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그레천 바크의 『그리드』(김선교 외 옮김. 2021. 동아시아) 3장과 옮긴이 해제의 내용 중 인설의 법칙과 한국의 그리드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책에 다양한 사례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으니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해주세요.
발췌, 요약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1. 인설의 법칙과 그 종말
19세기 후반의 풍경
19세기 후반부터 1911년 동안 미국 정부가 개입해 해체하기 전까지 미국 산업계는 소수 대기업들이 독점했다. 특히 스탠드더 오일 창설(1882) 이후 수년 동안 4,000개가 넘던 미국 기업이 257개 기업으로 합병되었다. 1904년 미국 기업 가운데 1%가 미국에서 제조된 상품 45%를 점유했으며, 이 1%에는 US스틸(U.S. Steel), 아메리칸토바코(American Tobacco), 듀폰(DuPont), 아나콘다코퍼(Anaconda Copper), AT&T 등이 들어간다.
1882년 설립된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 Trust)가 소유한 유정만 2만 개(대부분 펜실베이니아주에 소재), 파이프라인이 6,400킬로미터, 유조차가 5,000량, 직원이 10만 명 이상이었다. 1800년대 후반이 되면 스탠더드오일은 경쟁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을 대기업 하나로 대체해 수직 계열화하여 독점 기업이 되며, 거의 모든 석유 제품(등유, 중유, 바셀린 등)의 유일한 공급자가 된다.
그러나 전력산업은 상당 기간 동안 표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산업이 독점화될 때에도 여러 회사들이 존재했다. 1902년에는 815개의 크고 작은 시영 전력 회사들이 있었고 매년 약 100개씩 증가하여 1907년에는 1,000개 이상의 기업이 미국 내 전기 공급의 약 30%를 책임지고 있었다.
교류가 널리 채택되기 전에는 전기 생산과 송배전의 특성을 결정하는 물리학이 전기회사의 서비스 범위 뿐만 아니라 독점이라는 탐욕도 제한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형 전력 회사 8개가 미국의 전체 전력 시장의 4분의 3을 차지하게 된다. 1925년 이후에는 전기를 생산, 송전, 배전하는 전기사업에서 독점기업 이외의 다른 형태를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새뮤얼 인설, 세계 최초의 전력 회사 재벌을 만들다
1890년대와 1900년대 초, 전기는 자본 비용은 막대하지만 고객당 수익은 미약한 상품이었다. 이 때문에 전기란 본질적으로 엘리트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새뮤얼 인설(Samuel Insull. 1859-1938)은 영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 에디슨의 비서로 20년 근무하였으며 전기 독점화 과정을 이끌었던 사업가이다.
에디슨으로부터 독립한 인설은 1892년 당시(32세) 제너럴일렉트릭의 제2부사장 자리 제안을 거절하고, 시카고에디슨(에디슨 프랜차이즈)의 대표 자리로 갔다. 당시 연봉은 1만 2,000달러로 제너럴일렉트릭이 제안한 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전기는 가스나 곡물과 달리 생산, 판매, 전송, 사용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기를 독점하려면 곡물이나 철강과는 전혀 다른 작업, 즉 고객의 소비량과 생산량을 24시간 내내 동등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어야 했다. 인설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이 문제를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많은 고객이 아니라 다양한 고객을 유치함으로써, 즉 대규모의 중앙 집중형 발전소를 온종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시카고의 제조 공장들은 낮에 전기를 사용한다. 아파트와 고급 주택은 저녁에 전기를 쓰고,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가로등은 밤에 전기를 사용하며 전차는 새벽과 해 질 녂에 집중적으로 전기를 사용한다. 용도별로 집중적인 이용시간이 다른 상황을 인설은 이용한 것이다.
1892년에는 시카고 인구 100만 명 가운데 5,000명 이하가 집에서 전기를 사용하였다. 14년 후 1906년이 되면 인설의 시카고에디슨의 유료 고객은 5만 명으로 늘어난다. 1913년에는 당시 시카고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시카고에디슨에서 전기를 공급받았다.
