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어떤 책인지 간략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2기 세미나 때 에세이 계획서로 쓴 것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처음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겠고 코멘트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쑥쓰럽지만 공유합니다.
자연철학이란 무엇인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2019, 추수밭)는 “자연철학은 한마디로 자연에 대한 합리적인 그리고 포괄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면서 시작합니다. 장회익선생님이 이 책에서 추구하는 자연철학은 생명의 역사적으로는 지구 탄생 시점인 45억 년, 공간적으로는 우주 전체, 시간적으로는 빅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규모의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그리고 포괄적인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우주라고 생각하는 시공간 규모 일반에 적용되는 ‘우주 보편’ 원리를 구축하는 것이 ‘장회익의 자연철학’이 목적하는 바이고, 이 시도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주 보편’ 원리란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우주 전체의 시공간까지 확장된 ‘자연의 기본 원리’입니다.
[표 1] 각 시대의 시간, 공간 규모와 앎의 특징
시기 | 시대 | 공간 | 앎이란 무엇인가 | 앎의 주체 | 존재론 | 인식론 | |
장현광 | 17세기 | 동아시아 | 천지만물의 이 | 나 | |||
데카르트 스피노자 | 17세기 | 기계론 | 유럽 | 나는 어떻게 아는가 기계,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 나의 앎 확실한 앎 | ||
칸트 | 18-19세기 | 고전역학 (뉴턴역학) 계몽주의 | 세계 지구 | 인간은 어떻게 아는가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 인간의 앎 올바른 앎 | ||
아인슈타인 장회익 | 20-21세기 |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 우주 | 생명은 어떻게 아는가 생명 아닌 것과 어떻게 다른가 | 생명의 앎 온전한 앎 | 일원이측면론 | 새자연철학 |
모든 자연철학은 해당 시대인들이 ‘세계’라고 여기는 규모의 공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를 추구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표1). 데카르트, 뉴턴과 스피노자의 시대, 칸트의 시대, 아인슈타인의 시대 그리고 장회익의 시대 각각 당시에 ‘세계’라고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이라고 하는 기준이 적용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과 규모가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각각의 새로운 자연철학이 등장한 시기가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모두 시간적, 공간적으로 새로운 지평이 열렸을 때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대되거나 변형되면서 기존에는 잘 작동하던 원리가 새로운 세계에서는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되고, 결국 새로운 보편 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자연의 기본 원리, 나아가 새로운 자연철학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장회익의 시대’는 상대성이론이 나온지 100년이 지난 시대, 양자역학을 이용한 기술이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시간적으로는 거의 빅뱅까지 올라가고 공간적으로는 기본입자에서 우주 전체로까지 확대되었지만 이에 걸맞는 ‘새 자연철학’은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 장회익의 지적입니다. 다시 말해 ‘장회익의 시대’, 즉 우리 시대의 ‘자연의 기본 원리’는 나왔으나 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합적인 새로운 자연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이와 같이 시공간 개념과 규모가 확대된 현대라는 시대의 자연철학이 부재한다는 것이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 이 문제가 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지 지적하고 이를 해결할 하나의 방법이자 모형으로서 ‘새 자연철학’을 제시합니다. 장회익이 제시하는 ‘새 자연철학’의 구조의 특징은 이와 같은 해결하고자 하는 당면 문제와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현대 학문의 문제는 그 영역들이 수많은 갈래로 분화된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우리 시대의 시공간이 과거와 미래, 미시 세계와 우주 전체로 확대된 것이 그 직접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세계는 너무나 크고 너무나 미시적이고 사회는 또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한 사람이 혹은 한 분과에서 모두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각조각 나누어 연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장회익은 분절되고 고도로 전문화된 수많은 학문 분과들로 세분되기 전의 학문 추구 과정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르고 그 자연철학을 통해 전체 학문의 모습을 한 눈에 담아보는 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장회익은 그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눠진 분과 학문들을 단순히 연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체 모습을 담아낼 “새로운 학문의 틀”을 마련해 제시하고 이 안에서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새로운 틀이 ‘심학십도’입니다. 심학 제1~10도 각각은 각 시대의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던, 즉 그 시대가 새롭게 찾아낸 자연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2도는 '뉴턴 시대의 새 자연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제3도는 '아인슈타인 시대의 새 자연철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말한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시대에 말한 '새 자연철학'을, 장회익의 시대에 장회익이 만든 '새 자연철학'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것입니다.
