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헤겔과 뉴턴주의
자연철학이라는 말은 실상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고대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자연에 대해 탐구하고 여러 사변적인 생각을 제시한 것도 대개 자연철학(영어로 natural philosophy)이라 부르며, 중세유럽 대학에서 세 가지 전공(의학, 법학, 신학)으로 가기 전 공통으로 배우고 가르쳤던 교양과목 중 4과(Quadrivium) 즉 천문학, 산술학, 화성학, 기하학의 내용도 대체로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됩니다.
저명한 과학사학자 에드워드 그랜트가 쓴 [자연철학의 역사: 고대세계부터 19세기까지]도 흔히 '과학의 역사'라고 불렀을 내용을 '자연철학의 역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Edward Grant (2007) A History of Natural Philosophy: From the Ancient World to the Nine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a.co/d/847qPnM) (목차 링크)
그런데 특히 주목할만한 흐름은 18세기말부터 19세기 내내 널리 확장된 독일어권 낭만주의 자연철학입니다. 이를 영어로 natural philosphy라 하지 않고, 그냥 독일어를 이탤릭체로 써서 Naturphilosophie(나투어필로조피)라 부르면서 특별한 것으로 논의합니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 1775-1854)이지만, 동시대에 살았던 게오르크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도 자연철학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다만, 헤겔은 말 그대로 모든 철학을 섭렵하고 체계를 세운 거대한 철학자이니만큼 자연철학에 대한 논의도 집중적인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헤겔이 충돌과 낙하에 대해 다룬 내용이 뉴턴의 자연철학(요즘 말로 물리학)과 상충하는 면이 있어서, 헤겔이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도 많았습니다.
1993년에 나온 논문집 [헤겔과 뉴턴주의]는 이러한 항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매우 유용한 논문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헤겔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정확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헤겔이 비판했던 것은 뉴턴이라기보다는 뉴턴주의자들, 즉 뉴턴의 자연철학을 단순화시키고 논의를 축소한 18세기의 자연철학자들이라는 것이 이 논문집의 기본적인 접근입니다.
- Petry, M.J. eds. (1993) Hegel and Newtonianism. Archives Internationales D’Histoire Des Idées / International Archives of the History of Ideas, vol 136. Springer.
https://doi.org/10.1007/978-94-011-1662-6
이 논문집의 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용을 구경하기 위해 목차를 옮겨 놓습니다.
1부 형이상학, 2부 수학, 3부 역학, 4부 천체역학; 5부 광학; 6부 화학, 7부 서지학으로 이루어진 44편의 논문이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첨부파일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부에서는 구체적인 자연철학보다는 존재론적인 주장들과 자연과학적 접근 사이의 관계를 주로 다룹니다. 특히 헤겔의 고전역학 해석이라든지 헤겔의 자연철학에 깔려 있는 논리 등을 해명합니다. 2부는 미적분학의 문제에 대한 헤겔의 접근을 뉴턴주의자, 특히 영국의 뉴턴주의자들과 비교하여 다룹니다. 무한의 문제에 대한 헤겔의 논의가 유명한데, 이것이 미적분학과 직접 연결된다는 것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3부와 4부는 본격적으로 물리학의 문제를 다룹니다. 뉴턴과 헤겔에게서 관성질량과 중력질량 개념이 어떻게 논의되었는지, 헤겔이 뉴턴역학에서 다루는 흔들이(진자)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헤겔이 운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또 헤겔이 낙하운동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등이 다루어집니다. 나아가 18세기의 중력 개념을 비롯하여 헤겔이 보편중력(만유인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었는지 논의됩니다. 5부에서는 빛에 대한 뉴턴의 논의를 괴테의 색채론과 연결시켜 헤겔의 빛에 대한 이해를 다룹니다.
6부는 화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실상 뉴턴주의에서 드러나는 원자론에 대한 논의라서 물리학에 속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화학분야에서 거의 사라진 듯 보이지만, 18세기에 널리 퍼졌던 '화학적 친화성'이란 개념이 뉴턴주의자들과 헤겔에게서 어떻게 논의되었는지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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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관련하여 읽어볼만한 글은 18. "관성질량과 중력질량: 뉴턴, 헤겔, 현대물리학", 19. "헤겔에게서 질량의 문제"일 것입니다. 또 21. "운동의 분류: 진자에 대한 헤겔의 논의"는 20. "뉴턴 역학의 진자"와 대비하여 읽어볼만합니다. 저는 헤겔을 잘 모르지만, 이 논문집은 읽기가 편했습니다.
헤겔이 다루고 있는 운동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충돌, 진자(흔들이), 낙하 이 중 뒤의 두 가지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도 상세하게 다루어집니다. 실상 여러 가지 운동의 한 예라기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25. "보편중력에 대한 헤겔의 논의"는 장현광과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차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글입니다.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