인설은 야간의 전기 사용량을 높이기 위해 야간 전기 사용에 보상을 주는 요금 제도를 도입하였고, 전기를 많이 먹는 전자 기기들을 열광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애썼다. 또한 전기 요금을 대폭 인하했다. 시카고에디슨을 운영한 처음 5년 동안에는 킬로와트시당 20센트에서 10센트로(1897년) 떨어뜨렸다. 1909년 킬로와트시당 2.5센트에 도달할 때까지 1~2년마다 추가적으로 1센트씩 가격을 낮췄다. 1911년에는 ‘오프 피크'(주간, 심야) 전력을 킬로와트시당 0.5센트로 판매하여 공장이나 산업체들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 기간 동안 고객 수는 급격히 늘어 수십만 명에 달했다.
전기 요금이 낮을수록 사업자는 돈을 더 많이 벌었고, 전기 판매량과 무관하게 비용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싸게 많이 팔수록 수익이 증가했다. 발전소를 최대 용량으로 전체 시간 중 단 5.5% 정도 운영해도 95%를 운영하는 것과 비용은 거의 동일했다. 발전 용량의 일부만 생산해도 발전소와 인력 관리, 시스템 유지 보수, 송배전 선로 수선, 전력 판매, 석탄 수급 등은 거의 비슷하게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설이 전기를 생산, 판매할 때 고안한 많은 논리들이 오늘날 전력망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주거 및 상업 고객보다 기업들에게 더 싸게 판매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인설은 개인 소유 장비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기업들을 끌어오기 위해 독립 그리드를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싸게 요금을 낮춰 자신의 그리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20세기 초반~1960년대 후반까지 유틸리티가 인설로부터 차용해 구현했던 전략 : ‘성장과 건설’
인설의 첫 번째 전략인 ‘성장’이란 낮은 가격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규모의 경제를 강조하고, “신기술을 이용한 진보”를 자신들이 이뤄내고 있다는 수사적 표현을 동원하고 , 전기 이용자와 사용량 모두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인설의 두 번째 전략인 ‘건설’이란 더 크고 더 효율적인 발전소를 대량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인설은 시장의 경쟁으로부터 유틸리티(전력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고, 건설 자금을 장기 저금리 대출로 조달하기 위해 정부 규제를 활용하였다.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큰 정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많은 애를 썼다. 인설은 결국 시카고 일대를 모두 지배하는 전기 제국을 건설하였고, 다른 기업들, 독접기업들도 인설의 전략을 채택했다. 1920년대가 끝날 때 쯤이 되면 이들은 10개의 지주회사를 통해 미국 전기 산업의 75%를 지배하게 된다.
인설과 그를 모방한 다른 유틸리티들은 정부와 결탁하고 게걸스러운 합병 과정을 병행하면서 독점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스탠더드오일이나 US스틸처럼 미국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트러스트가 군림하는 사업과는 달리, 유틸리티는 미국에 여러 개가 있었고, 서로 사업 구역이 겹치지 않게 정부가 주관하는 소위원회 회의를 거쳐 영역을 획정했다. 다른 회사의 영역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공급자는 가격을 고정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서로 지켰다.
1970년대, 인설의 ‘법칙’이 무너지다
인설이 수립한 전력 생산의 ‘경제 법칙’이 있다. 전기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전기 생산 비용 또한 항상 떨어진다, 반면 발전기 효율은 계속 향상되며, 전기 소비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인설의 시대로부터 70여 년 동안 유틸리티들은 낮은 가격으로 무한정 이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하고자 경이로운 수준의 발전 용량을 확보하며 성장했다. 1969년까지는 미국인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전기의 양이 끝이 없어 보였으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크기와 효율성의 연동 관계는 무너졌다.
전기 엔지니어들은 성장(고객 기반)과 건설(더 많이, 보다 큰 발전기) 사이의 연동을 진리처럼 생각했지만, 1970년대 초반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면서 에너지 위기 시작되었다.
