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 (6)기후위기, 어째서 인권문제로 봐야 하는가 & 기후정의


녹색아카데미 웹진의 기사를 녹색문명공부모임(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맞추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다룰 책이나 주제에 관한 내용을 미리 소개하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모임을 좀 더 알차고 풍성하게 운영해보려는 취지입니다.

지난 5월 모임부터 7월까지 조효제선생님의 <탄소 사회의 종말>을 읽을 동안에는 이 책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나 관련 기사, 연구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서 다섯 차례의 글을 통해 기후위기가 어떤 위기인지, 기후과학은 어떻게 탈인간화 되었는지, 사회학적으로 기후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기후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어떻게 있는지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은 여섯 번째 글로 <탄소 사회의 종말> 3부, 어째서 인권으로 기후위기를 보아야 하는지를 정리하였습니다.
<탄소 사회의 종말> 시리즈 모두 보기 링크


1. 기후위기를 왜 인권으로 보아야 하며 그럴 때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다시 정리

<탄소 사회의 종말> 3부는 어째서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로 봐야하는지 묻습니다. 기후변화는 특정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 인간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고, 기후위기가 가져오는 다양한 환경적 사회적 영향와 영향을 환경의 측면에서만 다룰 수 없으므로 인권과 사회학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참고 : 세계인권선언문 보기)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보았을 때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는 1부 7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 첫째, 인권은 불의에 공분을 느끼는 정의감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의 의식이 기후위기 해결의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다.
  • 둘째, 인권의 시각으로 보면 살아 있는 인간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피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를 ‘인간화’할 수 있고, 기후위기에 무관심한 대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 셋째, 인권은 국가의 ‘정치적 책무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기후위기 문제가 인권침해로 규정이 되면 사회계약적 차원에서 국가의 책무를 물을 수 있다.
  • 넷째, 인권은 일단 확정되고 나면 원칙적으로 협상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을 초월하는 지위의 규범이 된다. 이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인권보호 차원의 문제가 되며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가 된다.

이제 책 3부의 내용 중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어떻게 보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인권의 기본 구도

인권 개념을 추상적으로 여기기 쉬운데, 구체적으로 인권이 어떤 내용을 가지는지 보겠습니다. 조효제선생님은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인권을 크게 두 가지, 즉 절차적 인권과 실질적 인권으로 나눕니다.

절차적 인권은 기상 재난 등에 대한 대처 방식과 관련해 사람들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정보에 대한 접근과 공개를 요구하고, 제대로 수행했는지 추궁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참여권을 요구하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실질적 권리는 기후위기로 말미암아 실제로 침해되는 구체적인 권리를 의미합니다. 생명권, 건강권, 생계권 등입니다. 해수면 상승과 같이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이 변화하여 피해를 입는 경우, 그 변화가 주거지나 농경지 등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그림 1] 해수면 높이 변화 추이. 1993~2018년. 푸른색일수록 더 높아진 지역이다. 단위: cm. (출처 : wikipedia)

책 15장에서는 기후위기로 침해되는 실질적 권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하나씩 살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조효제선생님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분류 방식을 토대로 수정, 보완하고 내용을 더 추가하여, 생명권, 생계권, 건강권, 자기결정권, 발전권, 식량권, 물 권리와 위생권, 주거권, 복지권, 교육권, 스포츠 권리 등으로 나누어 제시하였습니다. 기후위기는 불확실성이 그 주요한 특징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인권침해는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책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더 취약한 집단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그 영향과 피해를 경험하는 정도는 개인마다 집단마다 다릅니다. 인간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에 따라 더 어려움을 겪는 집단이 있을 수 있으며, 이러한 기후위기의 차별성을 반드시 고려하여 기후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른 인구 집단보다 특별히 더 취약하고 악영향을 받기 쉬운 대표적인 집단은 토착민, 어린이와 청소년, 이주자, 이산민, 연안 지방과 작은 섬나라 주민, 장애인, 여성, 미래세대, 노동자 등입니다. 또한 한 사회 내에서 특히 취약한 계층을 생물학적 요인, 사회경제적 요인, 거주 및 지리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생물학적으로는 노인, 만성질환자, 치매환자, 임산부 등이 더 취약합니다.
  • 사회경제적으로는 일반 농민, 축산과 과수 재배를 하는 농민, 시설재배 농민, 화훼업을 하는 농민, 임업과 양식 종사자, 건설근로자, 캐디, 해운사, 택배 기사, 외국인노동자, 재래시장 상인,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와 노숙자 등 저소득계층이 기후위기에 더 취약한 계층입니다.
  • 거주 및 지리적 요인으로는 상수도 없는 지역, 고지대와 저지재, 산간 마을, 도서, 해안 지역, 산사태 위험 지역, 노후 주택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더 많이 입을 수 있습니다.
[그림 2] 영화 <기생충> 스틸컷. 홍수로 반지하주택에 사는 등장인물의 집은 침수되지만, 기반시설이 잘 돼 있고 고급주택에 사는 등장인물의 집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이 기상 현상의 원인이 기후위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개인별 집단별 경험은 다를 수 있다. (출처: DAUM 영화)

조효제선생님은 이렇게 기후변화의 피해에 더 취약한 집단을 돌볼 수 있도록, 취약 집단을 돌보는 직업군의 직무를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기후복지, 기후행정, 기후방재, 기후치안, 기후의료, 기후육아, 기후노동, 기후교육, 기후교통, 기후스포츠와 같이 직종별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접근하는 논리는 어떤 것인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전적으로 인권의 문제로 보는 나라는 아직 없지만, 국제 사회가 인권의 관점으로 빠르게 선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권문제로 기후변화의 피해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한 논리로 이루어지는가, 이에 대해서 책의 17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가 져야 할 의무는 존중, 보호, 촉진 의무 등이 있습니다.

