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빙기, 자연이 시작하고 인류가 완성했나?

14~19세기에 걸쳐 장기간 지속된 소빙기는 현재의 기후변화 정도에 비하면 작다고 할 수 있는 몇 분의 1도 수준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생존과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소빙기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으며, 특히 가장 심했던 시기였던 17세기 초반의 기온 저하에는 유럽인들이 저지른 비극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래 글은 최근 옵저버 지의 기사를 옮긴 것입니다.

기사 원문 보기 : “Climate crisis: what lessons can we learn from the last great cooling-off period?” 2022. 5. 9. Michael Marshall. The Observer. 

[그림 1] 마지막 템즈강 서리박람회. 1814년. (출처 : The Guardian. 사진 : Photograph: English Heritage/Heritage Images/Getty Images)

1814년 2월 초 코끼리 한 마리가 런던 템즈강의 블랙프라이어스교 근처 강 표면 위를 걸어서 건너갔습니다. 이 곡예는 템즈강 서리 박람회(frost fair)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겨울 기온이 워낙 낮아서 나흘 동안 강물 표층이 꽁꽁 얼었고 런던 사람들은 즉각 축제를 열었습니다. 팝업 숍도 열렸고 허가받지 않은 주류도 팔았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겠지만 이것이 마지막 서리 박람회였습니다. 템즈강 서리 박람회는 비정기적으로 몇십 년에 한 번씩 수 세기 동안 열려왔었습니다. 여러 축제들 중 1683-84년에 열린 것이 가장 크고 유명하며 이때 치퍼필드 서커스(Chipperfield’s Circus)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런던을 가로지르는 이 강은 1814년 후로는 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림 2] 템즈강 서리박람회. 1684년. 서리 박람회 중 가장 유명하며 규모도 컸다고 한다. (출처 : The Observer. 사진 : Science History Images/Alamy)

템즈강 서리 박람회는 “소빙기”(little ice age)의 결과들 중 가장 상징적입니다. 소빙기는 수 세기 동안 이어졌고 겨울 추위는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런던 사람들이 얼음 위에서 즐길 동안 다른 지역 사람들은 농사를 망쳤고 생존의 위협을 겪었습니다. 소빙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변화된 조건에 적응한 사회와 소멸한 사회의 이야기들입니다.

소빙기 이야기는 또한 오래된 미스테리이기도 합니다. 추워진 이유는 무엇이고 이런 현상이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 덕분에 마침내 우리는 원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화산, 바다, 태양의 활동이 기여했고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선주민) 집단 학살도 포함됩니다.

몇 도 낮아졌나?

과학에서 늘 그렇듯이 소빙기의 원인을 밝히는 일도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추웠던 겨울이 있었다는 문헌들이 유럽 전역에서 많이 나와서 그렇다”고 기후학자 파올라 모파-산체스(Paola Moffa-Sánchez, 더럼대학교)는 말합니다. 추운 겨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곡물 가격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작황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 그린란드가 해빙으로 둘러싸여서 접근할 수 없었다는 항해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소빙기”라는 용어는 네달란드 지질학자 프랑수아 마테스(François Matthes. 1874-1948)가 만들었습니다. 마테스는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의 빙하가 지난 수천 년 내 어느 시점에 새로 생성되었다고 그의 1939년 보고서에 썼습니다. 용어는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몇 십 년에 걸쳐 시간 범위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림 3] 프랑수아 마테스는 1939년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의 빙하를 연구하면서 최근 수천 년 내 새로 만들어진 얼음이 있음을 발견하고 ‘소빙기’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출처 : wikipedia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기후연구소(the Climatic Research Unit. UV. of East Anglia)를 만든 기후학자 허버트 램(Hubert Lamb)은 빙기 기간이 더 짧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1965년 연구에서 램은 수 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럽의 기온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기원후 1000-1200년 경 뚜렷하게 온난했던 기후에 뒤이어, 마지막 빙하기 이후 가장 추웠던 시기인 1500-1700년 사이에 기온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추운 시기는 “당시에(아마 언제나 그렇겠지만) 인류의 경제를 틀림없이 망쳐놓았을 것”(bold by Hubert Lamb)입니다.

