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내공생과 자유에너지로 본 생명 – (5)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염기성 열수 분출구


“세포내공생과 자유에너지로 본 생명”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유력한 생명 기원 장소인 염기성 열수 분출구를 통해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를 구성해봅니다.

(1)편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보러가기
(2)편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와 철학적 문제” 보러가기
(3)편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출현” 보러가기
(4)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자유에너지” 보러가기
(5)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염기성 열수 분출구”
(6)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 – 1 보러가기
(7)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 – 2 보러가기
(8)편 “바탕체계와 온생명” 보러가기

김재영 (녹색아카데미)2019년 12월 17일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 염기성 열수 분출구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세포들이 음의 엔트로피, 즉 자유에너지를 얻는 방식은 원론적으로 얇은 막을 사이에 둔 양성자 기울기를 통해 ATP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이하 자촉질서)의 형성을 말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닉 레인이 지구상의 모든 세포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제시하는 여섯 가지 기본 특성을 검토해 보는 것이 유용하다. 레인은 이를 지구상의 세포로 국한시켜 표현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 논의를 자촉질서의 형성에 대한 논의로 쉽게 확장할 수 있다.

(i) 새로운 유기물 합성을 위한 반응성 있는 탄소의 지속적인 공급
(ii) 물질대사의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자유에너지의 공급
(iii) 물질대사 반응을 유도하고 반응 속도를 높이는 촉매(효소)
(iv) 열역학 둘째 법칙에서 진 빚을 갚고 생화학 반응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폐기물 배출
(v) 구획화: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는 과 같은 구조
(vi) 유전물질: 세부적인 형태와 기능이 명시된 RNA나 DNA 또는 그에 상응하는 것

이 여섯 가지 속성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단순히 나열된 것이 아니다. 장회익 (2014) 5-6절(171-175쪽)에서 제시된 자촉질서의 한 모형은 개념적 예시로서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주된 초점이 (vi) 유전물질에 맞추어져 있다. 이 모형을 더 확장할 때에는 레인의 목록이 유용하다.

먼저 탄소의 지속적인 공급은 자명하다. 유기물질과 무기물질을 구별하는 기준이 하필 탄소인 이유는 지구상의 특수한 진화와 관련된다. 가령 다른 항성-행성계에서는 탄소가 아니라 규소나 게르마늄과 같은 원소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그림 1] 밀러-유리 실험(Miller-Urey experiment). 생명의 화학적 기원을 밝히기 위한 실험이다. 플라스크에 원시 대기 구성물질이라고 여겨지는 물, 메탄, 암모니아, 수소 등을 넣고 전기 스파크를 주었더니 더 복잡한 유기화합물이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한 원시 대기 구성성분은 실제와는 다르다는 연구들이 이후에 나오고 있다.(설명과 그림 : wikipedia)


자유에너지와 관련하여 스탠리 밀러의 실험과 그 뒤의 다양한 화학진화에 대한 실험실 연구에 대해 레인은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밀러의 실험 이후 단백질이 먼저인가, 핵산이 먼저인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어 왔지만, 레인의 관점에서는 자유에너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느 쪽도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밀러의 실험에서는 우연한 환경적 요인(원시대기나 번개 등)에서 코아세르베이트와 같이 단백질로 확장될 수 있는 고분자가 만들어졌으며, 이렇게 우연히 만들어진 단백질이 촉매(효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에 중요한 기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의 중심설에 따르면 핵산이 없이는 단백질이 합성될 수 없으므로 사실 어떻게든 핵산이 먼저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원시지구의 화학적 진화에 대한 논쟁은 핵산이 먼저인가, 아니면 단백질이 먼저인가라는 단순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RNA의 촉매적 속성을 발견한 공로로 198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시드니 앨트먼과 토머스 체크 등이 리보자임을 출발점으로 삼아 RNA 세계를 구성함으로써, 이 논쟁이 종식된 것처럼 보였지만, RNA 세계의 경우에도 더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은 바로 자유에너지의 흐름이다.

만일 생물에너지학의 접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지구상 생명체 안의 자유에너지는 보편적으로 ATP의 생산, 즉 산화적 인산화(ox phos)의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유에너지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성자 기울기가 있는 얇은 막의 형성이 된다.

이것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만들어지기 위한 바탕체계에 해당한다. 또한 국소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낮아진 엔트로피를 벌충하기 위해서는 그 경계면 밖에서 더 많은 엔트로피 증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 바로 적절한 배출이다.

[그림 2] 열수분출구는 생명이 시작되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을 만족시킨다. (사진 : Aeon)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는 바탕 체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열수 분출구(hydrothermal vent)이다. ‘블랙 스모커’처럼 뜨거운 (또는 따뜻한) 바닷물이 올라오는 해저 분출구들이 1970년대에 발견되었는데, 그곳에는 위태롭게 살아가는 생명체가 무척 풍성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존 바로스(John Baross)는 바로 이 해저 열수 분출구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곳이라고 믿었다. 귄터 베히터스호이저(Günter Wächtershäuser)는 이 곳에서 이산화탄소가 유기물로 환원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이를 황철광 유인(pyrites pulling)이라불렀다. 그러나 마그마에서 만들어지는 뜨겁고 강렬한 분출구인 블랙 스모커에서는 단지 화학적 기울기만 있을 뿐 실험실에서 유기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지구화학자 마이크 러셀(Mike J. Russel)은 1988년부터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여 염기성 열수 분출구가 블랙 스모커의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해 준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미생물학자 빌 마틴(W. Martin)이 동참했다. 염기성 열수 분출구는 온도가 섭씨 60-90도 정도이고 바다 위에 굴뚝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구멍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벌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염기성 열수 분출구는 생명의 기원에서 요구되는 조건을 정확히 제공한다. 다량의 탄소와 에너지의 흐름이 무기 효소에 물리적으로 전달되어 유기물이 고농도로 농축될 수 있다. 열수액에는 수소가 풍하게 녹아 있으며, 메탄, 암모니아, 황화물을 비롯한 환원성 기체는 더 적다.”

Lane 2015: 186[142]

염기성 열수 분출구에서는 자연적인 양성자 기울기가 형성된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막에서 생기는 양성자 기울기와 본질적으로 같다. 2000년에 발견된 ‘로스트 시티’라는 이름의 염기성 열수 분출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은 세균 및 고세균이다. 러셀, 마틴, 레인, 베히터스호이저 등의 연구자들은 염기성 열수 분출구가 바로 생명이 탄생하는 곳이라 믿고 있다.

… 다음 편에서는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을 두 차례에 걸쳐 다룹니다. 생명 탄생 후에 더 복잡하고 큰 생명체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내부공생이론입니다.

참고문헌

  • 장회익 (2014).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울아카데미.
  • Lane, N. (2015). The Vital Question: Why Is Life the Way It Is?. Profile Books; 김정은 옮김 (2016). 바이털 퀘스천: 생명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까치.

* “세포내공생과 자유에너지로 본 생명” 시리즈는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장회익, 2014)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명의 정의, 자유에너지, 내부공생, 온생명론 등을 다룹니다. 특히 물리학으로 생명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문제를 제기하신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 대한 상보적인 관점으로, 생물학자(린 마굴리스의 세포내공생)와 생화학자(닉 레인의 세포막과 자유에너지 접근)의 이론을 함께 소개합니다.

* 이번 과학칼럼 새 연재는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2016년 아산)에서 소개된 글(김재영, 녹색아카데미)입니다. 장회익선생님의 온생명론과 공생이론, 자유에너지를 비롯한 생화학적 생명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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