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그린뉴딜 제안 공모전 낙선기 (2)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 파시브기술연구소)


양평군 군정발전 제안 공모전 포스터

지난 여름 나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가 사는 지역, 양평의 그린뉴딜 정책을 제안하는 공모전에 응모를 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가 10월말에 발표되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제 제안은 건물의 지붕과 벽 뿐 아니라 길과 둑, 다리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건조물 위에서 햇빛발전을 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을 맞아 지역형 그린뉴딜 사업으로 이러한 방향의 시범사업을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에너지전환, 녹색전환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평소 생각할만한 발상이었습니다. 떨어질 만해서 떨어졌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어떤 이유로 거부되는지 그 맥락을 이해해 볼 기회도 되겠다 싶어 낙선기를 정리해 봅니다.

다소 길어서 두 차례로 나누어 써보겠습니다. 첫 편에서는 제가 제안했던 바를 소개하고, 두 번째 글에서는 이 제안이 왜 ‘불채택’ 되었는지 심사결과를 소개하면서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에너지전환 아이디어가 외면받는지, 그리고 장차 어떤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겠는지 저 나름의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흔한 일에서도 뭔가 생각할 점을 찾자는 뜻으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낙선기 두 번째 글인 오늘 글에서는 결과를 소개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지역 길·둑·다리 햇빛발전 시범사업 제안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1. 공모제안 심사결과

10월말 발표된 결과는 ‘불채택’이었습니다. 양평군은 아래와 같이 심사결과를 보내왔습니다.

실무부서에서는 5가지 기준으로 검토를 했던가 본데 ‘효율성 및 효과성’과 ‘적용 범위’에 대한 의견이 눈에 띕니다.

현재 양평군은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공유재산별, 마을별, 개인별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 지속 추진 중 

제안해 주신 길·둑·다리 위치의 소유자(재산관리관)는 별도 존재하며 

소유자의 동의와 사용허가 및 인근 주민들의 의견 수렴 등에 소요되는 인력·비용·시간을 고려했을 때

양평군 소유의 공유재산 중 신재생에너지 설치 가능 대상을 발굴하여 그린뉴딜에 힘쓰는 방법이 더욱 효율적일 것으로 사료됨

햇빛발전 시범사업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부서 및 팀에 한하여 추진가능함 

전 부서에 적용가능성 낮음

2쪽의 ‘종합 의견’에 보다 자세한 검토 의견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형 그린뉴딜,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서는 지자체 단독으로는 불가하며 주민들의 참여가 수반되어야 함은 분명함 

양평은 주민참여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각 세대 주택태양광 보급, 마을 발전소 설치(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 협동조합 구성) 등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여 추진 중임

또한 군 공유재산에도 매년 지속적으로 재산관리관의 설치 희망 의사를 반영하여 신재생에너지 설치를 하고 있음 

제안해 주신 길·둑·다리 햇빛발전 시범사업에 대하여

1) 길(양근로): 재산관리관 양평군으로 태양광 설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사업비, 주민의견, 교통 방해여부 등)가 수반 되어야 함

2) 둑(양근강변길 강둑): 재산관리관 국토관리청으로 둑(제방)의 기능유지를 위해서는 둑에 태양광 시설물 설치 불가

3) 다리(양근대교 및 양평대교): 재산관리관 경기도로 현재 양근대교는 교량 확장 공사가 계획되어 있으며 교량의 태양광 설치 가능 유무는 먼저 안전에 대한 구조검토 선행작업과 차후 유지관리에 대한 계획의 면밀함 검토가 필요함 

이에 신재생에너지보급은 현재 추진 중인 군공유재산의 태양광 시설물 설치를 지속 확대 추진함이 현재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 사료되며,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공동발전소를 지속 확대 추진하여 주민들의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참여 하는 방향으로 추진함이 알맞을 것으로 사료됨 

또한 공유재산의 태양광 시설물 설치는 각 재산의 재산관리관의 사용허가가 필요한 부분으로 재산관리관의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짐

제안심사위원회 1차 심사위원 12명 및 2차 심사위원 11명의 만장일치로, 

실무부서의 검토의견과 동일하게 “불채택” 의결

이러한 실무부서의 검토의견을 토대로 제안심사위원회는 위와 같이 최종 심사결과를 내었다고 합니다.

