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질문] 양자역학 - 변별체
질문 및 토론
양자역학
작성자
김진우
작성일
2022-03-17 14:39
조회
4699
양자 역학 세미나 관련 질문
1. 변별체의 성격이 (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흔적을 남길 수 있게 하는 물체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전문적인 설명은 어렵겠지만 대략 그 성질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원자 수준의 크기에서는 대상이 상태함수적 성격이 아니고 위치를 점유하는 반면 전자 수준의 크기에서는 그것이 위치를 점유하지 않고 상태함수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고 할 때 그것이 크기에 좌우되는 특성이라고 봐야 할까요? 만약 상상력을 발휘하여 원자 크기를 자꾸 줄여나간다고 하면 어느 시점부터 위치가 흐릿해지고(?) 특성이 바뀐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요?
3. 그리고 너무 기초적인 질문이라 몸풀기에서 물어봤어야 하는 것 같은데 파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물결 같은 파장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힘이 입자들을 건드려서 그것들이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위치가 바뀌는 모양으로 이해되는데 빛이 파장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은 빛이 어떤 물질들을 건드려서 물결 모양으로 에너지가 전달된다는 의미인지, 파장이라는 것이 뭔지 근본적 개념이 잘 안 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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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급한 대로 저의 의견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1. 변별체는 흔히 ‘측정장치’라 부르는 것을 장회익 선생님께서 독특하게 개념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종류의 측정장치가 다 변별체 역할을 합니다. 사람도 변별체가 될 수 있고, 실험실의 데이터 받는 컴퓨터도 변별체가 됩니다. 자나 시계도 변별체가 될 수 있고, 전류계, 전압계 같은 것도 됩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되는 실틈이나 가로막이나 마지막에 있는 스크린이 다 변별체가 됩니다. 19세기 이후로 점점 더 작은 영역과 대상으로 물리학이나 화학이 확장되면서 그에 따라 측정장치들도 아주 교묘해졌습니다.
다만 변별체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특징은 존재자(전자, 원자, 기본입자 등)가 흔적을 남기는지 안 남기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로 discerner라 한 것도 이것인지 저것인지 변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우선 장회익 선생님의 용어에서 ‘특성’과 ‘상태’를 명료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언어에서는 ‘특성’을 ‘속성’이나 ‘성질’과 유의어로 쓰지만,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에서 ‘특성’은 영어로 characteristic으로서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수학적 형식입니다. 원래는 ‘특성함수’에서 나온 것인데, 함수가 아닐 수도 있어서 그냥 ‘특성’이라고 하거나 더 상세하게 풀어 ‘동역학적 특성’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곧 문제의 설정입니다. 시험을 치르는 계산문제로 비유하면 답안을 써나가기 전 주어지는 시험문제가 바로 ‘특성’입니다. 고전역학이든 양자역학이든 대상의 질량과 힘(포텐셜 에너지)이 ‘특성’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이 어떠하다”라는 서술에서 ‘무엇’에 대응합니다. 장현광이 ‘형 없는 형’이라 부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형(形)’과 ‘상(象)’을 대비하면 ‘형’은 고정되고 완결되고 자립적인 어떤 것의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를 한자어로 번역할 때 ‘형상(形相)’이라 했습니다. 이와 달리 ‘상(象)’은 가령 코끼리를 나타내는 어떤 모양 같은 것이어서 뭔가 자꾸 달라지거나 변하는 것의 이미지입니다. 영어의 state나 독일어의 Zustand를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狀態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형상의 ‘상’과 “상 없는 상”의 ‘상’과 상태의 ‘상’이 한자로는 다 다르네요. 독일어의 Zustand는 지금 여기에서 본 찰나의 장면 같은 느낌입니다. Stand가 서 있는 자리 같은 뜻입니다. 이를 일본어에서 狀態로 번역한 것은 글자 그대로의 번역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양자역학에서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적 방식인 ‘상태함수’가 이거냐 저거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확률로서 성향을 말해 준다고 말할 때, 대상의 크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스티븐 호킹의 전문분야인 양자우주론은 우주 전체를 양자이론으로 서술하는 접근이라서 크기가 엄청나게 큽니다. 양자우주론에서는 우주 전체의 상태함수가 충족시키는 방정식을 만들고 이를 풀어서 우주의 시작과 미래를 말합니다. 야구공의 운동상태나 용수철 끝에 달린 물체의 운동상태도 양자역학으로 계산하여 상태함수를 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복잡하고 불편해서, 집에 있는 작은 선인장을 다른 화분에 옮기려고 포크레인을 동원하는 것처럼 불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고전역학의 방법을 쓰는 셈입니다.
