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 – (1) 그리드란 무엇인가 & 그리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글은 그레천 바크의 『그리드』(김선교 외 옮김. 2021. 동아시아) 서문과 2장의 내용 중 초기 그리드 역사를 중심으로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책에 다양한 사례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으니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해주세요.

『그리드』 발췌, 요약 글 전체 읽기 링크 바로 가기

발췌, 요약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1. 미국 그리드 역사의 특성

개요

그리드(grid)는 복잡하고 거대한 전기 공급 시스템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공학적 성취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계는 송전탑, 전선, 발전소, 원유 정제소, 변전소, 전봇대 등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구성되어 우리 주변에 놓여있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들의 존재조차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드는 미국과 함께 성장했고 미국의 가치관에 따라 변화해오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미국의 그리드는 서부 그리드, 동부 그리드, 텍사스 그리드 3개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그리드는 “고속도로라기 보다는 낡고 오래되고 울퉁불퉁하고 좁은 비포장도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송전선과 변압기의 70%는 사용한 지 25년이 넘었고 미국 발전소의 평균 연식은 34년이다.

[그림 1] 미국의 ‘그리드’. 서부 그리드, 텍사스 그리드, 동부 그리드. (출처 : EPA)

미국에서 일어난 중대한 정전 사태는 2001년에 15건, 2007년에 78건, 2011년에 307건이었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연간 평균 정전 시간은 약 6시간을 기록한 적도 있으며 이는 선진국 중 가장 길다. 미국의 평균 정전 시간은 120분 이상이다.

*다른 국가들의 정전 시간 : 일본 11분, 독일 15분, 한국 16분, 이탈리아 51분. 

정전은 주로 야생동물들이나 나무로 설비가 훼손되거나, 설비가 노후화되거나, 자연재해를 입는 경우에 발생한다. 가끔 그리드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게릴라가 습격하여 정전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전은 블랙아웃과 브라운아웃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블랙아웃(blackout)은 광범위한 서비스 지역에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기는 것을 의미하며, 브라운아웃(brownout)은 일부 지역에 전압이 낮아지면서 일부 지역에는 전력이 공급되지만 일부 지역에는 공급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가장 큰 블랙아웃 사건은 2003년 미국 북동부의 대정전이다. 원인은 컴퓨터 버그와 웃자란 나뭇가지였다. 이 대정전으로 8개주에 걸쳐 5천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그해 GDP에도 타격을 주어 총 6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피해 지역의 면적은 약 24만 제곱킬로미터였고, 이 지역에 위치한 사업체들은 각각 시간당 6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1965년에도 북동부 지역에 대정전이 일어났다. 이때의 원인은 계전기(전기로 작동시키는 스위치) 설정 오류였다. 문제는 정전이 발생한 후 발전기들을 바로 가동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부의 송전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의 발전원으로 발전소를 작동가능한 상태로 복원하는 과정을 블랙스타트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로 디젤발전기가 사용된다.

현재 전력 산업 앞에 놓인 실제 어려움과 과제

현재 그리드의 과제는 지속가능한 전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그리드를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그리드, 즉 20세기의 그리드는 저량 자원*을 이용해 강력한 중앙 집중식으로 운영하는 구조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1970년대부터 미국의 에너지 믹스(mix)에 서서히 포함되어오고 있는데,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그리드는 취약해진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높아 안정적으로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저량 자원(stock resources) : 사용하면서 점점 소모되어 언젠가는 고갈되는 연료. 플루토늄,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

생산방식 외에도 재생에너지 전원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장소이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큰 곳은 대체로 수요가 적은 곳이다. 그리드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시스템이기 때문에 쉽사리 미래의 전기 시스템으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력 회사, 투자회사, 발전소 소유주, 광업회사, 그리고 ‘망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다국적 기업과 같은 이해당사자들로 이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예측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8년에 비해 2015년에 풍력은 3배, 태양광은 20배 성장했다. 하와이주는 2015년에 12% 이상의 가정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는데, 맑은 날 필요한 전력 수요보다 더 많이 생산되는 바람에 하와이 전력 회사가 가정용 태양광 소유자들의 그리드 연계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생산된 전기를 모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전력이 그리드에 흐르면 그리드는 망의 일부로 가는 전력을 차단해 스스로 보호한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드가 매우 거대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지역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미국에서 가변성 전원에서 나오는 전력은 지역별 차이는 크지만 미국 전체 생산량 가운데 7% 정도인데, 미국 에너지부는 2025년까지 미국 전력 수요 중 25%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2009년에서 2014년 사이에 그리드를 통과하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실제로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이러한 계획을 달성하려면 그리드에 대해서 완전히 다시 상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는데,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확장하려면 그 계획에 그리드에 대한 고민이 충실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전기는 바나나가 아니다

