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란 무엇인가』 발췌, 요약

『소유란 무엇인가』. 1841. P.-J. Proudhon. Paris.

이 글은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밤’에서 읽은 책 『소유란 무엇인가』(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지음. 1840. 이용재 옮김. 2003. 아카넷)의 내용 중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12월 녹색문명공부모임을 위해 준비한 자료라 조금 깁니다. 좀 더 짧은 글은 옮긴이의 해제를 요약한 글(“독자들에게 드리는 프루동의 편지”)을 참고해주세요. 구체적인 사례나 자세한 설명은 책 원문을 참고해주세요.

요약,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목차

『소유란 무엇인가』 출간 배경
책의 구성과 제1장. 이 책에서 사용하는 방법. 혁명의 이념
제2장. 자연권으로 간주되는 소유에 대하여. 소유의 동인으로서의 선점과 민법에 대하여
정의(定義)들
제1절 자연권으로서의 소유에 대하여
제2절 소유의 토대로서의 선점에 대하여
제2장 – 제3절. 소유의 근거이자 재가로서의 민법에 대하여
제3장 소유권의 동인으로서의 노동에 대하
제1절. 토지는 전유될 수 없다.
제2절.보편적 동의는 소유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제3장 – 제3절. 시효취득은 결코 소유를 낳을 수 없다.
제4절. 노동에 대하여. 노동은 그 자체로는 자연의 사물들에 대하여 어떠한 전유 능력도 가질 수 없다.
제5절. 노동은 소유물의 평등에 귀착된다.
제6절. 사회에서 모든 임금은 평등하다. (보수는 노동/업적, 재능/능력에 비례해야 하는가?)
제7절. 능력의 불평등은 재산의 평등의 필요 조건이다.
제3장 – 제8절. 정의의 질서 안에서는 노동은 소유를 파괴한다.
제4장. 소유는 불가능하다
소유는 믈리적으로 그리고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첫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無)에 대해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가 용인되는 곳에서 생산은 효용가치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본이 일정한 경우 생산은 소유가 아니라 노동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회는 소유에 의해 자기 자신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명제에 대한 보론
여섯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압제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자신이 취득한 것을 소비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저축함으로써 폐기해 버리며, 자본화함으로써 생산에 적대하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의 축적력은 무한대인 반면 소유가 작용을 미치는 수량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소유에 대해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열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평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제5장. 정의와 불의의 관념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 그리고 통치와 권리의 원리에 대한 규정
제 1 부
제1절 인간과 동물의 도덕 감각에 관하여
제2절 사회성의 첫번째 및 두 번째 단계에 대하여
제 2 부
제 1 절 우리의 오류의 원인들에 대하여 : 소유의 기원
제 2 절 공유제와 소유의 특징들
제 3 절 제3의 사회적 형태의 결정 – 결론



『소유란 무엇인가』 출간 배경

『소유란 무엇인가』(이하 『소유』)는 프루동이 브장송(Besançon) 아카데미의 쉬아르(Suard) 연구지원금을 받아 연구한 결과를 보고서로 출판한 것입니다. 특히 1839년의 공모 주제는 “자녀들 간의 평등한 재산 분할에 대해 법률이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초래한, 또 앞으로 프랑스에서 낳을 경제적, 도적적 결과들”이었습니다.

프루동은 이 문제의 논점을 “상속의 원리는 무엇인가? 불평등의 토대는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가족, 친지 사이에 인정되는 상속권이 시민들 사이에서도 유지될 수 있겠는가, 상속의 원리가 곧 평등의 원리로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 만일 내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 오랫동안 무시되어온 진실을 밝혀낸다면, 만일 내가 확실한 탐구 방법에 의해서 조건들의 평등이라는 학설을 확립한다면, 만일 내가 민법의 원리, 정의의 본질 및 사회의 형태를 확정한다면, 만일 내가 소유를 영원히 부정한다면, 여러분, 이 모든 영예는 바로 여러분의 몫이며 여러분(브장송 아카데미)의 도움과 고취 덕분입니다.”(p.16)

프루동은 연구 보고서를 출간하면서 아카데미에 헌사하는 편지(책 p.11-19)를 보냈는데 이는 책 초판의 서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는 편지를 전달받은지 두 달 후 심의회를 열고 프루동에게 회신을 보내 제2판에서 아카데미에 대한 헌사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책의 구성과 제1장. 이 책에서 사용하는 방법. 혁명의 이념

“만일 내가 <노예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면, 그래서 내가 한마디로 <그것은 살인이다>라고 답한다면, 나의 생각은 당장에 이해될 것이다. … 그런데 나는 왜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또 하나의 질문에 대해 <그것은 도둑질이다>라고 마찬가지로 답할 때마다, 내 답변이 잘 전달되지 못했다는 노파심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두 번째 명제는 사실상 첫번째 명제가 모양을 바꾼 것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소유란 무엇인가』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프루동은 “나는 우리의 정부와 제도들의 원리 그 자체, 즉 소유의 문제를 논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권리이다.”라고 이어 말합니다. 프루동은 “노동도 점유도 법률도 소유를 창출할 수 없”음을, “소유란 원인이 없는 결과”일 뿐임을 이 책에서 논증하고 주장합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제2장에서는 자연권으로서의 소유, 소유의 동인으로서 선점과 민법이 근거없음을 보입니다. 제3장에서는 노동이 소유권의 동인이 될 수 없는 8가지 근거를 제시합니다. 제4장에서는 소유라는 것이 불가능함을 논증하는 열 가지 명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제1부에서 정의와 불의의 관념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을, 제2부에서는 통치와 권리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제3의 사회 형태는 어떠해야하는지 제시하려고 합니다.

이하 내용은 책 『소유』의 각 장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시대적인 상황과 조건이 반영된 구체적인 사례들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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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46. 우리시대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나는 자문했다. 즉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여러 원리들 중에 그 사회가 깨닫지 못하고 사회의 무지로 인해 더욱 더럽혀지고 온갖 악의 근원이 되어 버린 한 가지 원리가 있다. 이 원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 이 원리, 그 목적에서는 옳으나 우리의 이해 방식에 따르면 거짓인 이 원리, 인류만큼이나 오래 된 이 원리는 무엇인가?

p.65-66. 마침내 인민은 소유권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었다. … 어떻게 자유와 평등을 찾으면서도 저들은 특권과 예속에 다시 빠졌는가? 늘 그렇듯이 옛 제도를 흉내냈기 때문. … 인민이 소유를 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소유가 …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민은 이 권리의 균등을 법제화했다. … 그러나 근본은 변하지 않고 남았다. 권리의 할당에서 진보가 있었으나, 혁명은 없었던 것이다.

1789년의 운동(프랑스 혁명)과 1830년의 운동(7월 왕정)이 차례로 공인한, 현대 사회의 세 가지 근본 원리가 있다. … (1) <인간 의지의 종주권>, 바꾸어 말하자면 <전제주의>. (2) <부와 서열의 불평등>. (3) <소유권>. … (이) 개념들이 … 정의의 관념에서 나오는 필연적 산물인지 …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의란 특히 통치에서, 사람들의 지위에서 그리고 사물의 소유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우리는 … 다음과 같은 점을 밝혀야 한다.

p.66-68. 어떤 조건 아래 통치가, 시민들의 지위가, 사물의 소유가 정당한가? 정당한 통치, 정당한 시민의 조건, 사물의 정당한 소유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의 인간에 대한 권위란 정당한가? 정치적, 시민적 불평등은 정당한가? 소유는 정당한가?

p.69-71. 우리가 논증을 진행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I. 우리는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고 누구도 반박하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우리는 소유를 옹호하는 모든 추론을 근거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며, 단지 소유의 원리를 탐구하고 그 원리가 소유에 의해 충실하게 표현되어 있는가를 입증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 소유란 정당성 여부에 의해서만 변론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의 관념이 반드시 소유에 대한 모든 논증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 정의는 저절로 … 객체화되어서 대수학 공식의 형태로 나타나야만 한다.

p.70. 이 책의 첫 부분은 두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점유, 즉 우리의 권리의 토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노동과 재능에 관한 것이다. … 결론은 … 점유권은 소유를 <금지한다>는 것이고, … 노동권은 소유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II. 따라서 소유란 필연적으로 평등이라는 정언 명제 아래서 우리의 머릿속에 구상되는 것이기 때문에, … 왜 평등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 역시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소유라는 사실을 그 자체로 고려하면서, 이 사실의 현실성과 가능성 여부를 탐지 … 그러면 … 소유란 마치 우연한 사건처럼 나타나는 것이어서 수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제도나 원리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끝으로,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 본성의 근저에까지 뚫고 들어감으로써 <정의>의 원리와 형식 그리고 특성을 밝혀낼 것이다. … 소유의 기원, 소유가 확립된 이유와 오래 지속된 이유,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소유권이 소멸될 이유를 밝힐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마침내 소유란 도둑질과 같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종주권, 조건의 불평등, 소유라는 이 세 가지 편견은 사실은 하나일 뿐이며 서로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다음에, … 이 사실로부터 … 통치와 권리의 토대를 추론할 것이다.

제2장. 자연권으로 간주되는 소유에 대하여. 소유의 동인으로서의 선점과 민법에 대하여.

정의(定義)들

p.74. 소유의 영역에서는 사용과 남용이 어쩔 수 없이 뒤섞인다. 1793년 헌법의 모두(冒頭)에 실린 인권선언에 따르면, 소유란 <자신의 부, 자신의 소득, 자신의 노동과 근면의 결실을 마음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이다.

나폴레옹 법전(Napoleon Code. 1804. 영문 원전) 제544조에 따르면, 소유란 <법률과 규정에 의해 금지되지 않는 한 사물을 가장 절대적인 방식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 두 정의는 소유자에게 사물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한다.

소유는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즉 (1) 무조건의 소유, 사물에 대한 지배자나 영주의 권리 따위, 흔히 말하는 <허유(虛有, nue propriété) (2) <점유possession>.

p.75. 소유에 대한 이러한 이중의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점유와 소유의 구별에서 두 종류의 권리가 나온다. 첫째, <물(物) 안에서의 권리> … 내가 획득한 소유를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있든 관계없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둘째, <물(物)에 대한 권리> … 내가 소유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권리.

p.75-76. 물 안에서의 권리와 물에 대한 권리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아주 방대한 범위에 걸쳐 모든 것을 포괄하는 중요한 두 사법적 범주, 즉 <점유권 반환소송possessoire>과 <소유권 확인소송pétitoire> 사이의 유명한 구분의 토대이다.

소유에 대한 고발장을 씀으로써 나는 사회 전체에 대해 소유권 확인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 점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 자격으로 소유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 그러나 이로부터 소유는 모두에게 분할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 소유는 모두를 위해 폐지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소송의 핵심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선결적인 몇 가지 견해들을 소개 … 한다. : 자연권으로서의 소유(제2장 제1절), 소유의 토대로서의 선점(제2장 제2절), 소유의 근거이자 재가로서의 민법(제2장 제3절).

제2장 – 제1절 자연권으로서의 소유에 대하여

p.77. 인권선언*은 소유에 대하여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라고 말한다. 이들 권리는 <자유>, <평등>, <소유>, <안전>이라는 네 가지로 축약된다. 1793년 입법자들은 어떤 방법에 따라 이렇게 나누었는가? 그들은 아무것도 따르지 않았다.

*1793년 프랑스 헌법을 말함. 1789년 프랑스 국민 의회가 채택하고 1791에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1793년 “인권 선언”, 1795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및 의무에 관한 선언”으로 개정됨

p.78. 그런데, 이 세 가지 또는 네 가지의 권리를 서로 비교해보면, 소유는 다른 권리들과 전혀 다르다 … 대다수 시민들에게 있어서 소유란 가능태로서만, 즉 잠재되어 있을 뿐 발휘되지는 않는 능력으로 존재한다 … 자유는 침해될 수 없다. 나는 자유를 팔 수도 양도할 수도 없다. 자유의 양도나 자유의 정지를 대상으로 하는 어떤 계약이나 계약 조건도 무효이다.

p.78-79. 마찬가지로, 법 앞에서의 평등은 어떠한 제한도 어떤 예외도 갖지 않는다. … 가장 가난한 시민도 가장 고귀한 자를 법정에 불러 세울 수 있으며 재판에 이길 수 있다. … 법이 정한 조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시민은 누구나 유권자가 될 수 있고 유권자는 누구나 피선거권자가 될 수 있다. … 자유와 마찬가지로 어떤 거래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

p.80. 안전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사회는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진다. … 소유의 경우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소유는 모두에게 숭배받으면서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 그런데 왜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더 지불하여야 하는가?

p.87. 요약해 보자. 자유란, …. 인간의 속성이라는 점에서 절대적 권리이며, 존재의 필수 조건이다. 평등이란 평등 없는 사회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절대적 권리이다. 안전이란,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타인의 그것만큼 귀중하다는 점에서 절대적 권리이다.

p.87-88. 이 세 가지(자유, 평등, 안전)는, 사회에서 각 구성원은 그가 준 것만큼 받는다 – 즉 자유에는 자유로, 평등에는 평등으로, 안전에는 안전으로, 육체에는 육체로, 영혼에는 영혼으로 – 는 점에서 말하자면 더 보탤 수도 더 뺄 수도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소유란, 그 어원학적 추론이나 법리상의 정의에 따르자면, 사회의 외부에 있는 권리이다. 왜냐하면 만일 개개인의 재산이 사회적인 것이라면 조건은 분명히 모두에게 평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란 인간이 사회적 재산을 절대적인 방식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비록 자유, 평등, 안전을 위해 서로 결합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소유를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소유가 <자연적> 권리라고 할지라도, 이 자연권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것이다. 소유와 사회는 불가항력적으로 서로를 거부한다.

p.89. … 법률에 의해서 소유는 소유자 없이도 존재하는 것이다. … 우리는 소유가 어디서 유래하는지를 알 수 없다. … 왜 이들은(박사님들은 소유권의) 기원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전에 그 권리를 인정했는가? …그들은 소유란 이미 하나의 사실이며, 항상 그러했으며 또 앞으로도 줄곧 그러하리라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p.90. 소유권이 가진 정당성의 토대는 두 가지, 즉 <선점occupation>과 <노동>으로 귀결된다. 나는 이 두 가지에 대해 차례로 그 모든 측면을 아주 자세하게 검토할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소유가 정당하고 가능하려면 평등을 필요 조건으로 가져야만 한다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끌어낼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자 한다.

제2장 – 제2절 소유의 토대로서의 선점에 대하여

p.90.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éon)에 대한 심의를 위해 국가참사회가 소집한 회합들에서 소유의 기원과 원리에 대한 어떤 논쟁도 제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p.91-92. <선점>의 권리, 즉 <최초 점유자>의 권리는 사물에 대한 현실적, 물리적, 효과적인 점유에서 나오는 권리이다. … 원래 이러한 권리는 상호적일 경우에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 키케로Cicero는 땅을 거대한 극장에 비유 … <극장이 공공의 재산인 것처럼 실은 각자가 차지한 자리가 마땅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키케로에 따르면, … 각자에게 속한 것은 각자가 점유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점유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점유할 권리가 있는가? 우리의 노동과 우리의 소비에 필요한 것 만큼이다.

p.92-93. 그로티우스(H. Grotius, 1583-1645)는 역사에서 설명을 찾는다. … <태초에는 모든 것이 공유였으며, 나뉘어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모두의 재산이었다. …> … 그로티우스는 어떻게 해서 이 원시공동체가 결국은 야망과 탐욕으로 끝났는가를, 그리고 왜 황금 시대가 철의 시대에 자리를 내주었는가 등등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조약과 계약들이 무력에 의해 약자들에게 강제된 것(이라면) … 이는 무효이다. 후대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는 결코 이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우리는 항구적인 불공평과 사기의 상태에 살고 있을 뿐이다. … 사람들은 조건의 평등이 처음에는 자연 안에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자연 밖의 상태로 되었는지를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일탈이 왜 일어났는가?

p.94. 인간은 본능에 의해 그 본성을 따르고, 반성에 의해 그것에서 멀어지며, 이성에 의해 다시 그리로 돌아온다. 우리가 지금 귀로에 서 있지 않다고 감히 말할 자가 누구인가? 그로티우스는 인간이 평등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나는 인간의 평등 안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레이드(Thomas Reid, 1710-1796)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유권은 결코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획득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품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 토지는 자비로운 하늘이 인간들에게 생활에 쓰도록 준 공동 재산이다. … 생산물을 나누는 일은 인간들이 할 몫이다. …>

[그림 1] 토마스 레이드. 스코틀랜드의 종교적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동시대인이다. “Scottish School of Common Sense“를 설립했으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출처 : wikipedia)

p.95. <고대의 도덕론자들은 … 토지의 산물들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공통의 권리를 극장에서의 권리에 적절히 비교했다. …> … 레이드의 학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각자가 차지한 부분이 타인에게 손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부분이 나누어 가져야 할 재산의 총량을 공동 분배자들의 수로 나눈 몫과 같아야 한다.
2. 자리의 수는 항상 관객의 수와 같아야만 한다. …
3. 관객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자리의 수는 모두에게 같은 비율로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왜냐하면 <소유권이란 결코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획득된 것>이기 때문 … 따라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p.96. 에든버러의 교수님(레이드)께서 아래와 같이 덧붙일 때, … 그가 이해한 바(는)… <생존의 권리는 생존의 수단을 확보할 권리를 포함한다. …>

이리하여 이 스코틀랜드 학파의 시조는 재능과 근로의 불평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노동수단의 평등을 선험적으로 상정하며, … 개인의 복리에 대한 배려를 노동자 각자에게 내맡겨버린다. … 철학자 레이드에게 결여된 것은 원리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그 결과를 따르는 용기이다. 만일 생존권이 평등하다면, 노동권도 평등하며 마찬가지로 선점권도 평등하다.

p.97. 우리는 지금까지 유심론자의 말을 들었다. 이제 유물론자의 말을, 그리고 다음에 절충론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렇게 철학계를 일주하고 나서 우리는 법학 쪽으로 넘어갈 것이다.

p.98-99. 데스튀트 드 트라시(Antoine Destutt de Tracy, 1754-1836)에 따르면 소유는 천성에서 나오는 필연이다. … <… 사람들이 마치 주어진 어떤 순간에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동기도 없이 ‘너의 것’, ‘나의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 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의 것’, ‘나의 것’은 결코 발명된 것이 아니다.>

p.99. 한 마디로 말해서 <너의 것>과 <나의 것>은 개인적인, 그러나 평등한 권리의 표식이고 표현이다. 우리의 외부에 있는 사물들에 적용될 때, 이 표현들은 소유가 아니라 점유, 기능, 용익(用益) 등을 나타낸다. … (드 트라시의) 이론 전체가 이 가련한 애매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

<계약이라는 것이 있기 이전에 사람들은,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말하는 것처럼, … ‘고립’ 상태에 있었다. … 한 사람의 권리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 이 가정에 따르면 인간은 고립 상태에 있는 한 서로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고 있다.

p.100. … 여기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론은 개인들 사이에서의 부의 가장 커다란 불평등이다. 따라서 조건의 불평등은 여기서 고립과 야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말하자면 정확히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체계와 정반대인 것이다.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계약이 맺어질 때여야 비로소 이 권리들과 이 의무에 제약이 가해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에만 정의와 부정의가, 즉 그대까지는 필연적으로 평등했던 갑의 권리와 을의 권리 사이의 균형이 탄생하는 것이다> (홉스)

p.100-101. 모순의 법칙에 따른다면, 고립이 불평등을 낳는다면, 사회는 필연적 결과로 평등을 낳을 것이다. 사회에서의 균형이란 강자와 약자의 평준화이다. … 사정이 이러하다면, 어째서 균형이 확립된 이후에도 줄곧 불평등이 증대되는가? 정의의 지배라는 것이 어째서 늘 고립의 지배에 불과한가? 데스튀트 드 트라시는 이에 대해 뭐라고 답하는가?

