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하인버그(Richard Heinberg)는 널리 알려진 에너지전환 및 석유정점 연구자이자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운동가입니다. 『파티는 끝났다 : 석유시대의 종말과 현대 문명의 미래』(2006, 시공사) [The Party’s Over: Oil, War and the Fate of Industrial Societies (New Society, 2003)]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의 많은 책 가운데 최근작인 Power: Limits and Prospects for Human Survival (New Society, 2021) 역시 매우 중요한 저작일 거라 생각하는데 마침 생태적 문명전환을 주제로 하는 잡지 『소생(resilience)』에 이 책의 내용을 축약해 소개하는 발췌글이 연재되어 있어서 이 글을 번역해 소개합니다. 저나 다른 분들이 직접 책을 쥐어들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미리 양해를 구할 점은 핵심 개념인 ‘power’를 당분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옮기려 한다는 점입니다. Power는 일상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물리학에서는 ‘일률’로 명확하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연장하여 공학에서는 ‘동력’이나 ‘출력’이라는 말로 주로 옮깁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에서는 ‘권력’이 더 어울립니다. 원래 power가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보면 여러 가지 용어를 쓰는 데 별 문제가 없겠지만 하인버그는 이 책에서 power를 일관된 맥락 위에서 통합적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에 단일한 용어를 찾아야 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아직 이해가 짧아서 당분간 영문 그대로 두고 나머지만 옮기려고 합니다. Power 뿐만 아니라 이 용어의 활용형도 당분간 그대로 두겠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주시고, 좋은 제안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이 글은 리처드 하인버그의 2021년 작 『Power: 인간 생존의 한계와 가망』 중 저자가 직접 발췌·요약한 글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다음은 “2장 홍적세의 power”(Power in Pleistocene)의 발췌글입니다. 원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독성을 위해 의역한 부분이 많으니 정확한 내용은 원문을 확인해주세요.
원문 보기 : “Power: Chapter 2. Power in the Pleistocene” by Richard Heinberg in Resilience, April 27, 2022.
리처드 하인버그의 POWER (2021) 발췌글 : 머리말 바로 가기
리처드 하인버그의 POWER (2021) 발췌글 : 1장 자연의 power 바로 가기
POWER : 2장 홍적세의 power
예술의 power
인류는 진화 초기부터 예술을 하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동굴 벽화와 뼈로 만든 피리는 약 4만 년 전부터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에 언어와 돌로 만든 도구도 한 단계 도약했다. 동물과 사람을 그린 구석기 시대 그림은 정교하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매머드와 독수리의 뼈로 만든 고대 피리는 피아노나 기타 같은 현대 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조와 비슷한 음조(온음, 반음)를 만들어낸다.
당시 인체에도 예술과 장식을 했던 증거를 볼 수 있다. 또한 언어가 생기자마자 노래와 시, 사가(영웅담)와 농담을 장난스럽고 창의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 중 생존과 관련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음악, 예술과 말장난은 지배가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찬미와 초월의 power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림, 음악 연주, 춤, 연극, 문학 등 예술이 power를 가지고 있다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종류의 power일까?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다루어온 것과는 다른 종류의 power이다. 이 power를 무시한다면 인류뿐만 아니라 자연 자체의 본질적인 측면을 묵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최대 power의 원칙을 통한 생명의 진화(머리말에서 논했듯이)는 간단하다. power를 더 많이 이용하고 발휘할 수 있는 유기체가 자손을 더 많이 남기고 다른 유기체들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생명이란 냉혹한 경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십 억 년의 진화가 만들어낸 결과는 놀랍도록 아름답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물과 식물은 번식을 목적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방금 보았듯이,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특성이 성선택을 통해 인류 몸의 형태를 만들고 본능적인 행동양식을 변화시켜왔을 것이다. 성선택을 하기 때문에 진화가 적합도(fitness)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우선하게 되면 아름다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구애를 위한 행동들로 시작되더라도, 아름다움 그 자체가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새들은 짝의 관심을 끌 필요가 없을 때에도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경우 문화적 진화가 가속화되면서, 아름다움을 향한 우리의 추구 또한 성선택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고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것은 더욱더 빠르게 공진화하면서 압도적인 강박관념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미를 추구하는 인류 세계에 살고 있다. 현대 도시의 거의 모든 표면이 디자인되어 있다. 자동차, 주택, 사무 빌딩, 그리고 모터사이클에서 만년필까지 모든 종류의 도구들이 창작 공정을 위한 캔버스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배경음악에서부터 소설과 텔레비전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상상가능한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에 푹 빠져 있다. 전형적인 현대의 인간은 거의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예술을 “소비”한다.