사실 채택되기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이런 아이디어도 있다는 걸 보이자는 목적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심사에서 모두 만장일치로 거절했다고 하니 채택된 제안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심사결과는 옆에 첨부한 표와 같았습니다[1]. ‘생활공감정책 제안’ 영역에 속하는 소소하면서도 손쉽게 실행가능한 것들이 주로 채택되었습니다.

저는 공모주제 가운데에 “양평형 뉴딜 정책 제안” 분야가 있길래 이것이 그린뉴딜에 대한 것인가보다 생각하고 ‘길·둑·다리 햇빛발전 시범사업’ 제안을 했던 것인데 당선작들을 보면 그린뉴딜에 관심이 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며칠 공을 들였던 제안이라 그냥 넘어가기는 아쉬워서 짤막한 심사결과를 들고 왜 떨어졌는지 직간접적인 원인을 찾아 보려고 했습니다.  작은 정보라도 얻게 되면 그 또한 소득이 될테니까요.

 물론 제안의 질이나 응모 자체가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실현가능성이 너무 낮아서 실무진과 심사위원들이 난감해했을지도 모르고, 공모전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낙선기를 쓰다가 “경기도 에너지원 및 부지(공공·개인) 발굴 공모 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곳이야말로 제안과 성격이 맞는 공모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2]. (마감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어서 입맛을 다셨습니다만 이런 취지의 노력이 없지 않다는 점은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해서는 개인적으로 잘못했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제안의 질도 문제되지 않고 공모전의 성격도 어긋나지 않았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였습니다. 우선은 심사결과 안에서 직접적인 이유를 찾아보았는데 ‘인공건조물의 소유자(재산관리관) 문제’와 ‘비효율성의 문제’,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길·둑·다리 햇빛발전 시범사업’ 제안이 채택되지 않은 직접적인 이유

(1) 인공건조물의 소유자(재산관리관) 문제

실무부서 검토의견은 “제안해주신 길·둑·다리 위치의 소유자(재산관리관)는 별도 존재하며”, 후보지로 지목한 길(양근로), 둑(양근강변길 강둑), 그리고 다리(양근대교 및 양평대교)의 재산관리관이 각각 양평군, 국토관리청, 경기도라는 것이었습니다. 행정적으로 밝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 주민의 차이는 이런 데에서 나는 것 같습니다.

양평군의 그린뉴딜 사업을 제안하는 것이니 만큼 시범사업의 후보지를 생각할 때 군이 관할하는 건조물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길을 선정할 때에는 국도와 지방도를 피하고 군도 가운데에서 고르려고 군도 현황 자료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길 위 햇빛발전에 제약요소가 많기에 보다 손쉬운 강둑과 다리도 포함시켰는데 읍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읍내의 이 시설이 양평군 소유가 아닐지는 미처 짐작하지 못하였습니다.

에너지전환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주 접하는 시설물을 보고 “저기를 저렇게 놀리지 말고 햇빛발전을 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할 겁니다. 저 역시 여러 해동안 저 강둑에 햇빛발전을 하면 좋을텐데, 저 길에 햇빛발전을 하면 좋을텐데 생각해오다가 마침 기회가 있어서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관문이 바로 관할 문제인가 봅니다.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보고 이용하는 시설이 뜻밖에도 해당 지자체 소유가 아닌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권한이 없는 곳에서 사업을 하기는 어렵다는 지자체 입장, 공무원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에너지전환을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마주하게 될 이 문제를 누군가 풀기는 풀어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공공의 사업을 요구하는 주민이 이런 제도적인 사항을 파악해서 관할 기관마다 찾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시민들은 자유롭게 상상하고 이를 수렴하는 행정기관이 제도적인 문제를 협의하고 해결할지 사회적으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의 글에서 서울시의 2018년 강변북로 햇빛발전소 설립 계획을 언급한 바 있는데 교량과 옹벽, 고가차도, 가로등 등 이용하는 시설이 다양하여 관할 기관도 많고 협의 과정도 복잡했으리라 짐작합니다[3][4]. 아마도 이 경우에는 서울시가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을 도맡지 않았을까요?

