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 1

쉬모니 카로이의 책 <물리학의 문화사>와 ‘두 문화’의 극복에 대한 글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쉬모니 카로이는 문화사적 맥락에서 물리학을 살피는 흔치 않은 책이며, 과학적 전문지식인과 인문학적 지식인 사이의 문화(두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2편 “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 2.두 문화의 극복” 보기

2019년 10월 15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문제의식

물리학의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물리학사는 과학사와 어떻게 다를까? 물리학이 문화적 역사로 서술될 수 있을까? 물리학은 인류 문화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을까? 고대 그리스와 이슬람의 자연철학은 어느 정도나 물리학사에 포함될 것인가?

뉴턴 이후의 소위 고전역학의 전개, 가령 오일러, 라그랑주, 해밀턴이 주도한 역학의 역사는 물리학사에서 어느 정도나 다루어야 하는가? 열, 전기, 자기, 빛에 대한 접근을 인류의 다른 생활상과 독립하여 다루는 것이 정당한가? 함께 다룬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리학이라는 범위는 어떻게 정해주어야 하는가?

먼저 생물학사나 화학사 등과 달리 물리학의 전반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홀턴(Gerald Holton)과 브러시(Stephen G. Brush)의 <물리학, 인류의 모험>(Physics, the Human Adventure)은 제목과 달리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접근이 가미된 물리학 개론에 가깝다.

[그림 1] 물리학사를 다룬 저서들

아이작 아시모프의 <물리학의 역사>(The History of Physics 1989)는 실상 역사책이 아니다. 오히려 모츠(Lloyd Motz)와 위버(Jefferson Hane Weaver)의 <물리학 이야기>(The Story of Physics 1989)가 물리학사에 더 가깝다. 명실 공히 물리학 개념의 발달을 잘 보여주는 막스 야머(Max Jammer)의 저서들도 힘, 공간, 질량 등의 특정 개념의 발달사에 그치고 있다. 그 밖의 대부분은 인물 중심의 역사 서술이거나 특정 분야와 특정 시기에 국한되어 있다.

이와 달리 헝가리의 물리학자이자 학자-교육가인 쉬모니 카로이(Simonyi Károly 1916–2001. 헝가리의 전통에 따르면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쓴다)의 저서 <물리학의 문화사>는 문화사적 맥락에서 물리학 전반을 훑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2012년에야 영어판이 출판된 쉬모니의 <물리학의 문화사>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과학적 전문지식인과 인문학적 지식인 사이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문제를 다시 검토할 자원을 얻고자 한다.

[그림 2] 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영어판은 2012년이 되어서야 출판되었다.

쉬모니 카로이

쉬모니는 가난한 농가에서 열 명의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영재성을 인정받아 먼 친척 중에 헝가리의 수상까지 지낸 학자가 후원을 하면서 부다페스트 공과대학(Budapesti Műszaki Egyetem, BME)에 가게 되었다. 1940년에 최우수로 졸업하면서 공학 석사학위(Diplom)을 받았고, 같은 해에 페치(Pécs)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L.L.D.)를 받았다.

그후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 새로 생긴 원자물리학과에 조교수 자리를 얻는 동시에 바이 졸탄의 퉁스람 연구소(Tungsram Laboratory)의 연구원이 되었다. 이차세계대전 동안에는 전자기학과 레이더 연구를 담당했다. 인류 최초의 월면 레이더 반사 실험을 통해 전파천문학에도 크게 기여했다.

1948년 소프론(Sopron) 대학 전기공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핵 및 입자 가속기를 설계하고 건설했다. 1952년에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의 정교수가 되었고, 헝가리 국립물리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쉬모니는 <전기공학의 기초>, <전자공학의 물리학>, <전자기이론>의 3부작을 저술했고, 이 책들로 전기공학과 전자공학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림 3] 쉬모니 카로이 (1916–2001)

1956년 10월 23일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1949년 이래 소련의 지원 아래 권력을 장악한 사회주의노동당에 대한 전국적인 저항이었다. 쉬모니는 국립물리학연구소 혁명협의회 의장을 맡기도 했지만, 소련이 개입하여 11월 10일에 헝가리 혁명이 불발에 그치게 되면서 결국 국립물리학연구소와 부다페스트 공과대학 모두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겪었다. 쉬모니는 탁월한 강의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부다페스트 대학의 학생들은 기숙사에 쉬모니를 특별초청하여 강의를 듣고자 했다.