질문 3.의 핵심은 빛이 파동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신 듯 합니다. 실상 빛이 전기와 자기의 파동이라는 주장이 1860년대에 처음 나왔을 때에도 이 말을 직관적으로 이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습관적으로 “빛=전자기파”라고 말합니다. 강의시간이든 세미나에서든 토론에서든 이 개념은 거의 자연에 내재한 사실인 양 말합니다.
https://en.m.wikipedia.org/wiki/Electromagnetic_radiation
빛이 물결을 닮은 파동이라는 생각은 아이작 뉴턴 당시 네덜란드의 자연철학자(물리학자, 수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제안한 이론이었습니다. 1678년 무렵이었습니다. 파도는 물을 들어올리거나 내리는 것이고, 음파는 공기의 밀도가 빽빽해졌다가 성기게 되었다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도의 매질은 물이고 음파의 매질은 공기라 말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음파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하위헌스는 빛의 매질을 ‘에테르’라고 보았습니다. 빛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 우주를 채우고 있는 제5의 원소를 매질로 한다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에서 제5의 원소는 달 밑의 세계를 이루는 네 원소 즉 흙(terra), 물(aqua), 숨(aer), 불(ignis)와 달리 달 위의 세계를 이루는 근본 원소로서 그리스어로 ‘아이테르’, 라틴어로 ‘에테르’라 불렀습니다. 하위헌스가 해에서 지구로 오는 빛이나 별에서 오는 빛이나 한낮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빛의 매질을 에테르라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실증적 근거는 전혀 없었습니다. 18세기에 유럽 자연철학에서 전기와 자기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자연철학의 탐구대상이 되면서 이와 관련된 ‘무게 없는 유체’로 에플루비움(effulivium)이라는 가상의 존재가 거론되다가 18세기 말쯤에는 전기 에테르, 자기 에테르 같은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빛 에테르와는 구별되었습니다. 9세기 중엽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수리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전자기 에테르와 빛 에테르가 같다는 주장을 영국 왕립협회에서 발표합니다. 이것이 빛이 곧 전자기파라는 주장의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빛에 매질이 있다면 소위 ‘에테르 끌림’이라는 현상 때문에 공전하는 지구는 광속을 다르게 보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1880년대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물리학의 정설이었습니다. 1882년 앨버트 마이컬슨이 교묘하게 만든 간섭계로 실험을 한 것도 애초에 이 에테르 끌림에 따른 광속의 차이를 검출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그 정교한 장치에서 에테르 끌림이 나오지 않았고, 어떻게 해도 광속을 일정한 값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헨드릭 로렌츠가 로렌츠 수축이라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 광속일정을 공리나 전제로 끌어내렸고, 그 대신 동시의 상대성, 길이 줄어듬, 시간 늘어남이라는 비직관적인 것을 허용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1905년 논문 끝자락에 “따라서 우리는 에테르라는 빛의 매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젠 정말 난감합니다. 빛이 파동이긴 한데 매질이 없다는 것이니까요. 에너지를 전달하는 바탕 물질 같은 게 전혀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파도의 유비로 빛을 이해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막스 플랑크입니다. 실험결과에 맞추려다 보니까 빛의 에너지가 어떤 기본량의 자연수배만 허용된다고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거의 절망적으로 제시합니다. 게다가 그 에너지의 기본량은 빛의 진동수에 비례한다고 놓아야 실험결과를 맞출 수 있습니다. 즉 에너지 기본량은 파장에 반비례합니다. 이를 수식으로 쓰면 $E=n \varepsilon$ ($n=1, 2, 3, \cdots$)이고 $\varepsilon=h f$ 또는 $\varepsilon=hc/\lambda$가 됩니다. 이것이 양자이론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대담에 있습니다.