그 후로 기후학자들이 소빙기의 지속기간과 범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려웠습니다. 저기온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들이 유럽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지역의 기록에서 저기온이 항상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곳에서 기온이 떨어진 것이 아니므로 전지구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알렉산더 코흐교수(Alexander Koch. 시몬 프레이저 대학,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 버너비)는 말합니다. 어떤 곳, 예를 들어 중국은 이 시기에 더 습했을 뿐 더 추운 기후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기온저하가 연속적이지도 않았다. 기온이 오르락 내리락 했고 … 장소, 시기, 정도가 다 달랐다”라고 다고마르 드그루트(Dagomar Degroot. 조지타운대학교. 워싱턴 DC)교수는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소빙기의 시작과 끝은 좀 모호합니다. “고전적인 정의는 1400~1850년 사이”라고 모파-산체스 교수는 말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올라가서 “어떤 사람은 1300~1850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1400~1800년 기간이 소빙기 내에 속한다는 데에는 광범위하게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모파-산체스 교수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벗어나면 역시 모호합니다. 어느 쪽이든 1814년 서리 박람회는 빙기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소빙기는 빙하기도 아닙니다. 빙하기(ice age)는 지구 양 극단에 영구적인 얼음이 있는 시기를 말하며 우리는 25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빙하기에 속해 살아왔습니다. 이 시기 동안 얼음층은 늘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합니다. 가장 최근에 얼음이 늘어난 때를 우리가 통상 빙하기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은 빙기(glacial period)가 맞는 표현이며 약 115,000~11,700년 전의 일입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홀로세(Holocene)이라고 불리는 비교적 온난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소빙기는 기온 변화 규모가 작습니다. “우리는 지금 1도 이하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대조적으로 마지막 빙기 중 가장 추웠던 시기에는 지난 4천 년보다 약 6도 더 낮았을 것입니다. 드그루트 교수의 말에 따르면 빙기의 이 정도 작은 변화도 중요합니다. “지역 혹은 국지적인 규모에서 일어나는 기상 이변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문헌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종의 이상 기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설명하기 힘든 기온 저하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처음 기온 저하를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화산입니다.

(이 시기 동안) “화산 폭발이 집단적으로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2015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과거 2,500년 동안 일어난 주요 25개 화산 폭발을 조사하기 위해 빙하 코어(ice core) 데이터를 이용했습니다. 1200~1400년 사이에 인도네시아의 사말라스(Samalas) 화산, 에콰도르의 킬로토아(Quilotoa) 화산 그리고 멕시코의 엘 치촌(El Chichón)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림 4] 대규모 화산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면 소빙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 화산재로 인해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빛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출처 : The Observer. 사진 : Arlan Naeg/AFP/Getty Images)

큰 화산 폭발은 황산염 에어로졸을 대기권 위쪽에 있는 성층권까지 쏘아올립니다. 이 에어로졸은 태양빛을 반사시켜 우주로 내보내고 결국 지구의 기온은 낮아집니다. 최근인 1991년에 일어난 필리핀 피나투보(Pinatubo) 화산 폭발은 지구 표면 기온을 0.5도까지 떨어뜨렸습니다

일반적으로 화산 폭발은 단지 몇 년 동안만 기온을 떨어뜨립니다. “그러나 대규모 화산 폭발이 연달아 일어난다면 이것이 기후 시스템에 양의 되먹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몇 년 동안 낮은 기온이 계속되면 이로 인해 해빙이 확장될 수 있습니다. 흰색 해빙은 검푸른 물에 비해 태양빛을 더 많이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때문에 기온 저하가 더 길어지고 심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모파-산체스교수에 따르면 바다에서 연쇄반응 효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변할 경우 거대한 해빙들이 그린란드에서 래브라도해(Labrador sea. 그린란드와 캐나다 래브라도 사이 바다)까지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해빙이 열대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거대한 대서양 해류를 교란시키게 됩니다.

화산 폭발로 인해 촉발된 약간의 기온 저하가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켜 기온을 더 떨어뜨리고 더 지속되게 한다는 이런 설명은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실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2018년에 나온 한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화산 폭발을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소빙기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약해지는 태양

또 다른 가능한 요인은 태양입니다. 태양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양은 조금씩 변합니다. 잘 알려진 변화는 11년 주기로 태양의 활동이 가장 강해졌다가 가장 약해졌다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아서 감지해내기 어렵지만, 가끔 영향이 더 클 때도 있습니다.

과거 1,000년 동안 우리 태양은 “대극소기“(grand minimum)로 몇 번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이 시기 동안 태양의 활동이 약해지기까지 몇 십년 걸립니다. 가장 최근의 대극소기는 1790~1820년 댈튼 극소기(the Dalton Minimum)입니다. 이 앞에는 1645~1715년 마운더 극소기(Maunder Minimum)가 있었고, 그 앞에는 1460~1550년 스푀러 극소기(Spörer Minimum)와 1280~1350년 울프 극소기(Wolf Minimum)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극소기들은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그 영향의 정도는 기껏해야 0.3도 정도이며 아마도 그 이하일 것입니다. 

