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한 의견] 만유인력 vs 중력장
1. 지금까지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중력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질량으로 인한 시공간의 휘어짐 때문에 지구의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틀렸다면 고쳐주세요.) 그렇다면, 기존에 고전역학에서 사용하던 중력장이라는 개념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그저 시공간이 휘어진 정도를 의미하는걸까요? 이 개념이 공식에서는 g인 메트릭 텐서에 들어가있는건가요?
==>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단한 대답을 먼저 해보겠습니다.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이라고 이해하는 가장 쉬운 비유는 롤러코스터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공간상 멀리 있는 사과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지구 주변의 공간에 롤러코스터 궤적이 설치되어 있다고 상상합니다. 사과는 그 롤러코스터 궤적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 속도도 롤러코스터 궤적에서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사과이든 농구공이든 다이아몬드이든 그 운동은 똑같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등장하는 BBC 다큐멘터리 [Human Universe]의 에피소드에서 아주 가벼운 깃털과 무거운 볼링공이 말 그대로 똑같은 속도록 낙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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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간이 그렇게 구조화된 것이기 때문에 깃털과 볼링공의 운동이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공간의 휘어진 정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이것을 $\mathbf{g}$로 나타냅니다. 수학적으로는 복잡해지지만 $g_{\mu\nu}$(쥐뮤뉴)라는 함수로 나타냅니다. 이 함수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따르는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는가를 말해 줍니다. 더 상세한 것은 "일반상대성이론 입문 1 (거리함수 텐서)"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질문의 내용이 대체로 다 맞습니다. 다만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은 "기존에 고전역학에서 사용하던 중력장이란 개념"입니다.
용어를 명확하게 하면 혼동을 피하기 위해 '중력(重力)'은 '만유인력'으로서 모든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서로 끌어당긴다는 관념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고, '중력장(重力場)'은 낙하를 비롯한 운동이 일어나는 공간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매질 비슷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는 게 편리하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현상은 그냥 '중력현상'이라고 통칭해도 될 것 같습니다.
뉴턴은 중력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그런 개념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어디에도 $F=\frac{GMm}{r^2}$에 해당하는 서술이나 수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개념과 수식을 처음 쓴 것은 헨리 캐븐디시라 할 수 있는데 따로 저작을 남긴 것은 아니고, 19세기 초의 프랑스 수학자 시메옹 드니 푸와송(Siméon Denis Poisson 1781-1840)은 [역학논고 Traité de mécanique](1811)에서 그런 연구의 초기 작업을 했습니다.
1811년에 두 권으로 출간된 [역학논고]는 중력을 퍼텐셜 함수라는 수학적 장치를 이용하여 서술합니다. 뉴턴-푸와송 이론에서는 중력이 위치의 함수로 주어집니다. 보통 $V (x, y, z)$와 같이 나타내고, 이를 중력 퍼텐셜 함수라 부릅니다. 수학적으로 더 정확하게 서술하면 $$\nabla^2 V = \frac{\partial^2 V}{\partial x^2}+\frac{\partial^2 V}{\partial y^2}+\frac{\partial^2 V}{\partial z^2}=-4\pi G \rho (x, y, z)$$라는 방정식의 풀이가 되는 $V(x, y, z)$가 중력을 서술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rho (x, y, z)$는 물질의 분포를 나타내는 함수로서, 단위부피당 질량 즉 밀도를 나타내는 함수이고, '로'라고 읽습니다.
일견 이런 함수는 위치에 따라 중력의 세기나 방향을 말해 주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중력장'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중력 퍼텐셜함수 $V(x, y, z)$는 더 파고들어가 보면 '마당(장, 場)'이 아닙니다. 19세기에 전기장과 자기장 개념이 마이클 패러데이, 윌리엄 톰슨,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등을 통해 정립되었는데, 전기장이나 자기장은 정말 공간 속에 매질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로 여겨진 반면, 중력 퍼텐셜함수는 그런 실체가 아니라 단지 수학적 서술을 위한 중간단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푸와송은 오히려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F=\frac{GMm}{r^2}$라는 소위 만유인력의 공식을 처음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푸와송은 물리학자라기보다는 수학자에 가까웠는데, $V (x, y, z)$라는 함수의 자연철학적 의미를 더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역학논고 Traité de mécanique 제2부 제7장
일반상대성이론이 정립되기 전에는 중력을 이런 함수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관련된 참고문헌을 더 찾아보고 당시 상황을 확인해 본 뒤 수정하거나 덧붙이겠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일반상대성이론을 담은 논문에서 푸와송의 이론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여기저기에서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푸와송의 이론이 재조명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사용하는 $g_{\mu\nu}$라는 함수 10개가 매우 역동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 함수는 중력의 세기나 방향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간과 공간의 거리와 방향과 구조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그 시간-공간의 거리와 방향과 구조를 통틀어 시공간의 휘어짐(곡률)이라 부릅니다. 그런 이유로 앞에서 롤러코스터 궤적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표현과 개념은 일반상대성이론의 특이한 접근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존에 고전역학에서 사용하던 중력장이란 개념"은 실상 없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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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기역학에 대하여 원격작용이론과 마당이론(장이론)이 경쟁하는 두 연구프로그램이었음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철학으로 분석하고 있는 논문을 찾았습니다. 1982년에 영국 런던정경대에 제출된 학위논문입니다. 여러 모로 흥미로운 연구입니다.