<‘욕구’와 ‘수단’, ‘권리’와 ‘의무’, 이 모든 것은 의지력에서 유래한다. 인간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소유하는 것’이고 ‘점유하는 것’ … 그것들 모두가 … 다양한 소유물이다. …>

p.101-102. propriété라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을 갖는다. (1)… 사물을 사물답게 하는 어떤 성질, 그 사물만의 고유하고 다른 것과 구별되는 어떤 특성 … (2)… 지력이 있고 자유로운 존재가 어떤 사물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적인 권리 … 법학자들이 사용하는 용례가 바로 이것이다.

p.103. 인간은 propriété를 가진다. … 첫번째 의미에서 인간은 속성을 가진다. 인간은 그것에 대한 propriété를 가진다. 즉 이 용어의 두 번째 의미에서 인간은 지배력을 가진다. 따라서 인간은 소유자propriétaire라고 하는 속성propriété을 소유propriété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및 언어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유치한 혼동은, 최초의 관념들 및 최초의 언어들과 더불어 형이상학과 변증법이 탄생했을 때,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나의 것>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그의 정신 속에서 그의 인신과 동일시되었다.

p.103-104. 인간(의) 힘과 덕성과 능력은 …자연이 부여해 준 것이다. 인간은 이것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용익권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은 용익권을 자연의 규칙에 순종하면서만 행사할 수 있다. … 소유자라는 칭호는 단지 비유에 의해서 그에게 붙여진 것일 뿐이다.

p.104-105. 요약해 보자. 모든 소유물들 가운데에는 <생득적인> 것이 있는 반면, <획득적인> 것이 있다. 자연 상태나 고립 상태에서는 … 생득적 소유의 측면에서 가장 우월한 이들이 획득적인 소유물을 배타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장 많이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이 균형과 정의를 발명하고 암묵적이든 공식적이든 여러 계약을 맺는 것은 바로 이러한 침탈 행위와 그로부터 연유하는 전쟁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이다. 분배가 평등하지 않는 한, 공동 분배자들은 서로 적으로 남으며, 계약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p.105-106. 『정치 경제의 철학』의 저자인 조제프 뒤탕(Joseph Dutens, 1765-1848, 중농주의 경제학의 옹호자)씨…의 형이상학은 데스튀트 드 트라시에게서 빌려온 듯하다. … 그는 … 다음과 같이 소유를 정의 … <소유란 어떤 물건이 고유하게 어떤 이에게 속하는 권리이다.> 이는 … 소유란 소유의 권리이다라는 뜻이다.

p.106. 조제프 뒤탕 씨는 다음 두 가지의 일반 명제로 결론을 맺는다. (1)소유는 인간 모두에게 있어 자연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2)소유물에 있어서의 불평등은 자연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 즉 모든 인간은 불평등한 소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있다.

p.107. 쿠쟁(Victor Cousin. 1792-1867)*씨는 자신의 『도덕 철학』에서 우리에게 모든 도덕, 법률, 권리는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남으라>라는 계명 속에 주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빅토르 쿠쟁. 프랑스의 철학자. 독일 관념론과 스코틀랜드 상식 현실주의(Scottish Common Sense Realism)의 요소들을 결합해 프랑스 철학의 한 파를 만들어 짧은 기간 동안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교육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출처 : wikipedia)

p.107-109.(이하 쿠쟁의 말)

< 우리의 원리는 참되고 선하며 사회적이다. 거기에서 모든 결론을 끌어내는 일을 망설이지 말자.>

< (1) 만일 이성이 신성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전반적인 성품에서 … 그러하다. 여기에서 철학, 종교, 예술, 산업, 상업에 대한 존중이 그리고 자유의 모든 산물들에 대한 존중이 나온다. … 사람들은 권리를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 (2) 나의 자유는 신성한 것 … 그 자체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 자유의 원리가 나온다.>

< (3) 나의 자유는 외적인 행위를 위해서는 … 어떤 재산이나 어떤 사물이 필요하다. … 이러한 사물 또는 재산은 마땅히 나의 인성처럼 불가침한 것이다. … 점유의 정당성은 두 가지 조건에 의존한다. 첫째, 나는 자유롭다는 조건에서만 점유한다. … 정당하게 점유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노동하고 생산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재산을 남보다 먼저 차지하는 것(선점)이 필요하다.>

< (4) 나는 정당하게 점유한다. 따라서 나는 나의 재산을 내 뜻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다. … 나의 양도 행위는 내가 살아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죽은 뒤에도 신성한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상 쿠쟁의 말)

p.109. 결론적으로 쿠쟁 씨에 따르면,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점이나 노동에 의해서 점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이러한 행위가 적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 만일 제일 먼저 온 자가 모든 것을 다 선점한다면, 제일 나중에 온 자는 무엇을 차지하겠는가?

p.110. 나는, 소유를 옹호하기 위해 고안해 낸 모든 가설들 속에서 소유에 역행하는 평등의 원리를 찾아낼 것이다.

p.112. 소유의 옹호자들 중에서 쿠쟁(Victor Cousin. 1792-1867) 씨는 가장 멀리 나아갔다. 경제학자들에 맞서서 그는 선점이 먼저 이루어질 경우에만 노동이 소유권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학자들에 맞서서 그는 민법은 자연법을 규정하고 적용할 수 있으나 자연법을 창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p.113. 지금까지 … 우리가 논하고 있는 이론이 무엇에 귀착되는지를, 즉 어떻게 평등에 귀착하는지를 살펴보았다. … 조건의 평등은 숭고한 일반론의 관점에서는 참된 금언…이지만, 사회 생활 및 거래의 일상사에서 그것을 엄밀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위험한 일일 것이다.

p.113-115. 민법상의 모든 정의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파기될 수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이 법학 자체가 소유의 영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평등을 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제2장 – 제3절. 소유의 근거이자 재가로서의 민법에 대하여

p.115-116. 포티에(Robert Joseph Pothier. 1699-1772)는 소유권이 왕권과 마찬가지로 신의 권리에서 나온 것으로 믿는 듯하다. … <인류가 번성함에 따라 인간들은 땅과 그 땅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서로 나누었다. 각자에게 돌아온 몫은 이때부터 배타적으로 각자에게 속하게 되었다. 이것이 소유권의 기원이다.> (포티에)

p.117.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살았다. 그때는 사적 점유조차 없었으므로, 소유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노동하지 않고 힘이나 책략으로 타인의 생필품을 침탈한 자는 누구든 평등을 파괴한 자 … 더 많은 활동을 한다는 구실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평등을 파괴한 자 … 평등이란 권리의 표현이었으므로, 평등을 침해한 자는 누구나 <정의를 어긴> 자 … 노동과 더불어 사적 점유 즉 <물 안에서의 권리>가 탄생했다. 그러나 어떤 물 안에서인가? 그것은 명백히 땅 안에서가 아니라 생산물 안에서였다.

p.119. <물 안에서의 권리>와 <물에 대한 권리> 사이의 차이를 준별해 낼 이들이 왜 이 차이점을 소유권의 원리 자체에는 적용하지 않았는가? … 여기서 법학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금언을 환기시켜 보자. … 소유권에 기원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일 뿐이다. 소유권은 오직 하나의 원인으로만 생겨날 수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자격으로 점유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가지 자격으로만 소유자가 될 수 있다. 

p.120-121. … 발생적 기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사회가 자기 자신에 맞서는 권리를 용납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사회는 점유를 부여하면서 소유의 양도에도 동의하였는가? 어덯게 법률은 이러한 권리의 남용을 재가하였는가? … 만일 형태가 대상에서 분리될 수 없고 소유가 점유에서 분리될 수 없다면, 점유는 분할되어야 한다. 즉 소유의 조건들을 부과할 권리는 어떤 경우에나 사회가 쥐고 있는 것이다.

p.122. 렌(University of Rennes)의 교수님, 현명하신 툴리에(Charles Bonaventure Marie Toullier. 1752-1835)의 말을 들어보자.

<선점에 의해 취득되는 이 우선권이 어떻게 해서 …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소유로 될 수 있었는가?>

<농업은 인류의 번식의 자연적인 결과였다. … 수확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누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노고를 다했겠는가?>

p.123. <농업만으로는 항구적인 소유를 확립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실정법이 필요했으며,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사법관들이 필요했다. 요컨대 시민국가(état civil)가 필요했다. 인류의 증가는 농업을 필요하게 만들었다. 농사짓는 이에게 자기 노동의 결실을 보장해 주자는 요구가 항구적인 소유권과 그것을 보호하는 법률들의 필요를 느끼게 했다. 따라서 시민국가의 성립을 가져온 것은 바로 소유의 덕이다.>

그렇다.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바와 같은 우리의 시민국가의 성립, 전제정에서 군주정과 귀족정을 거쳐서 오늘날 민주정에 이른, 그러나 항상 압제적인 시민국가의 성립을 말이다.

p.124-125. … 법률이란 소유권을 제정함에 이어서 … 법률은 그 단어가 갖는 모든 효력에 있어서 그 권한들을 넘어선 어떤 권리를 창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법률은 소유권을 창출하면서 어떤 지침을 따랐는가? 어떤 원리가 법률을 인도했는가? 법률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나 놀랍게도 평등이었다. 농업은 토지 점유의 토대이자 소유의 우연적 원인이었다.

p.126. 절대적인 평등을 가로막는 많은 권리들이 있었다. … 상속, 증여, 교환 등 … 다른 한편으로는 출생과 지위의 특권처럼 무지와 폭력에 따른 비합법적인 창안물들이었다. … 평등이 점유를 재가했듯이, 또한 평등이 소유를 재가한 것이다. 

p.128. 소유권의 옛 창시자였던 이 법률학자들은 … 자신들이 그 권리를 통해 확립하고자 했던 목적이었던 평등 자체가 바로 그 권리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p.130. 소유권의 보편적 인정이 소유권 자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 소유권을 증명하는 인간의 권위는 무효이다. 왜냐하면 소유권은 필연적으로 평등에 의존하는 만큼 그 자체의 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소유권을 재가해 준 종교의 동의는 무효이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에나 사제는 군주에게 봉사했으며, 신들은 항상 정치인들이 원하는 바대로 말해 왔기 때문이다.

p.133. 이제 요약해서 결론을 이끌어내자.

선점은 평등으로 이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유를 <가로막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선점권을 가지기 때문이며 … 따라서 선점은 항상 인구에 종속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점유란 법적으로 결코 고정될 수 없으며, 점유가 소유로 변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점자는 누구나 당연히 점유자 또는 용익권자가 되나, 소유권자로서의 자격은 가질 수 없다. 용익원자의 권리란 … 자신에게 맡겨진 사물에 대한 책임 … (그) 사물을 변형시키거나 축소하거나 망가트릴 권리가 없다. … 자신이 결과물을 거두는 동안 그 용익원을 나눌 권리가 없다. … 용익권자는 사회의 감시 아래 있으며 노동의 조건과 평등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

p.133-134. 인간은 자신의 용익권을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며, 사회만이 항구적인 방식으로 점유권을 행사 … 개인은 사라지지만 사회는 죽지 않는다.

<선점권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선점의 척도는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수의 가변적 조건들에 있다. 따라서 소유는 성립할 수 없다.>

제3장 소유권의 동인으로서의 노동에 대하여 

p.135. 현대 법률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말한 것을 근거로 소유는 노동에서 나온다는 이론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이는 순환논법에 의한 망상이었다.

p.136. 그러나 노동설을 내세우는 이들은 자신들의 체계가 법전과 완전히 모순되며 법전의 모든 조항과 규정들은 원초적 선점이라는 행위에 근거한 소유를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소유권을 노동에서 찾는 학설이 소유권을 선점에서 찾는 학설과 마찬가지로 재산의 평등을 함축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소유의 원리로서 선점 대신 노동이 들어선 이 놀라운 과정에 대해 환기시키고 나서, 소유자들이 상투적으로 내세우는 몇 가지 편견들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p.139. 나는 도처에서 <노동과 근면에 영광 있으라!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몫을, 각자의 성취에 따라 각자의 능력을>이라는 외침을 듣는다. 그런데 나는 인류의 대부분이 다시 무일푼이 되는 것을 본다. 

p.140. 여기서 법전에 대한 세세한 논의에 빠져들 수는 없으므로 나는 소유를 옹호하는 가장 통상적인 편견 세 가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1) <전유appropriation>, 즉 점유에 의한 소유의 형성.
(2) <사람들의 동의>.
(3) <시효취득>.

그리고 나서 나는 노동이 일하는 자 개개인의 조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소유 자체에 대해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제3장 – 제1절. 토지는 전유될 수 없다

p.141. <경작지는 … 천부적인 부의 하나 … 이 부는 공기나 물처럼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고 … 어떤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을 배제하고 이 부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었으며 다른 이들이 이러한 전유 행위에 동의했기 때문에, 하늘이 준 무상의 재산이었던 토지는 사회적인 부가 되었고, …> (H. Say, 『정치 경제학』)

자연의 재산들, 즉 신이 창조한 부가 어떻게 사유 재산이 될 수 있는가? … 내가 묻건대, 도대체 무엇이 토지의 비유동성을 전유의 권리와 관련시켰는가? 

p.142. 사람들은 왜 땅이 바다나 공기보다 더 많이 전유되었는가를 묻지 않는다. … 어떤 권리에 의해서 인간이 <스스로 창조하지도 않고 자연이 무상이로 준> 이 부를 자기의 것으로 하였는가 … 세(H. Say.)는 공기와 물도 <옮겨 다닐 수 있는 >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면 마찬가지로 횡령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나 물은 자주 횡령당했다.

p.143.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을 발견한 포루투갈인들은 그들만이 항로의 소유권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 권리에 이의를 제기한 네덜란드인들이 … 자문을 구하자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는 바다는 전유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특별히 『해양의 자유에 대하여De Mari Libero』를 썼던 것이다. … 여권이란 무엇인가? 세리들은 여권을 밀정 행위와 징세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것은 여행하거나 돌아다닐 권리를 파는 일이 아닌가?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외교관, 법률가, 시인, 극작가. (출처 : wikipedia)

p.144. 이러한 모든 금지는 토지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물과 공기 따위에도 해당하는 온갖 종류의 신성시된 금기들이다. … 만일 물과 공기와 불의 사용에 대한 소유권을 배제한다면, 땅의 사용도 마찬가지 … 이러한 논리적 연결을 샤를 콩트(Charles Comte. 1782-1837. 프랑스의 경제학자) 씨는 『소유론 Traité de la propriété』 제5장에서 이미 예견 …

p.144-145. <인간은 몇 분만이라도 대기를 빼앗기면 살 수 없을 것이고, … 자기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온갖 종류의 사물들을 자기 몫으로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물들이 같은 비율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어떤 것들은, 가령 별빛, 대기, 바닷물과 같이 엄청난 분량으로 존재 …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사물들은 말하자면 인류의 공동 재산이다. …>

이렇게 토지는 물과 공기와 빛과 함께 타인의 향유를 해치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야 하는 첫번째 필수품이다. 그런데 토지는 왜 횡령되었는가?

