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2012) – 서문과 서설


녹색아카데미 웹진을 통해 장회익선생님의 글들을 소개합니다. 가능하면 녹색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모임의 주제에 맞추어 관련되는 책이나 논문, 칼럼과 강연 등을 찾아 알리고 내용을 요약해 이곳에서 읽고 보실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오늘은 선생님의 책 『과학과 메타과학』(2012, 현암사)을 소개하고자, 이 책의 서문과 서설을 요약하였습니다. 과학이란 무엇인지, 메타과학은 무엇인지, 메타과학으로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낼 것이며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등이 담겨 있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2019)의 9장과 연결지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1.과학과 메타과학은?

『과학과 메타과학』 초판은 199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2012년에 출간된 개정판 『과학과 메타과학』(현암사)에서는 내용이 대폭 개정되었으며, 3분의 1 정도가 새로운 글로 교체되었습니다. 특히 5장 양자역학과 8장 ‘온생명’에 대한 글은 새롭게 정리되었고, 전체적인 글의 제목이나 장의 배열도 크게 수정되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통합학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과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가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통합적인 이해를 위해 서로 연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있지만, 이 과제를 어떻게 접근해서 풀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메타과학은 이러한 상황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메타과학은 과학적인 방법을 택하면서도 모든 학문 특히 자연과학의 바탕을 살펴, 그 성과로 생명과 인간 등 우리의 관심사를 모두 망라합니다.

또한 이 책에는 ‘온생명’에 대한 최초의 글 “The unites of life: global and individual”(장회익, 1988) 원문이 부록에 실려 있습니다. 이 글은 1988년 4월 유고슬라비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렸던 국제 과학철학 학술모임에서 발표된 논문이며, 우리말 번역본에 해당하는 글은 이 책의 9장에 담겨 있습니다. 이 논문이 출간된 것은 『과학과 메타과학』 개정판이 처음입니다.

2. 과학이란 무엇인가? 메타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무엇인가? 인류 문명은 지금 어떠한 상황인가? 이 질문은 과학이 주류인 현대 문명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근대 과학 이후 빠르게 성장해온 과학과 기술은 현대 인류에게 엄청난 양의 지식과 기술 능력을 가져다 주었지만, 삶의 주체적 담당자인 우리 각각의 개인은 그 위력 앞에 무기력한 존재로 남아있습니다.

현대의 개별 과학들은 극도로 전문화되었으며 과학자들끼리도 분야가 다르면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것이 현재 과학계의 상황입니다. 자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힘든 투쟁을 벌여왔지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지배세력입니다. 인류 문명은 커다란 정신적 도약을 한 단계 더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일차적 실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 지식”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타과학은 무엇인가? “과학과 과학이 빚어낸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메타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책 p.14). 이렇게 과학을 발판으로 메타과학으로 올라서는 도약이 바로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정신적 도약입니다.

3. 메타과학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지니는가?

‘메타시스템 전환'(metasystem transi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현상의 양적 성장이 이루어지면 그보다 높은 차원의 단계로 질적 변환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러시아의 과학사상가 발렌틴 투르친(V. F. Turchin)이 제시한 개념입니다.

물질, 생명 진화로부터 정신, 문화 진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화적 발전 단계에서 이러한 메타시스템 전환이 일어난다는 투르친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현대 과학이 바로 메타시스템적 전환이 이루어질 시점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계의 양적 팽창이 질적인 변환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메타과학으로 올라서는 도약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메타과학은 어떠한 형태를 지니게 될까요? 그것은 모든 메타시스템 전환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과학적 지식을 본질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하여 한층 높은 지적 구조물을 형성해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책 p.15).

4. 과학의 질적 도약을 위한 시도들

이와 같은 질적 도약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최근에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체론적 철학'(holistic philosophy), ‘과학학'(science of science), ‘학문 간'(interdisciplinary) 연구, 통합적 관점 등이 그러합니다.

먼저, 전체론적 철학은 전체적인 이해와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합니다. 부분적인 이해를 추구하고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현대 과학의 방식에 강하게 반대하는 철학이며, 한 예로 시스템 철학이 있습니다. 이는 20세기 중반에 루트비히 베르탈란피(Ludwig von Bertalanffy) 등이 제창했으며 당시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부분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이 가지는 결함을 보완한다는 점에서는 전체론적 철학의 경향과 방법론이 긍정적인 의미가 있고 실제로 기여도 했지만,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과학을 도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과학학은 기존의 과학철학과 과학사 연구가 20세기 후반 들어 긴밀하게 관련을 맺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진 연구활동입니다. 이는 과학이 가지는 여러 측면을 연구의 대상로 삼으며, 과학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과학과 사회가 가지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 과학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그 외적인 형태와 성격만 검토해서는 과학 자체의 질적 도약에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학문 간 연구는 서로 관련이 많은 인접 분야들 사이에서 협동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도로 전문화되는 현대 학문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협동연구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지만, 새로운 차원의 과학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지속적으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경향을 가지며 발전해왔지만, 그와 함께 동시에 학문의 종합과 통일을 지향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합법칙적으로 설명하려는 학문적 시도는 때때로 혁명적인 변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나름대로의 성공적인 발전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자연계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 생기고 있”습니다(책 p.16-17).

5. 과학과 인류 문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필요한 일

체계적인 과학 이론은 17세기에 등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합리적이고 합법칙적인 이해의 바탕이 되는 기본 이론, 특히 물리학은 그 자체가 매우 정교한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과학 이론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어렵고 위험한 부분을 극복해야 합니다.

과학 이론은 상당한 지적 노력과 학습 과정 없이는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이해하는 극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온전히 맡길 수도 없습니다. 과학 이론 자체가 본질적으로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이런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 이론의 비전 자체가 완전한 것도 아니어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비전이 왜곡되어 전달될 위험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과 위험이 따르더라도 인류 문화가 새로운 수준으로 질적인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정도를 따라야 합니다.

즉 현대 과학이 이루어낸 가장 깊고 넓은 이해에 충실해야 하며, 이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은 “현대 과학의 구조와 성격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이것이 지닌 핵심적 내용에 도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책 p.17).

또한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러한 모색 전체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과학과 메타과학』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책은 어렵고 오묘한 과학의 세계를 일상적 용어로 풀어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해설서가 아닙니다. 과학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저자의 관점으로, 과학의 창을 통해 생명과 인간의 모습을 파악해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위 내용은 『과학과 메타과학』 2012, 현암사)의 개정신판 서문, 초판 서문과 서설(p.13~20)을 요약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합니다’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요약,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알림
웹사이트 스킨 문제로 이곳에는 댓글달기가 되지 않습니다. 댓글이나 의견은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그룹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연철학 세미나 게시판과 공부모임 게시판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