  • ‘존중’ 의무는 국가가 사람들의 인권을 직접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공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잘 지켜야하는 것이 해당됩니다.
  • ‘보호’ 의무는 국가의 관할권 내의 개인이나 집단이 인권 침해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아야 할 의무입니다.
  • ‘촉진’ 의무는 국가가 인권 증진을 위해 장려하고 교육하는 등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전환 업종의 노동자들을 재교육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 등이 해당됩니다.

그런데 기후위기 시대에 들어와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궁극적인 책무를 가지는 주체는 전통적으로 국가였습니다. 인권에 대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국가를 대상으로 따져왔고 이를 ‘정치적 책무성’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와 지구화된 자유경제시스템에서는 기업 특히 다국적기업에게도 인권책무성을 부과하고 요구해야한다는 것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권리의 보유자’인 시민들은 ‘의무의 담지자’인 국가와 기업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위기 해결 방법을 마련하라고 ‘인권의 이름으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림 3] 기업의 숲 파괴와 인권침해 행위를 방조하고 부추겨 온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원주민 지도자에 의해 국제형사재판소에 지난 1월 고발되었다. (출처 : Insideclimatenews.org / Getty Images)

4. 인권운동은 왜 이렇게 기후문제와 늦게 만났나

기후변화로 인해 인권이 침해되고 피해를 입는 집단들이 발생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인권 문제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기후변화 문제는 주로 과학계에서 다루어왔고 생태적, 환경적,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왔다는 점입니다. 또 한 가지는, 기후변화 협상은 정책적 해법을 추구하는 데 반해 인권은 정의냐 불의냐 하는 관점에서 사법적인 해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인 시뮬레이션과 시나리오 분석 등을 통해 미래 예측을 하지만, 인권적인 접근은 주로 사건이나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상황을 다루는 데 익숙한 담론입니다. 기후변화 문제는 상대적으로 거대하고 장기적이고 사회경제적으로 규모가 큰 데 반해, 인권은 시급한 시민의 권리를 다루어왔기 때문에 전통적인 인권관에는 기후위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개념이나 수단도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환경운동은 생태적인 시각을 가진 데 반해, 기존의 인권운동은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측면도 서로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절실하게 기후위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잠재력을 인권이 가지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기후위기를 인권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을 ‘인권에 기반한 접근'(human rights-based approach, HRBA)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인 접근 원칙은 국가의 책무성 원칙, 기업의 기후대응 의무, 국제인권법의 기준과 원칙 적용, 참여의 원칙, 투명성 원칙, 국제 협력 원칙,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제시한 원칙을 최대한 고려하는 것(세대간 형평성과 정의, 사전예방 원칙) 등입니다.

5. 기후정의

기후정의의 기초는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을 따져서 ‘기후불의’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만들어내는 인권침해의 양상과 피해자 집단은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책임이 더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논할 때 과학적 팩트로만 다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 사회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기후위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기후정의 관점에 서지 않으면 식민 지배, 인종차별주의, 국익 추구 경쟁 체제, 에너지 기업의 환경 파괴, 군사화와 화석연료 사용 등의 폐해가 고스란히 기후불의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기후불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기후위기 해결 과정은 기술적인 토론에만 머물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만 줄이거나 없애면 된다는 식의 가정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기후문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이론적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분배 정의(세대 내 정의), 둘째, 세대 간 정의입니다.

산업이 먼저 발달한 선진국들은 오랫동안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불공평한 혜택’을 입어왔습니다. 개도국들은 개발이 늦은만큼 더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해왔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은 더 많이 겪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자국의 기후위기 대응만 할 것이 아니라 개도국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기술을 이전하고 재정을 지원해야 합니다.

세대 간 정의는, 온실가스 배출 시점과 그 악영향이 발생하는 시점에 상당한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정의를 실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래세대는 자기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때문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정의는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세대가 온실가스를 크게 줄인다고 할 경우, 개도국들은 자국의 성장을 포기해야 하며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현재를 희생해야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권학자 헨리 슈(Henry Shue)는 세계 각국, 특히 선진국들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세울 때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포함시켜야 하며, 모든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최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일랜드 대통령이었고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역임한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은 퇴임 후 ‘메리 로빈슨 기후정의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 재단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지침으로 일곱 가지 ‘기후정의'(climate justice)원칙을 제시했습니다.

  •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
  • 발전할 권리를 지원.
  • 이익과 짐을 평등하게 나누기.
  •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결정은 모두 참여하여 투명하고 책임있게 할 것.
  • 젠더 평등과 공평을 중요하게 다룰 것.
  • 기후 청지기 직분(climate stewardship)을 기르기 위해 교육 부문에서 변혁적 힘을 끌어낼 것.
  • 기후정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동반자 관계를 잘 활용.

기후정의를 위해 요구되는 바를 다시 정리하면 기후문제를 생각하는 관점, 대처하는 자세와 방법, 기후행동의 궁극적 목표에 있어 ‘공정함’이라는 가치 판단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후대책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국가와 집단들 간의 관계는 더욱 나빠지고 신뢰도 떨어질 것이며, 효율적인 기후행동 자체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탄소 사회의 종말>(조효제, 2020)의 3부 중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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