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열역학 영째 법칙과 온도의 정의
지난 번 세미나에 대한 요약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자유에너지’ 개념과 ‘온도’ 개념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는데 ‘온도’를 ‘엔트로피 개념을 통해서 이해한다’는 점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두루두루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장회익 선생님은 온도계로 잴 수 있는 뜨거운 정도에서 분자들의 운동의 정도로 나아간 것이 온도 이해의 1단계라면 엔트로피 개념을 통한 이해가 더 심화된 2단계라 할 수 있는데 여간해선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들도 2단계까지 온도를 이해하는 사람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하시네요. |
온도(溫度)를 통계역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열역학 영째 법칙(zeroth law of thermodynamics)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립계의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첫째 법칙과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둘째 법칙은 1865년 독일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처음 정리했습니다. 열역학 셋째 법칙은 1906년 독일 화학자 발터 네른스트의 실험과 1907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비열 이론을 기반으로 1911년 막스 플랑크가 정립했습니다.
영째 법칙이란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영국 물리학자 랠프 파울러(Ralph H. Fowler 1889-1944)였습니다. 여담이지만, 파울러의 제자 중 찬드라세크하르, 폴 디랙, 네빌 모트 세 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존 레너드-존스, 더글러스 하트리, 가렛 버코프 등 63명의 저명한 물리학자 수학자의 지도교수이기도 합니다. 1939년 E. A. 구겐하임과 함께 쓴 [통계열역학 Statistical Thermodynamics]에서 이 용어를 처음 썼습니다. 영째 법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비롯 열역학의 세 법칙보다 나중에 정식화되었지만, 개념상으로 맨 먼저 와야 하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열역학 영째 법칙은 대개 다음과 같이 정식화합니다.
"물리계 A가 물리계 B가 열평형을 이루고 있고, 또 물리계 B가 물리계 C와 열평형을 이루고 있다면, 물리계 A와 물리계 C는 열평형을 이룬다. 즉, 두 물리계가 각각 세 번째 물리계와 열평형을 이루고 있다면, 그 두 물리계는 열평형을 이룬다." |
열평형은 두 물리계 사이에 에너지 흐름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열평형을 정의하고 열역학 영째 법칙을 공리로 내세우고 나면, 열평형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물리계에 대해 보편적인 양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온도(temperature) $T$라 부릅니다. 이와 같이 열역학의 논리적 전개에서 열평형 개념과 온도 개념은 근원적입니다.
이렇게 정의된 온도 개념은 $$\frac{1}{T}=\frac{\mathrm{d} S}{\mathrm{d} E}$$와 같이 엔트로피의 변화량과 내부에너지의 변화량의 비로 이해됩니다. 상세한 것은 이 게시판에 "온도란 무엇일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정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는 에너지의 함수가 될 것입니다. 이를 $W (E)$라고 나타낼 수 있습니다. 두 닫힌 계가 열접촉하고 있을 때 에너지가 변한다고 해 보죠. (닫힌 계는 경계에서 에너지 출입만 허용되는 계를 가리킵니다. 고립계는 에너지조차 출입되지 않는 계로 정의되는데, 열역학 또는 통계역학에서는 대부분 대상계와 주변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고립계는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만 가질 때가 많습니다.)
두 계의 에너지가 각각 $E_1$, $E_2$라 할 때 열역학 첫째 법칙에 따라 두 에너지의 합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즉 $$E_1 + E_2 = E_0$$
가장 개연성(확률)이 높은 것은 $$W_1 (E_1 ) W_2 ( E_2)=W_1 (E_1 ) W_2 (E_0 - E_1)$$이 최대일 때입니다. 최대가 될 때 도함수가 0, 즉 미분한 것이 0이 되어야 하므로, $$ \frac{\mathrm{d} W_1 }{\mathrm{d} E_1 } W_2 + W_1 \frac{\mathrm{d} W_2 }{\mathrm{d} E_2 }=0$$이어야 합니다. 이 때의 $E_1$의 값을 $E_1 ^*$라 쓰고, 이를 보기 좋게 1번 계와 2번 계로 나누어 적으면 $$ \left[\frac{1}{W_1}\frac{\mathrm{d} W_1 }{\mathrm{d} E_1 } \right]_{E_1^*} = \left[\frac{1}{W_2} \frac{\mathrm{d} W_2 }{\mathrm{d} E_2 }\right]_{E_0 - E_1 ^*}$$가 됩니다.
