글자를 전송하기 위해 다섯 단위를 사용했다. 따라서 가능한 글자 수는 25 혹은 32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글자는 정보량에서 기본적인 이진 단위보다 5배(32배가 아니라) 높은 값을 가졌다.

한편 전화는 사람의 음성을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곡선의 아날로그 파동으로 보냈다. 이 파동의 어디에 기호가 있는 것일까? 기호는 어떻게 셀 수 있을까? 하틀리는 연속적 곡선은 이산적 단계의 연속이 근접하는 경계로 생각해야 하며, 파형을 일정한 간격으로 추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 단계들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 … 하틀리는 … 전화와 전신 모두 전체 정보량은 두 가지 요소에 좌우된다는 점을 증명했다. 바로 가용한 전달 시간과 채널의 대역폭이었다.

클로드 섀넌은 이 저널(“벨 시스템 기술 저널”)에서 이들의 논문을 읽게 된다. … 섀넌이 보기에 기호, 글자, 숫자는 세기 어려웠다. … 섀넌은 이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글뿐만 아니라 소리와 이미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전기를 사용하여 세계 전체를 기호로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제7장. 정보이론 – 내가 추구하는 것은 평범한 두뇌일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초, … 클로드 섀넌과 앨런 튜링은 매일 휴식시간에 벨연구소에서 만났다. … 암호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튜링은 섀넌에게 7년 전에 쓴 「연산 가능한 수에 대하여」(On Computable Numbers)라는 논문을 보여 준다. 논문은 이상적인 연산기계의 능력과 한계를 다루고 있었다.

기계가 생각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섀넌이 전자두뇌에 음악 같은 “문화적인 것”을 입력하는 것을 제안하자, … 튜링은 이렇게 외친 바 있다. “‘강력한’ 두뇌를 개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AT&T 회장처럼 ‘평범한’ 두뇌일 뿐입니다.” 섀넌과 튜링이 함께 생각했던 것은 … 논리에 대한 것이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튜링은 정신의 세계에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상적 힘을 가진 기계를 구상하고 이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했다. 튜링기계는 … 단지 사고실험이었을 뿐이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문제는 이런 물음과 함께 제기되었다. ‘기계적인'(mechanical) 일은 무엇인가. … 지적인 연구대상에서 기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는 알고리즘이 있다. … 배비지와 러브레이스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알고리즘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했다. 20세기가 되자 알고리즘은 중심에 서게 된다.

1936년 튜링은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연산가능한 수에 대한 논문을 제출한다. .. 논문의 전체 제목은 「결정 문제에 응용한 연산 가능한 수에 대하여」(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였다. “결정 문제”는 1928년 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가 국제수학자회의에서 내놓은 문제였다.

힐베르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수학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없다.” 물론 수학에는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많았다. …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 ‘결정문제’는 특별한 연역 추론의 형식 언어에 따라 증명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엄밀한 절차를 찾는 것이다. … 이 문제를 질문 형식으로 제기하긴 했지만, 힐베르트는 … 자신이 답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학과 논리학이 갈림길에 섰던 바로 그때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내놓는다. 적어도 불완전성 정리는 러셀과 힐베르트의 낙관주의에 대한 완벽한 해독제였다. 하지만 사실 괴델은 ‘결정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힐베르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수학은 완전한가?
수학은 모순이 없는가?
수학은 결정 가능한가?

앨런 튜링은 완전히 다른 질문을 제기했다. “모든 수는 연산 가능한가?”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튜링은 한정된 수단으로 그 수의 십진 표기를 계산할 수 있는 수를 연산 가능한 수라고 정의한다. …. 튜링은 ‘계산’을 기계적인 절차, 즉 알고리즘으로 정의했다. … 튜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제거해야 했다. 말 그대로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던 것이다.**

튜링은 단어들이 개별적인 기호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튜링은 최소주의 정신에 입각해 만들어진 기계와 어울리도록 절대 최소치인 두 개의 기호를 생각했다. 바로 0과 1로 모든 수를 표현하는 이진법이었다. …. 튜링은 테이프에 기록된 기호를 읽는 일에 “스캔”이라는 표현을 썼다. 튜링은 자신의 기계를 ‘프로그래밍'(아직까지는 이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하고 있었다. 이동, 인쇄, 삭제, 상태 변환, 멈춤 같은 원시적인 동작으로 더 큰 프로세스가 구축되었다. …”기록된 기호의 일부는 … 단지 ‘기억을 보조하는’ 간략한 메모이다.”

튜링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일과 특정한 과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파악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튜링은 이 짧은 프로그램이 사람이 수를 연산하면서 하는 모든 일을 담고 있음을 증명했다. 튜링은 괴델이 기호논리학 언어를 코드화했듯이 자신의 기계를 코드화했다. 이 작업은 데이터와 명령 사이의 구분을 없앴다. 결국 두 가지 모두 숫자였다. 튜링은 가능한 모든 기계를 모사하는 기계를 (여전히 머릿속에서) 만들었다. 튜링은 이 기계에 “범용”(universal)을 뜻하는 ‘U’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도 수학자들은 이 용어를 쓰고 있다. 

튜링은 일부 수(사실 상 대부분의 수)가 연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모든 수는 수학과 논리학의 코드화된 명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튜링은 모든 명제가 결정 가능한지에 대한 힐베르트의 의문도 해결한 셈이었다. ‘결정 문제’에는 답이 있는데, 그 답은 ‘아니요’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사실상 연산 불가능한 수는 결정 불가능한 명제이다.

튜링은 형식 체계의 보편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괴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공식을 생성하기 위한 모든 기계적 절차는 본질적으로 튜링기계이다. 따라서 ‘모든’ 형식 체계는 결정 불가능한 명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수학은 결정 불가능하다. 이 불완전성은 연산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기계 자체의 운동을 숫자로 코드화할 때 다시 한 번 역설이 고개를 든다. 재귀적 순환의 필연적 등장이었다. 인식되는 대상은 인식하는 대상과 운명적으로 얽힌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불확정성원리…를 접한 튜링은 이를 자기참조(self-reference) 개념으로 표현했다.

앨런 튜링과 클로드 섀넌 사이에는 코드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튜링은 지시서를 숫자로, 십진수를 0과 1로 코드화했다. 섀넌은 유전자와 염색체, 릴레이와 스위치를 나타내는 코드를 만들었다. … 이런 코드화는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은 … 암호의 세계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전쟁이 임박하자 독일군의 유무선 교신… 메시지를 해독하는 업무는 … 정부암호연구소 소관으로 넘어간다. 애초 연구소에는 언어학자, 사무원, 타자수만 있었지 수학자는 없었다. 튜링이 이 연구소에 들어간 건 1938년 여름이었다. 에니그마로 불리는 독일의 시스템은 자판과 지시등이 달린 서류 가방 크기의 로터 기계로 다표식 암호를 생성 … 이 암호의 원형은 찰스 배비지가 1854년 해독하기 전까지, 해독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유명한 비제네르 암호에서 진화한 것이었다.

연구소에서 튜링은 암호해독을 이론적으로 주도했고, 암호를 수학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풀어냈다. … 튜링의 첫 번째 기계가 가상의 테이프로 돌아가는 상상의 산물이었다면 “봄베”(bombe)라 불리는 이 기계는 2.5세제곱미터의 크기에 수많은 전선과 기름칠한 금속으로 만들었으며, 전자회로에 독일 암호생성기의 로터들을 효과적으로 사상한 것이었다. … 전쟁 말기 튜링의 봄베는 매일 군이 도청한 수천 건의 암호를 해독하면서 유례없는 규모의 정보를 처리했다.

… 이런 모든 정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튜링의 생각 … 튜링은 여기서 수학적으로 측정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 튜링은 확률을 ‘바꾸는’ 데이터 … 튜링은 자신이 ‘밴'(ban)이라 이름 붙인 단위를 발명했다. … 밑을 10으로 하는 1밴은 사실의 확률을 10배로 높이는 데 필요한 증거의 무게(증거의 상대적 신뢰성-옮긴이)였다.

섀넌도 비슷한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구웨스트빌리지 본부에서 일하던 섀넌은 암호학의 이론적 개념들을 다듬고 있었다. … 바로 “소식의 전달을 위한 일반적인 시스템의 근본 속성을 분석하는 것” 섀넌은 튜링이 실제 도청 자료와 커다란 하드웨어로 공략하던 암호 시스템을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다뤘다. 이를테면 “사용되는 시스템을 적이 알 때” 비제네르 암호는 안전한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수학적으로 다룬 것이다. 섀넌은 이른바 “이산 정보”(한정된 집합에서 선택된 기호의 순서)를 모두 포함하는 가장 일반적인 사례들을 살폈다.

데이터 흐름은 확률론적 혹은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 만약 정말로 무작위적이라면 신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암호는 패턴이 있는 것을 패턴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섀넌은 패턴이 잉여성과 같다고 보았다. 일상 언어에서 잉여성은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암호분석에서는 바로 그 잉여성이 아킬레스건이다. … 섀넌은 영어가 약 50퍼센트의 잉여성을 가졌다고 추정했다.

새넌의 추정은 정확한 것으로 증명됐다. … 가장 단순한 초기의 대치 암호에서 이런 잉여성은 첫 번째 약점이었다. … 더 영리한 암호는 대치 글자를 계속 바꿔서 모든 글자가 많은 대치 글자를 갖게 함으로써 약점을 극복했다. … 하지만 … 패턴의 흔적이 남는 한 이론적으로 수학자는 파고들 틈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암호체계의 공통점은 키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키는 코드 단어, 문구, 책 혹은 더 복잡한 것일 수 있는데, … 독일의 에니그마 시스템에서 키는 하드웨어에 내재되어 매일 바뀌었다.

한편 섀넌은 가장 동떨어져 있고, 보편적이며, 이론적으로 유리한 관점으로 옮겨갔다. 암호체계는 유한한 수의 가능한 메시지와 암호, 그리고 중간에서 하나를 다른 하나로 전환하는 키로 구성됐으며, 각 요소는 확률과 결부되어 있었다.

