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겹실틈(삼중슬릿) 실험
앞에서 겹실틈(이중 슬릿) 실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살펴보았습니다.
흔히 코펜하겐 해석이라 부르는 흔한 해석에서는 두 개의 실틈 중 어디를 지나갔는가 확인하는가 여부에 따라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즉 어느 경로 정보(Which Path Information, WPI)를 확인할 때에는 관찰자의 개입으로 인해 입자성이 나타나서 간섭무늬가 사라지지만, 어느 경로 정보(WPI)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파동성이 나타나서 간섭무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입자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파동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에는 도무지 납득도 안 되고 이해가 전혀 가지 않지만, 자꾸만 듣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신비하고 알 수 없고 기묘한 일이 바로 양자역학의 자연철학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안타깝지만 여전히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부적절한 관념을 지금도 퍼뜨리고 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처럼 양자역학의 공리로서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 흔적을 남기거나 남기지 않으면 그에 따라 상태 전환이 다르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어쩐지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상식적인 것 같아서 양자역학의 신비감을 없애는 듯 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하간 보는 관점과 해석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에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든 아니면 장회익 선생님의 서울 해석을 받아들이든 그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할만합니다.
세겹실틈 실험은 그것이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잘 드러냅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 실제로 실험이 수행되기 전까지는 계산의 문제에 국한되었습니다.
겹실틈 실험에 실틈을 하나 더 추가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원론적으로 그다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조금 더 복잡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림 출처: Asad Siddiqui, M., & Qureshi, T. (2015). Three-slit interference: A duality relation: Fig. 1. Progress of Theoretical and Experimental Physics, 2015(8), 083A02. doi:/10.1093/ptep/ptv112 )
위 그림 오른쪽에 있는 그래프도 수식으로 계산하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 계산문제로 제시되어 있고 링크를 따라가면 상세한 계산과정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eb.mit.edu/viz/EM/visualizations/notes/modules/guide14.pdf )
그런데 세겹실틈 실험이 재미있는 점은 세겹실틈 실험을 겹실틈 실험과 결합시켜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세 실틈 중에 하나만 닫았을 때, 두 개 닫았을 때 등을 조합하여 관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Urbasi Sinha et al. (2010). "Ruling Out Multi-Order Interference in Quantum Mechanics" Science 329, 418-421. DOI: 10.1126/science.1190545)
위에 인용한 그림에서 왼편에 있는 것은 전자가 지나가는 입구의 세겹실틈입니다. 거기에다 오른편에 있는 덮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경우에 전자들이 스크린에 찍히는 수를 위치에 따라 일일이 셉니다.
덮개의 맨 밑에 ABC라고 되어 있는 것은 세 실틈을 모두 열어 놓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 위의 AB, AC, BC는 세 실틈 중 하나를 막는 것이고, A, B, C는 두 실틈을 막는 것입니다. 맨 위의 0은 세 실틈을 모두 막는 것이죠.
이 실험이 확인하려 한 것은 다른 문제였지만, 이 그림을 통해 세겹실틈 실험이 소위 입자-파동 이중성에 대해 의미심장한 새로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겹실틈 실험의 경우 코펜하겐 해석은 어느 경로 정보(WPI)를 관찰하면 입자가 되고 그러지 않으면 파동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와 달리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서는 전자와 변별체가 만나서(조우하여) 흔적을 남기는가 여부에 따라 상태가 전환되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세겹실틈에서 어느 하나를 막으면 이것은 어느 경로 정보(WPI)를 관찰한 것이지만, 그 경우는 입자가 되는 걸까요, 아니면 파동이 되는 걸까요? 관찰자가 측정을 했으니, 즉 누군가가 어느 실틈으로 가는지 보았으니, 입자처럼 행동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직 겹실틈이 남아 있으므로 파동처럼 행동해야 할까요? 세 개의 겹실틈 중 하나를 막더라도 여전히 겹실틈이므로 일정한 시간 뒤에 전자들이 스크린에 만들어내는 무늬는 알록달록한 소위 '간섭무늬'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경로 정보(WPI)를 측정했는가 여부에 따라 입자나 파동이 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실틈 두 개를 막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러면 어느 경로 정보(WPI)를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코펜하겐 해석에서처럼 입자처럼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 개의 실틈 중에 두 곳에서 막히고 한 군데에서만 전자가 통과하는 것이므로 [공리 4]에 따라 상태함수가 다른 수식으로 표현됩니다. 즉 상태가 전환됩니다.
실틈을 하나만 막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를 막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상태가 전환되는 것입니다. 실상은 모든 가림막들이 다 그렇게 뚫려 있는 실틈을 지나는 것 외에 나머지는 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의 실틈을 지나는 것은 거기에 따라 상태가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림으로 간단하게 나타낼 때에는 전자의 궤적을 화살표로 쓱 그리기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것인데, 실상은 겹실틈 앞에 정렬을 위해 놓아 두는 그 하나의 실틈 때문에 이미 상태가 전환됩니다. 그리고 겹실틈이 있으면 거기에 맞추어 다시 상태가 전환됩니다. 만일 세겹실틈이 있다면 역시 거기에 맞추어 상태가 전환됩니다. 세겹실틈 중 일부를 막아버리면 또 거기에 맞추어 상태가 전환됩니다.
상태의 전환은 언제 일어날까요? 실틈을 만날 때입니다. 위의 상황처럼 덮개가 있다면 덮개와 실틈이 붙어 있는 그 연합체 비슷한 것을 만날 때입니다. 실틈이든 실틈+덮개이든 선택지를 줍니다. 이 실틈인가 저 실틈인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 바로 변별체입니다. 사건을 유발하는 능력을 지닌 것입니다.
전자의 상태가 이러저러하다고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곧 전자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성향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처럼 어느 실틈을 지났는지 보는 경우에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설명은 세겹실틈에서 무너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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