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시즌4-2. 『역사란 무엇인가』 6장. (p.183-211)
녹색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4에서는 역사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역사의 역사』(유시민)였고, 두 번째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E. H. 카. 2015. 까치)였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챕터별로 이곳에 정리해서 올렸는데요. 오늘 책꼽문은 『역사란 무엇인가의』의 6장으로 시즌4의 마지막 책꼽문입니다.
'책새벽-월' 시즌5에서는 『사피엔스』(유발 하라리)를 읽습니다. 10/7 시작이고요. 자세한 안내와 참가 신청은 다음 링크로 가시면 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시즌5' : 『사피엔스』
참가문의 : 녹색아카데미 greenacademy.kr@gmail.com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2015. 까치.
목차
편집자 노트
제2판 서문
1.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2.사회와 개인
3.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진보로서의 역사
6.지평선의 확대
부록 E. H. 카의 자료철에서 : 『역사란 무엇인가』 제2판을 위한 노트
6장. 지평선의 확대
p.185.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전이 보여준 근대 세계에서의 그 변화는 데카르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는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유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즉 관찰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까지도 관찰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최초로 확립했고, 그 결과 인간은 사유와 관찰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발전은 루소가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의식의 새로운 심연을 열어젖히고, 사람들에게 자연계와 전통문명에 관한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해주었던 18세기 후반까지는 아직 완전히 뚜렷해지지 않았다.
p.186.
18세기로부터 근대 세계로의 이행은 장구하고도 점진적인 것이었다. 그 이행기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헤겔과 마르크스였는데, 이들 모두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헤겔은 이성의 법칙으로 전환되기도 하는 신의 섭리의 법칙이라는 관념에 깊히 젖어 있었다. … 그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p.186-187.
세계정신의 합리적인 목적에 관해서 헤겔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때, 세계정신의 합리적인 목적과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바로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그 같은 목적을 실현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저 이해관계의 조화라는 것은 독일 철학의 어법으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되는 것이 헤겔의 그 유명한 ‘이성의 간계’였는데, 그것에 의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p.187-188.
애덤 스미스와 헤겔 모두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합리적인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 마르크스의 견해를 최종적으로 종합해보면, 역사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그리고 하나의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것을 의미했다 :
객관적이고 주로 경제적인 법칙에 일치하는 사건의 운동 ; 그것에 조응하면서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유의 발전 ; 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면서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키고 결합시키는 계급투쟁 형태의 행동.
마르크스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법칙과 그 법칙을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적 행동의 종합, 즉 때때로 (비록 오해를 불러일으키고는 있지만) 결정론이라고 불리는 것과 주지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종합이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한 채 복종해온 법칙들에 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p.189.
현대사 시대로의 이행은 20세기로 넘어와서야 비로소 완결되었는데, 이 시대에 이성의 일차적인 기능은 이제 사회 속의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는 객관적인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을 개조하는 것이 되었다.
p.189-191.
이성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여준 우리 시대의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사상가는 프로이트이다. … 그는 … 19세기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였고, 또한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잘못된 가정인 개인과 사회의 근본적인 대립이라는 전제를 의심없이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사회적 실재가 아니라 생물학적 실재로 연구했으므로, 사회적 환경도 인간 자신에 의해서 끊임없이 창조되고 변형되는 과정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
프로이트가 한 일은 의식과 합리적인 탐구에 대해서 인간 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폭로함으로써 우리의 지식과 이해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었다.
…
역사가에게 프로이트는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첫째,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행동은 본인들이 주장하거나 믿고 있는 행위의 동기를 통해서 사실상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
둘째,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의 작업을 보충하면서 역사가에게 자기 자신과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주제나 시대에 대한 선택을 이끌고 사실에 대한 선별과 해석을 이끈 동기—아마도 숨은 동기겠지만—를, 그의 시각을 결정한 민족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형성시키고 있는 미래에 대한 관념을 심문해보라고 촉구했다.
p.202-203.
내가 20세기 혁명에서의 이성의 확대라고 부른 것은 역사가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 왜냐하면 이성의 확대는 본질적으로 지금까지 역사의 외부에 있던 집단과 계급, 인민과 대륙이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더욱더 많은 민중들이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을 가지게 되고, 각자의 집단들을 과거와 미래가 있는 역사적 실재로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완전히 역사 속에 들어올 때, 그럴 때 근대사는 시작된다. 사회의식, 정치의식, 역사의식이 인구의 대다수에게 웬만큼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소수의 선진국가들에서조차 기껏해야 최근 200년 이내의 일이었을 뿐이다. … 민중으로 구성되는 전체 체계를 처음으로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오늘날의 일이다.
p.211.
나 자신으로 말하면, 나는 여전히 낙관론자이다 ; 그렇기 때문에 루이스 네이미어 경이 나에게 강령이나 이상을 피하라고 훈계할 때, 오크셔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는 특별히 어떤 곳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배를 흔들지 못하게 살펴보는 일만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포퍼 교수가 하찮은 점진적 공학이라는 엔진의 힘으로 애지중지하는 T자형 고물차를 길 위로 계속 끌고 다니기를 원할 때, 트레버-로퍼 교수가 소리쳐대는 급진주의자들의 콧잔등을 후려갈길 때, 모리슨 교수가 역사는 건전한 보수적인 정신으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그것은 움직인다.’
(6장 끝. 『역사란 무엇인가』 책꼽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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