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밤 13회 - 발췌] 소유란 무엇인가. '해제'.
[책밤 13회 - 발췌] 2022년 11월 15일
해제 : 프루동과 소유의 사상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1840. ⟪소유란 무엇인가⟫. 이용재 옮김. 2003. 아카넷. '해제'. pp.41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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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프루동과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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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1. 『소유란 무엇인가』(이하 『소유』)는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사회적으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7월왕정(1830~1848. July Revolution)의 한복판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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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왕정 : 1830년 7월 브루봉 왕정을 몰아낸 후 부르주아지는 선거권 확대, 상원 세습제 폐지, 삼색기 채택, 언론검열 폐지 등 자유주의적 개혁을 단행하여 공화제 수립에 대한 인민의 요구를 가라앉히려 했고, 루이 필립을 권좌에 앉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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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2. 7월왕정을 지배한 대브루주아지(금융가, 산업가, 재정가, 증권업자, 대상인 등)가 정치권력을 독점, 산업계를 지배. 대부르주아지는 제한선거제를 실시 … 1830년의 <헌장>(Charte)은 혁명 직후의 자유주의적 열망에 부응해 … 재산 기준을 완화하여 유권자의 수를 두배로 늘렸으나 유권자수는 겨우 20만 명 정도 늘었을 뿐이다. 노동자계급, 중소 부르주아지도 선거권에서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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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왕정은 재정적자 개선, 산업진흥을 위해 ... 파리의 대부르주아들(특히 증권업, 금융업)에게 의존. … 이들은 권력과 밀착하여 국채 시세 조작, 철도나 건설 등 공기업 독점으로 다수 소자본가들의 파산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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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3. 노동자들이 가난한 것은 방탕하고 나태한 생활습관 탓, 부르주아처럼 열심히 일하고 검약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지배 엘리트들의 생각. … <자유>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는 만큼 ...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박애주의 환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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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질서 공고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고 산업화의 폐단이 나타나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대두 : 생시몽(Saint-simon) 『산업자의 교리문답』(1823), 푸리에(Ch. Fourier) 『산업과 협동의 신세계』(1829). 이들의 주장은 프루동이 보기에는 소유 문제도 기존 부르주아 제도도 전혀 건드리지 않은 자기기만적인 미봉책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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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3-424. 프루동이 『소유』를 쓴 1840년은 … 부르주아 지배에 대한 저항이 움트기 시작한 시기. 파리 노동자들은 일자리 확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1840년 9월 대규모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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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프루동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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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5.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 1809년 1월 15일 프랑스 동남부 프랑슈-콩데(Franche-Condé) 지방의 중심지 브장송(Besançon) 출생. 브장송은 쥐라 산맥 끝자락에 위치. 산업화가 미치지 않은, 순박한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의 시골풍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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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5-426. 중등학교에 입학한 12살 때까지 집안 일을 도와 밭일, 가축 돌보기 …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은 프루동이 자신의 사상을 단련하는 묘판이 되었다.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가난한 자의 대의이다. …>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가난한 계급의 물질적, 도덕적, 지적 조건을 개선할 수단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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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6-427. 학자금이 없어 중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출판사에 취직. 8년 동안 출판사의 식자공, 교정원으로 일. (이 기간은) 젊은이의 삶에 대한 태도와 세계관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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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7-428. 1837년 초 프루동은 친구들과 함께 파산한 출판사 인수, <랑베르 출판사>(Lembert et Cie)를 차리고 그의 첫 저서 『일반문법 시론』을 익명으로 출판. 