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18장
모임 정리
책새벽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11-19 10:10
조회
795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3에서는 현재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있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2010. 문학과지성사.
제18장
p.379.
철학의 한 분야 가운데 그 전체가 질에 대한 정의와 관련된 것이 있는데, 이를 미학이라 한다. "아름다움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미학적 질문의 경우 그 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파이드로스는 철학과 학생이었을 때 이 학문 분야의 모든 것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
그에게 이처럼 미학에 반감을 갖도록 한 특정한 미학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미학자들 전체가 그에게 반감의 대상이었다. 그를 격분케 한 것은 질에 대한 어떤 특정한 입장이 아니라 질을 어떤 것이 되었든 무언가의 입장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였다.
p.380.
우선 결정화 과정의 첫 단계로 그가 취한 조처는 질을 정의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는 일이었다. 질을 정의하지 않는 상태로 남겨두는 경우, 미학이라 불리는 분야 전체가 일소되고 . . . 철저하게 특권을 박탈당하고 . . . 완벽하게 결딴이 나고 말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질에 대한 정의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이를 완벽하게 분석 과정의 바깥쪽에 놓이게 한 것이었다. 만일 질이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이를 어떠한 지적 법칙에도 종속시킬 방도가 없게 된다.
p.382-383.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정의 내리기를 거부하는 행위를 도대체 이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이성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정의다. 정의가 없다면 이성적 추론도 불가능하다. 그는 잠시 그럴듯한 변증법적 발놀림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면서 유능함과 무능함에 관해 무례한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조만간 현재의 것보다는 더 실속이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야만 했다.
p.384-386.
이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만 했다. 질에 대해 정의할 수 없다면, 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답변은 현실주의라 불리는 철학 학파가 제시한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 "만일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아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무언가는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기능함을 우리가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질이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다. 질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건 불가능하건 이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에 따라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세상에 대한 진술에서 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에 의하면, 이 같은 제거 작업의 첫 희생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다. 예술에서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별할 수 없다면 예술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 시, 희극, 운동 경기, 시장, ...)
하지만 순수과학, 수학, 철학, 그리고 특히 논리학 분야에서는 변화가 감지되지 않을 것이다.
파이드로스가 보기에 이 마지막 단계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순수하게 지적인 탐구 작업은 질을 제거했을 때 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다. 만일 질을 포기하게 되면, 다만 합리성만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는 참으로 묘한 현상이었다. 왜 그럴까.
p.388-390.
이처럼 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논의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그는 무언가 적절한 표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들의 특징은 지적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지적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다. 이들의 특징은 세상사에 대해 취하는 모종의 기본적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세상이란 법칙들 - 말하자면, 이성 - 에 맞춰 돌아가는 것이라는 가정, 나아가 인간 세계에서 발전은 주로 이 이성의 법칙들을 발견하여 인간의 욕망이 충족될 수 있을 때까지 이들을 활용할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는 가정을 근거로 해서 확립된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바로 이 믿음이다. ...
반듯하게 각이 져 있음.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바로 그렇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질을 제거하는 경우 남는 것은 반듯하게 각이 져 있는 세상이다.
그는 이제 서로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보고 있는 셈이었다. 지적인 측면에서, 그러니까 반듯하게 각이 진 쪽에서 보면, 질이란 분할선의 역할을 하는 용어라는 점을 이제 그는 알게 되었다. 모든 지적 분석가들이 찾는 것이 바로 이 갈라진 틈이다. ...
p.391.
비록 정의를 하지 않더라도 질이 존재함을 우리는 증명했다. ... 이제 확인해야 할 것, 또는 분석해야 될 것인 질이 아니라, '반듯하게 각이 져 있음'으로 불리는 기묘한 사유 습관 - 말하자면, 우리에게 때때로 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 기묘한 사유 습관 - 이다."
이처럼 그는 공격의 대상을 바꾸고자 했다. 분석의 대상 ... 은 더 이상 질이 아니라 질에 대한 분석 그 자체였다.
p.391.
뒤돌아보니 크리스가 한참 뒤처져 있다. "자, 힘을 내라." 내가 이렇게 외친다.
그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
"힘을 내라니까!" 다시 한 번 내가 소리친다.
이윽고 그가 옆으로 쓰러지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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