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패러데이 - 물리학과 천재
물리학이 천재들이 하는 일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과학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항상 경계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과학의 역사에서 '천재'라는 관념은 대체로 신화화되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이 당대에 뭔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하는 것도 있고 더 노력한 것도 있고 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여하간 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어떤 천재적 영감으로 무엇인가를 해 낸 것은 결코 아니라고 믿습니다.
마침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의 이름이 거론되니까, 패러데이의 삶을 조금 소개할까 합니다. 패러데이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트 집안에 태어나서 학교교육이라고는 두 주 또는 두 달(사료에 따라 다릅니다) 정도 다니면서 영어를 간신히 읽는 것만 배웠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14살부터는 지역의 제본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7년 정도 일을 했는데, 자신이 제본하는 책들을 죄다 읽을 정도로 배움에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림 출처: wikimedia)
제본공장 단골 한 명이 런던 왕립연구소 공개강연 입장권을 선물한 덕분에 패러데이는 런던 왕립연구소 교수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듣게 됩니다. 그 강연은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정장 차림으로 마차를 타고 가서 즐기는 일종의 과학 콘서트였습니다.
(영국 런던의 왕립연구소 전경)
소일거리로 그 강연을 '구경'했던 다른 부르주와 계급의 사람들과 달리, 패러데이는 그 강연을 통해 자연철학을 공부하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데이비에게 정성들인 편지를 보냅니다. 런던에 있는 과학박물관에서 패러데이가 직접 작성하여 제본까지 해서 데이비에게 보낸 강의노트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출처: 패러데이가 험프리 데이비에게 보낸 강의록 표지 https://airshipflamel.com/ )
(마이클 패러데이가 남긴 강의록. 출처: https://www.sciencephoto.com/ )
데이비는 이 열정이 넘치는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는 청년을 왕립연구소에 보조로 채용했고, 그 뒤 이 청년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실함과 정열을 가지고 연구소 일을 해 나갔습니다.
패러데이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수학에 대해 완전히 까막눈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패러데이는 뉴턴의 자연철학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며, 나아가 수학적으로 대충 얼버무리면서 전기와 자기의 현상을 설명하는 척 하던 당대의 교수들이나 학자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기력을 수식으로 나타내고 보편중력(만유인력)의 수식에 대입한다거나 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왕립연구소에 있던 마이클 패러데이의 실험실)
(영국 왕립연구소에 있던 마이클 패러데이의 집)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크리스마스 강연을 하고 있는 마이클 패러데이)
패러데이는 바로 그래서 전기력선과 자기력선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것을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클 패러데이의 자기 실험실)
(마이클 패러데이의 자기유도 코일)
패러데이가 코일과 자석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내자 빅토리아 여왕인가 아니면 무슨 고위급 관료가 연구소에 찾아와서 "전기라는 게 무슨 쓸모가 있나요?"라고 묻자, 패러데이가 "아기는 무슨 쓸모가 있나요?"라고 반문하고, "아기가 태어날 때 쓸모가 따로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듯, 전기라는 것도 그냥 태어난 것"이라면서 "어쩌면 영국정부가 이 전기를 독점하면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21세기까지도 현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가 다름 아니라 전기라는 점, 쉽게 말해 A.I.니 뭐니 해도 결국 모두가 전기로 작동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현대 문명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두 달도 채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덕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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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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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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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낭만이 살아있던 시절이네요. 오늘날 과학을 전문적인 업으로 삼는 장벽은 패러데이 같은 인물을 더 이상 허용할 것 같지 않네요. 최근의 어느 다큐에서 80세 즈음의 할머니가 아마도 시다에서 부터 시작해 평생을 미싱일로 가족을 부양하시고, 이제야 은퇴해 임대 아파트에 사시며 뭐든 배울 곳이 있다면 배우시려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시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더군요. 영리해 보이셔서 배움의 기회만 얻으셨다면 분명 즐겁게 공부하셨을것 같은 데…팔십에 영어를 배우셔서 과연 해외여행을 하실 수 있을만큼 건강이 허락하실지.
역사적으로 천재로 이름을 날린 분들이 무엇보다 그 할머니가 갖지 못한 기회들을 일단 갖으신 부분은 분명 운이겠네요.
사료를 검색해 보니 전기와 세금 이야기는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Why, sir, there is every probability that you will soon be able to tax it."
Disputed: Faraday's purported reply to William Gladstone, then British Chancellor of the Exchequer (minister of finance), when asked of the practical value of electricity (1850) as quoted in Democracy and Liberty (1899) by William Edward Hartpole Lecky, p. xxxi , and in Discovery Or The Spirit And Service Of Science (1918) by R.A Gregory, p 3. The variant "One day sir, you may tax it." is given in The Harvest of a Quiet Eye : A Selection of Scientific Quotations (1977), p. 56, but they source it to Discovery which differs in its quote. According to Snopes in "Long Ago and Faraday", it is most likely an invented quotation, as there are no contemporaneous records, though Lecky did live through the same time as Faraday and Gladstone."
https://en.wikiquote.org/wiki/Michael_Faraday
https://www.snopes.com/fact-check/long-ago-and-faraday/
잘 읽었습니다. 패러데이 이야기는 저희같은 사람들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네요. ㅎㅎ;
지금 쓰고 계신 책에 패러데이 이야기도 들어가나요? 어서 책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
(올려주신 패러데이 초상화의 눈을 보면 스피노자 초상화의 눈이 생각나요.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맑고 사심없어 보입니다.)
공감합니다. 어쩌면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도 패러데이의 눈에서 그의 삶이 말해 주는 그 간절함과 소박함과 정성스러움과 순수함을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도 초상화가 있나요? 위키피디어에 있는 그림은 Portret van Baruch de Spinoza (1877)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그림을 그린 사람도 미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스피노자 생전에 그린 그림이 아니고 19세기 말에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 어떤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스피노자의 초상화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Portraints of Spinoza
앗, 그렇군요... 나중에 그린 그림이었네요.
그런데 스피노자 초상화가 없나요? 너무 아쉽네요
위키미디어에 1664년 작품이라고 표시된 그림이 있습니다.
Benedictus de Spinoza - Franz Wulfhagen - 1664.jpg
핫!! 아쉬운 게 나을 뻔 했어요...1877년 그림이 더 좋네요. ㅠ.ㅠ
(근데 콧날은 닮았는데요?! ^^;)
많이 알려져 있는 1877년 그림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좀 낯선 느낌입니다.
아래 그림은 네덜란드의 그림상인 콘스탄트 페흐트(Constant Vecht)가 2013년에 프랑스에서 발굴한 것인데 그 사람은 이 그림이 바렌트 그라트(Barend Graat)가 1666년에 그린 것으로서, 여러 상황으로부터 판단할 때 바뤼흐 스피노자의 초상화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그림이 스피노자의 초상화일 리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낮에는 렌즈를 갈고 밤에는 매일 조금씩 원고를 써 나가고 수많은 편지를 읽고 답장했으며 너무나 가난했던 스피노자가 이렇게 초상화를 그린답시고 편안하게 앉아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배경에 있는 이교도적인 조각이나 기타의 것으로부터 판단할 때 스피노자일 리가 없다는 겁니다. 페흐트는 얼굴 윤곽이나 여러 점이 당시의 묘사와 일치한다면서 이 초상화가 스피노자의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아직 판정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https://bit.ly/40IkjVC