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상태와 거시상태
루트비히 볼츠만이 '미시상태'와 '거시상태'를 구별하자고 처음 제안한 것과 분자 또는 원자라는 개념이 매우 밀접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시간을 들여서 조금 더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장은 장현광의 예측적 앎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아이작 뉴턴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작 뉴턴이라는 인물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결코 배우고 싶지 않고 너무 싫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자연철학적 사유 자체가 뛰어나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뉴턴의 자연철학 자체가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초에 아일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로원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은 뉴턴의 자연철학적 사유를 재구성하여 탁월한 체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뉴턴역학은 다름 아니라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현재 시간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다면, 이 정보로부터 미래든 과거든 어느 특정 시점의 위치와 운동량을 완전히 알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1장과 제2장에서 인용되어 있는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의 놀라운 자신감, 즉 현재 상태를 알면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가장 작은 대상으부터 가장 큰 세계까지 모든 것을 알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실상 해밀턴이 정식화한 해밀턴 역학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라플라스 자신은 해밀턴의 논의보다는 같은 프랑스 사람인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1736-1813)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앞선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가 정식화한 라그랑주 역학을 기반으로 그런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었습니다.
뉴턴의 탁월한 자연철학적 사유는 먼저 상대성이론이라는 엄청난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그러나 조금 너그럽게 봐 주자면 헤르만 민코프스키를 따라 시간과 공간이 별개가 아니라 4차원 시공간으로 통합된 것으로 봄으로써 상식과 벗어나는 듯이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정립되어 가기 시작한 양자이론은 또 다른 면에서 뉴턴의 사유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자신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뉴턴의 사유를 부서뜨렸지만, 이상하게도 양자이론과 관련된 면에서는 뉴턴의 맥락에서 결정론적이고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실상 양자이론의 그 엄청난 혁명적 변화의 출발점은 이미 19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을 통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박사학위논문이 다름 아니라 우유와 같은 현탁액의 미끌거림(점성)을 탐구함으로써 분자가 실제로 존재함을 밝히고 일정한 부피 안에 있는 분자의 수를 결정하고, 심지어 분자의 크기까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905년 상대성이론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1905년 6월 30일 투고)을 발표하기 전에 이미 "멈춰 있는 유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들의 운동 - 볼츠만의 열의 기체분자운동론에 따른 이론"(1905년 5월 11일 투고)을 발표했습니다.
볼츠만은 독일의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와 영국의 윌리엄 톰슨(켈빈 경)이 주도하여 정립해 나가고 있던 새로운 이론, 즉 열역학을 해밀턴 역학과 화합시키려 했습니다. 약간 과장하면 열역학의 모든 주장들을 해밀턴 역학(즉 세련된 뉴턴역학)으로 모두 유도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열역학의 첫째 법칙, 즉 $ \Delta U = Q - W$ 다시 말해 닫힌 계의 내부에너지 변화는 그 계에 출입한 열과 그 계가 한 일의 차이와 언제나 같다는 주장은 사실상 고전역학(뉴턴-해밀턴 역학)에서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음을 성공적으로 유도했습니다. 볼츠만이 처음 한 것은 아니고 영국의 존 해러퍼쓰(Johan Herapath 1790-1868), 아우구스트 크뢰니히(August Krönig 1822-1879) 등의 선구적 기여가 있었고, 특히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의 공로가 큽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열과 관련된 여러 신기한 현상을 보이는 기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원자 Atom' 또는 '분자' Moleküle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전까지 막연하게 이야기하던 온도라는 것이 사실은 그 수없이 많은 분자들의 운동에너지의 평균과 대략 같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납니다. 얼음이 차갑다거나 수증기가 뜨겁다는 것을 얼음이나 수증기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되는 (또는 믿어지는) 분자들의 운동에너지의 크기와 연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미시상태와 거시상태의 구별이 나타납니다. 온도라는 것은 거시상태를 규정하는 거시변수 중 하나입니다. 이와 달리 기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미시상태는 뉴턴역학(더 정확히 말하면 해밀턴 역학)에 따라 위치와 운동량으로 정해집니다.
분자들의 위치와 운동량('미시상태')를 기체의 온도('거시상태')와 연결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볼츠만의 연구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출발점이었습니다. 열역학적 상태는 온도 이외에도 압력과 부피로 규정됩니다.
이러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 바로 볼츠만의 <기체론 강의>입니다.