저는 에너지전환 사업 아이디어를 내는 주민이나 기업이 관할 문제까지 책임을 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자유롭게 내되 실현에 따르는 장애물은 행정기관이 해소해 주어야 할 것이라 봅니다. 지역 주민이나 기업이 지역 안 공공시설을 이용한 에너지전환 사업 아이디어를 낼 때 제도적인 문제에서부터 기술과 자금 조달의 문제까지 검토해주고 실현될 수 있게 돕는 지역별 창구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창구가 중앙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로 계통을 이루어서 지역 안팍의 걸림돌을 두루 해결해주는 국가적인 시스템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2) 비효율성의 문제

실무부서 검토의견에서는 시설마다 소유자가 다르다는 지적에 이어 “소유자의 동의와 사용허가 및 인근 주민들의 의견 수렴 등에 소요되는 인력·비용·시간을 고려했을 때 양평군 소유의 공유재산 중 신재생에너지 설치 가능 대상을 발굴하여 그린뉴딜에 힘쓰는 방법이 더욱 효율적일 것으로 사료됨”이라며 효율성 및 효과성의 문제를 짚었습니다. 이 역시 행정기관의 입장에 서는 합리적인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재원과 인력을 가지고 분기마다, 또는 사업기간마다 성과를 내려면 손쉬운 곳에서부터 일을 해나가는 것이 합당합니다.

양근강변길 강둑의 자전거길 위 쪽 경사면은 남한강 평소 물높이로부터 최소한 3~4m 이상 위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엄밀한 연구가 있어야하겠지만 햇빛발전소가 둑의 기능을 저해하거나 남한강 물이 불어 잠길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가능성을 타진할 때 일률적으로 “둑에 태양광 시설물 설치 불가”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군도에 길 위 햇빛발전소를 세우고자 하면 군 소유라고 해도 신경 써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도로 기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진동과 바람, 그리고 교통 사고 등에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을지 조건와 비용에 대해 연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업 결정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 인근 상가, 다수의 도로 이용 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협의를 하는 지난한 작업도 있어야 할 겁니다. 강둑 햇빛발전소라면 소유자인 국토관리청의 사용허가를 받는 일이 중요할텐데 “둑의 기능유지를 위해서는 둑에 태양광 시설물 설치 불가” 입장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연구와 논의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산책로를 이용하면서 늘 강둑을 접하는 주민들, 맞은 편에서 강둑을 늘 바라보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이해도 구해야 합니다. 다리 옆면에 햇빛발전을 하자고 할 때에는 구조 안전 문제가 특히 중요해 질 것이고, 미관 문제도 여러 곳에서 제기될테니 역시 합의까지 길고 험한 과정이 펼쳐질 겁니다.

