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극장 : 제1막 유토피아로 간 베니스의 상인 – 제3장, 제4장

기후극장은 역사와 문학을 통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꾸려집니다. 좀 더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기존 문학의 설정과 인물을 가져와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고 여기에 기후위기와 관련된 중요한 주제와 역사적 사실을 입혔습니다.

제1막 “유토피아로 간 베니스의 상인”은 대서양 무역으로 사업을 넓히려 신대륙으로 떠났던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가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어디에도 없는 섬’으로 들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나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본주의의 싹을 목격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설정 일부와 인물을 가져와 사용하였으며 원래 작품의 줄거리와는 다른 꾸며낸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유토피아로 간 베니스의 상인” (2)편에서는 여행에서 돌아온 안토니오가 친구들에게 유토피아에서 토머스 모어를 만나 나눈 이야기, 신대륙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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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등장인물

안토니오 : 베니스의 상인. 유대인 샤일록에게 자신의 상선을 담보로 돈을 빌려 친구 바사니오에게 결혼 경비를 마련해주었다가 잠시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 더 큰 부자가 되고 그 돈으로 대서양무역에 뛰어든다.

토머스 모어 :  <유토피아>의 저자. 잉글랜드 헨리 7, 8세 시기 법률가, 정치가, 인문주의자.

라파엘 히틀로다이오 :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토머스 모어에게 전해준 포르투갈 사람. 그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탐험대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다.

피터 헬레스 : 안트베르펜의 젊은 정치인. 토머스 모어를 만날 당시 시장의 비서실장이었고 토머스 모어의 친구였던 에라스무스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되었다. 토머스 모어에게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를 소개시켜 준다.

바사니오, 그레시아노, 살레리오, 솔라니오, 로렌조 : 안토니오의 친구.

포셔 : 벨몬트의 큰 유산 상속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구혼자를 시험한다. 안토니오가 빌려준 돈으로 구혼하러 온 바사니오가 시험에 통과하여 그와 결혼한다.

샤일록 :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갚을시 가슴살 1파운드를 가지겠다는 계약을 했다가 자신이 더 큰 봉변을 당하고 재산마저 잃고 개종을 강요당한다. 샤일록이 가진 재산의 절반은 딸에게 유산되고, 나머지 절반은 안토니오에게 넘겨진다. 안토니오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죄에 대한 벌로 넘겨진 이 돈은 샤일록이 사망할시 딸 제시카에게 유산되도록 법정에서 판결되었다.

제시카 : 샤일록의 딸. 안토니오의 친구 로렌조와 결혼한다.

네리사 : 포셔의 하녀. 그레시아노의 아내.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법정에서 법정 서기관으로 변장을 하고 포셔를 도왔다.

레오나르도 : 바사니오의 하인.

론슬롯 : 어릿광대. 안토니오의 하인. 원래 샤일록의 하인이었다가 스스로 안토니오의 하인이 되었다.


제3장. 유토피아, 모어의 집 : 베니스의 상인, 인클로저와 대서양 노예무역에 대해 토머스 모어와 이야기하다.

때는 안토니오가 집으로 돌아오기 약 3년 전인 1597년, 토머스 모어의 집. 정원에서 안토니오가 토머스 모어와 함께 텃밭 일을 돕다가 쉬는 중에 이야기를 나눈다.

안토니오 : 모어 선생님. 제가 이곳에서 지낸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배도 이제 거의 다 고쳤고 곧 떠나야할 것 같습니다.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여쭤 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토머스 모어 : 무엇이든 물어보게. 단,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그만 하면 됐네. 책 <유토피아>에 다 적어두었으니 그 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게. 내가 와서 보니 라파엘님의 이야기 중 어느 것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없었네.

안토니오 : 네…

그런데 모어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유토피아에 오시게 겁니까?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영국을 탈출하신 건가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께서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결국… 

토머스 모어 : 목이 잘렸다고 알려졌지. 나도 소문으로 들었네. 헨리 8세는 나를 놓쳤다는 걸 사람들이 모르길 바랬을 거야. 일단 나를 잡아 가뒀다고 알려 놓은 다음 사방으로 찾으러 다녔겠지. 나는 붙잡히지 않았네. 물론 런던탑에 갇힌 적도 없어.

안토니오 : 아니, 그렇다면 모든 것이 헨리 8세의 조작이라는 말씀인가요?

토머스 모어 : 그렇게 일을 꾸며낼 줄은 나도 몰랐지. 그의 무도한 종교와 법을 가만히 앉아서 따를 생각이 나에게는 조금도 없었어. 왕이 바티칸에 보낸 이혼청구서(1530년)에 내가 서명을 거부했을 때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네. 앤 왕비의 대관식(1534년)이 열리기 전에 이미 나는 런던에 없었네. 브뤼헤(Brugge)에 가족들과 함께 숨어 있었지. 영국과 한자 동맹 도시들의 스파이가 득실대는 그 곳에 말일세.

나는 안트베르펜에 있는 친구 피터 헬레스에게 미리 연락해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님께 내 상황을 전해달라고 하고 그곳에서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네. 나는 피터가 마련해준 브뤼헤의 모처에서 거의 1년 동안 꼼짝도 않고 라파엘님을 기다렸네. 라파엘님은 이미 유토피아 사람이 되어 있어서 그에게 소식이 닿을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었지. 그러나 결국 라파엘님은 나를 찾아와 주었고 우리는 그의 배를 타고 유토피아로 올 수 있었네. 이 집도 그분께서 살던 집이지. 라파엘님께 신의 은총이 계시길.

