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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태그:] 프루스트

공부모임

[참가신청] 책새벽 – 화 – 프루스트 읽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쪽 2』

녹색아카데미2025년 04월 29일0
‘책새벽 - 화 - 프루스트 읽기’ 회원을 모집합니다. 녹색아카데미 책읽기...
공부모임

[참가신청] ‘책새벽 – 수 : 시즌5’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녹색아카데미2024년 05월 21일0
‘책새벽 – 수 : 프루스트 읽기. 시즌5’ 회원을 모집합니다. 녹색아카데미...
공부모임

[참가신청] 책새벽 – 수 : 프루스트 읽기. 시즌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녹색아카데미2023년 09월 19일0
신청하러 가기 : 프루스트 읽기 시즌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공부모임

[참가 신청 : 책새벽 – 수] 프루스트 읽기 – 시즌2

녹색아카데미2023년 05월 03일0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 - 수 : 프루스트 읽기. 시즌2' 회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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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자료] 입자인가, 파동인가
2025.05.21
수업 후에 질문드립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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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존재론의 네 가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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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를 어떻게 이해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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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5. "사람의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관측에 주는 영향도 있을까요? 만약, 하나의 눈으로 보는 생명체가 있다면 다르게 포착됐을까요?"라는 질문은 저 같은 경우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물음입니다. 아시다시피 눈이 두 개라서 3차원적으로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수정체가 하나라면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의 거리를 구별하기 어렵겠지만, 수정체가 두 개이면 시차(parallax 視差)를 이용하여 거리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그리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두 눈 사이의 거리가 너무 작아서 시차가 그리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arallax 여하간 지구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에게서는 눈이 두 개인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구아나, 코모도 도마뱀 같은 것은 눈이 세 개이고, 어류 중에 눈이 네 개인 것도 있고, 거미 중에 눈이 여덟 개인 것도 있습니다. 전갈은 눈이 12개라고 하고, 투구게 중에는 눈이 10개인 것도 있습니다. 제가 견문이 짧아서 눈이 하나인 동물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바닥에 붙어 다니는 도마뱀의 두 눈은 같은 방향을 보지 못하지만, 머리 위쪽에 있는 세 번째 눈으로 공간적 위치를 파악한다고 합니다. 종종 눈이 뒤통수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수정체의 갯수가 다르면 관측에서도 뭔가 다를까 하는 것은 차분하게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엉뚱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에 나오는 캐릭터 중 눈이 손바닥에 있는 캐릭터가 기억났습니다. https://animalvivid.com/animals-with-more-than-2-eyes/
10:50
N 이와 관련하여 아래 링크의 대담이 매우 유익합니다. "[대담녹취 5-2] 장회익의 자연철학 이야기. 4장.양자역학 (2)"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6340
10:31
N 4. "파동으로도 보여졌다는것도 결국 관측된 결과일텐데 어떻게 본 건가요?" 이 질문도 무척 중요합니다. 물리학/자연철학에서는 '본다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과학철학의 개념이 "관찰의 이론적재성(theory-laden observation)"입니다. 이 말은 모든 관찰은 그 관찰에 앞서 모종의 이론을 배경에 깔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노우드 러셀 핸슨(Norwood Russell Hanson, 1924-1967)은 Patterns of Discovery: An Inquiry into the Conceptual Foundations of Scie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8) [과학적 발견의 패턴 (사이언스북스, 2007)]에서 모든 관찰은 근본적으로 이론을 등에 업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온도계를 만들려면 또 다른 이론이 있어야 합니다. 온도를 그냥 곧이곧대로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빛이든 소리든 그것이 파동인지 아닌지 '볼' 수 있으려면, 다시 무엇을 확인해야 본 것이라 할 수 있는지 배경이론을 가져와야 합니다. 파동의 경우에는 그런 것으로 흔히 '간섭'이라는 현상을 가져옵니다. 위키피디어 해설에 있는 그림들이 간섭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Wave_interference 위키피디어에서 가져온 아래 사진이 전형적인 간섭 무늬입니다.
2025.05.21
N 3. 실틈을 왜 두 개만 열어서 겹실틈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하간 실틈이 두 개만 있더라고 기대하는 '간섭'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실틈을 많이 할 경우 기존에 확인된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 됩니다. 세 개 이상으로 실틈을 열어놓는 실험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간단한 실험으로 실틈을 두 개 열어 놓는 실험을 해 봅니다. 이게 잘 되니까 세겹실틈도 합니다. "세겹실틈(삼중슬릿) 실험"(https://bit.ly/3Znh6fB)이 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틈이 아무 많은 여러겹실틈 실험(다중 슬릿)도 합니다. 이런 것을 격자회절 실험이라 부르면서 또 다른 종류의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2025.05.21
N 2. 관측(observation 觀測)은 말 그대로 보면 "눈으로 재는 것"입니다. obs-라는 접두어에 '본다' 또는 '눈'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용어는 측정(measurement 測定)입니다. 여기에는 굳이 눈으로 보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귀로 듣거나 자로 재거나 저울로 무게를 다는 것을 모두 포괄합니다. 흔히 일상어에서 말하는 '보는 것'과 '관측'의 차이는 "그냥 볼 뿐 아니라 보는 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재는 것"이라는 의미에 있습니다. 원칙으로 보자면, 무엇인가를 측정하거나 관측한다고 해서 대상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측정하거나 관측하면 원래 그 대상이 지니고 있던 속성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이렇게 측정이나 관측이 대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아마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학문분야에서 점점 더 측정, 관측자, 관찰자, 관객, 청중 등의 역할이 커져나간 것 같습니다. 양자역학은 그 중에서도 관측이 대상을 급작스럽게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는 난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을 퍼뜨렸습니다. 상대성이론에서도 관찰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관찰/관측/측정이 대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 이론에서 측정/관측이 대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진 것과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 음악의 역사에서 19세기까지 청중/관객이 연주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독일 바이로이트에는 페스트슈필하우스라는 공연장이 있습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는데, 이 공연장에서 청중/관객은 정말 쥐죽은 듯 음악연주를 들어야 합니다. 몇 시간씩 이어져나가는 연주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연주자의 모습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고, 관객은 중간에 이동조차 제한됩니다. 과장하면, 관객/청중이 있든 없든 연주는 진행됩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의 음악에서는 관객/청중의 역할이 점점 더 커져갑니다. 특히 대중음악에서는 관객/청중의 환호와 박수와 시끌벅적한 반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것도 아주 넓게 보면 "관측/측정이 대상을 바꾼다"라는 관념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양자역학에서 관측/측정이 대상을 바꾼다는 관념은 부적절하고 옳지 않습니다.)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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