적과 수신자는 모두 같은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 바로 메시지다. … 섀넌은 물질적 세부사항으로부터 메시지라는 개념을 완전히 추상화시켜 뽑아냈다. … 섀넌은 대수적 해법과 정리 그리고 증명의 체계를 구축했고, … 모든 암호체계의 보안성을 평가하는 엄밀한 방식 … 암호학의 과학적 원칙들을 수립했다.

(섀넌은) 완벽한 암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도청한 메시지가 제아무리 길어도 암호해독자에게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 … 하지만 완벽한 암호는 요건이 너무나 까다로워서 사실상 쓸모가 없다는 것을 증명 … 비밀 보고서(「암호의 수학적 이론」(A Mathematical Theory of Cryptography. 1945)에서 섀넌은 거의 지나가는 내용으로 전에는 한번도 쓴 적이 없는 말을 사용한다. 바로 ‘정보이론’이었다.

먼저 섀넌은 ‘의미’를 제거해야 했다. … “메시지의 ‘의미’는 대체로 아무 상관이 없다.” …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라는 단어를 납치해야 했다. …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일상적인 의미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섀넌) 하지만 정보에서 의미론적 콘텐츠를 제거하면 무엇이 남을까? … 정보는 불확실성, 의외성, 어려움, 엔트로피였다.

업타운에 있는 록펠러재단의 자연과학 디렉터인 워런 위버(Waren Weaver)는 … 이사장에게 통신이론에 대한 섀넌의 기여가 “물리화학에 기여한 깁스(Gibbs)”에 필적한다고 말했(다). 1949년 위버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그리 전문적이지 않은 내용으로 섀넌의 이론을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그해 말 섀넌의 원문과 위버의 해설문이 함께 묶여 『통신의 수학적 이론』(The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이라는 … 제목으로 출간됐다.

“통신의 근본 문제는 한 지점에서 선택된 메시지를 다른 지점에 정확하게 혹은 비슷하게 재현하는 데 있다.”(섀넌) … ‘지점'(point)은 신중하게 선택된 단어였다. 메시지의 출발지점과 도달지점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 메시지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르는 것 … 하나의 선택(이다). 

“흔히 그 메시지는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메시지는 어떤 체계에 따라 특정한 물리적 혹은 개념적 실체를 나타내거나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 통신의 이러한 의미론적 측면은 공학적 문제와 무관하다.”(섀넌) … 이런 시각은 모든 것을 포괄… “…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동”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 기계라고 해서 메시지를 보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통신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해야 한다. 정보 소스, 송신기, 채널, 수신기, 목적지. … 일상적인 대화의 경우 이런 요소들은 말하는 사람의 뇌, 성대, 공기, 듣는 이의 귀, 듣는 이의 뇌이다.

섀넌의 도표(p.302의 그림)에서 … 두드러지는 요소는 “잡음 소스”라는 상자였다. … 잡음은 항상 다루기가 힘들었다. 섀넌은 연속적 시스템과 이산적 시스템이라는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시스템으로 잡음을 다룬다. 섀넌은 신호를 이산적 기호의 연속으로 바라봄으로써 이 문제(멀리 보낼 때 신호를 증폭할수록 잡음이 심해지는 문제)를 피해갔다.

발신자는 이제 출력을 높이는 대신 오류 정정을 위한 기호를 추가함으로써 잡음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의 북꾼들이 북을 더 세게 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림으로써 멀리 의사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하여 섀넌은 다시 전신으로 돌아갔다. … 실제로 전신수들은 점과 선 말고도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공백도 활용했다. … 이 네 가지 기호(점, 선, 글자 간 공백, 더 긴 단어 간 공백)는 다른 위상과 확률을 지닌다. 가령 점이나 선은 어떤 기호 뒤에도 나올 수 있지만 공백은 절대 공백 뒤에 나올 수 없다. 섀넌은 이를 ‘상태’ 개념으로 표현했다. (책 p.305의 그림)

이 구조는 단순한 이진 인코딩 체계와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섀넌은 정보량과 채널 용량을 구하는 정확한 공식을 유도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섀넌이 메시지를 구성하는 언어의 통계적 구조가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바로 이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채널 용량을 절약할 수 있다.

메시지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섀넌은 브라운 운동에서 천체물리학에 이르기까지 확률과정을 다루는 물리학 방법론과 언어에 의지한다. 확률과정은 결정론적이지도, 무작위적이지도 않다. … 여기서 ‘사건’을 ‘기호’로 대체하면 영어나 중국어 같은 자연적 문어도 확률과정이 된다. 디지털화된 말이나 텔레비전 신호도 마찬가지이다.

… 섀넌은 메시지가 다음 기호의 확률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통계적 구조를 분석했다. … 아무 영향이 없을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각 기호는 고유한 확률을 지니며 이전 기호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1차 사례. 2차 사례의 경우 각 기호의 확률은 직전 기호에만 좌우될 뿐 다른 모든 기호와는 무관하다. 그러하면 두 기호로 이루어진 각 조합이 고유한 확률은 지닌다.

섀넌은 차수에 따른 구조 사이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영어 텍스트를 대상으로 일련의 “근삿값”을 기록(말 그대로 계산)했다. … 미리 제시된 무작위적 수를 활용한다고 해도 기호열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려웠다. 본보기로 제시된 텍스트 …  (p.307-308.)

섀넌은 추가 근삿값을 만들 수 있었지만, 여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요점은 메시지를 이산적 확률로 사건을 발생시키는 프로세스의 결과로 나타내는 것. 그렇다면 정보량 혹은 정보 생성률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섀넌은 ‘H’로 표기되는 정보의 척도를 “사건에 ‘선택’이 얼마나 개입하는지 혹은 결과가 얼마나 불확실한지” 말해주는 불확실성의 척도로 정의하려 했다.

섀넌은 확률함수로 정보를 측정하는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바로 로그 가중치를 둔 확률의 합을 구하는 공식. 이는 메시지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평균로그, 사실상 의외성의 척도였다. 

H = −∑pi log2 pi    여기서 pi는 각 메시지의 확률. 

섀넌은 … 이 공식의 값은 “정보이론에서 정보, 선택, 불확실성의 척도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H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통상적으로 메시지의 엔트로피, 혹은 섀넌 엔트로피 아니면 간단히 정보로 불렸다. 측정의 새로운 단위가 필요했다. “결과로 나온 단위는 이진수 혹은 더 간단하게 ‘비트'(bit)로 부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자연어의 통계적 구조가 다시 개입된다. … 섀넌은 여덟 자까지의 상관관계를 살펴서 영어에 약 50퍼센트의 잉여성이 내재해 있다고 추정했다.섀넌은 통계적 효과의 범위를 문장과 단락 수준까지 더 길게 고려해 추정치를 75퍼센트로 높였다. …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무작위적 메시지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이는 전송이나 저장을 위해 자연어 텍스트를 더 효율적으로 인코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섀넌은 각각 다른 기호들의 상이한 확률을 이용한 알고리즘으로 이것을 보여준다. … 그중 하나는 모든 통신채널의 절대적인 제한 속도(섀넌 한계), 즉 채널 용량을 구하는 공식 … 다른 하나는 이 한계 안에서 언제나 모든 수준의 잡음을 극복하는 오류정정 체계를 고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잉여성을 제거하든 혹은 오류 정정을 위해 잉여성을 더하든 간에 인코딩은 언어의 통계적 구조에 대한 지식에 좌우된다. 정보는 확률과 분리될 수 없다.

『통신의 수학적 이론』의 출간을 앞둔 1949년 어느 여름날 … 섀넌은 공책 위에서 아래까지 수직선을 긋고 100에서 1013까지 칸을 나눴다(p.314 그림. 비트 저장용량). … 섀넌은 이 선에 용량별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대상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3비트 : 탁상용 가산기에 들어가는 숫자바퀴
103 : 천공카드
104 : 한 줄 간격으로 작성된 페이지
105 : 인간의 유전적 구조

1011 : 한 시간 분량의 텔레비전 방송

1014 : 의회도서관 (100조 비트)

이는 당대의 과학적 사고에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DNA 구조의 발견은 몇 년 후의 일이었다. 섀넌은 게놈이 비트로 측정할 수 있는 정보 저장소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제8장. 정보로의 전환

MIT의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만든 신조어이자 장차 유행어가 된 ‘인공두뇌학’(cybernetics)은 이 명민하고 성마른 사상가 위너가 제안한 연구 분야이자 전적으로 그가 구상한 자칭 철학운동이었다. … 위너에게 인공두뇌학은 통신과 제어 그리고 인간과 기계에 대한 연구를 통합하는 학문이었다.

위너는 1919년 MIT의 교수진에 합류. … 전쟁이 임박하자 위너는 … 대공포 제어장치를 은밀하게 연구하는 수학자 팀에 합류한다. 섀넌의 대공포 제어 연구가 잡음으로 둘러싸인 신호에 천착했다면 위너는 잡음에 매달렸다. … 위너는 … 브라운 운동처럼 잡음이 통계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위너는 1920년대에 브라운 운동을 철저하게 수학적으로 다루는 연구를 진행했다. 위너의 관심을 끝 것은 바로 불연속성이었다.

이산적 카오스 … 대공포 제어 프로젝트에 대해 위너와 그의 동료 줄리언 비글로는 120페이지짜리 전설적인 논문을 썼다. 기밀로 분류된 이 논문은 … ‘노란색 재난'(Yellow Peril)으로 불렸다. 표지가 노란색 … 논의가 난해했기 때문. 논문 제목은 「외삽법과 내삽법 그리고 정지된 시계열의 평활화」(Extrapolation, Interpolation, and Smoothing of Stationary Time Series)였다. 위너는 이 논문에서 잡음이 섞이고, 불확실하며, 손상된 데이터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계적 방법을 개발했다.

위너는 … 전기공학에서 “피드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빌렸다. … 피드백이 양성이면 통제하기가 아주 어렵다. … 피드백이 음성이면 시스템을 평형상태로 이끌 수 있다. … 위너의 친구인 비글로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는 에너지나 길이 혹은 전압 같은 특정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든 전달되는) 정보일 뿐이다.

위너는 음성 피드백이 어디에나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 위너는 특히 운동 기능이나 언어 기능을 손상시키는 신경장애…를 정보 피드백이 어긋난 매우 구체적인 사례(로 보았다). … 공식을 동원한 위너의 분석은 구체적이었고 수학적이었다. … 한편 피드백 제어 시스템은 공장의 조립라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계적 시스템도 자신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기 때문.

