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회전대칭과 상대성 원리
지난 번 세미나에서 좌표축의 방향과 관련한 '상대성 원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슬라이드의 내용이 직관적이면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데카르트 좌표계라고도 부르는 직각좌표계가 도입되기 전 기하학에서 다루는 도형에는 따로 방향이 없었습니다. 중등과정에서 잠시 접할 수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보면 삼각형, 원, 정사면체 같은 것을 그리거나 이야기할 때 따로 방향을 고려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기하학에서 좌표계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특정 방향에 드리운 그림자로서 '좌표'라는 개념이 중요해졌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초록색으로 표시한 선분은 특정한 방향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선분을 다루기 위해 검은색 좌표계를 도입하면, A라고 표시한 점의 위치가 $(x, y)$와 같이 두 개의 숫자로 특정됩니다. 숫자가 두 개이므로 2차원이 됩니다. 그런데 동서남북으로 표현되는 평면의 방향을 빨간색 좌표계처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A라고 표시한 점의 위치가 $(x', y')$과 같이 다른 숫자로 특정됩니다.
1차원인 좌표축에 드리운 그림자만 생각하면 $x$와 $x'$, 그리고 $y$와 $y'$이 제각기여서 '상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차원에서 그 선분의 길이를 보면 $\sqrt{x^2 + y^2}=\sqrt{x'^2 + y'^2}$이 되어 오히려 '절대적'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OA 즉 원점 O와 자동차의 위치 A를 잇는 선분의 길이가 어느 좌표계(빨간색 좌표계/검은색 좌표계)에서 보더라도 같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절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대성'은 사실 흔히 말하는 상대성원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이 등장하기 전 이미 뉴턴-오일러-라그랑주-해밀턴으로 이어지는 계보 속에서 좌표축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해서 역학 법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습니다. 이것을 대개 '회전대칭성(rotational symmetry)'이라 부릅니다. 대칭이라는 개념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거울을 가운데 놓고 오른쪽과 왼쪽을 비교하는 상황입니다. 칸트도 오른손과 왼손의 문제를 매우 정교하고 상세하게 논의한 바 있습니다. 그보다는 덜 직관적이지만, 가령 정삼각형을 생각하면, 120도씩 회전하더라도 원래 모양이 그대로 나옵니다. 정사각형이라면 90도씩 회전하는 것에 대한 대칭성이 있습니다. 원이라면 아무 각도로 회전시켜도 원래 모습이 유지됩니다.
좌표축의 방향을 어떻게 선택하더라도 이를 서술하는 물리법칙(더 정확히는 역학 법칙)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고전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이자 출발점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좌표축의 원점을 어떻게 선택하더라도 이를 서술하는 역학법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각각 공간의 등방성(等方性, isotropy)과 균질성(均質性, homogeneity)이라 부릅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5장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지는 우주와 물질의 문제에서도 현대 우주론의 표준모형인 빅뱅모형도 그 바탕에 등방적이고 균질한 시공간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공간이 좌표축의 방향과 좌표축의 원점을 선택할 때 어떤 것도 더 선호되거나 우선되지 않는다는 것은 고전역학의 형식체계를 만들 때 근본적입니다. 흔히 공간이 방향과 원점의 위치에 대해 민주적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또 이것을 회전대칭성(rotational symmetry)과 평행이동대칭성(translational symmetry)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공간에서 좌표축의 방향과 좌표축의 원점의 선택이 영향을 주지 않도록 물리량의 수학적 표현을 말하는 언어가 바로 벡터(vector)입니다.
상대성이론을 다룰 때에는 위에서 말한 좌표축의 방향과 원점의 위치에 덧붙여 멈춰 있는 좌표계와 일정한 속력으로 반듯하게 움직이는 좌표계의 관계를 말해야 합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부스트(boost)'라고 부릅니다. 배 안과 배 밖, 기차 안과 기차 밖, 우주선 안과 우주선 밖, 우주선과 지구 이런 식으로 여러 예시가 등장합니다.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갈릴레오는 배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당신이 어떤 큰 배의 선실에 친구와 함께 있다고 해 봅시다. 선실에는 파리와 나비가 날아다니고,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도 있고, 병이 하나 매달려 있고 그 밑에 큰 그릇이 있는데, 병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고 해 봅시다. 배가 멈춰 있을 때에 주의 깊게 살펴보면, 파리나 나비는 어느 방향이나 비슷한 속도로 날아다니고,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한가롭게 헤엄칩니다. 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정확히 밑에 있는 그릇으로 떨어집니다. 친구한테 물건을 던진다고 할 때, 이쪽 방향으로 던지는 것과 그 반대 방향으로 던지는 것 사이에 차이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자, 이제 배가 일정한 속도로 곧바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 봅시다.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음을 알게 될 겁니다. 심지어 당신은 지금 움직이고 있는 배 안에 있는지 아니면 멈춰 있는 배 안에 있는지도 구별하기 힘들 겁니다.(Galileo, 1632)"
아인슈타인은 기차 안과 역을 비교했고, 요즘 물리학 교과서에서 상대성이론을 처음 배울 때 나오는 것은 우주선과 지구입니다. 여하간 멈춰 있는 좌표계와 일정하게 움직이는 좌표계를 비교할 때, 물리법칙(더 정확하게는 역학 법칙)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세기말의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역학과 달리 전자기학 즉 전기와 자기와 빛에 관련된 법칙은 배 안(기차 안)과 배 밖(기차역)을 구별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렌츠는 궁여지책으로 전자기학의 법칙이 달라지지 않는 새로운 좌표변환을 고안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로렌츠 변환입니다.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갈릴레오 변환 | 로렌츠 변환 | |
역학 법칙 | 형식불변 | 불변/공변 대칭성 없음 |
전자기학 법칙 | 불변/공변 대칭성 없음 | 형식불변 |
역학 법칙은 갈릴레오 변환에 대해 불변이지만 로렌츠 변환과 충돌하고, 전자기학 법칙은 갈릴레오 변환과 충돌하지만 로렌츠 변환에 대해 불변입니다. 난처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 갈릴레오 변환뿐 아니라 뉴턴의 역학 법칙이 잘못된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여하간 이런 이유로 상대성이론을 다룰 때에는 로렌츠 변환이 중심 개념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렌츠 변환 대신 회전 변환을 먼저 생각하고 로렌츠 변환이 다름 아니라 시간-공간에 대한 일종의 가상적 회전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선택한 경로입니다.
위의 그림과 비교하면 $X-Y$ 2차원 공간에서의 회전인가, 아니면 $X-T$ 2차원 시공간에서의 회전인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회전대칭성과 평행이동대칭성에 국한된 벡터를 3-벡터라 하고, 이를 확장하여 부스트 변환까지 고려한 것을 4-벡터라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3-벡터를 다루되 부스트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갈릴레오 변환입니다. 갈릴레오 변환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같은 부스트에 대해 로렌츠 변환은 시간과 공간이 섞이게 됩니다. 로렌츠 변환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4차원 시공간 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회전대청성과 평행이동대칭성과 로렌츠 대칭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벡터를 4-벡터라 부릅니다.
더 상세한 것은 "3-벡터와 4-벡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더 테크니컬하지만 잘 요약된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본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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