세(H. Say)는 토지가 <옮겨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 콩트 씨는 토지가 <무진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확언한다. 콩트 씨에 따르면 토지는 유한하므로 … 전유될 수밖에 없다. 그는 아마도 정반대로 … 그러므로 토지는 전유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만 했을 것이다)

p.146. 물, 공기, 빛은 <무진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공동의> 사물인 것이며, … 마찬가지로 토지는 우리 생명의 보존에 필수불가결한 … 공통의 사물이고, 따라서 전유될 수 없는 것이다. 토지는 다른 요소들보다 훨씬 그 양이 적으므로, 토지의 이용은 … 모두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규제되어야 한다. … 권리의 평등은 욕구의 평등에 의해 정당성을 갖는다. 그런데 만약 사물이 유한하다면, 권리의 평등은 점유의 평등에 의해 실현될 수밖에 없다. 콩트 씨지의 논지의 근저에 있는 것은 바로 농지법률의 사고방식이다.

p.147. 민법전은 소유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 전유 가능한 사물들과 그렇지 않은 사물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상거래의 대상이 되는> 물건들에 대해 말할 때에도 어떤 규정이나 정의를 부여하지 않는다. … 밝힌 것(은) … 다음과 같은 변변찮은 격률 … 왕은 모든 지배권을 가지며 개개인들은 소유권을 가진다.

개인적 소유와 대립하는 사회적 종주권! 이것은 평등의 예언, 공화제의 신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례는 아주 많이 나타났다. 옛날에 교회의 재산, 왕의 영지, 귀족의 봉토는 양도 불가능했으며 시효취득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다.

제헌의회가 이 특권을 제거해 버릴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확대했다면, 제헌의회가 자유와 마찬가지로 노동권도 결코 상실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했다면, 바로 그때부터 혁명은 성취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마무리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제3장 -제2절 보편적 동의는 소유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p.148. 앞에서 인용한 세(H. Say)의 문장(에서) … 저자가 말하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유권은 원천적으로 의지의 발현에서 나오는 것이고, 땅의 비유동성으로 인해 소유권이 토지에 적용되었으며, 그리고 나서 보편적 동의에 의해서 이러한 적용이 재가되었다고. … 상호간의 동의에 의해서 소유를 정당화할 수 있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 인간은 이제 자유와 마찬가지로 노동도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노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p.149. 포기가 상호적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사람들은 그 대가로 동등한 것을 얻지 않으면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전유의 필수조건인 평등에 다시 봉착하게 된다.

요컨대 사람들은 보편적 동의 즉 평등에 의해 소유권을 정당화한 후에, 소유권에 의해 조건들의 불평등을 정당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사실상 사회 계약을 맺을 때 소유가 평등을 조건으로 한다면, 이 평등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때 계약은 파기되고 모든 소유는 강탈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모든 사람의 동의라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3장 – 제3절. 시효취득은 결코 소유를 낳을 수 없다

p.149. 법전은 시효취득을 <시간의 경과에 의해 획득되고 또 면제되는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p.157. 모든 소유가 다 필연적으로 시효취득으로부터 … 즉 지속적인 점유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 나는 … 묻는다. 어떻게 점유가 시간의 경과에 의해 소유로 될 수 있는가? … 시간 지속에 의해 용익권자를 소유자로 변형시킬 수 없다. … 점유자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모든 것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를 민법에서 인정받고 있다. … 민법은 이미 준수되고 있는 권리를 확인하는 것일 뿐 …

그러나 시간의 경과가 점유자를 소유자로 바꾼다고 법률이 선언한다면, 이는 권리가 그것을 낳은 원인이 없이 창출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즉 법률은 … 자신의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 공공 질서와 시민의 안전은 점유물의 보장만을 요구할 뿐이다. 그런데 법률은 왜 소유권을 창출했는가? 시효취득이란 미래에 대한 보험과 같은 것 … 그런데 법률은 왜 시효취득을 특권의 원리로 만들었는가?

p.158. 이렇게 하여, 시효취득의 기원은 소유 자체의 기원과 동일하다.

그런데 … 점유자의 이익을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 어떤 점유 행위도 행사할 수 없게 된 부재 시민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시효취득이 법률에 도입된 바로 그 시기에 사람들은 소유가 의향만으로 보존된다고 인정했다. … 그런데, 만일 시효취득이 의향만으로 보존되고 소유자의 행위에 의해서만 상실되는 것이라면, 시효취득의 유용성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158-160. 어떤 권리로 법률은 소유자의 재산을 박탈함으로써 그의 부재를 벌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우리는 조금 전에 시효취득과 소유는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들은 서로 상대방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 시효취득은 소유와 모순된다. 아니 차라리 시효취득과 소유는 하나의 원리에서 나온 두 가지 형태, 그러나 서로 상대방을 정정하는 두 가지 형태이다. 

제3장 – 제4절 노동에 대하여. 노동은 그 자체로는 자연의 사물들에 대하여 어떠한 전유 능력도 가질 수 없다

p.162. 우리는 … 아래의 사실들을 논증할 것이다.

1. 노동은 그 자체로는 자연물에 대하여 어떠한 전유 능력도 갖지 못한다.

2. 그러나 노동의 이러한 능력을 인정해 줌으로써 사람들은 노동의 유형, 생산물의 희소성, 생산능력의 불균등 여부에 관계없이 소유의 평등으로 인도된다.

3. 정의의 질서 안에서는 노동은 소유를 <파괴한다>.

p.162-163. 샤를 콩트 씨는 『소유론』에서 <국민nation으로서의 프랑스는 자신의 고유한 영토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 프랑스는 … 그 땅의 소유자는 아니다. … 국민들은 용익권자요, 노동하는 자이므로 … 사용할 권리라든가 남용할 권리가 개인에게 속하지 않은 것처럼 국민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 이리하여, 소유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규명하려고 국민이 소유자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콩트 씨는 이른바 <부당전제>의 궤변에 빠지고 만다.

만일 어떤 독자가 땅에 대한 국민의 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국민적 소유라는 이 허구의 권리로부터 시대를 막론하고 종주권의 주장, 공납, 왕의 권한, 부역, 인신과 금전의 징발, 상품의 조달 따위가 생기고 급기야는 납세거부, 봉기, 전쟁, 인구감소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 것이다.

p.166. 땅은 단지 당시의 총액으로서의 값어치만 갖는 것이 아니다. … 미래를 향한 잠재적인 값어치를 갖는다. 그리고 그 값어치는 그 땅을 사용하고 값지게 만드는 우리의 능력 여하에 달려 있다.

p.166-167. 소유의 사도이자 노동의 찬미자인 콩트 씨가 정부측의 토지 양도를 가정할 때, … 그로서는 이러한 가정이 필요했다. 그는 선점의 이론을 배척했기 대문에, 게다가 노동은 선점에 대한 사전 허가 없이는 권리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허가를 정부의 권위에 결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p.167. 소유가 노동의 딸이라고 말하고 나서 뒤이어 노동에 그 실행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일종의 악순환을 빚는 일이다. … 나는, 점유자가 두 배의 수확으로 자신의 노고와 근면을 보상받는다는 것을, 그러나 토지에 대한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p.167-169. 어부가 같은 해안에서 자기 동료들보다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줄 안다고 해서, … 해역의 소유자가 될 수 있겠는가? … 점유를 소유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없으면 인간은 노동을 그만두자마자 소유자의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 그런데 소유를 구성하는 것은, 법률에 따르면,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는 아주 오래 전부터의 점유, 즉 시효취득이다. … 노동에 의한 점유라고 하는 이론은 따라서 법전과 모순된다. … 이 이론의 주창자들이 그것을 토대로 법률들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들은 자기 자신과 모순된다.

p.170. 따라서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은 이 질료(땅)를 점유하고 사용할 뿐이며 항구적인 노동의 조건 아래서 일정 기간 동안만 자신이 생산한 사물들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 이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해결된다. 즉 생산물의 소유는 설사 그것이 허용된 경우라도 결코 생산수단의 소유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자신이 산출한 생산물의 소유자들일 뿐이며 누구도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아닌 것이다. 생산물에 대한 소유는 배타적이다. 요컨대 물(物) 안에서의 권리이다. 반면에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공통적이다. 죽 물(物)에 대한 권리이다.

제3장 – 제5절 노동은 소유물의 평등에 귀착된다

p.170. 그러나 노동이 질료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해 준다고 동의하자. 그러면 왜 이 원리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가? 왜 이 법률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한정되고 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가?

p.172. <토지를 더 비옥하게 만든 사람들은 땅을 새로 넓힌 사람들보다 자신의 동료들에게 덜 공헌한 것이 결코 아니다.> – 콩트 

그러면, 왜 이 규칙이 땅을 처음 간척한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땅을 개량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 왜 양쪽 모두에게 평등한 소유권을 주지 않는가?

p.173. 만약 사물에 가치를 덧붙인 노동자가 그 사물의 소유에 대한 권리를 얻는다면, 그 가치를 보전하는 자도 마찬가지의 권리를 얻는다. 왜냐하면 보전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덧붙이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자는 누구나 소유자가 된다. … 위선적인 경제학자님들처럼 봉급, 임금, 급료 등의 소유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내가 말하는 것은 자신이 창출하는 가치의 소유자들이다. 그 가치를 자신이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만이 그 혜택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p.174. 이제 나의 명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 <일하는 자는 심지어 자신의 임금을 받은 후에도, 자신이 생산한 사물에 대한 자연적인 소유권을 가진다.>

콩트 씨를 계속 인용해보자. <노동자들은 … 땅을 간척하도록 고용된다. … 노동자들이 거기에(땅에) 부가한 가치는 식량과 일당의 형태로 그들에게 지불된다. 그러면 이 가치는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 … 지불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노동이 가치를 창출했으며, 이 가치는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p.175. 임금은 노동자가 나날이 자신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그것을 판매대금으로 여기는 것은 당신의 오산이다. 노동자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다.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도, 그가 당신에게 한 양도의 범위도, 당신이 그와 맺었다고 주장하는 계약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p.179. 노동자들에게 보수를 지불했고 더 이상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는 구실… 자본가는 …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 그날의 <일당(une journée)>을 지불했다고 말해야 한다. … 노동자들의 협동과 조화, 그들 노력의 집중과 동시성에서 나오는 이 거대한 힘에 대해 자본가는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다. 

p.179-180. 200명의 정예병이 몇 시간만에 룩소르(Luqsor)의 오벨리스크를 … 세웠다. 한 사람이 200시간 안에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 가장 작은 재산, 가장 빈약한 기업, 가장 보잘것 없는 공장의 운용도 … 다양한 노력과 재능의 결합을 요구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자본가가 얻은 것과 지불한 것 사이에 수지를 맞추어 보자.

p.180. 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을 필요로 한다. … 사람을 부리는 자는 누구나 그에게 먹을 것과 생계 유지에 필요한 것, 아니면 그에 맞먹는 임금을 부담해야만 한다. …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에서 당장의 생계 외에도 장래의 생계에 대한 보장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의 원천은 고갈될 것이며 노동자의 생산 능력을 소실될 것이다.

p.180-181. 이것은 재생산의 보편적 법칙이다. … 소유자 농민은 (1)자신의 수확 속에서 … 생계수단뿐 아니라 … 계속 노동하고 항상 재생산한 수단을 찾으며, (2)생산도구의 소유 속에서, 경작하고 노동할 토지에 대한 항구적인 보장을 찾는다.

p.181. 자기의 노동력(services)을 제공하는 자(노동자)가 경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토지 혹은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자기(노동자)를 필요로 한다는 추정과 소유자가 자기(노동자)를 무상으로 고용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추정된 사실이다. … 오늘날 노동자는 고용주와 소유자의 선의와 필요에 의해 일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임시적(précaire) 자격의 점유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 조건은 부당한 것이다. …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p.181-182. 생산의 도구와 토대의 이러한 준비야말로 자본가가 생산자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며 다시는 돌려 주지 않는 것이다. … 사람들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라고 널리 불렸던 것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p.182. 실은 다음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여야 한다. 즉 (1)노동자는 모든 임금을 제하고 자신이 생산한 것을 고용주와 함께 나눌 것이다. (2)그렇지 않으면, 고용주는 생산 노동의 등가물을 노동자에게 돌려줄 것이다. (3)그렇지 않으면, 고용주는 노동자의 고용상태를 항상 유지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생산물의 분배, 노동의 상호성, 항구적인 노동의 보장, 자본가는 이 세 가지 대안 중 어느 하나를 피할 수 없다. … 자본가는 … 수천의 노동자들에게 봉사할 수도 없고, 그들 모두를 영원히 고용할 수도 없다. 따라서 소유의 분배만이 남는다. … 그러나 소유가 분할되면, 모든 조건들은 평등해질 것이다. 대자본가들도 대소유자들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p.184. 노동자 모두의 단합된 노고 덕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소유자는 안전한 생활을 누리…는 데 반하여, … 소유자가 … 노동자를 고용하기를 거부한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 모든 것을 생산하고도 아무것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노동에 의해 우리는 평등으로 나아간다. … 노동자들의 힘, 근면성, 노력 여부가 동일하다면, 재산도 마찬가지로 동일해질 것이 명백하다. …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가치의 소유자라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뒤따른다.

(1) 노동하는 자가 한가한 소유자를 대신해서 얻는다.

(2)모든 생산은 필연적으로 집단적인 것이므로,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에 비례해서 생산물의 이익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3) 모든 축적된 자본은 사회적 소유이므로, 누구도 배타적인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p.185. 이러한 추론들은 피할 수 없다. 이 추론들만으로도 우리의 경제 전반을 뒤흔들고 우리의 제도와 법률들을 변혁하기에 충분하다. … 세(H. Say), 콩트, 엔느켕 등등과 같은 이들이 왜 소유는 노동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나서 뒤이어 선점과 시효취득이라는 것에 의해 소유를 붙들어매려 하는가? … 우리로서는 하루 빨리 이 양식을 계도하고 올바른 길을 보여주도록 하자. 평등이 다가온다. 이미 우리는 평등과 좁은 간격을 두고 있다. 내일이면 이 간격을 뛰어넘을 것이다.

 제3장 – 제6절. 사회에서 모든 임금은 평등하다. (보수는 노동/업적, 재능/능력에 비례해야 하는가?)

p.185-186. 생시몽주의자들(saint-simoniens), 푸리에주의자들(fouriéristes), 또 일반적으로 오늘날 사회경제와 개혁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깃발 아래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몫을, 각자의 성취에 따라 각자의 능력을.(생시몽)

각자의 자본, 각자의 노동, 각자의 재능에 따라 각자의 몫을. (푸리에)”

p.186. … 그들은 노동과 근면에 의해 취득되는 자연의 생산물들은 모든 종류의 탁월함과 우월성에 대해 주어지는 보상이요 찬가이며, 영광이라고 주장한다. … 최고의 능력에는 최고의 보수가 돌아간다는 것을, … <보수>는 성취와 능력에 비례해야만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p.188. (생시몽과 푸리에의) 명제는 그러나 거짓이고 모순에 차 있으며 부당하다. … 이 명제는 소유자적 편견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진다. … 우선, <자본>은 보상의 기본 요인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푸리에주의자들은, … 선점권을 부정하고 노동 외에 다른 소유의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노동이 소유의 유일한 원리라면, 나는 어떤 다른 사람에게 소작료를 받고 경작시키자마자 내 땅의 소유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그런데 이것은 모든 자본에 대해서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본에 의한 생산>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 다음 장에서 깊이 있게 다룰 것이다.

p.189. 이렇게 자본은 교환될 수 있으나, 소득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이제 <노동>과 <재능>, 즉 생시몽의 말을 빌리면 <업적>과 <능력>이 남는다. 이것들을 차례로 검토해 보자. … 보수는 노동에 비례해야만 하는가? 달리 말하면 더 많이 일한 자가 더 많이 받는 것은 정당한가?

p.189-190. 결합된 자로서 노동자들은 평등하다. 한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모순이다. … 사회는 평등한 생산물들만을 교환한다. 사회는 사회를 위해 행해진 노동에만 대가를 지불한다. 따라서 사회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평등하게 지불한다.

p.190. 나는 지금 스스로 불평등의 원리를 세우고 있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다, 그와 정반대이다. 사회를 위해 이루어질 수 있는 노동, 즉 교환가능한 노동의 합계는 운영자금이 일정하다면 노동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일의 양이 줄어들수록 커진다.

따라서 자연적 불평등은, 노동의 결합이 확대되고 더 많은 사용가치가 사회적으로 생산됨에 따라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사회에서 노동의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선점권이나 소유권일 따름이다.

p.194. <많이 노동한 자는 많이 번다>라는 의미로 해석된 <각자의 노동에 따라 각자의 몫을>이라는 원리는 … 명백히 잘못된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는 경제학적인 오류, 즉 사회적 노동에서 일은 평등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물리학적인 오류, 즉 생산가능한 물건의 양이 무제한이라는 주장이다.

p.195. 이용가능한 재료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노동을 노동자의 수에 따라 분배할 필요를 입증한다. 사회적 과업 즉 평등한 과업은 성취할 수 있게끔 모두에게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과, 다른 노동자의 생산품에 의해서가 아니면 노동자에게 지불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보수의 평등을 정당화해 준다.

 제3장 – 제7절 능력의 불평등은 재산의 평등의 필요 조건이다

p.195-196. 당신들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 해야할 노동이 모두 한결같이 쉬운 것은 아니다. … 아주 뛰어난 재능과 지역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우수성 자체가 값어치를 낳는다. 예술가, 학자, 시인, 정치인 등 …

이러한 탁월성은 그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대등한 관계를 파괴한다. 지식과 재능의 이 최고 권위자들 앞에서 평등의 법칙은 사라진다. 그런데 평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는다.

p.196-197. 이러한 반론은 늘 만만찮게 보였다. … 그라쿠스 바뵈프(G. Babeuf)*는 모든 우월성을 <단호히 배격하고> 심지어는 <사회적 재앙으로 고발하기>를 원했다.