1948년 가을 미국과 프랑스에서 출간된 위너의 첫 저서 제목은 『사이버네틱스』… 부제는 ‘동물과 기계에서의 제어와 통신’이었다. … 위너와 인공두뇌학은 때마침 대중의 인식 속으로 갑자기 들어온 현상(계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전자 계산 분야의 최우선 프로젝트들, 특히 … 에니악(ENIAC)이 베일을 벗었다. 에니악은 진공관과 릴레이, 그리고 손으로 납땜한 24미터에 이르는 전선으로 구성된 30톤짜리 괴물이었다. 군사용 프로젝트에 쓰는 천공카드 기계를 납품하던 IMB도 하버드에서 마크 원(Mark I)이라는 거대한 계산기를 만들었다. 영국 … 브레츨리 파크의 암호해독가들이 콜로서스(Colossus)라는 진공관 계산기 제작을 계획하고 있었다. 앨런 튜링은 맨체스터대학에서 다른 계산기 연구를 시작했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위너의) 책이 크게 성공한 이유는 책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 다시 주목했기 … 위너는 컴퓨터 사용의 부상을 조명하기 보다 컴퓨터 사용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에 더 관심. … 아울러 … 연산기계가 두뇌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 위너는 “계산기와 신경계”라는 장에서 인간과 기계를 나란히 설명. … 부시의 미분해석기 같은 첫 번째 유형은 연속적 척도 위의 치수로 숫자를 나타냈다. 이 기계들은 아날로그 기계였다.

위너가 수치기계(numerical machine)라고 부른 다른 유형은 … 숫자를 직접적으로 … 정확하게 나타냈다. 원칙적으로 이 기계들은 … 이진법을 활용. 고도의 계산을 하려면 일정한 형식의 논리가 필요했다. 그 형식은 무엇일까? 섀넌은 1937년에 쓴 석사논문에서 이 질문에 답했고, 위너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 형식은 ‘탁월한’논리대수 혹은 불대수(Boolean algebra)이다. 이 알고리즘은 이진산술처럼 ‘예’와 ‘아니요’, 혹은 집합 내와 집합 외 사이의 이분법적 선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폰 노이만은 자신이 사실상 불완전한 정보에 대한 수학이라고 본 “게임이론”을 만들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전자 컴퓨터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도 주도하고 있었다. …. 폰 노이만은 두뇌 안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이산적 행위들은 실제로는 연속적 프로세스를 배경으로 모방된 것”이라고 말했다.

섀넌과 위너는 강조점이 달랐다. 위너에게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척도인 반면 섀넌에게는 불확실성의 척도였다. … 기본적으로 무질서와 불확실성은 같은 것.

빈 출신의 젊은 물리학자이자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제자 중 한 명인 하인츠 폰 푀르스터(Heinz von Förster. 1911-2002)는 언어가 진화함에 따라, 특히 구술 문화에서 기록문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언어에 내재된 잉여성의 정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들(마거릿 미드 등 다른 학자들)이 정보이론이라고 부르는 것 전부를 ‘신호’이론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 ‘삑삑’거리는 신호음…을 다른 신호로 바꾸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해를 하고, ‘그제야’ 정보가 탄생합니다. 정보는 신호음 속에 있지 않습니다.”(폰 푀르스터) **

(1951년) 섀넌은 로봇을 가지고 돌아왔다. … 미로를 탈출할 줄 알았던 … 로봇은 섀넌의 생쥐(Theseus)로 불렸다. 섀넌은 상판 위에 가로세로로 각각 다섯 칸으로 구획된 미로를 내놓았다. … 미로를 돌아다니는 것은 하나는 동서로 또 하나는 남북으로 움직이는 한쌍의 작은 모터로 구동되는 탐지기였다. 상판 밑에는 약 75개의 전자식 릴레이가 연결되어 점멸을 통해 로봇의 “기억”을 만들었다.

목표를 탐색하고 도달하기 위해 기계는 방문한 각 칸에 대한 하나의 정보(마지막에 칸을 떠났던 방향)를 저장해야 했다. 거기에는 동, 서, 남, 북이라는 네 가지 가능성만 있었다. … 각칸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두 개의 릴레이가 할당 … 두 개의 릴레이는 끔-끔, 끔-켬, 켬-끔, 켬-켬이라는 네 개의 가능한 상태를 갖기 때문에 네 가지 대안을 두고 선택하는 데 충분한 2비트의 정보를 뜻했다.

섀넌의 생쥐는 생명체를 흉내 내는 자동 장치 … 생쥐는 전체 메모리가 75비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섀넌은 그 기계가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풀었고, 해답을 가지고 있다가 실수 없이 반복했고, 추가 경험으로 얻은 새로운 정보를 통합했으며, 환경이 바뀌면 해답을 “잊었다”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섀넌의 기계는 … 두뇌가 했던 기능들을 수행했던 것이다. … “사실 생쥐가 아니라 미로가 기억하는 것입니다.”(데니스 가보르) … 사실상 릴레이가 미로의 지적 모델이자 미로의 ‘이론’이었다.

1949년 영국의 새로운 핵심 과학자들은 정보이론과 인공두뇌학에 대응해 뭉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젊은 데다 암호해독, 레이더, 대공포제어를 새롭게 경험한 사람들 …  뇌파전위 기록술의 선구자인 존 베이츠(John Bates)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만찬 후 대화를 나누는” 모임을 제안했다. … 블룸스버리에 있는 국립신경질환병원 지하실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모임(의 이름은) 레이쇼 클럽(Ratio Club).

또한 이들은 앨런 튜링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튜링은 선언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검토할 것을 제안…” … 하지만 ‘기계’와 ‘생각하다’라는 개념을 정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튜링실험; 모방게임 실험) 처음에 모방게임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심문자 이 세 사람이 등장하는 방식이었다. … 하지만 이 질문이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튜링은)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기계가 어떤 기계인지를 설명 … “요새 ‘생각하는 기계’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런 관심은 흔히 ‘전자 컴퓨터’ 혹은 ‘디지털 컴퓨터’로 불리는 특정한 종류의 기계에 의해 촉발…”

디지털 컴퓨터는 인간의 기억 혹은 종이에 해당한 “정보 저장소, 개별 동작을 수행하는 “실행부”, 지시문의 목록을 관리하고 올바른 순서로 실행하는 “제어부”, 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됐다. 지시문은 숫자로 인코딩됐다. 튜링은 때로 이 지시문은 “프로그램”으로, 지시문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을 “프로그래밍으로 불린다고 설명.

“배비지의 기계는 전기와 관련이 없고, 모든 디지털 컴퓨터 역시 어떤 의미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전기의 사용이 이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따라서 전기를 쓴다는 특징은 피상적인 유사성에 불과…”(튜링)

튜링의 유명한 컴퓨터는 논리, 말하자면 가상의 테이프와 임의적 기호로 만들어진 기계였다. … 튜링은 향후 50년 동안 일어날 변화에 대해 몇 가지 예언을 내놓는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애초의 질문은 논의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너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20세기 말이 되면 … 상황이 상당히 변화하게 되어 누구라도 쉽게 생각하는 기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튜링)

섀넌은 튜링을 옹호했다. … “기계가 생각한다는 발상은 결코 우리 모두가 꺼림칙해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인간의 두뇌 자체가 무생물로 그 기능을 재현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라는 역발상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공학자들은 컴퓨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자 했다. 심리학자들의 관심은 과연 두뇌가 컴퓨터인지 아닌지였다. … 20세기 중반 … 당시 심리학은 정체되어 있었다. … 심리학은 항상 정확하게 무엇을 연구하는지 이야기하기가 가장 어려운 학문이었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 심리학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얽힌다는 점이었다. … 마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마음 연구에 엄밀함과 검증 가능성을, 그리고 어떠면 수학적으로 만들기 위해 20세기 초 완전히 방향을 바꾸었다. 프로이트의 길은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행동주의자들, 특히 미국의 존 왓슨(John B. Watson), … B. F. 스키너는 음식, 종, 전기 충격, 타액 분비, 레버 누르기, 미로 달리기 같은 자극과 반응을 기반으로 하나의 학문을 만들었다. …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 근본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블랙박스가 놓여 있었다. 행동주의자들의 순수성은 도그마가 되었다. 심리 상태를 거들떠보지 않았던 이들의 태도는 스스로를 우리에 가두었다.

행동주의자들에게 길을 터준 것은 정보이론. … 공학자들이 전자식 릴레이 몇 개를 가지고 생쥐의 사고 모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저 블랙박스를 연 것이 아니라 나름의 블랙박스를 만들고 있었던 것. …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내면의 모델이 만들어지고 업데이트 되었던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점에 주목. 정보이론과 인공두뇌학에서 심리학자들은 유용한 메타포, 심지어 생산적인 개념적 틀을 받아들였다. … 갑자기 심리학자들이 계획, 알고리즘, 통사규칙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섀넌은 이렇게 선언한 바 있었다. “통신의 근본 문제는 한 지점에서 선택된 메시지를 다른 지점에 … 재현하는 데 있다.” 심리학자들은 당연히 메시지의 원천이 외부세계에 있고 수신자가 마음속에 있는 경우를 생각했다. … “정보의 속성과 측정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인해 귀의 정보 능력을 정량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호머 제이콥슨)

연구자들은 숫자나 글자 혹은 단어 같은 항목들의 총체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고, 얼마나 많이 이해되며 기억되는지 연구하기 시작 … 말, 경적, 단추 누르기, 발 두드리기로 구성된 표준적인 실험은 자극과 반응이 아니라 정보의 전달과 수용 측면에서 지행되었다.