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발전소에서는 원자에서 전자를 분리시키고, 분리된 자유전자를 근접한 원자에 부딪히게 해서 또 다른 전자를 분리하는 연쇄 과정을 일으킨다. 특정한 금속의 원자는 전자를 분리해 내는 이런 과정을 촉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금속을 활용해서 전도체(전력선)를 만든다.

이 전선들은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원자 규모의 도미노 효과를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체이지만, 원자 규모의 흐름(drift)은 빨라도 초당 0.13센티미터 정도의 속도이다. 차가운 꿀이 밀려가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전기를 바나나와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지만 전기는 상자에 넣어둘 수도 저장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다. 언제나 만들어지는 순간 사용 되고 만들어지는 순간 즉시 배송 되며, 이 모든 과정은 1,000분의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바나나와는 달리 우리는 전기가 무엇인지, 킬로와트시kWh가 무멋인지, 전기를 생산하는 데 얼마나 드는지, 자신이 얼마나 사용하는지, 사용량에 대해 얼마를 지불해야 적절한지 등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기는 일상생활의 범위를 넘어서는 많은 것들을 이해해야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다. 전기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결국 그리드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초기 그리드 역사와 최근의 변화

미국의 초기 그리드는 마구잡이로 성장했다. 이익이 보장될 만큼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그리드가 만들어지다가, 대공황을 거치면서 정부의 개입으로 시골 지역에도 그리드가 설치 되기 시작했다. 종합적인 계획 없이 일부 주와 연방 정부가 간헐적으로 개입하면서 그리드의 복잡성은 빠르게 증가했으며, 기술 발전으로 인한 업그레이드는 점진적으로만 이루어졌다.

1930년대~1960년대 말까지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이 전기화(electrification)되었다. 전력 회사들은 수요를 증가시켜 수입을 올리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망이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전기화 : 냉난방, 기계 등 최종 에너지 소비를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대체하는 것.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이후, 에머리 로빈스(Amory Lovins)와 헌터 로빈스(Hunter Lovins)는 미국내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펜타곤에 제출했다. 그들의 결론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석유 수입 중단보다도 미국의 전력 그리드 자체의 ‘취약함’이 국가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 2] 『Brittle Power』(1982). 에머리 로빈스 & 헌터 로빈스는 1979년에 펜타곤에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출처 : wikipedia)

실제로 2000년대 초에 미국의 그리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극심한 블랙아웃이 발생했고 주지사는 비상사태 선포했다. 주요 유틸리티 중 하나는 파산 신청했는데 이는 대공황 이후 최초였다. 그 다음에는 버몬트의 원전이 무너졌다. 구조물 일부가 실제로 쓰러졌다. 이유는 이상 감지를 위해 설치된 카메라가 문제 발생 지점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고, 무너진 냉각탑을 지지하고 있던 기둥이 유지 보수 점검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텍사스 그리드도 국지적인 폭풍으로 기능 상실한 바 있다.