안토니오 :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아니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지고 난 뒤 <유토피아>는 더 유명해져서 양식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책과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있답니다. 에라스무스님께서는 모어 선생님께서 눈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고 하셨죠. 영국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선생님이 지닌 천재성을 다시 발견할 수 없을 거라며 깊이 애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토머스 모어 : 그래 그건 그렇고, 이제 내가 자네에게 물을 차례네. 자네 신대륙으로 간다고 했는데 유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떤가? 이곳이 좋다면 그냥 눌러살아도 좋아. 내가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겠네.

안토니오 : 네? 모어 선생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장사꾼입니다. 사실 이번 배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고, 잠시 맡게 된 친구의 유산도 이번 투자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메리카의 설탕, 면화와 담배로 이 배를 가득 채우지 못한다면 저는 절대 돌아갈 수 없습니다.

토머스 모어 : 그렇군. 안토니오, 그런데 자네 도대체 유토피아에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안토니오 : 선생님,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아시다시피 저는 폭풍을 만나 이곳으로 흘러들어왔고 생각지도 못하게 선생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폭풍에 망가진 배도 고쳐야 했지만, ‘유토피아’에서 ‘토머스 모어’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금방 떠날 수 있겠습니까?

토머스 모어 : 내 뜻은 어쩌다 ‘어디에도 없는 섬’에 오게 되었느냐 말일세. 애초에 이 넓고 위험한 대서양으로 뛰어든 이유가 무엇인가?

안토니오 : 저는 신대륙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선생님. 예전에는 그저 상선을 운영하기만 했습니다. 리비아의 트리폴리스, 서인도 제도와 멕시코, 영국 등 여러 곳으로 상선을 보냈었는데, 이제는 베네치아도 예전같지 않고 마침 큰 돈이 좀 생겨서 아메리카 대륙의 설탕과 면화 사업에 뛰어들어보려고 직접 나선 것입니다. 대서양 무역이 성장하면서 지중해에 가만히 앉아서는 충분한 이익을 낼 수가 …

토머스 모어 : 그러니까 왜 자네같은 유럽인들이 엄청난 시간을 들이고 위험한 대서양을 건너 금과 은, 향신료와 면화, 설탕과 노예를 사고 파는 수고를 하게 되었냐는 말일세. 이 일에는 엄청난 돈이 드네.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야. 스페인 왕이 제노바의 은행가들로부터 빌린 돈이 얼마인지 아는가? 지금은 어마어마할 걸세. 북아메리카로 콜럼버스를 보냈던 이사벨라의 손자 카를 5세(1550-1558)는 제노바 은행가들의 돈으로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고 결국 아들 펠리페 2세가 이어받은 바로 다음 해에는 파산까지 해버렸네. 아메리카에서 캐낸 금, 은에서 자신의 몫 10년치에 해당하는 돈이 그 전쟁에 들어갔어. 그게 끝이 아니야. 1556년에는 3천만 더컷(ducat)을 더 빌렸고 1575년에는 6천만 더컷을 또 빌렸어. 자네가 친구의 결혼 자금을 마련해주느라 베니스의 유대인에게 빌렸다는 돈이 얼마였다고 했지?

안토니오 : 저… 그게 3천 더컷이었습니다.(*주. 3천 더컷은 현재 6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토머스 모어 : 그렇군. 자네도 잘 알겠지만 대서양 무역은 원금을 회수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위험 부담도 아주 크네. 하지만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제노바의 은행가들이 꼬박꼬박 돈을 빌려주는 것이야. 보게, 왕은 군인들에게 급여도 줘야 하고 국가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지출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네. 반면 은행가들은 언제든 돈만 많이 들어오면 되지. 그렇기 때문에 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야. 아무튼 스페인 정부는 정치, 군사 문제에 제노바 은행가들의 간섭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돈을 쓰지 않을 수가 없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들의 노동으로 싼 값에 생산하는 설탕과 면화, 담배는 유럽의 권력자들에게 엄청난 자본을 만들어주고 있다네. 남아메리카의 은은 말할 것도 없어. 이 돈으로 세계 각지의 물자를 사고 팔아 막대한 이득을 얻고 다시 투자금으로 활용해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지.

[그림 3] 포토시의 은광.(페드로 시에자 데 레옹. 1553). 당시 포토시는 페루에 속했고 지금은 볼리비아에 속한다. 유럽 광산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농민전쟁 등으로 소요가 발생하던 상황에서 1544년 포토시에서 은광이 발견되었고 스페인은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은을 대규모로 확보할 수 있었다. 제노바 은행가들은 이 은에 대해 우선권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남아메리카의 광산지역의 환경과 선주민 공동체는 빠르게 파괴되어 1560~1590년 동안 인구가 85% 격감했다는 보고도 있다. (글 출처 : 제이슨 W. 무어, 2020:115-116. 그림 출처 : wikipedia)

안토니오 : 그런데 모어 선생님께서는 이 벽지의 섬에서 유럽의 소식을 어찌 그리 소상히 아십니까?

토머스 모어 : 유럽만이 아니네. 우리 유토피아 사람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세계 각지에 믿을 만한 사람들을 보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해왔네. 대서양의 작은 섬들과 카리브해의 섬들이 어떻게 파괴되고 섬 사람들과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떻게 노예가 되어 팔려나갔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게다가 ‘행운의 섬들’(Fourtunate Isles; Isles of Blessed)이 겪은 비극이 이곳에서도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안토니오 : ‘행운의 섬들’이라뇨?

