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질문] 앎이란, 사고란 필연적으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걸까?
질문 1. 메타과학의 방법과 새 자연철학의 방법?
1990년경 제시된 '메타과학'과 2019~2021년 사이 제시된 '새 자연철학' 사이의 차이는 아직 제게 분명치 않습니다. 줄곧 숙제 같이 생각하고 있는 중에 아래의 귀절을 보고는 한 가지 힌트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 지난한 (통합학문을 향한) 작업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 필자가 말하는 메타과학이다. 메타과학은 과학적 방법을 채택하면서도 모든 학문 특히 자연과학의 바탕을 그 대상으로 살피며, 이렇게 얻어진 성과들은 생명과 인간을 비롯한 우리의 모든 관심사를 망라한다." ("개정신판을 내면서", 『과학과 메타과학』, 개정신판, pp.6-7. 밑줄은 질문자)
메타과학이 채택하는 '과학적 방법'은 과학적 지식의 '탐색'을 위한 네 가지 방법, 즉, 의식적 반성과 계량적 개념, 실증적 검토, 하나의 체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 이 네 가지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보다는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방법론'으로 제시된 '인간 사고의 기본적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 메타과학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만약 후자라면 이는 '새 자연철학'의 방법이기도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방법에서는 메타과학과 새 자연철학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닐까요?
질문 2. 앎이란, 사고란 필연적으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가?
『과학과 메타과학』에서부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이하 『자연철학 강의』까지 일관되게 강조되고 있는 목표가 '통합학문'이라면, 일관되게 강조되고 있는 방법이자 커다란 가정은 '구조' 또는 '틀'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학문 본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물리학, 역학, 또는 양자역학이라 세분하기 전에 이러한 추구의 과정을 앞선 이들의 학문적 지향에 맞추어 '자연철학'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포괄하는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담아보려는 시도가 요청된다. 이 작업은 기존의 분과 학문의 내용들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전모를 담아낼 새로운 학문의 틀을 마련하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해내야 하는 또 하나의 창조적 노력이 요구된다. ("책 머리에", 『자연철학 강의』, pp.5-6. 밑줄은 질문자)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위와 같이 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이 점은 『과학과 메타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군데를 꼽아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의 양적 팽창을 바탕으로 성취될 질적 도약은 어떠한 형태를 지닌 것인가? 모든 메타시스템 전환이 그러하듯이 이것 또한 기존의 과학적 지식을 본질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하여 한층 높은 지적 구조물을 형성해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작업은 기존 지식의 양적 종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새로운 구조를 찾아내고, 이를 다시 정련하여 우주와 인간에 대해 한층 고양된 시각에서 투시할 수 있는 새로운 지적 프리즘을 다듬어냄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서설 ⟪과학과 메타과학⟫",『과학과 메타과학』, 개정신판, p.15. 밑줄은 질문자)
"즉 오늘날 비과학적 사고였다고 생각되는 이른바 전과학적(前科學的) 지식 내용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지식 패턴을 동일한 평면 위에서 고찰하고, 이 가운데서 패러다임에 무관한 본질적 요소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인간 사고의 기본적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장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 『과학과 메타과학』, 개정신판, p.44. 밑줄은 질문자)
"실제로 현재 우리가 놓인 입장은 각 지역의 지도들을 결합해 한 장의 세계지도를 그려보려던 초기 지도 제작자들의 상황과 흡사하다. 우리가 기왕에 알고 있는 지식들을 전부 결합하여 지식 전체를 하나의 틀 속에 묶어보자는 것이다." ("2장 지식 진화와 학문의 전개 양식", 『과학과 메타과학』, 개정신판, p.58. 밑줄은 질문자)
이처럼 장회익 학문의 특징은 '사고의 구조', '앎의 틀'이 있음을 가정하고, 그것이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서 소위 패러다임과 패러다임 사이의 합리적인 선택의 기준이 될만큼 다층적이고 근원적일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편으로는 '의미기반', 또는 '바탕 관념'으로 개념화될 수 있는 앎의 묵시적인 바탕을 여러 영역에서 드러내는 것으로도 열매를 맺고, 더 나아가서는 존재세계와 나, 물질과 정신, 존재와 앎을 포괄하는 거대한 모형으로 뫼비우스의 띠 모형을 제시하는 데로도 이어집니다.
성공한 가설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연유로 장회익 학문은 '사고의 구조', '앎의 틀'이 있음을 확신하여 밀고 나갔고, 어떻게 통합적 앎에는 '새로운 구조', '하나의 틀'이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전제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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