영국의 실험심리학자 도널드 브로드벤트(Donald Broadbent)가 케임브리지대학에 응용심리학 과정을 개설하자,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를 다루는지를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단기기억, 장기기억, 패턴 인식, 문제 해결 같은 연구 …

(미국의) 조지 밀러(George Miller)는 … 1960년 하버드대학에 인지연구센터를 세우는 데 일조 … 이미 1956년 「마법의 수 7, ±2: 정보처리 용량의 어떤 한계」라는 다소 이상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비트에 대한 밀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비트는 두 개의 동일한 확률을 가진 대안 사이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의 양이다. … 확률이 반반이라면 1비트의 정보가 필요하다. … 정보 2비트가 있으면 네 개의 동일한 확률을 가진 대안을 두고 선택할 수 있다. 3비트는 여덟 개의 동일한 확률을 가진 대안에서 선택 …. 따라서 일반적인 원칙은 단순하다. 대안의 수가 2배로 늘어날 때마다 1비트의 정보가 추가된다.”

“정보이론의 개념과 척도는 이런 의문들을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 정보이론의 개념은 이미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과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 가치를 증명했고,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되며, 심지어 개념 형성에 대한 연구에도 유용할 것으로 평가됐다. …”(밀러) 이는 심리학에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라 불리는 운동의 출발점으로서 심리학, 컴퓨터공학, 철학을 통합하는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의 토대를 놓았다.

섀넌은 (대중 강연에서) 농담하듯 ‘마태복음’ 5장 37절을 인용해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은 비트와 잉여적 인코딩 개념의 본보기 …

너도나도 정보이론의 유행에 편승 … 섀넌 자신도 이를 유행이라고 불렀다. “… 우리로서는 이런 인기의 물결이 분명 기쁘고 흥분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위험 요소도 따라온다.”(섀넌) 섀넌은 정보이론의 핵심은 수학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 모든 곳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정보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단어들을 새로운 영역으로 옮기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가설과 실험을 통한 검증을 거치는 느리고 지루한 과정이다.”(섀넌) … 섀넌은”우리(정보이론) 분야에서도 이런 힘든 과정이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섀넌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인 잡음 부호화 정리(noisy coding theorem)는 오류정정을 통해 잡음과 데이터 손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갈수록 중요해졌다. … 섀넌의 전망대로 1950년대 들어 오류정정 수단에 대한 연구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면서 잡음 부호화 이론이 필요해졌다.

한 가지 적용 분야는 로켓과 인공위성을 이용한 우주 탐사였다. … 또한 부호화 정리는 확률과정에 관심있는 수학자들이 엔트로피를 측정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섀넌은 이미 1948년에 “물론, 그 자체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던 문제를 다룬 첫 번째 논문을 썼다. 바로 체스 두는 기계를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18-19세기부터 체스 두는 기계를 만들었고, … 1910년 스페인의 수학자이자 기계 제작자인 레오나르도 토레스 이 케베도(Leonardo Torres y Quevedo)는 완전히 기계적인 진짜 체스 기계(체스 기사)를 만들었다.

[그림 13] 레오나르도 토레스 이 케베도가 만든 최초의 체스 기계 ‘체스 기사'(El Ajedrecista). 1910. (출처 : wikipedia)

섀넌은 수치 계산을 하는 컴퓨터가 완벽히 체스를 둘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수천 개의 진공관과 릴레이 그리고 기타 부품들”로 만들어진 이 기계는 “메모리”에 숫자를 저장하고 이 숫자를 영리하게 바꿔내 체스판의 칸과 말을 대신했다. 섀넌이 제시한 원칙들은 이후 모든 체스 프로그램에서 활용됐다. 하지만 섀넌이 대충 계산해 내놓은 가능한 체스 게임의 수는 무려 10120가지 이상이었다.

이에 비하면 우주의 나이는 나노 초 정도 … 섀넌이 이야기했듯 체스를 두려면 인간적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섀넌은 … 미국 챔피언, 에드워드 래스커(Edward Lasker)를 찾아갔고, 래스커는 개선점을 제안했다. 섀넌은 1950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실은 논문 축약본을 통해 모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런 종류의 체스 기계는 ‘생각하는’ 것인가?”

이쪽 계통에서 악명 높은 유행어는 ‘엔트로피’였다. … “듣자하니 언어, 사회체제, 경제체제에도 ‘엔트로피’가 있고, … 엔트로피는 사람들이 지푸라기처럼 움켜잡는 일종의 포괄적인 일반론입니다.”(콜린 체리. Colin Cherry. 1914-1979) 체리는 정보이론이 이론물리학과 생명과학의 경로를 바꾸기 시작했으며, 엔트로피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

정보이론은 사회과학을 촉진하여 이미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했다. 일은 시작되었고, 정보로의 전환은 돌이킬 수 없었다.

제9장. 엔트로피와 그 도깨비들

엔트로피라는 말은 1865년 열역학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1822-1888)가 만든 것이었다. … 클라우지우스는 열이 엔진을 움질일 때 실제로는 열이 사라지지 않는 사실을 발견했다. 열은 단지 뜨거운 대상에서 차가운 대상으로 옮겨갈 뿐. 이 과정에서 열은 일을 했다.

일을 산출하는 열역학계의 능력은 열 자체가 아니라 온도 차이. … 닫힌계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든 간에 모든 것이 같은 온도에 이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클라우지우스가 측정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에너지의 무효성이었다. 클라우지우스는 변화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만든 ‘엔트로피’라는 단어를 내놓았다.

엔트로피는 … 개념이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온도, 부피, 압력처럼 측정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 열역학의 “법칙들”은 엔트로피로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제1법칙 :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제2법칙 : 우주의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

대중들에게 제2법칙을 각인시킨 사람은 …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 1824-1907). … 톰슨은 (소실이 아니라) ‘소산’이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 하지만 엔트로피의 본질적 속성으로 혼란 그 자체(무질서)에 주목한 것은 맥스웰이었다.

열역학의 선구자들은 이상적인 사례로 기체 상자를 생각했다. 원자로 구성된 기체는 … 동요하는 입자들의 거대한 앙상블이다. … 분자는 개별적으로 뉴턴 법칙을 따라야 한다. … 미시적 측면에서 개별 분자의 운동을 관찰하면 운동의 행태는 시간을 앞으로 돌리든 뒤로 돌리든 같다 … 하지만 기체 상자를 하나의 총체로 보면 혼합 과정은 통계적으로 일방통행로가 된다.

결국 물리학자들은 미시상태(microstate)와 거시상태(macrostate)가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 특정한 거시상태의 엔트로피는 가능한 미시상태의 수의 로그이다. 따라서 제2법칙은 확률이 낮은(질서 정연한) 거시상태에서 높은(무질서한) 거시상태로 이동하려는 우주의 경향이다.

맥스웰의 사고실험 : 맥스웰은 기체 상자를 나누는 칸막이에 난 작은 구멍으로 감시하(면서 통과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를 상상해보라고 제안한다. … 이 존재는 일반적인 확률을 거스른다. 대개의 경우 사물들은 서로 뒤섞인다. 사물들을 분류하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던 톰슨은 이 가상의 존재를 … “맥스웰의 도깨비”라고 불렀다. … 맥스웰은 자신의 도깨비를 설명의 도구로 쓸 때를 제외하고는 실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 이 도깨비는 물리학의 세계에서 정보의 세계로 가는 입구를 지켰다.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개선되는 현미경을 통해 세포막의 활발한 분류 과정을 관찰했다. 이런 관찰을 통해 살아 있는 세포가 펌프, 필터, 공장의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누가 혹은 무엇이 제어하는 것일까?

헝가리 물리학자였던 레오 실라르드(Szilárd Leó. 1898-1964)는 나중에 전자현미경을 구상하고 우연찮게 핵 연쇄 반응을 고안한 사람이었다. … 1920년대에 실라르드는 분자의 지속적인 요동(fluctuation)을 열역학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원래 요동은 잠깐 동안 상류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평균에서 어긋났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했다. 요동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 “왜 우리는 모든 열을 이용할 수 없을까?”

정보는 공짜가 아니다. 맥스웰과 톰슨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도깨비의 눈앞에서 오가는 분자들의 속도와 궤도에 대한 지식이 거저 주어지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말했다. …. 하지만 정보는 물리적이다. 맥스웰의 도깨비…는 한 번에 한 입자씩 정보와 에너지 사이의 변환을 실행한다.

아직 ‘정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던 실라르드는 각각의 측정과 기억을 정확히 이해하면 변환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계산 결과 각 정보 단위는 구체적으로 k log2 단위에 해당하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져왔다. 도깨비가 한 입자와 다른 입자 사이에서 선택을 할 때마다 1비트의 정보가 소요된다.

실라르드는 엔트로피를 정보로 보는 섀넌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물리학자에게 엔트로피는 물리계의 상태, 즉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상태 중 하나의 상태에 대한 불확실성의 척도이다. 이 미시상태들의 확률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으며,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S = −∑Pi log Pi로 쓴다.

정보이론가에게 엔트로피는 메시지, 즉 통신원이 생성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메시지 중 하나의 메시지에 대한 불확실성의 척도이다. 가능한 메시지들의 확률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으며, 따라서 섀넌은 H = −∑Pi log Pi로 쓴다.

이는 단지 형식의 일치는 아니다. 모두 하나의 문제인 것이다. .. 섀넌은 정보를 엔트로피와 동일시했지만 위너는 정보를 ‘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라고 말했다. “저는(섀넌) 집합에서 선택이 이루어질 때 얼마나 많은 정보가 ‘생성’되는지를 생각합니다. 집합이 클수록 ‘더 많은’ 정보가 생성됩니다. 반면 선생님은(위너) 집합이 더 큰 경우 불확실성이 더 높다는 것은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적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더 적은’ 정보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H는 의외성의 척도 …(이며 동시에) 미지의 메시지를 추측하는 데 필요한 예-아니요 질문의 평균 횟수이다. 섀넌이 옳았지만 한동한 혼란은 계속되었다.

양자역학의 선구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는 1943년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법정 대중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 이 강연을 토대로 만든 작은 책(『생명이란 무엇인가?』)은 영향력을 발휘 … 유전학과 생화학을 결합한 … 신생 학문을 위한 토대를 놓았다. 

슈뢰딩거는 자신이 생물학적 안정성이 수수께끼라고 부른 문제에서 출발했다. … “하나의 물질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요? … 비슷한 환경에서 무생물이 ‘계속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움직이거나 환경과 물질을 교환하는 등 ‘어떤 일’을 계속할 때 우리는 살아 있다고 합니다.”