그러나 평생의 지적 동반자 팔로가 1836년 갑자기 사망, 출판사도 재정 적자로 문을 닫고, 친구인 랑베르마저 목숨을 끊어, 프루동은 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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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8. 새로운 길을 찾고자 프루동은 브장송 아카데미가 동향 출신의 고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쉬아르(Suard) 장학금 1,500프랑을 신청, 이를 위해 29살 나이에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치른다. 파리에 가서 유명 교수들의 강의를 들었으나 실망. 학위 취득을 포기하고 도서관에서 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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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9. 1839년 초, 브장송 아카데미는 장학 사업의 일환으로 「공공위생, 도덕, 가족관계 및 도시 문제와 관련한 일요 예배의 유용성에 대하여」라는 논문 현상 공모. 프루동은 이에 응모하여 동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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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9-430. 프루동은 『일요 예배의 유용성에 대하여』에서 <생존권은 모두에게 속한다. 노동은 생존을 위한 조건이자 수단이다. 생계를 강탈하는 것, 노동을 강탈하는 일은 범죄이다>라고 쓰고 있다. 소유의 문제가 그의 사상의 한복판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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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0. 프루동은 … 소유에 대한 연구를 계속 밀고 나갔다. 브장송 아카데미의 도서관에서 <정치경제학> 카탈로그에 분류된 책을 모두 섭렵. 1839년 11월에서 1840년 2월 사이에 무려 25권에 달하는 책을 독파, 페이지마다 논평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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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0-431. 1840년 초 브장송 아카데미에 연구논문을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 이것이 『소유』. <소유란 곧 도둑질이다>라는 도발적인 언사로 시작하는 『소유』는 곧 큰 물의를 빚었다. … 아카데미는 긴급 심의회를 열고 아카데미 동의 없이 출판된 책에 대해 책임이 없으며, 아카데미에 바친 헌사를 삭제해 줄 것을 요구. 이러한 반응으로 책과 프루동은 일반 대중과 일부 식자층에게 더 알려지게 되었다.(초판은 약 500부, 이듬해 7월 출판된 재판은 3,000부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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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1. 연이은 프루동의 소유에 대한 저작 : 블랑키(A. Blanqui)의 비판에 답하는 글『블랑키 씨에게 보내는 서한』(1841), 푸리에주의자 측의 비판에 맞서 그 대표자인 빅토르 콩시데랑(V. Considérant)을 상대로 한 반론 『콩시데랑 씨에게 보내는 서한』(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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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2. 1843년 초 적자투성이 출판사를 청산하고 리옹으로 가서 고티에(Gauthier)형제의 소규모 유조선 회사에 취직. 이후 5년 동안 선원 겸 사무원 생활. 글이 아닌 일로 생계를 꾸리고, 파리를 오가며 교제와 저술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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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2-433. 이 무렵 『인류에게서의 질서의 창조)(1843)를 썼고, 1844년 말 파리에서 바쿠닌(M. Bakunin), 칼 그륀(K. Grün), 칼 마르크스 등 저명한 사회주의자들과 교류. 이때부터 프루동은 사회주의 이론가로 명성, 프랑스 노동운동의 거물급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다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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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3-434. 프루동과 마르크스의 만남과 결별. 당시 무명에 가까운 청년 마르크스는 선배뻘인 프루동과의 교제를 반겼고 그와의 토론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사상적 기반과 정치적 행보가 서로 뚜렷이 드러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곧 소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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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4. 결별의 계기는 프루동의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1846). 프루동은 마르크스류의 유물론에 대한 거부감을 뚜렷이 표명. 이듬해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신랄하게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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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5. 마르크스와 프루동 사이의 논쟁과 대립은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이라는 사회주의 운동의 두 흐름을 여는 전초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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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5-436.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난다. 7월왕정이 해산되고 제2공화정(1848-1851)을 거쳐 권위와 독재를 부른 제2제정(1852-1870. 나폴레옹 3세) 시작. 2월혁명은 중소 부르주아지와 노동자계급의 연합으로 성취되었으나 동맹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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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문제 등 노동자들의 급진적인 요구를 부르주아지가 수용하지 않았고, 공화정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중소 부르주아지는 노동자계급에게는 등을 돌리고 대부르주아지들과 결탁. … 프루동이 볼 때 2월혁명은 <이념 없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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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6. 