[그림 5] 소빙기 전후 태양 흑점 활동 수, 북반구 기온 변화와 화산폭발로 발생한 에어로졸 광학 두께(AOD; Aerosol Optical Depth) 비교. 소빙기 동안 태양의 흑점 활동은 증감을 반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출처 : The Guardian. Illustration: Lockwood et al. (2017), News & Reviews in Astronomy & Geophysics)

태양의 대극소기로 인해 몇몇 지역에서는 가장 춥기도 했을 거라고 모파-산체스는 말합니다. 대극소기 기간에 대한 모파-산체스의 연구에 따르면, “추웠던 세기들이 이러한 가장 유명한 태양 극소기 시기와 일치”합니다. 모파-산체스가 밝혀내기를 대극소기는 바람 패턴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해류와 열 분포에 연쇄 효과도 일으킵니다.

그러나 대극소기만이 소빙기를 일으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기가 맞지 않고, 어느 경우든 대극소기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대규모 화산 폭발보다 훨씬 적습니다.

1300년대 후반 태양의 극대기(solar maximum) 또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2021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극대기로 인해 바람의 패턴이 바뀌었고 이것이 대서양 난류를 교란시켰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문제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논쟁이 아니며, “소빙기는 이들 모든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인 것 같다”고 모파-산체스교수는 말합니다.

기후 변화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요인은 수없이 많습니다. 한번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추운 상태가 지속되는 게 아닙니다. “항상 추웠던 곳에서 이런 류의 소빙기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4세기라는 긴 기간에 걸쳐 추웠던 몇 세기가 있었을 뿐”이라고 모파-산체스교수는 말합니다.

그러나 큰 퍼즐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소빙기 중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가 1610년 쯤 있었는데 이 시기는 대극소기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특별히 큰 화산 폭발도 없었습니다: 페루의 후아이나푸티나(Huaynaputina) 화산은 1600년에 꺼졌고, 폭발이 크기는 했지만 이 사건이 소빙기를 심화시킨 것은 아닙니다.(Sam White et al. 2022에 따르면 소빙기의 다른 화산 폭발에 비해 후아이나푸티나 화산 폭발은 황산염을 덜 배출했고, 당시 기온 저하와 얼음층 증가는 화산 폭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기온을 떨어뜨린 이 요인은 인류에 의해 촉발된 것이며 그 방식은 너무도 극악했습니다.

대학살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는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그후 수십 년 동안 유립인들은 남, 북, 중앙 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선주민들과 전쟁을 하고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더 치명적인 것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질병이었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천연두였고 그로 인해 수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는 대량 학살이자 비극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후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농부였고 이들은 숲을 없앤 자리에 농사를 짓는 방식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죽고 나자 나무가 다시 자라났고 이산화탄소가 대기로부터 제거되었으며 지구의 기온은 떨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기후학자 윌리엄 루디만(William Ruddiman)에 의해서 2003년 처음 나왔습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미치고 있는 영향보다는 적지만,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루디만의 “초기 인류세” 가설의 일부입니다.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엄청나게 죽음으로써 기온 저하가 일어났다는 이 아이디어는 모델링 연구 분야로부터 잠정적인 지지만 받아왔습니다. 몇 가지 주요한 수치들에 대해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그러나 2019년 코흐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최신 자료를 분석한 연구를 내놓았습니다. 이들은 논쟁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따졌고, 사망자 수에서부터 새로 숲이 조성되는 규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수량화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오면서 1600년까지 5,600만명이 죽었다고 이들은 결론내렸습니다. 이 엄청난 죽음은 5,600만 헥타르의 땅에 나무가 다시 자라나고 동시에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274억 킬로그램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드그루트 교수는 이것이 정말 흥미로운 이론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좀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시 다른 지역, 특히 아프리카에서 토지 이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림 6] 소빙기 전후 세계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A) 남극 빙하 코어에 기록된 CO2 농도. Law Dome (grey, MacFarling Meure et al., 2006), West Antarctic Ice Sheet (WAIS) Divide (blue, Ahn et al., 2012) (B) 빙하 코어(WAIS Divide ice core (black, Bauska et al., 2015))에 기록된 CO2의 탄소 동위원소 비. 16세기 동안 토양 탄소(terrestrial carbon) 흡수가 일어났음을 보이고 있다. 노란색 박스는 대규모 선주민 인구 감소(1520~1700년)가 일어난 시기를 나타낸다. (출처 : A. Koch et al. 2019.)
[그림 7] 1000~1800년 동안 (A) 남극 빙하 코어에 기록된 이산화탄소 농도. Law Dome (grey, MacFarling Meure et al., 2006) and West Antarctic Ice Sheet (WAIS) Divide (blue, Ahn et al., 2012) (B) 지구 평균 기온 재구성. from northern and southern hemisphere proxies, anomaly compared to the means from 1000 to 2000 CE (Neukom et al., 2014, grey, smoothed in black) (C) 1000~2000년 평균 대비 총 태양광 복사 변이. from Steinhilber et al. (2009, grey) and Vieira et al. (2011, green) (D) 화산 폭발로 인한 복사 강제력 변화. (grey, individual eruptions; black, smoothed, Sigl et al., 2015) (E) 지표면 대기 흐름. based on double deconvolution of WAIS CO2 data (Bauska et al., 2015) (F)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토지이용 변화 from the LUC reconstructions KK10 (purple, Kaplan et al., 2011), HYDE 3.1 (blue, Klein Goldewijk et al., 2011), and P08 (grey, Pongratz et al., 2008a). (G) 소빙기 당시 아메리카 대륙 이외 지역의 토지이용 변화. 아시아와 유럽. based on the three LUC reconstructions. (For interpretation of the references to colour in this figure legend, the reader is referred to the Web version of this article.) (출처 : A. Koch et al. 2019.)

