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8-1. 생명이란 무엇인가 : 자유에너지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이 자료는 녹색아카데미 유튜브 ‘자연철학이야기’에서 나눈 대담 8-1를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대담은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2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이야기” 8-1편에서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제7장. 집에 도착해 소를 잊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중 자유에너지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8-1. 생명이란 무엇인가 : 자유에너지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1. 생명을 물리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2. 볼츠만: 생명과 엔트로피의 본질
  3.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4. 장회익: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
  5. 자유에너지와 국소질서
  6. 빛 에너지의 가용률
  7. 준안정 상태
  8. 국소질서
  9.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1. 생명을 물리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최우석   저는 선생님의 생명 이야기들을 익히 들어왔는데, 7장 이야기는 색다르게 감동스럽게 읽었습니다. 일단 뒤쪽의 얘기부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바에 의하면 박사학위를 마치실 무렵부터 생명이라는 것이 어떻게 물리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늘 그 문제만 고민하시지는 않으셨겠지만 십 수 년간 탐구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번 들었지만 잘 납득은 안 되는데요, 왜 생명 문제를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으셨는지 그것부터 여쭤보고 싶습니다.

장회익   첫째는 생명이라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잖아요. 정말 중요한 건데 그걸 우리가 제대로 아느냐? 나는 ‘생명을 이해한다’는 말을 썼어요. ‘이해한다’는 것과 보통 일상적인 의미로 ‘안다’는 것은 좀 차이가 있죠. 이해한다는 것은 뭐냐? 우리가 더 보편적인 어떤 원리, 원칙과 연관해서 자리매김해주는 것 이것이 이해고, 안다는 것은 그냥 친근하기만 해도 안다는 거지.

생명에 대해서 친근할 수는 있어요. 우리 자신이 생명체이고 주변에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많으니까 너무나 친근한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이해하는 거냐?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내 관점에서는 다르다는 거예요. 아주 가까운 예로 온도를 봅시다. 온도는 우리한테 굉장히 친근한 거지. 직접 느끼잖아요. 그러나 그게 온도를 이해하는 행위냐? 온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앞에서(5장) 우리가 얘기했지만 단위 에너지 증가에 따라 엔트로피가 얼마나 증가하느냐하는 것의 한 척도(역수지만)라고 했을 때 비로소 온도가 이해된 거거든.

생명도 마찬가지예요.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한테 친근하고 더 중요한 거예요. 물론 온도도 중요하지만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본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생명이 뭐냐? ‘뭐냐’하는 것에는 복잡한 함축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생명에 관한 책을 하나 썼죠. 그 책 제목이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장회익, 2014)인데, 제목에 ‘이해’라는 말을 썼어요.

생명을 ‘이해’할 수 있겠다하는 것을 느낀 것이, 조금 전에 얘기한 것처럼 내가 물리학 박사학위를 막 마치고 나서예요. 그때까지는 거의 모르고 있었지만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DNA가 생명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분자생물학이라는 것이 태동할 당시에 나도 슈뢰딩거의 책을 읽었고, 그리고나서 생명도 물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전에 내가 생명을 접근하지 못한 이유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당시에 내가 하고 있던 이해는 물리학 정도였어요. 자연의 기본 원리를 찾고 그걸 통해서 (물리학에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물리학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 책에서 쭉 내가 얘기해온 내용이에요. 물리학을 통해서 우주를 이해하는 데까지 온 거죠. 그런데 이제는 생명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이걸 한번 시도 안 할 수 있느냐? 이게 큰 동기라고 볼 수 있어요.

최우석   조금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물리학이라고 이름붙은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앎, 보편적인 것들을 통찰해내는 앎을 가지고 그 앎을 먼저 충분히 이해하고, 그걸 가지고 우주의 역사와 우주로부터 어떻게 물질이 형성되어서 지금같은 세계가 만들어졌는지까지 이해가 되었다라고 했을 때, 그전까지는 턱 막혀서 생명은 안 되나라고 하는 한계 지점으로 느끼다가 이제 이것마저도 이해할 수 있겠구나하는 이런 차원인가요? 아니면 생명은 정말 중요한데 너무 중요해서 어떻게든 알고 싶은데 그걸 이제 알 수 있겠구나하는 이런 것인가요? 제가 느끼기에는 두 가지가 방점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장회익   전자에 좀 더 가깝겠죠.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따졌으면 생물학자가 됐어야지. (웃음) 그러나 그때 내가 본 생물학은 생명을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좀 멀었어요. 생명의 외형적인 모습 하나하나 따지고 있는데, 복잡하기만 했지 뭔가를 이해하는 그런 틀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오히려 뭔가 작지만 이해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것, 이것이 물리학이 아닐까 생각했죠.

천둥이 뭐냐, 번개가 뭐냐?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던 것에서 조금만 넘어서면 금방 이해가 돼요. 무지개가 뭐냐? 이해가 돼. 그런데 개미가 뭐냐? 이건 이해가 잘 안되는 거야. (웃음) 그래서 나는 개미연구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된 거예요. 이해되는 것(물리학)에서 출발해서 이해하는 수준까지 왔는데, 이제는 정말 중요한 생명조차도 이해가 될 수 있겠다하는 것은 나한테는 굉장한 놀라움이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최우석   선생님께 ‘이해’라고 하는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인 것 같습니다.

장회익   그렇죠.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하는 책이 나왔을 때 이게 도대체 뭐냐? 여러분들한테도 떠오르는 생각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심지어 생물학자들 입에서도 생명을 이해한다는 말이 나오는 일이 별로 없을 거예요. 생물학자들은 생명을 이해한다는 말은 감히 안 해요.

최우석   ‘생명의 비밀을 파헤친다’, 이런 말들은 하는 것 같습니다. (웃음)

장회익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아낸다하는 그런 것은 되죠. 생명 그 자체가 뭐냐하는 것을 문제삼지를 않고 그 안에 들어가서 그 현상만 보기 때문에 그래요.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을 문제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물리학자들일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물리학자들은 생명 아닌 것을 아니까. 생명 아닌 것은 다 이해가 되는데, 생명은 뭐길래 이해가 안 되느냐? 그래서 생명의 경계, 바운더리를 놓고 보죠. 생명 안에 들어가서 그 안의 것만 보고 친숙하기만 한 사람들로서는 뭐 이해할 게 없는 거야. 물고기가 물을 이해하겠어요? 물 밖에 있는 사람이 물을 보는 거죠.

2. 볼츠만: 생명과 엔트로피의 본질

최우석   책 7장의 역사지평에서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려보면 볼츠만, 슈뢰딩거, 장회익 이렇게 뭔가 계통이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게 통계역학을 이해하게 되면 아, 여기에 바탕해서 생명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욕심이 저절로 퍼뜩 들게 되나요?