프루동은 혁명 직후 『인민의 대변인』지에 격문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 1848년 6월 실시된 파리 시 보궐선거에서 제헌의회 의원으로 당선되. 정부의 노동자 계급 탄압정책에 분노한 파리 노동자들은 그해 <6월 봉기>. 무기를 들고 궐기했으나 4,000여 명의 시위대가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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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6-437. 이에 격분한 프루동은 7월 31일 부르주아 출신들로 가득 찬 의회에서 … <2월혁명의 방향과 목적은 소유권의 근절과 부르주아 계급의 폐기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소유자들은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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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7. 프루동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정권의 변화가 아니라 … 부르주아의 지배를 근절시킬 사회혁명. 진정한 사회혁명의 방안 중 하나로 그가 추진한 것이 <인민은행>(Banque du pruple)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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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동은 1849년 초, 노동자들에게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도구 구입에 필요한 자본을 아주 싼 이자나 무상으로 융자해주는 신용은행을 설립. 그러나 프루동이 『인민』지에 공화국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의 전제 정치를 비방하는 논문 세 편을 실은 것을 빌미로 경찰에 체포되어 3년 형을 받음으로써, 인민은행 계획은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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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7-438. 3년 동안 생트-펠라지 감옥과 둘랑 수형소에서 수감 생활. 이 기간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정치범은 저술, 출판, 친지 접견, 외출할 수 있는 권리가 허용되어 … 프루동은 감옥 안에서 『어느 혁명가의 고백』(1849), 『19세기 혁명의 일반 이념』(1851), 『진보의 철학』(1853)을 썼다. 책에 그려낸 내용은 오늘날 흔히 자주관리 사회주의(socialisme autogestionnaire)라 불리는 것의 맹아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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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8-439. 수형 생활 동안 결혼. 1852년 6월 출옥. 이때부터 프루동의 지적, 정치적 삶의 세 번째 국면에 접어든다. <1839년부터 1852년까지는 … 비판의 시기였다. … 나는 … 내가 적극적 시기 또는 건설의 시기라 부를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고자 한다. 이 시기는 첫번째 시기만큼 13년 내지 15년 정도 계속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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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9-440. 만년의 역경. 1854년 콜레라 감염, 두 딸을 잃었고, 빚에 시달렸고, 더 가난한 동생을 도와야 했다. 게다가 루이 나폴레옹과 타협했다는 일각의 비방, 사법 당국의 소추와 탄압으로 정치적 재기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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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0. 1858년 프루동은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 출판. 사회문제에 대한 혁명의 대응과 카톨릭 교회의 대응 비교, 교회 비난. 며칠 사이에 6,000부가 팔렸으나 곧 사법 당국이 몰수. 프루동은 기소되어 3년 형과 4,000프랑의 벌금형을 받았다. 프루동은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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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브뤼셀에서 머물면서 새로운 문제, 즉 국제정치와 국가 조직의 문제 연구 착수. 『전쟁과 평화』(1861)에서 유럽에서 일고 있는 민족주의적 열기와 국민국가에 대한 열망이 결국 패권 정치를 낳고 사회경제적 개혁과 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임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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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제의 원리』(1863)에서는 국가권력의 집중은 국가 간의 평화, 시민들의 자유를 위협할 것이라고 진단. 연방제적 통치체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 이는 시민들 사이의 상호부조와 국가기구의 연방제화에 기반을 둔 통치, 권위가 사라진 자율적인 사회 건설이라는 그의 아나키즘 사상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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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0-441. 1862년 말 프랑스에 돌아왔으나 건강 악화, 공적 생활 불가능.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오랜 관심사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유의 문제로 되돌아갔다. 한편으로는 다가올 총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려는 노동 지도자들의 요구에 응해 프랑스 노동운동의 추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소유의 이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역량』을 썼으며 사후인 1865년에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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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소유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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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1-442. <소유, 그것은 도둑질이다!