슈뢰딩거는 제2법칙을 잠시 거르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생명체가 “그토록 불가사의하게 보인다”라고 생각했다. … “덜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신진대사에서 본질적인 것은 유기체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성하는 모든 엔트로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염색체…에, 개체가 앞으로 거칠 발생의 전체 패턴이 일종의 암호문으로 들어 있습니다.” … 슈뢰딩거는 “명확한 유전적 특성을 담은 가상의 매개체”로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까지 이 가상의 유전자를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는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무언가 빠진 것을 느꼈다. “같은 구조가 3차원적으로 반복되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으로 형성된 결정체는 지나치게 질서 정연했다. … 슈뢰딩거는 생명은 예측 가능한 반복이 없는 구조로, 고도의 복잡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 “우리는 유전자 혹은 전체 염색체 섬유가 비주기적 고체(aperiodic crystal)라고 믿는다” 이것이 슈뢰딩거의 가설이었다.

제10장. 생명의 고유 코드

“‘단일 인자’나 ‘원소’ 혹은 ‘대립형질’을 표현하는 데 유전자라는 용어가 유용할 것이다. … ‘유전자’의 속성에 대해 가설을 제시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의미가 없다.”(빌헬름 요한센. Wilhelm Johannsen. 1857-1927)

멘델은 정확하게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전자를 발견한 것이다. 멘델에게 유전자는 물리적 실체라기 보다는 대수적 편의에 가까웠다. 신생 분자생물학은 정보 저장과 전송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은 “비트”를 기준으로 계산 … 생물학으로 눈을 돌린 몇몇 물리학자들은 복잡성과 질서, 조직화와 특이성처럼 생물학적 특성을 논의하고 측정하는 데 필요한 개념으로 정보를 이야기했다. 

헨리 콰슬러(Henry Quastler. 1908-1963)는 정보이론을 생물학과 심리학에 적용했다. … 1952년 콰슬러는 생물학에서 정보이론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다룬 학회를 주최했다. 학회는 세포 구조에서부터 효소의 촉매작용, 그리고 대규모 “생물계”에 이르는 분야에 엔트로피, 잡음, 메시지, 분화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염색체 속 어딘가에 든” 전체 지시문이 바로 게놈이다. … 섀넌의 정보이론은 생물학에 완전히 접목될 수 없었다. 에너지에 대한 사고에서 정보에 대한 사고로 옮겨가는 중대한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이중나선은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조각으로 만들어지면서 아이콘이 되었다. DNA는 서로 꼬인 채 상보관계를 이루는 두 개의 긴 염기배열로 구성되며, 네 글자로 작성된 암호와 비슷하다. … 각 사슬에서 염기배열이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 DNA 분자는 특별하다. DNA의 유일한 기능은 정보를 담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달은 미생물학자들은 코드를 해독하는 일에 나섰다.

한편 조지 가모브(George Gamow. 1904-1968)는 버클리대학의 방사선연구소를 방문했다가 왓슨과 크릭의 논문을 읽게 된다. 가모브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를(유전 코드) 수학적 문제, 즉 다른 문자로 작성된 메시지들 사이의 사상(mapping)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코드화의 문제라면 조합론과 정보이론에서 필요한 도구를 구할 수 있었다. 

유전 코드는 괴델이 철학적 의도를 가지고 만든 메타수학적 코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괴델의 코드가 평범한 숫자로 수식과 연산을 대체한다면, 유전 코드는 뉴클레오타이드 트리플릿을 이용해 아미노산을 나타낸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 1945-)는 1980년대에 최초로 이 연관성을 확실하게 밝힌 사람이었다. 

DNA는 두 가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정보를 보존한다. … 둘째, DNA는 또한 유기체의 형성 과정에서 활용하기 위해 그 정보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 정보 전달은 핵산에서 단백질로 전해지는 메시지를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DNA는 자기를 복제할 뿐만 아니라 이와 별개로 완전히 다른 대상의 제조도 지시한다.

1960년대 풀린 유전 코드는 잉여성이 가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 일부 아미노선은 코돈 하나에만 해당했고, 다른 것들은 두 개나 네 개 혹은 여섯 개의 코돈에 해당했다. … 코돈 중에는 잉여적인 것도 있고, 사실상 시작 신호와 정지 신호의 기능을 하는 것도 있다. 잉여성은 정확히 정보이론가들이 예상한 기능을 수행한다. 즉, 오류에 대한 허용오차를 제공하는 것. 

1990년 대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대략 2만 개의 유전자와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인간 게놈의 전체 지도를 그리는 일에 착수한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에너지와 물질에서 정보로의 프레임 전환이었다.

“1950년대까지 생화학의 모든 것은 세포의 기능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어디서 얻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 돌이켜보면 이중나선 구조 덕분에 에너지나 물질과 똑같이 생물계의 정보를 연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저는 이 새로운 분자생물학이 고도의 논리적 컴퓨터, 프로그램, 발생의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 시드니 브레너. Sidney Brenner. 1927-2019

이후 벌어진 일들 중 하나는 분자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의 충돌이었다. … 이 논쟁의 불꽃을 대부분 일으킨 장본인은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ukins. 1941-)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명에 대한 거대한 질문, 즉 ‘유기체는 어떻게 자신을 재생산하는가’에 대한 답이 DNA에 있다고 보았다. … 우리가 DNA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 DNA가 먼저라는 주장. … 유전자가 중심이고, 필수조건이며, 주연이다.

“우리는 생존 기계, 즉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도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로봇 이동수단”(『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1976). … DNA는 주위에 단백질 껍데기를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도킨스가 말한 “생존 기계”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유전자 중심, 정보 기반의 관점은 생명의 역사를 추적하는 새로운 종류의 조사연구로 이어졌다. 하나의 유전자가 유기체를 형성하는 일은 없다. 비만, 공격성, 둥지 짓기, 똑똑함, 동성애 같은 더 복잡한 속성들에 대한 유전자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는 더욱 어렵다. … 엄밀하게 따지자면 심지어 눈의 색깔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것을 위한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유전자 사이의 차이가 표현형(실현된 유기체)의 차이를 낳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각각의 유전자는 단백질의 형태로 지시를 내린다. … 유전학자, 동물학자, 행동생물학자, 고생물학자들의 모두 “X의 변이에 대한 유전적 기여”가 아니라 “X를 위한 유전자”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이 때문이다. 유전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거대 분자가 아니다. 유전자는 정보이다. …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유전자, 이를테면 사람의 긴 다리를 위한 유전자는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E단조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 음악은 정보이다. 마찬가지로 DNA의 염기쌍은 유전자가 아니다. DNA 염기쌍은 유전자를 인코딩한다. 유전자 자신은 비트로 구성된다.

제11장. 밈 풀 속으로

[그림 14] 버니 샌더스(미국 상원의원)를 본떠 만든 인형. 2021년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던 버니 샌더스의 모습이 엄청난 밈 현상을 일으켰었다. 당시 그가 끼고 있던 엄지 장갑을 만들어 선물로 주었던 사람은 밈 현상 후 그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었고, 이 인형은 경매에서 약 2만 달러로 낙찰되었다.. 그 사람은 이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출처 :The Guardian)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진화와 관념의 진화 사이에 나름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은 복제자가 맡았는데, 복제자가 핵산으로 구성됐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생명은 복제하는 존재의 차별적 생존에 의해 진화한다.” 이게 도킨스의 규칙이다. 이 몸체 없는 복제자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도킨스가 제안한 것이 바로 ‘밈'(meme)이었다. … “밈은 넓은 의미에서 모방이라고 볼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두뇌에서 두뇌로 건너뛰면서 밈 풀 속에서 자신을 번식시킨다.”

머릿속에서 나온 밈은 종이, 셀룰로이드, 실리콘, 그리고 정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교두보를 놓고 외부로 나간다. …. 우리는 밈의 운반자이자 조력자이다. … 밈은 주로 이른바 “입소문”을 통해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후 점토판, 동굴 벽, 종이 같은 확고한 실체에 고착된다. 밈은 펜, 인쇄기, 자기테이프, 광디스크를 통해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중계탑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퍼진다.

도킨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밈이 의식적 행위자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가진 독립체로 자연선택에 의해 움직일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운율과 리듬은 밈의 생존에 유리한 속성이다. 패턴화된 언어는 진화론적으로 장점이 있다. 밈은 유전자처럼 표현형 효과를 통해 자신을 넘어서 넓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도킨스가 1976년 “인간의 두뇌는 밈이 사는 컴퓨터”라고 쓰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 2판이 나온 1989년 무렵, 프로그래머로서도 뛰어났던 도킨스는 이렇게 예측을 수정해야 했다. “대량으로 생산된 전자 컴퓨터 역시 결국 정보가 형성하는 자기 복제 패턴의 숙주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도킨스는 또 다른 현상이 부상하고 있음을 보았다. 바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였다. “그중 다수는 이메일을 주고받음으로써 그야말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이는 자기 복제 프로그램이 번성하기에 완벽한 환경이다.” 인터넷은 … 밈이라는 ‘개념’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3년 쓴 칼럼에서 호프스태터(Douglas R. Hofstadter. 1945-)는 이런 지식 분야에 대해 확실히 밈적인 명칭인 ‘밈학'(memetics)을 제안했다. 하지만 문화적 요소들은 대부분 너무 쉽게 변하고 모호해져서 안정적 복제자로서는 무리가 있다. … 도킨스 자신도 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음을 강조했다. … 유전자는 적어도 물리적 실체가 있다. 하지만 밈은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으며, 측정할 수도 없다.

유전자는 완벽에 가까운 충실도로 복제를 하며, 진화는 이에 달려 있다. 일부 변이는 필수적이지만, 돌연변이는 드물어야 한다. 하지만 밈은 정확하게 복제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밈은 여기에 존재한다. 정보의 흐름이 유례없이 큰 연결성을 만들어내면서 밈은 더 빨리 진화하고 더 멀리 퍼진다. 밈의 존재는 군종행동, 뱅크런, 정보 폭포, 금융 버블에서 보이거나 느껴진다.

우리의 두뇌와 문화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에서 효과적인 전투원은 메시지이다. … “인간 세상은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야기가 자신을 말하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David Mitchell. 1969-) 생물권은 대부분 정보권(infosphere)을 보지 못한다. … 우리 인간들은 지구상의 유기체들 중에서 유일하게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간다.