장회익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우연이 아닐 거라고 보는데, 최초로 생명에 대해서 의미 있는 발언을 한 사람이 볼츠만이거든. 그런데 볼츠만이 최초로 엔트로피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에요. 엔트로피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초로 엔트로피의 본질을 파악한 사람은 볼츠만이에요. 

그런데 생명은 바로 그 엔트로피와 관련된 어떤 본질과 닿아있다고 볼츠만이 말했어요. 볼츠만이 엔트로피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고 10년이 안 돼서 생명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언급을 했죠. 우리 책에 인용을 해놨어요.(그림 1) 그 문장이 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림 1] 생명에 대한 볼츠만의 견해. (출처: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p.343-344)

장회익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그림 1) 생명체는 원소, 음식물,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에너지 같은 것을 얻기 위해서 생존한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을 하죠. 에너지와 무관한 건 아니지만. 사실 엔트로피는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원소, 음식물, 물질 같은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질서, 무질서라고 하죠. 생명체는 질서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물질로 질서를 구성해내지 못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질서가 중요해요. 그런데 엔트로피 자체는 말하자면 무질서예요. 무질서의 반대 개념은 부-엔트로피죠. 네거티브 엔트로피는 그 반대 개념으로 말하면 질서, 정교성을 나타내요. 그러니까 정교하지 못한 정도가 엔트로피라는 거예요. 그런데 정교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굉장히 추상적인 어떤 개념으로 알지만 실제로 물리적인 개념이에요.

그런데 정교성을 얻게 되는 근원도 대단히 흥미로워요. “뜨거운 태양에서 차가운 지구로의 에너지 흐름” 속에서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림1]의 설명이, 내가 보기에 생명에 대한 최초의 가장 중요한 발견인 것 같아요. 슈뢰딩거의 책에도 뒷 부분에서 이런 얘기를 해요. 엔트로피와 부-엔트로피, 뜨거운 태양에서 차가운 지구로의 에너지 흐름이라는 내용을 자기 나름대로 다시 표현해서 “생명체라고 하는 것은 부-엔트로피를 먹고 사는 존재다”라고 요약을 한 거죠. 이것과 연관해서 생명을 이해해야 생명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에 접근할 수 있겠다하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최우석   볼츠만 시대에 자유에너지 개념이 있었던 건 아니죠?

장회익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자유에너지 개념은 헬름홀츠 자유에너지(Helmholtz free energy)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라는 사람이 최초로 얘기했어요. 아마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이 1886년에 생명에 대해 얘기했던 시점과는 전후관계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헬름홀츠 자유에너지가 곧 나왔어요.

실제로 슈뢰딩거가 이 말(그림1에서 세 번째 단락)을 그대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에 썼는데, 당시에 물리학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어요. 부-엔트로피라는 말보다 자유에너지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는 지적을 물리학자들로부터 받았다고 해요. 1943년 무렵에는 이미 자유에너지라는 개념으로 생명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많지는 않았지만.

3.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림 2]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최우석   생명에 대한 이해는 볼츠만과 슈뢰딩거가 거의 동일한 것인가요?

장회익   그렇지. 이것에 관한 한 그래요. 볼츠만이 더 기본적으로 직관적인 포착을 했고, 슈뢰딩거는 이 말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그냥 소개했을 뿐이죠.

최우석   솔직히 슈뢰딩거의 책에서 사람들이 많이 주목하는 부분은 DNA와 관련된 부호 기록이지, 사실은 부-엔트로피 부분은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장회익   그 말이 맞아요. 그 책이 실제로 학계에 기여한 내용은 주로 유전 정보에 대한 거예요. 유전 정보가 도대체 뭐냐, 이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어요. 슈뢰딩거의 말은 유전 정보가 물질 속에 박혀있다는 거예요. 슈뢰딩거의 책에 보면 ‘비주기적인 결정체’라고 되어 있어요. 주기적으로 배열이 반복되면 정보가 담길 수가 없거든. 예를 들어서 책에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 쓰여 있으면, 그건 아무 정보가 없는 거죠. 글자들이 적어도 물리적으로 불규칙하게 적혀 있기 때문에 정보가 담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몸속에 있는 고체, 단단한 물체 속에 비주기적인 그러니까 주기를 벗어난 어떤 것이 담겨서 그것이 정보 노릇을 한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무질서한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생명체 속에서 그 정보가 살아남아서 있을 수가 있느냐, 이게 관심거리였지. 그러니까 물리학자로서 당연히 슈뢰딩거는 바로 그걸 이해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 정보가 어떻게 담겨 있고 유지될 수 있느냐? 특히 유지될 수 있느냐, 전달될 수 있느냐하는 부분이 의문이었어요.

지금은 DNA라고 하는 상당히 안정된 분자 구조 속에서 (유전 정보가) 유지된다고 하는데, 그 당시로서는 그런 안정된 것이 흐트러지지 않고 어떻게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느냐하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물리학의 법칙을 넘어서는, 생명체에만 적용되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도 좀 했어요. 이런 내용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에 일부 나와 있죠.

그래서 슈뢰딩거의 그 책에서 힌트를 받은 여러 사람들 중에 왓슨과 크릭이 있었어요. 이 두 사람은 전공이 서로 다르죠. 왓슨은 대학생 초반에 이 책을 읽고 나는 생명을 이해하는 쪽으로 공부하겠다하고 결심을 한 사람이에요. 크릭은 이 책이 나올 무렵에 이미 상당히 전문적인 물리학자였어요. X선을 이용해서 물질의 내부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물리학자였죠.

크릭과 왓슨이 만나서 우리 같이 한번 규명을 해보자 한 거예요. 크릭은 X선으로 물질 구조를 밝히는 전문가였고, 왓슨은 생명 현상 자체를 크릭보다 더 잘 아니까 그쪽으로 접근해서 한번 규명해보자, 그렇게 해서 히트를 친 거지. 두 사람 다 노벨생리의학상도 받았죠. 두 사람의 발견은 20세기에 이루어진 가장 큰 발견 중의 하나로 꼽히죠.

이러한 발견의 매개가 물리학자 슈뢰딩거 그리고 특히 『생명이란 무엇인가』이라는 책이었다하는 것은 굉장한 의의가 있죠. 특히 내 입장에서 더 그래요. 이제는 물리학적인 바탕을 통해서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는 거예요. 물론 DNA 규명도 역시 물리학적으로 이해를 한 것이지만.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이 일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20세기 후반기에는 생명과학이 꽃을 피우죠.

4. 장회익: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

장회익   그런데 내 진짜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고 슈뢰딩거의 책 제목에 나온 것, 즉 생명이 뭐냐예요. 이걸 가지고 생명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할 수 있느냐? 그 문제죠. 유전 정보, DNA는 생명의 구조와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 방식에 대해서는 뚫고 들어가서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생명을 이해한 거냐? 그것과는 좀 달라요.

