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들 (1)

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들

(1)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 부분과 전체. 2020년 7월 15일
(2) 하이젠베르크의 청년 시절, 이론물리학과 원자이론. 2020년 7월 22일.
(3)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독일 최연소 대학교수. 2020년 7월 29일.
(4) 서른 살의 노벨상, 전쟁 속의 하이젠베르크. 2020년 8월 5일.
(5) 코펜하겐 1941년, 왜 부분과 전체일까? 2020년 8월 12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1)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 부분과 전체

대화들

1969년에 처음 출판된 <부분과 전체,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들>은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의 자서전적 이야기이다. 대화의 형식으로 하이젠베르크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담담하게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20세기에 가장 심각한 화두 중 하나였던 원자물리학을 둘러싼 또 하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는 과학, 특히 물리학에 평생 몰두한 사람이 과학과 철학과 정치와 종교와 문화와 윤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차분한 기록이다.

[그림 1] <부분과 전체> 초판본 표지. 하이젠베르크, 1969년. (출처: DocPlayer)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양자역학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불확정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선 느낌에 묘하게 끌리게 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이 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물리학은 가장 믿을만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분명한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이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그리고 원리적으로 불확실한 구석이 있다는 것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하이젠베르크의 인생 전체에서 확실성과 불확실성이란 문제가 늘 곁에 있었고, 그런 만큼 그의 인생담 자체가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실상 하이젠베르크의 가장 큰 공로는 단순히 불확정성 원리에 있지 않다.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의, 세상의 물질적 구조를 모두 해명하는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화

저명한 소설가 찰스 스노우는 <두 개의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저서에서 인문학의 문화와 자연과학의 문화 사이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을 중심에 둔 인문학적 전통에 있는 사람들과 근대 유럽의 과학혁명과 19세기의 과학전문분야의 성립 이후에 나타나는 과학자 또는 과학기술자의 전통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문화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 2] <두 개의 문화와 과학혁명> 찰스 스노우, 1959년. (출처:wikipedia)

이러한 관점은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가 학문으로서의 ‘과학’Wissenschaft를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과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로 구별한 이래 지금까지의 독일 학문의 전통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19세기 일본의 니시 아마네가 유럽의 ‘사이언스’ 또는 ‘비센샤프트’를 ‘科學’으로 번역했지만, 일본의 제국대학들이 이 과학 또는 분과 학문을 法科, 醫科, 文科, 理科 등으로 나누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분류가 그대로 관철되면서, 한국의 독특한 문과/이과 구별이 자리를 잡았다. 

하이젠베르크는 문과일까, 이과일까?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양자역학과 양자장이론을 확립하고 원자물리학과 핵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 중 하나인 하이젠베르크는 당연히 ‘이과’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들을 듣고 있다 보면, 세상의 근본원리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갈등의 문제, 칸트 철학과 양자역학의 연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삶에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찾으려는 지난한 노력 등을 쉽사리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물리학자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극히 ‘문과적’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이 책을 쓴 동기 중 하나도 바로 그와 같이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사이의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이 자서전적인 책을 통해 그 자신이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한 가운데 있던 하이젠베르크의 삶을 영화처럼 엿볼 수 있다. 그의 기억과 회고를 통해,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우리는 20세기 최고의 지성이 남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분과 전체>의 번역
1969년에 독일어로 출판된 Der Teil und das Ganze: Gespräche im Umkreis der Atomphysik는 어떤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번역한 사람은 누구일까. 1971년에 출판된 영어번역판은 Physics and Beyond: Encounters and Conversations이란 제목이었다. World Perspectives Series, Vol. 42였고 Harper & Row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림 3] <Physics and Beyond>. <부분과 전체> 영역본. 1971년. (출처: Amazon.com)

영어판 번역자는 아르놀트 율리우스 포메란스(Arnold Julius Pomerans, 1920-2005)였다. 포메란스는 1920년 쾨닉스베르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베를린과 유고슬라비아에서 보내다가 1936년 가족이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해서 거기에서 살았다. 하지만 남아공의 삶은 힘들었고 결국 1948년에 영국으로 가서 평생을 영국에서 살게 된다. 처음에는 런던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다가 1955년부터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 

그는 네덜란드어와 독일어가 모국어였지만, 영어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언어에 익숙했고, 200권 가까운 책들을 영어로 번역했다. 하이젠베르크뿐 아니라 루이 드브로이, 얀 호이징가, 쥘 로멩, 안네 프랑크, 장 피아제, 휘고 클라우스, 빈센트 반고흐, 조지 그로스 등의 저서를 번역했고, 특히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영어로 번역한 전문가였다. 정신분석에 많은 관심을 두어서 관련 저서들을 많이 번역했다.프랑스어판은 1972년에 처음 나왔다. La Partie et le Tout – Le Monde de la physique atomique라는 제목으로 Editions Albin Michel에서 출판되었다.

일본어판은 1974년에 현재 교토대 명예교수인 야마자키 카즈오(山崎和夫)의 번역으로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部分と全体: 私の生涯の偉大な出会いと対話>(みすず書房) 야마자키 카즈오는 교토대학 기초물리학연구소에서 유카와 히데키의 조수를 지내고 1957년부터 1972년까지 독일 막스플랑크 물리학연구소에서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연구했다.

1978년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다른 책 Tradition in der Wissenschaft: Reden und Aufsätze (1977)을 <과학의 전통(科学における伝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으며, 1989년에 <真理の秩序>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은 Ordnung der Wirklichkeit를 번역한 것이다.


한국어판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신 김용준 교수의 번역으로 1982년에 지식산업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가 2005년에 개정신판이 나왔다. 한국에서 과학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은 과학 자체에 대한 여러 관심과 논의에서 김용준 교수의 역할은 무척 큰 것이었다. 과학사상연구회나 한국학술협의회 등을 통해 과학을 둘러싼 역사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갈릴레오의 고민』, 『내가 본 함석헌』, 『사람의 과학』 등의 저서뿐 아니라, 『부분과 전체』, 『인간을 묻는다』 등의 역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16년 서커스출판상회에서 독일어 원본의 직접 번역으로 새로운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이 책의 제목처럼 ‘부분’과 ‘전체’의 만남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했던 불확정성 원리나 그가 가장 존경하던 스승 보어가 말했던 상보성 원리처럼 세상에는 다양하고 다른 시각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전체에 대한 진정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길이 더 아름다운 것이리라.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이 책의 새로운 번역본이 하이젠베르크를 통해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많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길 기원해 본다.

… “(2) 하이젠베르크의 청년 시절, 이론물리학과 원자이론”으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2016년에 출간된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서커스)에 실린 감수의 글을 위한 초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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