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2-1. 앎의 바탕 구도


이 자료는 녹색아카데미 유튜브 ‘자연철학이야기’에서 나눈 대담 2-1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담은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2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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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2-1. 앎의 바탕 구도

  1. 고전학문과 근대학문
    1.1.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의 다른 점? 3
    1.2. 고전학문에서 극복할 점과 계승할 점? 5
    1.3.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은 탐구 주제에서도 다른가? 7
  2. 여헌 장현광의 방법론과 앎의 틀
    2.1. 앎을 추구하는 데 갖추어야 할 것?
    2.2. 여헌의 격물格物에 대한 새로운 해석?
    2.3. 여헌이 제시한 앎의 구도, 틀은 그토록 새로운 것이었나?

1. 고전학문과 근대학문

최우석 크게 보면,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장에서는 여헌 장현광 선생의 학문을 예로 들면서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의 기점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장현광의 ⟪우주요괄첩⟫과 ⟨답동문⟩을 중요한 텍스트로 삼아서, 그 당대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질문, 그것으로부터 이해하게 되는 당시의 자연에 대한 이해의 구조, 앎의 구조를 찾아내셨습니다. 또 장현광 스스로가 쓴 글로부터 ‘예측적 앎의 바탕 구도’(책 p.67)를 세웠는데, 이것이 그 뒤의 다른 자연철학을 이루고 있는 많은 앎의 구도 자체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를 1장에서 하셨죠.

그리고 2장 고전역학 부분에서는 데카르트와 뉴턴 얘기를 하십니다. 고전역학에서도 동일한 구도가 나오는데, 중요한 점은 장현광 선생은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앎의 구도는 밝혔지만 그 안에 들어가야할 실제 자연의 비밀을 풀어줄 내용은 만들어내지 못했고, 뉴턴은 만들어냈고 그것을 책 2장에서 설명하고 계시는데요.

그와 관련해서 장현광의 이야기로부터 선생님께서 발견해낸 것 중심으로, 2장 내용과 같이 얽어서 쭉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1.1.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의 다른 점?

최우석 여기서 선생님께서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의 다른 점을 설명하신 내용이 책에 꽤 있습니다. 과거에는 새 것은 만들어낼 수 없고 성인이 만들어낸 것을 시시때때로 익힐 뿐이라는 입장이 있었고, 장현광으로부터 시작되는 근대학문은 ‘무슨 소리냐, 우리가 과거의 것을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고 새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 내가 납득하면 진리이고 내가 납득할 수 없으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해도 나에게 진리일 수 없다라고 하는 일종의 진리 판별기준, 이런 것이 다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회익 그건 좀 더 나간 것 같아요. 내가 인정해야 진리다가 아니라, 내가 진리 탐구의 주체다, 탐구의 주체가 나다, 그리고 내가 알아야 된다, 내가 찾아야된다, 찾아진 것을 내가 그대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진리를 확인해야된다는 자세죠. 그리고 내가 할 것이 있다, 다른 사람 아무도 못했지만 내가 할 것이 있고, 지금까지는 이 정도까지만 알았지만 내가 거기에 더 얹어서 더 알 게 있다하는 자세, 이런 자세가 근대학문의 정신이에요.

고전학문은, 중요한 것들은 성인들이 이미 다 했다, 성인이라는 말은 좀 그렇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옛날의 뛰어난 분들이 다 찾아냈고 심지어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서 다 벌써 적어놓았으니,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익히고 그 뜻에 따라서 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라고 봤죠. 이것이 고전학문의 성격이에요.

그것의 정점에 퇴계 이황 선생의 ⟪성학십도⟫가 있죠. ‘성학’이라는 것은 성스러운 학문이라는 뜻도 있고. 거기도 보면, 이것을 내가 밝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렇게 밝혀져 있으니, 내가 어떻게 공부해서 체득해서 거기에 맞춰서 사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는 거예요.

공부의 목적은 내가 그걸 공부하고 체득하고 맞춰서 사는 것이었지, 내가 그것을 의심하고 그것에 뭘 더 얹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 하는 것은 상당히 지탄받는 일이었죠. ‘사문이적’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은 그냥 이단이라고 해서 처벌의 대상이 되죠.

