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시공간과 세계선 그리고 블록 우주
4차원 시공간과 세계선 그리고 블록 우주
1908년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처음 도입한 4차원 시공간과 세계선 개념은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위치를 시간의 함수로 써서 이를 다시 그래프로 나타내는 것이 매우 익숙하고 초보적인 접근입니다. 여기에서 위치 대신 다른 것, 가령 주가라든가 전염병 확진자 수라든가 어떤 양이라도 넣으면,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시계열 그래프가 됩니다.
저희에게 익숙한 지구가열 그래프에서 수평축을 시간으로 수직축을 온도변화로 놓은 아래와 같은 그래프도 그런 시계열(time-series) 그래프입니다.
4차원 시공간을 상상하기가 불편하면, 그냥 공간의 차원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2차원 시공간 평면을 생각해도 됩니다.
1차원 공간(사실은 선)에서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이와 별도로 째깍째깍 가고 있는 시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공간 상의 위치가 변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x = x(t) $처럼 함수로 나타냅니다. 추상적인 함수가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으니까, 수평 축은 $t$로 놓고 수직 축을 $x$로 놓고, 각각의 $t$값 즉 각 시간의 위치를 점으로 찍습니다. 이 점들을 다 이으면 물체의 움직임을 고정하여 눈으로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래프가 됩니다. 물리학에서 운동을 나타내는 그래프의 전형적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이 그래프에서 수평축은 시간을 표시하고 수직축은 거리를 나타냅니다. 이 선들이 '세계선'입니다. 여기에서 빨간색 세계선은 일정한 속력으로 거리가 늘어나는 운동을 나타냅니다. 노란색 세계선은 점점 빨라지는 운동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세계선이 직선이면 등속운동이고 직선이 아닌 곡선이면 가속운동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복잡한 것도 가능합니다. 파란색 세계선은 처음에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다가 2초부터 5초까지 멈춰 있다가 다시 2초 동안 되돌아 오는 운동을 나타냅니다. 이 그래프는 대개 중학교 1,2학년 쯤에 가르치는 것 같은데, 이 단계에서 물리학을 싫어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차원) 시공간에서 물체의 운동은 곧 이러한 그래프 내지 선과 일대일 대응됩니다. 이 그래프 선을 민코프스키는 ‘세계선(Weltlinie)’이라고 불렀습니다. 민코프스키는 조금 특이하게 시간을 수직축으로 선택하고 공간을 수평축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림 출처: https://de.wikisource.org/wiki/Raum_und_Zeit_(Minkowski) )
민코프스키의 논문을 위의 위키원전 링크에서도 읽을 수 있고 민코스프키 저작집(https://bit.ly/3jRj1VA )에서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수직축으로 하고 공간을 수평한 2차원 평면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은 도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line )
점입자는 0차원이라서 시간을 따라 운동하는 모습 전체를 그리면 1차원 세계선(worldline)이 됩니다. 만일 고무밴드나 긴 실처럼 생긴 끈(string)이 시간을 따라 운동하는 모습 전체를 그리면 끈이 1차원이라서 2차원 세계면(worldsheet)이 됩니다. 초끈이론을 확장하면 1차원 끈뿐 아니라 2차원 막, 3차원 '막', 4차원 '막' 등등 모두가 가능합니다. 이를 통틀어 '브레인'이라 부릅니다. 2차원 막을 처음에 '멤브레인(membrane)'이라 불렀는데, 3차원 대상도 그냥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서 3-브레인(3-brane)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임의의 $p$차원 막은 $p$브레인($p$-brane)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끈은 1-브레인이 되고, 점입자는 0-브레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세계선과 운동을 등치시킨다는 것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수학자나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그래프로 표현된 것과 그래프는 사실상 같은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네 번째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놀랍게도 변화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구분하면 이 곳에 있던 물체가 저 곳으로 옮겨가고 그 동안 유한한 시간이 흐르는 ‘운동’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됩니다. 그러나 4차원 시공간에서는 그 모든 운동이 그냥 세계선이라는 고정된 선과 정확히 같습니다. 4차원 시공간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4차원 세계는 많은 세계선들이 얼어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세계선들이 교차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특정 시간 특정 위치에서 두 물체가 만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선이 직선이라는 것은 가속이 없다는 것이고, 이와 달리 세계선이 곡선이면 가속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세계선으로 세상을 보면 아래와 같은 세계선들의 모음이 됩니다.
(그림 출처: J. Narlikar, Introduction to Relativity, Cambridge Univ. Press, 2010.)
왼쪽의 세계선들은 서로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지만, 오른쪽의 세계선들은 서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선이 만나는 점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들어 있기 때문에, 이런 교차는 '언제'와 '어디'가 함께 있고, 이렇게 세계선의 교차점은 복잡한 인연들 속에서의 만남이 일어나는 소중한 인연임을 말해 줍니다.
시간 좌표가 다른 채 공간 좌표만 같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흔적을 찾아 독일 울름과 뮌헨과 스위스 취리히와 베른을 방문한 21세기의 자연철학자들은 100년쯤 전에 그런 생각을 하고 그것을 글로 남긴 다른 자연철학자와 세계선에서 연결되는 점이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모든 역사가 세계선들의 복잡한 얽힘으로 대치됩니다. 이런 우주를 블록 우주라 부릅니다. 여기에서 블록은 벽돌이란 의미인데, 흥미로운 발상입니다. 블록 우주에 대해서는 새로운 글에서 더 이어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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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이라는 개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2차원 시공간의 세계선부터 설명해주시니까 조금 감이 오네요! 호킹의 <시간의 역사> 초반에 나오는 세계선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설명을 읽어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세계선 개념은 왜 필요한 건지 갑자기 생각해보니 모르겠네요. 앞의 내용을 이해못한 티가 나는 질문인 것 같기는 한데. 세계선이 말해주는 건 무엇인지 제가 모르고 있었네요.
글을 급하게 적느라고 그림 하나 없이 설명하는 바람에 좀 읽기 어려운 글이 되어 버린 듯 합니다. 그림을 조금 덧붙였고 내용도 조금 편집했습니다. 세계선 개념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 보려 했는데, 전달이 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