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데 아름다운 “인류이후시대” (2/2)

BBC의 “Deep civilization” 기획 시리즈 중의 한 기사를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이상한데 아름다운 “인류이후시대” (1/2)
이상한데 아름다운 “인류이후시대” (2/2)

이 시리즈는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더 큰 눈이 필요하다는 목적으로 2019년 1월부터 시작되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큰 질문” 시리즈라고 볼 수 있다. 매일의 뉴스에 매몰되다보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 인류와 지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 인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오늘’을 살면서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기사는 자연을 ‘자연’스럽지 않게 변화시키는 인류의 노력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는 생명공학을 통해 이미 빠르고 크고 임의로 자연을 바꾸고 있다. 미래의 지구와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될까.

2019년8월 2일
번역, 요약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이상한데 아름다운 “인류이후시대” (2/2)

로렌 홀트 (Lauren Holt). 캠브리지 대학. the Center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
생물학적 복잡성과 생태계에 대한 인류와 기술의 영향을 연구.
원문 보기 : Why the ‘post-natural’ age could be strange and beautiful (2019년 5월 3일. BBC)


우리의 시각을 먼 미래로 확장해본다면 현재의 기술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과 인류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전체론적인 관계에서부터 아주 이상한 모습까지 다양한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자연과 야생을 조작하는 인간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결국에는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각들을 자르고 편집해넣는 데 사용된 유전자 “가위”가 실험실 밖으로 유출되어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생태계에서 일어날 수 있고, 그 결과로 생태계는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 자연을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자연을 다시 야생으로 되돌리고 자연 생태계가 잘 작동하도록 만들려면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뺏어왔던 공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생물권은 인간의 영향을 여전히 크게 받고 있지만 아직 어느 정도는 온전하며 수 십 억 년 동안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적응해온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인류가 지구에서 오랫 동안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구의 상당부분을 다시 야생으로 되돌리고 식량은 도시 내 수직농장(multi-story)에서 집중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사슴, 늑대, 블루벨, 기린 그리고 인간까지 포함한 모든 생물을 존중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의 바탕에는, 자연은 외부의 직접적인 간섭없이 천천히 진화하고 변화한다는 지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바램과는 달리 실제 미래는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 핵심적인 생태계 기능을 보전하고 법률로 보호하기는 커녕,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군비 확장 경쟁을 하느라 기술을 개발하고 자연을 함부로 바꾸려 들 것이다. 또한 자연을 조작하고자 하는 인류의 능력과 호기심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생물종들과 생태계로부터 분리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인간의 목적만을 위해 자연의 섭리를 근본적으로 거스르기는 더욱 쉬워진다. 자연을 거스른 모습들이 어떠할지 예술가들이 미리 탐색하고 있다. 빈센트 푸르니에(Vincen Fournier)는 인간이 만들어낼 법한 가공의 생물을 상상해서 보여주었다. 그의 상상물 중에는 비를 내리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물도 있고 오염에 반응하는 동물도 있다.

<그림 1> 흰 여우. 상상동물 (Zerdas hypnoticus. 아프리카 북부산 여우).
빈센트 푸르니에 작품.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고 제어할 수 있다. (사진: 빈센트 푸르니에)
<그림 2> 비를 내리게 하는 새. 상상동물 (Aucellus pluvia).
빈센트 푸르니에 작품. 구름에 전기적 작용을 하여 비를 내리게 한다. (사진: 빈센트 푸르니에)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인간이 만든 휴머노이드와 인조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을 만들어낸 거대기업의 소유물이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도 진실이 일부 담겨 있다. “인류이후자연사박물관”(Center for PostNatural History)에 전시되어 있는 바이오스틸 염소처럼 유전자조작된 생물종은 영화에서처럼 그것을 만들어낸 회사가 지적재산권을 가진다. 생태계의 모든 기능들이(예를 들어 꿀벌의 수분과 같은) 어떤 회사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적으로 설계된 생물들이 자연적인 생물종들보다 더 “적합”하고 경쟁력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또한 인간에 의해 변형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종과 달리 인간의 보호도 받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변형된 생물종은 자연을 대체한다. 즉 기업들은 공공연히 혹은 암묵적으로 자연적인 생물종들을 제거하고, 대신 조작되고 합성된 종들을 번식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런 미래는 왠지 덧없고 복잡한 문제들이 가득하고 생명애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림 3>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제조된 인간과 동물들을 거대기업이 소유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사진: Alamy)

시각을 더 멀리 보내보자. 생명공학은 인간의 감각마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실리콘 기술을 인간에게 결합시키기 위해 지난 수 십 년 동안 연구가 진행되어 오고 있다. 기술지상주의 트랜스휴머니스트적 관점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과 결합할 것이고 인간의 지각과 지적 능력은 향상될 것이고, 사후 디지털 영역으로 우리 자신을 업로드 하여 영생불멸할 수 있다.

반면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경로를 자연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20세기 후반 에코페미니스트의 글들을 살펴보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녹색” 트랜스휴머니즘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인간은 동물과 식물들과 결합하여 변형된다. 여기서 인공지능의 진정한 유용성은 우리로 하여금 심포이에시스(sympoiesis. 상호창조)하도록 돕는 것이다. 심포이에시스는 해러웨이가 만든 용어로, 유전자와 조직들의 목적을 재조정하는 과정이며, 서로 도움이 되는 생물종과 인간의 혼종을 만드는 것이다.