1970년에 시작된 이 특별강의의 주제로 쉬모니가 선택한 것은 바로 물리학의 역사였다. 과학 전반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물리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과학사가 널리 정착된 시기가 아니었다. 쉬모니의 특별강의에는 전기공학 전공의 학생들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학과의 학생들과 교수들과 여러 학자들과 고등학교 교사들이 몰려들었다.

쉬모니의 특별강연 원고는 1976년에 <물리학의 문화사>(A fizika kultûrtörténete)라는 제목의 책이 되었으며 10년 사이에 6만4천부가 팔리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사이에 쉬모니는 다시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의 교수직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 책은 5판까지 개정되면서 헝가리 박물관과 국립도서관의 희귀한 자료들까지 포함하는 독보적인
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0년에는 헝가리어 3판으로부터 독일어 번역판(Kulturgeschicte der Physik, von den Anfangen bis heute)이 출판되었고, 독일어판도 3판까지 개정되었다. 독일어권 대학에서는 지금도 물리학사에서 가장 표준적인 통론으로 이 책을 선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칼스루에 대학에서 2001년에 개설된 강의 Einführung in die Geschichte und Philosophie der Physik에서는 쉬모니의 책을 주된 참고문헌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쉬모니의 책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쉬모니의 아들 찰스 쉬모니(Charles Simonyi, 헝가리어 이름은 아버지와 같은 Simonyi Károly)의 노력으로 2012년에 영어판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찰스 시모니는 20살이었던 1968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에 입학했고, 스탠퍼드 대학원에 있을 때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Xerox PARC)에 특채되면서 앨런 케이, 버틀러 램슨, 로버트 메트칼프 등과 함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Xerox Alto를 개발하는 주역이 되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겨 Word와 Excel 프로그램을 만드는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후 MS 오피스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림 4] 쉬모니 카로이의 저서들

물리학의 문화사

두 문화의 극복을 모토로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존 브로크만의 edge.org에서는 쉬모니의 <물리학의 문화사> 영어판을 크게 환영하는 여러 서평이 등장했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이 책을 교사이자 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저자의 일생일대의 기념비적인 저작이라고 칭송하면서, 그 세 요소에 따라 책의 특징을 서술한다.

첫째, 텍스트는 지난 4천여 년 동안의 철학과 예술과 문학의 풍부한 문맥에서 과학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둘째, 헝가리 문서보관소와 국립도서관 및 박물관에서 가져온 방대한 시각자료는 서구의 독자들이 볼 수 없던 희귀하고 소중한 자료이다. 셋째,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여러 언어로 된 고전들과 저술들에서 가져 온 풍부한 인용이다. 가령 케플러의 저작과 뉴턴의 저작을 직접 읽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고전들을 섭렵할 수 있게 해 준다.

쉬모니의 <물리학의 문화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쉬모니는 서문에서 과학의 대중적 이해와 대학에서 강의교재로 사용하는 것 외에 물리학사 통론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를 위한 풍부한 직접 인용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사와 직접 연결된 물리학사의 서술에서는 시대의 구분이 중요하다. 쉬모니의 책은 (1) 고전적 유산 (2) 유산의 상속 (3) 17세기 과학혁명기의 물리학 (4) 고전물리학의 완성 (5) 20세기의 물리학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가 물려받은 유산을 상세하게 살핀 뒤, 피타코라스와 플라톤의 접근을 신비주의와 수학을 매개로 논의하고, 물질과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종합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그리스 자연철학에 대한 기존의 저서들과 달리 물질과 운동이라는 문제, 특히 천체운동에 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현대물리학의 언어를 이용하여 다시 서술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림 5]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단순화한 그림 (출처 : 쉬모니 카로이, <A cultural history of Physics>)

유산의 상속은 중세 유럽의 경제와 정치를 배경으로 비잔틴, 아랍, 인도의 물리학이 유입되는 과정과 이에 이은 피보나치, 네모라리우스, 오렘, 뷔리당 등의 논의를 상세하게 살핀다. 르네상스와 물리학의 관계를 역학의 진보, 예술가의 과학, 전문적인 천문가, 인쇄기술의 역할을 중심으로 다룬다. 이 책의 방대한 일차사료들로부터의 인용과 여러 도서관에서 가져온 풍부한 시각자료들이 특히 돋보인다.