많은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공기업, 민간기업이 간척지나 염전, 규모 큰 농지와 산지 등에 대규모 햇빛발전소를 세우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복잡한 문제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겁니다. 짧은 기간 안에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 설비 용량을 대대적으로 늘릴 수 있고, 규모를 키워서 설치까지 들어가는 각종의 비용의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겁니다.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건물의 지붕과 벽 햇빛발전은 잘 늘지 않는데 이런 탓이 큽니다. 이해관계자 설득과 복잡한 인허가 과정, 민원 해결에 드는 인력과 비용, 시간이 크게 부담됩니다. 아울러 맨땅에 설치하는 것에 비해 설치 비용은 큰 반면 설치 용량과 발전량은 적으므로 확실히 비효율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효율성과 경제성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노력까지도 할 수 있는 한 다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비효율을 감내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추진 주체의 강력한 의지나 시민, 소비자들의 크나큰 압력도 이런 요소가 될 겁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에너지전환 의식은 미약하므로 이 밖에도 비효율을 감내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여러가지 유인책이 있어야 할 겁니다. 어떤 유인책이 있어야 지자체가 온갖 복잡다단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농지와 산지를 보호하면서 인공 건조물에 햇빛발전을 추진하게 될까요? 여기에는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3. ‘길·둑·다리 햇빛발전 시범사업’ 제안이 채택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

‘소유자 문제’와 ‘비효율성의 문제’, 두 가지로 직접적인 이유를 정리해보았지만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근본적인 이유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있게 제시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시론적인 차원에서 제가 생각해 본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에너지 자치의 문제

길지 않은 검토의견에서 제가 엿본 것은 지자체가 재생가능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데에 절박하지도 다급하지도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대의를 부정하지도 않고, 나름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검토 의견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자체는 “공유재산별, 마을별, 개인별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을 “지속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 2015년 경기도는 “경기도 에너지비전 2030”을 세워 2030년까지 도의 전력자립도를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바 있고[5], 2016년 양평군은 한국기후변화연구원에 “양평군 에너지자립 실행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을 의뢰하기도 했습니다[6]. 지자체가 에너지자립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 사업은 대부분 지자체의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이고 지방자치 그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실적이 높으면 그에 따라 중앙 정부로부터 교부금을 더 받는다든지, 지원 사업을 더 많이 따온다든지 하는 또 다른 실적으로 연결될 겁니다. 그러나 지역의 전력이나 에너지 자립도가 낮다고 지자체에 불이익이 가해진다든지, 자립도가 높은 지역에 이익이 간다든지 하는 이해관계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기요금의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들이 있지만 아직 법률 개정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상태입니다[7].

만약 주민과 사업체가 쓰는 에너지를 지역에서 자급할수록 지역이 윤택해지고 다른 지역과 국가에서 에너지를 얻어다 쓰는 만큼 소비자와 지자체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면 각 지역은 에너지 자립에 사활을 걸게 될 겁니다. 현재는 전력 공급의 책임 및 결정 권한이 오롯이 중앙 정부와 한전에게만 있어 지역은 에너지 시스템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다시피 합니다. 서울에서 쓰는 전력을 수급하는 데에 서울시나 각 구청은 아무런 책임도 이해관계도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수도권에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느라 피해만 보고 있는 여러 지역의 지자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는 에너지 공급과 이용 체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지방자치가 미약한 서울 중심 구조가 생태적 전환에 장애가 된다고 하는 하승수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서울 중심 사회가 아니라면, 이런 방식으로 발전소와 송전선을 건설할 수 있을까? 전기가 반드시 필요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면, 수도권에 짓는 게 낫다. 그러면 최소한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선은 필요 없다.

그런데 서울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 서울사람들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들고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수도권에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짓지 못하고 동해안에 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님비(NIMBY)인가? 전기를 많이 쓰면서도 우리 지역에 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쪽이 님비인가, 아니면 우리 지역에서 쓰는 전기도 아닌데 발전소와 송전선을 우리 지역에 건설하겠다고 밀어붙이니 거기에 반대하는 것이 님비인가?  사실은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이야말로 극단의 ‘님비’이다.

이렇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발전소 짓고, 송전선 짓는 구조는 지금 필요한 생태적 전환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만약 서울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야 했다면 진작 대한민국은 ‘탈석탄’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재생에너지로 발전원을 바꾸는 것에만 있지 않다. ‘분산’과 ‘자급’의 관점이 필요하다. 중앙집중적 전력시스템을 지역분산형으로 바꿔야 한다. 자기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를 자기 지역에서 최대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 중심 사회는 그 자체로 반생태, 반생명적이다.” 