또한 2013년 미국 행정부는 기후변화로 인해 악천후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리드의 탄력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기후변화와 그리드의 관계에는 부조리한 순환 고리가 있다. 이상기후는 그리드를 개혁해야 하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들고 있고 그것때문에 지구가 가열되고 있고, 이러한 지구고온화로 폭풍 등 이상기후는 더 강해지고, 그로 인해 그리드를 이루고 있는 설비들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 가지 현상은 마이크로그리드로의 전환이다. 미군은 국내 기지에서 사용되는 전력망을 모두 마이크로그리드로 전환하고 있다. 미군은 매우 작은 전압 변동도 용납하지 않으며,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공공 인프라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물리적 공격 위협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 본사와 데이터 센터, 코네티컷주 정부와 뉴욕주 정부도 마찬가지로 마이크로그리드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뉴욕에서는 83개에 달하는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하고 있다. 실제로 시티뱅크, 비즈니스위크, 에디슨일렉트릭인스티튜트와 같은 기관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유틸리티(전력회사)가 멸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리드의 총체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기를 둘러싼 복잡함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희망, 부조리, 탁월함, 사람들, 배후에 있는 법과 논리들 등. 이 책에서는 수입 석유의 예상치 못한 변동, 석유 재벌들로부터의 독립 이상을 이야기 한다. 개인, 가정, 이웃, 마을은 이제 자신의 에너지 결정을 내리는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 독립을 지향해야 한다.

2. 미국의 초기 그리드 17년 (1879~1896)

전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능력은 여기서 만들어내는 동시에 저기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 덕분에 전기를 생산하는 장소와 소비하는 장소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정미소와 물레방아가, 전차와 말이, 빛과 불이 분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전기의 전송 능력이 크게 주목 받는 데에는 17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최초로 그리드가 건설된 것이 1879년이었고, 나이아가라폴스 발전소가 22마일(약 35킬로미터) 떨어진 버팔로시에 고전압 선로를 통해 전류를 전송하기 시작한 것이 1896년이었다.

그리드 형성의 역사는 아주 급격한 기술적 변화의 역사이다. 이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미국이 가지 않았던 길을 살펴보아야 하며, 초기 발명가들이 어떠한 장애물과 경쟁 환경 하에서 사업을 수행하였는지 파악해야 한다.

1860년대에 이를 때까지 사람들은 전기를 어디에 쓰면 좋을지 몰랐다. 1세대 전기 제품 개발자들 상당수는 그것이 조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조명은 촛불이나 가스램프였는데 불꽃에서 먼지와 검댕이 날려 불편했고 워낙 비싸서 오래 켤 수 없었다.

최초의 그리드

187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의 중앙 아크등 시스템이 4번가와 마켓 스트리트에 설치되었다. 이 시스템은 석탄 화력 증기 엔진으로 구동하는 발전기(Charles Brush dynamo) 2개를 이용해 매우 밝은 등 20개를 밝히는 작은 규모였다. 

그해에 최초의 광산 전기 그리드도 시에라네바다 금광에 설치되었다. 수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와 전기 조명으로 사용하였는데, 찰스 브러시가 고안한 수력 시스템을 활용하여 밝기가 개당 3,000촉광*에 달하는 아크등을 밝혔다. 이 등을 이용해 광부들은 밤을 새워 일했고 조업 시간도 2배로 늘어나 광업 회사의 이익은 증가하였다. 조명뿐만 아니라 전기 펌프와 승강기에도 전기를 공급하였고, 먼곳 까지 전기를 연결하기 위해 긴 전선도 부설하였다.

*3,000촉광 : 촛불 3,000개가 한 지점에서 내는 밝기를 의미. 촛불 100개가 60와트 전구 1개에 맞먹는 밝기이므로 1,800와트 전구와 비슷한 크기의 빛을 낸다는 뜻.

그리드에서 일어난 첫 번째 혁명 : 에디슨의 병렬 회로 구조

[그림 3] 직렬회로와 병렬회로. 병렬회로에서는 전구 하나가 망가지거나 회로가 차단되어도 회로 전체에는 전류가 흐르며, 각각의 장치들을 켜고 끌 수 있다. (출처 : Alamy)

병렬회로는 에디슨의 발명이었다. 회로 구조를 고안한 것은 에디슨의 가장 뛰어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엔지니어, 물리학자, 수선공, 발명가들은 모두 전류를 물리적으로 ‘분할’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에디슨은 아크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류를 쪼개려고 했고 병렬회로를 개발하였다. 아크등은 설치 가능한 개수가 너무 적고, 너무 밝고, 빛의 색이 소름끼치는 느낌을 주었고 윙윙거리는 소리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림 4] 1881년 뉴욕시에 설치된 찰스 브러시의 아크등. (출처 : Alamy)

에디슨식 “중앙 그리드”