나는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상당히 늦게 발견했는데, 기대를 가지고 뚜껑을 열었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물리학을 바탕으로 생명이 뭔지를 알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바로 물리학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슈뢰딩거가 이 책을 썼다, 그러니 여기에 대단한 것이 담겨있지 않겠나하고 읽었죠.

물론 이 책이 나온 후에 DNA가 규명되기도 했고, 슈뢰딩거의 책을 읽기 전에 왓슨과 크릭의 업적에 대해서는 이미 읽어서 알고 있었어. 왓슨과 크릭은 슈뢰딩거의 책을 읽고 나서 DNA 연구를 했지만, 나는 왓슨과 크릭의 성과를 다룬 간단한 책을 먼저 이해를 하고 나서 흥미가 생겨서 슈뢰딩거의 책으로 거슬러 올라갔지. 그렇지만 슈뢰딩거의 책에 어떤 비밀이 담겨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한 거지.

그런데 내가 볼 때에는 두 가지 내용 밖에 없는 거야(그림 2에서 비주기적 결정체와 자유에너지). 유전자의 성격을 ‘비주기적 결정체’로 본 것이 하나예요. 물론 DNA가 비주기적인 결정체이고, 슈뢰딩거의 책이 DNA 발견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또 하나는 부-엔트로피, 자유에너지 이야기예요. 우리가 앞에서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에너지가 부-엔트로피와 굉장히 관련이 깊어요. 실제로는 자유에너지 개념을 가지고 엔트로피 얘기를 해야 훨씬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부-엔트로피, 자유에너지 이야기는 언급만 살짝 했어요. 심지어 볼츠만이 얘기한 것보다 더 짧게 언급했고 볼츠만의 이론도 인용만 했어요. 물론 중요성은 강조했지만.

그러면 이 얘기를 가지고 생명이 이해가 되느냐? 이게 내가 안게 된 과제지. 나는 이것을 일종의 지침으로 삼아서, 생명을 이해하는 길로 가보자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최우석   그러면 이 책이 선생님께 어떤 힌트를 주거나 한 것은 별로 없었겠네요?

장회익   그러니까 실망을 줬지. (웃음) 나는 상당한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껏해야 위에 말한 두 가지 말고는 뭐…

황승미   제목에 속으신 거네요. (웃음)

장회익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어요. 슈뢰딩거 책이 나온 후에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같은 제목으로 책이 너댓 권이 나와 있어요. 그 중에서 네 번째인가 최근에 나온 책을 보면, 슈뢰딩거의 이 책을 좀 장난조로 비난을 했죠. 속였다! (웃음) 심오한 얘기가 있는 것처럼 해놓고, 들여다보니까 사실은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가 없었다 그런 얘기예요. 그러나 중요한 기여는 했어요. 이 두 가지, 유전자가 비주기적 결정체이고 부-엔트로피, 자유에너지 얘기를 지적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거죠.

새로 설립된 더블린 고등학술연구소에 초빙된 슈뢰딩거는 1943년 2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3회에 걸친 대중강연을 했다. 관련 내용은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pp.344-348 참조.

5. 자유에너지와 국소질서

[그림 3] 자유에너지는 활동의 원천이다.

최우석   그러면 이제 슈뢰딩거의 제목 장사를 넘어서, 선생님께서 이해를 하신 생명은 무엇인지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장회익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소질서’ 개념을 먼저 얘기하면 좋겠어요. 우선 슈뢰딩거와 연결짓자면 생명은 자유에너지를 먹고 산다고 해도 돼요. 그런데 왜 그러냐? 우리가 이미 앞에서 했지만 자유에너지는 활동의 원천이고 이것이 없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어요. 그리고 생명체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유에너지를 소모해야 돼.

내가 지금 팔을 움직이는 것도 자유에너지를 소모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유한한데 계속 소모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공급을 받아야 돼. 그래서 내가 자유에너지까지 만들어서 생명 노릇을 할 방법이 없어. 어디선가 다른 데서 에너지가 와야 돼요. 어디서 오느냐?

[그림 4] 별의 역할 2: 주변에 에너지 공급

장회익   이미 볼츠만이 얘기를 했죠.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지구 사이의 에너지 흐름 속에서 온다, 아주 직관적으로 볼츠만은 이해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정말 자유에너지가 오는 거냐하는 질문이 있어요. 그래서 온도 차이가 있어서 에너지가 이동을 하면 거기서 소위 일을 할 수 있는 가용한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데(일을 한다는 것은 자유에너지를 써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생명체들이 받아쓰는 자유에너지는 별, 우리의 경우에는 태양에서 오는 것은 틀림이 없어요. 그런데 A와 B의 얘기가 서로 조금 뉘앙스가 다르죠.(그림4)

[그림 4]에서 A는, 햇빛이 일정한 비율의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지구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지구에 오는 거예요. B는, 햇빛은 일정한 에너지만 가지고 지구에 오지만 광합성 생물들이 이 에너지의 일정 비율을 자유에너지로 전환시킨다는 얘기예요. 이런 생각도 할 수가 있죠.

그런데 내가 생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둘 중에 어떤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를 않았어요. 처음에는 A로 생각을 했는데, B가 맞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삶과 온생명』(1998, 2014)이라는 내 책에 생명에 대해서 쓴 초기 글들이 있는데, 다행히 내가 용감하게 A로 얘기를 했어. 햇빛이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지구에 온다!(아래 인용 참조)

그런데 그러고 나서 조금 자신이 없는 거야. (웃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혹시 B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한 5-6년 전인가 실제로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문헌들을 뒤져보니까 거의 B로 얘기를 하고 있어. 그럼 어째서 B라고 하는지 그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논리가 좀 부족해. 말하자면 논리에 비약이 있고 앞뒤가 안 맞는 거야.

생명과 온생명

이제 이를 다시 한 번 요약해보면 생명이란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복제 생성률이 1을 넘어서면서 일련의 연계적 국소질서가 형성 및 지속되어 나가게 되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라고 규정해볼 수 있다. … 중략 … 

일단 생명의 개념을 이와 같이 정의하고 나면 이 지구 상에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 흐름을 바탕으로 대략 35억 년 전에 하나의 생명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지속적인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 내에는 이것말고도 바로 이러한 의미의 생명이 또 다른 곳에서도 형성될 수 있으며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어떤 곳에 이러한 생명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양-지구 사이에 나타난 이 생명은 우주 내에 가능한 여타 생명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실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보는 지구 상의 생명이다. … 중략 …

이렇게 정의된 온생명이 기존의 생명 개념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구 상에 나타난 전체 생명 현상을 하나하나의 개별적 생명체로 구분하지 않고 그 자체를 하나의 전일적 실체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생명의 이러한 정의 속에는 개별적 생명체에 해당하는 ‘국소질서’의 개념이 함께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정의 속에 나타난 핵심 사항은 이러한 국소질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질서로서 존속할 수 있는 주변의 여건과 함께 이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 즉 선행 질서와 후속 질서 사이에 그 복제 생성률이 1을 넘어서는 계기적 관련의 성립에 있는 것이다.

