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회수배수장치(DWHR)의 원리에 대하여

몇 차례에 걸쳐 에너지전환칼럼에서는 열회수배수장치의 원리와 종류 등에 대해서 소개를 합니다.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회로 전환을 하기 위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화석연료 및 핵에너지 사용량을 햇빛과 바람 등에서 얻은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큰 폭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원은 화석연료에 비해 에너지밀도가 낮습니다. 석유나 석탄, 우라늄처럼 적은 양의 연료로 큰 에너지를 낼 수 없어 넓은 면에 걸쳐 조금씩 얻어내어 모아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에너지소비량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도리어 더 늘리면서 에너지원만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대체하려고 하면 경작지건 숲이건 아무데나 다 태양광 발전설비로 뒤덮어 버리거나 온 사방에 풍력발전설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어 문제를 문제로 덮게 됩니다.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설치해야 하죠. 하지만 쓰지 않는 면인 건물의 지붕과 벽면,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곳에 우선적으로 설치하되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여 식량 생산이나 생태계 보존과 같은 다른 과제와 다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삶의 질을 낮추지 않으면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길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길이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게 되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절약을 위해서 덜 먹고, 밤에 불을 켜지 않고, 난방을 덜 하고, 이틀사흘 걸러 씻을 수도 있지만 문명을 지키고자 꼭 고통스런 과거로 회귀해야만 할까요? 에너지를 써서 얻고자 하는 편익의 질과 양을 지키되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양을 찾아서 그것을 아껴야 비로소 문명의 후퇴 없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믿습니다. 앞으로 녹색아카데미의 에너지전환 칼럼에서는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낭비되는 분야마다 합리적으로 손실을 줄이는 여러 기술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은 ‘온수’ 분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거 공간에서 쓰이는 에너지의 상당량은 열을 내는 데에 쓰입니다. 난방열과 급탕열, 조리열 등이 그것인데 난방열에 필요한 에너지는 단열과 창호 개선으로 상당히 줄일 수 있고, 조리열은 조리기구를 인덕션 렌지로 바꾸어 불필요한 열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반면 온수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급탕열은 그 필요량 자체를 줄이기가 힘듭니다. 샤워나 설겆이 같이 온수를 쓰는 활동의 횟수를 줄이지 않는 한 매번 비슷한 온도로 비슷한 양의 물을 쓰기 때문에 급탕에너지는 여하한 방법으로도 쉽사리 줄어들지 않습니다. 반면 별 쓰임새 없이 버리는 열은 아주 많습니다. 어디 어디로 소중한 열이 버려지는지는 나중에 기회를 갖고 종합적으로 따져볼 일이지만 무엇보다 하수구로 버려지는 열이 중요합니다.

욕조에 몸을 담그는 문화가 특별히 깊지 않다면 요사이 샤워는 꽤나 보편적인 형태의 목욕 방식일 것입니다. 이 때의 물온도를 생각해보죠.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보통 샤워기에서 나오는 온수의 온도는 38 ~ 40°C 쯤 되고, 사람의 몸에 닿았다가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온도는 35 ~ 37°C 가량 된다고 합니다. 물과 접촉할 때 물의 온도가 인간의 체온보다 낮으면 물쪽으로 체온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 때 고통스럽죠. 온도차가 크면 클수록 더 고통스럽습니다.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따뜻한 물을 만들어 이용하지만 그 열의 거의 90%는 우리 몸을 살짝 스친 뒤 하수구로 버려집니다. 그 자체로 아깝기도 하고 쓰지 못하는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계속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있으니 절박하기도 합니다. 이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방법이 없을까요? 열회수배수(Drain Water Heat Recovery; DWHR) 기술이 여기에 대한 답입니다.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된 샤워시스템 (출처: Meander Heat Recovery 홈페이지)

아래 그림을 보겠습니다. 왼쪽은 일반적인 샤워시스템의 그림입니다. 한국의 경우 겨울철 0.5~1m 깊이 땅 속의 온도가 6~8°C 쯤 되고 여름철에는 15~16°C 쯤 되므로 아래 그림은 한국의 겨울철 상황과도 잘 맞습니다. 겨울철에 보통 6°C 정도로 들어오는 상수도 물을 보일러나 전기온수기를 통해 55°C 정도로 데운 뒤 이를 찬물과 섞어 38 ~ 40°C 정도로 맞추어 샤워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급탕에너지는 샤워에 쓰일 물 양의 70% 가량되는 물을 6°C에서 55°C로 49K만큼 올리는 데 쓰입니다.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샤워실의 예시 온도 (출처: Meander Heat Recovery 홈페이지 “열회수배수장치 소개”)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된 샤워실의 예시 온도 (출처: Meander Heat Recovery 홈페이지 “열회수배수장치 소개”)

