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소감] 『웨이스트 타이드』
언젠가 '북클럽'을 열었으면 해서 <북클럽 게시판>을 만들어두었었습니다. 아직 북클럽은 열지 못했지만, 게시판 첫 글로 『웨이스트 타이드』(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2024. 에디토리얼) 읽은 소감을 '가볍게' 올려봅니다.. - 황승미
책읽기 모임을 하다보니 혼자서는 책을 잘 안 보게 되는데요. 책 제목에 끌려 최근 출간된 소설 『웨이스트 타이드』 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이니만큼 스포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줄거리를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하기도 어렵고) 간단히 풀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홍콩 근처 실리콘섬이라는 가상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작가인 천추판은 중국 광둥성의 구이위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구이위’에서 ‘구이’가 한자는 다르지만 규소할 때 ‘규’, 즉 실리콘과 발음이 같습니다. 실제로 구이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폐기물 재활용 단지가 있고, 유엔이 ‘환경 재난’ 지역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합니다.(‘옮긴이의 말’ 참조)
소설 『웨이스트 타이드』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기계적인 의체를 자유롭게 갈아끼우며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부자들은 더 가볍고 더 작고 더 기능이 좋은 것을 쓰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투박하고 더 느리고 성능이 떨어지는 의체를 씁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건때문에(소설 후반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가난한 지역은 교통기반시설이 더 열악한 것처럼 통신망도 ‘저속 구역’으로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통신 속도도 느립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실리콘섬에는 소위 ‘쓰레기인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수천 명 살고 있습니다. 폐기물이 되어 돌아온 각종 전자쓰레기를 분리하고 재활용하는 일을 하는데, 이 일은 엄청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병에 걸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의체 폐기물에 포함된 채로 어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입되는데, 이를 막거나 이것을 이용하거나 이것에 이용되는 여러 주체들의 각축이 벌어지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졌던 작전도 등장하고, 가난하고 열악한 3세계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면서 다국적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도록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업자도 등장합니다.
독자로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으로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시골출신으로,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이 섬으로 들어온 ‘쓰레기인간’ 소녀입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당연히(?!) 젊은 남성입니다. 한 사람은 그 소녀처럼 오래전에 이 섬으로 왔다가 실종된 소녀의 오빠이(로 밝혀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실리콘 섬의 좋은 가문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후 다국적 기업 측 주요인사의 조수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이야기 속에 잘 짜여들어가서 크게 무리는 없었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이 책은 인류세 시대에 소설가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 이야기의 기능 중 하나라고 한다면, 인류세 시대의 소설과 영화 특히 SF라는 장르야말로 바로 그런 일을 할 수 있고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그 일을 해내고 있기도 하고, 일반 SF로서의 의무도 충실히 하고 있어서, SF 독자 뿐만 아니라 (저같은) 일반 소설 독자들도 재밌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이야기의 긴장감이 더 높아지고, 마치 달리기 한 후 호흡운동을 하듯 마무리되고 있어서 엔딩크레딧을 볼 때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아주 재밌으면서도 의미있는 환경/SF/액션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어려운 전문 용어나 중국의 문화적, 역사적인 배경도 이야기에 잘 녹여 설명되어 있어서 읽기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환경이나 인권은 대상화되기 쉽고, 대상화되면 그 상황의 당사자는 주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대상화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 당사자들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주인공, 즉 주체가 될 수 있고, 상황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상상하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환경 문제, 기후 위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잘~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인류세 시대인의 의무이기도 하고, 이 일이 우리 문명이 어떤 문명인지 되새김질해보는 방법 중 가장 재미있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