각각의 시대의 시공간적 세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 시대에 보편적인 자연의 기본 원리들은 그 ‘세계’의 한계 안에, 그리고 세분화된 분과 학문들은 그 학문의 영역 안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심학 제2~9도의 원형이 된 각 시대의 '새 자연철학'은 심학 1~10도를 거칠면서 재해석됩니다. 즉 '뉴턴 시대의 새 자연철학'과 '아인슈타인 시대의 새 자연철학'은 '장회익 시대의 새 자연철학'에 의해 재해석되어(온전한 앎을 향해 가는 뫼비우스의 띠를 거쳐) 이 책에 실린 심학 2~9도가 된 것입니다. 장현광선생의 앎의 구도(심학 제1도)와 주돈이의 태극도설도 뫼비우스의 띠를 거치면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 자체도 이미 뫼비우스 띠의 순환구조 속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자연철학 강의 공부모임>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2202
|
시인처럼 | 2024.09.12 | 0 | 2202 |
공지사항 |
3기 새 자연철학 세미나 상세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2257
|
시인처럼 | 2024.09.12 | 0 | 2257 |
공지사항 |
[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5)
neomay33
|
2023.04.20
|
추천 3
|
조회 11685
|
neomay33 | 2023.04.20 | 3 | 11685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
2022.12.22
|
추천 3
|
조회 14348
|
시인처럼 | 2022.12.22 | 3 | 14348 |
공지사항 |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
2022.03.07
|
추천 0
|
조회 11627
|
시인처럼 | 2022.03.07 | 0 | 11627 |
658 |
New [나의 질문] - 3장 질문들 (3)
ooj
|
19:49
|
추천 0
|
조회 16
|
ooj | 19:49 | 0 | 16 |
657 |
New [나의 질문] 김** - 시간의 속성에 허수적 성격이 있어 허수축이 시간축이 되었나? (1)
시인처럼
|
18:33
|
추천 0
|
조회 16
|
시인처럼 | 18:33 | 0 | 16 |
656 |
New [자료] 헤겔과 뉴턴주의
자연사랑
|
15:32
|
추천 2
|
조회 20
|
자연사랑 | 15:32 | 2 | 20 |
655 |
[자료] 18-19세기의 중력 개념 (3)
자연사랑
|
2024.11.10
|
추천 1
|
조회 36
|
자연사랑 | 2024.11.10 | 1 | 36 |
654 |
[자료] 뉴턴 방정식의 풀이
자연사랑
|
2024.11.05
|
추천 1
|
조회 59
|
자연사랑 | 2024.11.05 | 1 | 59 |
653 |
[자료] 뉴턴의 힘과 질량 개념
자연사랑
|
2024.11.05
|
추천 1
|
조회 46
|
자연사랑 | 2024.11.05 | 1 | 46 |
652 |
고전역학 수식풀이 (낙하운동, 용수철운동, 포물선운동) (8)
neomay33
|
2024.11.05
|
추천 0
|
조회 61
|
neomay33 | 2024.11.05 | 0 | 61 |
651 |
[나의 질문] 김** - 2장 2 - 함께 이야기 나눌 만한 나의 질문 (5)
시인처럼
|
2024.11.04
|
추천 0
|
조회 48
|
시인처럼 | 2024.11.04 | 0 | 48 |
650 |
[질문과 의견] 뉴턴의 보편중력 개념은 잘못된 형이상학 (3)
자연사랑
|
2024.10.31
|
추천 1
|
조회 74
|
자연사랑 | 2024.10.31 | 1 | 74 |
649 |
[참고자료] 데카르트 vs 뉴턴
자연사랑
|
2024.10.29
|
추천 2
|
조회 63
|
자연사랑 | 2024.10.29 | 2 | 63 |
매우 흥미로운 접근입니다. 특히 [표1]에 정리해 두신 시대정신의 흐름이 일목요연합니다.
질문이 생깁니다. 장현광(1554-1637)과 데카르트(1596-1650)는 동시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칸을 나누어 분류하신 이유는 서로 교류가 없었거나 문제의식이 달랐기 때문일까요?
또 스피노자(1632-1677)는 물질과 정신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에서 일원이측면론을 처음 정리한 철학자로 공인되어 있는데, 이원론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여겨지는 데카르트와 함께 두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제가 이해하는 스피노자는 반기계론적인 존재론을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스피노자가 비록 데카르트와 같은 시간 영역에서 지구상에 공존한 적이 있긴 하지만, 여러 면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이후의 자연철학을 주장하고 전개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그 둘을 같은 칸 안에 배치하신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네, 장현광과 데카르트는 일단 공간적인 인식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서 나눴고요. 말씀대로 스피노자와 데카르트를 한 칸에 함께 두면 안 되겠네요. 아직 잘 몰라서, 보시는 바와 같이 오른쪽 인식론, 존재론 칸을 거의 다 비워두었습니다.
그리고 공간이라는 항목은 해당 인물이 그 시대에 '인식하고 있는 공간적 규모'라는 의미로 사용했는데요. 그러면 '인식하고 있는 시간적 규모', 그러니까 우주의 시간적 역사 항목도 넣어야 하는데 아직 넣지 못했습니다. 이런 의미의 시간 항목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