– 『삶과 온생명』 장회익. 초판 1998. 2014: p.191-192.

6. 빛 에너지의 가용률

장회익   볼츠만이 얘기한지 벌써 150년 넘었고, 실제로 20세기 들어오면서 광합성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많이 됐어요.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이론이 엉성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론을 다시 만들어보니, A가 맞는 거야. 결과를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부록(pp.540-555)에 써놨어요. (Hwe Ik Zhang, M.Y. Choi. 2018)

[그림 5] 빛 에너지의 가용률

장회익   [그림 5]에서 에타 𝜂라고 하는 그리스 문자는 빛 에너지 가용률을 의미해요. 태양이 가지고 온 에너지 총량 중에서 몇 퍼센트가 자유에너지인가를 나타내는 비율이에요. 그러니까 태양으로부터 가져온 자유에너지를,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 총량으로 나눈 값이에요. 그것이 약간 복잡하지만 [그림 5]의 식으로 표현이 돼요. 2018년에 이 내용을 논문으로 냈고 우리 책 부록에 있으니까 따로 설명은 안하겠어요. 나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학계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정을 받아서 논문으로 나온 거예요.

다시 정리를 하면 생명은 자유에너지를 먹고 산다. 그런데 그 자유에너지는 어디서 오느냐? 태양에서 온다. 얼마만큼 오느냐? 태양에서 에너지가 얼마만큼 오는지는 금방 알 수 있어요. 광입자 하나하나가 얼마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걸 열로 환산하면 돼요. 그런데 그 중에서 대략 계산을 해본 결과 76.4% 정도가 자유에너지라는 것을 확인했죠.

그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우선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지. 나머지는 이 에너지를 받아서 활동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이 되느냐하는 문제는 이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예요. 태양에서 지구에 준 자유에너지는 전체 중의 76.4%이고 이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거 다 해봐라, 말하자면 활동을 할 수 있는 보장을 받은 거예요.

지구에서는 이 자유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받아들여서 어떻게 활동을 할 거냐, 그 최일선에 나선 것이 바로 녹색식물이죠. 녹색식물이 일차적으로 이 76.4%라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기물 형태로 자유에너지를 바꾸는 거죠. 그러나 76.4%의 범위 이상으로는 절대 못 벗어나요. 거기서 일부 손실이 있으면 있었지 이 최대한도를 넘어서서 자유에너지를 만들 수는 없어요. 녹색식물에서 자유에너지를 이용해서 만든 결과물을 가지고 전체 생태계가 나누어 쓰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러한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거죠. 이걸 설명해내지 못하면 아직 생명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어요. 원천적으로 이것은 적어도 볼츠만이 얘기했던 형태의 생명은 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해서 생명 현상이 나타나는가하는 문제는 남은 거예요.

최우석   우주 상에 온도 차이가 아주 큰 두 지점이 있다고 할 경우, 그 온도 차에 의하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흐르게 되는데 그때 항상 일정 비율로 자유에너지가 포함되어서 온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장회익   그 얘기와 지금 얘기는 조금 다르지. 그런데 이 경우 우리가 어떤 장치를 쓰든지 간에 일정한 방식을 활용하면 거기서 최대로 얻을 수 있는 자유에너지는 η = 1 -T/Tc – kT/hν예요.(ν는 nu;뉴) Tc는 차가운 온도이고 T는 뜨거운 것의 온도예요. 에너지 가용률 η는 1 -T/Tc이 비율만큼인데, 현실적으로 태양에서 오는 것은 여기서 kT/hν 만큼을 빼야 돼요. 실제로 우리가 태양에서 받는 에너지의 양 1 -T/Tc는 원칙적으로 가능한 양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kT/hν 만큼을 제외해야 된다는 거예요. T는 지구상의 온도이고, 빛이 가지고 있는 진동수와 관계가 있어서 hν항이 들어가요. 그 광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hν이고, kT는 열운동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예요. kT와 hν의 비를 1 -T/Tc에서 빼준 것이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 가용률 최대값이죠. 즉 η = 1 -T/Tc – kT/hν 보다 더 클 수가 없다는 거지. 태양에서 지구로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올 때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 거예요.

최우석   그러면 조건마다 항상 다른데 우주 내의 에너지 흐름에는 자유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건가요?

장회익   그런 셈이지. 별들이 다른 차가운 행성으로 빛을 보낼 때, 거기에는 이런 정도의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가는 거예요.

최우석   그러면 우주 내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유에너지의 흐름은 항성으로부터 차가운 데로 흐르는 경우에만 발생하는 건가요?

장회익   뜨거운 데서 차가운 데로 갈 때 그렇죠. 그런데 특히 광자, 빛이라는 형태로 갈 때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지구 내부도 뜨겁잖아요. 지구 내부처럼 뜨거운 곳과 바다같이 차가운 곳은 서로 온도 차이가 있죠. 이 경우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여기서도 원천적으로 일부 자유에너지가 있죠.

초기 지구상에서 자유에너지를 얻은 생명체는 이런 지구 내부의 열을 이용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들도 해요. 왜냐하면 태양에서 오는 자유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은 녹색식물이라고 하는 굉장히 정교한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나서 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에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였을 수 있어요.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볼 때는 지구 내부로부터 자유에너지를 얻는 경우는 아주 극히 적고 특별한 경우에 쓰지만 이용하기도 쉽지 않아요.

태양에너지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그냥 쏟아져 들어오는 거야. 우리가 다 활용하지도 못 해요.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예요, 공짜로. 녹색식물만 턱하고 놓고 있으면 공짜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유에너지를 얻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돈 주고 사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태양은 우리한테 무료로 자유에너지를 보내주고 있어요. (웃음)

황승미   그런데 지구에 오는 자유에너지 말고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중간에 흡수되거나 반사되거나 이런 것들이 있을 텐데, 지구의 에너지 가용률 계산에 나오는 값은 반사되는 것도 다 뺀 건가요?

장회익   그런 게 없다고 가정하고 지구에 들어오는 것만 계산하는 거예요. 지구의 녹색식물이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적은 양이고, 태양광 전지에서 발전하는 데도 쓰일 것이고, 대기의 움직임에도 들어갈 것이고, 지구 상에 상당히 많은 활동 가능하는 것들의 에너지로 쓰이는 거죠. 여기서는 일단 지구에 들어오는 것을 계산한 것이고 반사되는 것을 고려하려면 그만큼 빼줘야 되겠지.