토머스 모어 : 자네가 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마데이라 섬 같은 곳을 말하네. 마데이라, 아조레스, 카나리아같은 섬들은 고대 로마 시대를 지나 중세에 들어오면서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네. 바닷길이 끊어지면서 전설의 섬이 되어버렸지. 서쪽으로 끝까지 가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전설의 섬이 있는데 고결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곳이라고 유럽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지. 지금은 비극의 섬이 되어버렸지만.

[그림 4] 대서양 삼각무역. 유럽의 무기와 직물로 아프리카의 노예를 사고 이들을 아메리카 대륙까지 데려가 아메리카의 설탕, 당밀과 담배, 쌀, 면화와 바꿔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다. 행운의 섬들은 초기 대서양 무역에서 프런티어이자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출처 : Science)

토머스 모어 : 유럽인들이 자기 지역을 벗어나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내가 영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었네. 내가 책 <유토피아>에서 비판했듯이 인클로저가 이루어지면서, 아니 그 이전에 왕과 귀족들이 농민과 평민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비극의 싹이 텄다고 나는 보고 있어. 자네는 장사꾼이니 십자군 역사는 좀 알겠지? 십자군 전쟁이 막을 내리고 나서 유럽 나라들의 농업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네. 물론 교역량도 인구도 빠르게 늘어났어.

그런데 1315년 5월, 유럽의 전 지역에 집중적인 호우가 내렸네. 이 비는 세 달 동안 멈추지 않고 내렸지. 사람들은 신의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큰 화산(뉴질랜드 카하로아)이 폭발했기 때문일 거야. 하여튼 비가 그쳤을 때는 이른 추위가 닥쳤고 당연히 작황이 좋지 않았지. 그 다음 해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네. 그 후로 유럽은 예전처럼 다시 따뜻해지지 않았고 농산물 생산량도 계속 줄어들었네. 당연히 인구도 줄어들었지.

기후가 바뀌고 농사에 계속 실패하면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네. 땅은 이미 척박해져 있었고 식량은 부족했고 인구도 줄어 농사지을 사람들도 찾기 어려웠지. 결국 지배층들이 토지에서 별로 얻을 게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기 때문에 농업에 다시 투자할 수도 없었지. 지배층들은 농민들을 더 억압했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네. 이미 1300년대 초반부터 유럽 전역에서 평민들이 왕과 귀족에게 저항하고 있었거든.

내가 헨리 8세의 명령으로 양모 교역 분쟁을 해결하러 갔던 플랑드르에서도 1323년에 농노와 노동자들이 무장을 하고 봉기를 했던 역사가 있었네. 무려 5년 동안이나 지속되다가 결국 귀족들에게 패배했지. 브뤼헤, 겐트, 피렌체, 리에주, 파리 등 유럽 전역에서 이런 저항들이 14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고 결국 유럽 지역 전반에서 농노제가 폐지되었네.

[그림 5] ‘눈 속의 사냥꾼’. 피터 브뤼헐 디 엘더. 1565. 유럽의 소빙기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 (출처 : wikipedia)

안토니오 : 그럼 농노제가 폐지된 것이 농민, 노동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거란 말씀인가요? 저는 믿을 수가 없네요. 시대적 효용이 다 돼서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까? 양모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자가 필요해졌고 농민들이 도시의 공장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영주들의 폭압적인 통치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체제였지 않습니까?

토머스 모어 :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순서가 달라. 영주와 귀족들이 토지를 통제하고 농노들은 그들에게 지대와 세금, 십일조를 내고 보수 없는 노동까지 해주어야 하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제도(중세 봉건제)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낸 것은 농노와 노동자들이 자신이었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했지.

그런데 1400년대 중반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면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네. 영주와 귀족들을 위해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진 거야. 일할 사람은 부족해지고 노는 땅이 늘어나면서 갑자기 농노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져버린 거지. 낮은 지대와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는 힘, 교섭력이 생긴 거야.

[그림 6] 중세 영국 영지의 개념도. 봄가을경작지, 공유 방목지, 초지(meadow), 휴경지, 숲, 불모지(waste; 토질이 나빠 방목으로만 쓰이는 토지. 불모지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등으로 구분.(출처 : wikipedia) 인클로저가 유럽 전역에서 이루어지면서 농민들은 자기 소유의 땅을 잃었고 공유지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인클로저는 19세기 말까지 이어졌고 마지막 시기에 이르면 영국에서는 공유지를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된다.(제이슨 히켈, 2021:80-81.그림

안토니오 : 그래서는 농지도 공장도 운영하기가 상당히 어려울텐데요? 왕과 영주들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토머스 모어 : 잘 아는군. 그들은 엄청난 위협을 느꼈지. 지배층은 정치, 경제 질서의 기본적인 토대가 흔들리고 뒤집어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됐을 거야. 잉글랜드의 성직자 존 볼(John Ball. 1338-1381)은 농민들에게 ‘자유’를 찾을 때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네. 농민 봉기를 일으켜 크게 저항(1381년)했던 와트 타일러(Wat Tyler. 1341-1381)도 존 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었지. 자네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바로 그 다음 해에 치옴피의 난(Ciompi Revolt)이 일어났어. 실제로 노동자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더군.