> 프루동 자신은 이 명제를 평생의 자산으로 여긴 듯. <이 땅에서 내가 가진 재산은 이 명제 뿐이다.>(프루동) 소유의 문제야말로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프루동의 사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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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2. 프루동은 1848년 2월혁명 직후 격동의 프랑스 사회를 보며 <우리의 모든 사회문제는 소유 속에 응축되어 있다>라고 진단. 『소유』는 부르주아 소유제도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이다. 프루동은 소유제도의 존재 근거를 법적, 심리적, 경제적 논거로 나누어 조목조목 검토, 그 어떤 이유에 의해서도 소유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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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2-443. 법학자들이 소유의 법리적 근거로 즐겨 내세우는 것은 자연권, 선점, 민법, 시효취득 네 가지. <인권선언>에서는 자유, 평등, 안전과 더불어 소유도 인간의 천부적인 자연권이라고 주장. 프루동에 따르면 <소유는 사회의 외부에 있는 권리이며 소유와 사회는 불가항력적으로 서로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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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3. 선점, 즉 <최초 점유자>의 권리와 시효취득 즉 <일정 기간 점유 후 자동적으로 소유자가 될> 권리는 법학자들이 가장 즐겨 내세우는 소유의 근거. 그러나 프루동에 따르면, 시효취득이 곧 배타적 소유권을 낳는다면 현재의 모든 부재지주들은 자신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소작인들에게 넘겨야 할 것이다. 동시에 생존권이 평등하다면 선점권도 누구에게나 평등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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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4. 선점도 시효취득도 결코 소유의 근거가 될 수 없는데,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힘의 종교>일 뿐. … 입법자들은 노동의 결실을 보장하고 평등을 명분으로 소유권을 법제화했으나 이는 곧 재산을 양도, 매각, 증여, 상실한 권리를 수반했고, 이에 따라 <원래의 목적이던 평등 자체>를 파괴했다. 소유권을 법제화한다고 해서 소유권 자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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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4-445. <소유가 평등을 조건으로 한다면, 이 평등이 존재할 수 없을 때 계약은 파기되고 모든 소유는 강탈에 불과>하다. 결국 계약이나 동의라는 심리적 동인은 결코 소유권의 토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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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5. 프루동은 소유의 노동 기반설에 반기, 당대 경제학자나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한다. 물론 아담 스미스, 리카도 등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만이 부의 원천임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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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시몽, 푸리에 등 사회주의자들의 뒤를 좇아 노동 없이 얻는 소득이 빈곤과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비판. 동시에 노동하는 자가 결코 자기 노동의 산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 … 노동의 결실은 해당 사회가 도달한 지식과 기술의 일반적인 수준에 힘입은 것, 사회 성원 모두의 기여에 의한 것.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자본은 집합적 소산이며 따라서 공동 재산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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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5-446. 생산자는 <자신이 만든 생산물의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해서만 권리를 가진다.> 이 사실 자체가 소유권을 정당화해 주지는 못한다. … 생산물에 대한 소유는 배타적일 수 있지만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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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6. 제4장에서, 소유의 본질은 <노동하지 않고 생산하는 능력>에 있는 바, 프루동은 이를 <불로수득권>(droit d’aubaine)이라 부른다. 이는 <소작료>, <임대로>, <지대>, <이자>, <이익> 등 이름은 여러가지 이나 근본적으로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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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7. 프루동은 불로수득으로서의 소유가 사회 파탄을 가져올 뿐,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열 가지 명제로 입증. 이 명제들 중 어떤 것은 엄밀한 경제이론에 토대, 어떤 것은 선전 효과를 노린 풍자와 독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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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7-448. 부동산, 즉 토지의 소유는 불가능하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토지, 노동, 자본 그 자체로는 생산적일 수 없으며, 이들이 하나로 합체될 때에만 생산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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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경작자의 직접적인 노동의 결실 이상을 낳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주에게 소작료가 돌아간다면 소작인은 소비를 생계비 이하로 줄이거나 빚더미에 앉게 되고 결국 생산은 마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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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8-449. 