황승미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태양도 그렇고 다른 멀리 있는 초신성에서 나오는 빛이 퍼질 때, 점점 거리가 멀어질수록 온도가 떨어질 것 같은데 열이 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장회익   빛의 진동수는 거의 변함이 없어요. 단일 광자가 가지고 있는 hν값은 거의 같아요. 이것도 물론 도플러 효과 때문에 멀어지느냐 가까워지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멀면 멀수록 빛이 많이 퍼지니까, 단위 면적에 닿는 빛의 양, 광자의 수가 줄어들어요. 에너지 가용률도 광자의 수와 관계가 있어요. 광자가 얼마나 세냐에 따라서 이 비율 자체가 달라져요.

황승미   우주가 거의 다 비어있다는데, 그 많은 열이 다 어디로 가나 궁금했습니다. 갈 데가 없을 것 같은데… (웃음)

장회익   우주 안에서 빙빙 돈다고 보면 돼요. 흡수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돌아다닌다고 보면 돼요. 빅뱅 이후 38만 년부터는 흡수 안 된 상당한 양의 빛이 뻗어갈 수가 있잖아요. 그 빛이 지금까지도 돌아다니는 거지.

황승미   그러니까 한정된 양의 빛을 받는 면적이 넓어지니까 열이…

장회익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건 한 군데에서 나온 빛이 퍼질 때의 이야기고, 전체 사방에서 나올 때는 좀 다르죠.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체에서 나오는 것이고, 별에서 나올 때는 한 점에서 나오는 경우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멀어질수록 광자의 수가 적어지고, 그렇게 되면 그 강도가 약해지고 에너지 가용률 자체도 떨어져요. 이게 재밌는 거예요.

광자 하나에 대해서도 에너지 가용률만큼의 자유에너지가 가느냐, 그건 아니에요. 그 밀도가 작아지면 에너지 가용률도 확 떨어져요. 그래서 어느 정도 되면 에너지는 오는데 에너지 가용률은 거의 0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자유에너지는 없어, 빛은 오지만.

최우석   아, 밀도가 낮으면 자유에너지가 없는 빛도 있는 건가요?

장회익   그렇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 태양에서는 자유에너지가 많이 오지만, 더 멀리 있는 별에서는 에너지는 오지만 자유에너지는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빛을 볼 수도 없어. 자유에너지가 있어서 어떤 작용을 해야 우리가 보는 것이 가능한데, 자유에너지가 없으면 볼 방법이 없지.

황승미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탐지해요?

장회익   천체망원경으로 빛을 모으면 밀도가 커져요. 그래서 볼 수가 있는 거야. 망원경을 안 쓰고 그냥은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에너지가 적지만 오기는 오는데 그냥은 못 보는 거야. 그래서 이 에너지 가용률 식이 천체 관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자유에너지가 있어야 뭔가 작용을 하는데 작용을 못 하니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몇 사람들한테 이 식을 이용해서 천문학에 이용해보라고 했는데, 아직 안 하고 있네. (웃음)

[그림 6] 지구에 도달하는 황색광의 경우

장회익   그리고 지구에 오는 햇빛 중에서 황색광이 제일 중요해요.(그림 6) 녹색이 아니야. 광합성을 하는 색깔은 황색이에요. 그런데 왜 녹색으로 보이나? 백색에서 황색을 빼면 녹색만 남아요. 식물은 황색을 쓰는 거야. 녹색은 쓰고 남은 색깔인 거예요. (웃음) 황색 빛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가용율 에타 η값 0.764를 ΔU에 곱해주면 자유에너지 ΔF가 돼요.

7. 준안정 상태

[그림 7] 준안정 상태에 놓인 대상

장회익   여기서 중요한 것이 ‘준안정 상태’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다 자유에너지 최저 상태에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되면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 상태(자유에너지가 최저인 상태)는 엔트로피가 최대인 상태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림 7]에서, 왼쪽 파란 공의 상태가 자유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예요. 오른쪽 준안정 상태에 있는 것이 왼쪽으로 떨어질 확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확률보다 크죠. 그래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올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준안정 상태에 있는 것들이 있어요.

안정 상태와 준안정 상태 사이에 있는 장벽을 넘어야 왼쪽으로 넘어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장벽이 크면 준안정 상태 범위 내에서 자유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에 있지, 더 낮은 안정 상태로는 못 넘어갈 수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상당한 시간동안 준안정 상태에 있다가,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자극이 온다든가 하면 안정 상태로 넘어가는 거야. 그래서 오른쪽의 상태를 ‘준안정 상태’라고 얘기를 해요.

[그림 8] 스스로 짜인 계의 형성

장회익   그런데 이런 것이 여러 개가 쌓일 수 있어요. [그림 7]에서 준안정 상태에 있는 입자를 하나로 그렸는데 이건 상징적으로 그린 거예요. [그림 8]을 보면 준안정 상태에 있는 것들이 여러 개 쌓여서 이것이 어떤 하나의 형태를 가질 수가 있지. 자유에너지가 가장 낮은 것(왼쪽 파란색 공의 상태)보다는 준안정 상태의 자유에너지가 높기는 하지만, 상당히 안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어요. 이런 것을 ‘국소질서’라고 불러요.

상당히 낮은 엔트로피를 가진 어떤 물질의 덩어리를 ‘국소질서’라고 해요. 컵처럼 구분 가능한 어떤 물체가 다 국소질서죠. 그래서 이런 컵이 하나 생기면 상태가 유지가 돼요. 컵 같은 것들도 다 부스러져서 흩어져야 자유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되는데 그렇지 않고 컵이라는 형태가 유지되고 있거든. 그러니까 흩어지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는 이런(그림 8) 에너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보면 돼요.

최우석   물리학계와 선생님의 이론에서 말하는 ‘질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은데요. 가령 다이아몬드 구조 혹은 탄소의 흑연 구조라고 하는 것들도 질서인가요?

장회익   어떤 면에서는 그것도 질서죠. 그것보다는 더 확대된 개념이라고 보면 돼요. 일정한 공간상에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경우죠.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의 경우를 보면 이것은 굉장히 안정된 국소질서예요. 왜냐하면 다이아몬드는 잘 안 깨지잖아요. 자유에너지가 최소인 안정 상태로 넘어가기 위한 장벽이 높아요.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한번 형성되면 굉장히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죠. 다이아몬드를 구성하는 탄소들이 정확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고, 그것들이 다이아몬드의 중요한 성질들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것은 틀림없이 질서라고 할 수 있어요.

최우석   그런데 다이아몬드 같은 경우에 그런 구조가 저절로 생겼다고 가정하면, 특정 온도대에서 가장 낮은 자유에너지인 상태가 바로 다이아몬드 구조라서 다이아몬드로 있는 것 아닌가요?

장회익   물론 그런데 일단 다이아몬드가 되고 나면 다른 것으로 잘 안 바뀌지.

최우석   다이아몬드는 가장 안정된 상태에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형태이지 않나요?