*그라쿠스 바뵈프. (1760-1797). 프랑스의 혁명가. 평등주의 음모 혐의로 처형되었다. (출처 : wikipedia)

p.197-198….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내 주장을 되풀이한다. 즉 능력의 불평등은 재산의 평등의 <필수> 조건이라고. … 사회에서는 두 가지 사실, 즉 <기능>과 <관계>를 구별해야 한다.

(1) <기능> 노동하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완수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 모든 수공업자는 자기의 일(métier)을 알아야만 한다. … 기능의 담지자와 기능 사이에 등식이 성립한다.

인간 사회에서 기능들은 서로 비슷하지 않으며, 따라서 여러 가지 능력들이 존재해야 한다. … 기능은 필요에 의해, 필요는 욕구에 의해, 그리고 욕구는 즉각적인 지각과 상상에 의해 주어지므로, 상상을 담당하는 지성 역시 생산 기능을 담당하는 셈 … 따라서 해야 할 어떠한 노동도 노동자보다 우월하지 않다.

자연의 경제를 우러러보자. … 우리 개인들의 고립된 힘만으로는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이 무수한 필요들에 대하여, 자연은 개체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힘을 집단(espèce)에게 주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업무의 전문화>에 근거한 원리, 즉 <분업>의 원리가 나온다.

p.200-201. 평준화를 좋아하는 어떤 철학자들은 지력은 누구나 대등하며 차이점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 나는 …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모든 능력들이 다 균등하다면, … 가장 잘 보상받아야 할 것은 조야하고 거칠며 때로는 매우 힘겨운 기능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각자의 성취에 따라 각자의 몫을>이라는 원리에 못지 않게 평등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2) <관계> 노동의 요소를 다루면서, 나는 같은 종류의 생산적 봉사에서는 사회적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힘의 불평등이 보상의 불평등을 낳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p.201-202. (한편) 한 가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서로 평등하듯이 기능들 역시 서로 평등한가를 입증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내가 천재성, 지식, 용기 등을 거부하는 것에 … 놀란다. 그러나 거부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 바로 경제이고, 정의이며, 자유이다.

p.202-203. 상거래가 정당하고 진실되기 위해서는 모든 불평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 이것이야말로 상거래의 첫번째 조건이다. 두 번째 조건은 상거래가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상거래 또는 교환을 일종의 사회적 행위로 정의한다. …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하고, 마굿간에서 자기 위해 궁궐을 짓고, 누더기를 걸치기 위해 아주 비싼 천을 짜고, 아무것도 없이 지내기 위해 모든 것을 생산하는, 문명 사회의 노동자들은 자유롭지 않다. 그가 몸 바쳐 일하는 주인은 임금과 용역의 교환에 의해 그와 한동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적이다.

p.204.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의 지성에 불을 밝혀서 자신들이 맺은 계약의 의미를 알도록 하라. 그러면 … 가장 완벽한 평등이 그들 사이의 교환을 주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상업적 사고의 범주에서는, 즉 사회의 영역에서는 우월성이란 단어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호메로스가 … 그의 불후의 시를 대가로 … 내게서 가진 것 모두를 빼앗아가고 나를 노예로 삼으려 한다면, 나는 그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를 물리칠 것이다. … 반면에 호메로스는 내가 만든 생산물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다.

p.205. 평등만이 시인에게 영예를 부여할 줄 알고, 갈채를 보낼 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노래하는 자의 권리와 듣는 자의 의무를 규정하는 일이다. … 파는 자와 사는 자, … 모두 자유로우며 … 우리는 판가름내리는 기준을 재능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생산물에 대한 고려에 두어야 한다.

p.206. … 결정해야 하는 것은 팔린 물건의 내재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인 것이다. … 이 상대적 가치란 무엇인가? 『일리아드』와 같은 시의 저자에게 돌아가야 할 마땅한 보수는 얼마인가?

이 문제는 정치경제학이 학문으로 정립된 후에 해결해야 할 첫 번째 문제였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은 그 문제를 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결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 교환가치는 …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p.208-209. 얼마만큼의 못이 나막신 한 켤레와 맞먹는가? 이 문제 앞에서 경제학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선다. 읽고 쓸 줄 모르는 농민은 서슴없이 답할 것이다. 같은 시간 안에 같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만큼이라고.

어떤 물건의 절대적 가치는 그 물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다. … 다이아몬드는 … 전혀 가치가 없다. … 다이아몬드를 다듬고 세공한다면 얼마나 가치가 나갈까? 직공에게 든 시간과 비용만큼이다. 그러면 다이아몬드는 왜 그리도 비싼가?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p.211. … 물질적 보상과 재능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척도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조건 아래서 모든 생산자들의 조건은 평등하다는 점을, 따라서 이 생산자들과 온갖 부류의 재산들 사이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

p.212.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생산물을 교환하는 일은 어떠한가? 이러한 교환은 재능이나 천재성에 대한 고려와는 관계없이 경제적 추산 아래서만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교환을 규제하는 법칙은 막연하고 무의미한 감탄이 아니라 … 상업적인 산술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p.212-213. 나는 왜 모든 능력들에 대해 같은 보수가 지불되어야 하는지를, 그리고 왜 임금의 차이가 부당한지를 설명할 것이다. 나는 사회적 수준에 순응할 의미가 재능의 내재적 속성이라는 점을 보여줄 것이며, 천재의 우월성이라는 바로 그 토대 위에 재산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세울 것이다.

p.213. 우선 경제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H. Say의 『정치경제학』에서 사례 : 의사가 있다. 그의 교육에 4만 프랑이 들었고 교육에 든 이 자본이 매년 4,000프랑 정도의 수입을 낸다고 가정. 의사가 매년 3만 프랑을 번다면 개인적 능력에서 나오는 수입은 교육으로 버는 4,000프랑을 제외한 26,000프랑이 된다. 이자율이 10%라면 (의사 수입의) 자연적 자본은 26만 프랑. 이 자연적 자본과 교육에 든 4만 프랑을 합한 것이 의사의 재산이다.)

* 차변과 대변
회계 장부에 기입할 대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는 것을 분개라고 합니다. 차변은 왼쪽에 대변은 오른쪽에 기입하며 이 두 값은 항상 일치해야 하는데 이를 대차평균의 원리라고 합니다. 차변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현금이 장부에서 나가는 것(자산 증가, 부채 감소, 자본 감소, 비용 발생)을 말하고, 대변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현금이 장부로 들어온 것(자산 감소, 부채 증가, 자본 증가, 수익 발생)을 말합니다. 차변과 대변은 재무상태표에서와 손익계산서에서 조금 다르게 쓰인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p.214-216. 세는 의사의 재산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는 교육에 지불된 자본, 다른 하나는 그의 개인적 재능에 따른 것. 이 구분은 보편적(인 동시에) 능력의 불평등에 대한 중요한 논증의 대전제 구실을 한다.이제 그 결과를 보자.

(1)세는 교육에 들어간 4만 프랑을 대변 쪽에 집어넣고 있지만 이 4만 프랑은 차변 쪽에 넣어야 한다. 그가 쓴 것이 아니므로. 교육에 들어간 지출은 바로 그 재능이 갚아야만 하는 빚인 것. 

(2) 교육비를 상환해야 할 의무에 관해 … 경제학자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교육을 통해 얻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계승할 경우, … 4만 프랑의 빚에 대한 채권도 상속 … 따라서 채권의 소유자가 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재능의 권리 문제를 벗어나서 선점권의 문제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 … 선점권이란 무엇인가? 상속이란 무엇인가? 상속권은 누적의 권리인가, 아니면 단순한 선택의 권리인가?

(3) 세는 … 의사의 재능이 26만 프랑의 자본과 맞먹는다고 결론. 의사가 얻는 수입에 의해 재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재능에 의해 그의 급료가 산정되어야 한다. … 그런데 어떤 재능이든 그것을 현금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재능과 돈은 서로 공통의 척도로 측정될 수 없기 때문. 재능의 권리는 이런 식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결정되는가? 

(4) 나는 의사가 … 불리하게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과 대등한 수준 아래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의사가 이 평등의 수준을 넘어서도 안 된다고 덧붙인다. 왜냐하면 그의 재능이란 그가 한번도 지불하지 않은 공동의 재산이며 그는 그 공동의 재산에 대한 영원한 채무자이기 때문이다.

p.216-217.모든 생산도구의 창출이 집합적인 힘의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에게 있는 재능과 학문은 보편적 지성과 일반적 지식의 소산이며, 이는 많은 거장들에 의해 그리고 상대적으로 열등하거나 근면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축적된 것이다.

p.217. 재능을 가진 이는 자기 자신 안에서 유용한 도구를 생산해 내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그는 공동점유자이다. 그는 소유자가 아닌 것이다. 그에게는 자유로운 노동자와 축적된 사회적 자본이 동시에 존재한다. 

재능의 우월성이라는 것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봉급을 … 올리기보다는 차라리 낮추는 동기를 … 찾아야 하리라. … 모든 생산자는 교육을 받는다. 모든 노동자는 재능이자 능력 즉 … 집합적 재산이다. 그러나 그 재산을 창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같지가 않다. … 사회적 회임 기간은 능력의 탁월성에 비례. 

p.218. 인간의 능력이 무엇이든 간에, 그 능력이 창출되자마자, 인간은 이미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다. … 인간은 생성의 능력을 지녔을 뿐이며, 사회가 그를 존재로 만들었다.

p.219-220. 라셀 양(Rachel Félix)은 코메디-프랑세즈*에서 연봉 6만 프랑을 받는다고 한다. 그녀와 같은 재능인에게는 보잘것 없는 보수이다. 왜 10만 프랑, 20만 프랑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 예술가의 재능은 무한할 수 있지만, … 금전상의 요구는 필연적으로 제한 … 사회 자체의 자원의 양에 의해서 제한되는 것.

*프랑스 파리의 극장 코메디-프랑세즈. 18세기 당시 건물 외양. 1680년 설립되어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출처 : wikipedia)

p.220. 라셀 양은 (극장에) 6만 프랑 이상의 수입을 올리게 해준다고들 한다. … 그렇다면 나는 극장측을 비난한다. (극장은) 누구에서서 돈을 거두는가? 자유로운 호사가들에게서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이 극단에 지불할 모든 돈을 얻어내는 노동자들, 세입자들, 소작인들, 이자와 담보로 돈을 빌리는 채무자들, 이들은 자유로운가? 이들이 생산물의 대부분이 자신들과 상관없이 극장에서 소비되고 있을 때, 당신은 이들의 가족이 굶고 있는 일은 없으리라고 나를 안심시킬 수 있는가?

p.221-222. 나는 재능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 다음 장에서는 나는 일체의 사회적 불평등의 불가능성이라는 것에 의해 이를 확증할 것이다. …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입증했는가? … 아주 단순한 아래와 같은 사실들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자본은 집합적 소산이며 따라서 집합적 재산을 이룬다.

강자는 약자의 노동을 강압적으로 침해할 권리가 없으며, 유능한 자는 단순한 자의 선의를 이용할 권리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물건을 사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며 자신이 사지 않은 물건의 값을 지불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 생산물의 교환가치는 … 그것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을 척도로 하기 때문에 소유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이 장을 끝맺기 전에 경제학자도 법학자도 꿈꿔보지 못한 엄청난 진실들 중 하나(노동은 소유를 파괴한다)를 드러내 보자.

 제3장 – 제8절. 정의의 질서 안에서는 노동은 소유를 파괴한다. 

p.223-224. 이 명제는 앞선 두 절의 결론이다. 우선 이를 요약해 보자.

(인간의) 모든 힘은 사회 안에 있으며 모든 사람들의 노력의 현명한 결합 속에 있다. 노동의 분업과 협업은 생산물의 양과 종류를 증대시키며 기능의 전문화는 소비재의 질을 높인다. … 각자의 소비는 모든 사람에 의해서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생산은 만인의 생산을 전제로 한다. … 고립된 산업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 모든 생산은 서로에게 목적이 되고 또 수단이 된다.

개개 생산물에 대한 모두의 참여라는 … 사실은 모든 개개의 생산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 생산자 자신은 자기가 만든 생산물의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해서만 권리를 가지며, 그 전체 분모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수와 맞먹는다.

반면에 이 생산자는 자기의 것이 아닌 모든 다른 생산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모든 다른 이들에 맞서 일종의 저당권을 갖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도 그에 맞서 저당권을 가짐은 물론이다.

p.225. 그러나 이러한 상호 저당이 결국 소유를 용인해 주기는커녕 점유까지도 파괴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값어치에 대한 소유자조차 아닐뿐더러 그것을 결코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다. 자기 생산물에 대한 대가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가 행한 노동에 대한 보수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야할 노동에 대한 지급이자 선불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생산하기 전에 소비한다. … 살아 있는 매순간마다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나 현재의 계좌에서 가불금을 얻는다.

p.226. 결론을 맺자. … 일하는 자는 누구나 사회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지불불능 상태로 죽어 가는 채무자이다. 소유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수탁을 부인하고 일수, 월수, 연수로 보관료를 받기를 원하는 불성실한 보관자이다. … 지금까지 나는 소유를 <배제>의 능력으로 고찰했다. 이제부터는 <침해>의 능력으로 살펴보겠다.

제4장. 소유는 불가능하다.

p.227-228. 소유자들이 내세우는 마지막 논거는 … 조건들의 평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그들은 … 사족을 달기를 잊지 않는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면,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만일 내가 불가능한 것은 바로 소유 그 자체라고 입증한다면, … 그것을 형이상학이나 법학의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치와 등식화와 산술에 의해서 입증한다면, … 소유자의 공포는 어떠할까?

p.230. 소유의 불가능성을 증명하면서 나는 소유의 부당성을 증명할 수 있다. 요컨대,

<정당>한 것은 하물며 <유익>하다.
<유익>한 것은 하물며 <진실>하다.
<진실>한 것은 하물며 <가능>하다.

따라서 선험적으로 어느 사물의 정당성 여부를 그 불가능성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

소유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논증

공리 – 소유란 소유자가 자신의 표찰을 붙인 사물에 대해 행사하는 불로수득권이다.

p.230-231. 이 명제는 완벽한 의미에서의 공리이다. 왜냐하면,

1. 이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 여기서는 단 한 가지만, 즉 불로수득의 권리만을 다루어 보도록 하자.
2. 이 명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3. 이 명제는 명약관화하다. … 이 명제가 표명하는 사실은 … 소유를 동반하기 마련.
4. 이 명제를 부인하는 것은 자체 모순이다. … 불로수득권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소유란 무의미하다.

p.231-232. <비평> 불로수득은 그것을 낳은 사물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지닌다. 토지에 대해서는 <소작료>, 가옥 및 가구에 대해서는 <임대료>, 영구 대여에 대해서는 <지대>, 금전에 대해서는 <이자>, 교환에 대해서는 <이익>, <벌이>, 이윤> – 이 세가지를 임금, 즉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 등이다.

p.233. 불로수득권을 확립하는 절차 : 첫째로, 사물의 <축성>. 축성은 누구나 소유자의 서명이 적힌 허가장을 얻어 그의 물건을 사용하고자 할 때마다 그에 합당한 공물을 소유자에게 바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파문>. 소유자가 부재하는 경우라도 그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을 금지하는 것. 세 번째는 <봉헌>. … 소유자 즉 사물의 수호신으로 정해진 수호 성인은 … 정신적으로 거기에 거하게 된다. 이러한 봉헌 효과에 의해서, 사물의 실체가 말하자면 소유자의 인격으로 전화되며, 이 인격체가 그 사물의 형질과 외양 아래 늘 자리잡게 된다.

p.234. <소유는 불로수득의 권리이다.> 즉 그것은 노동하지 않고 생산하는 능력이다. 

p.235-238.

추론 1. 불로수득의 양은 사물에 비례한다. 이자율이 얼마든지 간에 … 아무 상관이 없다. 이자율 증가의 법칙은 언제나 동일. 그 법칙이란 : 화폐 가치로 평가된 모든 자본은 100을 비율로 하는 산술 급수의 한 항으로, 그리고 이 자본이 가져오는 소득은 이자율을 비율로 하는 또 다른 산술 급수의 대응항으로 간주.

<비평> 소작료, 지대, 이자 등 … 불로수득금은 1년 단위로 … 집세는 매주, 매월, 매년 단위로 지불된다. 이윤과 이익은 교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생긴다. 따라서 불로수득금은 시간에 비례, 사물에 비례한다.