심지어는 자기 이름으로 저서를 쓸 수도 없었어요. 후대의 사람들이 써줘서 저서라고 부르지만, 그 당시에는 자기 저서가 아니에요. 그때까지 내려온 중요한 학문들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하는 정도로 각주를 달 수 있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학문에 대한 의견이 있기는 있죠. 그런 의견을 문답식으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고 이것을 편집해서 저서로 내는 정도였죠. 심지어 공자님도 저서를 못 냈어. 공자님도 제자들과 대화한 것,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한 것을 엮은 것이 남아있는 거지, 공자님이 내가 공자로서 이렇게 쓰노라하는 건 없어요.

그런 것이 고전학문의 특성이에요. ⟪성학십도⟫를 책에도 설명해놓았지만, 그때까지 내려온 ‘성학’이라고 하는 것 주로 성리학 즉 동양 유학의 핵심을 열 개의 도표로 정리를 해서, 그것만 익히면 중요한 학문의 요지를 우리가 알고 실천할 수 있다해서 만든 것이 성학십도에요.

퇴계 선생의 제일 중요한 업적이 (성리학의 핵심을 엮어서) ⟪성학십도⟫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도 읽히고 있고 중요하게 여기죠. 영어로 번역해서 외국에서도 읽고 있고 동양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상당히 높이 평가되고 있어요. 그런데 ⟪성학십도⟫는 고전학문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나는 봐요. 고전학문의 모델이 되고 있죠.

장회익 그런데 근대학문은 성격이 완전히 달라. 성인만이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찾아서 알 수 있다, 성인이 말한 것도 내가 검토할 수 있고, 성인의 말한 것을 내가 넘어설 수 있다하는 자세, 내가 해보자 하는 자세, 나한테 많은 것이 열려 있다고 보는 자세, 그런 자세로 학문에 접근하는 거죠.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공공연하게 내놓으면 당장 사문이적으로 걸릴 만한 일이지만, 살살 감춰가면서 탐구했고, 사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근대학문이 태동한 거예요. 그것이 근대학문의 정신이죠.

요즘은 내가 한 게 없으면 학자로 인정도 못 받아요. 이제는 자기 논문이 있어야 되고. 옛날에는 자기 논문을 못 써요, 자기 이름을 못 써. 꼭 쓰고 싶으면 가명으로 쓰는 거야. 남의 이름을 빌리거나, 심지어는 공자님 이름을 빌려서 쓰고. 그래도 알리고 싶으니까 남의 이름으로라도 써내는 거지. 내가 살아있을 때 정정당당하게 내 이름으로 내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근대학문 이전에는 어려웠어요.

바로 뒤에 나오지만 데카르트도 자기가 살아있을 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못 냈지 아마. 그만큼 서구에서도 그 당시까지 고전학문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정말 새로운 것을 하면서도 책도 못 쓰는 거야. 이게 바로 나쁜 의미의 ‘고전학문’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어요. 

황승미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장현광선생 이전에는 내가 탐구의 주체다 이런 말이나 글을 남기신 분이 없는 건가요?

장회익 별로 없지. 그 후에도 사실 별로 없어요. 장현광선생도 <우주요괄첩>을 18세 때 썼지만 자기가 직접 공개를 하지 않고, 사후에 제자들이 책으로 냈어요.

1.2. 고전학문에서 극복할 점과 계승할 점?

최우석 그렇게 근대학문의 특징을 구분한다고 했을 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한편으로 현대의 우리는 새로운 것을 해야한다는 의식이 너무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논문이 몇 개인지 얼마나 업적을 냈는지 이런 것이 너무 중요해져서, 앞에서 탐구하고 검토했던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라든가 이런 것이 너무 경시되는 지적 풍토가 생겼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옛날 일이 된 것 같은 ‘나쁜 의미의 고전학문의 정신’이 자칫하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사문이적 말씀도 하셨지만, 불과 백 년 안 된 과거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운동이 활발했을 때 우리가 마치 과거에 성경이나 종교적인 경전을 대하듯이 맑스를 경전처럼 대하고 맑스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하면 한 쪽으로 몰면서 비판하고 발을 못 붙이게 한다든지 이런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유력한 지식을 경전화하고 범접하지 못하게 하고 거기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 보태게 한다는가 하는 태도가 부지불식간에 다시 튀어나오는 것 같기도 한데요.

개인의 새로운 생각을 너무 강조하는 쪽으로 치우친 현대 학문의 풍토와, 또 한편으로는 고전학문에서 보였던 태도가 현대에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경향, 이 두 태도 사이에 어떤 지적인 긴장감이 있어야 근대학문적인 정신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장회익 그렇게 된 데에 나름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말하자면 깊이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자기 학문이라고 다 내놓으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이거든. 그래서 적어도 역사적으로 걸러진 것 정도는 인정할만한 무게가 있는데 그것을 경시하고 자꾸 다른 것만 하면, 학문적인 질서라고 할까 이런 것이 위태로워지는 면도 있으니까 좋은 의미로 본다면 고전학문에도 새길 만한 면은 있죠.