하승수(2021). “농(農)과 자치, 민주주의”. ⟪녹색평론⟫ 2021년 11-12월 통권 제181호, pp.8-10.

지역의 에너지 공급에 대한 책임과 권한의 일부라도 지방 정부에게 부여하고 지역에서 쓰는 에너지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오게 될 때 그에 합당한 부담 또한 지방 정부에게 지우게 되면 지역별로 에너지 자립에 절박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에너지를 다른 지역에 공급할 여력이 있는 지역은 에너지 공급이 지역 재정 사업과 연계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별도로 화석연료에 불이익을 주고, 농지와 산지 햇빛 전기에도 불이익을 주게 되면 건물과 도로, 그리고 여러 인공 건조물을 이용하는 데 훨씬 더 절박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역 정부가 지자체 재정 사업으로 직접 햇빛 발전 사업을 하거나 지자체 설립 공기업이 지역 햇빛 발전 사업을 주관하여 그 수익을 지역 주민들에게 배당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 봅니다.

여기에 더하여 하승수 변호사나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이 제안하는대로[8][9] 지방자치를 면·읍 자치로 발전시키는 방안이 고민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앙집권주의는 농촌 안에도 존재한다. 농촌에 있는 군청이 바로 그것이다 군청에 있는 군수는 표가 많이 있는 읍 지역에 신경을 쓰고, 군청 공무원들도 읍이나 인근 도시에 산다. 면장은 군수가 임명하는 순환보직이고,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본청인 군청의 지시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농촌 내에서도 인구가 적은 면 지역은 소외된다. 그리고 면 지역으로 온갖 환경파괴 시설들이 밀려든다.

만약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는 나라라면 이런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나라였다면 농촌지역에서는 면 단위, 읍 단위로 지방자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지방자치제도를 보면, 군수와 군청이 아예 없는 나라도 많다. 그러니 면의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대한민국도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는 그랬다. 5·16 이전의 기초지방자치는 시·읍·면 자치였다. 면장, 읍장도 직선으로 뽑고 면의원, 읍의원도 뽑았다. 군(郡)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세력이 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지방자치를 중단시키면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면·읍을 군(郡)으로 강제 통합했던 것이다.”

하승수(2021). “농(農)과 자치, 민주주의”. ⟪녹색평론⟫ 2021년 11-12월 통권 제181호, pp.12-13.

<농민신문>. 2021년 10월 13일자 기사. <https://www.nongmin.com/plan/PLN/SRS/345588/view>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은 너무나도 큰 일이기 때문에 있는 힘, 없는 역량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긁어다 쓰는 그야말로 총력 대응이어야 할 겁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더 깊게 하는 일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저항이 생기게 됩니다. 에너지 전환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햇빛발전에 지역의 농민들이 적개심을 갖게 된 현재의 상황[10]은 민주적이지 않은 사업의 결과일 것입니다. 지난한 설득과 합의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가장 빠른 길입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 없이 추진한 일은 결국 뒤로 되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인간의 삶과 문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량과 에너지라면 민주주의는 식량과 에너지의 흐름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람들의 뜻을 더 고루 반영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일하는 지역의 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기에 민주주의는 면·읍 단위의 지방자치로 심화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저는 제가 사는 양평읍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도 있고 생각도 있지만 드넓은 양평군 전체로는 시야가 미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도 뭔가를 희망할 때 협의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범위는 구보다 동일 겁니다. 민주주의를 실제 사람의 생활반경과 일치하는 지역으로 확대하고 이 단위가 지역의 식량과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될 때에 에너지전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에너지 민주주의에 관한 일은 전기사업법 등을 개정해서 한전을 재편하는 법률 개정 사항이고,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면·읍·동 수준으로 개편하는 것은 헌법 개정 사항인지라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전 재편과 헌법 개정 문제가 차기 정부에서 중요한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논의를 해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2) 상세한 에너지전환 청사진의 문제

