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김재영] 사실/가치 이분법의 붕괴 또는 앎과 함의 접속점
<과학과 메티과학> 12장 "새 가치 이념의 모색" 특히 4절-6절은 흔히 말하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분리 내지 사실(과학)의 가치중립성 신화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 "힐러리 퍼트남과 사실/가치 이분법(Fact/Value dichotomy)의 붕괴"라는 제목으로 이와 관련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핵심 주장은 "가치와 독립된 사실이 따로 있다거나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는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실판단에는 이미 가치가 개입해 있으며 가치에 대한 평가와 판단에 이미 사실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앎과 함의 접속점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은 "지식의 형성 과정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가치 관념에 영향을 받지만 일단 구성된 지식은 이를 탄생시킨 탐구자의 기존 가치 이념과는 무관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 주는 기능을 가진다."(357쪽)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식 자체의 내적 구조기 지닌 가치중립성"덕분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새로운 가치 이념의 추구 과정에서 기존 가치 이념에 종속되는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이는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결국 여하간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입니다. 이는 과학기술의 사회구성주의적 접근과 연결됩니다. 저는 애초에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이 문제는 2장 "지식 진화와 학문의 전개 양식"에서도 지식의 변화 문제와 함께 논의한 적이 있고, 4장 "과학의 이론 구조: 의미기반과 상황진술"에서도 의미기반론과 패러다임론의 연결 속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적 있습니다.
앎과 함의 접속접을 밝히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핵심적이라고 믿지만, 동시에 앎과 함의 분리를 처음부터 의심하는 것이 어떨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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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학을 역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또는 다른 측면으로 고찰하여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많은 연구들이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1 아니면 0이라고 보는 단순 분류 사고가 곁들면 극단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의 도피처를 만들어주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봅니다.
극단적 반지성주의자들은 과학적 앎이 그 자체로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모형이라는 통찰을 방패 삼아 과학적 지식이나 자신들의 궤변이나 하나의 모형일 뿐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결국 모든 지식이 가치의존적이며 가치로부터 독립된 지식은 없다는 통찰은 곡학아세하는 자들의 방패로 활용될 것입니다. 바늘 끝 위에 올려놓을만한 지엽말단의 근거 한 두개를 찾아다가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 때문에 스스로 망한 조선이 근대화되었다고 악악대는 자들이 아마도 '앎과 함은 원래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방패를 들 자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깊지만 단순화된 통찰은 음험한 속내를 가진 반지성주의자들의 방패로 귀착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1 아니면 0이라는 단순화보다는 1과 0 사이를 무한히 나누어 그 정도를 비교할 수 있게 하고 그 안에서도 어떤 임계치를 설정하는 식의 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