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열회수배수장치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였습니다. 제가 파시브기술이라는 개념으로 묶어서 이해하는 기술 중 한 가지 종류입니다. 개념을 빼고 개별 기술만 소개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이 아닌가 하는 뜻이었는데 개별 기술 소개는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큰 차원의 맥락은 잃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파시브기술’이라는 큰 맥락을 먼저 소개하고 그 맥락 안에서 구체적인 개별 기술들을 다루어 나아갈까 합니다.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 파시브기술연구소)
인간의 삶은 기술 위에서 펼쳐집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쓰지 않는 사회로 전환하는 길에는 기술에 대한 고찰이 꼭 필요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 100%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원 기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매달 1천만원을 벌지만 항상 6~7백만원은 길에 흘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늘 돈을 흘리기 때문에 1천만원 벌어도 3~4백만원 어치 생활수준 밖에 누리지 못합니다. 많이 버는 것보다 돈 흘리지 않는 게 더 시급한 과제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재생가능에너지원이 화석연료에 비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에 절대 100%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는 올 수 없다고 합니다.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그 2~3배를 투입해야 하는 비효율이 지속된다면 아마 그 말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계속 그래야만 하는 걸까요?
위의 그래프는 현재 파시브하우스 인증 심사 중인 판교의 한 주택을 대상으로 건축물에너지성능을 조정해서 간단하게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입니다.[주석 1] 실제는 연간 난방에너지요구량 13.3 kWh/(m²a)인 파시브하우스입니다. 여기에 단열, 열교, 창호, 차양, 문, 기밀, 환기, 난방·온수 설비 등을 달리하여 에너지성능을 비교해보았습니다.[주석 2]
겨울철 실내 평균 기온 20℃ 등 실내 쾌적성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요구량 전체를 비교해보면(그림 1) 파시브하우스일 때에 비하여 최근 건축물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을 따르면 2배 가량, 현재 서울지역 아파트 표본 평균을 따르면 3배 가량 에너지요구량이 많습니다. 이를 지붕과 벽에서 얻은 재생가능전기로 공급한다고 가정하는 재생가능1차에너지소요량(Primary Energy Renewable; PER)[각주 3]으로 환산해보면 서울 아파트 수준이 파시브하우스 대비 3.6배, 건축물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이 2.1배 많습니다. 난방을 위한 재생가능1차에너지소요량만 비교를 해보면(그림 2, 그림 3) 서울 아파트 평균이 판교 파시브하우스 대비 9배, 에너지절약설계기준 경우는 4배 높았습니다. 단 한 경우를 놓고 거칠게 비교한 바라 정교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흘리지 않는 기술 수준이 미약할수록 버리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마구 버리게 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 모두를 아울러 에너지효율 향상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파시브기술’로 묶어 부를 수 있는 일련의 기술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파시브기술이란 용어는 제가 개념화하고 있는 말로서 아직 널리 알려진 말도 아니고,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확립된 용어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를 목표로 하고 가꾸고 있는 개념입니다. 굳이 없는 용어를 만들어서 개념화하려는 까닭은 여러 가지 에너지효율화 기술 중에서 이 일련의 기술이 줄일 수 있는 에너지소비량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파시브기술이 미약할 때 우리는 도심의 하늘을 덥히기 위해서 난방을 하고, 땅 밑의 하수관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온수를 만들게 됩니다. 흘려버리는 에너지가 실제 이용하는 에너지보다도 많다면 무엇보다 새는 구멍부터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가 뿐만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파시브기술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파시브기술의 개념과 종류, 그리고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주석 1] 파시브하우스 연구소(Passivhaus Institut)에서 개발한 건축물 에너지밸런스 평가도구인 PHPP (PassivHaus Planning Package)로 계산하였습니다.
[주석 2] 첫 번째 조건은 최근 실측 연구(진혜선 외(2019). 계측 데이터를 활용한 아파트 표본 세대에서의 용도별 에너지사용량 원단위(2017-2018) 분석. 한국건축친환경설비학회논문집 13(4), pp. 211-222.)의 표본 평균 에너지사용량에 가깝게 맞춘 결과입니다. 이 연구는 한국의 주거용 건물에서 용도별로 에너지를 얼마나 쓰는지 실측하는 국가과제연구로서 서울지역 아파트 200세대를 표본으로 선정하여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개년에 걸쳐 계측 시스템을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실측 자료를 얻는 연구라고 합니다. 진혜선 외(2019)는 서울 16개 아파트 단지 71개 표본 아파트의 2017~2018년 1개년 실측 자료를 집계한 연구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2018년 9월부터 시행 중인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7-881호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에 따라 단열 및 창호 조건을 맞춘 결과입니다.
[주석 3] 파시브하우스 연구소(Passivhaus Institut)는 2015년 PHPP 9을 발표하면서 널리 통용되던 화석연료 환산 일차에너지(primary energy) 개념을 대체할 재생가능1차에너지(primary energy renewable; PER) 개념을 발표하고 PER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파시브하우스 표준을 발표하였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재생가능1차에너지 개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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