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한 의견] 수학의 신비
"세 번째 물음은 수학의 신비에 관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좌표평면 위에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c는 그냥 상수에 불과하므로 1이어도 좋았을 것이라면, 휴먼 스케일이 아니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질량이 0인 입자들의 스케일에서는 4차원이 허수축이라는 성질을 가진, 그래서 공간1, 시간 1의 2차원의 구성요소라고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치 김재영샘께서 추천하신 해외 동영상에서의 space time table의 격자형 모듈의 변형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미시차원에서 성립하고 휴먼 스케일에서 확인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성 원리도 미시차원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가능하고 우리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상대성 이론도 양자역학도 모두 입자수준의 아주 미시적인 차원에서 성립하는 원리가 아닌가 싶고 그렇다면 진공과 원자밖에 없다는 고대 원자론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모두 무지한 저의 억측일뿐이지만 마저 말하자면, 그런데 가우스가 허수를 발견하고 민코프스키가 4차원을 논하고 이후 수학적으로 시간축을 허수축에 적용하여 그것이 완벽하게 성립한 것은 마치 양자역학이 수학적으로 증명은 되나 직관적으로는 설명은 안 되는 것처럼 휴먼 스케일에서는 이해가 어렵더라도 무언가 자연이, 혹은 우주/세계가 수학적으로 코드화되었다는 입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지털 정보도, 유전자도, 엔트로피도 모두 입자의 배열의 문제라면, 그 배열을 정하는 것은 수학적 코드인 건 아닐까하는 추측입니다. 완전 수포자의 추측입니다만. 수학이란 대체 왜 이토록 신비로운 것인지요?"
==> 저는 물리철학과 물리학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수학철학(수리철학)과 수학사도 함께 공부해야 했습니다. 수학철학과 수학사에서는 수학과 수학적 사고의 연원에 대해 많은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입장은 대략 수학을 다른 문화활동이나 언어와 유사하게 인류사회의 산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수학이 어딘가에서 갑자기 툭 떨어져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믿음입니다. 흔히 기하학(geometry)이라 부르는 것은 중국에서 geometia를 음차하면서 기하(幾何)가 되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마테로 리치가 서광계와 함께 에우클레이데스의 그 고전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기하원본(幾何原本)'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종종 구장산술에서 "그 밭은 얼마인가?(為田幾何)"라는 구절이 있어서 따왔다고도 합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은 매우 추상적이고 이론적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홍수가 지나간 뒤 밭의 구획을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흔히 하고 있고, 여러 면에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미적분학도 다름 아니라 라이프니츠, 뉴턴, 오일러 등이 운동을 서술하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물리학적인 문제에서 만든 것입니다. 복소수나 사원수처럼 대단히 추상적으로 여겨지는 개념도 알고 보면 현실의 문제와 어떻게든 연결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외진 위네르(위그너)의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1960년대의 글이라 지금 보면 낡은 느낌도 많이 듭니다.
질문 중에 상대성이론은 속도가 아주 빠른 영역에서, 그리고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미시적 영역에서만 적용될 뿐 일상에서는 작동하지 않거나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오래된 상식(사실은 편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930년대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잘 통했습니다. 일상에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작동하는 사례를 만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영향 속에 있습니다.
양자역학이 도대체 어디에 작동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요즘 사람들의 손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정확하게는 사람들의 손을 장악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스마트폰은 철저하게 양자역학의 산물입니다. 그 기본작동의 바탕이 되는 반도체는 양자역학이 등장하고 나서야 개념이 정립되고 트랜지스터 같은 희한한 소자가 개발되었습니다. 트랜지스터가 집적회로(IC)로, 다시 대규모집적회로(LSI), VLSI 등등으로 발전한 이야기야 워낙 유명하고 특히 한국의 경제에서 가령 삼성반도체 같은 회사가 주축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일상 속에서 양자역학을 확인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도 이전에는 LCD (액정: Liquid Crystal Display)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양자역학을 직접 응용한 유기발광장치(Organic Light Emitting Device, OLED) 또는 AMOLED (Active Matrix LED), 나아가 양자점(quantum dot)을 원용한 양자점(QD) 디스플레이가 널리 사용됩니다.
요즘은 표준이 되어 버린 터치스크린도 따지고 보면 양자역학의 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전화기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마이크로파 전파통신도 고전역학에서는 실현하기 힘든 기술입니다. 여하간 현대사회의 과학기술 중 상당수는 양자역학 없이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양자역학이 아주 작은 미시세계에서만 작동한다는 담론은 부적절한 면이 많습니다. 결국 거시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 미시적인 것에 대한 올바른 접근의 산물이니까요.