제12장. 무작위성의 감각

무작위성은 질서라는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무작위성은 질서가 없는 것이다. 무지는 주관적이다. 무지는 관찰자의 속성이다. 무작위성은 (만약 존재한다면) 사물 자체의 속성일 것이다. 인간을 배제하면 사건, 선택, 분포, 게임, 혹은 가장 간단하게 수는 무작위적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무작위성을 예측하고 인식하는 일 모두에서 인간의 직관은 쓸모없다는 것을 연구자들이 입증한 바 있다. 인간은 무심결에 패턴을 향해 흘러간다.

섀넌은 정보이론을 처음 확립하면서 메시지를 통계적으로 다루었다. 메시지를 모든 가능한 메시지 전체에서 선택된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섀넌은 동시에 메시지 내의 잉여성, 즉 메시지를 압축할 수 있게 만드는 패턴, 규칙성, 질서도 고려했다. 메시지의 규칙성이 클수록 예측성이 높아진다. 예측성이 높을수록 잉여성은 커진다. 잉여성이 클수록 포함하는 정보는 줄어드는 것이다.

그레고리 체이틴(Gregory Chaitin. 1947-)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튜링기계였다. 무한한 테이프를 따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기호를 읽고 쓰는 튜링기계는 이른바 명쾌한 추상화의 극치였다. … 폰 노이만 역시 계속 튜링기계로 되돌아왔다. … 튜링의 U는 초월적 힘을 지녔다. 범용 튜링기계는 다른 디지털 컴퓨터를 모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벨연구소에서 MIT로 옮긴 클로드 섀넌은 1956년 튜링기계를 재분석했다. 튜링기계를 최대한 단순화시킨 섀넌은 범용 컴퓨터를 두 개의 내부 상태만으로 구축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0과 1이라는 단 두개의 기호 혹은 공백과 비공백만으로 범용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체이틴은 패턴과 질서가 연산 가능성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알고리즘은 패턴을 생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알고리즘의 크기’를 통해 연산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주어진 수에 대해 우리는 “이 수를 생성할 가장 짧은 프로그램의 길이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튜링기계의 언어를 활용하면 이 질문은 비트로 측정되는 명확한 답을 가질 수 있다. 무작위성을 알고리즘으로 정의한 체이틴의 방식을 보면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알고리즘의 크기는 주어진 수열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는지 말해준다.

(『연산기계학회 저널』은 체이틴의 논문을 흔쾌히 출판했으나 소련의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콜모고로프가 비슷한 논문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1966년 초 『정보 전달의 문제』 첫 호…에는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콜모고로프(Andrei Nikolaevich Kolmogorov. 1903-1987)가 쓴 「’정보량’ 개념의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접근법」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려 있었다.

콜모고로프는 조합론적 접근법, 확률론적 접근법, 알고리즘적 접근법이라는 세 가지 접근법을 설명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섀넌의 접근법을 다듬은 것이었다. … 이를테면 가능한 메시지 집합에서 어떤 특정 메시지가 선택될 확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보를 측정하는 세 번째 접근법인 알고리즘적 접근법은 가능한 대상의 총체에서 출발해야 하는 난점을 없앴다. 이 접근법은 대상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콜모고로프는 … 새로운 단어 ‘복잡성’(complexity)을 제안한다. … 대상이 단순할수록 담고 있는 정보도 적다. 복잡성이 높을수록 담고 있는 정보도 많다. 아울러 콜모고로프는 그레고리 체이틴과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을 토대로 복잡성을 계산함으로써 이 개념을 확고한 수학적 토대 위에 놓았다. 

어떤 대상의 콜모고로프 복잡성은 그 대상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가장 짧은 알고리즘의 비트 단위 크기 혹은 정보량 혹은 무작위성의 정도 … 정보, 무작위성, 복잡성, 이 세가지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콜모고로프가 보기에 이런 개념은 확률론뿐만 아니라 물리학에도 속했다. … 다시 한 번 엔트로피가 핵심 … 콜모고로프는 1970년대에 일어난 카오스 이론 르네상스의 토대를 놓고 있었다. 카오스 이론은 엔트로피와 정보 차원(information dimensioin)에 따라 동역학계를 분석했다.

체이틴과 콜모고로프는 알고리즘적 정보이론을 만드면서 베리의 역설(Berry paradox)되살렸다. 알고리즘은 수를 명명한다. … “베리의 역설은 원래 영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는 너무 모호하다. 나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선택한다.” 당연히 체이틴이 선택한 것은 범용 튜링기계의 언어였다.

양자물리학에서, 그리고 나중에 나온 카오스 이론에서 과학자들은 지식의 한계를 발견했다. … 이들의 교훈 중 몇 가지를 보자.(책 p.465)

  • 대부분의 수는 무작위적. 그러나 무작위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는 극히 적다.
  • 정보의 카오스적 흐름도 단순한 알고리즘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 카오스에서 알고리즘으로 역행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다.
  • 콜모고로프-체이틴 복잡성이 수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엔트로피가 열역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같다. … 영구 운동기관을 만들 수 없듯이 완전한 형식적 공리 체계도 있을 수 없다.
  • 몇몇 수학적 사실들은 특별한 이유없이 참이다. 이 사실들은 우연적이며, 원인이나 깊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섀넌이 보기에 압축이 핵심이었다. …. 레이 솔로모노프는 1950년대 초반 섀넌의 논문을 접하고는 섀넌이 정보 패킹 문제라 말한 것에 천착 … 이 문제는 주어진 수의 비트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지 혹은 반대로 어떤 정보가 주어졌을 때 가능한 한 가장 적은 비트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다루었다.

솔로모노프, 콜모고로프, 체이틴은 세 가지 다른 문제와 씨름했고, 같은 해답을 제시했다. 솔로모노프의 관심은 귀납적 추론. 콜모고로프는 무작위성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방법. 체이틴은 튜링과 섀넌을 거쳐 괴델의 불완전성에 이르는 난해한 길을 찾고 있었다. 이들 모두는 최소 프로그램 크기에 이르렀다. 또한 결국 이들은 복잡성에 대해 논하게 된다.

메시지에서 무작위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압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보여준 것은 섀넌이었다.** 무작위적 수열은 ‘정규적’이다. 정규적이라는 전문용어는, 각 수는 평균적으로 결국에는 다른 수와 똑같이 나온다는 뜻이다. … 특정한 수의 어떤 수열도 같은 길이의 다른 수열보다 등장할 확률이 높지 않다. … 진정한 무작위적 수열은 정규적이어야 하지만 그 역이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는다.

메시지는 알고리즘이다. 또한 수신자는 기계이다. 즉, 창의성도 없고 불확실성도 없으며, 기계 안에 내장된 ‘지식’ 외에는 아무런 지식도 없다. 1960년대가 되자 디지털 컴퓨터는 이미 지시문을 비트로 측정되는 형식으로 받기 시작 … 따라서 어떤 알고리즘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포함됐는지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따라서 최소 프로그램 크기로 복잡성을 정의하는 것이 완벽해 보인다. … 하지만 달리 보면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특히 예술, 생물학, 지성과 같은 거대 질문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은 패턴과 무작위성이 얽히는 곳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 찰스 베넷(Charles Bennett. 1943-)은 논리적 깊이'(logical depth)라는 새로운 가치 척도 연구를 진행했다. … 깊이는 메시지의 유용성을 포착한다는 것을 의미.

메시지에서 순전히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만 있는 부분에는 논리적 깊이가 없다. 명백한 잉여성, 즉 평범한 반복과 복제만 있는 부분에도 논리적 깊이가 없다. … 메시지의 가치는 “묻혀 있는 잉여성으로 부를 수 있는 것, 즉 어렵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 원칙적으로 수신자가 말을 듣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지만 돈이나 시간 혹은 연산 측면에서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만 하는 것”에 있다(베넷).

베넷은 논리적 깊이 개념을 자기 조직화의 문제, 즉 자연에서 복잡한 구조가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적용한다. 진화는 단순한 초기조건에서 시작 … 이를 기반으로 복잡성이 발생한다.

제13장. 정보는 물리적이다 – 비트에서 존재로

양자역학은 짧은 역사에도 다른 어떤 학문보다 많은 위기와 논쟁, 해석, 학파의 분열과 전면적인 철학적 고통을 겪었다. …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양자이론가 크리스토퍼 푹스(Christopher Fuchs. 푹스에 대한 퀀컴 메거진의 기사. 2015. 6. 4.)의 질문이었다.

푹스는 새롭게 출발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정교하고 수학적인 기존의 양자 공리들을 버리고 심오한 물리적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렇다면 이 물리적 원칙들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푹스의 대답은 바로 양자 ‘정보’이론**이다. … “… 양자역학은 언제나 정보에 대한 것이었다. 단지 물리학계가 이 사실을 잊었을 뿐이다.”

양자역학이 정보에 대한 것임을 잊지 않은 사람은 … 존 아치볼드 휠러(John ARchibald Wheeler. 1911-2008)였다. … 휠러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존재, 모든 입자와 모든 힘의 장, 심지어 시공간 연속체 그 자체가 ‘비트’로부터 그 기능, 의미, 존재 자체를 얻는다.” 자연은 왜 양자화된 것처럼 보일까? 정보가 양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트는 쪼갤 수 없는 궁극의 입자이다.

정보를 전면으로 내세운 물리 현상 가운데 블랙홀보다 장대한 것은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정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는 블랙홀을 알기 전에 죽고 말았다.

(블랙홀의) 중심에는 특이점이 있다. 밀도와 중력은 무한대가 되며, 시공간은 무한하게 휘어진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교체된다. 1967년 휠러는 이를 “블랙홀”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 물질과 에너지에 초점을 맞췄다. 나중에는 정보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 … 1974년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이 양자 효과를 일반상대성이론의 일반적인 계산에 더하면서 블랙홀은 결국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는 양자 요동의 결과로 입자를 방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문제가 발행. … 블랙홀이 천천히 증발한다는 얘기 …

호킹 복사는 열복사, 즉 열이다. …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은 정보를, 그 구조와 조직, 양자 상태를 갖는다. … 하지만 방출되는 호킹 복사는 아무 정보도 담지 않는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증발할 때 정보는 어디로 갈까?