1450년에 일어났던 잭 케이드 반란(Jack Cade’s Rebellion)은 자네도 들어봤을 걸세. 영국의 농노와 노동자들로 만들어진 군대가 런던까지 행진했으니까 말일세. 결국 유럽 전반에서 농노제는 거의 폐지되었네. 역사적으로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반란이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개별 반란들은 무참하게 진압되었지. 와트 타일러와 존 볼도 공개적으로 처형되었고.

[그림 7] 1381년 잉글랜드 봉기를 이끈 와트 타일러가 당시 런던 시장이었던 월워스(Walworth)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림은 Jean Froissart의 연대기에 포함된 삽화. 1483. (출처 : wikipedia)

안토니오 : 그렇다면 지금 땅에 사람이 아니라 양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농민들이 땅을 되찾아 농사를 짓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토머스 모어 : 역설적이게도 반란이 성공했기 때문이네. 자유를 획득한 농민들은 자기가 소유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목초지와 숲, 수로같은 공유지(commons)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어. 임금은 올랐고 지대는 낮아졌고 노동시간도 줄어들었네. 문제는 지배층들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야. 그들은 분노했네. 복종을 해야할 농민과 노동자 주제에 ‘자유’라니. 왕과 귀족과 교회, 지배 계급은 자유농민이 된 사람들을 다시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불가능한 일에 뛰어들지는 않았어. 아예 그들을 땅에서 쫓아내버리는 방법을 사용했지. 법과 권력으로 말일세. 이것이 바로 ‘인클로저'(enclosure)라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지배층의 소유물로 바꾸는 거지. 유럽 전지역에서 농촌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네. 농민들의 땅을 뺏고 작물을 불태우고, 공유지로 사용되던 숲과 수로와 방목지를 사유화해서 농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가톨릭 수도원마저 해체하고 수도원에 속했던 토지는 귀족들이 사들였고 그곳에 살던 농민들도 쫓아내버렸다는 것 아닌가. 양을 기르는 목초지에는 지키는 사람 한 둘이나 소몰이꾼같은 사람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농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농민들이 어디로 갔을 것 같나? 몸뚱이 밖에 가진 것이 없는 농민들은 도시로 가서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 했네. 이것을 거부하거나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빈민이 되고 부랑자가 되었네.

내가 아직 영국에 있을 때였지. 헨리 8세는 ‘부랑자 처벌법‘(1530년)을 만들었네. 부랑자들을 잡아다 묶고 때리고 강제로 일하게 할 수 있는 법이지. 헨리 8세는 이들을 ‘게으른 자들’이라 칭하고 교수형에 처했어. 그가 이렇게 죽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는가? 7만 2천명이네. 에드워드 6세도 만만치 않았지. 그는 부랑자 초범에게는 몸에 ‘V’자 낙인을 찍고 2년 동안 강제로 노동하도록 명령(1547년)했네. 재범은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했지. 1570년대 들어서는 매년 400명씩 부랑자들을 처형했다고 하더군.

[그림 8] 길거리에서 처벌받고 있는 부랑자. 뒤쪽에 교수형 당한 부랑자의 모습이 보인다. 1536년 영국 튜더 시대. (wikipedia)

안토니오 : …

토머스 모어 : 놀랐는가? 그렇다고 농민 공동체들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네. 

안토니오 : 하지만 변화를 되돌릴 수는 없었지요. 대부분 엄청난 피해만 일으키고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토머스 모어 : 자네는 그렇게 보는군. 물론 성공하지 못했지만 규모와 범위는 무시할 수 없네. 독일농민전쟁(1524-1525)은 독일 전역과 그 너머로까지 확산된 큰 봉기였네. 사상자만 10만 명이 넘었어. 영국에서는 로버트 킷(Robert Kett’s Rebellion)이 이끈 반란군이 노리치를 거의 장악하기도 했었네. 노리치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야. 그게 아마 1549년이었을 걸세. 이때 학살된 농민이 3,500명이 넘는다네. 피의 역사지.

[그림 9] ‘개혁의 나무’. 로버트 킷과 그의 동료 9명은 잉글랜드 노퍽에서 인클로저에 반대하여 울타리를 부수고 반란을 일으켰다. 오크나무 아래에서 대안 정부를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진압된 후 이들은 교수형 당했고 이 오크나무에 매달렸다. 이 나무는 ‘킷의 나무’로도 불리며 개혁이 상징이 되었다. (출처 : wikipedia)

안토니오 : 그런데 이 인클로저와 대서양 무역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클로저는 13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지 않았나요?

토머스 모어 : 그 후로 인클로저는 멈추지 않고 있네. 아마 농민들로부터 뺏을 수 있는 모든 땅이 지배층의 소유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걸세. 그 탐욕과 파괴의 파도가 신대륙까지 넘어가고 있는 게야. 자네는 바로 그 파도를 타고 있는 것이네. 1525년, 독일 귀족들이 농민 10만 명을 학살한 바로 그해에 에르난 코르테스는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1세로부터 왕국 최고의 영예(Royal grant of arms)를 받았다고 하더군. 멕시코를 행진하면서 주민 10만 명을 잔인하게 죽인 상으로 말이지. 자네는 이 두 사건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그림 10] 스페인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 테노치티틀란 정복. 1521. (출처 : wikipedia)

안토니오 : 글쎄요… 제가 어떤 파도를 타고 있는지, 그 파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개 상인이고, 그저 돈이 되는 바람을 따라…

토머스 모어 : 그렇겠지. 하지만 유럽의 왕들과 귀족들, 은행업자들과 자네같은 상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냈네. 인클로저로 농민들을 땅에서 쫓아내 자급자족 경제를 파괴한 후, 그들을 힘없는 소비자이자 노동자로 만들었어. 그리고는 아메리카 대륙의 은과 그 돈으로 사온 각종 수입물을 팔아 더 많은 돈을 만들었지. 그뿐이 아니네.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섬들과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을 무참히 잡아 ‘노예’라고 이름 붙이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죽도록 일하게 하고 있어.