인설의 법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원인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기술 향상이 발전기 효율의 향상을 더 이상 약속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리학의 문제이며 열역학 제 2법칙과 카르노 정리에 의한 것이다. 인류가 이미 건설한 발전소든 앞으로 발명할 기계가 무엇이든 그 기계의 열효율 값은 50%를 넘을 수 없다.
(2) 발전기의 열역학적 효율을 높이는 데 방해가 되는 또 한가지 요인이 있다. 바로 보일러와 터빈을 만드는 재료인 금속의 취성이다. 1960년대에 40%의 열효율로 작동하는 증기 발전기가 개발되었으나 유지 보수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30%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의 효율로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이 신뢰도와 유지 비용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3) 1970년대 오일쇼크
1950년대~1960년대에 미국 정부는 발전용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할 것을 권장했다. 그런데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석유 금수 조치로 연료가 부족해지면서 석유 가격은 전년도 대비 70% 이상 상승하면서 전력을 생산할 연료의 비용이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다시 석탄으로 돌아갔으나 석탄 가격도 상승했다. 1900년 이후 최초로 전기 가격이 올랐다.(4) 환경 문제와 환경 운동
자연을 새롭게 돌봄의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관점이 실제 규제로 이루어지면 전력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에너지 위기와 더불어 환경 규제도 강화되면서 전기 소비가 감소하였고 발전소 건설 비용과 기간도 크게 증가하였다.
2. 한국의 그리드
(1) 오일쇼크 이후 한국의 40년, 그리고 ‘인설의 법칙’의 때늦은 위기
1970년대 오일쇼크 전후 시기 열기관의 효율 증강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인설의 법칙이 깨졌고 에너지를 통한 발전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충격이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난 40년간 어떻게 회복력 있는 에너지 시스템과 그리드를 건설했는가?
오일쇼크 이후 회복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은 저량 자원*을 비축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국내 첫 상업용 원전 고리1호기를 건설하여 1978년 가동에 들어갔다. 이 때가 1, 2차 오일쇼크 사이의 시기이다. 1980년대에는 LNG, 1990년대 이후에는 유연탄을 수입(저량 자원)하였다. 원자력발전, LNG, 유연탄 이 세 가지가 오늘날의 3대 전원이다.
*저량 자원(stock resources) : 사용하면서 점점 소모되어 언젠가는 고갈되는 연료. 플루토늄,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
그러나 미국과 덴마크의 히피들은 오일쇼크 이후 재생에너지, 즉 ‘유량 자원’을 활용해 회복력 있는 에너지 시스템을 건설하려고 했다. 오늘날의 재생에너지 붐은 40년 이상 누적된 흐름의 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여기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인설의 법칙으로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수십 년 늦었지만 한국전력공사는 이 법칙을 재생한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전력 소비량이 지수적인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1973년~1993년까지 20년 만에 한국의 전력 소비량은 12테라와트시에서 128테라와트시로 10배 증가하였다. 성장률은 꺽였지만 2013년 전력 소비량(475테라와트시)은 1993년 대비 4배 증가하였다.
한국의 고속 성장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요구했으며 싼 에너지로 원가를 절감하려 하였다. 2차 오일쇼크가 종료된 1981년 전력 판매 단가(전체 평균 킬로와트시당 70원)는 약 20년간 기본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평균 판매 단가가 킬로와트시당 100원을 넘긴 것은 2013년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오일쇼크 이후에도 40년 넘게 인설의 법칙이 유지되어온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21년 현재 한국의 그리드는 저량 자원에 의존해 구축되어 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저량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한국의 크기, 기민함, 지리적 위치로 설명될 수 있다.
한국은 중국, 인도와는 달리 국내에 저량 자원이 없기 때문에 수출 지향적인 발전 전략을 선택했고 그로부터 얻은 달러와 해상 교역망을 이용해 해로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하였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지불 능력이 높아졌고, 원전과 화전의 효율을 증강시키는 데 자원을 투입했다. 그 결과 전력 단가는 인플레이션에 비해 사실상 하락해왔다. 1981년 이후 30년 동안 그러했다.
