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녹취 5-2] 장회익의 자연철학 이야기. 4장.양자역학 (2)


자연철학 세미나 대담영상 녹취

<장회익의 자연철학 이야기> 대담영상 5-2 (4장. 양자역학)에 대한 녹취 요약입니다. 대담영상을 1편부터 녹취해서 자료로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요. 다음주 세미나에서 다룰 부분이 4장 양자역학이라서, 우선 4장부터 시작했습니다. 공부에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이야기” 5-2편에서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중 ‘제4장 소를 얻다: 양자역학’ 중 역사 지평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중 슬릿 실험으로부터 촉발된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장회익의 양자역학 이해의 핵심만 미리 짚어봅니다. 이 편에서 다룬 주제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 Q1. 겹실틈(이중 슬릿) 실험 
    • 실험1. 두 개의 실틈을 모두 여는 경우 : 간섭 무늬 
    • Q1-1. 간섭 무늬의 해석 : 입자의 파동성?
    • 실험2 . 하나의 실틈을 막고 다른 하나의 실틈만 여는 경우 : 간섭 무늬 X
    • Q1-2. 간섭 무늬 없는 경우의 해석 : 입자의 입자성?
    • 실험3. 두 개 실틈 모두 열고 어느 쪽으로 통과했는지 관측하는 경우 : 간섭 무늬 X
    • Q1-3. 관찰자 효과?
    • Q1-4. 닐스 보어의 해석
    • Q1-5. 아인슈타인의 보어 해석 비판
    • Q1-6. 양자역학의 문제에 대한 장회익의 새 해석
  • Q2. 장회익의 양자역학 이해 핵심 미리 짚어보기 
    •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상태일 뿐이다.
    • 상태의 의미는 ‘사건 야기 성향’이다.
    •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 파동함수다.
    • 상태함수는 성향을 나타내는 수학적 표현이다.
    • 상태함수가 나타내는 것은 존재물이 변별체에 사건을 야기할 성향
    • ‘점유’가 아니라 ‘성향’
  • 다음 대담에서 다룰 내용
    • 다음 대담에서 다룰 내용 1 : 삼각함수 통한 파동서술과 지수 함수 
    • 다음 대담에서 다룰 내용 2 : 시공간과 운동량-에너지의 연결
    • 다음 대담에서 다룰 내용 3 : 점유 개념에서 성향 개념으로 

Q1. 겹실틈(이중 슬릿) 실험 

실험1. 두 개의 실틈을 모두 여는 경우 : 간섭 무늬 

이중슬릿 실험에서 무엇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지 볼 필요가 있다. 이 실험 하나만 제대로 해석하면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한 지점이 무엇인지 얘기를 잠깐 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책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해하면 양자역학 공부가 끝나는 것이다. 물리학자 이외에, 철학자로서는 이 정도 이해하면 제대로 이해한 거라고 볼 수 있다.

Q1-1. 이중 슬릿 실험: 간섭 무늬의 해석 : 입자의 파동성?

[그림 1] 이중슬릿 실험. (출처: Phys.org)

광원에서 빛이 나갈 수도 있고 전자나 아니면 훨씬 더 큰 원자 덩어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와서 슬릿 두 개를 통과해서 스크린에 비치는데, 스크린의 위치에 따라서 이런 패턴이 생긴다. 어떤 위치에서는 많이 찍히고 또 그 옆에는 없고, 또 그 다음에는 이렇게 피크가 오고 또 옆에는 없고.

그러니까 (예를 들어 전자) 여러 개를, 예를 들어 1000개를 때렸다고 가정할 때 각 위치에 쌓이는 모습이 이런 식으로 스크린에 나타난다.

이 실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이것(전자, 원자 덩어리 등)이 파동이라는 뜻이다. 한쪽 슬릿을 지나가는 파동과 다른 쪽 슬릿을 지나가는 파동이 약간 거리 차이가 있기 때문에 스크린 위치에 따라서 거리가 달라진다. 그래서 각 슬릿을 지나가는 파동의 위상에 차이가 생긴다.

[그림 2] 이중슬릿 실험에서 간섭효과 (출처: Physics StackExchange)

같은 위상끼리 만나면 이렇게 피크가 나타나고, 위상이 반대가 되면 그러니까 하나가 +이고 하나가 -이면 0이 돼서 이렇게 스크린에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위치에 따라서 위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패턴(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나타나는 모양)을 보이게 된다하는 설명이 된다.

그런데 파동이라면 이런 패턴을 보일 수 있다. 빛이 이렇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벌써 1800년대에 알았다. 토마스 영이 간섭 실험을 통해서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냈다.