자네, 마데이라 섬에 들렀다고 했지? 자네가 본 포도 밭은 예전에는 사탕수수 밭이었네. 사방이 사탕수수였지. 그 전에는 울창한 월계수 숲이었네. 그 숲을 없애 사탕수수 밭을 만들었고 잘라낸 나무는 설탕을 만들 때 연료로 사용했네. 더 이상 섬에서 땔감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포도를 심었지. 포도는 사탕수수보다 노동력도 물과 땔감도 덜 들어가기 때문이야. 사탕수수를 키우고 수확하고 설탕을 만드는 과정에는 엄청난 노동이 들어가야 하네. 그 노동이 어디서 왔을까? 마데이라에서도 봤겠지만 앞으로 자네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보게 될 노예들이네. 대서양의 섬들과 아프리카에서 무도하게 잡혀간 주민들 말일세.

[그림 11] 정복자에게 항복하는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관체족의 왕. 카니리아 제도의 주민들은 노예로 잡혀 마데이라 섬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다 죽어갔다. (출처 : wikipedia)

토머스 모어 : 솔직히 말해보게. 자네도 노예를 사러 가던 중이었겠지? 유럽에서 실어온 총과 직물이 자네 배 안에 가득 실려있지 않나? 그 물건들을 아프리카에서 팔아 노예를 사고, 그들을 아메리카 대륙까지 데리고 가서 사탕수수 농장과 면화 농장 같은 곳에 팔고 다시 그곳에서 만들어진 당밀(사탕수수를 짜서 얻은 즙)과 설탕, 담배, 쌀과 면화를 사서 유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계획 아닌가? 자네들이 배를 완전히 고치기도 전에 항구 밖으로 내보내 암초 너머에 정박하게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네. 자네 무리가 우리 섬을 침략할 의도나 계획이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우리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네.

안토니오 : … 선생님은 유럽의 경제 체제, 우리의 종교와 문명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야만인들입니다. 그런 중죄를 저지르는 타고난 노예 종족을 개도하는 것이 우리 유럽인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고 노동할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토머스 모어 : 허허… 자네, 세풀베다(Juan Gines de Sepulveda)의 책이라도 읽은 겐가? 그의 말을 그대로 읊고 있군. 학자였던 세풀베다의 주장이 바로 자네 얘기와 비슷하네. 지금으로부터 50년 쯤 전에 세풀베다와 라스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 신부가 이런 문제로 큰 논쟁(바야돌리드 논쟁. 1550-1551)을 했었지. 라스카사스 신부는 그 자신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고용해 금을 캐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네. 그런데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Antonio de Montesinos)라는 신부의 설교를 듣고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지.

“나는 황야에서 홀로 외치는 목소리입니다. 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잔혹 행위를 저지른 당신들은 모두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인간이 아닙니까. 그들 역시 이성적인 영혼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 사람들에게 무슨 권리로 전쟁을 벌인 것입니까.”

–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 1511. (주경철, 2017:108)

라스카사스는 인디언들도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봤어. 따라서 이들과 무력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개종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네. 기존에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무력으로 정복할 것인가, 이들에게 기독교를 전하고 개종시켜 왕의 신하로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도미니움 레움'(dominium rerum), 즉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밝혀야 했네.

이 소유권이란 것은 재산에 대한 소유권 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야. 자신의 ‘몸’과 ‘행위’, ‘사물’에까지 적용되는 말이지. 인디언들이 이런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면 야만인이 아니고, 그렇다면 힘으로 정복해 지배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는 논리라네. 그래서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식인종이다, 그들이 먼저 공격을 했다 같은 거짓 주장들을 늘어놓았던 거야. 하지만 정복자들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듯이 그들도 오랫동안 도시와 국가를 운영해왔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어. 야만인이 아니었던 거지.

논쟁은 어느 쪽도 지지 않았고 누구도 이기지 않았네. 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무력으로 지배하기보다는 기독교를 전도해 그들 스스로 일하고 왕의 신하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유럽인들이 도와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네. 정복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논리였기 때문이지. ‘인디언의 보호자’로 불렸던 라스카사스 신부가 의도한 것과는 반대의 결과가 돼버린 거야. 하지만 라스카사스 신부도 인디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들여와야 한다는 모순되는 주장을 했다고 하더군. 철회했다고는 하는데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고 들었네.

하여튼 식민지를 지배하려는 정복자들에게는 그 일이 잔혹하고 비인간적일수록 자신들의 일이 정의로운 일이라는 확신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네. 신대륙을 지배하는 일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이라는 얘기보다 더 좋은 논리가 어디 있겠나? 라스카사스 신부는 원치 않았겠지만 정복자들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지.