그렇지만 고전학문이 근본적으로 하고 있는 전제가 ‘너는 아무리 해도 성인이 한 것에는 못 따라간다’하는 낙인을 찍는 것, 이것이 큰 문제에요. 그래서 현대 들어서는 고전학문의 그런 태도에서 벗어났는데, 이제는 너무 과하게 그 반대 방향으로 튀어서 요즘에는 자기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걸로 가죠. 또 요즘에는 너무 새로운 것만 강조해서 찾다보니까 전체를 보는 눈도 못 가지고 학문을 할 시간도 없고 부분적인 것만 가지고 헤매게 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리고 고전학문에서 우리가 승계하고 본받아야할 중요한 점이 또 한 가지 있어요. 앞서 여러번 강조했지만 고전학문은 통합적인 이해를 추구했는데, 근대학문은 그것을 뿔뿔이 다 흩어버렸죠. 그래서 지금은 어디서도 통합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것을 보기가 어려워요. 본래 학문 정신이라고 내가 강조했던 것 중의 하나가, 고전학문이 가졌던 정신 중에서 전체를 연결해서 하나로 보는 태도에요. 지금 다시 되살려야되는 그런 면이 고전학문에 있다, 그래서 고전학문의 그런 통합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면이 내가 책에서 취한 부분이죠.

그러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알아야되고 더 나아갈 수 있다하는 정신은 새롭게 받아들여야 돼요. 말하자면 과거의 새 학문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넘어서 불가능하다고 낙인찍어버리는 것은 떨쳐버려야 돼요. 사실 지난 몇 백 년 동안 근대학문의 정신을 통해서 엄청난 발전을 해왔거든. 이런 근대학문의 중요한 성과는 우리가 계속 살려나가야 하고, 이것은 앞으로도 해나가야할 방향이에요.

고전학문으로부터는 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정신을 살리고, 새로운 것을 찾고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근대학문의 정신은 우리가 유지해야 된다는 얘기죠.

1.3.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은 탐구 주제에서도 다른가?

최우석 근대학문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이 정신, 태도, 자세 이런 데에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의 차이가 탐구 주제에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퇴계 학문을 논하면서 책에 쓰신 부분이 있습니다(아래 인용). “나는 어떠한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나?” 아마 퇴계 선생에게 중요한 질문이었을 것이라고 보셨는데요.

사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이것은 종교적이거나 구도자의 질문이지 학문적으로 진지한 주제라고 생각할만한 사람은 요즘 시대에 많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고전학문적인 질문들은 아예 종교적인 주제로 넘겨버리고 근대학문에서는 다른 주제를 택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퇴계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사물의 근원에 마주친 것이다. 어쩌면 “나는 어떠한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근원적 물음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랐을 것이고, 여기에 대한 심오한 해답으로 (아마도 장재의 글에서 보았을) ‘태허太虛’라는 개념에 이끌렸던 것이다. …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p. 23.

장회익 나는 그것을 되찾아야된다고 봐요. 그 근본 문제에서 출발해야하고, 그 근본 문제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과정에 근대학문의 것을 같이 집어넣고, 단 그 중에 다 할 수 없으니까 어느 특별한 한 부분을 더 구체적인 주제로 해서 논문으로 쓸 수 있는 거죠.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논문의 제목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내 학문의 주제로, 내 생애의 주제로는 삼아야된다는 거지.

그리고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바탕으로 해나가다 구체적인 것이 나오면, 그런 구체적인 것이 연구 과제가 되겠죠. 그러나 그 바탕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 얘기죠. 고전학문의 정신은 살리되, 방법은 근대학문의 방법을 취하는 방식.

2. 여헌 장현광의 방법론과 앎의 틀

2.1. 앎을 추구하는 데 갖추어야 할 것?

최우석 근대적인 학문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학문 활동, 탐구 활동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답동문>에서 여헌 선생 자신의 학문론을 선생님께서 이렇게(아래 인용) 정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질문과 질문을 추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 방식과 왜 그렇게 하는지는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겠고, 그리고 궁극적인 도달 지점은 뭐라고 봐야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여하튼 제가 볼 때는 질문과 방법론, 탐구의 목표 이렇게 추리신 것 같습니다.

