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생명 – (5) 생명을 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인공생명”

1. 글머리: 생명과 기계의 경계, 몸-마음 문제. 2020. 1. 21.
2. 인공생명과 생명의 철학. 2020. 1. 28.
3. 야콥 폰 윅스퀼의 둘레세계. 2020. 2. 4.
4. 인지과학의 기연적 접근. 2020. 2.11.
5. 생명을 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2020. 2. 18.
6. 온생명과 인간의 관계 & 결론 2020. 2. 25.

글: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및 과학적 사유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저서이다 (장회익 2014a). 이 책은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 본 생명의 바른 모습”을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생명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물리학은 자연세계 전체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법칙과 원리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명현상이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1943년 에르빈 슈뢰딩거의 강연이다. 그러나 물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정의를 제기한 것이 슈뢰딩거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두드러진 예로서 모페르튀(Pierre-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다(Boweler 2009). 모페르튀는 1745년에 출판된 Vénus physique (The Earthly Venus)에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독보적인 논의를 보여준다. 이 책의 1부는 동물의 기원(Sur l’origine des animaux)을 다루고 있고, 2부는 인간 종의 다양성(Variétés dans l’espèce humaine)을 다루고 있다. 

[그림 1] 모테르튀.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프랑스 과학원의 원장이었으며 프러시안과학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이었다. 모페르튀는 지구의 모양을 조사하기 위해 라플란드를 탐험하기도 하였다. (출처: wikipedia)


모페르튀는 맨 처음에 신이 생명을 만들었다거나 생명체의 실체가 모두 조상에 이미 확립되어 있다는 전성설을 비판하면서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중시 여기는 후성설(epigenesis)을 강조한다. 모페르튀는 생명체의 탄성에 대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남성의 정수(male semen)와 여성의 정수(female semen)의 입자들이 혼합된다는 오래된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림 2] 루크레티우스(99 BC ~ 55 BC). 로마시대의 시인, 철학자. (출처: wikipedia)

입자들의 혼합에 변이 또는 다양성이 있으며 그 중에 적절한 것이 남게 된다. 환경에 적합한 것이 새로 얻은 속성을 유지하면서 후손에 그 속성을 전달해 준다. 배아의 구조를 이루는 패턴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남성 정수와 여성 정수의 입자들이 올바른 질서로 모일 수 있을까? 자연발생의 과정에서 물질적 입자들이 어떻게 맨 처음에 살아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을까?

뉴턴역학적 힘은 필연적이어서 그러한 구조를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 모페르튀는 물질이 자연발생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고유한 경향을 지닌다고 가정한다. 이는 루크레티우스가 에피쿠로스를 인용하며 논의한 클리나멘과 연관된다.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원자는 그 자신의 무게 때문에 허공 속에서 연직 아래로 떨어지면서, 거의 정해져 있지 않은 때 그리고 거의 정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짝 엇나간다네. 그것은 이른바 경향(운동)을 조금 바꿀 따름이라네. 그것이 없어서 살짝 엇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원자가 빗방울이 그러듯이 밑이 없는 허공 속으로 한없이 떨어졌을 거라네. 기본 원소들 속에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아서 자연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네.”

(Lucretius 2.216–93)
[그림 3] 루크레티우스의 <De Rerum Natura> (On the nature of Things(or Universe)). (출처: wikipedia)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 위해서는 필연성에서 벗어나는 복잡성이 있어야 하며, 바로 그것이 자유의지의 가능성으로 연결되는 원자의 중요한 속성이 된다. 모페르튀의 논의는 라메트리(Julien Offray de La Mettrie)의 L’Homme machine (Man a Machine, 1748)를 통해 계승된다.

라메트리는 인간을 순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며 마음이나 영혼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몸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고 보았다. 즉 마음은 뇌와 신경의 활동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이다. 라메트리는 대개 기계론자 내지 유물론자인 것으로 서술되지만, 생명의 문제를 단순하게 기계나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Bowler 2009).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생명의 기원, 우주생물학, 복잡계 등과 같은 직접적으로 생명의 정의를 필요로 하는 분야 외에도 생명정보학이나 생물물리학 등에서도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가령 생명의 기원과 생명계의 진화에 대한 논의를 기본 주제로 하는 학술지 Origins of Life and Evolution of Biospheres가 2010년 4월에 발행된 제40권 제2호의 특집주제를 “생명을 정의하기”로 한 것이나, Synthese가 2012년 4월에 발행된 제185권 제1호의 주제를 “생명에 관한 철학적 문제들”로 정한 것은 이 문제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베다우(Bedau 2012)에 따르면 생명에 관한 철학적 문제는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 모두에 걸쳐 있다. 존재론적 문제들은 생명의 본성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생명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이론이나 설명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다룬다.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는 생명의 특수한 몇 가지 속성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본성을 밝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명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목적론과 기계론의 문제에 직접 부딪힐 수밖에 없다. 첫째, 생명에서 기능, 목표, 목적 등과 같은 목적론적 요소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둘째, 여러 가지 형태의 생명은 어떤 복잡한 화학적 기계의 일종일 뿐인가? 셋째, 생명과 마음의 관계는 무엇인가? 넷째, 생명과 비생명의 구별은 이분법적인가, 아니면 그 구별은 어떤 식으로든 모호한 면이 있는가, 또는 생명은 정도의 차이로 나타나는가?

생명의 철학에서 제기되는 인식론적인 논제들은 다음과 같다. 생명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문제가 의견일치에 도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까닭은 무엇인가? 생명의 본성에 관한 그럴듯한 정의나 이론이나 설명을 정식화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둘째, 생명에 대한 과학적 논의에 대한 증거를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올바른 방식은 무엇인가? 

