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 (6) 식량과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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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수와 식량 생산량이 균형을 이룬 적은 인류 역사상 그리 많지 않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증가하고 인구도 따라 늘어났지만 식량은 언제나 부족했으며, 100년 전까지만 해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세계 어느 곳에나 있었다.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은 한 가지 작물에 의존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보여준다(1845~1849). 감자는 스페인이 ‘신세계’ 페루로부터 들여온 중요한 두 가지 작물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옥수수였다.

옥수수는 따뜻한 지중해 지방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고 감자도 천천히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감자는 스페인에서는 1570년, 영국과 독일은 16세기 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17세기가 되어야 정착했고, 1718년에는 다시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넘어갔다.

[그림 1] ‘감자 수확’ Jean-froançois Millet(프랑스). 1855.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농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일을 하며 자랐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농부들을 표현하기 위해 애를 썼고 농촌 풍경도 담아냈다. (출처: wikipedia)


사람들은 감자를 식용보다는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했다. 19세기 이전에 주식으로 감자를 길렀던 곳은 아일랜드와 발칸반도 정도이다. 인구는 많고 경작할 땅은 부족했기 때문에 생산량이 높은 감자를 길러 주요한 식량으로 삼았다.

아일랜드의 인구는 1846년 당시 850만 명에 달했다. 1500년 경에는 이보다 10배 적은 8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가난한 농민들은 면적 0.2 헥타르(2000평방미터) 땅에 감자만 심었다. 당시 아일랜드 경작지 전체의 40%가 감자를 재배하는 땅이었다.

그런데 감자는 병이 잘 드는 작물이었고, 유럽 북서부는 습도가 높아 감자가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1739~1741년에 기후가 나빠 대흉작이 있었고 아일랜드 전체에서 50만 명이 굶어죽었다. 1830년 쯤 되면 흉작이 일상화되어 작황이 그럭저럭한 해에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845년 미국에서 감자에 곰팡이를 일으키는 전염병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자라고 있는 감자뿐만 아니라 수확하여 저장 중인 작물까지도 썩게 만드는 병이었다. 그 해 여름이 지나면서 유럽 전역에 이 감자 전염병이 퍼졌고, 그 후 2년 동안 유럽에서 감자를 파는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림 2] ‘감자를 먹는 사람들’. Van Gogh(네덜란드). 1885. (출처: wikipedia)
고흐는 이 그림에서 있는 그대로의 농부의 모습,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먹는 농부의 손을 보여주고자 했다.


기근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영국 정부의 정책이었다. 자유 경쟁 원리를 내세우면서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의 기근 사태에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일랜드로 밀이나 옥수수가 수입되기는 했지만 농부들은 살 돈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곡물 중 상당 부분이 외국으로 수출되기까지 했다.

1846년 기근이 절정에 달해있을 시기에 중앙 정부는 빈곤구제사업을 중단했다. 주민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구호 식량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방정부도 재원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기업이나 자선단체만이 구제 식량을 일부나마 제공하였다. 1847년 겨울까지도 식량을 무상으로 배급하지 않았다.

그 결과 1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굶어서 혹은 영양실조로 죽어갔다. 그리고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19세기 말까지 다시 300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났고,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 약 450만 명이 되었다.

[그림 3] 아일랜드 대기근(1845~1849). 미국으로 떠나는 아일랜드인들. 1874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출처: HowStuffWorks)


아일랜드 기근을 통해 식량 공급에 두 가지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19세기 유럽 사회에서조차 1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굶어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기근이 일어나는 데는 식량 부족 이외의 문제도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감자 이외에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었지만 정부가 그것을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필요한 식량이 충분히 있어도 일반 대중이 살 수 없는 수준으로 값이 높아져버리면 그 식량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43년 벵골에서는 기근으로 약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고 경찰과 군대가 비싼 음식이 쌓여있는 상점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1921~1922년에 발생한 러시아 대기근 때도 비슷했다. 러시아 혁명, 내전, 철도시스템 미비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러한 와중에 러시아 정부는 곡물 생산량의 5분의 1 가량을 수출했다. 공업화를 위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양은 당시 세계 곡물 무역량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근대 초 유럽까지 정부는 시장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공정한 값을 정하는 수준의 일만 한 것이다. 상인들이 식량의 값을 서로 교환하고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지역에서 판매하려고 하면서 식량 공급과 분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정부도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농업에는 위험 요인들이 더 많아졌다. 홍수, 가뭄, 혹한, 폭염, 태풍, 들불 등 한 해의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요인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고 강도와 빈도도 높아졌다. 실제로 기후위기와 식량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내전, 분쟁, 이주 등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위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식량 분배 문제는 생산량만의 문제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자료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6장).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발췌, 요약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20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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