공업 및 상업상의 소유는 경쟁과 실업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 위기를 가져온다. … 프루동은 경제 주기와 공황의 이론을 선보인다. 프루동에 따르면, 사회 전체의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려면 개개 생산자는 자신의 생산물을 되살 수 있을 만큼 봉급을 받아야 한다. … 그렇지 않다면 생산물은 <가장 돈 많은 소비자 … 사회의 일부 집단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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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회 전체의 생산과 소비 사이에 필연적인 불균형이 초래되며, 이는 주기적인 생산 과잉과 경제 위기를 부른다는 것. 따라서 상업 및 산업 공황의 첫 번째 원인은 자본의 이자, 즉 자본가의 불로수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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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9-450. 프루동의 비판은 소유제의 정치적 결과로 향한다. 소유는 평등의 원리에 위배된다. 소유는 권리의 평등, 나아가 프랑스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 시민적 평등의 원리와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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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0. 프루동의 소유제 비판은 1848년 『사회문제의 해결, 교환은행』에서 절정. 프루동은 소유제도가 … 역사적 기여를 했다는 점은 인정. 그러나 프루동이 보기에 소유제도는 분업과 교환이 발달한 현대 사회의 정치제도나 경제생활과는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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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1. 프루동은 과감하게 소유제의 철폐를 주장. <소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 소유는 현실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소진했다. … 소유는 이제 과거의 영역 속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시대에 뒤처진 소유제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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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에 대한 가혹한 비판에 뒤이어 나타나는 것은 공산주의, 집산주의 체제에 대한 옹호도 아니고, <공유제>에도 프루동은 공감하지 않았다. <공유제>도 소유와 마찬가지로 부당하고 인류의 천성에 거스른다고 생각했다. … 프루동은 소유에 대한 반대 명제로 최근 공산주의자들이 고안한 공유제 이론이 실은 <소유의 편견> 아래서 구상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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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1-452. <공동체 자체가 소유자로, 그것도 재산만이 아니라 인격과 의지의 소유자로 나타나는> 이러한 공유제에서는 <인간의 생명, 재능, 모든 능력들이 다 국가의 소유물이 되고 국가가 그것을 일반 이익에 맞도록 원하는 대로 사용할 권리를 갖게 될> 것. … 공유제는 <불평등>이고, <억압과 예종>이며, <의식과 자율성과 평등에 대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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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2. 그러면 제3의 길은 가능한가? 프루동은 헤겔의 변증법적 표현을 빌려 사회 발전의 테제(정)인 공유제와 안티테제(반)인 소유를 발전적으로 지양해서 신테제(합)를 찾는 일을 과제로 남겨놓는다. 그는 <공유제와 소유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이 제3의 사회형태는 바로 자유이다>라는 막연한 표현 한 줄을 덧붙여 놓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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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소유』이후 : 소유의 파괴자에서 소유의 옹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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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2-453. 프루동의 소유론은 1848년 혁명 속에서, 사회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자신의 구상을 현실 정치에서 실험하면서 … 계속된 시련 속에서 수정되고 보완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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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할 만한 점은 소유와 공유제 사이의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 자유의 기능을 강조하면 할수록 … 소유에 대해서 조금씩 관대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 프루동의 소유론은 상당히 방향 전환,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과 혼동으로 가득 … 거친 공박을 자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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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3. 『소유』 제2장에서 <소유 없는 점유만으로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했다. 그에 따르면 점유는 사실적 상황, 소유는 법적 상황. … 프루동에 의하면 현 소유제의 모순은 소유와 점유를 혼동하고 나아가 소유가 점유 위에 군림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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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4. 『소유』끄트머리에서 <점유를 보존하고 소유를 제거하라>고 주장. … 프루동이 말하는 점유란 아마도 <제3자의 의도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재화를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용익권>을 뜻하는 듯하나 어디서도 그 이상의 명확한 개념규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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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루동은 1848년 이후, 특히 『혁명의 일반 이념』에서 소유의 점유화라는 종래 주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점유의 무기력성을 지적. 