플랑크의 흑체복사공식에서 도입된 그 간단한 수식은 당시의 기라성 같은 물리학자들도, 심지어 플랑크 자신도 직관적으로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왜 에너지의 기본량이 진동수에 비례하거나 파장에 반비례하는 것인지 쉬운 일상언어로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가정하면 흑체복사와 관련된 공식을 실험결과와 잘 맞아 떨어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만 할 수 있었습니다. 플랑크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05년의 아인슈타인이 처음 제대로 플랑크의 가설을 써서 빛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현상, 즉 형광, 냉광, 광전효과 등을 깔끔하게 설명해 냅니다. 이 논문이 1905년 상대성이론 논문(6월 투고)보다 더 빠르게 3월에 투고한 논문의 내용입니다. 결국 노벨물리학상도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이 빛 양자 가설에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빛의 에너지 기본량이 파장에 반비례한다는 말, 다시 말해 빛의 파장이 에너지에 반비례한다는 말은 여전히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파동을 직관적으로 가장 쉽게 보는 방법은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이겠습니다. 하얗게 포말이 일어나는 부분이 일정한 거리마다 반복되는데 그것이 파장입니다. 다만 바닷가의 천해파는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파장이 점점 짧아집니다. 먼 바다에서는 대략 파장이 일정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 영어판에 있는 그림과 사진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en.m.wikipedia.org/wiki/Wavelength
이 질문들에 대한 저의 의견은 보조세미나에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첨부 그림이 바람 때문에 생기는 물결의 운동을 잘 보여줍니다.
(출처: https://en.m.wikipedia.org/wiki/Wave)
지금 다시 질문을 읽어보니 "파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아마 "파동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는 질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자연철학이라기보다는 물리학에서 용어를 정확히 말하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더 심화된 논의를 위해서는 용어를 정확하게 규정한 필요가 종종 있습니다.
파동(波動, wave, undulation)은 시간적으로도 반복되고 공간적으로도 반복되는 운동으로 정의합니다. 공간적인 것 없이 시간적으로만 반복되는 것은 진동(振動, oscillation)이라 부릅니다.
진동은 가령 $$ u(t) = A \sin \omega t$$와 같이 시간의 삼각함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파동은 공간쪽에도 반복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뿐 아니라 위치의 함수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가령 $$ u(x, t) = A \sin (k x - \omega t) + B \sin (k x + \omega t)$$와 같이 표현됩니다. 약간 왜곡해서 말하면, 시간과 위치의 함수로 표현되는 것은 대략 파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냥 $u(x, t)$라고 편하게 알파벳을 썼지만, 18세기부터 유럽의 수학자들은 자주 그리스 문자를 이용했고, 가령 $\psi (x, t)$라고 쓸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로마자와 겹치지 않는 그리스 문자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슈뢰딩거가 1926년에 파동방정식을 처음 제안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관례대로 $\psi (x, t)$라고 썼는데, 그것이 지금 양자역학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 버려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파장(波長, wavelength)은 파동에서 산과 산 사이의 거리 또는 골과 골 사이의 거리를 가리킵니다. 출렁거리는 것이 반복되니까 공간상으로 반복되는 길이를 파장이라 부릅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를 그리스 람다($\lambda$)로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길이(length, Lange)라는 말의 첫 글자가 '엘(l)'이라서 그에 대응하는 그리스 문자 람다를 쓴 것입니다.
파장의 역수를 파수(波數, wavenumber)라 부릅니다. 거기에 각의 한 주기를 나타내는 $2\pi$를 곱한 것을 각파수(角波數, angular wavenumber)라 부르고 보통 $k$라는 문자로 나타냅니다. 즉 $$k=\frac{2\pi}{\lambda}$$입니다.
1번 질문에 대한 보충입니다. 프랑스 CNRS라는 기관에서 양자물리학과 관련된 개념들을 멋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설명해 주고 있어서 아주 유용합니다.
http://toutestquantique.fr/en/
특히 The Spin, A Quantum Magent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유용합니다. 소위 슈테른-게를라흐(Stern-Gerlach) 실험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약간 뾰족하게 생긴 이상한 자석이 고정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변별체의 전형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슈테를-게를라흐 실험은 여기를 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설명 감사합니다. 정말 모르시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것을 기억해서 바로 바로 출력하실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휴, 그런 말씀을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저는 갈수록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해력도 떨어지고 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위의 내용을 적은 것은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 강의 관련하여 제가 그 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이지 모르는 게 없다고 하시는 건 과찬이십니다. 또 이 내용은 제가 최근에도 제 강의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던 내용이라 조금 더 익숙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억에서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과정에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합니다. 기억에 의존하다가는 틀린 얘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서 저는 거기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