또한 생명과 윤리, 가치, 규준 사이의 연결에 관련된 쟁점들이 있다. 첫째, 생명이 목적론과 연관되어 있다면 생명의 규범적 측면은 무엇인가? 둘째, 모든 형태의 생명이 모종의 내재적 가치를 가지는가? 아니면 인간이라든가 느낌이 있는 동물이나 자연적이고 비인공적인 형태의 생명만이 가치를 지니는가? 

[영상 1] 생명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생명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출처 Amoeba Sisters)


루이스-미라소, 페레토, 모레노(Ruiz-Mirazo, Peretó, and Moreno 2004; 2010)는 생명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논의하면서 “생명은 자체생성적인 자율적 주체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로서, 그 기본 조직은 집합적 네트워크가 진화하는 개방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물질적 기록을 통해 지시된다.”고 말한다.

장회익은 오래 전부터 생명 개념에 대한 메타적 고찰을 통해 온생명의 개념을 확립했다. 온생명은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질서의 일부 국소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복제생성률이 1을 넘어서면서 일련의 연계적 국소질서가 형성 지속되어 나가게 되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로 정의된다.

온생명은 “기본적인 자유에너지의 근원과 이를 활용할 여건을 확보한 가운데 이의 흐름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복제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이다. 장회익 (2014)은 루이스-미라소와 모레노가 제안한 보편적 정의를 수정하여 기존의 온생명 개념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생명은 “자기촉매적 국소 질서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그 안에 구현하는 자체유지적 체계이며, 각 국소질서의 기본 조직은 지속성을 지닌 ‘규제물’들에 의해 특정되고, 이 규제물들은 열린 진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장회익 2014: 105)


생명이란 현상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현상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주제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서술은 어떤 틀로 진행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장회익 (2014)의 접근은 매우 선명하다.

1장에서는 생명을 일종의 ‘물음’으로 제기하고 이 ‘물음’에 대한 핵심을 소개한다. 책 전체가 하나의 논문처럼 다루어야 할 물음을 1장에서 정확하고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에르빈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디딤돌로 삼아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안한다. 이는 1장의 마지막 문장에 잘 드러난다. 

“확실한 것은 살아 있음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생명’이 어딘가에는 이써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이 생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과연 생명이라는 것을 규정할 수나 있을까?”

(장회익 2014: 49)


이렇게 풀어야 할 물음을 요약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제까지 사람들이 생명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를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논의를 모두 백과사전적으로 망라하는 것을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유의 전통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나 다루어야 할까?

이 책은 정확히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접근을 소개한다. 이는 더도 덜도 아닌 정확히 이후의 논의를 위해 필요한 접근들이다. 먼저 일상 속의 생명 개념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이것이 어떻게 베르나드스키의 생물권 이론으로 확장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라세브스키와 로젠의 이론생물학적 논의에서 어떻게 이것이 관계론적 생물학으로 발전했는지 검토한다. 이후의 논의에서 중요한 관건이 될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성성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2장이 완결된다. 

장회익이 제안하는 생명의 정의는 자체생성성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다. 3장에서 생명의 정의 문제를 요약적으로 정리하면서 왜 생명의 정의가 어려운지 해명하고 있으며, 생명을 정의하는 최근의 흐름들을 소개한다. 특히 루이스-미라소, 페레토, 모레노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원용한다.

그러나 생명을 가장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자유에너지, 질서, 정연성과 같은 주요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4장에서 열역학의 법칙과 자유에너지를 다루는 것은 바로 그 필요 때문이다. 특히 슈뢰딩거의 논의가 활발하게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슈뢰딩거가 말한 ‘정보’와 ‘음의 엔트로피’ 중 생명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는 유전정보만이 부각되어 온 면이 있다는 점에서 엔트로피 개념을 확장한 질서와 정연성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5장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온 질서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질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상들에 대한 논의에 이어, 우주가 어떻게 출현하고 여기에서 기본입자들이 생겨나고 여러 상호작용들이 갈라져 왔는가 하는 것을 질서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그림 4] 국소질서의 형성되는 과정. 요동에 의해 준안정 상태로 전이된다. 형성된 국소질서가 사라지기 전에 자신과 대등한 국소 질서가 하나 이상 형성되는 일정한 흐름이 유지된다면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 장회익)


물질 세계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소 질서는 어디에서든 언제이든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으며, 이것 자체가 신기한 일은 아니다. 국소 질서가 고립된 계가 아니라 일정한 흐름 안에서 유지된다면, 거기에서 매우 특별한 국소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 그것이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autocatalytic local order, ALO) 또는 줄여서 ‘자촉 질서’이다. 자촉 질서는 자신과 거의 닮은 다른 국소 질서를 생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국소 질서가 일단 생성되어 그 존속 시간 안에 자신과 대등한 국소 질서를 하나 이상 생성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면, 이러한 국소 질서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장회익 2014: 163-164)


최초의 자촉 질서가 어떻게든 형성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충분히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일차 질서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 일차 질서 위에 우연히 만들어진 자촉 질서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생명이 된다.

자촉 질서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물리학자의 가장 세련된 대답이다. 이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명료한 틀이다. 생명에 대한 탐구에서는 원칙적으로 개념적 접근과 역사적 접근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굳이 따지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핵심개념을 골라내고 이를 토대로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찾아내는 것이 개념적 접근이다.

이와 달리 역사적 접근에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지구상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생명, 특히 지구상 생명체들의 공통요소인 세포가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한 경험적 증거들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실질적인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두 접근은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상보적이라 할 수 있다.

(6)편 온생명과 인간의 관계 &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2020. 2. 25. 업로드 예정)

“인공생명” 시리즈는 김재영(2017)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과학칼럼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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