에디슨은 1882년 로어맨해든 펄 스트리트에 자신의 첫 번째 그리드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에디슨이 증명해보이려고 했던 것은 병렬회로가 구현될 수 있고, 전기 조명의 휘도를 편안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으며, 전기 시스템을 지리적으로 확장해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에디슨의 그리드가 전기를 공급하는 면적은 1882년에는 0.43제곱킬로미터였다. 이것이 1884년에는 2.56제곱킬로미터에 총 8천 개 전구(15와트 전구 정도의 휘도)로 늘어났다. 전선은 뉴욕의 도로 아래에 매설되었고, 직류 방식이었고, 발전소 연료는 석탄이었다. 에디슨의 그리드는 직류였기 대문에 1.6킬로미터 이상 전력을 공급하려면 발전소를 계속 건설해야 했고, 따라서 발전소 주변으로 석탄 수송과 연소로 환경오염과 교통 마비가 심각했다.

[영상 1] 펄 스트리트에 설치한 에디슨의 첫 번째 그리드의 발전소.

“에디슨식” 그리드는 일종의 그리드 구성 키트였다. 전구, 회로, 발전기, 스위치, 전선 모든 구성요소를 에디슨식으로 했으며 AS도 에디슨이 고용한 사람들이 했다. 따라서 에디슨 병렬회로 시스템은 규모가 컸고, 그리드 네트워크의 중심에 발전소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 그리드라고 불렸다. 이 시스템의 주요 구매자들은 공장, 대규모 공공건물, 지방정부, 대부호들이었다.

미국 최초의 진정한 도시 그리드

에디슨은 1882년 맨해튼에 최초의 백열등용 그리드를 가동하고 얼마 후에 위스콘신주 애플턴에도 그리드를 만들었다. 이는 애플턴의 한 부유한 사업가(Henry James Rogers. 그의 집은 현재 박물관(Hearthstone Historic House Museum)이 되어 있다.)가 직류 전기로 구성된 에디슨 그리드에 투자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의 발전 연료는 석탄이 아니라 수차였고 하천 수량에 따라 전압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림 5] 위스콘신주 애플턴에 설치된 에디슨식 그리드의 중앙 발전소. (출처 : recollectionwisconsin.org)

1880년대 전기 생산방법과 기술적인 쟁점

1880년대 중반까지 미국 전역의 그리드가 안고 있었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전기 생산방법과 전압에 관한 기술적인 쟁점들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그리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보자.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로부터 전자를 강제로 떼어내어 원자가 양전하를 띠게 만든다(발전). 그리고 양전하를 띠게 된 원자와 떨어져 나간 전자가 다시 재결합할 수 있는 경로(전선)을 제공한다. 이것이 그리드의 역할이다.

전자는 전선을 따라 이동하는데, 그 길을 따라 설치된 모든 것(백열 전구 포함)을 통과한다. 전자들은 이 경로들을 지나면서 저항에 부딪힌다. 전구의 필라멘트는 도선보다 전도성이 낮아서 전위차(전자가 재결합하도록 작용하는 힘 또는 전압) 일부는 저항성 물질을 거치면서 소모된다. 백열전구의 경우 소모된 전위차는 열(전자기파)로 바뀌고 그중 대략 5%(에디슨 전구 기준)는 가시광선으로 방출된다.

그리드의 전압을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은 전력 산업이 그리드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전압이란 전자들의 움직임 또는 퍼텐셜에너지이며 단위는 볼트이다. 전자 제품들은 전압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전압이 일정해야 한다. 표준화된 전력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전송하는 능력이 바로 우리가 전기 그리드를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전압이 낮아지는 이유는 다양한데, 에디슨 시대에 가장 흔했던 원인은 충분히 발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선에 연계된 모든 것을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작동하게 할만큼 발전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블랙아웃까지는 아니지만 브라운아웃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미국 여러 도시 그리드의 또 다른 문제들

에디슨이 그리드를 만들어가던 당시에는 용도마다 전압이 달랐고 회사마다 기준이 달랐다. 전기는 공공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각 유형의 기계들의 정격전압이 다르게 제작되었는데 이는 작동하는 데 필요한 일의 크기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1880년대에 백열 전구에 필요한 전압은 100~110볼트, 전차는 500볼트, 공장용 모터는 1,200~2,000볼트였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직류와 교류 문제로, 회사마다 전기 시스템이 모두 달랐다는 것이다. 직류는 대략 1886년까지 모든 그리드에서 사용되었고 20세기 초까지도 대부분의 그리드에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직류로는 하나의 발전기와 전선망으로 전차와 전등을 동시에 운영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대도시에서 그리드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회사마다 자체적으로 사설 그리드를 구축했고, 각자 자체 발전소와 전용 전선을 설치했기 때문에 거리는 전선 뭉치로 빼곡해졌다.