추론 2. 보유자에 의해 소유자에게 지불되는 불로수득금은 보유자에게는 완전한 손실이다. 왜냐하면 만약 소유자가 그가 받은 불로수득에 대한 대가로, 그가 보유자에게 허용해 준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짊어져야 한다면, 그의 소유권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론 3. 불로수득은 … 소유자에게 맞서 발생한다. 사물의 지배자는 소유자로서의 자신과 점유자로서의 자신을 구별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이용한 대가로, 그가 제3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이용료를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불로수득권에 의해 자본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첫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無)에 대해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p.238-239. 이 명제에 대한 검토는 … 소작료의 기원에 대한 검토와 매한가지이다. … 여기서 우리는 최초의 지불금, 소작인이 (밭의) 소유자에게 지불하는 지대만을 다루도록 하자. 소유자가 이 지대를 자신에게 지불하도록 요구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를 물어보자.

p.239-240.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잉글랜드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매컬록(John Ramsay McCulloch. 1789-1864.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밀(John Stuart Mill)에 따르면 … 소작료란 <가장 비옥한 토지의 생산물을 그보다 열악한 토지의 생산물과 비교할 때의 초과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주장에서 조금이라도 어떤 의미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토지의 비옥도 차이가 어떻게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져올 수 있는가?… 만일 이들이(리카도, 매컬록, 밀) 토지의 차이가 소작료의 <원인>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계기>였다고 말한 것이라면, 우리는 … 귀중한 교훈을 얻는(다). 즉 소작료의 근거는 평등의 욕구에 그 원리를 두고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p.241. 좋은 땅을 차지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면, 그 누구도 반대급부없이는 열악한 땅을 경작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 따라서 리카도, 매컬록, 밀에 따르면, 소작료는 이윤과 노고를 보상해 줄 요량으로 생긴 일종의 손해보상금인 셈이다. … 이들의 이론은 그들 자신과 어긋나는 것…이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는 소작료의 원천은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식량을 제공하는 토지의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 만일 <경작자>라는 말이 소작인만을 뜻한다면 …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식량을 제공할 능력이 있다.

재단사는 몸소 입을 옷보다 더 많은 옷을 만들며, 가구공은 … 더 많은 가구를 만든다. 그러나 모든 직업들이 서로를 전제로 하고 서로를 지탱 … 농사꾼만이 아니라 온갖 직업인들, 심지어 의사나 교사에 이르기까지 <토지의 경작자>로 말해지며 또 그래야만 한다.

p.242. 맬서스가 소작료에 적용한 원칙은 상업의 원칙이다. 그런데 상업의 기본 법칙은 생산물의 등가 교환이므로, 이 등가성을 해치는 것은 모두 법칙을 위배하는 것. 맬서스의 그릇된 평가는 정정되어야 한다. … 스미스(Adam Smith)를 논평하면서 부캐넘(Buchanam)은 소작료를 독점의 결과로 간주, 노동만이 생산적이라고 주장 … 독점이 없었다면 생산물은 값이 더 싸질 것이라고 주장 … 나아가 소작료의 근거를 민법에서만 찾았다.

이는 민법을 소유권의 토대로 보는 견해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면 … 민법이 왜 이러한 독점을 용인했는가? 독점을 말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정의를 배제한다. … 세(H. Say)는 독점자란 <상품에 조금도 효용을 더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에 소유자는 결코 독점자가 아니라고 부캐넘에게 답한다.

p.243-244. <… 토지는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구이며, 그 사용에 대해서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 라고 세는 말한다. … 토지가 하나의 생산도구라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소유자인가? … 소유자의 독점이라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생긴다. 그는 자신이 도구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그 사용료를 챙(긴다).

<… 우리는 소유자가 없이는 지낼 수 없다.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농사꾼은 지주가 없는 밭을 갈려고 서로 싸울 것이며 밭은 황폐한 채로 남을 것이다. …> (H. Say)

p.245. 세는 우리에게, … (소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농사꾼들이 점유를 위해서 소유자들에 맞서 싸우지는 않는가를 설명해줄 것인가? … 나는 제2장에서 소유 없는 점유만으로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의 논리는 정말 기묘하다. … 지주가 토지의 정당한 주인이라고 인정해 보자. … <토지는 하나의 생산 도구이다>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를 <토지는 생산적인 도구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오류이다.

p.245-246. 케네(François Quesnay)와 옛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생산은 토지에서 나온다. 반면에 스미스, 리카도, 드 트라시(Antoine Destutt de Tracy, 1754-1836)는 생산을 노동에서 찾는다. 세를 비롯해서 그의 뒤에 나타난 경제학자들은 토지와 노동과 자본 <모두>가 생산적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정치경제학의 절충주의이다.

진실인즉 토지도 노동도 자본도 생산적이지 않다. 생산이란 이 세 가지 요소, 즉 모두가 필수적이나 따로 떼어놓으면 불모인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한 결과이다.

p.247-248. 마지막으로, 노동과 자본이 합쳐지더라도 잘 조합되지 못하면 여전히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 도구와 자본, 토지, 노동 따위는 … 서로 떼어서 추상적으로 고려한다면, 비유적 관점에서만 생산적일 뿐이다. 자신의 도구, 생산력, 토지를 사용한 대가로 … 무엇을 요구하는 소유자는 … 자본이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전제. 말 그대로 공짜로 무엇인가를 얻는 셈이다.

p.248. <반론> 만일 … 모든 제조업자가 자신이 제공한 도구들의 대가로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면, 만일 토지가 하나의 생산 도구라면, 왜 이 생산 도구는 그 진정한 또는 가상의 소유자에게 생산물의 일부에 대한 몫을 보장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p.248-249. <답변> 여기에 … 소유권의 비밀이 있다. … 지주는 자신의 도구 중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 도구의 유지와 수선에 드는 … 비용은 고스란히 빌린 자의 몫으로 남으며 …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는 가치의 교환도 노동의 교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공리에서 말한 것처럼, 소작료는 진정 불로수득일 뿐이며, … 사기와 폭력에 … 무기력과 무지에 토대를 둘 뿐인 강탈 행위이다. 경제학자들은 <생산물은 생산물에 의해서만 구입된다>라고 말한다. 이 격언은 소유권에 대한 유죄판결이다. … 따라서 소유가 권리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면 소유는 불가능하다.

p.249-250. 추론 1. 소유권을 <자신의 노동의 결실을 향유할 권리>라고 정의한 1793년의 공화정 헌법(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Man and of the Citizen of 1793)은 엄청나게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한다. 즉 소유권은 타인의 재산과 타인의 노동과 땀의 결실을 자기 마음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권리이다.

<추론> 2. 손해배상의 구실로 그러나 사실상 빌려주는 대가로 징수하는 모든 임대료는 소유권의 행위이며 도둑질이다.

<역사적 해설> 승전국이 패전국에 요구하는 공납은 진정 소작료와 마찬가지이다. 귀족, 영주, 성직 이권자, 성직록 수혜자 따위의 이름으로 이 권리(십일조, 재산이전세, 부역, 그리고 1789년의 혁명이 폐지한 영주 부과조 등)을 누리는 자들은 소유자 이외에 달리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날 소유를 옹호하는 것은 혁명을 규탄하는 일이다.

두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가 용인되는 곳에서 생산은 효용가치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p.250-251. 앞의 명제는 법률적인 성격의 것이었으나, 이 명제는 경제적인 성격의 것이다. 이 명제는, 폭력을 기원으로 하는 소유가 결과적으로 무가치를 낳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쓰인다.

세(H. Say)는 말한다. <생산은 하나의 거대한 교환 행위이다. 교환이 생산적이려면 생산에 들어간 모든 노동의 가치가 생산된 물건의 가치와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 그런데 가치는 효용을 필수적인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효용을 갖지 못한 모든 생산물은 당연히 무가치한 것이고, 교환될 수 없으며, 따라서 생산에 들어간 노동을 <지불하는> 구실을 다할 수 없다.

따라서 생산이 소비와 균형을 이룰 수는 있어도 결코 소비를 넘어설 수는 없다. 소비다운 소비가 되려면 효용을 재생산해 내야만 한다. 만일 소비가 비생산적일 경우, 소비가 생산물을 소모하는 일은 가치를 파손하는 것이고, … 생산물의 값어치를 그 가치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p252. 인간은 자신이 재생산하는 것만을 소비한다. 따라서 올바른 경제 활동에는 생산과 소비 사이에 하나의 등식이 존재. (*외부와의 교섭이 단절된 채 일정한 영역에 틀어박혀서 사는 1,000가구의 한 부족의 예. pp.252~254.)

p.254-255. 지금까지 나는 소유자를 생산에 참여하는 자로, 즉 세(H. Say)가 말한 것처럼 단순히 자신의 도구에 의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노동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이러한 조건에서라면 결코 소유가 존재할 수 없다.

세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본이 일정한 경우 생산은 소유가 아니라 노동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p.259. 노동자 1,000명으로 이루어진 한 사회의 소작료가 100이라면, 900명의 경우는 90, 800명의 경우는 80, 100명의 경우는 10 등등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았다. 이런 식으로 사회에 노동자가 단 1명뿐이라면, 소작료는 차지한 땅의 규모나 가치에 상관없이 0.1이 될 것이다. 따라서 <토지 자본이 일정하다면, 생산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비례한다>.

이 원리에 따라, 모든 소유에 대한 불로수득의 최대치는 얼마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토지임대차 계약이란 원래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소유자가 토지에서 나오는 소득의 일정 몫을 자기가 가진다는 조건으로 자기의 토지에 대한 점유를 임차인에게 양도하는 계약이다. 만일 가족 수가 (10배) 늘어서 … 10배 더 생산(한다면) … 이것이 지주가 소작료를 10배나 올리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

p.260. 소유는 불로수득의 권리일 뿐, 결코 인두세(poll-tax)가 아니다. 어째서 임대료가, 소유자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효용에 비례해서가 아니라 임차인의 재능과 힘에 비례해서 늘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 따라서 우리는 두 번째 경제 법칙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로수득금은 소유자가 생산한 아주 작은 부분으로 계산되어야 한다.(Increase is measured by a fraction of the proprietors production.)>

그런데 … 이 소유자의 생산이란 무엇인가? … 소작인에게 빌려주면서 자신이 희생하는 몫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 소유자의 생산 능력이 다른 노동자들의 생산 능력과 마찬가지로 1이므로, 토지를 양도함으로써 그가 내어주는 생산물도 역시 1. … 따라서 불로수득의 비율이 10%라면 불로수득금의 최대치는 0.1이 될 것이다.

p.260-261.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소유자가 생산에서 물러설 때마다 생산물의 총량은 1씩 줄어든다. 따라서 … 그가 일을 그만두(면) … 소작료 감소의 법칙에 따라 (불로수득금은) 0.09가 될 것이다. … 우리가 지금 보여준 바와 같이, 일하지 않는 소유자에게 응당 돌아가야 할 최소한으로 줄어든 불로수득권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임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점권은 만인에게 동등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같은 자격으로 소유자가 될 것이다.

p.262. 따라서 노동자가 소유권을 이유로 소유자에게 지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면, 소유자는 바로 같은 같은 권리에 의해 같은 지대를 노동자에게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이들의 권리는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되므로, 이들 사이의 차이는 영(0)이 된다.

요약해 보자. 불로수득권은 생산의 법칙에 의해 규정된 대단히 좁은 범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선점권에 의해 무효화된다. 그러나 불로수득권 없이는 소유가 없으며 따라서 소유는 불가능하다.

 네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p.262-263. 만일 불로수득권이 이성과 정의의 법칙에 종속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수당, 즉 그 <최대치>가 노동자 한 명당 그가 생산할 수 있는 것의 일부를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보상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논증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소유자로서 그는 자기의 소유물에서 단지 1만큼의 생산물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전혀 기여한 바 없는 사회를 상대로, 소유자로서의 생산능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수당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p.264. 소유자는 자기 몫의 이익을 자기가 행한 노동에 근거해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본에 근거해서 계산한다. … 소유자는 자신이 놀고 먹으면서 생기는 적자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적자는 생산자에게로 전가되고, … 소작료가 일단 천정부지로 오르고 나면, 소유자는 절대 그것을 내리는 법이 없다.

p.264-265. 여기에 일련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난다. 세(H. Say)는 … 맬서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징세관들, 그 위탁업자들이 생산물의 1/6을 소비한다면, … 생산자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것의 5/6로 먹고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 … 이 프랑스 경제학자들의 대부께서는 … 소작제가 낳는 결과가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p.266-267. 징병이 다가온다 … 징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부가 가정에 대해 행사하는 불시의 소유권 행위이며, 인력과 금전의 약탈이다. … 우리의 농민이 징집된 자식 두 명을 되찾으려면, 빌린 돈 4,000프랑을 내야 한다. … 이자는 5%로 계산해서 200프랑이다. … 이 이자를 갚기 위해서는 여섯 명이 일곱 명분의 일을 하거나 아니면 다섯 명분의 소비를 해야 한다. 소비를 줄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소유권을 행사하지 않는 동안은 행복하게 살던 한 가정이 이 권리의 행사가 요구되자마자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토지의 단순한 점유자라면, 그는 거기에서 먹고 살 것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 땅은 그에게 부족하게 된다. 

p.268. 자신이 생산할 수 없는 것을 갚아야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소유자가 …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기 시작하면서 소작농이 처하게 된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의 첫번째 가설로 다시 돌아가자. 여느 때처럼 같은 양을 생산했다고 확신하고 있던 농민 900명은 소작료를 지불하고 나니 지난 해보다 1/10만큼 가난해진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 이 1/10은 한때 생산과 공공지출에 참여했던 지주-노동자가 생산했던 것 … 지금은 이 1/10이 생산되지 않으며 지불되기만 할뿐이다. 즉 그것은 생산자의 소비에서 차압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 불가해한 적자를 메우려고 노동자는 되갚을 수 있으리라고 충분히 자신하면서 돈을 빌린다. … 지주에게서 … 빚은 눈동이처럼 늘어난다. … 이번에 그는(생산자는) 수단을 강구 … 곡물 가격을 올린다. … 제조업자도 … 올린다. 반작용이 계속되고 몇 차례 요동이 따르고 나면 … 소작료는 거의 상쇄된다. 결과적으로 그는(생산자는) …. 다시 가난해진다. …. 9/100만큼 …

p.269-270. 생산은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지는가? 노동과 자본과 토지의 결합된 작용에 의해서이다. 노동의 경우, 소작인이 의당 그것(노동)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은 저축에 의해서만 마련된다. 그런데 소작인이 무엇인가 저축할 것이 있다면, 그는 곧 그것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 그가 경작하는 땅덩이가 늘 같은 면적이라면, 그 자본이 그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늘려야 할 것은 바로 땅덩어리이다.

소작료는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잡은 평균치를 바탕으로 계산한 것. 그렇지 않은 경우, 지주는 소작료를 올린다. 이런 식으로 … 인구의 증대와 산업의 발전에 따라 사회가 자신들의 소유지에서 얼마나 더 생산할 수 있는지를 알 때마다 그만큼 순차적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는가?

요컨대, 소유는 횡령에 의해서 노동자들을 헐벗게 만든 다음에 탈진으로 서서히 죽게 만든다. 약탈과 살인이 없으면, 소유는 무이다. 그런데 약탈과 살인에 의해서 소유는 즉시 지지기반을 읽고 소진된다. 따라서 소유는 불가능하다.

다섯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회는 소유에 의해 자기 자신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p.272. 소유를 만족시키려면 우선 노동자는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그 다음에 자신의 힘 이상으로 생산해야만 한다. …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려면, 다른 이의 생산을 차지해야만 하며 따라서 생산자의 수가 감소된다. 이렇게 소유자는 우선 스스로 생산에서 멀어짐으로써 생산을 감소시킨 후, 다시 노동을 독차지함으로써 생산을 감소시킨다.

p.273-274. 자본과 토지의 침탈에 이어서 경제적 과정들이 뒤따르는데, 결과는 마찬가지로 일정 수의 노동자들을 생산에서 축출하는 것이다. 이자가 어디서나 소작인이나 기업가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 (일꾼들에게 적게 지불하고 그것으로 지대와 이자를 갚으려고 한다.)

<몇 년 전에 스트래포드(Strafford) 백작부인은 1만 5,000명을 영지에서 내쫓은 후 이들을 다시 소작인으로 고용해서 땅의 가치를 높였다. 이 사적인 통치 행위가 1820년에 어느 스코틀랜드의 대지주에 의해 소작농 600가구에게 다시 되풀이되었다.> (티소(Tissot). 『자살과 폭동에 대하여』)

사회는 자기 자신을 먹어 치운다. 첫째는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적이고 주기적인 억압에 의해서, 둘째는 소유가 생산자의 소비에서 취하는 몫에 의해서. … 상업과 경제학의 원리에 따르자면, 한 기업이 성공하려면 그 생산물이 (1) 자본가의 이자와, (2) 이 자본의 유지와, (3) 모든 노동자와 기업가의 임금의 총액과 같아야만 하며 여기에 더하여 가능한 만큼 더 많은 이익이 실현되어야만 한다.

p.276. 노동자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가? 노동자들은 거대한 산업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로서 … 분화의 원리에 따라 전체 생산 중 그 일부를 떠맡고 있다. 우선 이 사회가 축산업자, 무두장이, 제화공이라는 세 명의 개인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 여기서 중요한 것은 … 서로 결합되어 있든 아니든 우리의 세 노동자가 … 원하든 아니든 현실적 필요성이나 수학적 필연성이 이들을 서로 결합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이다.

p.277. 각 생산자는 우선 자신의 노동을, 다음에는 다른 생산자들의 노동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10개의 가죽 구두를 얻기 위해서는, 농부는 30개의 생가죽을 주어야 할 것이며, 무두장이는 20개의 무두질한 가죽을 주어야. … 그러나 제화공이 자기의 상품 10개에 대해서 농부에게 33개, 무두장이에게 22개를 요구한다면 교환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 농부와 제화공은 … 그들이 자신이 10을 주고 판 것을 11을 주고 되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제조업자가 무언가 이익을 남길 때마다 늘 일어나는 일이다. … 만일 제화공이 (생산 재료를 마련하고 생산한 다음 구두를 판매한) 자금이 회수될 때까지 살아가기 위해서 이자로 돈을 빌린다면, 그는 이자를 갚기 위해서 농부나 무두장이에게서 이득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이익이라는 것은 사기를 벌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자는 불쌍한 제화공의 부담이 될 것이고 결국 그를 파산으로 몰고 갈 것이다.

p.278. 나는 터무니없이 단순화된 어떤 가상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 그러나 기능인의 수가 몇 명이든 간에 경제 법칙은 항상 동일하다. 요컨대, <생산자가 살기 위해서는 그의 임금이 그의 생산물을 되살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그들이 주장하는 과학의 이 근본 원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왜 그토록 고집스럽게 재산을 옹호하고, 임금의 불평등과 고리대의 정당성과 이윤의 정당함을 옹호하는가? 이 모든 것이 경제 법칙에 어긋나고 거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데도 말이다.

p.280. 이제 이 이익의 결과들을 살펴보자. … 노동자 대중은 그들이 짠 피복도, 그들이 만든 가구도, 그들이 벼린 쇠붙이도, 그들이 다듬은 보석도, 그들이 새긴 판화도 살 수 없다. … 자기 육체에 필요한 휴식을 즐길 권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요구하는 값을 치르고 그것을 사야만 하는데, 불로수득권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p.281. 그런데 인민은 소유가 자신을 굶주리게 만드는 수단이 되는 그 노동마저도 얻지 못한다. 왜 그런가? 임금이 불충분한 까닭에 노동자들은 노동을 독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굶주림으로 죽기 전에 경쟁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룰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2]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을 등에 업고 일을 하고 있는 제3신분 평민. 1789년의 프랑스 만평 그림. (출처 : wikipedia)

p.282.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개탄할 광경은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편견 탓에 깨닫지 못한 이 수학적 필연성에, 이 수의 힘에 저항하여 싸우고 있는 장면이다.