좋든 싫든 내가 수 만 시간을 쏟아 부은 한 가지 활동을 통해 예술적 생산과 감상을 추구하는 집요함을 보여줄 수 있다. 바로 바이올린 연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Hilary hahn)의 파가니니 24번 카프리스 연주를 유튜브로 한번 들어보시라. 매 초 마다 수십 번 혹은 그 이상 음을 바꾸고 음조도 완벽하고, 아티큘레이션(바이올린 연주기법 중 하나)과 음색도 언제나 완벽하다. 한의 두 손은 정확히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완전히 다른 일을 수행한다. 공연의 핵심은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동시에 수행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을 자신 있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뇌수술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어떠한 활동도 최고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만큼의 디지털 정밀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목, 팔, 등의 근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뇌와 관련된 일이다. 훈련된 “귀”가 없다면 손가락 훈련은…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서 “귀”는 음정과 리듬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챌 수 있고, 거의 즉각적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고도로 훈련된 뇌를 의미한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앞서 말한 핵심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인류의 손재주는 해부학적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바이올린 연주, 그리고 일반적인 도구 사용의 진화는 해부학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미적 등 여러 수준에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경우는 일차적으로 인류가 미적 탐구에 완전히 헌신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자연선택이나 성선택 면에서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 팬더사에서 제조하는 일렉트릭 기타)를 사고 기타 레슨을 받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다섯 살 짜리 어린 아이가 매일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어려운 악기를 연습하고 어른이 돼서도 계속 하는 이유를 이런 동기에서 찾기는 어렵다.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비슷한 집착을 인정할 것이다. 축구나 서핑, 스모 열혈애호가들도 그런 비슷한 정도의 강박을 보이는데, 어떤 스포츠든 그것을 뛰어나게 해낼 때 만들어지는 주관적인 경험을 미학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미적 탐구에 헌신하는 것은 경쟁이나 선택, 신체적인 건강(그리고 직업적인 수준의 성취에 대해 돌아오는 경제적인 보상은 때때로 천문학적이다)으로 쉽게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스포츠나 예술에서 탁월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영적인 측면이 있다.
진화를 통해 우리는 자연 세계에 대한 power를 얻었지만,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의미의 진화에서 말하는 power(예를 들면 먹이를 구하거나 짝을 찾는 능력)와는 거의 혹은 전혀 상관없는 것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미적 즐거움에 대해 소통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 혹은 다른 종의 개체들과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새소리의 아름다움을 즐길 때, 돌고래 무리가 파도에 완벽하게 맞춰 “춤추는” 모습에 전율을 느낄 때 그렇듯이) power는 측정하기 어렵지만 무시하기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인류 문화를 향상시킨다. 이는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power이며, 이 책 뒷부분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은 저널 「Resilience」에 게재된 리처드 하인버그의 책 『Power: Limits and Prospects for Human Survival』(2021)의 발췌 글(2022. 3. 30.)을 번역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의역한 부분이 많으니, 정확한 내용은 링크로 가셔서 원문을 확인해주세요.
『POWER』 팟캐스트
『Power』 podcast 1~9 with the author Richard Heinberg. Resilience.
링크로 가시면 팟캐스트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책 『Power』의 각 챕터별 내용을 가지고 진행자 2~3명과 저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스크립트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