회복력

인류 사회가 소빙기를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논의 대상으로 남아있지만, 분명한 것은 소빙기가 인류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985년에 그린란드에 정착한 노르웨이인들은 수 세기 동안 그곳에 머물렀지만 1400년대 초에는 그 땅을 떠나야했습니다. 그들이 떠난 이유가 소빙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었지만, 지난 3월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의 퇴적물에서는 기온이 저하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뭄이 진행된 경향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가축들을 먹일 풀이 덜 자랐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림 8] 소빙기 전후 남부 그린란드 기온, 강우량과 거주인들의 식단 변화 재구성. (A) 여름 수온 변화. BrGDGT-inferred summer water temperature (SWT) from southern Greenland. An error bar of ±0.52°C from the calibration (B. Zhao et al. 2021) is shown with the gray shading. (B) 나뭇잎 왁스 수소 동위원소로 파악한 가뭄 경향. inferred ΔRH from southern Greenland. (C) 그린란드에 거주한 노르웨이인들의 식단 중 해산물 비중. (J. Arnebort et al. 1999). (D) 식단 중 해양 포유동물의 뼈 비율. [number of identified specimens (NISP)] from a Norse farm in Qassiarsuk (T. H. McGovern et al. 2006). 살구색 네모 상자는 노르웨이인들이 그린란드에 거주한 시기를 나타낸다. (출처 : Boyang Zhaq et al. 2022)

이 이야기가 사실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기후 조건이 변하는 대로 사람들이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변화에 맞춰서 적응합니다.”

드그루트 교수는 북극 지역을 가리키며, 해빙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활동이 상당히 증가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했습니다. 1611~1619년 사이 유럽의 고래잡이들은 스발바드 바다 멀리까지 나가 조업을 했습니다. 식물성 기름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체재로 사용할 고래 기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1560~1720년 동안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아니 덕분에 네덜란드 공화국 시기는 일종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자국 내의 농업에 별로 의존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역 작황이 나빠도 문제가 크게 되지 않았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대신 공화국의 경제는 상선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습니다. 상선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추위에 맞춰 기발한 방법들을 고안해냈고, 이웃 나라들이 고전할 동안 네덜란드 공화국은 번영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예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과거 사회가 소빙기 같은 기후 변화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소빙기 사람들이 잘 한 것은 무엇이고 잘 못 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드그루트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는 더 빨리 배워야만 합니다. 소빙기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소빙기 당시 지구 평균기온은 몇 분의 1도 정도 밖에 낮아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1.1도 더 더워졌고, 다음 몇 십 년 내에 1.5도를 넘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역,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이 글은 옵저버 지의 다음 기사 “Climate crisis: what lessons can we learn from the last great cooling-off period?”(2022. 5. 9. Michael Marshall. The Observer.)를 번역한 것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원문 기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래 기사에는 없지만 위 글에 포함시킨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이미지 자료 출처는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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