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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강독모임 25회

2023년 7월 10일 8:30 오후 – 10:30 오후 KST



녹색아카데미는 3기 새 자연철학 세미나의 후반부 모임으로 2025년 5월 12일부터 <양자역학 이해 강독모임>을 시작합니다. 자연철학자 장회익의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022, 한울아카데미)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묻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이 강독모임을 통해서 ‘양자역학이 불러온 존재론적 혁명’을 말하는 ‘양자역학의 장회익 해석’을 만나고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자세한 계획은 2025 <양자역학 이해 강독모임> 계획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강독모임 25회

때 :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오후 8시 30분 ~ 10시 30분

곳 : 온라인 Zoom 모임공간 ID – 912 7641 4592 (https://snu-ac-kr.zoom.us/j/91276414592)

읽을 부분 : 

  • 제6장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것들
    • 6.2절 양자역학이 설명해주는 실험 사례들
      • ‘상호작용-결여’ 측정 실험 (pp. 226-229)
      • 양자지우개 실험 (pp. 229-233)
      • 안개상자에 보이는 입자의 운동 궤도 (pp. 233-236)

지난 모임에서는 ‘겹실틈 실험’을 이해하는 문제를 놓고 지금까지 공부했던 양자역학의 장회익 해석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아마 다들 나름대로 정리하고 계시겠지만 공지글을 빌어 저 역시 짤막하게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어떠한 대상이 ‘어디에 있다’ 하는 존재에 대한 관념은 지금까지 ‘점유’의 관념이었습니다. 특정 위치 x에 있으면 있고(1), 없으면 없는 것(0)이지 그 사이 어떤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 바로 ‘점유의 존재론’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이러한 존재론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장회익 해석입니다. 그 대신 대상은 위치 공간의 특정 위치에서 변별체와 조우할 때 존재를 표출할 ‘성향’을 가질 뿐이라는 ‘성향의 존재론’으로 우리의 관념을 혁신하자는 것입니다. 이 ‘성향’이 바로 대상의 양자역학적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상태변화 법칙인 슈뢰딩거 방정식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지만, 변별체와 조우하여 ‘사건’을 일으키거나 ‘빈-사건’을 일으켜도 새로운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 절대값 제곱이 바로 ‘확률’이 되는 ‘사건 야기 성향’, 또는 ‘존재 표출 성향’은 이 점에서도 얼마간, 저 점에서도 얼마간이 되게끔 공간에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때 어느 한 위치에서 변별체에 ‘사건’이 일어나 존재가 표출되는 순간 그 한 점 이외의 다른 점의 성향은 모두 없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위치에 놓인 변별체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빈-사건’)으로써의 그 위치에는 존재 성향이 없는 것으로 표출되는 순간에도 상태는 전환됩니다. ‘빈-사건’이 일어난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만 다소간 조정된 값으로 성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사건 야기 성향을 가진 존재물과 조우하여 사건을 유발할 수 있는 존재물을 변별체(discerner)라고 하는데 이 변별체로 인한 상태전환의 물리 법칙을 ‘측정의 공리’라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공간 상의 단 두 위치만 비워두고 대상이 변별체와 조우할 수 있는 모든 후보 위치에 변별체를 놓아둔 실험 상황이 바로 겹실틈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상이 분명히 어디론가 지나갔을 상황에서 변별체 아무 곳에도 사건의 흔적이 관측되지 않으면 남은 두 위치에만 대상의 존재 표출 성향이 남게 됩니다. 이 때 대상이 통과할 수 있는 두 위치 중 한 군데의 통과 지점 뒤에 최소한의 사건의 흔적만 남기고 대상이 진행할 수 있게 고안된 변별체를 놓아둡니다. 이렇게 되면 대상의 상태는 변별체에 사건을 일으켜도 전환되고, 사건을 일으키지 않아도 전환됩니다. 사건을 일으켜 존재가 표출되면 대상의 성향이 그 위치에만 남고 나머지 위치에는 없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고, 사건을 일으키지 않아 존재가 표출되지 않으면 대상의 성향이 그 위치에는 없는 것으로, 나머지 위치에만 있는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어느 한 쪽 통과 지점 뒤에 변별체를 놓아 두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바뀌는 것은 ‘측정의 공리’에 따른 상태 전환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새로운 이론을 낡은 존재론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혼란이 벌어지고 심지어 신비주의까지 피어나지만, 새로운 이론이 담길 수 있는 정련된 새 존재론을 마련해 수용하게 되면 신비론에 기대지 않아도 자연 법칙 안에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존재론적 혁명’을 이야기하는 장회익 해석이 말하는 바입니다.


이상 공지글을 쓰는 최우석 나름대로 겹실틈 실험이 말해주는 바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오류가 많겠지만 그냥 ‘나름 정리’의 한 예로 보아주세요. 다들 이런 짤막한 정리를 한 번씩 해보시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스물다섯 번째 모임에서는 ‘겹실틈 실험’에 이어서 ‘측정의 공리’의 효과를 명징하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실험인 ‘상호작용-결여’ 측정 실험에 대해 살펴보고,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다른 두 가지 실험 상황 또한 살펴보겠습니다.

모임 공간 : 온라인 Zoom 모임공간

– https://snu-ac-kr.zoom.us/j/91276414592
– Zoom 회의 ID: 912 7641 4592
– Zoom 회의 비밀 번호: 우주의 역사 ***억년에 숫자 0을 다섯 개 더한 여덟 자리 숫자 (***00000)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99쪽 마지막 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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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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