(*예 : 프랑스 시민 3,400만 명이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데 인쇄공 10만 명이 필요하고, 이들이 만들어낸 책을 살 형편이 되는 사람은 전체 시민 중 1/3뿐이라면 10만 노동자는 실제 팔릴 수 있는 양의 3배를 생산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지 않으려면 인쇄 노동자들이 3일 중 이틀은 쉬거나, 분기별로 교대를 하거나, 생애의 2/3는 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산업은 이런 규칙을 따르지 않고 책 한 권의 원가(임금 등)를 낮추고 책값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p.282-283. 공장이 멈출 때도 자본에는 이자가 붙는다. 따라서 생산업자는 당연히 생산 경비를 줄임으로써 생산을 유지하려 한다.여기에서 임금의 인하, 기계 도입, 여성 또는 아동 노동에 의한 남성 노동의 대체, 숙련도 저하, 불량 제품 등이 생긴다. 생산은 계속된다. 왜냐하면 생산비의 저하가 판로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생산이 계속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원가의 하락이 생산의 양과 속도에 토대를 두는 것인 만큼, 생산 능력이 … 소비를 초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유의 원리가 가장 끔찍스러운 결과를 낳는 것은 바로 이때, …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그날의 생계를 겨우 떼우기도 힘겨울 때이다. … 상품이 넘치고 가격이 너무 떨어진 결과, 기업가는 곧 자기가 빌린 자본의 이자도 갚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겁먹은 주주들은 서둘러 자금을 회수하고 생산은 정지되며 노동은 중단된다.

p.284-285. 상업 및 산업 침체의 첫번째 원인은 자본의 이자인데, 이 이자라는 것은 아주 옛날에 … 고리대라는 이름으로 … 비난을 받았으나, 이제 지대, 소작료, 이익 따위의 명칭으로 사용되자 사람들은 굳이 비난하려 들지 않는다. … 자본가가 얻는 불로수득이란 바로 이런 것이며, 상업 공황의 빈도와 강도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p.286. 통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상업 공황>이지 <농업 공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작농은 불로수득권에 의해 조금씩 먹혀 들어가는 데 반해서, 제조업자는 단숨에 먹혀 버리기 때문이다. … 요약해보자. 소유자는 그가 노동자에게 지불한 것보다 더 비싼 값으로 생산물을 노동자에게 판다. 따라서 소유는 불가능하다.

다섯 번째 명제에 대한 보론

p.286-289.

I. 몇몇 개혁가들, 심지어 어떤 학파에도 혹하지 않으며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가난한 계급의 운명을 개선하고자 몰두하는 대디수 저술가들 역시 오늘날 더 나은 노동의 조직에 기대를 걸고 있다. … 특히 … 푸리에주의자들은 … 그들이 만들어 낸 <각자의 자본, 각자의 노동, 각자의 재능에 따라 각자의 몫을>이라는 공식에서 알 수 있듯이 소유와 불로수득권의 옹호자임을 자임하고 있으며, …

소유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노동의 조직은 또 하나의 기만일 뿐이다. 생산을 4배로 늘린다 해도, … 생산물의 증가분은 만일 그것이 소비되지 않는다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며 소유자는 그것을 이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것이니 말이다. … 나로서는 푸리에의 속내가 달랐다기보다는 차라리 … 무지했다고 믿고 싶다.

II. 그러나 반쯤 개종한 어떤 소유자는 말할 것이다. 은행, 지대, 소작료, 집세, 온갖 고리대를 그리고 마침내는 소유를 폐지함으로써 생산물을 각자의 재능에 맞게 분배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생시몽(Claude Henri de Rouvroy, comte de Saint-Simon. 1760-1825)의 생각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푸리에의 생각이었다. 

p.291-292. 들어라, 소유자여. 사실 능력의 불평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승인되지도, 허용되지도, 가정되지도 않는다. 3,000만 명의 사람들에 대해 뉴턴 같은 인물은 한 세기에 하나로 족하다. … 그런데 그 기능의 희소성이 그 기능을 맡은 사람에게 남다른 특권을 주지는 않는 바, 이는 한결같이 중요한 다음의 여러 이유들 때문이다.

(1) … 천재의 희소성이란 … 각자의 기능이 모두에게 널리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섭리의 수단일 뿐이다.
(2) 재능은 … 자연의 창조물이다. 그것은 축적된 자본이며, 그것을 받은 자는 수임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가 없다면 그리고 그 사회가 베푼 교육과 든든한 도움이 없다면, 가장 훌륭한 천성도 … 범상한 능력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 한 인간의 지식이 방대하면 할수록, 그의 상상력이 탁월하면 할수록, 그의 재능이 풍부하면 할수록, 그를 교육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고, … 그가 사회에 대해 지는 부채는 더 큰 것이다.
(3) 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능의 불평등은 … 재능의 특수성에 지나지 않는다.
(4) 급여의 불평등은 불로수득권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p.293. 나는 무엇을 말하는가? 평등 안에서 임금은 항상 능력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임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을 재생산하는 데에 드는 소비로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생산에 임하는 활동 자체가 그의 소비를 이루는 것이며, 이 소비는 우리가 요구하는 바 그의 생산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을 맺자.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몫을, 각자의 성취에 따라 각자의 능력을>이라는 생시몽의 격률은 평등 안에서, 아니 평등 안에서만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다.

p.294. III. 소유가 초래하는 가장 큰 해악, 가장 끔찍스럽고 늘 따라다니는 해악은 소유가 존재하는 한, 인구가 아무리 줄더라도 늘 필연적으로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 어느 시대에나 소유는 바로 자신이 유일한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만연한 빈곤을 거북살스러워했다. … 더욱이 소유가 빈곤을 퇴치할 요량으로 궁리해 낸 여러 수단들만큼 기묘한 것도 없다. … 유아 유기 … 살육, 내란과 전쟁 … 기아 …

p.295. 다음의 내용은 어떤 경제학자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14, 15세기부터 영국은 기근에 허덕였다. 걸인들은 법으로 엄하게 처벌되었다.>(그러나 인구는 오늘날의 1/4도 안 되었다.)

<에드워드 왕은 동냥 행위를 투옥형으로 다스렸다. … 엘리자베스 여왕은 각 교구가 빈민을 먹여 살리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나 빈민이란 누구인가? … (빈민을 정의하고 개정하고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와중에) 빈곤은 증대하고 노동자는 초췌한 몰골로 죽어갔다.>

p.296. <루이 14세 치세 때는 4만 명에 이르는 빈민들이 수도에 횡행했다.>

<나폴레옹(이) 생각해낸 법령은 징역형이었다. 이로써 짐은 걸인들의 파렴치함과 적빈이 가져온 불치병의 혐오스러운 광경으로부터 부자들을 보호하리라>고 그는 말했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하나는 빈곤이 인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빈곤을 퇴치하려고 동원된 어떤 처방도 무용지물이라는 것.

p.296-297. 카톨릭 교회는 병원과 수도원을 세웠으며, 보시를 권장했다. 즉 구걸을 장려했다. .. 기독교 국가들의 세속 권력은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매길 것을, 가난한 자들은 내쫓고 가둘 것을 명했다. 즉, 한편으로는 소유권의 침해를,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권의 발탁과 살인을 명했다.

p.302. 맬서스는 생산이 산술급수로 증대하는 데 반해서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대한다고 학자답게 논증했지만, <빈곤을 가져오는> 소유의 이 힘은 지적하지 않았다. 이 점을 잊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가 다산성을 억제할 방책을 찾기에 앞서서 불로수득권을 폐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권리가 용인되는 곳에서는 토지의 넓이와 비옥도에 관계없이 늘 과잉인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압제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p.303. 통치란 무엇인가? 통치란 공공의 경제, 곧 국민 전체의 노동과 재산에 대한 최상의 관리이다. … 국민은 마치 시민 모두가 주주인 거대한 회사와 같은 것… 각자는 … 한 표씩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소유제도 아래서는 주주들이 출자한 몫이 서로 엄청나게 불균등하다. 어떤 이는 단 한 표 밖에 갖지 못하는 반면에, 어떤 이는 수백 표를 가지는 것이다.

p.304-305. 만일 주권이 재산에 비례해서만 개개 시민에게 귀속될 수 있을 뿐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면, 소주주들은 거대 주주들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 소유는 정치적, 시민적 평등과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소유는 불가능하다.

<역사적 해설>

1. 1789년 삼부회에서 제3신분 대표의 수를 두 배로 늘리기로 결정한 것은 소유에 대한 대대적인 침해 행위이다. … 이때부터 제3신분(평민)의 배가는 소유에 대한 침탈이자 공격이었다.
2. 만일 현재 급진적 반대파의 대표들이 권좌에 오른다면, 이들은 모든 국민방위군을 유권자로 만들고 모든 유권자가 피선거권자로 되는 개혁을 단행할 것이다. 이는 소유에 대한 공격이다.
3. 소유는 특권과 전제의 으뜸가는 원인이다.

일곱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자신이 취득한 것을 소비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저축함으로써 폐기해 버리며, 자본화함으로써 생산에 적대하기 때문이다.

p.307-310. I. 만일 우리가 경제학자들을 본받아 노동자를 살아 있는 기계로 간주한다면, … 소유자란 … 일하지 않는 기계, … 기분 내키는 대로만 노동할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기계이다.

소유자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이며, 재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이다. … 소유자는 자신의 소유와 맞교환해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소유자가 아닐 것이니 말이다.

소유자는 자신이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보수만을 생산할 뿐, 자신의 소득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 소유자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소유자가 자신의 소득을 소비하는 것은 사실상 그 소득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II. 따라서 소유자가 소비하는 행위는 생산품을 근절시킨다. 그러나 만일 소유자가 저축을 한다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소유자가 한쪽 편에 쌓아두는 물건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저축하는 소유자는 자신도 그것을 향유하지 못할 뿐더러 … 그에게는 점유도 소유도 없다. … 향유 없이 완전한 소유가 있을 수 없고, 소비 없이 향유가 있을 수 없으며, 소유의 상실 없이 소비가 있을 수 없다.

III. 자신의 소득을 소비하는 대신 자본화하는 소유자는 그 소득을 생산에 적대시키게 되며, 따라서 스스로 자기의 권리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왜 그런가.

(*투자에 대한 이자율을 높이면 임금을 줄여야 하고 임금을 줄이면 기계의 유지 보수에 드는 비용을 줄이게 되고, 그러면 노동의 양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생산량, 나아가 소득의 원천도 줄기 때문.)

p.311-313. 사실 소득은 생산 기반을 늘려야만 증대될 수 있다. … 얼마 안 가서 소유자의 권리 행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소유는 자본화하고, 자본화함으로써 이자를 증식시킨다.

국민은 우리가 <정부>라고 부르는 대지주의 소작인과도 같다. 국민은 땅을 사용한 대가로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소작료를 정부에 지불한다. 전쟁을 할 때마다, 전쟁에서 지거나 이길 때마다, 군수품을 바꿀 때마다, … 정부는 돈을 빌리게 되고, 납세자가 그 이자를 지불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는 생산 기반을 증대시키지 않고 운용 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부는 …. 소유자로서 자본화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여덟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의 축적력은 무한대인 반면 소유가 작용을 미치는 수량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p.316-317. 재산은 날로 더욱 빠르게 증식되고 있다. … 이익이 자본의 1/10, 1/5, 1/2, 심지어 자본 그 자체와 맞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단지 점유권 관련 소송에서 판사들이 과연 어떤 규정에 따라 그 이자를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를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려서 나는 다시 묻는다.

입법자는, 소유의 원리를 공화정에 도입하면서 그로 인해 초래될 모든 결과들을 헤아려 보았을까? 그는 가능성의 법칙을 알고 있었을까? 만일 알고 있었다면, 왜 법전은 그것을 기술하고 있지 않은가? … 왜 소유자가 그의 소유를 불리고 이자를 요구하도록 내버려두는, 재판관이 이 소유의 권한을 인정하고 확립하도록 내버려두는, 재판관이 이 소유의 권한을 인정하고 확립하도록 내버려두는, 국가가 끝없이 새로운 조세를 매기도록 내버려두는, 이 끔찍스러운 방종이 생겨났는가?

인민이 예산을 거부하고, 소작인이 소작료를 거부하며, 기업인이 자본의 이자를 거부하는 권리를 가지려면, 어떤 경계선을 넘어서야 하는가? 놀고먹는 자가 얼마만큼이나 일하는 자를 착취할 수 있는가? 약탈의 권리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가? 생산자가 소유자에게 <나는 이제 더는 당신에게 갚을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인가? 소유가 언제 만족하겠는가? 도둑질이 허용되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

우리의 헌장과 법전들이 불합리한 가정을 원리로 삼고 있다면, 법률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무엇인가? 우리의 의회들은 무엇을 심의하는가?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를 <정치인>이라 부르는가? <법률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홉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소유에 대해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p.318-323.

I. 공리의 세 번째 귀결(pp.257-262 : 자본이 일정한 경우 생산은 소유가 아니라 노동에 비례하기 때문에 소유는 불가능하다)에 따르면 이자는 국외자뿐만 아니라 소유자와도 충돌하고 있다.

제조업자는 그의 집이나 그의 자본의 임대료를 자기 자신에게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 제조업자는 자신의 생산품을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지불시키고 있는 것이다. 

긴 생산자들의 사슬을 상정해 보자. 생산자 A가 생산자 B에게서 이득을 취한다면, 경제원리에 따라서 B는 C에게서, C는 D에게서 다시 그만큼의 몫을 회수 … 결국 Z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Z는 과연 누구에게서, 처음에 A가 취한 이익을 회수할 것인가?

만일 그가 최초의 수혜자 A로부터 회수한다고 하면, 이미 누구에게도 이익은 존재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소유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반대로 Z가 그 부담을 짊어진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그는 그 사회에 속하지 않게 된다. … 사회가 다른 구성원들에게 인정해 주고 있는 소유권과 이익권을 그에게는 거부하는 것이니 말이다. … 따라서 … 한 사람이 부자가 되려면 다른 한 사람이 가난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입증된다. 왜냐하면 A에게서 소유권이나 불로수득권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Z에게는 거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기업가만이 이득을 얻을 권리가 있는가? 이 권리는 근본적으로 소유권과 같은 것인데 왜 노동자에게는 거부되는가? 경제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노동자는 자본이다. 그런데 자본이란 … 이자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런데 왜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자본에 대해 이와 유사한 이자를 취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가?

따라서 소유란 권리의 불평등이다. 왜냐하면 소유가 권리의 불평등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재산의 평등일 것이며 따라서 존재할 수 없는 것. … 그런데 헌법은 만인에게 권리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 의해 소유는 불가능하다.

II. A라는 영지의 소유자는 … 자기 이웃인 B의 땅을 가로챌 수 있는가? … 모자 상인 C는 이웃에 사는 모자 상인 D에게 그의 가게문을 닫고 장사를 그만두라고 강제할 권리가 있는가? 결코 아니다. (그러나 A가 대지주이고 B가 소송을 제가할 권리가 없는 한, C가 D보다 자본이 더 많아서 더 오랫동안 싼 가격에 모자를 팔 수 있는 한 A와 C는 B와 D를 약탈할 수 있다.) 이는 소유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힘의 권리, 강자의 권리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제조업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임금을 인하하는 것도, 부유한 상인이나 돈 많은 지주가 자기들의 생산물을 원하는 값에 파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강자의 권리에 의해서이다. … 따라서 힘이 없이는 소유는 소유에 대해서 무기력하다. 힘이 없다면 소유가 불로수득에 의해 증대될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힘이 없는 소유는 무용지물이다.

<역사적 해설> 식민 모국의 설탕과 토착민의 설탕의 문제.

열 번째 명제 : 소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유는 평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명제에 대한 설명은 앞의 명제들에 대한 요약이다.

p.325-326.

