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보편화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는 중앙집중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소수의 공급자가 다수의 수요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그림으로 생각하자면 몇 군데 작지만 강력한 점에서 광활한 면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석유나 가스 등 화석연료 자체도 그러하고, 화석연료나 원자력으로 발전해 얻은 전기도 중앙에서 말단으로 공급됩니다. 때문에 다수의 수요자보다 소수의 공급자가 중요합니다. 중앙집중적인 체계가 권한과 권력, 가치의 위계를 만들어 결국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는 위계적인 체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점에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는 비민주적입니다. 다수의 수요자는 에너지 체계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매우 힘듭니다. 또한 공급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 몇 군데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만 집중 타격을 받아서 그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반면 재생가능에너지원은 기존 중앙집중적이고 위계적인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를 분산화된 민주적 체계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붕과 벽에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설비를 세워 누구나 손쉽게 에너지 공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에너지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는 누구나 에너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특성을 지칭한 개념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원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에서는 에너지가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에서 양방향으로 이동하게 되고, 넓은 면에 걸쳐 생산하여 넓은 면에 공급하는 새로운 공급-수요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들의 자유로운 에너지 생산을 막고 사막 같은 곳에 광대하고도 강력한 재생가능발전설비를 세워 원자력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공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공급-수요 체계에 새로운 에너지원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죠. 원칙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에너지원 교체는 에너지전환(energiewende; energy transition)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전환이란 단순히 에너지원을 교체하는 것을 넘어서 화석연료 중심의 중앙집중적 에너지공급-수요체계를 재생가능에너지원 중심의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체계로 바꾸는 것까지 일컫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전력망을 한전이라는 초거대 공기업이 독점하고 있어 단일 공급자가 모든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합니다. 전기는 오로지 한전에서만 살 수 있으니 거래가 매우 단순합니다. 소비량에 kWh당 전기요금을 곱하여 과금하고 수금하면 됩니다. 하지만 집집마다 자기 집 지붕과 벽에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하여 자기 집에서 쓰고 남는 전기를 전력망을 거쳐서 다른 집에 공급하고, 전력 소비자들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서 얻은 한전의 전기보다 이웃에서 얻은 재생가능 전기를 먼저 사서 쓴다고 하면 거래가 매우 복잡해집니다. 1:1로 거래를 한다면 비교적 단순하겠지만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소비자가 거래를 한다면, 또 경우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공급자가 소비자가 되기도 한다면 거래는 아주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중앙거래소 없이 신뢰성있는 재생가능전기 개인간 직접 거래(peer-to-peer; P2P)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어 적지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검색됩니다. 블록체인(blockchain)은 간단히 정의하면 “개인간 직접 거래 네트워크(peer-to-peer network)의 각 이용자들이 접속해서 거래 내역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이전의 데이터를 수정할 수는 없는 전산화된 거래 장부(a digital ledger of transactions)”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재생가능에너지원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의 개인간 직접 거래의 성격, 달리 말해 분산적인 (decentralised) 성격 때문에 재생가능에너지 성장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초가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과 블록체인을 결합한 선구자들이 세계에 여럿 있는데 그 중 가장 앞에 서있는 곳은 호주의 벤처기업 <파워레저(Power Ledger)>라고 합니다. 2016년에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에너지 거래 플랫폼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 파워레저사는 가정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잉여 전력을 거래하는 개인간 직접 거래 네트워크에서 판매와 구매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파워레저사의 솔루션은 호주 뿐만아니라 인도, 일본, 태국, 미국까지 진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에 기반을 둔 <일렉트론(Electron)>사나 에스토니아의 전산 혁명의 핵심이 되고 있는 <위파워(WePower)>사 역시 에너지 네트워크와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하고 있는 선구적 기업의 사례로 꼽힙니다. 한국의 한전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가까운 범위 안의 프로슈머가 개인 간에 전력을 팔 수 있게 시험사업을 한 바 있었습니다만 이 결과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탄소배출을 낮추고 에너지전환을 촉진하는 데에, 그리고 나아가 에너지 민주주의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기술과 재생가능에너지 운동의 결합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녹색아카데미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공부를 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점 정도만 소개하고 이후 더 공부를 해서 기사를 준비해보겠습니다.
참고 기사 :
“Decentralising Solar With Blockchain: Improve the Competitiveness of Solar in Energy Transition”, <a rel=”noreferrer noopener” aria-label=”<Solar Magazine> 2020년 1월 6일자 기사.
“英, 블록체인 기술로 에너지 직거래…현실이 된 반값 전기료 -에너지혁명 유럽 현장을 가다”, <매일경제> 2018년 6월 18일자 기사.
“에너지, 블록체인을 만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한국에너지> 2018년 5월 21일자 기사.
참고 자료 :
“블록체인, 에너지 부문 기회와 과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시 연구 보고서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