Vorlesungen über Gastheorie I (1896)
Vorlesungen über Gastheorie II (1898)
볼츠만의 이 두 권짜리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기체론 강의) 매우 안타깝고 아쉽게도 독일어판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번역본을 중역한 것이어서 저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꽤 있는 느낌입니다만.
그런데 볼츠만의 접근에서는 미시상태와 거시상태의 구별이 상당히 임의적입니다. 미시상태는 명료하게 뉴턴-해밀턴 역학의 틀, 즉 수없이 많은 입자(분자)들의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되지만, 거시상태는 가령 (온도, 압력, 부피)의 값들이라든가 왜 꼭 그래야 하는지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은 양들을 써서 규정됩니다.
제가 온라인 세미나에서 질문했던 것은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미시상태와 달리 거시상태의 규정은 이미 처음부터 인식주체 내지 물리학자 내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을 주셨습니다. 거시상태도 미시상태 못지 않게 대상에 고유한 어떤 종류의 속성들로 규정되는 것이고, 인식주체나 물리학자가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상 거시상태가 인식주체(물리학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나아가 달라지기는 하는가 하는 문제가 물리철학 분야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볼츠만은 명확하게 거시상태도 물리학의 서술이라고 보는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도 볼츠만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저는 거시상태의 서술방식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임의적이고 약간 과장하면 그 서술자(물리학자)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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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와는 분리되지만, 그래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논쟁이 과학철학에서 소위 실재론 논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일련의 철학자들이 과학이론에서 이론적 용어(개념)와 경험적 용어(개념)을 구별하고, 이론적 용어(개념)은 실질적으로 꼭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용어(개념)을 설명하고 해명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에너지, 엔트로피, 원자, 분자, 빅뱅, 블랙홀, 유전자, 지질학적 판 같은 것이 정말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관측할 수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모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칭하여 '도구주의 instrumentalism'라고 흔히 부르고, 약간 더 강조하기 위해 '반실재론 anti-realism'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와 달리 물리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에서 논의되는 이론적 용어(개념)가 세계 속에 정말로 있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는 입장이 과학실재론(scientific realism)입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구별하는 문제는 여러 면에서 실재론-반실재론 논쟁과 깊이 맞물려 있습니다. 원자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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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미나 초입에 언급하셨던, 에너지와 엔트로피가 물리적 실체가 있는가 라는 얘기도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리적 실체는 "상태" 만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열의 이동과 엔트로피의 증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구체적인 분자의 배치는 어떻게 되나 라는 의문이 뒤따르고, 열, 에너지, 엔트로피를 과연 분자 배치로 잘 설명이 되나 라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저런 것은 너무 추상적인 "개념어"가 아닐까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의 글에서 조금 설명해 보려 애썼는데, 현대 열물리학 또는 통계물리학에서는 열, 에너지, 등을 분자배치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열, 에너지, 온도, 압력 등등에 대해서는 분자배치로부터 훌륭하게 잘 설명합니다.
다만 엔트로피로 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볼츠만 자신이 엔트로피를 분자의 배치로부터 설명하려고 아주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하나는 H-정리(H-Theorem)라 부르는 것인데, 엔트로피를 분자들의 속도분포함수를 써서 H라는 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여하간 수학적으로는 이 함수가 시간에 따라 언제나 감소하기만 한다는 것을 꽤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H를 엔트로피와 동일한 것으로 보자고 주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클라우지우스의 엔트로피에 -1을 곱한 것과 같아 보입니다. 실상 H라는 문자는 영어의 '에이치'도 아니고 독일어의 '하'도 아니고, 그리스어 '에타 $\eta$'의 대문자입니다. 음가로는 "E"와 같습니다. 볼츠만으로서는 이것이 엔트로피의 본질이라고 강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H-정리에 대해 여러 반론들이 제기되었고, 볼츠만의 주장은 점점 더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볼츠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주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엔트로피는 확률의 로그값이라는 주장입니다.
$$S= k \log W$$
이 주장은 매우 혁명적입니다. 물리학은 언제나 확실성을 근간으로 삼아왔습니다. 개인적 인성이나 품격으로 보면 천하의 개차반이었던 아이작 뉴턴이 역사에 길이 남는 천재 자연철학자로 남은 것은, 그의 자연철학적 사유와 이론을 기반으로 가령 에드먼드 핼리가 혜성이 돌아올 것을 예측했고, 세상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확실성'입니다.
그런데 루트비히 볼츠만은 열역학 둘째 법칙을 분자배치로 설명하려던 노력 속에서 그런 확실성을 근본적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물리학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라는 것이니 이것은 정말 당혹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