안토니오 :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라스카사스 신부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가 됩니다. 그리고 노예들과 신대륙의 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고, 일하고 배워 문명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 유럽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일이라는 제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토머스 모어 : 자네 생각은 잘 알겠네. 내 마지막으로 다시 말하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긴 역사와 더 큰 틀에서 꿰뚫어 보면, 하나의 노예 체제가 어떻게 다시 전혀 다른 방식의 노예 체제로 바뀌었는지 드러나게 되네. 앞서 말했듯이 봉건 체제는 많은 인구에 의존하는 체제야. 인구가 줄어들면 값싸게 일을 시킬 수 없기 때문에 체제가 유지될 수가 없어. 그런데 기후가 변하고 치명적인 역병이 돌면서 지배층에게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져 버린 게야.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했나? 농민들로부터 땅을 뺏었어. 숲도 물도 모두 빼앗았지. 그리고는 지배층들이 시키는 일을 하고 지배층들이 만들어내는 물건을 사게 만들었어. 또 다른 종류의 노예가 된 거야.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은행가들의 돈으로 전쟁을 하고 신대륙으로까지 건너가 사람을 사고 팔고 은을 캐고 작물과 면화와 설탕을 실어와 팔고 빚을 갚고 또 돈을 빌려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하지. 이 체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권력을 가진 지배층들과 돈을 가진 은행가들은 서로 물고 문 채로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전 세계를 파괴하면서 돌아다닐 걸세. 자신들이 파괴하는 것이 사람이든 문명이든 자연이든 가리지 않고 말일세.

내가 이렇게 긴 얘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유토피아 섬을 위해, 앞으로의 인류 문명을 위해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네. 우리 유토피아 사람들은 전세계로 사람들을 보내 각지의 정치, 경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계속 살펴왔네. 자네는 무역 일을 하면서 외국 생활도 많이 해봤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좀 알테니 지중해 쪽을 자네가 맡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상세히 얘기한 것이야.

우리는 최소 1년 이상은 지켜본 다음 이런 제안을 하는데 나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보니 자네에게까지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네. 내 욕심이 과했어. 떠난다고 하니 부탁 하나 함세. 다시는 돌아오지 말게. 자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유럽인도 이 섬에 닿는 일이 없었으면 하네. 그렇게 해주면 우리는 자네들을 구해준 보답을 받은 것이라 여기겠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유토피아> 2편은 쓰지 말아주었으면 하네. 나를 만났다는 사실도 잊어주면 좋겠어. 항해, 안전하게 잘 하기를 바라네.

제4장. 다시 베니스, 포셔와 바사니오의 집 : 안토니오의 편지

1599년, 안토니오가 돌아온 다음 날 저녁. 포셔와 바사니오의 집에서 친구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포셔, 바사니오와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안토니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포셔 : 안토니오님께서는 아직도 안 오시네요. 그나저나 저는 안토니오님과 토머스 모어님의 마지막 대화가 계속 생각이 나요. 여행 내내 마음에 걸리셨을 것 같아요.

바사니오 :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안토니오 말이 믿기지가 않아요. 안토니오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좀 … 게다가 백 세가 넘은 토머스 모어를 만났다는 말을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소?

네리사 : 저는 대서양의 섬들과 신대륙에서 사람들이 죽도록 일을 하고, 그렇게 일을 하다가 죽어간다는 말이 더 믿기지 않아요. 전 그냥 아주 큰 농장들이 있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레시아노 : 네리사, 그 사람들은 노예입니다. 노예는 일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일을 주지 않으면 노예들이 어떻게 먹을 것을 얻겠어요. 노예가 없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광산에서 금은을 캐고 농장을 운영하고 설탕을 만들겠어요. 그들이 없다면 향신료도 면화, 비단도 우리는 구경할 수 없을 거예요. 그보다 머나먼 신대륙까지 목숨을 걸고 건너 가서 농장을 운영하고 산물을 실어오는 무역상들의 노고를 생각해보세요. 저 같으면 그렇게 힘든 일은 못 할 것 같아요. 안토니오가 정말 대단해보일 뿐입니다. 존경스러워요.

이때 안토니오의 하인 론슬롯이 들어온다.

론슬롯 : 바사니오 나리, 포셔 마님. 안토니오님께서 오늘 식사 자리에 못 오신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포셔 :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론슬롯? 안토니오님께서 어디 편찮기라도 하신 겐가? 괜찮으신지 우리 모두 가봐야하지 않을까요, 바사니오?

론슬롯 : 아닙니다, 마님. 안토니오 나리께서는… 오늘 아침에 떠나셨습니다. 저도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 (훌쩍) 저에게 자유와 함께 재산도 엄청나게 나눠주시고는 혼자 떠나버리셨습니다.

바사니오 : 자네 도대체 무슨 소린가? 어제 돌아왔는데 오늘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론슬롯 : 바사니오님. 안토니오 나리께서는 유토피아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거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여쭤봤지만 나리들과 마님들께 그렇게 말씀드리면 알 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여기 … 편지를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돌아오시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 (훌쩍)

바사니오 :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안토니오 이 친구가 신세계에 다녀오더니 정신이 나갔나보구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포셔 : 아침에 떠나셨다니… 어제 우리와 함께 있을 때부터, 아니 돌아오시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게 아닐까요? 좀 불안해보이시더니 이렇게 떠나실 줄이야…

로렌조 : 모두들 진정합시다. 우리 우선 앉아서 편지부터 읽어보세.

안토니오의 편지

친구들,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사실 이 편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쓰고 있어. 4년만에 자네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뜨거워지네. 하지만 브라질을 떠나 베니스로 오는 길에 몇 번이고 돌아갈까 생각했어. 유토피아로 말일세. 하지만 샤일록의 유산이 나를 집으로 보내고 있군. 제시카와 로렌조가 받아야 할 샤일록의 돈을 돌려줘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는 지금 돌아가고 있네. 하지만 베니스에 오래 있지는 않을 걸세.