17세기 과학혁명기의 물리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3장 이후로는 수학적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설명한다. 이 또한 현대적인 접근이 아니라 당시의 방식을 최대한 구현하려 애쓰고 있다. 가령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논의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기하학의 내용을 직접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지구중심체계와 태양중심체계가 실제 지구상의 관측에서는 동등함을 명시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림 6] 태양중심체계와 지구중심체계가 실제 지구상의 관측에서는 동등함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쉬모니 카로이, <A cultural history of Physics>)

뉴턴의 성과와 의미를 더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 뉴턴이 케플러 법칙이나 역제곱 법칙을 증명한 방식을 핵심적으로 재구성하되 최대한 원래의 접근에서 멀어지지 않게 했다. 갈릴레오만이 아니라 그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스테빈(Simon Stevin 1548-1620), 얀 데 그로트(Jan Cornets de Groot 1554-1640), 이삭 베크만(Isaac Beeckman 1588-1637) 등의 접근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중간에서 동역학의 전개에 매우 의미 있는 기여를 한 하위헌스에 대한 논의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종종 과학사 서술의 대상이 되는 하위헌스의 여러 흔들이들뿐 아니라 하위헌스의 동역학과 충돌법칙 및 원운동에 대한 고찰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고전물리학의 완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4장은 뉴턴 이후의 소위 고전역학의 전개, 가령 베르누이, 오일러, 라그랑주, 해밀턴이 주도한 역학의 역사를 비롯하여 빛, 전기, 자기, 열, 원자를 다양한 원전을 활용하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뒤가의 <역학의 역사>를 제외하면 기존의 역사서술에서는 사실상 대부분 누락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석기하학과 미적분학이 정립되어 가고, 그에 맞추어 뉴턴의 자연철학이 이 수학에서의 발전과 맞물려 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잘 서술하고 있다. 오일러가 역학 체계를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 미적분학과 해석기하학으로 다시 서술하는 과정과 이를 더 발전시킨 달랑베르, 모페르튀, 칸트, 라그랑주, 해밀턴으로 이어지는 역학의 계보를 일차사료에서의 인용과 현대 독자들을 위한 재구성된 보충 논의로 잘 보여주고 있다.

에플루비움이 전자기마당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나 칼로릭 이론이 열역학으로 대치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다룸으로써 18세기로부터 19세기까지로 가는 양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는 전형적인 서술들이 대개 19세기에 갑자기 빛, 전기, 자기, 열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급증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과 다르다.

쉬모니의 책에는 유럽의 역사가 물리학적 주제의 서술에 매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튀코 브라헤가 덴마크의 황제 프리드리히2세의 지원을 받게 된 경위와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2세가 왜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를 지원했는가 하는 문제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쉬모니의 책이 지니는 또 다른 묘미는 기존의 서유럽 중심의 서술과 달리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동유럽이 그리스어를 쓰는 비잔틴 제국과 라틴어를 쓰는 서유럽 사이에서 고등교육기관을 확립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해명이나 파즈마니 추기경(Péter Pázmány 1570–1637)이 부다페스트 대학의 전신이 되는 기관을 만든 과정의 서술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내용이다. 체코의 저명한 교육개혁가 코메니우스(Comenius, Jan Amos Komenský, 1592–1670)도 마찬가지다.

[그림 7] 부다페스트 공과대학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의 현대물리학의 주요주제들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칭성과 법칙이라는 제목의 절을 통해 우주론과 입자물리학의 최신 성과를 고스란히 소개하고 있는 점은 물리학사를 바로 지금까지(bis heute)로 이해하는 쉬모니의 관점을 잘 드러낸다. 이는 물리학의 언어로 수학을 강조하고 물리학사의 서술을 수학사와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2편 “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 2.두 문화의 극복” 보기

이 글은 2014년 4월 한국과학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와 두 문화의 극복”(김재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논문의 일부입니다.

2019년 10월 15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