토지 점유란 실제로 국가가 유일한 소유자이고 개개 경작자는 국가의 소작인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 듯하다. 이 경우 점유는 거래와 상속의 자유에 장애 요인, 전제정의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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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5. 더구나 민주주의가 퍼지면서 소유의 본능이 일반 대중에게도 뿌리 깊게 자리, 농민들은 자기가 경작하는 땅에 대한 불완전한 점유권이 아니라 그 땅에 대한 <완벽한 주권자>가 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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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동은 집세, 소작료 등 영구적인 불로수득을 연부 상환금으로 대체함으로써 점유자가 점진적으로 소유를 되사는 방안을 제시. 프루동이 제안한 교환은행은 이들 세입자와 소작농에게 이러한 경비를 조달해주기 위한 것이다. 프루동은 소유의 필요성을 용인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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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5-456. 소유의 옹호자로서의 면모는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1858)와 『과세 이론』(1861)에서 더욱 뚜렷.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에서 프루동은 소유와 임대차를 그것이 떠맡아야 하는 경비와 위험부담 및 소유자 측에서 제공하는 반대급부 등의 명목으로 정당화한다. 대신 지대, 임대료 따위에 단일 과세를 하여 소유자, 사용자 및 국가 삼자 사이에서 적절히 분담할 것을 요구한다. 『과세 이론』에서는 더 나아가 소유와 임대차를 정당화한다. 심지어 자본, 상속에 대한 과세 특히 누진과세를 비난, 소유를 세금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고자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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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6-457. 『소유의 이론』에서 :
<소유는 원래 그대로는 악의 원리 그 자체이며 반사회적이나, 스스로 일반화되는 과정에 의해 그리고 다른 제도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 체제의 중추이자 원동력이 되기 마련이다.> 즉 소유는 그 원리와 기원은 부당하나 그 목적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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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국가 안에서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 자신이 … 차지한 물질의 몫에 의해 자신의 인격을 보장받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은 소유에 의해 충족된다.> … <소유는 절대적이고 자의적이다. 소유에 조건을 강요하거나 소유를 규격화하는 것은 소유를 파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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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7-458. 더구나 프루동은 소유의 자기조절 메커니즘을 입증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 프루동에 따르면, 소유는 한편으로 그 운동방식 자체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 소유를 둘러싼 온갖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우려되는 모든 폐단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 경쟁에 의해 소유는 저절로 제한되고 균형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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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8-459. 그렇다면 압제와 불의를 낳지 않고 자유의 보루가 될 소유의 적절한 규모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소유의 이론』에 앞선 여러 책에서의 논의를 종합해 볼때, 프루동이 이상적이라고 여긴 소유는 소규모 독립자영농의 토지 소유인 듯. … 4-5명의 한 농민 가구에 적절한 토지 규모를 약 5헥타르 정도로 산정. 농민적 소토지 소유가 프루동이 생각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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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9. 프루동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소유제의 폐지가 아니라 소유제의 개혁. 프루동은 소유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 폐단을 치유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와 완전히 다른 길. 마르크스는 소유라는 <제도>를 공격하는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았으며 자본주의 붕괴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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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9-460.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볼 때, 단순히 소유제의 개혁에 머무는 듯 보이는 프루동류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발전 법칙에 둔감한 전근대적인 프티 부르주아의 환상일 뿐이었다. 프루동은 소유제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소유의 개혁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으며 … 그의 지적 행보는 숱한 모순과 오해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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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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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용국 | 2024.11.23 | 0 | 71 |
지난 주에 책밤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발췌문을 올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