그런데 전자도 이렇게 된다하는 것이 양자역학, 그러니까 드 브로이의 이론이다. 바로 이 실험이 드 브로이의 이론을 증명한 실험은 아니고, 아까 말한 실험들(데이비슨 & 저머 등)이 이런 사실을 보여준 실험이다.

[그림 3] 토노무라박사의 이중슬릿 실험. 전자의 갯수 (a)11개, (b)200개, (c)6,000개, (d)40,000개, (e)140,000개. (출처: wikipedia)

실험2 . 하나의 실틈을 막고 다른 하나의 실틈만 여는 경우 : 간섭 무늬 X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슬릿 하나를 막아보는 경우이다. (그림 1에서) B를 막아버리면 다른 한쪽 슬릿 A만 통과하게 된다. 그러니까 간섭을 일으킬 방법이 없으니까 가장 높은 피크 하나만 생기게 된다. 

Q1-2. 간섭 무늬 없는 경우의 해석 : 입자의 입자성?

그런 다음에 또 슬릿 A를 막고 슬릿 B를 열면 피크는 스크린상의 다른 위치에 생긴다. 하나씩 막으면 이렇게 피크가 하나씩 생기는 모양을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이것도 뭐 입자가 갔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다. 

실험3. 두 개 실틈 모두 열고 어느 쪽으로 통과했는지 관측하는 경우 : 간섭 무늬 X

문제는 슬릿 두 개를 다 열어놓고, 어디로 지나갔나 슬릿 옆에서 관찰을 하는 경우이다. 어느 쪽 슬릿으로 갔는지 관측하는 장치, 쉽게 말해서 ‘본다’는 가정을 해보면 어느 쪽 슬릿으로 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확인을 해보면 슬릿 두 개를 다 열었는데도 불구하고 간섭 패턴이 나오지 않고 피크 두 개만 나오게 된다.

 <질문>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관측을 하려면 측정 대상에 교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

교란의 정도가 워낙 약해서 슬릿을 통과하는 데는 영향을 안미칠 정도로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관측만 하면 간섭 패턴은 나타나지 않고 피크 두 개만 나타나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탄소 원자 60개 짜리(fullerene) 큰 덩어리로 실험을 해도 이런 간섭 패턴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것은 빛이라든가 작은 전자 하나 뿐만 아니라 C60같은 큰 입자로 해도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

Q1-3. 관찰자 효과?

[그림 4] 관찰자 효과: 볼 때와 보지 않을 때? (출처: Antimatter)

Q1-4. 닐스 보어의 해석

그래서 닐스 보어는 어떻게 해석했는가:
양자 세계라고 하는 것은 없다, 단지 추상적인 양자역학적 서술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서술은 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그 자체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물리학의 과제는, 자연이 어떻게 돼있는가(how nature is)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하는 것만 생각할 수 있다.

자연 안의 것은 우리가 알 수 없고, 단지 우리가 서술할 수 밖에 없다라고 본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 그 자체가 어떻게 돼있는가 본질적인 메카니즘은 우리가 알 길이 없다는 입장이다.

Q1-5. 아인슈타인의 보어 해석 비판

이걸 아인슈타인은 대단히 싫어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헤이젠베르크-보어의 진정제 철학-종교라 해야하나?-은 너무도 교묘하게 만들어져서 당분간 진실한 신도가 이것을 안락한 베개로 삼고 드러누워 쉽게 깨어나지를 못하는군요. 그러니 그렇게 좀 누워있으라고 내버려두세요.”

슈뢰딩거에게 보낸 아인슈타인의 편지. 1928년 (1927년 솔베이 바로 다음 해!)

그래서 이때부터 갈라진 것이다. 솔베이회의에서도 아인슈타인과 보어 두 사람이 굉장히 토론을 많이 했다.

Q1-6. 양자역학의 문제에 대한 장회익의 새 해석

이제 정리를 좀 하자. 여기까지가 양자역학의 문제이다. 그래서 양자역학의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야 이해가 되느냐. 특히 조금 전에 본 이중슬릿 문제, 보면 행동을 이렇게 하고 안보면 또 다르게 하는 이상스러운 것을 해석, 이해할 수 있는가.