장회익   준안정 상태 내에서 안정한 상태라는 거예요. ‘준안정 상태’에서 ‘안정 상태’로 넘어가는 장벽이 아주 높아요. 준안정 상태는 안정 상태에 비해서는 굉장히 높은 질서를 이루고 있는 거지. 자유에너지의 크기가 질서를 나타내는 중요한 하나의 척도예요.

최우석   그렇다면 탄소 원자들로 흩어지는 것이 더 안정된 상태인 건가요?

장회익   그렇지. 탄소 원자들을 가지고 우리가 다이아몬드를 만들기는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해요. 물론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굉장히 어려워. 우연히 지구 지각의 활동에 의해서 한군데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천연 다이아몬드고, 인공적으로 만들려면 에너지 장벽을 넘어갈 수 있도록 잘 조정해줘야 가능하죠. 일단 준안정 상태에 있는 다이아몬드는 그 자체로는 안정되어 있지만, 안정 상태보다는 덜 안정한 상태인 거죠. 그러니까 언젠가는 탄소 원자들로 깨질 가능성은 있다. 

최우석   지금 온도의 우주에서 원자핵과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이 따로따로 다니는 것보다 이것들이 원자 구조를 이루는 게 가장 자유에너지가 낮은 안정 상태라고 본다면 거기까지는 굳이 질서라고 볼 수는 없는데 그것들이 분자를 이룬다고 한다면 거기서부터 질서라고 불러야 할까요?

장회익   조금 구분해야 돼요. 여기서 ‘질서’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에요. 공간적인 배열이 특별하게 이루어져 있으면 그런 의미에서 질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유에너지가 최저냐 아니냐, 그건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질서 개념과 좀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들은 공간적인 배열에 초점을 맞춘 질서 개념은 좁은 의미의 질서라고 보는 거예요.

물론 작은 활동이라도 무질서한 활동이 아닐 경우에는 동적인 질서가 되기도 하죠. 질서라는 개념은 공간적인 함축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요. 자유에너지의 낮고 높음은 외부 온도와 관계가 되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질서 개념과는 조금 구분을 해서 이해해야 돼요.

최우석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온도처럼 동역학 안에서는 논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온도와 엔트로피는 여러 입자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통계역학적인 현상이고 통계역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지 동역학적으로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면 질서도 통계역학적으로만 얘기될 수 있는 현상인가요?

장회익   꼭 그렇게 나누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는 있어요. 질서가 형성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은 당연히 통계역학적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동역학적인 기능이 굉장히 많이 작용이 돼요. 그래서 동역학적인 어떤 구조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면 어떤 형태의 모양이 이루어진다, 이런 것들은 동역학의 영향을 깊이 받고 부분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동역학적인 것, 저것은 통계역학적인 것 하고 나누는 것 보다는 함께 보는 것이 좋아요.

실제로는 다이아몬드가 다이아몬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히려 양자역학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 되느냐 따져야 돼요. 어떤 물질이 어떤 구조가 될 수 있는가 안 되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따질 때는 동역학에 기본을 두고 있어요. 실제로 그렇게 되느냐 안 되느냐하는  것은 주변의 여건, 온도 등을 이용하는 통계역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동역학과 통계역학으로 딱 잘라서 이건 이쪽이고 저건 저쪽이다 말하기는 좀 그렇고, 합쳐서 이해를 해야 더 적합해요.

최우석   엔트로피, 자유에너지 같은 개념 없이도 질서를 얘기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장회익   질서라고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개념이에요. 물질의 모임이 규칙성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이런 것이기 때문에 그걸 이루는 데에는 동역학도 기여하고 통계역학도 기여하죠.

최우석   선생님께서 ‘정교성’이라고 쓰신 개념이 그 공간적 규칙성을 의미하는 건가요?

장회익   그것에 더해서 부-엔트로피의 성격이 훨씬 더 강한 개념이에요. 사실은 뉘앙스 차이지. 흔히 질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교성은 내가 즐겨 쓰는 개념이에요. 그래서 나는 부-엔트로피에 해당하는 개념을 정교성으로 쓸 때 의미가 더 잘 와닿는다고 봐요. ‘국소질서’도 비슷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공간적인 어떤 짜임이라는 의미에서 ‘국소질서’라는 말을 많이 채용하고 있어요.

8. 국소질서

[그림 9] 두 형태의 국소질서

장회익   가장 대표적인 ‘국소질서’를 들자면 돌 조각 같은 거죠. 돌 모양으로 모여서 상당한 기간 동안 안 변해요. 그런데 좀 유연성이 있지만 토끼도 토끼라는 덩어리로 있으니까 이것도 국소질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돌 조각도 토끼도 꽤 흔하게 보는 것들이야. 그런데 우리가 보통 토끼를 보면 놀라고 돌을 보면 별로 안 놀란다? 별로 그렇지 않죠. (웃음) 그러나 자연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우주의 모든 것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우주 전체를 다 관람하고 마지막으로 지구에 와서 토끼를 보면 놀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우리는 지금 지구에 살지만 지금까지 우주 여행을 했잖아요. 참이치를 찾아서 우주를 여행하고 거기서 참이치를 발견하고 전체를 관람하고 이제 고향집 지구에 왔다 이거야. 와서 보니까 토끼같은 게 있거든.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질 않아, 의례히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우주를 여행하고 온 사람한테는 깜짝 놀랄 일인 거야. 우주에 어떻게 토끼같은 게 있을 수 있냐 이거야. 왜 그러냐?

정교성을 따져보면 돌 조각의 경우는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해온 방식으로 비교적 어렵지 않게 국소질서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굳어져서 형성돼서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우주에 흔하게 있는 거야. 그런데 토끼는 우주를 여행한 사람이 본 일이 없는 거야. 다른 데에는 없고 바로 지구에 오니까 있는 거야. 그런데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낮잠만 자. (웃음) 그 얘기가 바로 집에 도착한 그림, 곽암의 시 얘기예요.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거야. 그런데 정말 이걸 이해해야 되는 거거든. 토끼가 어떻게 가능하냐 이거야.

우주를 여행하고 온 사람은 토끼를 가볍게 볼 수가 없어요. 토끼가 정교한 정도를 돌 조각의 정교한 정도에 비하면 천문학적인 숫자 가지고도 안 돼요. 돌 조각의 정교한 정도를 1이라고 한다면 토끼의 정교한 정도는 10에 1000억 제곱 정도의 정교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정교성을 가진 것이 지구상에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고 있다 이거지. 이게 생명의 문제야. 말하자면 물리학자의 눈에 비친 생명의 문제예요. 이게 이해가 안 되면 생명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어떻게 이해할 거냐?

최우석   생명이 그렇게 정교한 건가요?

장회익   그렇지!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한테는 이게 너무나 당연해서 전혀 놀랍지 않지만 물리학을 이해하는 사람, 다른 건 몰라도 이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을 다 이해하고 나서 이 토끼를 보면 놀랄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이런 게 나오나?