1. 경제법의 원리 : <생산물은 생산물에 의해서만 살수 있다.> 소유는 효용을 생산할 때에만 옹호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다.

2. 경제의 법칙 : <노동이 생산물에 의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소유에 의해 생산이 그 가치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3. 또 다른 경제 법칙 : <자본이 주어질 경우, 생산은 더 이상 자본의 규모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에 의해 측정된다.> 그런데 소유는 노동에 대한 고려 없이 소득이 늘 자본에 비례할 것을 요구하므로, 이런 점에서 소유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이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4와 5. 노동자는 결코 자신을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소유는 두 배의 생산을 요구하면서도 그것을 얻기는커녕, 노동자를 헐벗게 하고 죽여 버린다.

6. 자연은 인간 개개인에게 하나의 이성, 하나의 정신, 하나의 의지만을 주었다. 그런데 소유는 한 인간에게 복수의 투표권을 부여하면서 그의 정신도 복수성을 띤다고 가정한다.

7. 효용을 재생산하지 않는 모든 소유는 파괴 행위이다.

8. 자연권의 충족은 일종의 등식과도 같다. 한 물건에 대한 권리는 반드시 이 물건에 대한 점유에 의해 충족되는 법이다. … 그러나 불로수득권과 이 불로수득의 실현 사이에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로수득이 실현됨에 따라 그 불로수득은 (제2, 제3의) 불로수득을 낳는 식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9. 소유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유는 발생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 <무력>과 <사취>를 필요로 한다. 소유는 결코 소유와 대등하지 않다. 그것은 부정이고, 허위이며, <무>이다.

제5장. 정의와 불의의 관념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 그리고 통치와 권리의 원리에 대한 규정

p.327. 소유는 불가능하다.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유를 혐오하면서도 그것을 원한다. 우리의 사고는 평등에 매달려 있으나 그것을 실현할 줄 모른다. … 인간이 어떻게 정의를 침해하였는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정의란 무엇인가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제1부

제1절 인간과 동물의 도덕 감각에 관하여

p.328. 인간의 지능과 동물의 지능을 구별해 주는 명확한 구분선이 무엇인가 …. 프레데릭 퀴비에(Frédéric Cuvier, 1773-1838, 박물학자)는 아주 단순한 구분…을 보여주었다. 즉 그는 <지능>으로부터 <본능>을 떼어 낸 것이다. … 그러나 지금껏 아무도 다음과 같은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다. <인간과 야수의 도덕 감각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아니면 정도의 차이일 뿐인가?>

p.329. 인간은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 인간은 따라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다. 사회 … 관계의 총화, 즉 한마디로 말하자면 체계를 말한다. 그런데 체계란 특정한 조건들 아래서만 존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 사회의 조건들은 무엇이며, <법칙들>은 무엇인가? … 인간들 사이의 <권리>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가?

p.330-333. <권리>란 사회를 규율하는 원리들의 총화이다. 인간에게 정의란 이 원리들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것이다.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사회적 본능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사회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 여러 상황들에거 발생하는 인간들 서로간의 행위를 관찰한다면, 인간이 언제 사회를 이루고 언제 사회를 이루지 않는가를 쉽사리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부터 추론한다면 법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본능은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많든 적든 존재한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은 것이다. …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 자신에게만 유일하다고 내세울 수 있는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회적 본능, 도덕 감각은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다 찾아볼 수 있다.

p.334-335. 우리들과 다른 생물들 사이에 … 차이점은 무엇인가? … 우리가 우리의 사회적 본능의 작동에 대해 성찰하고 추론하는 데 반해서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우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사회적 본능(우리는 이것을 정의라고 부른다)에 저항하는 것이 우선 타인에게, 다음에 우리 자신에게 해로운 일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은 … 성찰과 추론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 우리의 이성인 것이다. 양심의 가책, 징벌 및 형법의 정의의 원리가 바로 이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지능의 차이를 입증하는 것일 뿐, 결코 정서(affections)의 차이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 성찰은 우리에게 도덕성이 무엇이라고 가르쳐주기는 하나 도덕성을 바꾸거나 수정하지는 않는다. … 우리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능, 즉 선과 악에 대한 의식은 도덕성에 관한 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를 이루어내지는 못한다.

제2절 사회성의 첫번째 및 두 번째 단계에 대하여

p.337. 사회성의 두 번째 단계는 정의인 바, 우리는 이것을 <우리와 동등한 인격을 타인에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우리는 곧 인간이 어떻게 동물들이 도달할 수 없는 사회성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는 <사회, 정의, 평등>이라는 이 세가지가 동의어이고 서로 통하는 표현들이며 서로 바꾸어 쓸 수도 있는 용어들이라는 사실을 형이상학적으로 논증해야만 한다.

(사례. 약간의 식량만을 가지고 표류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구조해야 하는가? 그와 식량도 나누어 먹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로 확대해야 한다. 만일 사회가 나룻배에 대해 의무를 진다면 식량에 대해서도 의무를 져야만 하는가?)

p.338. 함께 사회를 이루는 자의 의무는 절대적이다. 인간의 사회적 본능은 인간에 의한 물건의 선점보다 앞서는 것이며, 후자는 전자에 종속(된다). … 이 경우에 우리의 의무감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예견 능력 … 이는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위협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우리를 강탈 행위에 매달리게 하며 우리를 도둑이나 살인자로 만든다. … 지능이 법에 복종하지 않을 동기가 되어 버린다는 것.

p.338-339. <뭐라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내가 일해서 얻은 빵, 바로 내 빵을 … 어떤 낯선 사람과 나누어야만 한다고! … 우리는 함께 생산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 먹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의 오류는 한 생산자가 다른 생산자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p.340-341. 우리가 서로 연결되기를 원치 않을지라도, 일의 추세, 소비의 필요성, 생산의 법칙, 교환의 수학적 원리 등이 우리를 결합시킨다. 이 규칙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소유자의 경우이다. 소유자는 자신의 불로수득권에 의해 생산에 임하므로 … 

상업 사회든 산업 사회든 농업 사회든 평등을 넘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평등은 그 필수적인 존재 조건이다. 따라서 이 사회와 관련된 모든 일들에서, 사회를 위배하는 일, 정의를 위배하는 일, 평등을 위배하는 일은 정확히 같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인간 모두에게 적용해 보라.

이 원리에 따른다면, 한 사람이 어떤 밭을 차지해서 이 밭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만일 다른 사람도 그처럼 밭을 차지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부당한 일이 아니리라. … 만일 … 다른 어떤 이로 하여금 자기 자기를 대신하게 하고는 그에게 <내가 쉬는 동안 나 대신 일해라>라고 말한다면, 그는 부당하고 한동아리가 아니며 <불균등>하게 된다. 그는 소유자이다.

p.341-342. 사회성은 감성적 존재들 사이의 인력과 같은 것이다. 정의는 성찰과 인식을 수반하는 바로 이 인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반적 관념 아래서, 어떤 오성의 범주 안에서 정의를 인식하는가? 균등한 양의 범주 안에서이다. … <정의는 평등이요 불의는 불평등이다.>

그러면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평등한 노동 조건 아래서 각자에게 재산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 선점권이란 무엇인가? … 노동자들 사이에서 땅을 나누는 자연적인 방식이다. 이 권리는 일반 이익 앞에서 사라지며, 이 일반 이익은 … 사회적 이익이므로 또한 선점자의 이이이 된다.

노동의 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요구되는 조건들을 충족시킴으로써 자기 몫의 재산을 얻어낼 수 있는 권리. 사회의 권리이며 평등권이다.

p.343. 정의는 그 이중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가 2, 3, 4장에서 보아온 모든 논증들에 대해 우리가 결정적으로 옳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한편으로 <정의>의 관념은 사회의 관념과 동일하고 사회는 응당 평등을 내포하기 때문에, 소유를 옹호하기 위해 고안된 모든 궤변의 근저에서 어김없이 평등이 발견된다. 

p.343-345. 그렇다면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남다른 감정은 정의에 어긋나는 것인가? 이것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 (사례 :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먼저 구하고 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를 먼저 생각한다.) 커다란 사회 안에서 우리 각자가 말하자면 동심원 모양으로 개별 사회를 구성*한다는 이 이론은 여러 종류의 사회적 의무들이 서로간의 대립과 갈등을 낳을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푸는 열쇠를 제공한다.

p.346-347. … 인간은 사회적 본능이 우리에게 일깨워준 행위들을 더 늘리고 서로 결합시킬 줄을 안다. … 사회는 평등한 배분을 의미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하는 우리 인간은 추론의 능력에 의해서 우리가 가진 권리들의 규칙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다.

철학자들이 단순하다고 믿는 정의롭다는 관념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다. 그 관념은 한편으로는 사회적 본능에 의해 주어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과 대등한 공적이라는 관념에 의해 주어진다.

요약해 보자. 본능은 그 본능에 대한 지식에 의해 전혀 수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해 온 여러 가지 사회의 사실들은 동물적 사회성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의, 즉 평등의 이치 아래 인식된 사회성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우리를 동물에서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347-348. … 인간의 천성은 모두 유사하다. … 그러나 … 능력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동일한 능력에서의 이 다양한 정도의 차이, 특정 작업에 대한 이 재능의 우월성은 … 우리 사회의 토대 자체를 이루고 있다. 지능과 천부의 재능이 … 널리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라는 유기체는 어떤 특정 재능이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 노동자는 자기의 작업에만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p.350-351. 조건들의 불평등은 누가 무엇을 먼저 점유했다는 점에 의해서도, 재능, 용역, 근면성, 능력 따위가 남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 그러나 조건들의 평등이 … 사회적 감정이 비등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선행이나 사랑이라는 정신 상태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

힘과 용기와 재능이 우월한 인간은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사회에 빚지고 있으며, 사회가 없다면 그 자신도 있을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인간에게서 영예와 존중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은 바로 인간이 몸소 인류에게 바치는 자발적인 존중심이며 자신은 자연의 도구일 뿐이라는 자각이다. 

p.351-353.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평등이다. 선행은 압제로 변질되고, 찬미는 노예근성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우애는 평등의 딸이다. … 우애는 내가 <형평>(équité) 즉 <사회적 비례배분>이라 부르는 어떤 특유의 정서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색조들이다. … 형평이 정의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의는 항상 형평을 토대로 삼음으로써 그것에 존중을 덧붙여서 마침내는 인간에게서 사회성의 세 번째 단계를 구성한다. … 형평은 이성과 정의에 의해 이상적인 상태로 고양된 사회성이다.

p.353. 정의가 사회적 본능과 성찰의 혼합물인 것처럼, 형평은 정의와 취향 혼합물, … 평가하고 이념화하는 능력의 혼합 생산물이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사회성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이 혼합물은 우리의 복합적인 소통 양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 소통 양식 안에서는 불평등, 아니 더 적절히 말하자면 능력의 차이와 기능의 전문화에 의해 일하는 자들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만큼 더 사회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p.354. <사회성>, <정의>, <형평>은 … 우리로 하여금 우리 동료들과의 소통을 추구하게 하는 본능적인 능력에 대한 정확한 정의이다. 이 본능적 능력의 물리적 표현 형태는 <자연 및 노동의 생산물에서의 평등>이라는 정식으로 나타난다.

정의 없는 형평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의 없는 사회는 무의미하다. … 정의란, 무게를 달고 길이를 잴 수 있는 유형의 물질들을 배분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성이다. 반면에 형평이란 측정될 수 없는 물질, 즉 경의와 존중을 동반하는 정의이다.

p.354-358. (1)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 우리의 존중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공동 재산에서 더 많은 몫을 그에게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정의의 의무가 형평의 의무에 앞서…기 때문이다.

임금의 불평등이 재능의 불평등을 구실로 법적으로 허용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산의 분배는 정의에 속한 문제로서 경제의 영역일 뿐 경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증여, 유산 및 상속에 대해 말하자면, 사회는 가족의 애정과 사회 고유의 권리 두 가지에 동시에 이끌린 나머지 사랑과 호의가 정의를 침범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 사회는 단 한 사람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어떤 자본과 산업의 집중도, 어떤 노동의 독점도 어떤 침탈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2) 형평과 정의, 사회는 같은 부류의 개체들과의 관계에서만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재할 수 있다. … 신은 신과의 관계에서만 정의롭고, 공정하며 선하다고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신은 고독한 유일자이다. 따라서 신은 선량, 형평, 정의와 같은 사회적 감정들을 체험할 수 없다.

만일 신이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더불어 살게 되더라도, 신이 우리와 함께 어울리지 않는 한, 우리는 신을 사랑할 수 없으리라. … 여기서 내가 얻은 결론은 만일 신이 인간과 직접적인 교섭에 들어가려면 그가 곧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p.358-359. 마찬가지로, 만일 왕들이 신의 이미지이자 신의 의지의 집행자라 할지라도, 왕들이 우리에게서 사랑과 부와 복종과 영예를 얻으려면 그들 스스로 우리처럼 노동하고, 우리와 교제를 나누며, 자신들이 지출에 맞추어 생산하고, 종복과 함께 의논하며, 몸소 큰 일들을 해내야만 할 것이다.

조건들의 평등, 이것이야말로 사회들의 원리이고, 보편적 연대성, 이것이야말로 이 원리의 재가이다. 조건들의 평등은 우리의 정념과 우리의 무지 탓에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p.360. 인민을 들고일어나게 만드는 수많은 내밀한 원인들 중에서, 소유에 맞선 프롤레타리아들의 주기적인 소요보다 더 강력하고 더 규정적이며, 더 알아차리기 쉬운 것은 없다. 인구가 증대할 때면 어김없이 배제와 침해의 원리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이 소유는 모든 혁명들의 발생 원리이자 결정 요인이었다. … 이것이 바로 소유가 갖는 축적의 힘이며, 이것이 바로 사회의 퇴폐와 사멸의 법칙이다.

p.360-364. 중세의 피렌체를 보라 … 피렌체는 은행가의 지배를 받다가 결국 빚에 쪼들려 몰락하지 않았는가. … 고대의 로마를 보라. 로마는 건국 이후 고리대에 시달리다가 … 내란으로 피투성이가 되고, 결국 인민의 왕성한 정력과 더불어 마지막 남은 도덕 감각까지 잃게 되자 쓰러져 죽지 않았는가. … 카르타고를 보라. … 분열된 상업 … 무역 경쟁 … 판로의 부족으로 인해 차례로 몰락한 이들 도시를 보라. … 만일 프랑스가 … 소유제도의 폐지를 선언하지 않는다면 어떤 운명이 현대 국가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가?

여기서 나의 작업을 끝마쳐야 하리라. 나는 가난한 자의 권리를 입증했으며, 부자의 횡령을 보여주었다. 이제 나는 정의를 요구한다. …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은 바로 시민적, 행정적 권력체의 몫이다. … 또한 나는 나의 독자들 중 어느 누구라도 내가 파괴할 줄은 알지만 건설할 줄은 모른다고 나를 비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평등의 원리를 입증함으로써 나는 사회라는 건물의 초석을 놓았다.

사회가 포괄하는 문제들의 깊이와 다양성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우리는 이 과학의 ABC에 겨우 도달해 있다. …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진실한 저술가의 과업은 사기꾼과 거짓말쟁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일반인들로 하여금 상징이나 강령이 아니라 논증에만 만족하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과학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서 우선 과학의 대상을 결정하고 그 방법과 원리를 발견해야만 한다. 과학을 짓누르는 갖가지 편견들을 물리쳐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19세기의 사명이다.

정치학 전체의 요약판이자 20여 입법 회기의 상징인 헌장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 이 헌장, 이 법전 중에서 어떤 한 조항도 남지 않으리라. 박학한 학자님들은 … 재건을 준비해야 하리라.