학문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이를 추구하는 방식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묻고 대답한다.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p. 49.

그리고 다른 대목을 보면(아래 인용) 구도자로서 ‘심정적 도구적 준비’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심정적 준비’라 함은 ‘결의’이고, ‘도구적 준비’라 함은 ‘방법론’과 ‘개념적 구도’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제가 종합해보면 학문에 대한 마음은 결의와 어떤 궁극적인 목표에 해당하고, 도구적인 것은 질문, 방법, 개념적 구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념적 구도에서 질문이 나온다라고 하면 핵심은 방법론과 개념적 구도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자연철학을 해나간다, 앎을 추구한다고 했을 때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도구, 갖춰야 될 것,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뒤에도 계속 나오겠지만 이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장현광선생은 성과를 못 냈을 것 같고,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성과를 냈을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 이제 막 소를 찾아 나선 구도자로서 찾으려는 심정적 도구적 준비를 갖추고 주변을 탐색하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여기서 심적정 준비라고 하는 것은 온전한 앎을 찾아내겠다는 결의를 말하는 것이며, 도구적 준비라는 것은 이를 추구할 적정한 방법론과 이를 담아낼 개념적 구도의 마련을 의미한다.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p. 49.

장회익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대비시킬 것은 아니고, 여헌의 경우에도 방법론에 해당하는 중요한 것을 제시했어요. 자연을 직접 보고 경험을 해서 거기서 이치를 찾아라, 추상적으로 머리 속에서 빙빙 돌려서 아! 깨달았다가 아니에요. 자연 하나하나를 짚어서, 이렇게 하는 것을 동양철학에서는 원래 ‘격물’(格物)이라고 했어요. 제대로 ‘격’을 해라, ‘격’이란 하나하나를 살펴서 그 안에서 이치를 찾아라하는 방법론이고, 이것이 근대의 과학 방법론과 비슷하죠. 관찰에 대한 중요성을 굉장히 높이 뒀어요. 이것은 그 당시로 보면 상당히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거예요.

그리고 어떤 구도를 통해서 연결해야 하는가하는 구도의 중요한 윤곽을 여헌은 제시했어요. 현재의 것을 알면 변화의 법칙을 통해서 미래의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구도, 그러한 구도를 통해서 앎을 연결해서 조직을 해라.

말하자면 우리는 항상 현재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해야하는데 미래를 모르니까 알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학문을 통해서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하냐? 아무렇게나 점을 쳐서 아는 게 아니고, 자연의 법칙을 연결해라. 현재의 것은 관찰해서 알 수 있으니까 관찰해서 안 것에 변화의 법칙을 적용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한다는 것을 알면 나중에 어떻게 된다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거죠.

이 구도에 맞춰야 제대로 된 앎이 된다, 즉 앎의 구도를 여헌은 제시한 거예요. 그 두 가지 중요한 방법론을 제시했어요. 첫 번째는 관찰의 중요성, 요즘 말하는 실험까지는 잘 안 갔지만 관찰까지는 분명히 얘기했어요. 관찰을 통해서 알아낸 다음 이치가 뭔지도 알아내고 현재의 상태가 뭔지까지 알아낸다, 그 다음 상태의 변화의 법칙을 통해서 미래도 알 수 있다고 하는 틀을 여헌이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한 방법론적인 기여라고 볼 수 있죠.

2.2. 여헌의 격물格物에 대한 새로운 해석?

최우석 ‘격물치지’라는 것은 ⟪대학⟫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몇천 년 된 얘기 아닌가요?

장회익 『대학』에 나오죠. 몇 천 년 된 얘기지만 그때까지도 그 뜻을, 특히 ‘격물’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없었어요. 유명한 얘기가 있죠. 양명학 시조가 되는 어떤 분이 일주일 동안 ‘격’을 했다, 대나무 하나를 놓고 일주일 동안 해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하는 얘기가 있어요. 당시에는 어떤 것 하나를 놓고 그것에 대해서 눈감고 그냥 하면 뭐가 나올 것이다, ‘격물’을 그렇게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여헌이 제시하는 것은 그게 아니에요.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어떻게 변하는지 제대로 봐라, 이것이 ‘격’이다! 눈감고 앉아가지고 대나무 하나만 머리 속에 넣고 명상하면 진리가 나올 거다하는 것과는 다르죠. ‘격물’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달라요.