그러나 2021년의 상황은 다르다. 기후 위기로 인해 저량 자원 활용을 줄이는 것이 인류 차원의 과제가 되었다. 현재 한국 덩치는 크다. 한국 경제의 덩치는 세계의 2%로 인구비중(0.7%)에 비해 3배 높은 것이다.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7위이다. 한국 앞에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 뿐이다. 에너지에서 유래하는 탄소 배출량은 7위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인설의 법칙은 종말을 맞게 되었다.
(2) 그리드의 구성, 그리고 불만
인설의 법칙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독점적 지위가 필요하다. 최종 소비자에게 가격을 물릴 수 없는 서비스이므로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기 구매, 판매를 모두 독점해서 전기 사용에 관한 한 유틸리티에 의존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틸리티들은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가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마트그리드’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드를 이탈할 수 있는 지불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 문제도 있다. 또한 에너지 전환은 유틸리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단 하나의 유틸리티 한전이 그리드를 지배하고 있다. 시장 경쟁은 발전소에서 나온 전력을 송전망 운영자인 한전이 구매해 오는 그 지점에서만 발생한다. 한국에서 정전도 적고 송배전 손실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통제되는 이유는 그리드가 통합적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송전망의 지리적 구조는 어떠한지 보자. 송전망은 그리드의 뼈대이다. 골간은 원거리 송전망이다. 호남과 영남의 원전, 영동과 충남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수도권 쪽으로 전기가 보내진다. 원전, 석탄화력 같은 기저 전원은 수도권에서 멀리 위치하고 있고, 비싼 후순위 에너지인 LNG 복합 화력은 인천 등 수도권 내부에 위치한다. 이 구조는 장거리 송전에 유리하다.
그런데 한전의 기존 송전망 구조에 균열 시작되었다. 2011년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갈등이다. 송전망 확대 작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전망 체계가 지닌 불평등 구조가 있기 때문이며 갈등 상황은 그 사실을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그리드에 대한 주요 불만은 누진세이다. 산업용 전기는 낮게 책정하면서 가정에 대해서만 누진세를 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한국에서는 별로 불만이 없는듯 하다. 한국인들은 전기를 여전히 국가의 일, 일종의 분배를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 기후, 믹스 구성, 국제 협력
기후위기, 기후재난은 그리드의 안정성과 관련이 있다. 폭염과 혹한은 에너지 수요를 급증시키지만 이는 곧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낮추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름 장마와 ‘게릴라성 호우’는 태양광 발전량을 감소시킨다. 또한 겨울의 낮은 일조량으로 난방에너지는 높아지지만 풍력 발전량은 늘이기 어렵다.
여름, 겨울에 회복력 있는 그리드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저량자원(화석연료)이 필요하다.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바이오매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토지를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농지를 잠식하고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어서 계속해서 확대하기는 실제로 어렵다.
한국에서는 공동 주택을 선호하기 때문에, 미국처럼 자신의 집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어렵다. 자율주행 차량과 연동될 차량-그리드 연동 시스템(V2G)도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우선 차고지가 부족하고, 교통량 증가하면 사회적 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저량자원을 기반으로 회복력을 구축해왔다. 재생에너지는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국제 정치가 중요하다. 슈퍼그리드, 저량 자원의 공급로로서 해양의 중요성도 크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 등 다양한 국제정치적 상황이 있기 때문에 대륙과 해양 어느 한 방향에만 전적으로 에너지를 의존해서는 안 된다.
(4) 원자력
원자핵공학자들은 이 모든 문제를 원자력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발전량의 간헐성도 없고(?), 입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현 그리드의 지리적 분포와 부합하는 입지를 택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인설의 법칙을 40년 간 유지시켜온 것도 원자력 때문이다. 그러나 극심한 반대 운동이 있고 밀양 송전망 투쟁도 있고 반원전(탈핵) 운동도 있어서 쉽지 않다.