나는 정치학의 첫번째 문제, 오늘날 모든 지성을 사로잡고 있는 다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글을 끝맺을 수가 없다. <소유가 폐지되면, 사회의 형태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공유제(communauté)인가?>

제2부

제 1 절 우리의 오류의 원인들에 대하여 : 소유의 기원 

p.365. 인간 사회의 참된 형태를 확정하려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미리 해결해야만 한다. 즉, 소유는 우리의 자연적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확립되었는가? … 나는 인간이 <복잡한 방식>으로 결합한다고 말했다. … 재능과 능력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는 사실 … 그 한없는 다양함으로 인해 의지의 무한한 다양함을 낳는다는 사실, 이로 인해 성격, 경향, … <자아>의 형태가 불가피하게 달라진다는 사실.

p.366. 인간의 개성은 늘 변화무쌍하고 다양다기해서 사회와 대립한다. … 그러나 인간의 지능은 사회적 운명과 개인적 필요를 동시에 계산에 넣고 있기 때문에 … 인간의 의지 역시 아주 각양각색이다.

p.368. 인간은 관찰과 경험에 의해서만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은 성찰한다. … 관찰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곧 성찰하는 것을 의미 … 또한 인간은 추론한다. … 그런데 인간은 성찰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환상을 만들고, 추론함으로써 잘못을 범한다.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고, 옹고집이 되며, 자기 의견을 맹신하고, 자기를 존중하며 남을 멸시한다. 이때부터 인간은 스스로 고립된다.

p.369. 도덕적 악, 즉 사회의 무질서는 당연히 우리의 성찰하는 능력에 의해 설명된다. 빈곤, 범죄, 폭동, 전쟁 등은 조건들의 불평등을 그 원인으로 하며, 조건들의 불평등은 소유에서 유래한다. 소유는 이기심에서 나오고, 이기심은 개인의 의식에서 생기며, 개인의 의식은 이성의 전제에서 직접 유래한다.

p.370-371. 인간은 사회적으로 태어난다. … 인류의 가장 큰 죄악들은 인류가 자신의 사회성을 잘못 행사한 데서, 인류가 그토록 자랑삼던 정의를 … 무지하게 행사한 데서 나오는 것이다. 정의의 실천은 하나의 과학이며, 그것의 발견과 전파는 우리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우리를 계도해 줌으로써 조만간 사회적 무질서를 종식시킬 것이다.

p.372-373. … (동물과) 인간을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퀴비에에 따르면, 그것은 <성찰>, 즉 <우리 자신을 되돌아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변화를 지적으로 고찰하는 능력>이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매일같이 추론과 선택에 의해 사회적이다.

p.374-375. 자신의 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인간은 자기 자신의 관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찰도 이용한다. … 따라서 … 우리를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것이 바로 성찰이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p.375. 그런데 이 성찰과 그 결과로 생기는 인식은 몇 가지 단계가 있기 때문에, … 우리의 본능이 … 오히려 방해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사고하는 능력이 우리를 우리의 천성이나 우리의 목적과는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 이렇게 악 즉 오류와 그 결과들은 본능과 성찰이라는 두 적대적인 능력이 뒤섞여 태어난 첫번째 아이이다. 선 즉 진리는 그 두번째의 불가피한 결실임에 틀림이 없다.

p.376. 성찰과 추론이 자발성보다 나중에 나타나고, 관찰이 감각보다 나중에 나타나며, 경험이 본능보다 나중에 나타나듯이, 소유는 공유제보다 나중에 나타난다. … 그것은 인간 문명의 첫번째 단계이다. 법학자들이 <소극적 공유제>라 부르는 이러한 사회 상태 안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접근하고, 서로 대지의 결실과 동물의 젖과 고기를 나눈다. … 이 공유제는 노동과 산업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적극적이고 유기적인 것으로 되어간다.

p.376-377. 이 모든 것을 헤겔의 정식에 의해 설명하자면, … 사교성의 첫번째 양태이자 첫번째 결정체인 공유제는 사회 발전의 첫번째 항, 즉 테제(정)이다. 공동체의 모순된 표현인 소유는 두 번째 항, 즉 안티테제(반)를 이룬다. 그러면 세 번째 항, 즉 신테제(합)를 찾는 일이 남는바, 우리는 이를 해결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신테제는 테제와 안티테제의 수정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따라서 테제와 안티테제의 특성들을 최종적으로 검토해서 사회성에 적대적인 요소들을 거기서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은 그 두 요소를 결합하면 인간적 결합의 참된 형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제 2절 공유제와 소유의 특징들

p.377-378. I. 그 누구든 소유나 공유제 없이는 사회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될 것이다. 한없이 개탄할 이 오류들로 인해 소유는 생명력을 얻어 왔다. 공유제가 가져온 치유할 수 없는 부당성들, …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이성적이고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의 개성을 얽어맨 공유제의 그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획일성이 일반인의 양식을 일깨우고 마침내 공유제를 가차없이 단죄하게 만든 것이다.

공유제를 옹호할 양으로 흔히 거론되는 인물들과 실례들은 오히려 공유제와 어긋나 보인다.(노예제를 전제로 하는 플라톤의 공산주의 공화국, 생산과 전쟁에만 전념하는 노예에 기반한 스파르타의 루쿠르고스의 공화국, 노예제가 있어야 조건들의 평등도 가능하다고 본 장 자크 루소, 원시 교회의 공유제 …)

p.379-380. 공산주의자들의 모든 이론들의 근저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이 바로 소유이다. … 공동체 자체가 소유자, 그것도 재산만이 아니라 인격과 의지의 소유자인 것이다. … 노동이 공유제 아래서 인간에 대한 격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격률이 되는 것, … 수동적 봉족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것, 겉으로는 명철해보이지만 결함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규칙들을 지키는 데서 어떤 불평도 용납되지 않는 것, 인간의 생명, 재능, 모든 능력들이 다 국가의 소유물로 되고 국가가 일반 이익에 맞도록 원하는 대로 사용할 권리를 갖는 것,

개별 단체들은 … 철저하게 금지되는 것, 의무에서가 아니라 선의에서,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고에 의해서이기는 하지만, 강자가 약자의 일을 떠맡아야만 하고, 부당하게 여겨지더라도 근면한 자가 게으른 자의 일을 떠맡아야만 하며,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민활한 자가 우직한 자의 일을 떠맡아야만 하는 것, 인간이 자신의 <자아>, 자발성, 천분, 애정 등을 집어던지고 공동 생활의 위업과 완고함 앞에서 미천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것 – 지금 열거한 모든 현상은 소유의 준엄성이라는 이 원리에 의한 것이다.

p.380-381. 공유제는 불평등이다. … 소유가 불평등이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소유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착취 … 공유제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착취. 소유제의 경우, 조건들의 불평등은 … 힘의 결과이다. 공유제의 경우, 불평등은 재능과 노동의 범용성을 소유제에서의 힘만큼 널리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공유제는 억압과 예종이다. … 인간은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봉사하길 원하며, 굴종적인 의무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기심에서 스스로를 희생하길 원한다. 공유제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능력의 자유로운 행사에, 우리의 가장 고결한 성향에, 우리의 가장 내밀한 감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공유제는 의식의 자율성과 평등을 침해한다. 정신과 심정의 자발성 및 행동과 사상에서의 자유 의지를 훼손함으로써 의식의 자율성이 침해당하는 것이며, 노동과 태만, 재능과 우둔, 심지어 악덕과 덕망을 대등하게 취급함으로써 평등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한편, 소유는 배제권과 불로수득권에 의해 평등을 침해하며, 전제에 의해 자유 의지를 침해한다. … 여기서는 최종적인 비교 대조를 통해 소유가 도둑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p.383-389. 도둑질은 수많은 방식으로 행해진다. 입법자들은 이 방식들을 그 흉악성이나 공헌도에 따라 아주 교묘하게 구분하고 분류했는데, 이는 … 어떤 것은 치하하고 어떤 것은 응징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훔친다.

(1) 거리에서 사람을 죽임으로써,
(2) 혼자서 또는 무리를 지어,
(3) 가택 침입에 의해, 
(4) 사취에 의해,
(5) 거짓 파산에 의해,
(6) 공문서 또는 사문서 변조에 의해,
(7) 화폐 위조에 의해,
(8) 협잡에 의해,
(9) 사기에 의해,
(10) 배임에 의해,
(11) 도박에 의해,
(12) 고리대에 의해,
(13) 지대, 소작료, 집세, 임대 등에 의해,
(14) 상인의 이익이 그의 직능에 따른 정당한 보수를 초과할 경우의 상거래에 의해,
(15) 자기의 생산물에 대해 이익을 남김으로써, 한직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지나친 보수를 받음으로써.

p.390. 요약해 보자. 정의는 고대의 시인들이 <황금시대>라 불렀던 소극적 공유제에서 벗어나자마자 힘의 권리가 되기 시작했다. 사회가 구성되면, 능력의 불평등이 공적(功績)의 관념을 일깨우게 되고, 형평에 의거해서 비단 평판뿐만 아니라 물질적 재산까지도 개인의 공적에 비례시키고자 하는 착상이 생겨난다. … 세상에서 인정받는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공적이 바로 물리적인 힘이기 때문에 … 최대의 몫을 차지할 권리를 가진 자는 가장 힘센 자이다.

p.390-391. 플라톤은 자신의 『고르기아스』에서 칼리클레스라는 인물을 소개 … 여기서 칼리클레스는 갖은 기지를 동원하여 힘의 권리를 지지 … 평등의 옹호자인 소크라테스는 진지하게 그를 논박하고 있다. … 폼페이우스(Pompeius,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장군)는 … <내가 무기를 손에 잡고 있을 때, 왜 법률 같은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인가!>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힘의 권리에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 달리 말하자면 노예제나 고리대금업이 나온다. 정복자가 피정복민에게 부과하는 공납 그리고 염세, 국왕특전, 부역, 소작료, 집세 등등 다양한 세금들, 한마디로 말해서 소유가 바로 이 힘의 권리에서 나온다.

힘의 권리에 뒤이어, 정의의 두 번째 표현 형태라 할 수 있는 책략의 권리가 나타났다. … 이것도 여전히 힘에 바탕을 둔 권리였지만, … 교활한 언술로 적을 속이는 기술은 마찬가지로 보상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p.392. 공업, 상업 및 은행의 이익은 책략의 권리에서 나온다. 거래에서의 사기 행각, <재능> 또는 <천재성>이라는 미명으로 장식되어 있으나 고도의 속임수나 기만 … 모든 종류의 사회적 불평등들, 이 모든 것은 바로 이 책략의 권리에서 나온다.

p.392-393. 법률이 금지하고 있는 도둑질에서는 힘과 책략이 … 노골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허용된 도둑질에서는 힘과 책략이 어떤 유용한 생산물의 형태로 몸을 숨기고는 희생자들을 강탈하기 위한 병참도구로서 그 생산물을 이용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음유시인들이 그토록 찬미해마지 않던 힘의 권리와 책략의 권리는 그리스와 로마의 모든 입법들에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오늘날 우리의 습속과 법령들에까지 전해져 있다.

p.395. 소유의 두 번째 결과는 전제(專制)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 속에서 전제는 합법적인 권위라는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전제의 자연적 원인들을 들추어냄으로써 합법적인 권위의 원리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통치 형태를 택할 것인가? (나는 공화주의자도 민주주의자도 왕정주의자도 입헌주의자도 귀족주의자도 아니고 혼합 정체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아나키스트(이다).

p.397-398. 사회성을 지닌 동물은 <본능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른다. 그러나 퀴비에(Frédéric Cuvier, 1773-1838, 박물학자)가 빠뜨리고 넘어간 말, 즉 이 우두머리의 역할은 <지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두자. …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 역시 천성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른다.

(우두머리의) 자질은 … 성찰과 지능의 자질이다. 인류는 다른 사회적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본능, 타고난 능력, 일반적 관념, 감정과 이성의 범주 따위를 지니고 있다. 우두머리, 입법자, 왕들은 결코 무엇 하나 발명하지도 구상하지도 예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얻은 경험에 따라, 그러나 의견과 믿음에 순응하면서 사회를 이끌 뿐이다.

p.399-400. 군주제, 과두제, 민주제 등 어떤 외피를 걸치고 있더라도 왕권,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는 불법이며 불합리하다. …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가장 신속하고 가장 완벽하게 만족시키기 위해 <규준>을 찾는다. … 인간이 무지하면 할수록 지도자에 대한 그의 복종과 신뢰는 절대적이 된다. 그러나 규준에 따르는 것, 즉 성찰과 추론에 의해 그 규준을 발견하는 것을 자신의 법칙으로 삼는 인간은 자기 우두머리의 명령에 대해 이성적으로 추론한다.

그런데 이러한 추론은 권위에 대한 저항이며 불복종의 시작이다. 인간이 주권자의 의지의 근거를 따지기 시작할 때, 바로 이때부터 인간은 저항하기 시작한다. … 사회가 계몽됨에 따라 국왕의 권위는 줄어든다. 이것은 역사가 어김없이 입증하는 사실이다.

p.401. 이때까지는 모든 일이 본능적인 방식에 따라, 말하자면 당사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의 피할 길 없는 결말을 보자. … 몸소 배우고 관념들을 습득하는 능력에 의해 인간은 마침내 <과학>의 관념…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 어찌 인간이 마찬가지로 사회의 체계를 탐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402-403. 의지의 주권은 이성의 주권 앞에 몸을 굽히고 마침내 과학적 사회주의 안에서 소멸될 것이다. 소유와 왕정은 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무너져왔다. 인간이 평등 안에서 정의를 찾듯이, 사회는 아나키(anarchie) 안에서 질서를 찾는다. <아나키>, 즉 주인이나 주권자의 부재, 우리가 하루하루 접근해가는 통치 형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규준으로 삼고 인간의 의지를 법칙으로 삼는 뿌리 깊은 습관에 의해 아나키를 마치 무질서의 절정이자 혼동의 표현인 양 여기고 있다.

p.404. 입법과 정치의 자료가 되는 모든 것은 과학의 대상이지 의견의 대상이 아니다. 입법권은 이성에만, 방법론적으로 인정되고 입증된 이성에만 속한다. … 정의의 합법성, 이 두가지는 수학적 진리만큼이나 우리의 동의 여부와는 무관한 사항이다.

그런데 인민이 주권자가 아니라면, 입법권이 인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인민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민은 법의 수호자이다. 인민은 <집행권>이다. … 법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학 또는 형이상학의 작업을 검증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경험을 반복하고, 현상을 관찰하며,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오직 국민만이 <명령하고 결정하노라>고 말할 수 있다.

p.405. 게다가 나는, 입법자의 붓 대신에 입법의 칼이 다시 시민들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시민의 자유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를 알지 못한다. 집행권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수임자에게 위탁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민의 진정한 주권이 바로 이런 것이다.

p.406. 소유는 필연적으로 전제, 자의적인 통치, 음탕한 의지의 지배를 낳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소유의 본질이기 때문에, 소유를 극복하려면 소유란 무엇인가를 상기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 …

소유란 <사용>하고 <남용>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만일 통치가 하나의 경제적 행위라면, 만일 통치가 생산과 소비를, 노동과 생산물의 배분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이라면, 어떻게 통치와 더불어 소유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제 3 절 제3의 사회적 형태의 결정 – 결론

p.407. 따라서 소유를 토대로 하는 어떤 통치도, 어떤 공적 경제도, 어떤 행정도 가능하지 않다.

공유제와 소유는 선을 원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각각 낳는 것은 악. 왜 그런가? 그것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배타적 … 제각기 사회의 두 요소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 즉 공유제는 독립성과 비례균형을 무시하는 반면, 소유는 평등과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평등, 법, 독립성, 비례균형이라는 이 네 가지 원리에 토대를 둔 사회를 … 그려본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p.408. 

1. 평등은 어떤 경우라도 정의와 형평을 침해하지 않는다.
2. 법은 사실들에 대한 과학에서 유래하는 것 … 필연성 그 자체에 의존하기 때문에 결코 독립성과 충돌하지 않는다.
3. 개개인의 상호간의 <독립성>(재능과 능력 차이에서 유래하는 사적 이성의 자주성)은 법의 한계 안에서 존속.
4. <비례균형>은 물질의 영역이 아니라 지능, 감정의 영역에서만 인정. 정의와 사회적 평등을 침해하지 않고도 준수될 수 있다.

p.408-409. 공유제와 소유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이 제3의 사회 형태를 우리는 <자유>라고 부를 것이다.

자유는 평등이다.
자유는 아나키이다. 
자유는 무한한 다양성이다.
자유는 비례균형이다.

p.409. <우리의 원리는 진실이다. 우리의 원리는 훌륭하고 사회적이다. 그러므로 거기서 모든 결론을 얻기를 두려워 말자.> … 인간에게 있는 <사회성>은 성찰을 통해 <정의>가 되고, 능력들의 맞물림을 통해 <형평>이 되며, <자유>를 그 정식으로 삼는다.

p.411. 자유는 상속의 권리나 유언의 권리와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자유는 평등이 이 권리들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 자유는 경쟁을 장려하며 그것을 파괴하지 않는다. 사회적 평등 속에서 경쟁은 대등한 조건들 아래서 이루어져야 할 따름이다. 포상은 경쟁 그 자체에 주어질 뿐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다.

p.412. 자유는 본질적으로 조직화의 원리이다.인간들 사이의 평등이나 국민들 사이의 균형을 확립하기 위해 … 잘 배분되어야만 한다. 어떤 지역도 인구 및 소비와 생산의 과잉 또는 결핍에 의해 고통받지 않도록 말이다. … 여기에서 공법학과 사법학 그리고 참된 경제학이 시작된다. 새로운 법률들을 기술하고 세상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이제 그릇된 소유의 원리에서 벗어난 법률학자들의 몫이다.

p.413. 이것으로 나는 내 스스로 제안했던 일을 끝마쳤다. 소유는 타도되었다. 소유는 다시 회복하지 못하리라. 이 논설이 읽히고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소유에 대한 죽음의 씨앗이 뿌려지리라. … 실로,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명제들 앞에서 어떤 궤변들, 어떤 고집불통의 편견들이 버틸 수 있으랴.

p.414-415.

첫째, 개별적 <점유>는 사회 생활의 조건이다. … 소유는 사회의 자살이다. … 점유를 보존하고 소유를 제거하자.
둘째, 선점권은 만인에게 평등하기 때문에, 점유는 점유자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소유는 성립할 수 없다.
셋째, 노동의 결실 역시 만인에게 동일하기 때문에, 소유는 … 상실된다.
넷째, 노동은 소유를 파괴한다.
다섯째, (노동)능력의 불평등을 구실로 삼은 보수와 기회의 불평등은 불의이며 도둑질이다.
여섯째, 노동자들은 권리와 의무에서 평등하듯이 임금에서도 필연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일곱째, 생산물은 생산물에 의해서만 구매된다. 모든 교환의 조건은 생산물의 등가성이기 때문에 이익은 불가능하고 부당하다.
여덟째, 조건들의 평등은 정의, 즉 사회의 법이자 공식적인 법. 존중, 우정, 인정, 찬미 따위는 <형평> 또는 <비례>의 법.
아홉째, 자유로운 결사(생산수단의 평등과 등가 교환에 한정하는 자유)야말로 … 정의롭고 참된 유일한 사회 형태.
열째, 정치학은 자유의 과학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는 … 압제. 사회의 가장 완벽한 모습은 질서와 아나키의 결합에서 발견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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