[그림 6] 뉴욕 거리 하늘을 덮은 전선들. 1888년 3월 발생한 허리케인이 폭설(21인치, 약 53센티미터)을 몰고와 각종 사고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후 전선을 지중화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출처 : untapped new york)

초기 그리드의 확산이 늦어진 이유

초기 그리드가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에디슨의 직류 그리드가 아주 좁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로어맨해튼이나 애플턴 도심부같은 곳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공장, 사무 빌딩, 부호의 저택이라고 해도 2.5제곱킬로미터 미만이었다. 사업자들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발전설비를 결정하고 기저 발전소를 설치하고 필요한 만큼 조명을 달고 전기 설비를 해도 충분히 성공적인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보다 더 복잡한 그리드를 설계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역사가들은 대공황 이전까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팔아 돈을 번다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대량 판매 시장’, ‘소비자 문화’라는 개념은 전기로 이익을 얻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던 전력 회사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초기 전기화 시대에 전기는 사적 소비재였고 엘리트를 위한 생산물이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대형 공공 그리드를 통해 초고전압 교류 송전선로로 다수에게 전력을 전송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전기는 모두를 위한 생산물이 되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다시 사설 발전소 시스템이 일어나고 있다. 사설 발전소가 유행하게 되면 거대 발전소가 지배하던 그리드에 무수히 많은 소규모 발전소를 통합하는 어려운 과제가 발생한다.

1887년 교류 전기 시스템 >>> 대규모 그리드 >>> 전기 보편화

교류는 직류보다 훨씬 더 멀리 전송할 수 있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장점은 변압기를 통해 전압 손실 없이 승압과 감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압을 높일수록 더 멀리까지 전기를 전송할 수도 있다.

*변압기 : 촘촘하게 감겨 있으나 서로 닿아 있지 않은 2개의 구리 도선 뭉치로 이뤄진 간단한 장치.

직류의 경우 전자의 흐름은 한 방향이지만 교류의 경우는 전자가 기계를 통과하는 방향이 계속해서 바뀐다. 전력 흐름의 반복적인 정지와 출발 방향의 변화가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 미국 기준으로는 초당 60회(60헤르츠)이다.(한국도 60헤르츠이다.) 현재와 같은 국가, 도시 단위의 대규모 그리드와 전기 보편화는 회전변류기(roraty converter. 직류를 먼저 다상화시키고, 반대로도 작동하는 전기자)가 등장한 이후에야 가능했다.

[그림 7] 1909년 웨스팅하우스의 500kW 회전 변류기 (출처 : wikipedia)

1890년대 초반의 전기 인프라는 정돈되지 않은 복잡한 상태였다. 전류는 네 가지(직류, 단상 교류, 2상 교류, 다상 교류)였고, 조명 시스템은 두 가지(아크등, 백열등), 배선 방식도 두 가지(직렬, 병렬), 전압은 일곱 가지(100, 110, 220, 500, 600, 1,200, 2,000), 주파수는 아홉 가지(25, 30, 33과1/3, 40, 50, 60, 66과 2/3, 83과 1/3, 125헤르츠)였고 전기 회사는 최대 40개 였으며 사설 발전기와 표준화되지 않은 전선들을 사용하였다. 회전변류기가 이러한 다양한 설비를 변환시켜가며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또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그리드 표준과 국토 규모의 그리드를 만들어낸 것은 1896년 나이아가라 발전소였다. 이 때 다상 교류 방식, 60헤르츠 주파수가 결정되었고 대형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해, 고압 선로를 통해 장거리 송전을 하고, 다시 낮은 전압으로 낮춰 최종 소비처에 배전하는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