토머스 모어님을 유토피아에서 만났다는 놀라운 얘기는 내가 이미 했겠지? 유토피아를 떠나기 직전에 나는 토머스 모어 선생님의 댁으로 다시 찾아갔었네. 계시지 않더군. 선생님께서는 근처 섬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셨다고 집안 일을 봐주는 시동이 전해주었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뵙고 싶었지만 언제 오실지도 모르고 항해가 너무 지체되어서 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네. 그분은 나에게 편지 한 장, 말씀 한 마디도 남겨주시지 않았네. 견해 차이로 실망하신 것 같았지만 신께 맹세코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네. 그 때는 말일세.

[그림 12] 15~19세기 주요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던 지역. (wikipedia)

하여튼 나는 섬을 떠났고 앞으로 할 일들을 계획하고 정리하느라 바빴어. 하지만 아프리카 서안에 도착하고나서부터 토머스 모어님의 목소리가 계속 나를 따라다녔네. 아프리카를 떠나 남아메리카에 도착하는 데까지 약 두 달이 걸렸는데… 친구들, 그동안 노예들은 배 선창에 시체처럼 뉘여 실려갔네. 그 지옥을 나는 한 번 보고 다시 볼 엄두를 내지 못했네. 다시는 선창에 내려가지 않았어.

브라질에 도착한 다음에는 아프리카에서 사간 노예의 절반을 팔았네. 사탕수수 농장을 물색해 하나 샀고 그곳에서 일 년을 보냈네. 그리고 그 농장을 처분하고 설탕과 면화, 담배를 싣고 돌아온 것이야. 친구들, 나는 어느 정도는 토머스 모어님 말씀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네. 사실 마데이라 섬도 그분의 말씀 그대로이기는 했어. 신대륙은 더 심했지. 농장은 공장이었고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였네.

[그림 13] 아프리카 노예 무역, 지역과 규모. 1500-1900년. 아메리카 선주민 약 500만 명이 광산과 플랜테이션에서 노예로 일했다. 1500~1800년대까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실어와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은 약 1,500만 명에 달한다. (글 출처 : 제이슨 히켈, 2021:85. 그림 출처 : slavevoyages.org)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농장에서 노예들이 일을 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산물을 팔아 막대한 부를 만들어내는 이 체제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 체제의 바탕에는 노예가 있네. 나는 노예제도가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했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있었고 그 후로도 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노예제도는 차원이 다르다네. 현재의 노예제도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는 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어. 이들이 일하는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 공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집약적으로 들어가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았어. 말로 잘 전달은 안 되겠지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좀 설명을 해주겠네.

일단 사탕수수는 놀라운 작물이더군. 다 자란 사탕수수는 그 키가 4미터가 넘고 수확 때가 되면 사탕수수 밭은 사람 하나 지나가기도 어려운 정글로 변해버리지. 이 수숫대는 수액으로 가득차 팽팽할 때 수확해야 하는데 자르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잘라낸 수숫대를 공장으로 옮기고 부순 다음 롤러로 압착을 해서 즙을 짜내야 하는데 낮에 밭에서 일한 사람은 너무 지쳐서 그 후의 작업을 할 수가 없다네. 하지만 수숫대를 잘라내고 나서 이틀만 지나면 썩기 때문에 다른 노예가 일을 이어받아 바로 작업해야 하지.

[그림 14] 사탕수수 농장의 모습. 카리브해 앤티가 섬. 당시 영국식민지. 1823. (출처 : wikipedia)

그렇게 짜낸 즙이 바로 당밀 원액이야. 이 즙을 커다란 솥에 담아 오래 끓여서 정제해야 설탕이 만들어진다네. 솥을 옮겨 가며 당밀 원액을 여러 번 끓여 내는데, 이때 석회수나 뼛가루 같은 것을 넣으면 여기에 불순물이 달라붙어서 제거할 수 있어. 끓일수록 당밀의 농도가 진해지고 온도도 높아져서 솥 아래쪽에 설탕 결정이 단단하게 굳어지는데 이 덩어리 바닥에 구멍을 뚫어야 하네. 그러면 결정이 되지 못한 당밀이 빠져나가지.

그런 다음 설탕 결정에 젖은 진흙을 얹는데 그렇게 하면 수분이 설탕 덩어리를 통과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수분을 제거한다네. 일꾼들이 얼마나 숙련됐는지, 당밀 원액이 얼마나 잘 농축되었는지에 따라서 설탕의 품질이 달라지네. 이렇게 길고 힘든 시스템은 마데이라에서 시작됐고 대서양 섬들과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넘어가게 되었다고 하더군.

[그림 15] 스페인령 대서양 서쪽 섬에서 이루어지던 설탕 생산 공정. Theodor de Bry. 1595. (출처 : alamy)

사탕수수를 기르고 수확하고 설탕을 만드는 이 모든 공정이 노예들의 힘으로 이루어지네. 연료도 엄청나게 필요해서 노예들은 주변에서 땔나무 베어오는 일도 해야 하네. 설탕 1kg을 만들려면 나무가 그 50kg을 때야 하거든. 브라질은 더운 나라였네. 나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는데 노예들은 불 옆에서 펄펄 끓는 솥 가마를 젓고 뜨거운 원액 옮기는 일을 해야했지.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졸다가 롤러에 손가락이나 팔이 딸려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자를 수 있도록 롤러 옆에는 손도끼가 준비되어 있었어. 그렇다네, 끔찍한 일이지. 게다가 일하는 내내 서있어야 했기 때문에 다리에 병이 없는 사람이 없었어.