오른쪽 그림의 경우에는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이와 다릅니다. 하수구로 빠져나가는 35°C 온수로부터 차가운 상수가 열을 빼앗아 6°C가 아닌 19°C가 되어 들어옵니다. 19°C 상수는 급탕장치로도 공급되고 직접 샤워기로도 공급됩니다(시스템 구성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 때에는 샤워에 쓰일 물 양의 60% 가량되는 물을 19°C에서 55°C로 36K만큼 올리는 데에 급탕에너지가 쓰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찾기 힘들지만 1회 샤워에 35리터의 물을 쓴다고 가정하면 왼쪽 그림의 경우에는 35kg*0.7*1kcal/(kg·K)*49K 만큼의 급탕에너지가 필요하고, 오른쪽 그림의 경우에는 35kg*0.6*1kcal/(kg·K)*36K 만큼의 급탕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결과는 1,200kcal (1.395kWh) 대 756kcal (0.879kWh)로서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된 경우 37% 가량 급탕에너지가 적게 듭니다.

열회수배수의 원리를 설명하는 그림. 그림의 예는 수직입상형 열회수배수장치의 한 형태이다. (출처: RenewABILITY energy inc.사 홈페이지)

열회수배수 기술의 원리는 싱거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들어오는 찬 물이 나가는 따뜻한 물의 열을 빼앗아 들어오게 하수와 상수 간 열교환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옆의 그림은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관으로 하수관을 만들고 구리 상수관으로 하수관을 칭칭 감은 형태의 수직형 열회수배수장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수와 하수 자체는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서 구리관을 통해 열 교환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관이 충분히 길다면 상수가 관의 시작 부분부터 끝 부분까지 고르게 열을 회수하게 되므로 상당히 많은 양의 열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Renewability Energy사의 Power-Pipe라는 제품의 개념도인데 제조사의 주장으로는 10°C의 물이 약 25°C 가량 되어 들어온다고 합니다.

열회수배수기술을 이용한 열회수배수장치들의 형태는 꽤나 다양합니다. 제품마다 회수율도 다양한데 독일의 파시브하우스 연구소 인증 제품들의 예를 보면 열회수효율 42% 제품부터 최고 78% 제품까지 있습니다.

물론 78% 열회수배수장치를 설치했다고 해서 그 집의 급탕에너지 전체가 78%까지 절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고 수준의 샤워용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된 것을 가정하고 현재 에너지 성능 계산 중인 집을 대상으로 건축물 에너지 모사 프로그램인 PHPP를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습니다. 분배 손실분을 제외한 순수 급탕에너지의 38% 가량이 절감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집에 42% 열회수배수장치를 적용하면 21% 가량이 절감되었습니다. 물론 단 한 사례이기 때문에 조건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통의 가정집에서 급탕에너지는 난방과 냉방 다음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합니다. 파시브하우스와 같은 저에너지주택에서라면 급탕에너지의 양은 단연 1위입니다. 이를 반영구적인 장치 설치만으로 줄곧 20~40% 가까이 줄일 수 있으니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열회수배수장치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지 않아도 하루 이틀 정도의 욕실 공사만으로 설치가 가능하므로(구체적인 설치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논하겠습니다) 현재 있는 건축물에 바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즉각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손 안의 기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아직 국내에는 시판 중인 제품이 없지만요.

어디에 열회수배수기술을 적용하면 좋을까요? 가정의 샤워 시설은 열회수배수장치와 궁합이 아주 잘 맞습니다. 샤워 시설이 있는 공공·상업 시설에도 효과적입니다. 목욕탕, 호텔, 기숙사, 체육관, 수영장, 헬스센터, 병영시설 등 큰 규모로 열회수배수장치를 설치해서 에너지절감효과를 볼 수 있는 시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온수로 머리를 많이 감는 미용실에도 유용합니다. 온수로 세척, 세탁을 많이 하는 식당이나 여타 업소, 산업시설, 농산물가공 시설 등에도 유용할 것입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열회수배수장치들의 유형과 여러 회사의 제품들을 소개하면서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열회수배수기술의 원리와 효과에 대해서는 아래의 Power-Pipe 제품 원리 설명 동영상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영어로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림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Renewability Energy Inc.의 Power-Pipe 제품 원리 설명 동영상

2019년 8월 29일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파시브기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