에너지전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2000년대부터 독일의 모범을 따라 에너지전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는데 이제 한국에도 여러 연구기관과 단체에서 에너지전환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고, 올해에는 탄소중립위원회가 만들어져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한 바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비교적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를 부문별로 제시하므로 각 부문의 성과를 모아 전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필수적인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매우 성긴 수준의 시나리오라 생각합니다. 국가 전체와 부문별 수치와 비중 정도만 볼 수 있을 뿐 각 부문의 세부항이나 지역에 따른 사항은 없습니다. 국가 차원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지역별 시나리오나 부문별 시나리오도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만 더 세밀한 시나리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재 나와있는 시나리오들은 언제까지 에너지원별로 얼마를 공급한다는 방식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석탄 몇 Mt 비중 몇 %, LNG 몇 m³ 비중 몇 %, 재생가능에너지원 몇 kWt 비중 몇 % 이런 식입니다. 이 때 재생가능에너지원 중 햇빛발전 얼마, 풍력발전 얼마, 수력발전 얼마 하는 정도까지는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건물 지붕 햇빛발전 얼마, 건물 벽 햇빛발전 얼마, 길 위 햇빛발전 얼마 하는 수준까지는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별로는 아예 시나리오도 없습니다. 재생가능에너지원 전력이라면 넓은 면에 걸쳐서 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지역별 유형별 목표값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2030년까지 양평읍 건물 지붕 햇빛발전 목표 설치용량 얼마, 발전량 얼마, 양평읍 강둑 햇빛발전 목표 설치용량 얼마, 발전량 얼마를 논하는 더 구체적이며 세밀한 목표가 있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매해 각 지역의 유형별로 얼마 간을 실현시켜야 하는지 그림이 있다면 지역별로 실질적인 노력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기존 부지 및 시설 일체형 햇빛발전의 실현가능한 잠재력 평가값 (GWp) – 프라운호퍼 ISE 연구소

물론 이를 위해서는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 유형별로 각 지역의 잠재력 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Frauhofer ISE)에서는 최근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을 위해서 기존 부지나 시설, 건조물을 이용한 햇빛발전의 잠재력을 연구했습니다[11]. 이와 같이 재생가능에너지원의 잠재력을 상세한 유형별로 평가하고, 다시 지역별로 그 각 유형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편 그것을 위해서는 기후위기 시대의 식량과 에너지에 대한 종합적인 미래 예측과 공급 시나리오가 먼저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간척지와 갯벌, 염전, 그리고 농지와 산지 중심으로 햇빛발전소가 세워지고 있는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미래 예측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후위기로 인해서 식량 수급이나 에너지 수급에 변동이 상당히 클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북미 지역에 산불과 각종 기상재해가 닥쳐서 국내 목재 수급이 잘 되지 않고 가격만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또 중국의 몇 차례 큰 홍수로 자국 내 석탄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이것이 한국의 요소수 공급난으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각종 원자재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식량과 에너지의 수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는 해외에 경작지를 확보해서 식량 수급의 안정을 꾀하려고 하는 듯 하지만 위기 시기에는 우리가 확보한 경작지에서 우리가 직접 생산한 식량도 반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 요소들을 십분 반영하여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한 국내 생산량 목표를 정해야 하고 이를 위한 (예비) 경작지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요?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 부지는 이러한 종합적인 미래 전망 안에서 식량 생산을 위한 경작지 확보와 배치되지 않도록 계획하고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농지와 산지가 아닌 건물과 인공건조물, 그리고 도로의 햇빛발전 잠재력부터 평가하고 이곳부터 급속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마땅합니다. 그러자면 더 세밀한 에너지전환 청사진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자체가 길·둑·다리 햇빛발전 시범사업 제안에 비효율성을 따지면서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 중 하나는 언제까지 어디에서 얼마나 햇빛발전을 할 수 있어야 에너지전환이 가능할지 아무런 구체적 그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 낙선의 이유를 찾아본 뒤의 과제