농장주들과 관리자들은 노예들이 작은 잘못을 해도 가혹하게 처벌을 했네.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시켜야 했기 때문이야. 매질은 말할 것도 없고, 목에 쇠로 만든 테를 걸어서 누워 잘 수도 없게 하는 사람도 있었어.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에는 대체로 노예가 150~200명 정도씩 있네. 우리 농장에는 130명 쯤 있었는데 좀 작은 편이었지. 500명이 일하는 농장도 있었는데 이 정도는 정말 큰 농장이야. 단일한 작물을 대규모로 노예들의 노동을 이용해 운영하는 이런 거대한 농장은 식민지 농업의 전형이 되어가고 있네.

신대륙에 사탕수수를 전한 사람은 콜럼버스라고 하더군. 콜럼버스가 두 번째로 신대륙으로 향하던 1493년에 카나리아 제도에서 처음으로 사탕수수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때 그는 노예제도 함께 가지고 나왔던 거야. 노예가 없다면 사탕수수는 무의미하기 때문이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들어지는 설탕과 면화와 담배같은 작물이 우리 유럽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다 주고 있네. 나도 그들 중 하나라고 해야겠지. 토머스 모어님은 유럽의 지배층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 엄청난 돈, 이윤이라고 했네.

제시카님, 저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부친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제시카님의 아버지 샤일록님에게 온당치 않은 대우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니스에 있을 때 저는 거래소에서 돈놀이를 하는 샤일록님을 수없이 비난했습니다. 이교도 샤일록, 사람잡는 개 샤일록이라고 욕을 하고 침을 뱉었고 발길질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제시카님, 저를 용서하세요. 지금 생각하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물론 돈을 빌려주고 그 돈에 대해 이자를 받는 것은 지금도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일로 돈을 벌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금 배에 실려 있는 설탕과 면화로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총과 사람을 팔아 돈을 버는 일 말입니다. 유럽의 돈이,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이탈리아 제노바 은행가들의 돈이 대서양의 섬들과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는 데 쓰여 다시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두 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니 샤일록님보다 제가 더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들, 폭풍을 만나 유토피아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면, 토머스 모어님을 만나 그분과 말씀을 나누지 못했다면 내 두 눈으로 실상을 보고도 나는 깨닫지 못했을 거야. 신대륙과 대서양 섬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보기 전에 그분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그곳에 도착했던 것이네. 내가 다시 베니스에서 살 수 있을까? 다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해 보았네. 다시 신대륙으로 가지는 못할 것 같더군. 장사꾼인 내가 장사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무역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베니스에 살면서 투자만 하는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투자한 돈이 세계 곳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 일도 할 수가 없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인 것 같네. 유토피아로 돌아가는 거지.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모어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예전의 내가 아닌 걸 아시면 받아주실 거라고 생각하네.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일 뿐이야. 다시 폭풍을 만나길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지.

친구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게.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게 되어 너무나 미안하고 내 가슴도 찢어지네. 알렸다가는 발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아 말없이 조용히 떠나네. 그리고 제시카님, 로렌조. 저를 생각하신다면 제가 갚은 돈은 신대륙의 농장과 노예무역에는 투자하지 말아주세요. 그 돈은 피의 돈입니다.

– 사랑과 우정을 담아, 안토니오

제1막 “유토피아로 간 베니스의 상인” 끝.

다음 편 기후극장 제2막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비밀노트”(가제)입니다.


참고문헌

  • 김문규. 2000. “<베니스의 상인>에 나타난 경제논리와 윤리의 문제”. 신영어영문학. 15. pp.1-22. (16세기 전후 베네치아 무역에 대해 참고.)
  • 남종국. 2010. “중세 말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해상 네트워크”. 서양사론. 제107호. pp.143-172. (16세기 전후 베네치아 무역에 대해 참고.)
  • 윌리엄 셰익스피어. 1596.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에서. 셰익스피어연구회 옮김. 2019. 아름다운날. pp.22-143.
  • 주경철. 2017. <문명과 바다>. 산처럼. (노예 무역, 사탕수수 농장에 투입된 노예 노동, 행운의 섬, 바야돌리드 논쟁 등에 대해 참고.)
  • 제이슨 W. 무어.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백우진, 이경숙 옮김. 2020. 북돋움. (노예 무역, 유럽 농민과 노동자 봉기 역사, 유럽 소빙기, 제노바 금융과 대서양 무역의 관계, 바야돌리드 논쟁 등에 대해 참고.)
  • 제이슨 히켈. <적을수록 풍요롭다>. 김현우, 민정희 옮김. 2021. 창비. (인클로저, 유럽 농민과 노동자 봉기 역사, 노예 무역에 대해 참고)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박문재 옮김. 2020. 현대지성.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I-1. 세계의 시간 上>. 주경철 옮김. 2021. 까치. (한자동맹 등 16세기 전후 유럽 경제에 대해 참고)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김홍식 옮김. 2012. 갈라파고스. (한자동맹 등 16세기 전후 유럽 경제에 대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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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아카데미 웹사이트에 연재 중이던 [기후극장]은 출판계약을 함에 따라 2막 이후는 비공개로 전환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빨리&재밌게 써서 책으로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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