이전에는 대나무같은 화두 하나를 머리 속에 넣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식으로 ‘격물’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격’을 하면 머리 속에서 뭐가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헌은, 그게 아니라 사물을 직접 보고 거기서 이치가 어떻게 가는지를 직접 찾으라는 거예요. 이것이 근대학문의 정신이기도 하고, 여헌이 제시한 방법론 중에 첫 번째 것이죠.

그 다음 여헌의 두 번째 방법론은 ‘틀’, 어떻게 미래를 제대로 올바르게 예측하는 앎을 얻을 수 있느냐. 이전까지는 대개 미래를 안다고 하면 유명한 점쟁이,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탁 봐서 알 수 있다고 해서 예언서를 뒤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여헌은 그게 아니다 이거야. 이치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이치를 가지고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치는 현실 속에서 확인해서 그것을 연결해야 제대로 된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얘기를 했지만, 이치가 무엇이며 예측된 내용이 뭐다하는 것까지는 못 갔다는 것이 여헌의 한계죠. 그건 뉴턴으로 가는 거예요. 뉴턴이 바로 그 빈 칸을 채워 준 거야. 이치는 무엇이며 현재 상태는 무엇이고, 그래서 미래 상태는 어떻게 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인류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과가, 책 뒤에도 나오지만 바로 핼리 혜성 예측이에요. 혜성이라고 하는 것이 우연히 한번씩 하늘에 지나가는데, 옛날사람들한테는 이것이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어느 별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다 연구해서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행성의 궤도이 바뀌는 것까지도 알았어요. 그런데 어디서 엉뚱한 별이 새로 나와서 지나가는 거예요. 이상하게 지나가는데, 그걸 굉장히 놀랍게 생각했다. 이것은 무슨 징조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핼리가 뉴턴의 법칙으로 턱 보니까 저 혜성은 76년 후에 또 나타날 것이다, 76년 전에도 지나갔다, 이걸 예측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예측을 했던 핼리도, 이론을 만들었던 뉴턴도 다 이미 고인이 된 76년 후에 그 혜성이 실제로 나타난 거예요. 그것이 놀라운 거죠.

이것이 앎의 바탕에 충실하게 탐구해서 예측한 최초의 것이죠. 그외에 허다한 예측이 있지만 그건 그저 나중에 거꾸로 꿰어맞추거나 우연히 맞은 거지, 그런 합리적인 방식으로 한 것은 핼리 혜성이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 근대 물리학이 발전을 하면서 점점 제대로 간 거죠. 이러한 틀을 제시했다는 것은 방법론의 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봐야 돼요.

2.3. 여헌이 제시한 앎의 구도, 틀은 그토록 새로운 것이었나?

최우석 여헌이 제시한 틀이 굉장히 새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장회익 그렇죠. 고금이라고까지는 못해도 동서를 막론하고 그 틀이 명시적으로 제시된 것이 내가 보기에는 여헌의 ⟪우주설⟫의 ⟨답동문⟩이 처음이에요. 서구에서는 뉴턴도 그 당시에 그 틀은 몰랐어. 답은 짜넣었는데, 틀은 몰랐어요. 그 틀에다가 뉴턴이 답을 넣었다고 내가 말했지만, 뉴턴이 그 틀을 알고 답을 넣은 게 아니고, 만들고 보니까 그 답이 되어버린 거야.

그 답이 그 틀에 맞는다고 얘기를 한 것은 뉴턴 이후 150년이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1749-1827)라는 사람이 나중에 했죠. 라플라스도 틀을 안 것이 아니라 뉴턴이 한 것을 다시 틀로 해석한 거죠. 현재 것을 계산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하는 명시적인 틀로서 제시한 것은 뉴턴보다 백 여 년 후에나 알았고, 뉴턴 당시에는 그런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여헌의 경우에는 답을 만들지 않고서도 틀을 먼저 제시했다, 이런 면이 있죠. 그래서 나는 여기 책에서 어떻게 엮었냐 하면, 틀은 여헌이 만들었고 뉴턴은 거기에 답을 짜 넣었다고 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뉴턴이 알고 넣은 게 아니라, 뉴턴이 그 답에 해당하는 것을 만들었지만 그 틀에 해당한다는 것은 오히려 후에 확인한 거예요. 그러한 틀은 훨씬 후에나, 뉴턴이 한 것을 보고 라플라스가 보니까 이런 틀에 맞는다하고 찾은 거지. 그 틀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자명했던 것도 아니야.