찰스 베넷(Charles Bennett. 1943-)은 아주 다른 길을 걸어 양자 정보이론에 이르렀다. … 오래전부터 ‘연산의 열역학’에 대해 생각했던 터였다. … 1980년대 초 베넷은 튜링기계의 테이프를 연료로, 그 열량을 비트로 측정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 논리적 일의 물리적 비용은 무엇일까? 어느 순간 베넷은 특수 목적용 튜링기계가 이미 자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RNA 중합효소였다. 왓슨(James Watson)에게 직접 중합효소에 대해 배운 터였다. 중합효소는 유전자, 말하자면 ‘테이프’를 따라 DNA를 전사하는 효소이다.

베넷은 튜링기계와 전령 RNA에서부터 당구공처럼 생긴 것을 통해 신호를 전달하는 ‘탄도’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관념적인 모든 종류의 컴퓨터를 분석하면서 란다우어(Rolf Randauer. 1927-1999. 오직 비가역적 연산만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의 법칙을 검증했다.

베넷은 모든 사례에서 정보가 ‘삭제’될 때만 열 소산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삭제는 비가역적인 논리 연산이었다. … 실라르드(Szilárd Leó. 1898-1964)의 사고실험에서 도깨비가 분자를 관찰하거나 선택할 때 엔트로피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엔트로피 비용은 도깨비가 다음 관찰값을 위해 한 관찰값을 지울 때(만) … 발생한다.

큐비트(qubit)는 … 최소 양자계이다. 큐비트는 고전적 비트처럼 0 혹은 1이라는 두 가지 가능한 값, 다시 말해서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상태를 지닌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양자 상태들을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공간 속에서의 방향들, 그리고 이 방향들이 수직인지 혹은 ‘직교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계의 구별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 물리학자는 큐비트가 상태들이 ‘중첩’, 즉 확률 진폭의 조합이라고 말한다. 큐비트는 불확정성의 구름 내부에 살고 있는 결정적인 대상이다.

[그림 15] 블로흐 구면(Bloch sphere). 양자역학에서 순수한 상태의 2단계 양자계(2-level quantum system)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것. 물리학자 펠릭스 블로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얽힘은 중첩 원리를 취하며 공간을 가로질러 서로 멀리 떨어진 한 쌍의 큐비트로 중첩원리를 확장한다. … (얽힘을) 발명한 사람은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하지만 얽힘을 명명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슈뢰딩거였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 당시 양자역학에 존재하는 결함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밝히려는 사고실험을 했고 이 사고실험을 위해 얽힘을 발명*했다.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은 완전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A. Einstein, B. Podolsky and N. Rosen. 1935.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Princeton, New Jersey. Vol.47.)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은 광자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측정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연구했다. … 측정이 빛보다 빠르게 달려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 이는 역설로 보였고, … “B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뭐가 됐든 간에 공간 A에서 실행하는 측정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 아인슈타인은 얽힘에 ‘도깨비 같은 원격작용’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을 붙였다.

먼 거리에서 이뤄지는 도깨비 같은 작용의 수수께끼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비국지성'(Nonlocality)이 모두 EPR 사고실험을 잇는 여러 독창적인 실험에서 증명됐다. 얽힘은 실재할 뿐만 아니라 도처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은 기이하다. … 파인먼(Richard P. Feynman. 1918-1988)은 연산, 즉 컴퓨터로 양자물리를 모사하는 일의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았다. 바로 확률이었다. 모든 양자 변수에는 확률이 개입 … 이 점은 연산의 어려움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파인먼은 맞불작전을 제안 … “확률적 자연계를 모사하는 다른 방법은 여전히 그 자체가 확률적인 컴퓨터 C로 확률적 자연계를 모사하는 것…” 

양자컴퓨팅에서는 복수의 큐비트들이 서로 얽힌다. … 비트가 이것 아니면 저것인 고전적 컴퓨팅에서 비트는 2n 값 중 하나를 인코딩할 수 있다. 반면 큐비트는 모든 가능한 중첩과 함께 이 불값(Boolean value)들을 인코딩할 수 있다. … 병렬처리의 가능성이 양자컴퓨터에 생기는 것 … 

양자 정보 과학에 대한 의제, 차세대 물리학자와 컴퓨터공학자들 모두가 해야 할 일 목록을 남긴 사람은 존 휠러였다. 휠러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끈이론과 아인슈타인의 기하동역학의 양자적 버전을 연속체의 언어에서 비트의 언어로 번역하십시오. … 의미를 확립하는 기본 단위로서 ‘비트’라는 용어에 대한 깔끔하고 명확한 정의가 없는 것을 개탄하지 말고 축하하십시오. … 대단히 큰 수의 비트들을 조합하여 우리가 존재라고 부르는 것을 얻는 방법을 배운다면 비트와 존재의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은 과제는 바로 의미의 확립이었다. 이는 비단 과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14장. 홍수 이후 : 바벨의 거대한 앨범

우리는 나름의 창고를 만든다. 우리 시대 특유의 정보의 지속성, 망각의 어려움으로 혼란이 커진다. 아마추어들이 협력하여 만드는 위키피디아라는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이 분량과 포괄성 면에서 세상의 모든 인쇄판 백과사전을 따라잡기 시작하자 편집자들은 너무 많은 표제어들이 다양한 뜻으로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 혹은 앨범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따라서 컴퓨터를 닮게 된다. 여기서 가장 처음 주목한 사람이 앨런 튜링일 것이다. 튜링은 컴퓨터를 우주처럼 상태의 집합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고, 모든 순간의 기계의 상태는 다음 순간의 상태로 이어지며, 따라서 기계의 모든 미래는 최초의 상태와 입력 신호로부터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위키피디아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문화의 중심이 된 데는 어느 정도 구글과의 의도치 않은 시너지 관계 덕분이었다. 위키피디아는 집단 지성 개념의 시금석이 되었다. 사용자들은 학위도 없고, 신원 확인도 안 되며, 어떤 편견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권위적인 투로 작성한 항목들의 이론적, 실제적 신뢰성을 놓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연구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위키피디아를 불신한다. 저널리스트들은 위키피디아에 의존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래도 권위는 생긴다. 미국에서 몽고메리라는 이름의 카운티(county)가 있는 주가 몇 개나 되는지 알고 싶은데 위키피디아에 나온 18개라는 집계를 누가 불신할 것인가?

이름은 특별한 문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똑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뜻이 다르고, 이름의 복잡성 그리고 이름들 간의 충돌로 인해 특별히 중요해진 것이다. 거의 무한하게 정보가 흘러가면서 세상의 모든 항목들이 단 하나의 경기장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더 복잡한 이름들이 필요하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름을 둘러싼 싸움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국면을 낳은 엄청난 규모의 도약을 이루었다.

컴퓨터공학에서는 모든 명칭이 뚜렷이 구별될 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이름 공간'(namespace)이라는 전문 용어가 유용하게 쓰였다. 세상에는 지리에 기초한 이름 공간과 경제적 틈새에 기초한 다른 이름 공간들이 오랫동안 있었다. 뉴욕 밖에 살고 있다면 백화점 이름인 블루밍데일스를 쓸 수 있었다. 또한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다면 포드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있는 록밴드들은 하나의 이름 공간을 구성한다. 

인터넷은 이름 공간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고유한 이름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탐색하는 일은 COCA-COLA.COM같은 특수한 도메인명의 체계에 의존한다. 이 이름들은 “정보가 저장되는 목록이나 장소 혹은 기기”로서 사실상 현대적 의미의 주소이다.

이름의 충돌과 고갈은 이전에도 발생했지만 이 정도 규모로 발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대 박물학자들은 대략 500종의 식물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개별적으로 명칭을 부여했다. 18세기가 되어 린네가 분류법을 발명했을 때는 7,700종의 식물과 4,400종의 동물에 이름을 붙여야 했다. 지금은 수백만 종의 곤층을 제외하고도 약 30만 종이 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그들 모두를 명명하려고 애쓴다.

1970년대는 메가바이트의 시대였다. 1970년 여름 IBM은 사상 최대의 메모리 용량을 가진 신형 컴퓨터 모델 두 대를 출시했다. 바로 76만 8,000바이트의 메모리를 가진 모델 155와 대형 캐비닛이 든 1메가바이트의 메모리를 가진 더 큰 모델 165였다. 방 하나를 채우는 이 메인 프레임 한 대의 가격은 467만 4,160달러였다.

1982년 무렵 프라임 컴퓨터는 단일 회로 기판에 1메가바이트의 메모리를 탑재한 컴퓨터를 3만 6,000달러에 판매했다. 1987년 IBM 메인프레임과 120명의 타자수를 동원해 콘텐츠의 디지털화를 시작한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진은 사전의 용량을 1기가바이트로 추정했다. 인간의 전체 게놈 역시 1기가바이트 정도 되었다.

여러분은 사진을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다. 구글은 클라우드에서 당신의 비즈니스를 관리할 것이다. … 돈은 클라우드에서 살아간다. … 물리적으로 보면 클라우드는 전혀 구름을 닮지 않았다. 서버팜(server farms)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 벽돌 건물과 철제 빌딩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건물은 짙은 유리 창문들이 있거나 창문이 아예 없고,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텅 빈 복도, 디젤 발전기와 냉각탑, 2.1미터의 흡기팬 그리고 알루미늄 굴뚝이 있다.

모든 것들은 기록되고 보존될 수 있다. … 70대의 나이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서 일했던 컴퓨터의 선구자 고든 벨(Gordon Bell. 1934~)은 ‘센스캠’을 목에 걸고 ‘라이프로그'(LIfeLog)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시간당 1메가바이트, 한 달에 1기가바이트에 해당하는 모든 대화, 메시지, 문서를 비롯해 하루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라이프로그는 어디서 끝날까?