이것이 남은 과제이다. 그 과제에 대해서 내 의견을 서술한 것이 우리 책에 있는 내용이다. 이 이론은 굉장히 깔끔하다. 그래서 아까 얘기했듯이, 보면 이렇고 안보면 이렇다하는 소리를 싹 없앨 거다. 없애고 완전히 기본적인 가정을 통해서 깔끔하게 이해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책의 ‘내용정리’만 읽으면 이해를 할 수 있고, 그걸 이해하면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Q2. 장회익의 양자역학 이해 핵심 미리 짚어보기

<질문>
역사지평 말미에 파동함수 얘기가 나온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파동함수로 나왔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사람들이 몰랐다, 그런데 이 함수가 모양은 파동함수인데 파동이 아니고, 그리고 또 보른이 확률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통계적인 의미의 확률도 아니라고 돼있다.
그런데 책에는 파동함수가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상태함수이다라고 쓰여 있다. 존재물이 어떤 상태에 있을지를 규정해주는 그런 함수이다, 어떻게 구하느냐, 이렇게 구한다, 그리고 앞에서 나왔던 위치와 시간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던 각진동수와 각파동수로 에너지와 운동량을 구하면 어려운 얘기 안해도 다 정리를 할 수가 있다라고 개인적으로 이해를 했다.
그런데 이중슬릿은 아직 잘 모르겠는데, 그게 실제로 전자가 파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견될 수 있는 상태, 그 상태에 놓일 수 있는-확률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될 것 같은데- 그게 그 자리에 나타나는 것을 그 파동함수가 보여주는 것이지 파동으로 퍼져나가는 것인 아닌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상태일 뿐이다.

그러니까 파동이라는 실체, 입자라는 실체로 보면 안된다.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보어의 입장도 그것인데,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상태일 뿐이다.

상태의 의미는 ‘사건 야기 성향’이다.

어떤 대상이 대표하는 것은 상태인데, 상태의 의미를 굳이 얘기하자면 (위치가 얼마냐 운동량이 얼마냐가 아니라) 변별체에 어떤 사건을 일으키느냐 하는, ‘사건 야기 성향’이다.

상태함수의 성격은 사건을 야기시킬 수 있는 성향일뿐이지, 이것이 어느 에너지를 가지고 있거나 파동이거나 입자이거나 심지어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 파동함수다.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 그 성향을 대표하는 것이 파동함수이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존에는 대상(예를 들어 컵)이 어디에 있고 얼마만한 운동량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움직이면 운동량이 얼마고 가만히 있으면 운동량이 0이다, 그리고 이 자리(위치)에 있다, 이런 것을 상식으로 생각했다.

(컵과 같은)큰 대상에서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작은 전자라든가 원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이제 넓혀야 한다.

이것(예를 들어 컵)이 여기 있다는 얘기는 뭐냐, 이 자리에 이것(컵)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을 갖다댈 때 여기에 어떤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이게 변별체가 여기(컵)에 와서 닿으면, 내 손을 변별체라고 했을 때 손에 감각이 오는데 그 감각을 줄 수 있는 성격을 이 컵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운동량에 대해서도, 운동량을 감지할 수 있는 변별체를 갖다댈 때 그 운동량을 줄 수 있는 성향, 운동량에 해당하는 감각(사건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는데)을 야기시킬 수 있는 성향을 컵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냐면, 컵이 없는 공간은 (손에 컵이 감각을 줄 수 있는) 성향이 0이다. 컵이 있는 자리에 손을 갖다댈 때만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 성향은 컵이 있는 자리에서는 (확률적으로)1이고 나머지 공간에서는 0이다. 파동함수는 모든 위치에 대한 함수인데, 컵이 있는 곳에서만 성향이 1이고 나머지 공간에서는 0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컵이 여기에 있다’라는 말에 해당한다.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에 직접 손을 대보면 컵이 있는 데서는 감지가 되고 다른 데서는 감지가 안된다는 것뿐이다. 감지가 되면, 우리는 ‘컵이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성향의 일부인데, 특별한 성향이다. 왜냐하면 항상 컵에 갖다 대면 1, 나머지는 다 0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데서는 확률이 0이고 여기서만 1이나까 ‘컵이 여기에 있다’라는 말과 동일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이것이 확률적으로 되어 있다면, 여기에(다른 위치에) 갖다 댔을 때 감지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성향의 의미이다. 성향이, 여기는 10%의 확률로 나타나고 다른 곳에는 30%, 또 다른 곳에는 50%… 이런 것도 가능하다.

상태함수는 성향을 나타내는 수학적 표현이다.

성향을 나타내는 수학적인 표현이 상태함수이다. 양자역학에서 재밌는 것은, 성향이 어느 곳에서는 1이고 나머지에서는 0이다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만약에 컵에 손을 댔는데 감지가 됐다, 감지가 안될 확률도 있었지만 감지가 됐다고 하면 그 순간에 그 위치에서 성향은 1이고 나머지는 0이 돼버린다. 

그런데 가만히 둬도 성향은 변한다,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서 변한다. 그 다음에는(측정 이후에는) 어떻게 성향이 변했는가 확률로 알 수가 있는데, 계속해서 1 아니면 0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1도 아니고 0도 아닌 것으로 간다.