그런데 내가 보기에 명시적으로 제시된 것은 여헌의 ⟨답동문⟩에 나오는 그 문장이에요. ‘이치를 알고, 현재의 것을 보고, 그 이치를 적용시키면 미래의 것을 알 수 있다’하는 명백한 표현이 나와요.

황승미 장현광선생께서 그런 의문이나 틀을 만들게 된 그분의 지적 배경이 있지 않을까요?

장회익 그것은 아마 현상을 이해하면서 그 속에서 찾아낸 직관이라고 봐야되겠죠.

황승미 전쟁 통에 세상을 돌아다니시면서, 책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데 하면서 깨달으신 걸까요?(웃음)

장회익 글쎄, 전쟁과 연결 지을 수는 없겠지만(웃음), 여헌은 어릴 때부터 일생을 학문하겠다고 한 사람이에요. ⟪우주요괄첩⟫을 쓴 것이 열 여덟 살 때였고, 그때 이미 천하의 제 일 사업을 해야 천하의 제 일 인물이 된다, 제 일 사업이 뭐냐, 우주의 기본적인 원리를 제시하겠다 하는 거죠. 그것을 가지고 60년을 고민하다가 끝에 만년에 쓴 것이 ⟪우주설⟫과 ⟨답동문⟩인데, 바로 앎은 이런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그 ⟨답동문⟩에 제시한 거예요.

황승미 그러면 그냥 직관으로 뭔가 뒤에 이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던거네요?

장회익 그렇지. 이치가 있을 것이라고 봤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말로는 안 썼어도 자기 머리 속에서는 뭔가 느낌으로 가지고 있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말로 표현을 할 단계까지는 못 갔지만. 그래서 뭘 내가 예측하고 싶은데 이래서 이치가 이렇게 되니까 이렇게 된다 하는 것을 자기가 몇 번 해보거나 했을 수는 있죠. 그런데 그것까지는 기록에는 안 나오는데. 그런 것을 담아서 틀을 먼저 발견한 경우가 여헌이라면, 그 내용을 먼저 만들고 틀은 후에 해석한 것이 서구의 고전역학과 라플라스의 해석, 이렇게 간 거거든.

동양과 서양이 한 것이 서로 빗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다시 정리할 때는 여헌의 틀을 먼저 놓고 그 틀에 뉴턴의 내용을 갖다 맞추는 형식으로 이해를 하면 딱딱 맞죠.

황승미 어쩌면 뉴턴은 옛날의 학문을 계속 이어서 해석하고 설명하고 계승하는 입장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장회익 뉴턴은 그저 법칙이라고만 얘기했죠. 법칙을 어느 틀에 넣지는 않았고, 운동은 이렇게 된다, 가속도와 힘은 이렇게 비례한다, 이렇게 되면 중력에 대해서, 떨어지는 것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개별적인 이론을 수학적으로 연결해서 만든 것이죠.

그러나 뉴턴은 어떤 앎의 기본 틀이 있어서, 상태라는 개념과 상태 변화의 법칙을 써서 미래 상태를 예측한다는 이런 틀을 구상하고 그 틀에 맞춰서 제시한 것이 아니야. 그래서 제1법칙, 제2법칙, 제3법칙 따로따로 떨어져 있죠. 세 가지 법칙을 세트로만 그저 내놨잖아요.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공부하고 있고.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니다, 우리는 틀부터 먼저 알자, 이 틀이 이렇게 되는데 뉴턴의 법칙을 어떻게 갖다 맞추느냐,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하면 구조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죠.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런 식으로 접근했지.

그래서 뉴턴의 제1법칙, 제2법칙, 제3법칙은 아예 언급도 안 했어요. 오히려 그 정신이 여헌의 틀에 맞는데, 이 틀에 맞는 변화의 법칙은 무엇이고, 상태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래서 거기서 예측된 나중의 상태는 무엇이다, 이런 식으로 보자, 그렇게 보자는 관점은 여헌이 제시한 틀에 놓고 이해를 해보자.

아까 얘기했죠. 우리의 문제에서 우리의 관점에서, 서양에서 가져온 답을 우리의 틀에서 이해를 해나가는 방식을 내가 취한 건데, 역사적으로 그렇게 연결된 것은 물론 아니에요. 여헌과 뉴턴은 전혀 관련이 없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면 그런 구조에 해당한다고 이해할 수 있겠어요.


‘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2-1. 앎의 바탕 구도’ 끝.



대담 : 장회익, 최우석, 황승미
영상 편집 : 최우석
녹취, 그림, 편집 : 황승미
전체 제작 :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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