별 것 아닌 해프닝에서 에너지 지방자치와 상세한 에너지전환 청사진이라는 큼직한 과제를 다소 억지스럽게나마 찾아보았습니다. 앞으로 지역의 에너지 자립과 이를 위한 지방분권에 대해서도 더 공부를 해보아야겠고, 상세한 에너지전환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여러 연구 사례들도 탐색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앞에 소개한 독일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의 기존 부지 및 시설 일체형 햇빛발전(Integrated Photovoltaics)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갑니다.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설비는 BIPV(Building Intergated PhotoVoltaic)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꽤 알려져 있지만 이 밖에도 기존 시설이나 부지를 이용한 태양광 발전에 대한 개념과 기술이 이미 많이 정립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군요.

바로 준비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칼럼에서는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의 연구보고서를 살펴보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참고 문헌

[1] “2021년 제1회 양평군 군정발전 제안 공모전 창안등급 심사결과 안내”. <양평군청 홈페이지>. 2021년 11월 3일 우수제안심사결과 공지글. <https://www.yp21.go.kr/www/selectBbsNttView.do?key=1295&bbsNo=33&nttNo=175880&searchCtgry=&searchCnd=all&searchKrwd=&pageIndex=1&integrDeptCode=>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2] “경기도 에너지원 및 부지(공공·개인) 발굴 공모 대회”. <경기도에너지센터 홈페이지>. 2021년 9월 14일 180번 공지글. <https://ggenergy.or.kr/energy/notice>; <경기에너지협동조합 홈페이지>. 2021년 10월 7일 1번 공지글. <http://www.ggenergycoop.com/bbs/list.php?code=notice&catcode=24110000>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3] “강변북로에 새로 생긴 발전소? 태양의 도로”. <서울정보소통광장>. 2018년 2월 21일자 기사. <https://opengov.seoul.go.kr/mediahub/14678527> (2021년 8월 16일 접속) (→ 본문으로)

[4] “강변북로 태양광 발전설비 설치 위치”. <경향신문>. 2018년 2월 22일자 기사. <https://khanarchive.khan.kr/m/entry/강변북로-태양광-발전설비-설치-위치> (2021년 8월 16일 접속) (→ 본문으로)

[5] “경기도 에너지비전 2030”. <경기도에너지센터 홈페이지>. <https://www.ggenergy.or.kr/energy/content/story/story01_01_01>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6] “양평군 에너지자립 실행계획 연구용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홈페이지>. 2018년 4월 20일  용역보고서 수행 정보글 <http://kric.re.kr/front/publication/serviceReport/boardList.do?search_type=0&search_keyword=%EC%96%91%ED%8F%89%EA%B5%B0+#link>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7] “‘비수도권→수도권 송전’ 10년치 투자액 절반이 삼성 평택공장으로”. <한겨레신문> 2021년 10월 5일자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13908.html>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8] ““농촌지역에 기피시설 몰려 시름…읍·면 지방자치 살려야 대응 가능” – [2022 대선] 농정전환 방향은 ⑧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농민신문>. 2021년 10월 13일자 기사. <https://www.nongmin.com/plan/PLN/SRS/345588/view>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9] “[지역이 중앙에게] 식민정치를 끝내고 읍면자치를 허하라 / 황민호”. <한겨레신문>. 2018년 10월 22일자 기사.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6880.html>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10] “투기세력·태양광에 내밀린 농민들, 상경투쟁 나섰다”. <민중의 소리>. 2021년 11월 17일자 기사. <https://www.vop.co.kr/A00001602943.html>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11] Wirth, H.(2021). Recent facts about photovoltaics in Germany. Fraunhofer Institute for Solar Energy System ISE. <https://www.ise.fraunhofer.de/en/publications/studies/recent-facts-about-pv-in-germany.html> (2021년 11월 20일 접속)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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