Haworth Martin Harrop Frické (1982) Two Rival Programmes in 19th Century Classical Electrodynamics: Action-At-A-Distance versus Field Theories. Thesis submitted to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첨부파일 : Two-Rival-Programmes-in-19th-Century-Classical-Electrodynamics-Haworth-Martin-Harrop-Fricke-1982.pdf
비유클리드(non-Euclidean)이란 수식어는 대략 세 가지 경우에 사용됩니다. 우선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9세기 이전까지 확고하게 믿어왔던 유클리드 기하학(Euclidean geometry)에 대비하여 새롭게 나타난 기하학이란 뜻입니다. 로바체프스키, 보여이, 가우스, 리만 등이 새롭게 제안한 기하학으로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성립하는가 여부입니다.
참조: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1224
비유클리드 공간(non-Euclidean space)이란 표현도 드물게 나오는데, 여기에서 '공간'은 수학적인 집합이란 의미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닌 기하학에서 정의된 공간입니다. 유클리드 공간(Euclidean space)는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된 개념이지만, 비유클리드 공간이라는 것은 그냥 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기하학적 또는 대수학적 공간이란 점에서 별로 유용하지 않습니다. 19세기 이전에는 물리적 공간은 당연히 유클리드 공간이라고 믿었습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했지만, 물리적 공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수학적인 이론으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바로 알버트 아인슈타인입니다. 순전히 사변적인 수학이론에 속했던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현실의 공간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니까요. 일반상대성이론의 놀라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상대성이론에서는 비유클리드 시공간(non-Euclidean spacetime)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묶어 '시공간(spacetime)'으로 보아야 한다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4차원 시공간을 민코프스키 시공간(Minkowski spacetime)이라 부르는데, 이 시공간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일부분 적용됩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r^2 = x^2 + y^2 + z^2$이 불변입니다. 이것을 흔히 피타고라스 정리가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또 이렇게 불변인 양을 '불변 이차형식'이라 부릅니다. 이와 달리 민코프스키 기하학은 $s^2 = - t^2 + x^2 + y^2 + z^2$이 불변입니다. $t^2$ 앞에 마이너스 부호가 있어서, 민코프스키 시공간은 유사-유클리드(peudo-Euclidean)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t \rightarrow \tau = i t $와 같이 복소수를 도입하면 $s^2 = \tau^2 + x^2 + y^2 + z^2$이 불변이므로, 명실 공히 유클리드 공간이 됩니다. 대신 4차원이죠.
요컨대, 불변 이차형식에 마이너스가 포함되면 '유사-유클리드 시공간'이라 부르고, 복소수 좌표를 도입하여 불변 이차형식이 모두 플러스가 되면 '유클리드 시공간'이 됩니다. 즉 민코프스키 시공간은 좌표를 표현하는 선택에 따라 '유사-유클리드 시공간'이 될 수도 있고 '유클리드 시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유클리드 시공간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해야 하는 시공간을 가리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4차원 시공간을 사용하지만, 차원의 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가령 칼루차-클라인 이론에서는 시공간이 5차원이 되고, 초끈 이론에서는 26차원이나 10차원이 됩니다. 그러나 유클리드 공간 또는 유클리드 시공간으로서의 성질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이 4차원을 이루며, 그 시공간은 민코프스키 시공간이며,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이 4차원을 이루되 그 시공간은 민코프스키 시공간뿐 아니라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서술되는 시공간이 모두 허용된다."라는 표현은 정확합니다.
동시에 시공간만 따지고 보면 아무 시공간이나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믿음으로는 물리적 시공간이 되려면 그 시공간에서 정의된 거리함수 텐서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풀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풀이 중 대표적인 것인 슈바르츠쉴트 풀이, FLRW(프리드만-르메트르-로버트슨-워커) 풀이, 커 풀이, 바일 풀이, 괴델 풀이 같은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풀이는 꽤 많습니다. 아래의 책에는 민코프스키 시공간(Minkowski space-time), 드시테르 시공간(de Sitter space-time), 반 드시테르 시공간(Anti-de Sitter space-time), 프리드만-르메트르-로버트슨 워커 시공간(Friedmann–Lemaître–Robertson–Walker space-times), 슈바르츠쉴트 시공간(Schwarzschild space-time), 커-뉴먼 시공간(Kerr-Newman space-time), Taub–NUT space-time 등 여러 시공간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Jerry B. Griffiths, Jiří Podolský (2009) Exact Space-Times in Einstein's General Relativ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a.co/d/8rbvjie)
첨부파일 : Exact-Space-Times-in-Einsteins-General-Relativity-Jerry-B.-Griffiths-Jiri-Podolsky.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