다시 또 한번 해보면 1이거나 0이다. 한 위치에서 감지가 됐으면 이 순간에 상태함수가 1로 바뀐 것이고, 여기까지(컵 바로 옆에까지) 갖다 댔는데 감지가 안됐으면 이 위치에서의 성향은 0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이벤트(사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컵에) 갖다 댔을 때 감지가 돼서 느껴지면 사건이 생긴 것이고, 갖다 댔는데 아무 기별이 없으면 컵이 없는 것이다, 즉 null event(공사건) 이다.

그런데 공사건도 의미가 있다. 공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여기에(컵이 없는 곳에) 확률로 상태가 나타날 뿐인데, 감지가 안된 것으로 확인이 되면(공사건이 일어나면) 상태가 0이다. 그런데 바로 그 위치에서만 0이고 다른 위치에서는 확률이 퍼져 있을 수도 있고 안 퍼져 있을 수도 있다.

<질문>
그러면 모든 존재물에 대해서 그런 것인가? 컵처럼 큰 것이나 전자같이 작은 경우에는?

모든 존재물에 대해서 그렇다. 사실 컵과 같이 큰 것은 확실히 여기에는 있고 저기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역학에서, ‘이 컵의 위치는 여기다, 이 컵은 이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컵이 실제로 여기에 있고 다른 위치에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그렇지 않다. (전자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고 또 어느 순간에 특정 위치를 차지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확률로, 그러니까 위치 상태함수로 퍼진다. 항상 변별체를 갖다대봐야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특정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변별체를 갖다대서 감지가 되면 확률 1이 되고 나머지는 다 0이 된다.

<질문>
상태의 성향은 이러하나 있고 없고는 1 아니면 0이라는 것인가?

변별이 되는 순간(컵에 손이 닿는 순간)에만 1이고, 그 다음에는 손을 대지 않아도 확률이 변한다. 변하니까 또 다시 확률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변별이 안됐으면(컵과 손이 닿지 않았으면) 그 위치에서는 0이고 나머지 위치에서는 어떤지 모른다. 

상태함수가 나타내는 것은 존재물이 변별체에 사건을 야기할 성향

상태함수가 나타내는 것은, 어떤 대상이 변별체에 사건을 야기시킬 성향이다. ‘사건 야기 성향’. 사건이 야기되면 그 순간에는 그 위치에서 상태함수가 1이 되고 나머지 위치에서는 0이다. 해당 위치에서 감지가 안됐으면 그 위치의 값만 0이고 그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에서는 값을 모른다.

(그림 1) B에서 감지가 되면 B에서는 1이고 A에서는 0, B에서 감지가 안된 것이 확실하면 A에서 1이다. 이 경우 스크린에 피크는 두 개 나타난다. 그런데 B에 변별체를 갖다대지 않으면 각각 확률 2분의 1로 통과하게 된다.

B에서 보느냐 안보느냐 하는 것은, B 옆에 변별체를 대느냐 안대느냐의 의미이다. 변별체를 대면 사건이 발생(그걸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다는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B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B로 갔으면 A로 안간 것이고, B로 안갔으면 A로 간 것이다.

그러니까 슬릿 하나에 변별체를 대느냐 안대느냐에 따라서 B가 1이든가 A로 1이든가 둘 중의 하나로만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스크린에 피크가 두 개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변별체를 대지 않으면 변별이 안되니까 상태가 둘로 가서 간섭을 일으키고 스크린에 파동 패턴을 나타내게 된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상태라고 하는 것은 상태함수로 표시된다. 그것의 의미는, 변별체가 어느 위치에 있을 때 그 변별체에 사건을 야기시킬 성향이 얼마냐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변별체를 갖다대서 사건이 발생했으면 그 순간 (확률이) 1이고, 발생 안했으면 그 위치에서는 (확률이) 0. 간단한 얘기다.

‘점유’가 아니라 ‘성향’

그전까지는 대상이 위치나 운동량을 가졌다하는 점유 개념이었는데 그것을 성향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점유 개념은 1아니면 0, 둘 밖에 없다. 성향은 확률로 퍼져 있다. 단 확인할 때만 1이나 0으로 됐다가, 그리고 다시 나머지는 시간에 따라서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서 달라진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게) 사실은 거의 (양자역학) 끝까지 다 한 셈이다. 벌써 전체 한번 살펴본 것이다. 그래야 내용을 읽었을 때 이해가 된다. 뒤쪽 얘기를 모르면 앞쪽 얘기가 이해하기 어렵다. 대략적인 이해를 하고 다시 봐야 더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다음번에는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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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요약: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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