[그림 10] 정교성을 한 단계 올리는데 요하는 시간

장회익   얼마냐 어려우냐? 여기 [그림 10]에 예를 하나 들었어요. 여기서 퍼즐 모양 하나가 국소질서예요. 녹색 구름 모양은 그냥 떠돌아다니는 물질, 원자나 분자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바탕에는 이런 물질들이 많이 있어요.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요. 지금까지 우주가 식어오면서 많은 물질들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면서 이런 것들이 충분히 있죠.

그런데 우연히 국소질서가 만들어질 수는 있어. 아까 얘기했지만 준안정 상태로 올라갔다가 안정 상태로 떨어지기는 쉬운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던 중에 어쩌다보니 거기에 신통하게 국소질서(그림 10에서 녹색 퍼즐) 하나가 만들어질 수 있어. 그런데 주변 여건에 따라서 다르지만 지구라는 여건에서 이런 국소질서 하나가 만들어질 확률을, 이것이 얼마 만에 하나 만들어지느냐하는  시간으로 대충 나타낼 수가 있어요. 확률이 높으면 짧은 시간 안에 나타날 것이고 확률이 낮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우연히 하나 나올 거예요.

100만 년(T1)에 국소질서 하나가 나온다고 가정 해봐요. 이 국소질서가 얼마나 정교하냐? 녹색 구름 모양 같은 바탕 물질이 100만 년 동안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국소질서 하나가 나왔다는 얘기예요. 상당히 정교한 것이 생길 수 있죠. 꽤 정교한 것도 시간을 오래 끌면 하나 생길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에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보다 2배 더 정교한 거예요(그림 10에서 녹색 퍼즐과 노란색 퍼즐이 연결된 것). 2배 더 정교한 것이 생길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얼마나 시간(T)이 지나야 그것이 생기겠느냐하는 문제예요. 그런데 여기서 힌트는, 처음에 국소질서 하나가 생기고 늘 이 자리에 있고 없어지지 않고 계속 있다고 해봐요.

이건 가설이에요. 왜냐하면 100만 년 만에 하나 생겼지만 한 2-3일 만에 없어지고 깨질 수 있는데 이게 계속 있다고 가정을 하는 거예요. 이런 여건 아래 다시 비슷한 국소질서가 또 하나 생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또 100만 년이라고 가정을 해보자고. 그러니까 처음 국소질서가 생기고 그것이 안 없어지고 계속 있을 경우 2배로 더 정교한 국소질서가 생기는 데 200만 년이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처음 생긴 국소질서가 계속 그 자리에 있느냐? 아니거든. 만들어지기는 어렵지만 깨지기는 쉬운 거예요. 웬만한 장벽을 가져도 만들어지기는 어렵고 깨지기는 쉬워요. 그래서 가정을 하기를 100만 년에 이거 하나 생겼지만 2-3 혹은 3-4일이면 깨진다고 이렇게 가정을 한 거예요. 그러면 왜 3-4일이냐? 1년의 100분의 1이 3.65일이니까 그렇게 잡았어요. (웃음) 계산하기 쉽게 100분의 1년이면 깨진다고 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국소질서가 생기려면 진짜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이게 문제야. 그림 10에서 지속 시간 $\tau$(타우)가 100만 년이면, 첫 번째 국소질서가 유지될 확률 n=1이 되고 T2는 100만 년이 돼요. 그런데 지속 시간 $\tau$가 100분의 1년, 즉 3-4일이면 첫 번째 국소질서가 유지될 확률은 n=(1/100)/106=1/108이 되고, 따라서 두 번째 국소질서가 생길 때까지 걸리는 시간 T는 106×108=1014 즉 100조 년이 돼요.

우연히 100만 년에 하나 생긴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대단한 질서도 아니지. 꽤 희귀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런데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데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조 년이야. 100조 년이라는 시간은 얼마냐? 빅뱅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 7천 번 반복돼야 두 번째 국소질서 하나 생긴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정교한 게 생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토끼 같은 것은 이런 단순한 국소질서가 아니라 그게 100억 개 쌓여야 생기는 거야. 그런 토끼가 138억 년 밖에 안 된 우주의 어느 곳에서 걸어 다니고 있어. 이걸 설명을 해야 되죠. 힌트, 열쇠가 어디 있는지 봅시다.

9.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그림 11] 이차질서의 출현

장회익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핵심 개념이에요. 아까 ‘국소질서’ 얘기를 했죠. 여기 컵같은 어떤 물건이 놓여있으면 그게 국소질서야. 그런데 여기다가 ‘자체촉매적’(Auto-catalytic)이라는 말을 붙여놨어요.

‘자체촉매적이다’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촉매가 뭐냐하는  걸 먼저 이해해야 돼요. 화학에서 많이 쓰는 개념이죠. 화학변화가 일어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가 있어요. 아까 그림 7에서 봤듯이 안정 상태 쪽의 자유에너지가 분명히 낮아요. 그런데 에너지 장벽이 있어서 그걸 넘을 확률이 작으면 변화하는 데 오래 걸리지. 장벽이 비교적 낮으면 비교적 변화가 빨리 일어나요.

그때에 이 장벽을 낮춰주는 물질이 있으면 쉽게 넘어가죠. 그 물질이 바로 촉매야. 그러니까 자유에너지가 낮은 쪽으로 가기는 가는데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해주는 어떤 매체가 있으면 변화의 방향은 여전히 같지만 더 빨리 가게 해준다는 거지. 그래서 촉진시킨다고 해서 촉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체촉매’라고 하는 것은 뭐냐? 예를 들어서 컵이 하나 만들어졌다고 해봅시다. 지금 이 프로세스는 어떤 소재에서 컵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에 있고 100만 년 만에 우연히 컵이 하나 만들어졌다고 해봐요. 이 컵이 자체촉매적 기능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 뜻은 그 프로세스 속에 컵이 들어갔을 때 이 전체 프로세스에서 컵이 마구 쏟아진다는 거야. 컵이 촉매 노릇을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이 국소질서를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런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있느냐, 그리고 그런 것이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하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봐야 돼요. 어떤 경우에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되는지를 먼저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 그게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도록 합시다.

예를 들어서 컵같은 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바탕질서 속에서 떠돌아다녀요. [그림 12]에 몇 가지 다른 그림(A, B, C, D, E)으로 그려놨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빨간 것과 노란 것이 서로 친화력이 있고, 파란 것끼리도 서로 친화력이 있고, E는 그냥 있는 물질을 나타내요.