결국 우주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양자공학자 세스 로이드(Seth Lloyd. 1960~)는 우주가 존재함으로써 정보를 기록한다고 말한다. 우주는 시간 속에서 진화함으로써 정보를 처리한다. 그 양은 얼마나 될까? … 우주가 전체 역사에서 10120회 정도의 규모로 “연산”을 실행한 것으로 계산한다. “우주에서 모든 입자가 갖는 모든 수준의 자유”를 감안할 때 우주는 현재 1090비트 정도를 담을 수 있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제15장. 매일 새로운 뉴스 – 그리고 비슷한 뉴스

1979년 아이젠슈타인(Elizabeth Eisenstein. 1923-2016)의 저서(『변화의 매개체로서의 인쇄기』)가 출간되기 전까지 인쇄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에 필수적인 통신 혁명이었음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 인쇄의 발명은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인쇄는 근대적 정신을 형성했다. 인쇄는 역사가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 인쇄가 발명되면서 ‘역사의 어느 지점에’ 있느냐 하는 감각이 생겼다.

인쇄기는 복제기계로서 텍스트를 더 저렴하고 더 접근하기 쉽게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인쇄기의 진정한 힘은 텍스트를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 1963년 미국역사협회 회장의 경고(“우리는 지금 일종의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 칼 브라이든보)를 읽으면서 아이젠슈타인은 역사학이 일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브라이든보는 문제를 정확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젠슈타인이 보기에는 500년 동안 지속된 의사소통 혁명은 아직도 탄력이 붙고 있었다. 어떻게 역사학자들은 이 점을 보지 못했을까?

‘홍수’는 정보 과잉을 묘사하는 사람들의 흔한 비유가 됐다. … ‘정보이론’이 등장한 이후 ‘정보 과부하’, ‘정보 과잉’, ‘정보 불안’, ‘정보 피로’가 등장했다. … 불안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은 정보와 지식 사이의 격차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데이터의 세례 속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된다.

심지어 1970년에도 멈포드는 데이터베이스나 다가오는 어떤 전자 기술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멈포드는 “마이크로필름의 증가”를 불평했다. 또한 책이 지나치게 많다고 불평했다. 전자 통신기술은 거의 예고도 없이 급습하다시피 했다. ‘이메일’이라는 단어가 인쇄 매체에 등장한 것은 1982년이었는데, 거의 듣도 보도 못한 잡지인 『컴퓨터 월드』에서였다.

1980년대가 되자 연구자들은 “정보 부하 패러다임”에 대해 대담하게 이야기했다. 이 패러다임은 사람들이 제한된 정보량만을 ‘흡수’하거나 ‘처리’할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다양한 연구자들이 정보 과잉은 혼란과 좌절뿐만 아니라 관점을 흐리게 하고 부정직함을 야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내 모든 정보를 가졌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1942-)은 인터넷이 이 꿈을 가능하게 만들기 직전인 1990년 전자 네트워크가 시집 출판의 경제학을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온라인으로 시를 출판해 몇 십 달러가 아니라 몇 페니로, 수백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에게 즉시 도달하게 하면 어떨까? 데닛은 자신의 완전힌 시(poetry) 네트워크를 상상하면서 이 문제를 깨달았다. … 필터, 즉 편집자와 평론가가 필요한 이유이다. … 정보가 저렴해지면, (특정 정보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이 비싸진다.

이제 우리는 정보가 ‘존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파일”은 원래 16세기 영국에서 보관하고 참고하기 위해 전표나 청구서, 메모, 편지를 매다는 선이었다. … 불가피하게 모순이 생겼다. 정보의 어떤 단편이 ‘파일’에 들어가면 통계적으로 다시 눈에 띌 가능성이 아주 낮다. 정보가 너무 많고, 또 너무나 많은 정보가 분실된다. … 심지어 위키피디아도 검색과 필터링이 결합된 것이다. 검색과 필터링은 이 세계와 바벨의 도서관 사이를 가르는 모든 것이다.

4세기 전 도미니크회 수도사인 뱅상 드 보베(Vincent de Beauvais. 1184/1194-1264)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기록하기 위하여 중세의 초기 백과사전 중 하나인 『거대한 거울』(Speculum Maius)을 집필했다. 원고는 9,885장으로 구성된 80권의 책으로 묶였다. … 근대 초기 유럽을 연구하는 하버드대학의 역사학자 앤 블레어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책이 너무 많다는 인식은 더 많은 책의 제작을 부채질했다.

식물학 같은 자연과학도 정보 과부하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났다. 16세기 들어 종이 폭발적으로 알려짐에 따라 새롭고 표준화된 기술 방법이 필요했다. 새로운 정보기술이 기존 환경을 바꿀 때 단절이 일어난다. … 지식을 정리하는 옛날 방식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누가 검색할 것인가? 누가 여과할 것인가? 단절은 두려움과 뒤섞인 희망을 낳는다.

에필로그 – 의미의 귀환

무선통신의 확산으로 인해 곧 세계가 연결되자 새로운 지구적 유기체의 탄생이라는 낭만적인 상상이 생겨났다. 심지어 19세기의 신비주의자와 신학자들조차도, 서로 교감하고 있는 수백만 명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공유된 정신 혹은 집합적 의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철학자 에두아르 르 루아(Éduared Le Roy. 1870-1954)는 1928년 이렇게 썼다. “(인간을) 더 낮은 수준에 있는 자연 위에,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에 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떻게? … “인지권”(noosphere), 즉 정신의 권역을 창조하는 것이다.

『세계 두뇌』(H. G. 웰스)는 작정하고 쓴 사회 비판적인 책이다. … 인류의 전체 “몸” 구석구석에 있는 교육체계의 개선이었다. 구석에 있는 지배세력의 찌꺼기…는 솎아내고, “재조정되고 더 강력한 공론”이 필요하다. 세계 두뇌는 지구를 다스릴 것이다. “우리는 … 자신을 인식하는 광범위한 세계 지성을 원한다.”

웰스는 신기술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혁신할 것이라고 믿었다. … 웰스는 “지금은 한 명이지만 수십 년 안에 지식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 웰스는 유토피아적인 것만큼이나 현실적인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바로 백과사전이었다. 이 백과사전은 “보편적 지성”을 확립하고 준비한 위대한 백과사전, 즉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의 프랑스어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독일의 『대화 사전』(konversations-Lexikon)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웰스는 이 신세계의 백과사전이 인쇄되어 만들어지는 책이라는 고정된 형식을 탈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두뇌는 권위가 있지만 중앙 집권화되어서는 안 된다. … 이점에 대해서 웰스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 두뇌는 네트워크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두뇌를 만드는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심지어 지식의 분배도 아니다. 바로 상호연결성이 두뇌를 만든다.

웰스가 여기서 말한 ‘네트워크’라는 단어는 … 원래의 물리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 “전선과 케이블의 복잡한 네트워크” …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의미가 거의 사라졌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네트워크는 추상적인 존재이며, 네트워크의 영역은 정보이다. 정보이론은 정보에서 의미를 가차 없이 제거함으로써 탄생했다. … 『통신의 수학적 이론』을 소개하면서 섀넌은 … 의미가 “공학 문제와 무관하다”라고 밝혔다. 인간의 심리는 잊어버리고, 주관성은 버려버리는 것이다.

“나는 기묘한 곳을 알고 있다.”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도서관 사서들은 책에서 의미를 찾는 헛되고 미신 같은 습관을 거부한다. 책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꿈이나 혼란스러운 손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인식론자들은 신호음과 신호가 아니라 지식에 관심을 두었다. … 신호를 받아 정보로 바꾸려면 인간 혹은 “인지적 중개자”가 필요하다. … 어쨌든 “우리는 자극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 부여가 없으면 자극은 정보로는 쓸모가 없다”라는 것이 인식론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프레드 드레츠키(Fred Dretske. 1932-2013)는 정보와 의미를 구별함으로써 철학자는 자유로워진다고 주장한다.

한때 완벽한 언어는 단어와 의미 사이에 정확한 일대일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여겨졌다. … 라이프니츠는 자연어가 완벽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계산, 즉 엄밀하게 지정된 기호들의 언어인 계산은 완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라이프니츠의 꿈을 박살낸 것은 괴델이었다.

오히려 완벽함은 언어의 본질과는 반대된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정보이론 덕분이었다.

무의미한 무질서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도전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사물과 감각과 조합의 무한한 세계를 유한한 공간에 나타낸다.

이제 갈수록 어휘는 네트워크 안에 들어간다. …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식은 네트워크 속으로, 클라우드 속으로 스며든다. … 만화가인 게리 트루도는 트위터를 하느라 취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가상의 기자를 통해 트위터를 풍자했다. 그러나 2008년 뭄바이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 2009년 이란의 시위 상황을 세상에 알린 것도 … 트윗들이었다.

모든 책을 소장하기 위해 세워진 의회도서관은 트윗 모두를 역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 트윗은 품위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잉여적일 수도 있지만 … 트윗은 인간의 의사소통이다. MIT는 집단적 지혜를 찾아내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집단지성센터(MIT Center for Collective Intelligence)를 설립했다. 언제, 얼마만큼 ‘대중의 지혜’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집단적인 판단은 매력적인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집단적인 자기기만과 집단적인 악은 이미 대재앙을 가져온 전력이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 속의 지식은 … 집단적인 의사 결정과 다르다. 이 지식은 덧붙여짐으로써 발전하고, 기발함과 예외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를 인식하고 접근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선택이다. 진짜를 고르는 데는 일이 필요하고, 또 망각에는 더 많은 일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모두 바벨의 도서관의 이용자이면서 사서이기도 하다. … 보르헤스는 이렇게 걱정한다. “모든 것이 쓰였다는 확신은 우리를 부정하거나 유령으로 만든다.” … 도서관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도서관은 우주이다. 우리로 말하자면 모든 것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유령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정보의 피조물을 알아볼 것이다.

(끝)

발췌, 요약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1 댓글

  1. Stella

    문자와 같은 수단을 마치 유전 정보를 저장, 전달하는 DNA와 같은 vehicle로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이 정보의 역사를 하나의 축으로 꿰둟어 볼 수 있게하는 훌륭한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읽어나가며 스스로 챕터별로 정리했더라면 책이 끝난 즈음에는 그래도 구슬을 꿰어 이야기 하나 정도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터인데 너무 재미 위주로 읽고 흘려 보내기만 한 것 같아 아쉽네요. 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 읽어도 되는 책 같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번 들어본 내용이나 주제들을 다른 곳에서 더 깊고, 좁게 파내려 갈 수 있게 해주는 광역지도 같은 책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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