<그림 4> 영화 [Annihilation]의 한 장면.
불가사의한 “어른거리는 빛”은 인간과 자연의 유전적 특성을 바꾸어놓는다. (사진: Alamy)

이처럼 인류가 바꾸어놓을 수 있는 미래(post-natural future)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제프 반더미어(Jeff VanderMeer)의 소설 [Annihilation](Brave New Weird장르)은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우리에게는 뭔가 이상한 미래를 그려보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어른거리는 빛의 영역'(거대한 운석같은 것이 우주로부터 떨어져서 생긴)이 미국의 한 시골지역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생물들의 DNA가 서로 굴절되고 이어붙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 현상은 해당 지역을 조사하러 들어간 군인들과 과학자들의 몸에서도 일어난다.

다른 생물들과 유전자 결합을 하고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받아들이거나 굴복하는 과정들이 이 소설과 영화에서 나타나기는 하지만, 공포물처럼 유전적 물질들이 파괴적으로 혹은 거대증식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 영역으로 들어가 조사하는 임무에 자원한 사람들은 자해적인 모습들을 보이기도 한다. 유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완전히 상실될 수도 있다. 이 불가사의한 영역에서 식물과 동물이 결합된 결과는 아주 아름답게 표현되기까지 한다.

<그림 5> 영화 [Annihilation]의 한 장면.
비정상적인 것 같은데 아름다워보이는 변형된 자연의 모습. (사진: Netflix)

아주 먼 미래, 유전자를 보강(augmentation)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일종의 공생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종의 유전체를 이식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이끼같은 종의 DNA를 인간의 피부에 저장하여 광합성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혹은 전체론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멸종위기종의 유전적 정보를 인류의 계통(lineage)에 영원히 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간이 해당 종의 정보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그 종의 대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 조작 이야기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직은 불편하고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변형’에 대해 철학자들은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본다.(정보 변형은 ‘인류이후시대’(post-natural age)에 엄청나게 중요해질 것이다.)

한 가지는 어둠의 생태학(dark ecology)이다. 철학자 티모시 모튼(Timothy Morton. Rice University)은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과 이상한 면도 함께 마주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를 “어둠의 생태학”(dark ecology)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간을 분리해냄으로써 자연을 미화하고, 우리 자신을 이국적이고 멀리 있는 존재로 만들어서 결국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영향을 변질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모튼은 반대한다.

어둠의 생태학적 관점에 따르면 자연은 항상 변화 상태에 있고, 기후변화는 자연을 변형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global weirding”의 한 형태일 뿐이다. 어둠의 생태학에서는 자연에 대한 인류의 조작에 담긴 아름다움과 공포를 모두 탐색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반더미어가 영화 [Annihilation]에서 그려내려고 했던 그런 것이다.

<그림 6> 상상의 동물 ‘무명의 생명체 – 머리 셋 달린 괴물’. 셴 샤오민 작품. (사진: Eli Klein Gallery / Shen Shaomin)

또 한 가지 방식은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이다. 과정철학에서는 인간과 환경 사이에 진정한 경계는 없으며 개인이라는 것도 없다고 본다. 이 철학에 따르면 유전자의 변화(gene flows into the future and their routes)를 포함하여 모든 것들은 흐름의 정상상태 속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 속의 세포들은 아주 먼 과거에 두 개의 분리된 계통의 세균이 공생한 결과물이다. 이것이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발견한 진화론적인 전환(evolutionary transition)이다.

게다가 우리 인간의 유전체에는 바이러스와 기생충들의 유전자들과 잉여 세포들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성인이 되면 우리 몸 속에는 자신의 것 보다도 다른 종들(주로 박테리아)의 세포가 더 많이 들어차게 된다. 과정철학이 지적하는 바로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모든 것들과 얽혀 있고 물질과 정보는 끊임없이 교환된다.

먼 미래가 되어 생명공학의 발달이 무르익게 되면 유전적 변형에 대한 규제는 없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과정철학이나 어둠의 생태학과는 전혀 다른 근본적인 진화론적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형태의 유전 정보 변형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매우 커다란 진화론적인 전환처럼.

<그림 7> 갈비뼈가 없는 쥐의 태아. Moises Mallo박사의 실험실. 포르투갈 오에이라스.(사진: 인류이후자연사박물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야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도덕적인 미래로 가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공학은 점점 더 흔해질 것이고 그만큼 “인류이후시대”(post-natural era)에 우리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기후변화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가는가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지만, 인류의 조작으로 자연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보면 그 세계는 아주 이상한 곳이 될 것이다.

유전자 조작된 쥐의 태아, 바이오스틸 염소 그리고 향기 나는 물고기 등 “인류이후자연사박물관”(the Center of Postnatural History)에 전시된 표본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학제간 연구를 하고 있는 가일 데이비스(Gail Davies. Exeter Unversity)는 이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은 생명에 내재된 것들을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인류의 업적들을 칭송하기 위한 것도 혹은 단순히 반대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생명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로렌 홀트 (Lauren Holt). 캠브리지 대학. the Center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
생물학적 복잡성과 생태계에 대한 인류와 기술의 영향을 연구.
원문 보기 : Why the ‘post-natural’ age could be strange and beautiful (2019년 5월 3일.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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