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 (11) 바나나 & 백년 동안의 고독


[그림 1] 바나나. Thomas Johnson(1595~1644). (출처: Th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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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바나나 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마을 ‘마콘도’와는 달리 실존했던 회사이다. 지금은 치키타(Chiquita)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오고 있고 돌, 델몬트와 함께 세계 3대 바나나 기업 중 하나이다.

바나나는 설탕과 담배, 면화와 더불어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재배한 또 하나의 작물이었다. 북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카나리제도에서 자라던 바나나를 스페인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간 것은 1516년이었고, 지역에서 먹는 식량으로만 쓰였다.

19세기 들어 냉장선이 개발되면서 북미와 서유럽으로 운반해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중앙아메리카 대서양쪽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경작이 시작되었다. 주로 인도에서 건너온 계약노동자들이 바나나 플랜테이션에서 일을 했다.

[그림 2] 바나나 푸르트 컴퍼니(Banana Fruit Co.) (출처: New York Times)

바나나 경작에는 연중 내내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몇 개의 대기업이 독점했다. 특히 미국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20대 청년 마이너 키스(Minor Keith)를 중심으로 3개의 회사가 연합해 1899년 설립한 ‘유나이티드 푸르트 컴퍼니’는 초기 바나나 산업을 거의 독식했다.

마이너 키스는 UFC 설립 전, 1870년대에 코스타리카로 건너가 철도를 깔고 그 주변에서부터 바나나 농장을 시작하였다. 사업이 성장해가면서 UFC는 라틴 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의 도시들과 나라들의 철도와 유통, 바나나 산업, 정치까지 주무르게 되었다.(마이너 키스는 나중에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딸과 결혼했다.)

지역 주민들과 이주한 계약노동자들은 싼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이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천막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회사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회사가 나누어준 증서와 식료품을 교환하여 먹을거리를 구했다. 이들 식료품 가격은 시중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림 3] 고갱. “식사”(Le repas dit aussi Les bananes: 식사를 바나나라고도 한다). 1891. 바나나는 현재에도 쌀, 밀, 우유 다음 가는 주요 식량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과테말라같은 나라들은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불렸다. 바나나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구조였고, 바나나기업과 미국이 이들 나라의 정치를 좌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바나나 대학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1928년 11월, 콜롬비아 산타 마르타의 시에나가의 UFC 바나나 농장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되었고, 이들의 요구는 노동 조건 개선, 임금 인상, 주 6일 근무, 식료품 증서 거부 등이었다.

수 주 동안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고 회사의 손실이 커져가자 보수적인 콜롬비아 정부(미구엘 아바디아 멘데즈 대통령)가 군대를 보내게 된다.

[그림 4] ‘바나나 대학살’을 표현한 벽화. 콜롬비아 보고타. (출처: Kenn Orphan)


콜롬비아에 주재하던 미국 정부 관료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대표들이 미국 국무부로 보내는 전보에는, 파업 노동자들이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공산주의자”로 표현되어 있다. 미국은 자국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으면 해군으로 침공하겠다고 콜롬비아 정부를 위협했다.

그해 12월 6일, 일요일 미사 후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콜롬비아 군대가 진압했고 여기에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망자 수는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47명이지만 최대 4천 명까지 추정되고 있으며,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다. 마르케스의 소설에는 3천 명으로 나온다.



참고자료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글: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20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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