상대성이론은 이보다 약해 보일지 모릅니다만, 스마트폰에 보이는 시계를 볼 때면 일반상대성이론의 의미를 항상 되새기게 됩니다. 자동차에서 이제 필수품이 된 네비게이션이 사용하는 GPS는 일반상대성이론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있는 GPS는 물론이고, 스마트폰에 표시되는 시계를 기지국에서 전자기파를 받아 표시하기까지 상대성이론을 사용한 보정이 매순간 들어갑니다. 1905년에 기차 안과 기차역을 비교하면서 동시의 상대성을 이야기했던 아인슈타인이 실상 베른 특허국에서 바로 그 시계 맞추기와 관련된 특허안들을 심사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시계 맞추기가 추상적인 이론물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지극히 실용적인 현실의 기술로 정립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시계 맞추기와 관련된 상세하고 나름 재미있는 책이 피터 갤리슨의 [아인슈타인의 시계와 푸랭카레의 지도: 시간의 제국](동아시아)입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물리학과 철학과 기술과 문화와 국제정치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저서입니다.)
질문 중에 "양자역학이 수학적으로 증명은 되나 직관적으로는 설명은 안 되는 것처럼"이란 표현을 하셨는데, 저는 이 말이 지금 함께 공부하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직관(直觀)'이란 말은 영어로 intution이라 쓰는데 라틴어 '인투이티오(intuitio)'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매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인식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까요? 25년쯤 전에 나온 영화인데 [매트릭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목 뒤에 무슨 슬롯 같은 게 있어서 거기에 뭔가를 연결하면 갑자기 헬기조종도 할 수 있게 되고 모든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요즘도 트랜스휴먼주의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과 정신을 업로드/다운로드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저는 생각/정신/사유/기억의 업로드/다운로드가 다름 아니라 글 특히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문명은 바로 글과 책의 문명이며, 기억의 외화는 다름 아니라 글과 책입니다. 독일의 매체철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축음기, 영화, 타자기]나 [기록시스템]이나 [광학적 매체] 등을 통해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는 중요한 통찰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매개 없이 어떤 인식/인지/지각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상식은 오래된 편견이 쌓인 것이라는 흔한 얘기를 차치하더라도, 직관은 실상 무매개적인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직관이란 말을 넓게 쓰면, 명시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랜 경험과 통찰을 통해 여하간 어떻게 된 것인지 재빨리 파악하는 능력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직관이나 상식은 분명히 의미를 지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시간, 공간, 물질 등에 대한 직관이나 상식은 조금 과장하면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의 수준에서 그다지 멀리 벗어나 있지 않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20세기 동안 정립된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생명과 의식과 삶에 대해 더 올바르고 더 적절하고 더 필요한 관점을 찾아내자는 기획입니다. 양자역학이라는 '수학'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지만 직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에는 그런 수학이나 논리 없이 세계를 알아낼 수 있는 어떤 직관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 직관이 올바르고 적절하고 필요하다는 생각도 살짝 깃들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지난 몇백년 동안의 과학의 성과를 기술적 응용의 측면이나 전문가들의 메시아적 선언이나 천재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구경꾼으로서 바라보긴 하지만, 정작 과학적 (자연철학적) 탐구를 액면 그대로 또는 그 기본정신을 수용하여, 과학이 말해 주는 올바르고 적절하고 필요한 직관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현 상황을 우리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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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양자얽힘을 이용한 양자암호(양자 키 분배)는 이미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계에서 양자얽힘을 유지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Lim, C.CW., Wang, C. Long-distance quantum key distribution gets real. Nat. Photon. 15, 554–556 (2021). https://doi.org/10.1038/s41566-021-00848-1
양자전송도 143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성공했습니다. 10여년 전의 일입니다.
Ma, XS., Herbst, T., Scheidl, T. et al. Quantum teleportation over 143 kilometres using active feed-forward. Nature 489, 269–273 (2012). https://doi.org/10.1038/nature11472
그런 점에서 상대성 이론도 양자역학도 모두 입자수준의 아주 미시적인 차원에서 성립하는 원리가 아니라, 거대 규모의 거시적 차원에서도 성립하는 원리입니다.
따로 또 꼼꼼하게 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질문은 소위 수포자로서 수학이 지닌 자연에 대한 설명력에 대한 경이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가우스가 허수를 발견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그 한참 후에 사차원 시공간을 시간을 허수축에 매핑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거든요. 그리고 C라는 상수가 척도를 달리하면 1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직관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아마도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이 자료실 어딘가에서 언급해주신 동영상에서 본 시간 공간 두개축으로 이루어진 격자판의 변형이 시각적으로 바로 이해가능하게 해준 것이 너무 신기해서 직관적이라고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이 상수 C를 1로 하는 척도만큼 거대하다면 시공 4차원,내지 시공 2차원이 그 격자틀처럼 바로 이해되는 관계로 파익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수학을 모르다 보니 자연스레 수학에 대한 신비감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를 고민한 수학자,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들을 챙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케일의 문제 역시 양자와 같은 미시세계나 우주와 같은 거시세계 모두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차이여서 역시 거의 신비의 영역입니다. 이래저래 신비감에 쉬이 취해버릴 상황에서 선생님의 자상한 안내가 항상 저를 제대로 중심잡게 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