소형로 개발도 여러 나라에서 수십 년째 진행 중이지만 아르헨티나의 소형로(CAREM25), 중국의 고온가스로(SHIDAO BAY-1) 아직도 건설중이다. 탄소 감축은 지금 당장 필요한데 소형로는 아직 현실 가능하지도 않은 기술이라는 문제가 있으며 대형 원자로보다 발전 단가가 더 비싸다. 2030년까지도 시장에서 중요한 기술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효율화와 수요관리
다음 세대의 회복력 있는 그리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술에만 의존할 수 없다. 각각의 기술은 단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고, 송전망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효율화와 수요관리를 하면 에너지 수요, 즉 총량과 첨두부하를 줄일 수 있으며 거의 모든 형태의 갈등과 대부분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리드를 평가하는 관점이 현재 변화하고 있다. 그리드를 둘러싼 여러 기술적, 사회적, 생태적 시스템 전체에 비춰 평가하는 관점이다. 재생에너지 증가와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완화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효율화와 수요관리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전이 유일한 유틸리티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보다 쉽게 이익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수요관리를 통해 첨두부하 조정하는 것이다. 첨두부하는 비싼 전원에서 나온 전기로 처리하기 때문에 이를 줄이면 전력 구매 비용도 절감하고 송전선을 무리하게 활용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드 관리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실제 수익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시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효율화는 실제로 한전에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는다. 전력 판매량이 첨두 시간과 비첨두 시간에 관계없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력판매량이 줄어들면 한전이 직접 보상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며, 이에 대해 정부도 미온적이다.
정유사 등 다른 에너지 기업들이 효율화 시장에 참여해야 한다. 옮긴이들은 이 시장이 활성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효율화는 유입되는 현금을 감소시키는 활동이기 때문에 첨두부하 조정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수요관리는 기존 그리드 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할 수 있지만, 효율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현금 흐름이 더해져야하는 영역이다. 즉 에너지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넘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 효율화 기술을 경제적으로 보상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은 어렵겠지만, 한국은 국가의 역할에 관대하므로 가능할 수 있다. 에너지 관련 세제를 개편해 초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6) 다시, 그리드
한국 그리드와 미국 그리드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 한국의 그리드는 2010년대 초반까지 인설의 법칙이 작동했던, 상대적으로 젊은 그리드이다. 2021년 시점에서 볼 때는 안정적이다.
- 이유 1 : 한국이 해양과 대륙의 경계에서 기민하게 움직여 스스로의 정치에 맞는, 대량의 저량 자원을 성공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 이유 2 : 대소비지(수도권)에서 먼 곳에 기저 전원을, 대소비지 부근에 첨두 전원을 두어, 첨두시 계통 운영에 필요한 송전 부담을 최소화하였기 때문이다.
- 이유 3 : 단 하나의 유틸리티(한전)가 국가기관에 준하는 조직으로 취급받으며 여러 갈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국민적 신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그리드 구조의 어려움과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 한국 경제는 이제 덩치가 상당히 크다. 한국의 이익만을 노리며 기민하게 움직일 수 없다.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너지, 탄소 저감, 재정, 군사 등 모든 면에서) 선도할 책임을 져야 한다.
-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크고, 그리드의 구조는 기저 전원과 변동성 전원의 위치가 고정적이다. 재생에너지가 늘어갈수록 이러한 그리드의 구조가 취약해지고 있다.
- 석탄과 LNG는 전원의 60%, 저량 자원이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신속하게 버려야 한다. 원전을 활용하기도 점점 어렵다.
- 에너지 효율화는 국민경제와 생태계에는 도움이 되지만, 한전 등 에너지 사업자들에게는 제 살 깍아 먹기로 인식될 것이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되고 있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전기를 사용하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할까? 문제는 그리드를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대문 그림]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의 수입 원유가 변동폭. (출처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