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지속가능성 시대의 행복지수, HPI


우석영의 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어느 한 사회의 행복이나 웰빙을 지수로 나타내는 것이 가능할까? 확실한 것은 GDP 같은 경제성장 지수로는 행복이나 웰빙의 수준을 포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2019년 한국의 GDP는 세계 10위, 1인당 GDP는 22위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몇 위나 될까?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에서 개발한 Better Life Index(BLI, 더 나은 삶 지수)는 OECD 37개 회원국 및 4개 파트너 국가의 웰빙을 측정해서 보여주고 있다. BLI의 개발자는 독일 태생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 모리츠 스테파너(Moritz Stefaner)와 베를린 소재 에이전시 라우하이프(Raureif)인데, BLI는 사용자들이 평가하도록 했다. BLI 평가 참여자들은 웰빙을 구성하는 다음 11개 차원(dimension)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 주택: 주택 상태와 비용
  • 수입: 가계 수입과 순 금융자산 
  • 직업: 임금, 직업의 안정성, 실업률 
  • 공동체: 사회안전망의 퀄리티  
  • 교육: 교육, 그리고 개인이 교육에서 얻는 것 
  • 환경: 환경의 퀄리티
  • 거버넌스: 시민의 민주적 참여의 수준 
  • 건강
  • 삶의 만족도: 행복의 수준 
  • 안전: 살인률, 폭행률 
  • 일과 삶의 균형 (워크-라이프 밸런스) 

한국의 경우, 삶에 대한 만족도가 OECD 평균수치인 6.5보다 낮은 5.9로 나타났다. 주택, 직업, 교육, 시민참여, 안전에서 높은 수치를 보였지만, 일과 삶의 균형, 수입, 환경, 공동체에서는 낮은 수치를 보였다. 놀라운 것은 환경 수치 2.4, 그리고 공동체 수치 0.0이다.

[그림 1] 한국의 분야별 BLI (더 나은 삶 지수) (출처: OECD)

한편, OECD가 정기 간행하고 있는 보고서인 <How’s Life>는 37개 회원국 및 4개 파트너 국가의 웰빙이 어떻게 개선되는지를 짚어보는 데 목적이 있다. 2020년 3월에 발간된 최신 보고서는 OECD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는 각국의 불평등 상태도 측정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2018년 기준, 소득 기준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가 7배로, OECD 가입국 중 6위를 차지할 정도로 불평등 수준이 높았다. 특히 남녀 간 소득 격차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여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BLI는 비록 ‘환경’이라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인간이 환경에서 받는 혜택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영향이 인간의 웰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반면, UK(영국)의 씽크탱크 NEF(새로운 경제학 재단, New Economics Foundation)가 개발한 Happy Planet Index(HPI, 행복한 지구 지수)는 이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BLI가 웰빙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다면, HPI는 “모두를 위해 지속가능한 웰빙(sustainable wellbeing for all)”을 측정해서 보여준다. 

HPI는 새로운 시대관에 근거한다. 즉, 지구에 지나친 생태적 압력을 가하며 달성되는 행복의 상태란, 문명의 기반인 지구생태환경이 교란되거나 부분적으로나마 붕괴할 경우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므로, 과거와는 달리 지구에 대한 케어(care, 돌봄, 살핌, 보살핌, 고려함, 배려함)가 사람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라는, 새로운 행복관이 HPI 등장의 배경이자 이유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HPI는 세계 각국이 얼마나 지구에 생태적 압력을 가하는지를 측정하고 중시한다.

HPI의 측정법은 다소 단순한 감이 있어서 실제상황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HPI를 통해 우리는 실제상황의 윤곽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HPI의 측정법은 다음과 같다. 

HPI = (웰빙 × 기대수명 × 불평등) / 생태발자국

[그림 2] ‘행복한 지구 지수’ (Happy Planet Index; HPI)

가장 최근에 측정된 HPI는 2016년도의 것이다. 2016년도 HPI를 국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는 총 140개국의 HPI, 기대수명, 웰빙 수치, 1인당 생태발자국 수치, 불평등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지표는 HPI와 더불어 1인당 생태발자국 수치일 텐데, 놀랍게도 HPI 상위 10개국 전부가 비유럽-북미권 국가들이었고, 이 국가들의 1인당 생태발자국 수치 역시 0.7(방글레데시)~2.9(멕시코)로 전체 140개국의 수치를 살펴볼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HPI 기준 상위 10개국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코스타리카, 멕시코, 콜롬비아, 바누아투, 베트남, 파나마, 니카라과, 방글라데시, 타일랜드(태국), 에콰도르 (1위부터 10위까지 차례대로) 

지구에 환경 악영향을 적게 미치면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구의 시민들은, 옛 표현대로라면 제3세계 국가들일 상기 국가들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의 지배자들로 군림해왔고 행복의 모델로 각광 받았던 유럽-북미권 국가들의 점수는 어땠을까? 상대적으로 높은 HPI를 나타낸 국가는 노르웨이(12위), 알바니아(13위), 스페인(15위), 네덜란드(18위), 스위스(24위), 덴마크(덴마크), UK(영국, 34위) 핀란드(37위) 등이었다. 그렇담, 캐나다와 미국은 몇 위에 올랐을까? 놀랍게도 이들은 각각 85위, 108위였다.

[그림 3] 한국의 HPI (출처: Happy Planet Index)

한국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한국은 80위를 기록했는데, 높은 1인당 생태발자국 수치(5.7)가 주요 요인일 것이다. 1인당 생태발자국 수치에서 최상위권 국가는 룩셈부르크(15.8), 오스트레일리아(9.3), 홍콩(8.8), 미국(8.2), 캐나다(8.2) 같은 국가였다.

한국인 1명은 영국인, 독일인, 네덜란드인, 프랑스인, 오스트리아인, 일본인보다 지구에 더 많은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흥미로운 국가는 중국이다. 1인당 생태발자국 수치는 3.4로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인구수가 요인일 것이다. 중국의 대도시인구로만 측정할 경우 수치가 궁금하다.) 

우리 가운데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행복한 삶일까?각자의 삶과 긴밀히 ‘접속’되어 있는 각 지역의 땅과 산천, 두루울(자연환경) 또는 지구의 웰빙과 각인(各人)의 웰빙이 확연히 나뉠 수 없다는 각성과 더불어, 개발지상주의와 분연히 결별을 고할 때 행복이 우리에게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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