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찾는 것인가, 합의하는 것인가? 그리고
안녕하세요? 어제 1장 세미나 시간에 제기되었던 <진리는 찾는 것인가?><진리는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들이 합의하는 것인가?>라는 화두와 관련해서 제 의견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의견이라, 귀한 시간을 뺏지는 않을지 조심스럽습니다. 양해를 미리 구합니다.
1. 인간의 앎/찾아냄을 기다리고 있는 절대적 진리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어리석은 것이겠지요. 따라서 그런 것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 "이것은 진리"라고 <합의하는 것>, 합의해 바탕해 <구성해내는 것>이 진리다, 라는 생각은 타당해 보입니다.
2. 하지만 진리는 동시에 합의주체인 인간들, 진리를 탐구하는 주체들에게 <드러나는Disclose>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동전을 긁어 배면에 가려진 숫자를 드러내는 것처럼, <긁는 행위>와 유사한 어떤 행위로써 그 행위가 있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는 행위가 곧 진리 탐구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진리를 <찾는다/캐낸다/좇는다/추구한다/찾아간다>는 언명도 그 나름의 (부분적)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인간들이,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 그리고 "이것은 진리야"라고 합의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리가 아닐까요?
3. 그러니까 1과 2의 두 언명이 충돌하고,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저의 미욱한 생각입니다.
4. 3을 좀 더 확장해보면, 진리와 진리 탐구 주체의 관계를 두고 볼 때, 여러 면모가 있다는 것이고, 그 여러 면모를 여러 서술어로 서술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온전한 앎, 온전한 알아차림, 진리의 체득[감득]이라는 것이 또 별도로 있고, 별도로 생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면 온실효과로 이어져 지구 전체의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고 생각해보시죠. 그리고 이 주장이 반론과 토론과 입증 등을 거쳐 마침내 하나의 확고한 진리로서 합의되었다고 생각해보자구요. 지구온난화에 관한 작은 진리입니다.
세상에 이런 진리만이 있다고 보면, 진리는 <찾는 것이냐/합의하는 것이냐>는 정도에서 논의를 그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진리만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74쪽 (1장)에서 우리는 <답동문>의 한 구절(동자가 개탄하는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인용해보겠습니다.
“대저 무궁한 것은 태극 속에 담기지 않을 수 없고, 태극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만나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크며 지극히 높고 지극히 깊은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 우리 한 치 마음만 한 게 있습니까?”
이것은 동자의 발언 내용이지만, 실은 <답동문>을 쓴 여헌 장현광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무궁한 것, 지극히 넓고 크고 높고 깊은 것, 그런 것을 정말로 인심人心이 담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마음에 그런 것이 담기는[이미 담겨 있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은 장회익 교수님의 ‘큰 나’라는 화두와도 이어집니다. (심지어 소강절/소옹은 심재신외, 라고까지 말했지요.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신체 밖에 있다, 는 말입니다. 이게 맞는 말일까요?)
그러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변으로서의 진리라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펼쳐볼 수 있습니다. “석유를 연소하면 연소할수록 지구온난화 가속화를 부추긴다”는 (이에 관한 진리를 추구했던 이들의) 주장이 있었는데, 진리로 합의되었다고 생각해보자구요.
그런데 설령 이런 (작은) 진리가 보편적으로 인정되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곧 석유를 연소하지 않는, 또는 덜 연소하는 행위 (탈탄소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의 이유는 (이산화탄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더해) “나의 석유 연소 행위”라는 자잘한 행위와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현상이 잘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석유를 연소하지 않거나 덜 연소하는 탈산소 행위로 나아가려면, “석유를 연소하면 연소할수록 지구온난화 가속화를 부추긴다”는 진리 외에 다른 진리도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와 (윤리적) 행동이라는 주제를 만나게 됩니다. 어떤 진리는 (윤리적) 행동을 촉발하는 진리이지만, 어떤 진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오늘날 요구되는 진리는 전자가 아닐까요? 그 진리를/그 진리까지 앎이 온전한 앎이 아닐까요?
6. 만일 그렇다면, 행동을 촉발하는 특정한 성격의 진리는 그저 <찾아내다>, <합의하다>라는 동사의 대상은 아닐 듯합니다. 그런 진리는 찾아내는/찾아낸 진리도, 합의하는/합의한 진리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진리라면, <감득된> 진리, <느껴진> 진리, <체득된> 진리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지요? (인간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느낌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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