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첩 원리와 선형 방정식과 파동
지난 세미나에서 '중첩원리(Principle of Superposition)'를 둘러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개념을 처음 이야기한 것은 18세기 스위스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Superposition_principle )
흔히 파동(undulation, 波動)이란 용어도 많이 쓰고 너무나 익숙한 개념인 것 같지만, 파동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래 영상이 8분 남짓 되는데, 파동에 대해 유익한 설명입니다.
Introduction to Waves (Flipping Physics): " target="_blank" rel="noopener">" target="_blank" rel="noopener">
Understanding Longitudinal and Transverse Waves, Wavelength, and Period using Graphs (Flipping Physics) " target="_blank" rel="noopener">" target="_blank" rel="noopener">
파동은 파도나 파문 같은 것으로 대략 볼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매질의 진동(oscillation 振動)입니다. 진동은 제 자리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운동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는 뭔가 왔다갔다 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제자리에서 떨릴 뿐입니다. 위의 영상에서 줄에 고리 같은 표시가 있는데, 그 고리를 눈여겨 보면 제자리에서 위아래로 움직일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약간 수평방향으로도 움직임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 진동을 보면서 무엇인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면, 바로 그것이 파동입니다. 흔한 비유로 파도타기 응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관중석에서 각 사람은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할 뿐이지만, 멀리서 보면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중첩(superposition 重疊)'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중첩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바로 파동이라는 현상을 서술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중첩의 핵심은 한 위치(position)에 둘 이상의 무엇인가가 겹쳐(super-) 놓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중첩을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방정식의 선형성(linearity)입니다. 만일 $u(x, t)$가 파동이고 $v(x, t)$도 파동이라면, $a u(x, t) + b v(x, t)$도 파동입니다. 두 파동을 더한 것도 파동이고 한 파동의 진폭을 몇 배 해도 여전히 파동입니다.
이것이 파동방정식의 핵심입니다. 파동방정식의 표준형식은 $$ \frac{\partial^2 u(x, t)}{\partial t^2} = c^2 \frac{\partial^2 u(x, t)}{\partial x^2}$$입니다. 이것을 처음 발표한 것은 장-바티스트 르롱 달랑베르(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 1717-1783)였습니다.
Jean Le Rond d'Alembert, (1747). "Recherches sur la courbe que forme une corde tenduë mise en vibration". Histoire de l'académie royale des sciences et belles lettres de Berlin. Vol. 3. pp. 214–219; "Suite des recherches sur la courbe que forme une corde tenduë mise en vibration". Histoire de l'académie royale des sciences et belles lettres de Berlin. Vol. 3. pp. 220–249.
파동방정식은 선형이기 때문에 만일 $u(x, t)$와 $v(x, t)$가 파동방정식의 풀이라면, $a u(x, t) + b v(x, t)$도 파동방정식의 풀이가 됩니다. 이것이 위에 말한 두 파동을 더한 것도 파동이고 한 파동의 진폭을 몇 배 해도 여전히 파동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것이 '중첩의 원리'입니다.
요컨대, ‘중첩 원리’와 ‘파동방정식의 선형성’과 ‘파동의 물리적 개념’은 사실상 서로 동의어입니다. 이 세 가지는 큰 무리 없이 섞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선형 방정식이 가장 진지하게 적용된 것이 바로 푸리에 해석입니다.
양자역학에서 중첩의 원리가 뭔가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18세기에 파동을 설명하기 위해 파동방정식의 표준적인 형태를 유도하고 이로부터 중첩원리를 처음 도입하고 200년 넘게 이를 수학적으로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 빛이 일종의 파동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이를 확인하는 실험(하인리히 헤르츠의 전자기파 검출)이 성공하면서 빛의 파동이론이 확립되었습니다. 1924년 무렵 루이 드브로이가 전자도 빛처럼 파동이라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를 새로운 파동방정식의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1926년의 에르빈 슈뢰딩거입니다. 요컨대,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에서 파동방정식에 중첩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에 나오는 그 파동함수가 그 전까지 알고 있던 파동과 다르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의 문제를 소위 '중첩 원리'로 설명하겠다는 것은 그냥 주류의 관점과 마찬가지로 파동함수가 진짜 파동임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양자역학에서 일반중첩원리(일반화된 중첩원리?)가 적용된다고 처음 주장한 폴 디랙조차 양자역학의 파동은 고전적 파동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the superposition that occurs in quantum mechanics is of an essentially different nature from any occurring in the classical theory" [Dirac, P. A. M. (1958). The Principles of Quantum Mechanics, 4th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p. 14.]
요컨대, 중첩원리와 방정식의 선형성과 파동이라는 개념은 실상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서로 동등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파동’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적 함수라면, 양자역학에 중첩원리가 있다는 말도 부적절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매우 오래된 논쟁에서 소위 중첩 개념은 파동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입자에 '중첩'이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형용모순입니다. 입자라는 개념은 여기 있거나 저기 있거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흔히 국소화 원리가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장회익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대상이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관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정말 (1) 드브로이의 물질파란 개념은 세계에 대한 올바른 존재론이 아니고 (2) 슈뢰딩거의 새로운 역학은 파동에 대한 것이 아니고 (3) 올바른 양자역학의 이해에서 소위 입자-파동 이중성은 잘못된 형이상학적 믿음이고 (4) 중첩이라는 것은 무슨 거창한 원리가 아니라는 주장이 옳을까요? 세미나에서 더 깊이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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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이 이야기가 다시 나와서 정리해 둡니다.
중첩원리와 방정식의 선형성과 파동이라는 개념은 실상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서로 동등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마치 고전역학에는 '중첩'이 없는데 양자역학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것처럼 말하면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는 진짜 '파동'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첩원리'라는 말을 쓰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랙도 고전적인 파동의 중첩과 혼동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에 나오는 '일반중첩원리'는 그와 다르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르다고 강조하기보다는 그냥 '선형결합의 원리' 쯤으로 썼더라면 혼동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