[그림 12]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를 이룰 바탕질서

장회익   그림에서 복잡하게 보이지만 구성성분들은 이 다섯 종류 A, B, C, D, E예요. A와 B는 상당한 기간 동안 붙어 있을 수 있고 특별한 외부의 영향이 없으면 잘 안 떨어진다고 가정해봅시다. C와 D도 그렇고. 그렇지만 A와 C, D 혹은 B와 C, D는 그런 관계가 없다고 해봐요. 그러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그림 13] 바탕질서 구성성분들 사이의 공액관계

장회익   100만 년이 지났더니 구성성분들이 [그림 14]에서처럼 α와 β같은 구조로 연결됐다 이거야. 서로 친화력이 있는 것들끼리 만난 거예요. 지금 여기서는 간단히 해봤지만 이렇게 우연하게 짜이는 것은 굉장히 높은 정교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어떤 특별한 순서를 가지고 연결이 돼있다는 것은 이 안에 상당히 많은 정보가 기록이 돼있는 거예요. 이 정보 때문에 이 구성(α, β)이 바탕물질(𝛾;감마. 녹색 구름)을 부려서 어떤 여러 가지 기능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림 14]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의 단위 구성체

장회익   그리고 여기서 𝛾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을 수 있겠지만 α와 β의 간격을 좁혔다 넓혔다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을 해봐요. 이런 상황에서 이 주변에 바탕질서가 마구 흘러들어온다고 해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림 15에서처럼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주변에 바탕질서를 이루는 성분물질들이 지나가는데 이런 것들이 한참 흘러가다보면 친화력이 있는 것들끼리 우연히 만나게 되면 붙어 있게 돼요.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냥 지나갈 것이고.

[그림 15] 바탕물질 성분물질의 흐름 속에 놓인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장회익   순식간에 친화력 가지는 것들끼리 연결돼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들이 더 만들어져요.(그림 16) 그리고 녹색 구름 모양의 바탕물질은 이런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들이 이루고 있는 구성(간격)을 넓혔다 좁혔다하는 기능을 하는 거예요.

[그림 16] 자체촉매 작업의 완료

장회익   그렇게 되면 이렇게 똑같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하나에서 두 개가 되지.(그림 17) 하나가 따로 만들어지려면 100만 년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확률이 적고 어려운데,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하나만 있으면 바로 이런 메카니즘 때문에 순식간에 많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자체촉매적 기능을 한 거예요. 처음에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있었고 이런 프로세스 안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이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의 한 사례가 되는 거예요. 

[그림 17] 다음 세대 자체촉매 작업 개시

장회익   맨 처음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그림 18에서 소용돌이 모양)가 만들어지는 데 100만 년이 걸렸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까 2개가 되고, 그 다음에 만들어지는 것들도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야. 그 다음에 또 그렇게 되고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두 달을 지나면 10만 개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수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라서 수 억 정도로 그렇게 큰 수까지 가지는 않아요. (웃음) 지구가 유한하고 공간이 유한하고 지구상의 물질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10만 정도가 되면 더 이상 만들어질 소재도 좀 부족해서 더 불어나지 않는다고 가정을 한 거예요. 그러면 줄어드느냐? 줄어드는 것을 보상해주는 만큼은 새로 생겨나는 거지. 그때부터는 10만 전후로 해서 거의 비슷하게 유지가 되는 거예요.

[그림 18]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계열 형성

장회익   이제 다시 아까 그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그림 19) 처음 생긴 국소질서 녹색 퍼즐을 이번에는 자체촉매적 국소질서(ALO)라고 가정을 해봐요.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아닐 경우에는 100억 분의 1의 확률로 있다가 없어지는데, 이번에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라고 가정을 해보면 10만 개의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계속 있게 되는 거예요.

10만 개의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있게 되면 10만 개 중에서 어떤 것을 타고 올라가도 새로운 국소질서(녹색퍼즐+노란색퍼즐)가 될 수 있지. 하나가 있을 때에 비해서 시간이 10만 분의 1로 줄어들어요. 100만을 10만으로 나누면 10이죠. 매 10년마다 생기는 거예요.

[그림 19]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있을 경우 정교성을 한 단계 올리는데 요하는 시간

장회익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없으면 두 번째 국소질서가 생기는 데 100조 년이 걸렸는데, 이 국소질서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되면 매 10년 마다 하나씩 생겨요. 우주 역사 7천 번에 한번 일어날 기적이 10년마다 생기고, 그리고 새로 생긴 국소질서도 또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예요. 그렇게 되면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다시 10년 마다 또 한 단계 높아져서 계속 쌓이는 거야. 왜냐하면 한번 10만 개가 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속 10만 개로 유지가 되는데, 또 다시 다른 것이 10만 개가 그 위에 쌓이니까 거의 누적이 되거든. 누적이 되니까 하나의 기적 위에 또 더 높은 기적, 더 높은 기적이 쌓이는 거야.

그래서 40억 년 동안 쌓였다, 그리고 10년 마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기적의 횟수가 얼마나 되겠어요? 40억 년 동안 매 10년 마다 기적이 일어났으면 총 기적이 일어난 횟수는 4억 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4억 번의 기적이 일어나서 쌓이면 그것이 토끼가 되는 거야. 토끼는 4억 번의 기적이 쌓인 결과인데 그것을 알고 토끼를 보면 놀랄 수밖에 없는 거야. 실제로는 4억 번의 기적이 누적이 돼서 나타난 결과거든. 이게 핵심이에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생명체들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정교한 것들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만 따로 보면 도대체 확률적으로 있을 수가 없지만, 이것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 그리고 현재 그것 자체까지도 자체촉매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경우에 그런 놀라운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이 어떻게 해서 토끼가 지구상에 걸어다닐 수 있느냐하는  것을 설명한 거예요.

다시 정리해보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생명이 있을 수 있게 됐고,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무상으로 자유에너지가 지구로 쏟아져 들어와. 그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얼마든지 필요한 활동을 해요. 그 활동이라는 것은 그 생명체를 유지시키는 데 쓰일 수 있고 그 생명을 확장하는 데 쓰일 수 있는 활동이에요.

자유에너지는 무상으로 엄청나게 들어오고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에 의해서 그런 정교한 것이 생기면, 그 정교한 것이 바로 자신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구조와 활동으로 바꾸게 되면 그게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생명 현상이다하는 거예요.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생명을 이해 못한 것이라고 봐요.

적어도 물리학자인 내 입장에서 보면, 지금 많은 생물학자들이 생명 속에 들어가서 파헤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생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왜 어떻게 해서 그런 생명이라는 것이 나왔나하는 것을 자연의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서 이해를 할 때에 생명이 이해가 된다, 이런 얘기죠.

(대담 8-1, 끝)

대담 : 장회익, 최우석, 황승미
영상 편집 : 최우석
녹취, 글 편집 : 황승미
전체 제작 : 녹색아카데미


녹색아카데미 유튜브 채널

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목록 (유튜브 영상 녹취록 1차 편집본. 완결)

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목록 (유튜브 대담영상 녹취록 2차 편집본)

자연철학 세미나 녹취록 목록

녹취록 전체 목록 : 대담영상(1차 편집본) & 세미나

자연철학이야기 카툰

자연철학 세미나 게시판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