여기에서 로그 함수의 도함수가 $$(\log f(x))^\prime = \frac{f'(x)}{f(x)}$$가 된다는 사실을 이용하면, $$ \left[\frac{\mathrm{d} \log W_1 }{\mathrm{d} E_1 } \right]_{E_1^*} = \left[ \frac{\mathrm{d} \log W_2 }{\mathrm{d} E_2 }\right]_{E_0 - E_1 ^*}$$라 쓸 수 있습니다.
$S=\log W$로 정의하면, 이 식은 $$ \left[\frac{\mathrm{d} S_1 }{\mathrm{d} E_1 }
\right]_{E_1^*} = \left[ \frac{\mathrm{d} S_2 }{\mathrm{d} E_2 }\right]_{E_0 - E_1 ^*}$$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frac{1}{T}=\frac{\mathrm{d} S}{\mathrm{d} E}$$로 정의하면, 위의 식은 $$\frac{1}{T_1} = \frac{1}{T_2}$$ 와 같습니다.
요컨대, 열평형에서 온도가 같다는 말과 에너지 변화에 따른 엔트로피 변화(즉 미시상태의 수 변화)가 같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온도는 곧 에너지 변화에 따른 엔트로피 변화(즉 미시상태의 수 변화)가 됩니다.
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상황이 더 분명해집니다.

[그림 출처: https://ebrary.net/190146/mathematics/entropy_energy_graphs ]
온도를 가령 $$G=\frac{\mathrm{d} S}{\mathrm{d} E}$$와 같이 정의하지 않고 그 역수로 정의하는 이유는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에너지의 함수로서 엔트로피는 위로 볼록한(아래로 오목한) 함수(concave)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면에서 보면 누구나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한겨울 날씨와 무더운 여름은 다르고, 차가운 물과 뜨거운 수증기도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냉온감각은 피부에 분포한 냉점과 온점의 활성화로 감지되며 실상 감각 오차가 꽤 큽니다. 온도계를 만드는 과정도 역사적으로 보면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온도라는 개념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온도를 유럽의 언어로는 temperature (영어), température (프랑스어), Temperatur (독일어), temperatura (이탈리아어) 등으로 적는데, 모두 라틴어 템페라투라(temperātūra)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유사한 단어 템페라멘툼(temperāmentum)과 18세기까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단어 모두 고대 그리스-로마의 의학(자연철학)에서 중심 이론이었던 4체액설(humor theory)에서 피, 점액, 담즙, 흑담즙의 비율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네 체액은 네 원소와 대응하며, 각각 네 가지 성질 즉 "냉온건습" 중 두 가지씩 가지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피는 뜨겁고 습하고, 담즙은 뜨겁고 건조하며, 점액(phlegm)은 차갑고 습하며, 흑담즙은 차갑고 건조한 것으로 상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체온이 높거나 낮은 것이 네 가지 체액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그에 따라 '기질', '성품', '성격'을 의미하는 템페라멘툼 또는 템페라투라가 체온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18세기말부터 두 단어의 의미가 갈라졌고, 템페라투라는 온도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참고: https://www.merriam-webster.com/wordplay/origin-of-temperament-and-temperature )
18세기에 접어들어 뜨거운과 차가움을 이해하기 위해 네 체액의 비율을 언급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칼로릭(熱素)이라 부르는 가상의 무게 없는 미묘한 유체의 양을 온도와 연결시켰습니다. 지금도 열량의 단위로 남아 있는 '칼로리'가 여기에서 왔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와서야 온도 또는 열이라는 것이 분자의 운동의 한 형태라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온도를 분자의 운동과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체분자운동론에서는 계산을 통해 $$\bar{E}_K = \frac{3}{2} k_B T$$라는 식을 유도했습니다. 왼쪽의 $\bar{E}_K$는 분자들의 평균운동에너지를 가리키며, 오른쪽의 $T$가 온도입니다. (상세한 것은 자연철학 세미나 게시판의 "온도가 평균운동에너지라는 말의 의미" 참조)
엔트로피를 특정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로 규정하고, 그 양이 에너지의 함수이며(즉 에너지에 따라 달라지면), 그 변화율이 온도라는 관념은 쉽지는 않지만 가장 적절한 온도의 이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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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하여 "열평형이거나 열평형이 아닌 두 물체의 접촉"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함수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엔트로피는 내부에너지, 부피, 분자 수의 함수"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엔트로피의 변화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먼저 계 전체의 부피 $V$가 달라지면 엔트로피도 변화합니다. 계가 일을 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계의 부피가 변하지 않더라도 내부에너지 $E$가 달라지면 엔트로피도 변합니다. 내부에너지를 $U$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끝으로 계에 담겨 있는 입자/분자의 수 $N$이 달라져도 엔트로피가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